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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평점 :
『 p.283
나는 지금 여기 있습니다. 다른 곳에 있지 않아요. 』
한때 치열하게 무언가에 도전하다가 거듭된 실패에 좌절하고 뭐든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시 한 편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유치환님의 <생명의 서>였습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병든 나무처럼 부대낄 때/아라비아 사막으로 나는 가자"라는
시의 첫 연이 너무나 제 이야기 같았기에 그대로 가슴속에 박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사막을 갈구했습니다. 사막을 동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극한의 장소인 그곳에 가면 삶에 대한 애증을 다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결국
사막은 지금의 내 삶 다름 아니라는 것을. 걷고 걷고 또 걸어도 보이는 것은 모래뿐인 사막이나 살고 살고 또 살아도 실패뿐인 내 인생이나 다를
바가 무엇이겠냐는 것을. 하지만 더불어 깨달은 점도 있습니다. 사막엔 오아시스가 있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내 인생에도 오아시스와 같은 무언가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을. 그 오아시스 하나를 찾기 위한 것이 인생이고 그렇게 오아시스를 찾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그러니까 살아볼만한 인생
아니겠느냐는 것을. 독후감이란 것을 쓰면서 이 무슨 헛소리냐고요? 글쎄 왜일까요. 저는 김근우 작가의 <우리의 남극 탐험기>라는 이
소설을 읽으며 자꾸만 <생명의 서>가, 그 시를 가슴에 담던 그때의 내가, 사막 같은 인생이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둘, 아니 셋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실패함으로써 성공한 이들입니다. 경제학자인 섀클턴 박사는 이미 아기 시절
시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실패를 맛봅니다. 그는 비록 천재로 태어났으나 굉장히 보수적인 영국사회에서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실패자였습니다.
영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옥스퍼드에 진학했고 절절한 첫사랑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그 사랑에도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나'는
원래 중학생 시절까지 야구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야구선수로서 성공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야구를 포기하고 공부에 매진해 겨우 삼류 대학에
진학했으나 그 안에서 찾은 첫사랑에 실패하고, 군대 시절 겪은 일련의 사건으로 대학은 자퇴하고, 체육교사가 되겠다며 다시 대학에 입학하지만 결국
임용고시에도 매번 낙방하고 맙니다. 그런데 인생의 매 순간이 실패인 그들 앞에 실패자들을 위한 안내자, 위대한 실패자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이라는 탐험가(실존인물입니다.)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가 말합니다. "이길 수 있다면 싸울 필요도 없지만 이길 수 없다면 싸워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들은 남극으로 떠납니다. 실패하기 위해서, 실패함으로써 성공하기 위해서.
『 p.105
너는 내가 만나본 가장 훌륭한 바보야. 너는 실패할 거야. 실패함으로써 성공할 거야. 똑똑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보이기 때문에 실패하고, 그렇게
해서 비로소 성공할 거야. 세상은 알아주지 않겠지만, 결단코 알아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어. 너는 너 자신이 성공한 걸 알
테니까. 』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의 불법적인 남극 횡단은 무모했기에 위기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철저히 준비해 시작한 탐험도 실패하기
마련인데 비전문가인 두 사람의 남극 탐험이라니, 그것도 그들 중 하나는 시각장앤이자 노인이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해버리려던
그들 앞에 말을 하는 북극곰(!)이 나타납니다. 하늘을 나는 펭귄 무리도 등장합니다. 그리고 위대한 실패자, 실패자들을 위한 안내자 섀클턴 경이
나타나나 그들을 이끕니다. 그렇게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남극 탐험을 이어나가지만 그들은 결국 실패하고, 실패함으로써 성공합니다. 그렇게 그들의
탐험은 끝이 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 p.275
이렇게 전해주게. 끝나지 않는다면 시작할 필요도 없지만, 언젠가 모든 것이 끝난다면 시작해야 한다고.』
이런 그들의 성장기와 인생사와 탐험기가, 아마 눈치채셨겠지만 모순 가득한 헛소리와 헛소리와 헛소리 속에서 전개됩니다. 딱히 즐겁고 유쾌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데, 아니 오히려 짠내나기 이를데 없는 그들의 인생이야기에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건 이런 말이 안 되지만, 또한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그런 헛소리들 덕이었습니다. 말이 되는 일만 일어날 것 같지만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일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게 우리 사는
인생사니까, 게다가 책 속 표현처럼 바른 말만 해야하는 세상이니, 이런 헛소리들 좀 해도 괜찮은 거 아니겠습니까?
『 p.196
이 세상은 정합성이 지배하는 곳이야. 쉽게 설명하자면 말이 되는 일만 일어나는 세상이라는 것이지. 사람이 죽을 수는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살아날
수는 없어. 근데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도대체 뭐가 어쨌단 말이야. 말이 되는 일만 일어나는 세상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야. 섀클턴 경이 내 앞에 나타난 것처럼. 사람들이 이 세상은 말이 되는 일만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니라고 하세.
왜냐하면 사람들이 모두 이 세상은 말이 되는 일만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아니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네.
』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인생의 이들의 남극 탐험과 다를 바가 뭔가 생각했습니다. 계속되는 위기와 고난의 연속, 그렇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끝날 때까지는 끝낼 수 없는 영원 아닌 영원의 과정. 그렇게 유치환 시인은 사막을 노래했고,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은 남극을 탐험했고, 우리는
우리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어디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패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 앞에 섀클턴 경이, 섀클턴 박사가, 말하는 북극곰이, 플라잉 펭귄이 나타나 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진 맙시다. 왜냐하면 계속되는 실패들 속에서 우리는 결국 성공할테니까요. 어차피 따지고 보면 실패한 인생이라는 건 사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일 테니까요.
『 p.126
어쩌자고 이런 세상에 태어났니. 참 안됐구나.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우리는 죽음의 먹이로 태어난 거니까. 자,
웃어보자고.
죽음의 먹이로 태어난 거야 그렇다 치고 왜 웃어야 되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웃음이 나왔을 뿐이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
고양이를 잡아 먹은 오리로 처음 접한 작가 김근우, 처음 그의 작품을 읽었을 때 그의 이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장애로 인한 중학교 중퇴.
하지만 결국 작가로서의 성공. 결국 작가 또한 실패함으로써 성공한 인물이네요. 작품 속에서 '나'는 무명 작가인데(고양이를 잡아 먹은 오리에서도
그렇고 아마 실제 작가의 모습이 많이 투영된 인물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첫 두편의 소설이 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런 기대에 힘입어 이어 낸 3번째
작품은 졸작이라고 손가락질 받습니다. 이에 독자는 그 책을 찍어내기 위해 희생한 나무들에게 '나무야 미안해.'라고 사과를 하죠. 이런 표현을
빌려 작가는 후에 죽어서 희생당한 나무들에게 본인이 영혼을 담아 사과할 테니 독자분들을 그럴 필요가 없다고 밝히고 있던데, 저는 나무에게 그래도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나무야 너는 나무로서 나이테를 늘려가며 천년만년 살아가는 인생엔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이 멋진 책을 위해 종이로 재탄생
했으니 결국 성공한 인생이라고. 그런 너의 희생이 참으로 고맙다고.
『 p.294 미안해. 네가 반드시 들어야
하는 말, 누군가는 반드시 들려줘야 하는 말을 단 한마디라도 찾고 싶었는데 찾지 못했어. 어쩌면 그런 말은 남이 아니라 너 스스로 찾아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