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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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SF 소설을 어려워 하고, 심지어 무서워합니다. 작년에 반강제적인 숙제로 필딕의 소설을 읽었는데, 으악! 너무너무너무 그 용어들이 어려운 겁니다. 심지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션의 인기 덕인지 앤디 위어의 신간이라 하니 어쩔 수 없이 또 귀가 팔랑대더라고요. 아무리 SF라지만 마션은 다들 재밌게 읽었다고 하니, 나도 루나크로니클 시리즈는 SF지만 심하게 재밌게 읽었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아르테미스는 지금으로부터 70년 후의 미래의 시간에 달에 만들어진 첫 도시의 이름입니다. 때문에 어떻게 도시를 이루고 어떻게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지(중력, 공기, 불, 물, 동식물, 등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해 놓고 있습니다. 때문에 읽다 보면 마치 현재 이런 도시가 달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새삼 작가의 과학적 지식과 그 필력에 감탄을 하게 되더라고요. 다만, 앞에서도 밝혔지만 너무나 전문적인 과학 용어들은.... 솔직히 여전히 어렵고 무서웠(?)습니다. 읽기 조금 버겁더라고요.


하지만 이 소설은 사실 배경이 가상의 도시라는 것, 과학적 우주용어가 난무한다는 것만 들어내면 이건 완벽하게 범죄 소설이랍니다. 우리의 주인공 재즈는 스물 여섯된 천재 소녀(...라기엔 나이가 좀 많나요...? 그런데 읽다보면 애가 좀 철이 없어서 열 여섯처럼 느껴짐 ㅋㅋ)입니다. 하지만... 재즈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10대 시절을 인간 쓰레기처럼 지낸지라 아빠랑도 의절하고 집을 나와 아르테미스의 가장 하층민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녀의 주 수입원은 불법 밀수(...여기서부터 이미 범죄 ㅋㅋ)인데... 아르테미스의 갑부 트론의 부탁으로 더더더더 거대한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당.연.히 재즈의 완벽한 계획관 다르게 일이 꼬여만 가죠. 그리고 점점 드러나는 아르테미스를 향한 검은 음모!!!!! 이에 우리의 히로인 재즈는 자신의 고향인 아르테미스를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합심하여 고군분투!


이렇게 줄거리를 설명하고 있자니 재즈가 희대의 영웅이라도 되는 것 같으시죠? 그런데 사실... 아르테미스를 구하겠다며 행하는 일에 아르테미스를 더 큰 위기에 몰아넣는게 또한 재스라는 사실! 아.. 이 왈가닥 대책 없는 소녀를 어찌해야 좋을지!!! 그런데 또 재밌는 건 결국 자기가 벌여놓은 일을 또 다 해결을 하고 아르테미스를 구한다는 사실! 세상에 대체 어떤 영웅이 이리도 독특할까요? 어찌 보면 민폐라고까지 보이는 그녀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특히 그녀가 구사하는 좀 저질스러운 유머가 너무 좋았어요. 과학 용어에 지쳐갈 때마다 한방씩 터뜨려주는 그 유머가 있었기에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답니다.


