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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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초반,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5대 희극을 탐독했었다. 그때도 고전에 대한 공포증(?)이 없었던 건 아닌데, 문학 소녀로서의 허세랄지, 자존심이랄지 셰익스피어쯤은 당연히 읽어봐야 하지 않나 싶어 부지런히, 공부하듯이 읽었었다. 지금은 이야기의 줄거리들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의외로 재밌게 잘 읽었던 기억은 난다. 아마 희곡이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었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독서량은 점점 늘어나는데 그에 반비례하게 독서의 폭은 점점 더 협소해져 고전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런 독서 편중 현상으로 아마 다시 만나기 꽤나 힘들었을 셰익스피어를 호가스 셰익스피어라는 멋진 기획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모든 문학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위대한 문학가 셰익스피어의 서거 400주년을 맞아 기획된 멋진 프로젝트. 현존하는 유명한, 명망 높은 작가들이 400년이 흐른 지금 셰익스피어를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 오마주한다.


<마녀의 씨>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템페스트>는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템페스트>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로 <마녀의 씨>를 먼저 펼치게 되었다. 그래서 좀 걱정이 되긴 했는데, 왠걸... 이 작품을 읽고 났더니 마치 <템페스트>를 오롯이 읽고 이해한 기분이다. 그만큼 <마녀의 씨>는 <템페스트>에 대한 완벽한 재해석이자, 완벽한 해설서이고, 완벽한 오마주 작품이다.


주인공인 필릭스는 저명한 연극 연출가이자 기획자이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이제 자신의 전부인 딸 미란다만을 바라보며 살았는데 그가 한창 연극 <템페스트> 준비에 바빴을 때 병이 나 죽고 만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몰아치는지 이어 그는 이제 토니의 농간에 연출가 자리에서도 쫓겨나고 만다. 아내도, 딸도, 연극도 가진 것 전부를 잃어 버린 필릭스는 허름한 판잣집에서 세상과의 연을 완전히 끊어 버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생계는 이어가야 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마친 플랙처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상대로 하는 문학 독해 수업의 강사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게 되고 '듀크'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그곳에서 죄수들을 가르친다. 그는 자신의 죄수 제자들과 매해 연극을 한 편씩 직접 공연하게 되는데 이것이 유명세를 타고 급기야 필릭스를 그의 자리에서 내쫓았던, 지금은 장관 자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는 토니와 샐에게도 이 명성이 전해져 이들이 플랙처 교도소로 직접 그 연극을 보러 오게 된다. 필릭스는 12년 만에 그들에게 복수를 할 기회를 만난 것이다. 자, 이제 그는 이 기회를 백분 활용할 것이다. 그의 제자들을 활용할 것이고, 템페스트라는 연극을 활용할 것이고,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활용할 것이다. 그의 복수는 과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을까?


필릭스가 그의 죄수 제자들을 데리고 수업을 진행하며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은 몹시 흥미로웠다. <템페스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데도 그랫다. 생각해 보라, 그의 제자들은 죄수들이다. 셰익스피어를 탐독한 범죄자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기에 필릭스는 그들의 제자들에게 <템페스트>를 아주 상세히 해석해준다. 그런데 그 방식이 일방적인 주입식은 아니다. 그들과 대화와 의견을 나누며 그들만의 ,템페스트>로 재탄생 시킨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 또한 필릭스의 죄수 제자 중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필릭스의 그 음울함과 계속되는 연극 이야기들에 초반에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아 힘들었는데, 어느새 나 역시 필릭스와 그 제자들의 수업과 연극 준비에 빠져들어 그들의 일원이 되고 만 것이다. <템페스트>에 대한 그 어떤 평론이 이보다 흥미로울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들의 수업과 연극 공연 준비엔 '복수'라는 요소가 숨어 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조합인가?


