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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여전히 엄마 아빠가 살고 계신 제 고향은 제가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 시절이죠.) 저학년까지도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펌프로 끌어 올린
지하수를 마시고, 빨래는 저수지 빨래터에서 해야 하는 그야말로 심각한 깡촌이었습니다. 집 앞뒤는 전부 산이나 논밭이고 담 아래에는 토끼풀이
무성해 가끔 뱀이 출몰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도 아닌데 눈이 오기 시작하면 마구 퍼부어 어른 허리까지 쌓이게 오는 적도 많았습니다. 학교까지는
걸어서 30분쯤. 그래도 동네에 또래 친구들이 많아 손잡고 그 긴 길을 오고 가는 것이 마냥 심심하지만은 않았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나, 나이가 좀 어린 분들은 아마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해 현실감이 없게 들리실 겁니다. 하긴 지금의 저조차도 그때...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싶으니까요.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고 아버지 홀로 힘들게 키우다 시골 외가에 맡겨진 11세 소녀 둘녕, 그리고 그녀의 이종 사촌 수안. 둘녕이와
수안이는 지금은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그 시절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둘녕과 수안이 다니던 시골 분교. 그녀들이 등하굣길에 오가던 논두렁
길.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반 섞여 자꾸만 들여다 보게되는 토담집. 그녀들이 읽던 수많은 추억속의 문고들. 때론 정겹고, 때론 조금 아픈 그것들을
읽어 나가며 저는 그녀들과 함께 그곳을 걷고 읽고 보다가... 결국엔 그시절의 저로 돌아갑니다.
둘녕이 외가에 내려오며 시작되는 이 소설엔 정말 수많은 에피소들이 담겨 있습니다. 때론 즐겁지만, 때론 아픈 에피소드들. 그런
에피소드들을 통해 그녀들은 점점 성장해 가지요. 그리고 그녀들은 아주 아픈 성장통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장통을 겪고 38세의 어른이 된
현재의 둘녕이 등장합니다. 현재의 둘녕의 이야기와 함께 그녀가 회상하는 소녀시절의 둘녕의 이야기와 더불어 둘녕의 편지들, 그녀가 어린 시절
수안과 함께 읽었던 동화들까지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이런 구성은 굉장히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소녀 둘녕과 어른 둘녕의 이야기를 번갈아 듣다 보니 그 경계가 조금씩 모호해집니다. 도대체 어른이 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만
20세가 지나고 나면, 성년의 날을 넘기고 나면 우리는 정말 어른이 되는 걸까요? 그런데 그렇다기에 어른 둘녕은 여전히 아픈 성장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비단 둘녕 뿐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아마 죽을 때까지 미완성의 성장을 계속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된 둘녕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며 틈나는 대로 잠옷을 만듭니다. 오로지 자기 손만을 빌어서. 그리고 그 잠옷이 완성이 되었을 때,
그리고 책 제목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저는 결국 펑펑 울어버렸습니다. 이 잠옷을 만드는 것으로 둘녕은 다시 한번 성장통을 이겨 냅니다. 그
과정을 지켜 보며 같이 아팠고 또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많이 울었지만 또한 웃을 수도 있었습니다.
시즌을 거듭하며 우리를 과거로 되돌려 놓는 인기 드라마가 있습니다. 얼마전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고 있지요. 그
드라마 뿐 아닙니다. 이런 복고 열풍은 드라마나 음악이나 예능 등에서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과거 그 시절들에
열광하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그것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그 시절의 나 자신이 떠오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 시절 행복했던 내가, 그 시절
아팠던 내가. 하지만 그 시절로 되돌아가 같이 기뻐해 줄 수도 없고, 위로해 줄 수도 없기에 우리는 드라마나 책이나 음악을 통해 지금의 나와 그
시절의 내가 소통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요? 잠옷을 입으렴을 통해 울고 웃으며 소녀 시절의 저와 소통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 p.438
한때 내 것이었다가 나를 떠난 것도 있고, 내가 버리고 외면한 것도,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도 있다.
다만 한때 몹시 아름다웠던 것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것들은 지금 어디로 달아나서 금빛 먼지처럼 카를거리며 웃고 있을까. 무엇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데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