작품의 결말은... 어찌 보면 또 다른 시작처럼도 보입니다. 이건 시리즈물도 내도 좋을 것 같아요. 이제 달에 사는 괴짜 천재 소녀 재즈와의 만남을 무사히 마쳤으니 화성에서 감자 키우는 와트니를 만나 보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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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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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속된 말로 얼빠(ㅋㅋ)입니다. 그래서 한때 일드를 즐겨보던 시기에 일본에서는 흔치 않게 비줠이 훈훈한 후지키 나오히토라는 배우를 발견하고 그 색기 좔좔 흐르는 미모에 이끌려 그의 작품을 몇 편 찾아 보았지요. 그 중 하나가 일본 영화 g@me이었습니다. 영화에는 후지키 나오히토뿐 아니라 일본의 미인 여배우 나카마 유키에도 출연했었지요. 즉, 비주얼이 아주 아주 훌륭한 영화였던 겁니다. 처음엔 두 주연 배우에 홀려 보던 영화였는데 차차 내용에 푹 빠졌더라는 겁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가 매우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이 영화는 원작이 따로 있었더라고요. 그것도 일본의 국민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작품을 미친듯이 탐독하긴 했지만, 워낙 이 작품은 반전의 반전이 중요한지라 책을 찾아 읽어야겠단 생각을 하진 못했습니다. 이미 영화를 통해 중요한 반전을 다~ 알고 있는 상태니까요^^; 그렇게 잊혀졌던 작품인데 개정판(실질적으론 2번째 개정판)이 출간이 되었네요. 그런데 제 놀라운 휘발성 기억력은 그때 그 영화가 재미있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나지 뭡니까 ㅋㅋ 그래서 드디어 원작 소설을 읽을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사쿠마 순스케는 치밀하고 똑똑한 엘리트 사원입니다. 항상 세상 모든 일은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그, 그리고 그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그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닛세이 자동차 부사장이 까 버립니다. 그리고 아주 차갑고 냉철하게 그를 비판하지요. 이에 앙심을 품은 순스케는 홧김에 가쓰라기 부사장의 저택에 찾아갑니다. 그저 가쓰라기를 마주치면 한마디 하고 싶었던 건데 그때 마침 그 저택에서 어떤 여자가 담을 넘어서 나오는 걸 목격 그녀를 뒤쫓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녀는 가쓰라기의 장녀 주리, 그날 밤 가출을 감행했던 거지요. 이에 주리와 순스케는 이제 유괴라는 게임을 기획합니다. 아주아주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결코 실패할 수 없게끔!


줄거리를 보아하니 그저 재벌들 돈을 울궈내는 유괴 게임처럼 보이죠? 네, 사실 그렇긴 하지만 그게 전부 다는 아닌 소설입니다. 솔직히 순스케가 아주 치밀하게 가상 유괴 사건을 계획하는 걸 보고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서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거든요. 이런 인간이 진짜 범죄자였다면(...앗... 어쨋든 유괴범이니 범죄자가 맞긴 한 건가; ㅋㅋ;) 극악무도하지만 결코 잡히지 않을 사이코패스가 됐을 거거든요. 아무튼 순스케와 주리의 유괴를 위장한 몸값 강탈 작전은 착착 진행되어 갑니다. 순스케는 의심을 사지 않게 회사 생활도 평소처럼 하는데, 놀라운 것은 가쓰라기 부사장 역시 딸이 유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거 이거 수상한 냄새가 나죠? 도대체 그의 정체, 혹은 속셈은 무엇인 걸까요?


책을 읽어 가다 보니 문득 문득 영화 줄거리가 생각나서 반 정도의 반전은 짐작이 가능했습니다. 제가 미리 내용을 알고 보는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극도로 싫어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그렇게 김이 새거나 하진 않았어요. 짐작을 하고 보더라도 재미있더라고요.  영화랑은 또 다른 내용들도 많이 등장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좀... 음... 불편하게 느껴지는 소재들도 있긴 했지만... 그래 일본이니까 그런가 보다...하고 넘겼더랬습니다;;; 그리고 영화와 소설의 결말이 다르다던데... 제 빌어먹을 기억력은 영화의 결말을 기억하지 못해서 궁금증만 커져 버렸네요...;


이 소설 속에서 자주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는데 그게 참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맨 얼굴을 드러내면 언제 어느 때 얻어맞을지 모른다고. 이 세상은 게임이고 상황에 따라 얼마나 적절한 가면을 쓰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거라고... 순스케의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인데, 어쩐지 공감이 자꾸 가 씁쓸해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가면을 쓰고 인생이란 게임에 임하고 계신가요?