그리고 이 작품의 백미는 역시 필릭스와 그의 제자들, 토니와 샐 등의 <마녀의 씨> 안의 인물들과 프로스페로, 미란다, 안토니오, 칼리반, 페르디난드... 등의 <템페스트> 속 인물들간의 교차성이다.<템페스트>를 모티프로  작가가 의도하고 인물 구도와 스토리를 만들어냈으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의 플롯과 인물들의 자연스럽고 절묘한 공통점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옮긴이의 말을 보니, 셰익스피어와 당시 배우들, <템페스트>의 섬과 인물들, 감옥과 필릭스와 그의 제자들까지 삼중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더더욱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또 <템페스트>에 치중하지만은 않는다. 필릭스가 그들의 제자와 함께 화려하고 통쾌한 '복수'를 행하는 부분은 역시 이 작품의 백미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의 범죄 영화를 보는 듯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음울하기 짝이 없는 필릭스의 성격 덕에 그가 결말에 가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일을 행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의 복수는 정말이지 치밀했고, 유쾌했고, 한편으론 희망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의 결말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감동마저 선사해 주었다. 필릭스의 죄수 제자들, 그러니까 <템페스트>를 공연했던 배우들은 팀별로 각자 맡았던 자신들의 배역이 연극이 끝나고 난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를 발표하는데 그들의 해석에 필릭스도, 그리고 나도 감동 받고 말았다. 그런 상황 자체도 훈훈했지만 그들의 내놓은 쉽게 말하면 외전 비슷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설득력이 있었고, 꽤나 희망적이었다. (희망의 문이 열렸다. 그들은 희망의 문을 좋아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 마녀의씨, p 368)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는 프로스페로가 그의 정령인 아리엘을 결말에서 자유롭게 해준다고 한다. 그리고 <마녀의 씨>에서는 환영인 줄 알면서도 12년 동안 결코 놓지 못한 미란다에게 필릭스가 안녕을 고한다. "바람 속으로 자유로워지거라" (- 템페스트 5막 프로스페로의 대사이자 마녀의 씨 필릭스의 마지막 대사)라고. 이 마지막 대사가 꽤나 뭉클해 어쩐지 눈물이 날 뻔도 했다. 아마 오래 기억에 남는 대사가 될 듯싶다. 


이 작품을 읽고 났더니 마치 <템페스트>도 함께 읽은 듯한 착각마저 드는데, 곧 정말로 <템페스트>를 읽어봐야지 싶다.



추신) 앞으로 기획되어 있는 호가스 셰익스피어의 라인업은 더욱 화려하다. 특히 길리언 플린의 <햄릿>과 요네스뵈의 <맥베스>는 이미 그 이름과 제목만으로도 설렌다. 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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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은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고 싶었다 - 불꽃놀이 축제가 열리는 밤, 우리는 '사랑의 도피'를 했다
이와이 슌지 지음, 박재영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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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을 잃어 가며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면 그해 여름은 변화의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계절이었는지도 모른다.


<러브레터>로 유명한 영화 감독 이와이 슌지의 24년 전 드라마를 소설화한 작품입니다. 곧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게 된다는 애니메이션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의 원작 소설격이고요. 애니메이션의 각본을 소설화한 작품을 먼저 읽고 연달아 이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많은 내용들이 똑같아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했는데 두 작품은 닮은 듯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은 고작 한 살 차이인데, 그 차이가 묘하게 크게 느껴집니다. 애니쪽 소설 속 주인공들은 중학교 1학년들이었어서 사춘기의 감성이 충만하고, 어쩐지 청춘물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이 작품은 초등학생이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그 풋풋함이 한층 더 짙게 느껴졌습니다.


제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아직 어린이이면서도 초등학교에서 가장 고학년이라서 마치 어른이라도 된 양 굴며 이성에도 가장 왕성하게 눈 뜨게 되는 시기가 바로 초등학교 6학년이 아닐까요. 우리의 주인공 노리미치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집에, 그것도 자신의 방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 나즈나라는 여학생 덕에 마음속이 온통 요동칩니다. 그날 이후로(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녀를 줄곧 좋아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노리미치는 나즈나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결국 그녀를 좋아하게 되어 버린 거죠. 그런데 그런 그녀가 이제 부모의 이혼으로 이 마을과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합니다. 나즈나는 노리미치에게 결코 '가출'이 아닌 '사랑의 도피'를 제안하고, 노리미치는 이에 응합니다. 고작 초등학교 6학년생들이 말이죠. 


