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맨 우리 아빠 신나는 책읽기 10
배서연 지음, 설은영 그림 / 창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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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낯설다. 작가 소개란에 특별한 작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신인 동화 작가인 듯싶다.

2004년에 작품집이 나온 것으로 보아 새로운 작품집이 있지 않을까도 싶지만 이 책을 읽는 현재까지 인터넷 서점에 검색되는 바는 없다.

매미와 햄스터, 은지가 벼슬한날, 마스크 맨 우리 아빠, 하느님 잠깐만요. 이렇게 총 4편의 동화가 있다.

'은지가 벼슬한 날'은 외출할 때 소변이 마려운 아이가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에 참다 오줌을 싸고 "벼슬을 했어!"라는 나무라는 말에서 제목을 가지고 왔는데 아이의 심리가 잘 그려져 있다. 에둘러 말하는 어른의 "조금만"을 아이가 어찌 이해하랴.

'마스크 맨 우리 아빠'는 자식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빠(부모)와 아빠의 모습의 추레함에 아빠를 부끄러워하는 아들의 맘을 그리고 있다. 물론 아빠를 피하던 어느 날 아빠가 뺑소니차를 쫓다 다쳐 아이들이 아빠를 영웅시하자 슬그머니 아빠와의 화해를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데 소재와 결말은 좀 식상하긴 하지만 아빠를 모른척하는 아이의 발상은 재미있다.

'하느님, 잠깐만요.'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할머니가 이웃의 전도로 교회 나가면서 천당을 갈 수 있을까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야긴데 할머니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죄 짓고 열심히 회개하면서 그렇게 보통 사람들은 사는데 할머니는 자신의 양심에 비춰 떳떳하지 못한 행동 때문에 비죽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남들이 뭐라하든 내 양심에 비춰보아 떳떳지 못하면 그건 비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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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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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직도 읽어요?"

"그러게 아직도 읽고 있다.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잘 안 되네."

그렇다. 이 책을 나는 참 어렵게 읽었다.

소설처럼 줄거리만을 따라 갈 수는 없는 책이고, 설렁 설렁 읽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은 책이다. 킥킥대지도 못 하고.... 생각 하나를 하면 그 생각에 꼬리를 물고 나를 반추하게 하는 책이었다. 반추 할 것이 있으니 쉽게 책장을 덮어 버릴 수도 없고....


나는 평소에 나는 돈이 인간을 따라와야지 인간이 돈을 따라가려하면 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돈은 얼마를 버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아이들에게 말해왔다. 돈? 누구도 돈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한발자국만 움직여도 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막강 위력을 발휘한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면서 과연 나는 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남자들은 가족의 부양의 의무를 지어야했다. 때문에 돈에 대하여 남자들은 적극적인 사고를 가져야 된다고 배워왔다. 남자들이 벌어 오는 돈을 여자들이 쓰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을 위한 경비로 쓰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남자가 벌어 오는 돈을 실질 적으로 쓰고 있으니까 '남자가 벌어 오는 돈, 그것이 곧 내 돈 '이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었다.

정말 남편이 벌어 오는 돈이 내 돈일까?

정말 남편의 통장에서 자기 임의대로 쓸 수 있는 돈은 얼마일까?

내 경우, 남편 명의의 통장에서 생활비 외에 임의로 백만 원 정도만 빼어 내도 가슴이 콩닥댄다. 내 임의로 빼낸 돈을 딱히 나쁜데 쓰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남편의 돈이 내 돈이라는 공식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백만 원 정도 말없이 빼 쓴다고 남편이 그 돈의 용도를 묻지는 않는다. 그래도 내 마음은 빼낸 돈에 대하여 '나도 이 정도는 쓸 권리 있어,' 라는 둥 핑계를 댄다.

남편 돈이 내 돈이 아니라면 나의 경제력은? 제로!

