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어디였더라...아무튼 어떤 지역에 들렀다가 텍사스로 돌아가는 데 무려 16시간 차를 몰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미국이란 나라의 땅덩어리가 워낙 큰 걸 알고 있으니 일단은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주인공이 밤새 차를 몰아 간신히 텍사스 초입에 도착을 해서 한시름 놓았다고 하며 덧붙이는 말이 가관이다. 텍사스에 이미 도착을 했지만 자신의 목적지까지는 다시 8시간을 더 차를 몰아야 한다나. 세상에 텍사스라는 주 하나의 크기가 도대체 얼마나 광대하기에 같은 텍사스 주에서 이동하는 데 8시간이 넘게 걸린단 말인가!!! 8시간이면 서울에서 광주 정도는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시간 아닌가?! 가끔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읽으며 미국이란 나라의 이런 광대함에, 특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연 경관을 묘사해 놓은 부분들을 보면 그저 경외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배가 아프다. 부럽고 또 부러워서.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지닌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보지 못할 것들이 아닌가? 연암 박지원이 요동 벌판의 그 광대함을 보고 목놓아 울었다던데, 박지원의 그때 그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직하다. 비록 책으로 간접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러니 실제로 그곳에 가서 그 광활함을 두 눈으로 목격한다면 나도 연암처럼 목놓아 울어버리지나 않을까.


사설이 길어져 버렸는데, 이 작품 오픈 시즌은 와이오밍 주 빅혼산을 배경으로 한다. 로키 산맥의 한 줄기라는 빅혼산의 그 규모가 사실 잘 짐작은 안 가지만 어마무시하게 크리라는 건 알겠다. 아무튼 그런 광대한 산이기에(책을 읽는 내내 영화 브로크백마운틴 속 배경과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상상만 했다. 사진을 찾아 첨부해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ㅠㅠ) 그 안에는 엄청난 종류의 동물들(...아마 식물들도)이 살아간다. 때문에 자연스레 그 지역은 사냥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냥은 자연을 해치는 법, 특정 기간 동안에 특정 동물을 사냥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었는데 이를 두고 '오픈 시즌'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인 조 피킷은 바로 와이오밍 주 소속 수렵감시관이다. 그가 하는 일은 당연히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불법 사냥을 감시하는 일. 그는 아내와 두 딸, 그리고 뱃속에 막내 하나를 둔 가장으로, 그들을 거두기에 턱없이 부족한 연봉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사냥 단속을 하다 오티 킬리라는 사람에게 총을 빼앗기는 치욕을 당한다. 그리고 얼마 후 조의 사무실이자 집 앞에서 오티 킬리는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 조의 일행. 사냥꾼들의 캠핑장에서 용의자를 발견하고 조의 동료인 웨이시는 총을 발포하고 그는 중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캠핑장에서 또 다른 시체 2구가 발견된다. 사건은 캠핑장 관리자인 리드가드가 범인인 걸로 마무리 되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조는 이에 의문을 품는다. 뭔가 이상하다. 조가 본부로 보낸 어떤 동물의 분비물이 사라지고, 조는 벌써 한참 전에 겪은 일로 정직 위기에 빠지며, 심지어 조가 리드가드의 집에 방문했을 때는 리드가드의 집이 불타 죽을 뻔하기도 한다. 이 사건 역시 아무래도 수상하다. 때문에 사명감 넘치고 정의감 넘치고 호기심마저 넘치는 우리의 주인공 조 피킷은 사건을 자세히 파기 시작한다.


부전자전, 아니 부전녀전이라 했던가. 조에게는 사랑스러운 딸이 둘 있었는데 큰딸 셰리든은 이제 7살(그러니까 우리나라 나이로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소녀다. 그런데 그녀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호기심이 충만하고 상상력도 풍부하다.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발견된 사실이 두렵기도 하지만 흥미롭기도 하다. 그리고 괴물처럼 죽어 있던 남자가 발견된 자리에서 셰리든은 그녀만의 귀여운 애완 동물을 발견한다. 그녀는 엄마 아빠 몰래 그 애완동물들을 살뜰히 보살핀다. 하지만 바로 그 애완동물 덕에 누군가 셰리든에게 마수를 뻗쳐 온다. 


솔직히 왜 그런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누가 그런 끔찍한 일들을 벌였는지는 추리 소설 깨나 읽은 사람들이라면 초반부터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식상하지 않은 걸까. 왜 이리도 재밌게 잘 읽히는 걸까. 역시 인물들의 힘이 컸던 것 같다. 수렵 감시관이라는 독특하고, 우리에겐 아주 생경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조. 그는 생계에 쪼들리지만 자신의 주어진 일에는 아주 성실한, 어찌보면 굉장히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인지 그의 행보가 참 믿음직스럽고 애정이 간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수렵감시관으로서 그의 행보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딸 셰리든은 또 어떤가. 이 소설을 가장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인물은 다름 아닌 셰리든이다. 악당인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봐 애면글면 그녀를 바라볼때는 답답하고 화가 날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참으로 똑똑하고 사랑스러웠다. 이 작품이 시리즈의 서막이라고 들었는데, 조 피킷 원톱보다는 조와 셰리든의 콤비 플레이를 나는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인물들의 매력과 더불어 이 소설의 백미는 역시 로키 산맥, 빅혼 산에 대한 묘사이다. 그 생생한 묘사 덕에 궁금해져 책을 읽어 가며 나는 얼마나 자주 검색을 했던가. 엘크, 버팔로, 무스, 산쑥 등등 이름을 전부 헤아리기 힘든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생물들. 실제로 밀러 족제비라는 생물이 정말 존재하는 줄 알고 검색했다가 검색 결과 없음이라는 문구를 보고 나는 당황했다. 뒷발로 서서 주변을 살피다가 넘어지는 그 귀여움이 눈에 그려지는 듯 했는데... 실사를 볼 수 없다니 그저 아쉬울 뿐...;; 그리고 광할한 하지만 내밀하기 그지 없는 빅혼 산의 풍경들. 그곳에서 비록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내가 뛰놀며 자라온 동네 앞산 뒷산과는 그 스케일부터가 바늘과 황소 차이겠지. 그 감당하기 힘든 방대함과 광활함에  나도 연암처럼 목 놓아 한번 울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