책의 광고 문구엔 유괴를 소재로 한 그 어떤 소설보다도 경쾌하게 읽힌다...고 되어 있습니다. 경쾌하게 잘 읽힌다. 그 소재가 어떤 것이든. 바로 그것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 최대의 강점이 아니겠습니까? 북태기가 왔을 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 p.220 누구나 그건 작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야. 맨얼굴을 드러내면 언제 어느 때 얻어맞을지 몰라. 이 세상은 게임이야. 상황에 따라 얼마나 적절한 가면을 쓰느냐 하는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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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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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어디였더라...아무튼 어떤 지역에 들렀다가 텍사스로 돌아가는 데 무려 16시간 차를 몰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미국이란 나라의 땅덩어리가 워낙 큰 걸 알고 있으니 일단은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밤새 차를 몰아 간신히 텍사스 초입에 도착을 해서 한시름 놓았다고 하며 덧붙이는 말이 가관이다. 텍사스에 이미 도착을 했지만 자신의 목적지까지는 다시 8시간을 더 차를 몰아야 한다나. 세상에 텍사스라는 주 하나의 크기가 도대체 얼마나 광대하기에 같은 텍사스 주에서 이동하는 데 8시간이 넘게 걸린단 말인가!!! 8시간이면 서울에서 광주 정도는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시간 아닌가?! 가끔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읽으며 미국이란 나라의 이런 광대함에, 특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연 경관을 묘사해 놓은 부분들을 보면 그저 경외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배가 아프다. 부럽고 또 부러워서.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지닌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보지 못할 것들이 아닌가? 연암 박지원이 요동 벌판의 그 광대함을 보고 목놓아 울었다던데, 박지원의 그때 그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직하다. 비록 책으로 간접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러니 실제로 그곳에 가서 그 광활함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면 나도 연암처럼 목놓아 울어버리지나 않을까.


사설이 길어져 버렸는데, 이 작품 오픈 시즌은 와이오밍 주 빅혼산을 배경으로 한다. 로키 산맥의 한 줄기라는 빅혼산의 그 규모가 사실 잘 짐작은 안 가지만 어마무시하게 크리라는 건 알겠다. 아무튼 그런 광대한 산이기에(책을 읽는 내내 영화 브로크백마운틴 속 배경과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상상만 했다. 사진을 찾아 첨부해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ㅠㅠ) 그 안에는 엄청난 종류의 동물들(...아마 식물들도)이 살아간다. 때문에 자연스레 그 지역은 사냥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냥은 자연을 해치는 법, 특정 기간 동안에 특정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었는데 이를 두고 '오픈 시즌'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인 조 피킷은 바로 와이오밍 주 소속 수렵감시관이다. 그가 하는 일은 당연히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불법 사냥을 감시하는 일. 그는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뱃속에 막내 하나를 둔 가장으로, 그들을 거두기에 턱없이 부족한 연봉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사냥 단속을 하다 오티 킬리라는 사람에게 총을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다. 그리고 얼마 후 조의 사무실이자 집 앞에서 오티 킬리는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 조의 일행. 사냥꾼들의 캠핑장에서 용의자를 발견하고 조의 동료인 웨이시는 총을 발포하고 그는 중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캠핑장에서 또 다른 시체 2구가 발견된다. 사건은 캠핑장 관리자인 리드가드가 범인인 걸로 마무리 되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조는 이에 의문을 품는다. 뭔가 이상하다. 조가 본부로 보낸 어떤 동물의 분비물이 사라지고, 조는 벌써 한참 전에 겪은 일로 정직 위기에 빠지며, 심지어 조가 리드가드의 집에 방문했을 때는 리드가드의 집이 불타 죽을 뻔하기도 한다. 이 사건 역시 아무래도 수상하다. 때문에 사명감 넘치고 정의감 넘치고 호기심마저 넘치는 우리의 주인공 조 피킷은 사건을 자세히 파기 시작한다.


부전자전, 아니 부전녀전이라 했던가. 조에게는 사랑스러운 딸이 둘 있었는데 큰딸 셰리든은 이제 7살(그러니까 우리나라 나이로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소녀다. 그런데 그녀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호기심이 충만하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발견된 사실이 두렵기도 하지만 흥미롭기도 하다. 그리고 괴물처럼 죽어 있던 남자가 발견된 자리에서 셰리든은 그녀만의 귀여운 애완 동물을 발견한다. 그녀는 엄마 아빠 몰래 그 애완동물들을 살뜰히 보살핀다. 하지만 바로 그 애완동물 덕에 누군가 셰리든에게 마수를 뻗쳐 온다. 


