문재인의 운명 (특별판)
문재인 지음 / 북팔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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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을 꽤 좋아했습니다. 정치에 대해선 솔직히 잘 모르지만, 그 이전까지의 대통령들은 제가 아기 때부터 봐오던 어르신들이 무슨 릴레이처럼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지라 뭔가 식상하면서 구태의연하게 느껴졌었는데 노무현 대통령님은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그의 등장 자체도 신선했고, 그분이 대통령 임기 시절 시도했던 여러 개혁들도 좋았고, 상당히 서민적인 그의 행보 또한 마음에 들었었죠. 그런 그분이 느닷없이 돌아가셨죠. 그날이 아마 일요일이었을 텐데, 늦잠을 자고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고 비보를 듣고는 한동안 멍해 있었습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솔직히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호감을 조금 느꼈을 뿐, 크게 존경하지도, 그분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랬습니다. 


 그 뒤로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만 한 분은 없구나 하는 것을... 그래서 생각했죠. 그분의 뒤를 이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하고. 저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당장에 떠오르는 인물이 문재인 비서실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뜻에 그랬는지 역시나 문재인은 18대 대통령 후보로 선거전에 뛰어들습니다. 당연히 저는 그를 지지했지만 패배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저는 어쩐지 문 후보에게 실망도 조금은 했었습니다. 그분을 보는 기대가 상당히 컸었는데, 그분의 눈에선 확신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이번 19대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는 18대 때보다는 좀 더 시큰둥하게 그분을 봤습니다. 그분은 어쩌면 쉽게 19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고, 그분의 임기 초반 행보를 보다보니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의 눈에 어린 어떤 의지를. 그래서 좀 더 그분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책덕답게 운명이란 책을 당장 구입했습니다.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던 날부터 시작이 됩니다. 유서에 '모든 것이 운명이다.'라고 남기고 떠나신 노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노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그 만남부터가 운명적이었습니다. 판사를 꿈꾸었고 연수원 차석으로 졸업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 시절 시위 경력으로 판사 임용에 실패합니다. 검사는 본인이 생각해도 체질에 맞지 않아 변호사가 되어 부산에 내려갔고 그때 한 법률 사무소에서 변호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드디어 노무현 대통령과 조우하게 됩니다. 1부는 그렇게 두 대통령이, 아니 두 변호사가 운명처럼 만나 인권 운동에 투신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타고 그려져 있습니다. 두분의 열정도, 더불어 현대사 공부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2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개인적인 성장 과정과 인생이 펼쳐집니다. 가난한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나 문제아로 불리웠고, 법대에 진학하고, 아내를 만나고. 그분의 일생이 담담하고 담백하게 마치 대통령이 직접 읽어주는 듯한 느낌으로 펼쳐집니다. 특히 아내 김정숙 여사와의 사연들이 참 흐뭇하더군요. 군대 간 애인을 면회가는데 음식은 하나도 없이 안개꽃을 가득 안고 갔다는 사랑스러운 그녀. 그 순수한 소녀소녀한 감성과 더불어 이젠 그 특유의 쾌활함과 포용력으로 지금 거의 완벽한 퍼스트레이디로서 국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계신데, 저 역시 열렬한 지지를 보냅니다!


3부에서는 이제 본격적인 정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고 민정수석과 시민사회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으로 겪었던 여러 정치적인 행보들. 그리고 노무현 정권 내에서 추진했던 여러 정책들에 대한 이야기. 잘한 것은 잘했다고, 아쉬웠던 건 아쉬웠다고, 잘못된 것은 잘못 됐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당시 상황들을 조금은 자세히 이해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부, 운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 이미 8년 전의 일인데도 여전히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분의 최측근인 문 대통령은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하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의 그 죽음이 문 대통령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의 말미에 대통령님도 밝히셨듯 언제나 그분의 치열함이 문 대통령을 각성시켰으니까요. 정치에 뜻이 없던 사람을 끝끝내 민정 수석이란 자리에 앉히고, 그 자리에서 금세 내려와 좀 마음 편히 살아보자 했더니 탄핵 사건이 터지고, 임기를 마치고 작은 마을에서 농군으로서 사시던 분이 끝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이 모든 일들이 어쩌면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운명적인 과정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새로운 19대 대통령 문재인이 취임한 지 5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제 보기에는 정말 열심히 일해주시는 것 같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주시길... 다만 청와대 직원 중 어떤 분이 대통령님께서 너무 잠을 안 주무셔서 건강이 걱정된다고 하던데... 잠은 충분히 주무시면서요. 임기 내내 지켜보며 지지하겠습니다. 우리 이니 대통령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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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히어로즈
기타가와 에미, 추지나 / 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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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하지만 매우 성실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슈지. 그는 어떤 꿈을 마치 트라우마처럼 되풀이합니다. 그리고 그는 사실 실제로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편찮으신 외할아버지의 문병을 좀 다녀갔으면 한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습니다. 그래서 간 병문안에서 할아버지는 슈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인생이었어." 할아버지의 이런 말에 슈지는 슈지대로 어떤 충격을 받았겠지만, 독자인 저는 또 저대로 적잖이 뜨끔했습니다. 왠지 할아버지의 그 말에 노인도 아닌데 공감할 뻔했거든요.

