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여우가 잠든 숲 세트 - 전2권 스토리콜렉터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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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 : 타우누스 시리즈>

2011년 출간되어 그 해 베스트셀러에 등극, 여전히 잘도 팔리는 넬레여사의 타우누스 시리즈 4번째 작품 '백성공주에게 죽음을'. 거의 처음 접하는 독일 미스터리임에 낯설기도 했지만, 기가 막힌 설정과 재미에 속된 말로 이 듣보(...이런 표현 죄송) 작가에게 빠졌었더랬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거의 몰아서 줄줄이 출간된 그녀의 작품들을 모조리 탐독했었고요. 그리고 저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독일을 넘어 전세계에서 베스트셀러라기에, 아 그럼 이 작품이 그녀의 대표작이고 이 작품을 넘어서는 작품을 만나긴 힘들거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넬레 여사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회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완성도가 높아지더라는 겁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작가들은 어떤 정점에 이르고 나면 그냥 재미는 있으되 절정인 작품을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아쉬움의 평을 받곤 하잖아요. 그런데 넬레 여사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은 것일까요? 저는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보다 '사악한 늑대'가 더 재밌었고, '사악한 늑대'보다 이번 신간 '여우가 잠든 숲'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는 타우누스 시리즈 중 유일하게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점입가경, 타우누스 시리즈에 꼭 맞는 말이지요.

 

<전전반측 : 올리버 폰 보덴슈타인>

이 번 이야기는 보덴슈타인이 살고 있는 고향 마을 루퍼츠 하인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타우누스 시리즈가 으레 그렇듯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조사하기 위해 보덴슈타인과 피아 콤비가 수사에 착수하게 되지요. 다만 흥미로운 건 현 시점에 일어나는 연쇄 살인 사건이 42년 전 한 아이의 실종 사건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42년 전에 실종된 아이 아르투어는 보덴슈타인의 절친이었고, 그 아이가 실종되던 날 보덴슈타인이 애지중지하던 애완 여우 막시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 일은 보덴슈타인에게 여전히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은 전부 보덴슈타인 지인들. 이러니 보덴슈타인의 고뇌는 깊어만 갈 밖에요. 안그래도 개차반 전처에, 만나는 여자들마다 어찌 그리 여자 보는 눈이 없는지 막장에 막장을 달리는 그의 연애사에, 늦둥이 딸 소피아의 독박 육아에, 강력반장이라는 직장 타이틀까지. 바람 잘 날 없던 보덴슈타인은 갱년기 비슷한 증상까지 온 상태였으니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 전전반측, 잠 못 이룰 밖에요.

 

<괄목상대 : 피아 산더>

정서적으로 극한에 극한까지 몰린 보덴슈타인은 명목상 장기 휴가(...속내는 은퇴)를 결심하고, 보덴슈타인의 뒤를 이를 반장으로 피아를 추천합니다. 시리즈의 첫 작품에서 어색하기 짝이 없던 두 사람이었지만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며 거의 가족이나 진배없는 파트너쉽을 쌓았지요. 그리고 특히 시리즈 초반에 신입 티 줄줄 나던 피아는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번 이야기의 중심엔 보덴슈타인이 있기에, 그리고 그 이야기 속 보덴슈타인은 지극히 사적이기에 자주 객관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보덴슈타인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옆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은 역시 피아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이 번 작품 속에서 피아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피아는 아무래도 반장 보덴슈타인을 성실히 돕는 역할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선 보덴슈타인을 대신해 반장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사건을 푸는 결정적인 단서들을 찾아거든요. (다만 결자해지, 막판 범인과의 혈투는 보덴슈타인이 담당합니다^^) 앞으로의 시리즈는 이제 피아가 주도할 것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피아의 젊고 매력적인 새 파트너도 등장을 하고요.