솔직히 왜 그런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누가 그런 끔찍한 일들을 벌였는지는 추리 소설 깨나 읽은 사람들이라면 초반부터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식상하지 않은 걸까. 왜 이리도 재밌게 잘 읽히는 걸까. 역시 인물들의 힘이 컸던 것 같다. 수렵 감시관이라는 독특하고, 우리에겐 아주 생경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조. 그는 생계에 쪼들리지만 자신의 주어진 일에는 아주 성실한, 어찌보면 굉장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인지 그의 행보가 참 믿음직스럽고 애정이 간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수렵감시관으로서 그의 행보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딸 셰리든은 또 어떤가. 이 소설을 가장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인물은 다름 아닌 셰리든이다. 악당인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봐 애면글면 그녀를 바라볼때는 답답하고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참으로 똑똑하고 사랑스러웠다. 이 작품이 시리즈의 서막이라고 들었는데, 조 피킷 원톱보다는 조와 셰리든의 콤비 플레이를 나는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인물들의 매력과 더불어 이 소설의 백미는 역시 로키 산맥, 빅혼 산에 대한 묘사이다. 그 생생한 묘사 덕에 궁금해져 책을 읽어 가며 나는 얼마나 자주 검색을 했던가. 엘크, 버팔로, 무스, 산쑥 등등 이름을 전부 헤아리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생물들. 실제로 밀러 족제비라는 생물이 정말 존재하는 줄 알고 검색했다가 검색 결과 없음이라는 문구를 보고 나는 당황했다. 뒷발로 서서 주변을 살피다가 넘어지는 그 귀여움이 눈에 그려지는 듯 했는데... 실사를 볼 수 없다니 그저 아쉬울 뿐...;; 그리고 광할한 하지만 내밀하기 그지 없는 빅혼 산의 풍경들. 그곳에서 비록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내가 뛰놀며 자라온 동네 앞산 뒷산과는 그 스케일부터가 바늘과 황소 차이겠지. 그 감당하기 힘든 방대함과 광활함에  나도 연암처럼 목 놓아 한번 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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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엔리코 이안니엘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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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263 기억해라, 이시도로,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흥얼댈 뿐이고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노래를 부른단다. 』


이 책은 정말 이상한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울면서 웃고 있었다. 슬퍼서 울었고, 행복하다 느껴서 웃었다. 슬픈데 행복하다니, 두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하다니... 이 책은 정말 이상한 책이다.


이탈리아 반도를 흔히 부츠에 비유하는데, 그 부츠의 복숭아뼈 정도에 위치한 작은 마을 마티넬라에 살고 있는 이시도로는 이제 곧 만 9살이 될 것이다. 노동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는 낭만적인 공산주의자 아빠와, 사랑스러운 파스타 장인 엄마와 늘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첫사랑 마렐라도 곁에 있다. 이시도로는 처음 태어나 울음 대신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가 흔히 입술을 동그랗게 하고 부는 휘파람이 아니라 성대에서 울려 나오는 휘파람, 우를라피스키오를. 이시도로는 이 우를라피키오를 이용하여 새들, 특히 그의 절친인 인도 검은새 알리와 대화를 나누곤 했다.이시도로의 우를라피스키오는 이제 마을 전체에 유명해지고 어떤 작은 기적마저 일으키게 된다. 학교에 가고, 아빠와 엄마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알면서 모른 척하며, 첫사랑 마렐라와 바다 여행을 가고, 알리에게 전 세계 이야기를 들으며 이시도로는 그렇게 평범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성장해 간다. 


회자정리라 했던가.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했던가. 아니면 행복에 겨운 이시도로를 신이 시기를 했던가. 이시도로의 가족이 단란한 소풍을 다녀온 어느날, 지진이 마티넬레라를 덮치고 만다.참새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이시도로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과 부모님의 죽음이었다. 이시도로가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간 그 지진 후에 이시도로는 이제 말을 잃어 버리고 만다. 열 살... 홀로 남겨진 이시도로는 이제 오로지 우를라피스키오로 알리와만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에겐 언제나 그를 이끌어주는 믿음직한 어른들이 있었기에 이시도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그럼으로써 행복해진다.