사실 슈지는 성실하긴 하지만 상당히 재미없고 심심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일하게 되는 회사 주식회사 히어로즈.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곳은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영웅을 영웅으로 계속 머무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곳이었습니다. 즉, 남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것이죠. 때문에 슈지와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슈지는 이곳에서 각성하고, 발전하고, 생의 활력을 찾고, 심지어 트라우마까지 극복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말 그대로 상당히 '라이트'하게 전개되어 순식간에 책장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작품이 전하는 주제는 결코 '라이트'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평생에 히어로 한 명쯤은 존재한다는 것. 나에게도 히어로가 있었고, 나 또한 그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것. 즉 히어로는 그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결국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인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 상당히 따뜻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슈지와 할아버지와의 과거 추억들이 감동적이었습니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났거든요. 저는 시골 깡촌 출신이라 집에서 소를 키웠는데, 할아버지는 매일 소꼴을 베러 다니셨습니다. 그렇게 지게에 소꼴을 한 짐 지고 오신 할아버지가 저와 동생에게 늘 건네던 것이 있었는데, 빈 담배갑에 가득 따 담은 산딸기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방아깨비가 그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소꼴을 베시는 와중에도 손주들 간식과 장난감(?)을 챙기셨던 거죠. 담배 냄새는 죽도록 싫어하는 저인데, 할아버지가 건네주던 담배 냄새가 살짝 밴 그 산딸기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이었습니다. 저에겐 상당히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기억입니다. 아마 저 역시 인생 첫 히어로는 할아버지였나 봅니다. 문득 할아버지와 산딸기가 그리워지는 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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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니처 나비사냥 2
박영광 지음 / 매드픽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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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살인마라 불리우는 유영철.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는 정남규.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이들이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을 당시 속세와 연을 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영철이란 이름만 들었지 그가 저질렀던 만행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역시 영화 추격자 때문이었지요. 영화 자체도 소름끼치게 무서웠지만, 전 그 영화를 보고 유영철에 대해 궁금해 인터넷을 뒤졌더랬습니다. 그리고 그날 전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가 저지른 만행들이 너무 소름끼치고 무서워서. 그런데 그런 유영철만큼,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악마가 존재했었다니... 그리고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니.... 현직 형사 신분이라는 작가는 여기서 모티프를 잡아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실제 사건들은 서울에서 일어났지만 소설의 배경은 광주와 그 주변 지역들... 제 고향도 여기 등장을 하는지라 읽는 내내 더더욱 소름이 오소소 돋고 말았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유영철(극 중 주경철)보다는 정남규...그러니까 극중 '남자'입니다. 비가 오는 날, CCTV 사각지대에서, 여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며, 피 냄새에 중독되어 가는 남자. 연이어 벌어진 출장마사지 여성들의 실종건으로 마침내 주경철이 체포되고 그는 자신의 여러 범행들을 자백합니다. 그런데 형사 태석은 그의 옛 연인이었던 지선의 사건만큼은 그가 저지른 짓이 아님을 간파합니다. 그래서 진범을 잡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만... 경찰 고위 간부들은 수사가 아닌 정치가 먼저이기에... 그리고 경찰 조직의 자기 지키기기 때문에... 점점 더 피해가 늘어만 갑니다.

 

이야기는 태석의 관점과 '남자(엑스)'의 관점이 번갈아 가며 서술이 되는데... 특히 엑스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부분에서는 적나라한 그의 심리 묘사가 정말 소름끼치게 무서웠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결코 잡히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살인을 계획하는 엑스, 피씨방에서조차 담배꽁초 하나 안남기도 모조리 쓰레기를 챙겨 자신의 유전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엑스, 그리고 그 사건이 기사로 세간에 알려지면 범행 수법을 달리하여 사건들 사이의 연관성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엑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실제로 정남규가 했었던 일이라니 이 소름끼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정남규는 독방에 갇혀 더이상 살인을 저지를 수 없어 결국 자신을 살해하여 쾌락살인을 완성했다고 하니...... 실질적으로 사형제가 폐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 우리나라이기에...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유명철은 여전히 독방에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거.............)