이런 사춘기적 감성이 충만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보노라니 자꾸만 제 어린 시절이 떠올라 향수에 젖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사는 마을처럼 제 고향도 시골에, 심지어 수박밭이 아주 아주 많았거든요. 이와이 슌지는 어쩌면 아이들이 어른들이 되어 가는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그 시절로 되돌려 긴 향수에 젖게 하려던 것이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어가며 점점 잃어버리게 되는 감수성. 그 반짝반짝 예뻤던 감수성을 잠시나마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예쁜 작품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쏘아올린 불꽃 바로 아래에서 본느 불꽃은 정말이지 장관이라고 하네요. 한번쯤 꼭 보고싶어집니다.


조금 어른이 되기 시작한 우리는 그리 쉽게 울지 않게 된 대신에 좀 더 복잡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서 저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을 선택했다. 그날 우리의 일탈은 그런 식으로 뒤틀린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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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오오네 히토시 지음, 박재영 옮김, 이와이 슌지 원작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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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이 참으로 독특하다 싶으면서, 어찌 보면 상당히 일본 애니메이션답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곧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할 예정이라는 이 작품은 그 역사(?)를 되짚어 보려면 무려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1993년 일본에서는 드라마 <if 만약에>라는 것이 방영중이었다는데, 이는 저 어렸을 적에 즐겨봤던 쌍둥이 아빠가 "그래 결심했어!"라고 외치며 이야기가 두 가지로 흘러가든 바로 그런 형식의 드라마였다고 하네요. 이에 <러브레터>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감독 이와이 슌지는 초등학생의(애니메이션 및 이 작품에선 중학교 1학년) 사랑의 도피를 하는 상황에서의 두가지 선택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를 바탕으로  24년이 흐른 올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바로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이고, 각본가가 애니메이션 개봉에 맞춰 각본을 소설화 하고, 또한 원작자인 이와이 슌지 역시 24년 전 드라마의 원작 소설을 쓰는 거창한 기획을 해서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은 두 작품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와 <소년들은 불꽃놀이를 옆에서 보고 싶었다.>가 동시에 탄생했다고 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타임워프가 참 자주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도 그렇고, <너의 이름은>에서도 그렇고, 제목이 상당히 독특한 이 작품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도 비슷한 소재가 등장하거든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작품의 기본적인 구성은 "만약에 그때 ~~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주인공의 바람으로 타임워프를 하여 총 3 갈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주인공은 같지만 다른 하루를 3번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좀 익숙한 듯한 소재지만 또 이 작품만의 독특한 개성은 또한 살아 있습니다.


주인공인 노리미치는 중1, 그에게는 늘 뭉쳐다니는 3명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같은 반 여학생 나즈마가 있습니다. 그날은 방학중 등교날이었고, 또한 그날은 마을의 불꽃축제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등굣길에서 노리미치는 우연히 바닷가에 있는 나즈나를 발견하게 되고, 길에서도 학교에서도 유난히 둘은 자주 눈길이 마주칩니다. 청소를 땡땡이 치고 수영이나 하면서 놀려던 노리미치와 유스케는 그곳에서 또다시 나즈나를 마주칩니다. 유스케는 그동안 공공연히 나즈나를 좋아하고 있음을, 나즈나에게 고백하고 싶음을 어필했었던 터. 사춘기의 남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시답잖은 내기를 즐기던 노리미치와 유스케는 50미터 수영내기를 합니다. 유스케가 이기면 원피스 최신판을 사주고, 노리미치가 이기면 유스케가 나즈나에게 고백하기로 하고 말이죠.유스케는 이기고 싶기도, 이기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발목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노리미치가 지고 마는데..... 이제 이때부터 이야기가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노리미치가 수영 내기에서 이겼더라면... 그리고 또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만약에 ~~~했더라면......!