솔직히 1부에서의 단란하고 단조롭고 행복하기만 한 이시도로의 일상 생활이 한편으론 내 어릴 적을 떠올리게 하여 흐뭇하기도 했지만, 솔 어떤 극적 사건이 등장하지 않아 지루하다고 느끼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소설적 장치였던 걸까? 그런 한없이 행복하기만 한 이시도로의 일상 앞에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크나큰 불행이 닥쳐온다. 그 감당할 수 없는 큰 불행 앞에서 이시도로는 목 놓아 울고, 말을 잃는다. 그런 이시도로가 너무나 안타까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었지만 새벽에 감성 충만한 나를 울게 한 건 사실 이시도로가 겪은 그 불행이 아니었다.


마을과 집과 부모를 잃고 나폴리에서 살게 된 이시도로는 일련의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되면서 이제 청년이 되는데 여전히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런 이시도로가 다시 말을 찾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 장면이 그렇게 슬펐더랬다. 이시도로가 다시 말을 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그가 성장을 했다는 의미이며 어쩜 그가 겪은 슬픔을 이제 조금은 극복했다는 의미인데... 그런 이시도로가 기특해서...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말을 되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나야 했다는 점이 그렇게나 안타까워서 울고 말았다. 그게 그렇게 슬픈 장면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섧던지 눈물이 한동안 멈추질 않았다. 어쩜 그것은 역자님이 쓴 표현을 빌리자면, 이시도로와 함께 나 역시 인생의 '슬픈 행복'에 대해서 새삼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시도로는 결국 인생의 아름다움을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찾는다. 그는 이를 두고 기대가 적으면 아름다움이 넘쳐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연말,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 좀 더 겸허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넘치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찾아봐야겠다.


『 p.366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충분히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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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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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미식축구 선수들의 꿈이라는 내셔널 풋볼 리그에 처음 출전한 운 좋은 남자가 바로 그날 뇌에 큰 부상을 입고 자신이 겪고 보고 듣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남자가 됩니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던 남자가 사형 집행 직전 '그 남자는 범인이 아니오, 내가 그들을 죽였소.'하며 나타난 진범 덕에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전자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 후자는 이 작품의 주인공 맬빈 마스입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이라니, 사형 직전 목숨을 극적으로 구했다니. 이들은 마치 행운의 주인공처럼 보입니다만... 아무것도 잊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도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살해 당한 현장을 평생을 잊지 못하고 복기해야한다니... 이 능력은 행운이라기보단 오히려 저주에 가깝습니다. 마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촉망받던 미식축구 선수였던 그는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20년간 감옥에서 썩다가 결국 사형 집행 직전까지 갑니다. 비록 목숨을 구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를 행운의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운명

전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독자들에게 첫 선을 보이며 맹활략했던, 거대한 체구에 괴팍하기까지한 성격을 가진 에이머스 데커. 그가 전편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FBI 요원 보거트는 데커와 재미슨(역시 전편에서 데커를 도왔던 기자)를 자신만의 팀을 꾸려 콴티코로 불러들입니다. 그 팀의 주요 업무는 미제 사건을 들추어 해결하는 것. 데커는 콴티코로 가는 기나긴 여정 중에 잠을 쫓으려 라디오를 켜는데, 바로 그 순간 맬빈 마스가 사형 직전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고, 데커는 이 사건을 파헤쳐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데커가 이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는 과거에 마스와  경기장에서 맞붙었었기 때문. 그들이 과거에 그런 인연이 없었다거나, 데커가 라디오를 1분만 늦게 켰더라도 결코 데커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라는 것. 때문에 거구를 자랑하는 전직 미식축구 선수 출신 두 남자의 만남은 운명적이랄 수밖에요.