 

<무산지몽 : 누군지 밝힐 수 없는 그들>

넬레 여사 작품들의 공통 키워드는 아무래도 '막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우누스 시리즈를 비롯하여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꼭 등장하는 '불륜', '출생의 비밀', '돌려 사귀기' 등. 저는 이런 요소들을 매우, 극도로 싫어합니다. 아침 드라마나 일일연속극, 사랑과 전쟁 같은 것들에 딱 질색을 하죠. 그래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타우누스 시리즈 애독자이면서도 이런 요소들이 참으로 싫었었습니다. 특히 보덴슈타인의 가정사는 정말이지...!!! 그런데!!! 이번 작품은 아예 마을이 통째로 이런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지 뭡니까? 친구 애인을 건드리는 건 기본에, 지 애비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아빠 친구랑 동침, 숨겨 놨던 딸이 새 가족이 되고, 아주 마을 전체가 난리 브루스를 춥니다. 무슨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다 즐길 수 있는 호화로운 막장 뷔페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막장으로 얽히고 설키다 보니 족보가 미친듯이 꼬여버리는 게 당연한지라 왜 작품 초반에 인물 관계도를 명시해놨는지 알만 하더라고요. 때문에 42년 전 사건의 내막과 이로부터 파생된 현재의 사건들 모두 이놈의 빌어먹을 무산지몽, 남녀간의 은밀한 밀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놓고 하는 말이 "이 모든 게 사랑 때문이었네라.'라니, 개뿔! 결국 그 사건 이후에 파탄난 사랑이었으면서! 아무튼, 이렇게 욕이 절로 나오는 막장극인데 우습게도 재밌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막장을 싫어하는데 재밌고 또 재밌습니다, 자존심 상하게(ㅋㅋ;). 왜냐하면 이런 막장적인 요소들 못지 않게 추리적인 요소들 또한 출중하거든요. 피아와 보덴슈타인 엘리아스 펠리치타스 등의 시점이 교차하며 중요한 순간에 적절이 이야기를 끊어 호기심을 일으키는 구성, 눈치채기 힘들었지만 곳곳에 뿌려졌던 복선들, 거듭되는 반전에 반전들이 화려한 막장 요소들만큼이나 치밀했습니다.

 

<학수고대 : 나를 비롯한 독자>

작품 소개를 보아하니, 넬레 여사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었는데 병을 극복하고 이런 작품을 써냈다고 하는군요. 진정 존경스러운 정신력과 인간승리입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점점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넬네 여사와 타우누스 시리즈. 때문에 한 작품이 나와 그 작품을 읽고나면 만족감과 더불어 즉시 다음 작품에 대한 갈망이 이어집니다. 게다가 보덴슈타인은 이제 강력반을 떠났고, 피아는 반장이 되었고, 피아에겐 새로운 파트너가 생긴 상태. 정말 보덴슈타인은 이대로 영원히 바이바이인 것인지, 반장으로의 피아는 어떤 카리스마를 보여줄지, 피아의 파릇파릇 파트너인 타리크는 앞으로 어떤 매력을 내뿜을지 정말이지 궁금하고 기대되는군요. 그리고 아직도 넬레 여사는 절정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때문에 분명 다음 작품은 더욱 재미있으리라 확신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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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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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라는 아주 짧은 소설집을 인상깊게 보고 관심이 갔던 작가 이기호. 이번엔 가족 소설을 냈네요. 언제나 그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가족'이라는 단어. 책덕으로서, 소설덕으로서 언제나 동경이 대상이 되는 작가, 소설가의 가족이야기라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기대를 하며 책장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가족 이야기들은 전혀 특별함이 없는 소소한, 그래서 오히려 더욱 특별하게 여겨지는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수 십 편의 짧은 단편(...근데 정말 이걸 소설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봐도 에세이던데;;)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세 장만 읽어봐야지 하고 열었다가 끝까지 가버리는 그런 마력의 작품입니다. 작가는...아니지 이 작품은 소설이니까 서술자는 40대의 대학 강사이자 소설가면서 아내와 (작품 초반엔) 아들 둘을 둔, 광주 광역시에 거주중인 가장입니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고, 예기치 않게, 방심한 나머지 막내 딸이 하나 더 생기구요. (... 이 과정을 담은 단편 너무 웃겼어요. 특히 넷째도 생길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라던 아내의 일침은 진짜 ㅋㅋ) 때문에 그의 가족 이야기는 아내, 자녀들과의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지요. 특히 자녀가 셋이나 되다 보니 그 육아 과정, 아이들의 성장 과정이 정말 많이 그려지는데, 작가의 육아는 뭔가 다를 줄 알았던 제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그 과정이란 것은 너무나 평범했었습니다. 하지만 왜일까요, 그 특별하지 않은 평범함이 오히려 더욱 특별히 재미있었으니 말이지요. 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해보지도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서술자가 그려내고 있는 그 육아 과정을 나도 전에 다 겪어봤었던 것처럼 폭풍 공감을 불러 일으키니 말입니다. 게다가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작가로서의 센스가 만나니 이건 뭐 시종일관 웃음 빵빵, 안면 근육이 내려올 새가 없네요.

