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눈동자에 건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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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를 벗겨내면 더 빛을 발하는 센스 넘치는 표지! 험프리 보가트의 중후한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한 제목! 어쩐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라는 단편이 실려 있긴 한데, 일본에선 이 작품집을 낼 때 원제를  <굉장한 일본인>로 하여 묶어냈더라고요. 원제가 참... 한국인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딱 좋은 그런 제목이죠. 그래서 실은 저도 살짝 반신반의(?)하며 책장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첫 단편인 <새해 첫날의 결심>을 읽자마자 아, 굉장한 일본인...이라는 건 반어법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게이고가 딱히 자국민을 비판하는 건 아니고요, 굉장한 한국인, 굉장한 미국인 등등으로 쓰여도 무방한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첫 단편이 상당히 재미있게 읽고 난 후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요, 그 실소 끝엔 저도 주인공 부부처럼 희망 아닌 희망을 얻었달까요. 이것 참, 스포일러가 될까봐 내용을 쓸 수가 없으니 난감하네요. 아무튼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건 아니었지만 실소를 터뜨리게 되는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들은 아마 <10년만의 발렌타인>, <그대 눈동자에 건배>, <고장난 시계>,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등이라고 봐야겠네요. 때문에 게이고 냄새가 폴폴 나는 단편들입니다. <10년만의 발렌타인> 같은 경우는 장편화 시켜도 재밌을 것 같고요. <그대 눈동자의 건배>는 또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밝히긴 모하지만(ㅠㅠ) 일본의 독특한 직업을 알게 되어 신선했습니다. <고장난 시계>는 주인공이 그 소심함이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역시 실소가 터져 나왔고요(aaa형인가 보더라고요 ㅠㅠ ㅋㅋ).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의 경우엔 약간 게이고의 장편 소설 <성녀의 구제>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어요. 그 집찹과 집념이란...;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나 <사피어이의 기적>, <수정 염주>등은 게이고식 따뜻한 소설입니다. 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단편 버전들이랄까요. <사파이어의 기적>에선 또 <위험한 비너스>에서 보여줬던 동물에 대한 인식도 엿보이더군요.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와 <수정 염주>에서는 게이고식 부성애(그가 결혼을 했는지, 자식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가 그려져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첫 단편 과 더불어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렌탈 베이비>였는데요. 온갖 것들을 다 대여해주는 세상인지라 이제 아이도 렌탈이 가능한 세상이 온 거죠. 그래서 주인공은 자기가 진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아이 로봇을 대여하는데, 이 아이가 참 정말 진짜 아이 같이 행동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련된 반전! 이 반전이 어찌나 우습든지요; ㅋㅋ 또 한편으론 이제 진짜 아이까지 대여하는 세상이 정말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음... 단편 하나 하나에 대한 소감을 또 스포일러 없이 적으려다 보니 산만하기만 한 글이 되어버렸군요. 역시 단편집은 리뷰 쓰기가 참 어려워요. 다만 하나 더 말씀 드리고 싶은 건. 꽤 슴슴하게 재밌게 읽은 단편집이라는 겁니다. 이동하는 중에, 쉬는 시간에 틈틈이 그렇게 술렁술렁 읽어 내려가기 딱 좋은 그런 작품들이었습니다.  역시 게이고는 굉장해요.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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