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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족의 숲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6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비룡소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소인족의 숲>은 이사벨 아옌데가 자신의 손자들을 위하여 쓴 이야기기의 3부작 중 맨 나중의 작품이다.
1편 <야수의 도시>는 아마존 밀림을 배경으로 한 안개족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이 부리는 욕심과 환경, 자연보호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2편 <황금용 왕국>은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한 황금용 왕국은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더 존중하며 각별히 자연을 보호하기 때문에 천혜의 자연의 보고로 평가 받는 나라며 가급적 외지인들의 방문을 여간해서는 허락하지 않기에 '금지 된 왕국'으로 불리는 나라다.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황금용 왕국의 국보인 황금용 상을 둘러싼 사건을 중심으로 이미 많은 것을 가졌지만 더 많은 것을 갖질 못해 불행한 인간들이 벌이는 사건을 해결하면서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황금용 왕국에서의 일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 갈 즈음 케이트는 인터내셔널 지오그래픽사에서 전화를 받게 된다. 아프리카 취재에 대한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전화 한통으로 황금용 왕국에 있던 일행은 아프리카 케냐로 날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시장에 도착하여 시장을 둘러볼 때 시장에서 마방헤세라는 예언가를 만나게 된다.
마방헤세는 라디아와 알렉스의 운명을 보여주면서 알렉스와 라디아는 절대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그들은 마방헤세의 예언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알렉스는 아프리카여행에서 야생 동물들과 아프리카의 자연스러움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케냐의 잘 다듬어진 모습과 안전과 편안함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보호구역내의 동물들의 모습에 알렉스는 실망을 한다. 케냐를 떠날 준비를 하던 알렉스 일행 앞에 나타난 선교사와 알렉스 일행은 행방불명된 동료선교사들을 찾아 소인족인 피그미 족이 사는 원시림으로 향한다. 그 숲에서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막강한 힘을 가진 반투족의 왕 코송고와 엠벰벨레 사령관, 그리고 주술사 솜베는 피그미족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살인과 약탈, 밀엽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것을 알게 된 알렉스 일행은 피그미족의 자유를 찾아준다.
작가 이사벨 아옌데는
백인들이 자기네 신앙은 '종교'라 부르고 다른 사람의 신앙은 '미신'이라고 부르며 백인들이 만든 것은 '예술'이고 다른 인종이 만든 것은 '수공예품'이라고 한다며 케이트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다. 이는 백인 우월 중심의 문화 인식을 비판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인 편견을 이야기 한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인류학을 공부한 사람에게서 "문명은 선진과 후진이 있을 수 있지만 문화는 선진과 후진이 있을 수 없다. 문화는 그 문화의 주인들의 삶 그 자체로 인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아프리카의 소인족인 피그미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외지에서 들어 온 사람들로부터 문제는 생겼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문명이 들어 왔고, 새로운 가치관을 강요했다.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가치관에 자신들의 욕심을 교묘히 포장했다. 원주민들은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었고 새로운 가치관은 자신들의 문화를 부끄럽게 여겼다. 피그미족이 누렸던 자유와 평화는 이제 없다. 자신들의 문화는 낡은 구시대의 유물이며 버려야 할 것이다. 새로운 물질문명만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증명해준다. 외지인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 시켜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피그미족들이 원하는 것을 처음에는 거저 주었지만 나중에는 구걸을 했고 그다음에는 사정을 했고 절대 복종을 해야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조금 얻을 수 있다고 이사벨 아옌데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렉스가 피그미족 스스로 엠벰벨레와 맞상대를 하게 한 것은 생각 해 볼 여지가 많다.
공으로 얻은 것은 절대 자기 것이 되지 않더라는 말이 있듯 자유도 외부에서 주어졌을 때 그 자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 자유를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본다. 피그미족은 그간의 고통으로 자유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억압했던 자들과 맞상대를 하면서 스스로의 자유와 자존심을 되찾았다.
자유인이 된 피그미족은 깊은 숲으로 들어 가 평화롭게 살고 저 했다. 그러나 알렉스 일행은 이미맛본 문명의 세계가 피그미족에게는 달콤하지만은 않았지만 원하던 원치 않았던 생활 속으로 들어 와있는데 그것을 쳐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보았다. 들어 온 것을 내치기보다는 수용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와 자신들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았다.
새로운 문화와 문명은 바람처럼 우리 주변에 다가 온다. 그 변화의 바람을 내 것과 얼마나 잘 조화시킬 수 있느냐가 문화 수용의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