 

그런데 이렇게 방심하고 계속 웃다가 만나게 되는 곳곳의 부모님 이야기들. 특히 서술자가 남자인지라 장인이나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 아비로 살다보니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그 부분들에선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리더군요. 심지어 전 남자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마 최근에 작은 아버지의 투병 과정과 장례, 동생을 먼저 보내게 된 아버지의 모습 등을 보아오던 터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이야기, 아내 이야기(이기호 작가는, 아니 서술자는 정말 장가 하나는 끝내주게 잘 갔습니다. 현모양처의 표본), 자녀들 이야기, 부모이야기.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나 있는 가족들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이기에 페이지 페이지마다 폭풍 공감하며 읽어갈 수 있는, 그야말로 유쾌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이고, 그래서 특별해지는 예쁜 가족소설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원래 한 월간지에 30년 계획으로 연재하고 있었던 작품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014년 4월 이후에 글을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하네요. 자신의 둘째 아이의 생일이 4.16이어서 더욱. 그해 4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이 (아마 불가능하겠지만) 치유되길...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돌아오길... 그래서 작가의 연재도 다시 재개되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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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미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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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펼치면 덮을 수 없는, 그래서 벽돌에 가까운 두께의 책의 결말을 보기 위해 밤을 꼴딱 새게 만드는 철야책의 작가 시즈쿠이 슈스케의 신간입니다. 작년엔가 검찰측 죄인이라는 법정 사회 미스터리 작품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터라 신간에 대한 기대가 컸었지요.

 

소설은 이사오라는 재판장이 등장하여 일가족 몰살 사건의 용의자 다케우치 신고에게 사형이 아닌, '무죄'를 선고하면서 시작됩니다.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초반에 법정 소설인 줄 알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다케우치라는 인물이 그동안 경찰에게 어떻게 (임의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취조를 받고, 어떻게 협박을 받았는지, 언론들에게 어떻게 물고 뜯겼는지를 상세히 서술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과정이 제가 최근에 읽은 정통 법정 미스터리에서의 원죄 사건과 너무도 흡사했거든요.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다케우치는 '무죄'를 선고 받은 반면 다른 법정 소설 속 피고인은 극형을 선고 받았다는 점만 다를 뿐... 아무튼 그 소설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게다가 시즈쿠이 슈스케의 법정 소설은 믿을만한 것이기에 본격 법정 소설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겨갔더랬지요.

 

그런데 초반의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오가 판사직에서 물러나 고급 주택가로 일가족과 이사를 간 후부터는 거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집안일에 한없이 무관심하기만 한 조금은 무책임한 가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지요. 그러면서 이야기는 이사오의 가족들 이야기에 더욱 초점이 맞춰집니다. 노모 요코, 아내 히로에, 아들 도시로, 며느리 유키미, 손녀 마도카 등 대가족이 모여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이나 소란 등이 서술되지요. 뭐랄까 조금 고급진 '사랑과 전쟁'을 보는 기분이었달까요? 특히 이사오의 아내인 히로에, 며느리인 유키미의 관점에서의 그들의 심리 묘사는 압권이었습니다. 요코가 자신의 유산을 배분하는 장면이나 유키미가 마도카를 다루는 데 힘겨워 하는 장면들은 작가가 정말 남자가 맞는지 싶게 여성들의 심리 묘사에도 상당히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히로에와 요코 사이의 미묘한 심리 갈등이나 유키미의 육아 과정에서의 고뇌 등은 시어머니가 계신 것도 아니고, 육아를 해 본 적도 없지만 '여성'으로서 어찌나 그들의 입장에 몰입하게 되던지요.

 

하지만 이들 가족 바로 옆집에 다케우치가 이사를 오게 되면서 이 소설은 분명한 심리 스릴러적 성격을 띄게 됩니다. 다케우치 자신은 너무나 신기한 인연이라고 말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대 우연일 것 같지 않은 다케우치의 이사. 다케우치는 그렇게 점점 가지마 집안에 발을 들여갑니다. 엄청난 물량공세 및 봉사로 집안 사람들의 호의를 사지요. 하지만 그의 호의가 부담스럽기만 한 이사오와 의심스럽기만 한 유키미. 그리고 가지마 가족 주변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다케우치의 이사는 정말 우연이었을까요? 다케우치의 무죄 방면은 정말 옳았던 판결이었을까요? 다케우치는 대체 가지마 일가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점들에 대한 답이 궁금해서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그리고 자주 자주 소름이 돋지요. 작품 중후반으로 갈수록 쫀쫀한 긴장감은 더해만 갑니다. 요즘 통 독서 진도를 내지 못하는 제가 이 두꺼운 책을 이틀만에 끝냈으니, 과연 철야책이 확실하군요.