 

엑스가 끔찍한 살인마가 된 데에는.... 가정도 이웃도 사회의 잘못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그 끔찍한 살인 행각을 정당화할 순 없었지만... 다시 정남규나 유영철 같은 살인마가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점에 대해서도 좀 생각을 해 봐야하지 않을까...싶네요.

 

부디 이런 끔찍하고 무서운 일들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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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곽재식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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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진짜 무서운 건 귀신도 뭣도 아닌 사람이란 걸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서운 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소설은 잘도 읽으면서, 이상하게 호러엔 약한 저. 그래서 읽기 좀 망설여졌던 책인데 인터넷 서점 미리보기를 통해 초반부를 보고 너무 끌렸더랬습니다.

 

한동규는 백수입니다. 여기저기 구직활동을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돌아오는 소식은 죄 불합격. 될 대로 되라는 심정과 어디서든 긍정적인 답변이라도 들어보자는 심정에 정체 불명 수상하기 짝이 없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갑니다. 일단 면접장이라는 곳부터가 지금을 문을 닫은 학원이었고, 면접을 진행하는 면접관은 한동규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그제서야 바로 그 장소에서 잠에서 깨어 고대로 면접을 진행합니다. 게다가 면접관이 던진 질문은 "아는 이야기 중에 제일 무서운 이야기, 남이 돈 번 이야기 중에 게일 기막한 이야기, 누구 바람난 이야기 중에 최대한 길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해달라는 것." 한동규는 면접장을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역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한동규가 시작한 이야기의 배경은 일제강점기의 한 공장. 그곳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일들과 비극과.... 그리고 등장하는 귀신. 거꾸로 매달린 여자 귀신이 떠올라 솔직히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섬뜩하긴 했었는데.... 재미있는 건 한동규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한동규와 이인선은 이 이야기의 맹점을 찾고, 헛점을 찾고, 진실을 찾는 등 토론 비슷한 걸 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여기까지가 문제편에 해당하지요.

 

분명 한동규는 그 수상쩍기 짝이 없는 회사에, 회사보다 더더욱 수상쩍기 짝이 없는 회사 대표 이인선을 보고 결코 다음날 출근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지만... 그에겐 아무래도 그 회사가 운명이었던지 어쩔수없이 이끌리듯 다음날 정식 출근을 하게 되지요. 그렇게 이어지는 풀이편에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한동규와 이인선이 콤비를 이루어 그 이야기 속의 공장을 찾아내고, 실제로 귀신이 있는지를 파헤쳐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콤비의 매력이 백분 발휘됩니다. 저는 특히 이인선의 독특하고 개성있는 캐릭터가 정말 좋았습니다.

 

또 이 작품이 매력적이었던 건 '무서운 이야기' 속에서, 그리고 한동규와 이인선이 귀신을 잡는(?) 과정 속에서 은밀하게, 그렇지만 눈에 훤히 보이게 드러나는 사회 문제들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에서 봤던 몇몇 일들을 이런 식으로 이런 소설을 통해 확인하게 되니 또 감회가 새롭더군요.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원래 이 작품은 10개의 이야기의 스타트를 끊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결말을 보고 뭔가 좀 아쉽습니다. 이제 막 주인공들한테 정 붙이기 시작했는데 곧장 이별을 해야하는 기분이었달까요. 부디 이 작품이 잘 되어서 시리즈가 이어지고 이인선&한동규 콤비의 이야기를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 그래서 진짜 귀신은 존재했느냐구요? 그건 직접 작품을 읽고 확인해 보시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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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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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창 시절 '현대사'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받아 본 경험이 없습니다. 원체 암기를 싫어해 역사라는 과목 자체도 너무나 싫어했지만, 그나마도 늘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 정도까지만 공부하다가 포기해버리곤 했지요. 게다가 현대사 파트는 교과서의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해 있기에 시험 범위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결정적으로 현대사는 솔직히 제대로 실려 있지도 않은 것이 실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나이가 좀 먹다 보니 역사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더라고요. 역사는 암기가 아닌, 흐름이란 것을, 그리고 제가 사랑해 마지 않는 스토리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가끔 역사서를 보곤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는 어렵기도 하고 제대로 정리해 놓은 역사서를 만나지 못했기도 했습니다. 가까운 과거일수록 더 잘 아는 것이 당연하고, 더 잘 알아야하는 것이 마땅할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과거일수록 더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치인 시절엔 응원도 했었지만 실망도 했던 유시민, 솔직히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가 매체에 자주 노출이 되면서부터입니다. 제게 유시민은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사실 그의 본업은 '작가(글쟁이)'였더군요. 매체에서 보여지는 그의 입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렵고 민감한 사안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그를 보면서 그가 쓴 역사서라면 쉽게 읽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그의 사고방식이 저와 잘 맞는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지요. 다른 책도 다 그렇겠지만 특히 역사서라는 건 역사가의 지극히 주관적인 취사선택으로 탄생하는 책이니까요.