애니메이션의 각본을 소설화하였으니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장면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한적한 어촌 마을과, 마을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화려함을 자랑하는 불꽃놀이에 대한 묘사가 참 아름답게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장면들에 불안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한없이 순수한 사춘기 소년 소녀의 감성 묘사 역시 참 좋았고요. 이런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참 잘도 영상화하는 일본이니, 곧 개봉한다는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예쁠까 기대가 되네요. 특히 마구 터지는 불꽃 놀이 빛들이 바다 위에 펼쳐지고 바닷물 속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조금은 식상하면서 오글거리기도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래서 더욱 기대되고 애니메이션으로 꼭 확인하고 싶어지는 장면입니다.


여러분은 쏘아올린 불꽃을 옆에서 보면 어떤 모양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동그란 모양? 아니면 납작한 모양? 당연히 어디서 봐도 동그란 거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문득 책을 읽다가 이 질문을 받고 보니 저도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소년들의 시답잖아 보이는 모험 아닌 모험을 보는 것이 또한 즐거웠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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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미중전쟁 1~2 세트 - 전2권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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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하던 여고 시절 제 별명은 애국자 혹은 유관순이었습니다. 순수하디 순수하게 애국심이 철철 넘쳤었거든요. 그런 제가 당시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의 그 감동이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제 인생 책이 되었고, 연달아 읽은 김진명 소설들은 모두 제법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비슷한 패턴, 비슷한 주제에 좀 질려 가더군요. 게다가 나이가 점점 들다 보니 순수한 애국심 따위는 개나 줘버려서 김진명식 지나친 국수주의에 대해 회의감이 생겨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그의 신간 소식을 들으면 자연스레 귀가 솔깃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여전히 김진명을 종종 읽어오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올 여름이었나 읽은 <예언>은 정말이지 실망이었어서(재미 없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김진명 소설은 기본적으로 늘 다 재밌으니까요.) 이제 정말 김진명 소설을 그만 읽어야하는 건가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른 어떤 작가도 아닌 바로 김진명이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를 소설로 그렸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미국과 중국 세계 서열(?) 1, 2위의 강대국. 그들의 관계를 말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남한과 북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끌렸습니다. 남과 북,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역학 관계를 누가 김진명만큼 재밌고 쉽게 소설로 풀 수 있겠습니까. 또 실망해도 좋으니 읽어보자 싶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분명 책을 읽고 난 후 남북미중일러의 얽히고 설킨 역학 관계만큼은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요.


김진명의 소설의 도입이 늘 그렇듯 이 소설도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한국인 탐정이 등장하고요. 이번 작품의 탐정은 인철이라는 세계은행의 조사관입니다. 수상한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비엔나로 가게 된 그는 조사를 위해 접촉했던 어떤 인물의 죽음을 맞딱뜨리고 의문스러운 이 죽음과 자신의 맡은 일을 동시에 조사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묘령의 여인 이지를 운명처럼 만나게 되고요. 그리고 점점 커져가는 사건의 스케일. 헤어졌다 만났다 돌고 돌지만 결국 그 둘은  남북미중일러모두를 만족 시키는 방정식(theory of everything)의 해를 구하게 됩니다.


인철은 인철대로, 문재인은 문재인대로, 트럼프는 트럼프대로, 김정은 김정은대로, 이지는 이지대로, 시진핑은 시진핑대로 이야기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모아집니다. 북핵과 관련한 각 나라들의 대응(특히 미국 트럼프), 그 속에 감추어진 음흉한 속내. 북한은 왜 수시로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건지, 미국은 왜 길길이 날뛰는지, 문재인 대통령은 왜 전쟁 불가 선언을 하는 것인지 등등이 정말 이해하기 쉽게, 설득력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바랐던 것이 바로 이런 점이었기에 상당히 흥미롭게 많은 것을 배우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가공의 인물 몇을 제외하면 실존 인물들이 모두 실명으로 등장을 하는지라 현실과 허구 사이의 그 괴리감 덕에 오글거림을 동반하는 장면과 대사가 좀 많았단 것이 흠이었달까요. 그랬기에 생생한 현실감이 느껴졌기에 이는 장점이면서 단점이라고 봐야겠네요.