 

소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모두 법정에서 그려지고는 있지만 이 소설은 확실히 법정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아주 재미있는 심리 미스터리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웃으로 인해 일어나는 한 집안에서의 기묘한 일들과 이때문에 형성되는 긴장감, 다케우치의 정체를 파헤치려는 유키미(나중엔 이사오도 합류합니다.)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은 분명한 추리소설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사법 체계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고령화 문제, 여성들의 육아 문제 등을 그리고 있는 점에선 사회파 미스터리의 성격도 많이 가지고 있지요. 꽤나 묵직한 주제들인데 이렇게나 몰입하여 휘리릭 읽어버릴 수 있다니 작가의 역량이 정말 대단하네요.

 

이 작품을 읽고 났더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나에게 한없이 호의를 베푼다면 나는 과연 그 호의를 정말 호의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오롯이 순수하게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인간 관계란 것은 역시 너무 깊지도 얕지도 않게 적당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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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하자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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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인기 만화중에 오디션이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음악 천재 4명을 발탁하고 연습 시켜 재활용 밴드를 이루고 오디션에 참가하는 과정을 그린 만화였지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만찬이었기에 상당히 좋아하던 만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만화의 결말은 어쩜 만화답지 않아 더욱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결국 재활용 밴드는 그 오디션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나름 결말을 열어두어 주인공들의 밝은 미래를 독자들 스스로 상상해볼 수 있도록 했지요. 그런데... 만약 그들이 결국 밴드로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음악 하나로 밥 벌어 먹기 힘든 현실에 부닥쳤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을 저는 이 수요일에 하자라는 책 속에서 찾았더랬습니다.

 

학구파 기타리스트이지만 편의점 알바로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리콰자, 대장에 생긴 암세포를 막 제거한 키보디스트 라피노, 치매 걸린 노모를 돌보는 철부지 아들 기타리스트 니키타, 3개월차 노가다 잡부 긴 머리 베이시스트 배이수,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며 위장 이혼을 한 드러머 박타동, 그리고, 더 잃을 게 없는 전직 텐프로 보컬 김미선.

 

수요일에 하자... 속 주인공들은 대략 이렇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성공한 인생들이라고는 말하기 힘든 그들. 자녀가 대학교에 들어갈 나이즈음이라면 그들은 이미 나름 사회적 지위도 쌓고, 재산도 좀 축적해서 이젠 편히 먹고 살며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인 밴드 활동이나 틈틈이 하며 살아도 좋을 나이련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그들의 처지에 밴드 활동은 어쩌면 사치일 뿐이죠. 악기 연습하는 틈이 있다면 그 시간에 어디 노가다라도 뛰어 자녀 대학 등록금에 보태야할 처지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어쩜 지질하게 살아가는 그들이 전주 변두리의 낙원이라는 라이브클럽에 모여 밴드를 결성하고 연주를 하고 공연을 하다보니 비로소 생의 활력을 얻게 됩니다. 나이 50줄즈음이면 산전수전 다 겪어 인생 뭐 별다를 것도 없고, 아등바등 살아봤댔자 보람도 뭣도 없다 싶었던 그들인데 음악이 비로소 그들의 열정을 깨웁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편생...이지 싶던 그들에게 그래도 한번쯤 살아보는 것도 재밌지 않겠어? 음악이랑 함께라면 말이야!...라고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음악이었지요. 때문에 사실 소설 곳곳에 소개되고 있는 음악들과 음악 용어들이 저를 조금 힘들게 하긴 했지만, 음악이 주는 위안이라는 것에는 평소 크게 공감하고 있는 바였던더지라 고개 끄덕이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북사운드트랙이나, 그것이 어렵다면 QR코드 등을 활용해 작품 속에서 소개되고 있는 음악들을 바로 들을 수 있도록 음악사이트로의 접속이 쉬웠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한곡 한곡 검색해서 찾아 들어보기에 저는 너무나 게으른 독자거든요^^;;

 

아무튼...!!