 

이 책 속의 대한민국의 역사는 1959년, 저자가 태어난 해부터 시작됩니다. 일제 강점과 전쟁을 겪고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 대한민국. 유시민은 이때의 대한민국을 '난민촌'이라고 비유했습니다. 국민들은 겨우겨우 해외 원조를 받아 어렵게 끼니를 이어가는데 이승만을 필두로 한 윗분들이 저질렀던 만행들. 그렇게 일어난 4.19혁명. 하지만 이어서 들어선 군부정권. 저자는 다시 이 시기를 '병영'에 비유합니다. 군부 정권은 길게도 이어졌고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점점 더 거세어져 그 정점을 찍은 것이 6.10 민주항쟁. 그래서 저자는 다시 6.10 민주항쟁 이후의 시기를 '광장'이라고 비유를 해놓았습니다. 저는 특히 궁금했던 시기가 바로 '난민촌' 시기와 '병영' 시기였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학교에서는 그 시기에 대해 전혀 배운 바가 없었고, 스스로 찾아 알아보기엔 너무 단편적 지식들이 흩어져 있거나 반대로 너무 방대한 지식에 겁을 지레 겁을 먹어 피상적인 것들만이 머릿속에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들을 잘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적절한 비유들과 설명으로 이해하기도 쉬웠고, 특히 저자의 주관적인 판단대로 취사선택한 사건과 그 경위들이 바로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들이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다만 독서 과정에서의 고비(?)도 존재하긴 했습니다. 3장에서의 경제사 부분은 정말이지 힘들었습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의 지식이 백분 발휘되는 이 장은, 온통 그래프와 경제 이론과 통계학들이 난무해 솔직히 읽는 데 힘겹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본능적인 욕구이기에 경제사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서는 수백년이걸려 이룩한 경제 성장을 우린 단 몇 십 년만에 이뤄버렸으니 더욱 그렇겠지요. 난무하는 그래프와 경제 이론들이 버겁긴 했지만 우리의 급속한 경제 성장 과정과 그 흐름 속에서의 득과 실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어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읽길 잘했다 싶습니다.

 

제가 가장 만족스러웠고, 가장 많은 걸 깨달았고, 가장 좋았던 파트는 역시나 '민주화(정치사)'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 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정치사'를 말하는 거였으니까요. 4.19 혁명이나 5.18 민주화 운동, 6.10 민주 항쟁 등... 듣기야 많이 들었지만 이 사건들이 정확히 어떤 흐름을 타고 어떻게 진행되어 어떤 결과를 맺게 되었는지는 솔직히 잘 알지 못했거든요. 때문에 이런 과정들이 또한 알기 쉽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비루한 기억력에 벌써 이 흐름들이 가물가물해지는고로, 여러차례 재독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어지는 사회, 문화, 복지 파트는 어쩐지 저도 추억으로 빨려들더군요. 유시민은 59년생으로 저희 엄마랑 비슷한 연령인데 어째서 그가 겪은 일들을 저도 많이 겪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좀 복잡한 심경이기도 했습니다.(ㅋㅋㅋ;;) 역사서라면 으레 가장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남북관계도 북한이 어째서 예전에, 그리고 지금 그런 행동들을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소위 우리 윗 세대분들이 겪는다는 그 '레드 컴플렉스'라는 게 참 질기기도, 질리기도 하는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세대의 그 이해할 수 없었던 사고 방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도 되었습니다.

 

이 책 속에에 등장하는 무수한 통계 자료 중에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까?"라는 설문조사의 통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을 받고(?) 독서를 멈추고 한동안 멍해졌었습니다. 나는 어떻지? 나는 다시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나? '헬조선'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갖고 있는 이 나라에서 나는 또 다시 태어나고 싶나?...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더군요. 그런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비로소 그 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찾은 대답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도 괜찮을 것 같다.'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어두웠던 과거의 민낯들을 보며 분명 많은 분노와 부끄러움을 느끼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또 잘 극복했더라고요. 이 정도의 나라라면, 이런 국민들이라면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 또 다시 그 일원이 되는 것도 꽤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음, 어쩌면 역사서는 이런 '마음'을 먹고 싶어서 읽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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