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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 불린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평점 :
행운
미식축구 선수들의 꿈이라는 내셔널 풋볼 리그에 처음 출전한 운 좋은 남자가 바로 그날 뇌에 큰 부상을 입고 자신이 겪고 보고 듣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남자가 됩니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던 남자가 사형 집행 직전 '그 남자는 범인이 아니오, 내가 그들을 죽였소.'하며 나타난 진범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전자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 후자는 이 작품의 주인공 맬빈 마스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라니, 사형 직전 목숨을 극적으로 구했다니. 이들은 마치 행운의 주인공처럼 보입니다만... 아무것도 잊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도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살해 당한 현장을 평생을 잊지 못하고 복기해야한다니... 이 능력은 행운이라기보단 오히려 저주에 가깝습니다. 마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촉망받던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는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20년간 감옥에서 썩다가 결국 사형 집행 직전까지 갑니다. 비록 목숨을 구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를 행운의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운명
전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며 맹활략했던, 거대한 체구에 괴팍하기까지한 성격을 가진 에이머스 데커. 그가 전편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FBI 요원 보거트는 데커와 재미슨(역시 전편에서 데커를 도왔던 기자)를 자신만의 팀을 꾸려 콴티코로 불러들입니다. 그 팀의 주요 업무는 미제 사건을 들추어 해결하는 것. 데커는 콴티코로 가는 기나긴 여정 중에 잠을 쫓으려 라디오를 켜는데, 바로 그 순간 맬빈 마스가 사형 직전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고, 데커는 이 사건을 파헤쳐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데커가 이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는 과거에 마스와 경기장에서 맞붙었었기 때문. 그들이 과거에 그런 인연이 없었다거나, 데커가 라디오를 1분만 늦게 켰더라도 결코 데커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라는 것. 때문에 거구를 자랑하는 전직 미식축구 선수 출신 두 남자의 만남은 운명적이랄 수밖에요.
진실
이미 전작에서 경험한 바이지만, 데커는 일단 체격부터가 보통 우리가 접해오던 탐정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100킬로그램을 훨씬 넘는 체중에 거대한 키. 게다가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게된 동시에 공감 능력에는 문제가 생겨버린 데커. 그럼에도 데커의 의욕을 항상 과다하게 충만시키는 것은 진실에의 갈구. 거기에 맬빈 마스가 겪은 사건은 마스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궁금하신 분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읽어보시길 권함) 몹시 흡사하였기에 진실에 대한 갈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전 마스의 부모를 죽인 건 진짜 그 몽고메리라는 남자였을까요? 아니면 무언가 숨겨진 다른 진상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마스 부모의 이상하리만치 비밀스러운 과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었던 걸까요? 마스는 왜 20년 동안 감옥에 갇혀서 지내야 했을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과 함께 진실을 쫓아가는 데커 일행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책이 참 우습습니다.
진상
앞으로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여기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작품 속 사건의 진상은 꽤나 단순해 보이면서도 복잡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사실 나름 데커와 함께 추리를 해나가며 데커보다 먼저 반전 비슷한 것을 짐작해보기도 했지만... 그건 빙삭의 일각일 뿐... 계속해서 등장하는 반전과 나선형처럼 깊고 넓게 퍼져가는 사건의 방대함과 깊이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단순 강도 사건인 줄 알았던 사건은 마약 카르텔, 인종 차별 문제, 정치 공작으로까지 나아가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우 작가가 의욕만 충만해 실제 작품 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조금 산만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쉬운데... 이 작품은 그저 재밌어서 빨려들어갑니다. 이는 에이머스 데커라는 독특하지만 매력 넘치는 인물과 작가의 필력이 한몫 크게 한 덕이겠지요.
(추신:현재 백악관 주인(...혹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매우 닮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작가의 성향이 어느쪽인지 확인하게 되는 재미도 있었어요. ㅋㅋ;)
사랑
이 작품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 모든 것은 사랑이었네라.라고 말해야겠습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여기서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터이므로 밝힐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절절하고 영원한 사랑에 저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점만 밝혀두겠습니다. 2년 전에 읽었던 요네스뵈의 '아들'과 작년에 읽었던 마이클로보텀의 '라이프 오어 데스'를 잇는 또 하나의 감성 스릴러 수작을 만났네요. 피가 낭자하거나 총알들이 빗발치는 '스릴러' 속에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는 '사랑'이라는 키워드. 전혀 상반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이 두 키워드가 만나면 언제나 시너지 효과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말이죠.
우정
에이머스 데커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뇌가 고장나버리고 난 후, 게다가 그렇게(?) 아내와 딸을 잃고 난 후 성격이 정말 괴팍해져 버렸습니다. 때문에 그가 어떤 팀 내에 속해서 팀원들과 협동을 한다는 것은 데커 본인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런 그가 보거트의 배려와 재미슨의 보살핌을 받더니 점점 변해갑니다. 재미슨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한 데커는 이제 고개를 숙이면 자기 발끝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살이 빠지는 대신 유머 감각이 늘었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을 통해 마스라는 또 하나의 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죠. 체구는 점점 작아지는데 어쩐지 점점 더 성장해가는 듯한 우리의 주인공 데커. 데커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보고 싶네요. 아마 보거트와 재미슨과는 계속 팀을 이뤄 사건을 해결해 나가리라 당연히 믿어요. 마스와도 분명 약속을 했으니 시리즈 어디선가 그가 나타나 데커를 도와주리라...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던데, 그래서 전작만 한 후속작 찾기가 참 힘들던데... 그런데 그 공식을 깨는 몇 안 되는 작품. 저는 전작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보다 후속인 <괴물이라 불린 남자>를 3.5배쯤 더 재밌게 읽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