밴드 수요일에 하자와 낙원! 그들의 밝은 앞날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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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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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9 인간은 견고한 화학적 화합물이 아니라 액체의 불안정한 혼합물일 뿐이고 그 혼합액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고통인 것이다. 』

 

마흔 넷의 수잔 언니는 덴마크의 천재 물리학자입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 물리학적으로 해석하곤 하죠. 심지어 요리조차도 물리학적 접근으로 해냅니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수잔 언니에겐 천재 음악가인 (전)남편과 유전자의 힘은 어쩌지 못한다고 당연히 천재로 태어난 열일곱살의 쌍둥이 남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가족은 모두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엔 조금 어려운, 천재적인 묘한 능력을 말이죠. 그리고 이 능력 덕에 이들 가족은 위기에 빠집니다.

 

천재는 괴팍한 괴짜들이라고 했던가요? 수잔 언니의 가족들은 모두 사고뭉치였습니다. 인도에서 각자 대형 사고들을 친 네명의 가족들. 급기야 인도에서 수감될 위기에 처하는데, 이들 가족에게 어떤 음흉해 보이고 위험해 보이기 짝이없는 거래가 들어옵니다. 수십년 전부터 존재했던 '미래 위원회'라는 조직을 좀 파헤쳐달라는 것. 그들 가족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말이죠. 특히 수잔 언니의 능력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진심을 말하게 하는 '수잔 이펙트'였기에 더더욱 위원회에 몸담았던 노친네들을 신문하기에 이보다 더 유용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수잔 언니를 비롯한 이 가족, 참 겁도 없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기는데도 행동에 거침이 없어요. 항상 쇠지레를 소지하고 다니는 터프하신 수잔 언니 뿐 아니라, 감성적이기 이를데 없이 섬세한 그녀의 남편 라반도, 쌍둥이 남매인 티트와 하랄도요. 그 거침없음에 마음 졸일 때도 많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침없음에 웃음이 날 때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세상에 자신들을 누군가가 감시하는 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위치추적기 하나 멀리 떠나보내고선 본인들 집에 당당히 들어가 숨어 지내는 가족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구요! 등잔 밑이 어둡다 이걸까요? (ㅋㅋ;) 이 외에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는 상황과 대사들이 곧잘 튀어나오는데 저는 이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됐든 그들 가족은 거침없이, 겁없이 '미래 위원회' 위원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조직의 정체와, 또 그 뒤에 감춰진 아주 거대한 음모에 가까이 가게 되죠. 그리고 그 끝엔 역시 거대한 정치적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거대한 반전도.(저는 이 반전을 중간에 살짝 눈치챘지만요; ㅋㅋ) 이런 과정을 보자면 이 작품은 역시 스릴러 소설이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 스릴러라고 분류하기엔 참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수잔 언니와 그녀의 가족들의 기이한 능력을 보노라면 SF적인 요소가, 수잔 언니의 모든 현상에 있어서의 물리학적 해석들을 보노라면 과학적인 요소가, 미래 위원회의 실체를 보노라면 음모론적인 요소가, 이 모든 것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냉소가 드러날 땐 풍자적인 요소가, 역자님이 지적했듯 결말만 보자면 심지어 로코적인 요소까지. 참으로 다채로운 요소들을 다채롭게 담아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다채로움이 산만함이 아닌 다채로움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물론 작가의 역량이 크게 한몫했겠지만, 그래도 역시 주인공인 수잔 언니의 공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든 그녀 앞에선 솔직해 질 수밖에 없는 수잔 이펙트, 무기로 다른 무엇도 아닌 쇠지레를 들고 다니는 터프함, 모든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해석하는 이성, 자식들을 위해선 못 할게 없는 모성애, 상대가 적이라도 성적 본능에는 한없이 충실한 솔직함, 위기에 빠져도 당황하지 않는 대범함, 그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러스함. 이토록 다양한 매력을 한번에 소유하고 있는 주인공이 또 어디 있을까요? 솔직히 소설 초반에 낯설기 그지없는 덴마크의 인명이나 지명들과 미치도록 난해한 물리학 용어들이 버겁기만 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잔 언니의 이런 다채로운 매력으로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걸 크러쉬! 그리고 수잔 이펙트!

 

 

p. 453 지난 몇 달간 알아낸 게 있어요.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그리고 이 효과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게 뭔지 아세요? 타인이에요. 사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사는 건 바로 타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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