오늘도 북쪽의 로켓 보이는 또 무언가를 쏘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크레이지 프레지던트는 로켓 보이를 핑계 삼아 대륙의 시다다를 요리해버릴 궁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위기일발의 동상이몽인 현 정세. 인철과 이지가 내놓은 방정식의 해가 참이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이를 위해선 푸틴에게 ***가 있어서 그걸 인철과 같은 인물에게 들켜야 한다는 변수가 문제겠네요. 


덧) 소설 속에선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를 찾았는데... 그 해를 찾기 위해 아이린만 희생.... 아이린... 불쌍한 아이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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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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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를 벗겨내면 더 빛을 발하는 센스 넘치는 표지! 험프리 보가트의 중후한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한 제목! 어쩐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라는 단편이 실려 있긴 한데, 일본에선 이 작품집을 낼 때 원제를  <굉장한 일본인>로 하여 묶어냈더라고요. 원제가 참... 한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딱 좋은 그런 제목이죠. 그래서 실은 저도 살짝 반신반의(?)하며 책장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첫 단편인 <새해 첫날의 결심>을 읽자마자 아, 굉장한 일본인...이라는 건 반어법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게이고가 딱히 자국민을 비판하는 건 아니고요, 굉장한 한국인, 굉장한 미국인 등등으로 쓰여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첫 단편이 상당히 재미있게 읽고 난 후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요, 그 실소 끝엔 저도 주인공 부부처럼 희망 아닌 희망을 얻었달까요. 이것 참, 스포일러가 될까봐 내용을 쓸 수가 없으니 난감하네요. 아무튼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건 아니었지만 실소를 터뜨리게 되는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들은 아마 <10년만의 발렌타인>, <그대 눈동자에 건배>, <고장난 시계>,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등이라고 봐야겠네요. 때문에 게이고 냄새가 폴폴 나는 단편들입니다. <10년만의 발렌타인> 같은 경우는 장편화 시켜도 재밌을 것 같고요. <그대 눈동자의 건배>는 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밝히긴 모하지만(ㅠㅠ) 일본의 독특한 직업을 알게 되어 신선했습니다. <고장난 시계>는 주인공이 그 소심함이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역시 실소가 터져 나왔고요(aaa형인가 보더라고요 ㅠㅠ ㅋㅋ).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의 경우엔 약간 게이고의 장편 소설 <성녀의 구제>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어요. 그 집찹과 집념이란...;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나 <사피어이의 기적>, <수정 염주>등은 게이고식 따뜻한 소설입니다. 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단편 버전들이랄까요. <사파이어의 기적>에선 또 <위험한 비너스>에서 보여줬던 동물에 대한 인식도 엿보이더군요.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와 <수정 염주>에서는 게이고식 부성애(그가 결혼을 했는지, 자식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가 그려져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첫 단편 과 더불어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렌탈 베이비>였는데요. 온갖 것들을 다 대여해주는 세상인지라 이제 아이도 렌탈이 가능한 세상이 온 거죠. 그래서 주인공은 자기가 진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아이 로봇을 대여하는데, 이 아이가 참 정말 진짜 아이 같이 행동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련된 반전! 이 반전이 어찌나 우습든지요; ㅋㅋ 또 한편으론 이제 진짜 아이까지 대여하는 세상이 정말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음... 단편 하나 하나에 대한 소감을 또 스포일러 없이 적으려다 보니 산만하기만 한 글이 되어버렸군요. 역시 단편집은 리뷰 쓰기가 참 어려워요. 다만 하나 더 말씀 드리고 싶은 건. 꽤 슴슴하게 재밌게 읽은 단편집이라는 겁니다. 이동하는 중에, 쉬는 시간에 틈틈이 그렇게 술렁술렁 읽어 내려가기 딱 좋은 그런 작품들이었습니다.  역시 게이고는 굉장해요.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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