왜? 남편은 다만 얼마만이래도 돈이 있는데 나는 왜 없는 거지? 남편만큼 나도 배웠고 남편 일할 때 나도 무언가는 열심히 했는데 왜 내게는 남는 것이 없는 거지?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하여 적극적 노력을 했다면 나는 돈을 벌기보다는 잘 쓰는데 더 관심을 두고 생활을 해 온 탓은 아닐까?

내 돈이 한 푼도 없다는 현실 인식은 남의 등에 업혀 평생을 살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의 계기가 되었다. 경제적 힘의 균등이 깨어지는 순간 힘의 균형을 이루는 추는 한쪽으로 치우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남편과의 관계에서 내 주장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문득 내가 기르고 있는 딸들에게 눈이 갔다. 이 아이들에게 돈에 대하여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이 아이들도 남자 하나 잘 만나면 그 남자의 등에 꼭 붙어 살아가면서 불안을 느껴가면서 살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사는 세상도 변하고 있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 변할 텐데 지금의 경제관을 가지고 살기는 힘들 텐데 아이들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돈은 힘이자, 권력이자, 안정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돈은 인간의 편의를 위하여 만들어 졌다. 인간이 돈을 적절히 지배하여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이 돈에 대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고 돈을 적절히 지배하도록 가르치는 방법을 고민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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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쟁이 경시 대회 작은거인 5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강봉승 그림, 조병준 옮김 / 국민서관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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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랄슨 선생님 구하기>에 이어 앤드류 클레먼츠의 글을 보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바비>도 참 재미있게 보았는데 <잘난 척쟁이 경시대회>도 참 재미있게 보았다.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다루어 왔고  컴퓨터를 좋아하는 제이크. 제이크는 누구에게조 지기 싫어하는 케빈, 남들이 자신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마샤를 보면서 잘난 척 하는 아이들이 꼴불견으로 느껴진다.
어느날 3,4,5,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 경시대회가 열린다. 각 학년 대상에 에 부상으로 주어지는 그가 꿈에 그리던 최신형 컴퓨터에 눈이 먼 제이크는 늘 함께하던 친구 윌의 제안도 무시한 채 단독 출전을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뭔가 흥미로운 것을 찾아라. 이것을 ‘관찰’이라고 한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본 다음,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해라.이것을 ‘의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설, 방법, 결과, 결론에 이르는 보고서를 작성하라."
제이크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도 반납하고 과학경시대회를 준비하며 상으로 받을 컴퓨터만을 생각하던 중 한심한 인간으로 전락한 자신을 보게 된다. 승리를 위하여 케빈이나 마샤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학 경시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제이크는 자기가 혐오하던 잘난 척쟁이가 되어간다. 변해가는 자신에 놀라고 있을 때 친구 윌이 과학경시대회를 포기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윌은 자신은 도저히 케빈과 마샤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데 자신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게 부질 없는것 처럼 느껴져서 포기한다고 말을한다. 자기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아이들이 포기했다고. 제이크는 아이들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케빈과 마샤의 전략이라고 말을한다. 
 케빈과 마샤의 전략대로 과학 경시대회를 치르게 할수 없다는 생각을 하던 제이크는 윌을 설득하여 함께 전자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둘이하는 연구는 즐거웠다. 윌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다.
과학경시대회의 결과 대상은  피트에게 돌아갔다. 그것은 당연하다. 피트는 과학이 좋아서, 알고 싶어서, 즐겁게, 잘난 척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오래도록 실험관찰을 해왔다. 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상을 받는게 당연하다. 제이크는 준우승을했다. 비록 제이크는 컴퓨터를 상으로 받지는 못하지만 친구 윌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에 만족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기 전에 반드시 조건을 건다'는 말에 쓴 웃음을 짓는다. 제이크와 윌이 전자석을 만들면서 보여주는 과학적 사고가 우리 교육계의 현실과 비교되어 부러웠다. 잘난 척쟁이가 되지 않으려는 제이크의 노력을 보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나름대로 바로 서고저 노력한다는 생각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중학년 이상의 아이들이라면 무난히 볼수 있을듯하고 고학년 이상이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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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는 괴물 나에게는 선물 내친구 작은거인 12
길지연 지음, 선현경 그림 / 국민서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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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딱 팔딱 빗속을 뒤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는 두레.