진실

이미 전작에서 경험한 바이지만, 데커는 일단 체격부터가 보통 우리가 접해오던 탐정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100킬로그램을 훨씬 넘는 체중에 거대한 키. 게다가 과잉기억증후군을 앓게된 동시에 공감 능력에는 문제가 생겨버린 데커. 그럼에도 데커의 의욕을 항상 과다하게 충만시키는 것은 진실에의 갈구. 거기에 맬빈 마스가 겪은 사건은 마스 자신이 겪었던 사건과(궁금하신 분들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읽어보시길 권함) 몹시 흡사하였기에 진실에 대한 갈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20년 전 마스의 부모를 죽인 건 진짜 그 몽고메리라는 남자였을까요? 아니면 무언가 숨겨진 다른 진상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마스 부모의 이상하리만치 비밀스러운 과거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었던 걸까요? 마스는 왜 20년 동안 감옥에 갇혀서 지내야 했을까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과 함께 진실을 쫓아가는 데커 일행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벽돌책이 참 우습습니다. 



진상

앞으로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여기서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작품 속 사건의 진상은 꽤나 단순해 보이면서도 복잡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사실 나름 데커와 함께 추리를 해나가며 데커보다 먼저 반전 비슷한 것을 짐작해보기도 했지만... 그건 빙삭의 일각일 뿐... 계속해서 등장하는 반전과 나선형처럼 깊고 넓게 퍼져가는 사건의 방대함과 깊이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단순 강도 사건인 줄 알았던 사건은 마약 카르텔, 인종 차별 문제, 정치 공작으로까지 나아가거든요. 그런데 이런 경우 작가가 의욕만 충만해 실제 작품 속에서는 이런 것들이 조금 산만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쉬운데... 이 작품은 그저 재밌어서 빨려들어갑니다. 이는 에이머스 데커라는 독특하지만 매력 넘치는 인물과 작가의 필력이 한몫 크게 한 덕이겠지요. 

(추신:현재 백악관 주인(...혹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매우 닮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작가의 성향이 어느쪽인지 확인하게 되는 재미도 있었어요. ㅋㅋ;)



사랑

이 작품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 모든 것은 사랑이었네라.라고 말해야겠습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여기서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터이므로 밝힐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절절하고 영원한 사랑에 저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점만 밝혀두겠습니다. 2년 전에 읽었던 요네스뵈의 '아들'과 작년에 읽었던 마이클로보텀의 '라이프 오어 데스'를 잇는 또 하나의 감성 스릴러 수작을 만났네요. 피가 낭자하거나 총알들이 빗발치는 '스릴러' 속에 감성을 촉촉하게 적시는 '사랑'이라는 키워드. 전혀 상반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이 두 키워드가 만나면 언제나 시너지 효과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말이죠.


우정

에이머스 데커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뇌가 고장나버리고 난 후, 게다가 그렇게(?) 아내와 딸을 잃고 난 후 성격이 정말 괴팍해져 버렸습니다. 때문에 그가 어떤 팀 내에 속해서 팀원들과 협동을 한다는 것은 데커 본인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런 그가 보거트의 배려와 재미슨의 보살핌을 받더니 점점 변해갑니다. 재미슨의 살뜰한 보살핌으로 다이어트에 돌입한 데커는 이제 고개를 숙이면 자기 발끝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살이 빠지는 대신 유머 감각이 늘었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을 통해 마스라는 또 하나의 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죠. 체구는 점점 작아지는데 어쩐지 점점 더 성장해가는 듯한 우리의 주인공 데커. 데커와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보고 싶네요. 아마 보거트와 재미슨과는 계속 팀을 이뤄 사건을 해결해 나가리라 당연히 믿어요. 마스와도 분명 약속을 했으니 시리즈 어디선가 그가 나타나 데커를 도와주리라...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던데, 그래서 전작만 한 후속작 찾기가 참 힘들던데... 그런데 그 공식을 깨는 몇 안 되는 작품. 저는 전작인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보다 후속인 <괴물이라 불린 남자>를 3.5배쯤 더 재밌게 읽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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