나는 성냥팔이 소녀! 생일인데 /맛있는 잡채도 못먹고 /케이크에 촛불도 못 켜고/개를 키우고 싶어요, 하면 캭! 엄마 고함소리!/그럼, 고양이는요? 하고 물으면/오! 맙소사./소녀는 다시 물어 보지요./아빠는 언제 오세요? /잠잠!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이 노랫말로 전부가 보여진다. 

그래, 두레는 초등학교 2학년 아홉살이다. 아빠는 아프리카로 동물 사진을 찍으러 가셨고 지금은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엄마는 백화점 디스플레이를 해 주기도 하고 문학박사가 되기 위하여 공부도 하면서 때로 대학게 강의를 하기도 하고 자원봉사도 하느라 바쁘다.

오늘은 두레의 생일, 케Ÿ弱?잡채를 좋아한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만 엄마는 캭!

두레가 엄마의 고함을 잠재우는 방법은

"아빠는 언제 오세요?"

학교에서 돌아오던 두레는 병든 강아지를 주워온다.

엄마의 반응은 이미 예상하던 바.

그러나 병든 강아지를 내칠 수 없어 병이 낳을 때 까지만이란 한시적 조건을 달아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 강아지의 병이 낳아감을 바라보면서 두레는 엄마와의 약속이 떠올라 병이 천천히 낫기를 바란다. 강아지의 병이 천천히 낫기를 바라는 마음을 조금 더 강하게 다루어 주었으면 싶은데 너무 변죽만을 울린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강아지의 병이 낫자 엄마는 애완동물 동호에 사람중 강아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강아지를 주기로 약속을한다. 놀란 두레는 아빠가 두고 간 차 속에 강아지를 숨겨두고 기른다.  강아지를 가져 가기로 했던 사람이 오고  두레는 강아지가 오토바이에 치여 죽었노라 거짓말을 한다.

강아지를 가져 가기로 했던 사람은 두레에게 귓속말로 강아지를 나쁜 사람이 가져 갈지 모르니까 잘 숨겨 두라고 한다.(두레가 강아지를 숨겨 놓은 것을 어떻게 알았지. 이 사람은?)

결국 강아지는 나쁜 아이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는 걸 두레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구해 집으로 데리고 돌아 온다. 엄마는 다시 강아지 가져 가기로 했던 사람에게 연락을하여 강아지를 주어 버린다.

화가 난 두레를 보면서 어른들이 하는 짓이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두레와 강아지의 관계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덜컥 일을 저지르는 엄마의 행동에 나도 화가 났다. 과연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나.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을 두레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두레의 동의 하에 일을 진행 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이 대목에서 내 딸아이는 화를 냈다. 아이들도 눈 높이에 맞게 설명을 하면 이해를 한다.)

강아지를 보낸 일로 인하여 두레와 엄마의 관계는 말을하지 않을 정도로 소원 해지고 엄마에게 나름대로의 시위도 한다.  마레의 행동, 귀엽다.

엄마와 불편한 관계 너무 오래갔다. 이렇게 어떤 문제 앞에서 아이들이 이렇게 오래동안 시위를 할 수 있나?

마레가 엄마에게 화해를 하기로 한 싯점, 엄마는  보냈던 강아지를 다시 찾아 오면서 이야기는 해피엔딩!

아이들이 읽었을 때 재미있게 읽기는 하겠구나 싶다. 아이들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는 출판사의 평이나 작가의 의도에는 맞는 책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어른의 모습은 영 아니다.

이 책에서 내가 화가 난 부분은 어른들이 아이를 너무 함부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비록 아픈 강아지라도 잘 돌봐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일방적이라는 생각이다.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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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족의 숲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6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비룡소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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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족의 숲>은 이사벨 아옌데가 자신의 손자들을 위하여 쓴 이야기기의 3부작 중 맨 나중의 작품이다.

1편 <야수의 도시>는 아마존 밀림을 배경으로 한 안개족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이 부리는 욕심과 환경, 자연보호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2편 <황금용 왕국>은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한 황금용 왕국은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더 존중하며 각별히 자연을 보호하기 때문에 천혜의 자연의 보고로 평가 받는 나라며 가급적 외지인들의 방문을 여간해서는 허락하지 않기에 '금지 된 왕국'으로 불리는 나라다.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황금용 왕국의 국보인 황금용 상을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이미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많은 것을 갖질 못해 불행한 인간들이 벌이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황금용 왕국에서의 일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 갈 즈음 케이트는 인터내셔널 지오그래픽사에서 전화를 받게 된다. 아프리카 취재에 대한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전화 한통으로 황금용 왕국에 있던 일행은 아프리카 케냐로 날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시장에 도착하여 시장을 둘러볼 때 시장에서 마방헤세라는 예언가를 만나게 된다.

마방헤세는 라디아와 알렉스의 운명을 보여주면서 알렉스와 라디아는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들은 마방헤세의 예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알렉스는 아프리카여행에서 야생 동물들과 아프리카의 자연스러움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케냐의 잘 다듬어진 모습과 안전과 편안함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보호구역내의 동물들의 모습에 알렉스는 실망을 한다. 케냐를 떠날 준비를 하던 알렉스 일행 앞에 나타난 선교사와 알렉스 일행은  행방불명된 동료선교사들을 찾아 소인족인 피그미 족이 사는 원시림으로 향한다. 그 숲에서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막강한 힘을 가진 반투족의 왕 코송고와  엠벰벨레 사령관, 그리고 주술사 솜베는 피그미족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살인과 약탈, 밀엽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된 알렉스 일행은 피그미족의 자유를 찾아준다.

작가 이사벨 아옌데는

백인들이 자기네 신앙은 '종교'라 부르고 다른 사람의 신앙은 '미신'이라고 부르며 백인들이 만든 것은 '예술'이고 다른 인종이 만든 것은 '수공예품'이라고 한다며 케이트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이는 백인 우월 중심의 문화 인식을 비판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인 편견을 이야기 한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인류학을 공부한 사람에게서 "문명은 선진과 후진이 있을 수 있지만 문화는 선진과 후진이 있을 수 없다. 문화는 그 문화의 주인들의 삶 그 자체로 인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아프리카의 소인족인 피그미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외지에서 들어 온 사람들로부터 문제는 생겼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문명이 들어 왔고, 새로운 가치관을 강요했다.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가치관에 자신들의 욕심을 교묘히 포장했다. 원주민들은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었고 새로운 가치관은 자신들의 문화를 부끄럽게 여겼다. 피그미족이 누렸던 자유와 평화는 이제 없다. 자신들의 문화는 낡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버려야 할 것이다. 새로운 물질문명만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증명해준다. 외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 시켜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피그미족들이 원하는 것을 처음에는 거저 주었지만 나중에는 구걸을 했고 그다음에는 사정을 했고 절대 복종을 해야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조금 얻을 수 있다고 이사벨 아옌데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가 피그미족 스스로 엠벰벨레와 맞상대를 하게 한 것은 생각 해 볼 여지가 많다.

공으로 얻은 것은 절대 자기 것이 되지 않더라는 말이 있듯 자유도 외부에서 주어졌을 때 그 자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 자유를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본다. 피그미족은 그간의 고통으로 자유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억압했던 자들과 맞상대를 하면서 스스로의 자유와 자존심을 되찾았다.

자유인이 된 피그미족은 깊은 숲으로 들어 가 평화롭게 살고 저 했다. 그러나 알렉스 일행은 이미맛본 문명의 세계가 피그미족에게는 달콤하지만은 않았지만 원하던 원치 않았던 생활 속으로 들어 와있는데 그것을 쳐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았다. 들어 온 것을 내치기보다는 수용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와 자신들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았다.

새로운 문화와 문명은 바람처럼 우리 주변에 다가 온다. 그 변화의 바람을 내 것과 얼마나 잘 조화시킬 수 있느냐가 문화 수용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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