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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행운돼지 ㅣ 즐거운 책방 1
김종렬 지음, 김숙경 그림 / 다림 / 2006년 2월
평점 :
진달래 마을에 전단지 한 장이 뿌려졌다.
“진달래 시민 여러분!
길모퉁이 행운돼지로 오십시오.
커다란 행운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행운돼지에 있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행운돼지”
"원한다면, 행운돼지에 있는 물건을 공짜로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다"
물건을 공짜로 가질 수 있다는 솔깃한 문구! 처음엔 그 것이 가진 파괴력의 의미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우리 주변에서 개업식에서 나누어주는 싸구려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얻기 위하여 긴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가게 안에 있는 물건을 무엇이든 공짜로 준다는 말은 파격이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데……. 외상도 아니고 공짜라잖아? 다른 사람들이 좋은 것 다 가져 가기 전에 나도…….' 사람들의 처음 심리는 그랬을 것이다.
어라? 하루에 딱 열 사람에게만 행운을 준다. 가게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가지고 온 물건들을 보니 입이 딱 벌어진다. 사람들은 자신들도 앞선 행운의 주인공이 꼭 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된다. 아니 다른 사람들에 한발 앞서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몸살이 났다.
긴 줄 사이로는 사람들의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행여 누군가 자신의 행운을 가로채지 않을까, 누군가 끼어들어 행운의 순서가 뒤쳐질까 두렵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행운의 순서가 뒤바뀔까 엄마와 아빠가 바턴터치 식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들은 긴 줄에 대고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지만 어른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행운 잡기에 열을 올리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드디어 주인공의 부모님도 오랜 줄서기 끝에 물건을 복제하는 항아리를 얻게 된다.
그 항아리를 사용하는 것을 본 주인공은 자기의 부모들이 이전에 행운을 얻은 사람들과 표정이랑 모습이 비슷해 져 가는 것을 느낀다. 뭘까? 이 껄끄러운 느낌은? 그래, 행운돼지 가게 앞의 동상의 모습과 닮아가는 부모님. 제발 그만 멈춰주었으면 해서 말려도 보지만 부모님에게 아이는 이미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시험해 보고 즐기는 데만 관심이 있다. 부모님들이 행운을 탐닉하면 탐닉할수록 자신들의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안타깝게 바라 볼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두렵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어떻게 해야만 할까? 되돌리고 싶다. 행운이라고 믿었던 항아리를 가지기 전으로. 그래, 모든 것은 그 행운돼지로 부터다. 거기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답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 문제의 답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이다. 보모님들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조건을 갖추어 놓고 기다려 보지만 부모님은 마치 "우린 이 행운을 영원히 지킬 것이야."하듯 아이가 만들어 논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않는다. 아이는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 했을까?
모든 불행이 행운 돼지에게 있다고 따지는 주인공에게 행운돼지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행운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요. 대부분 작은 행운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욕심을 부리고 맙니다. 욕심 때문에 자신이 점점 행운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면서 말이지요." 라는 답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행운? 욕심이 행운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다고?
또 행운 돼지는 이런 말도 했다.
"제가 오기를 간절히 바란 건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에서 자라는 욕심이 저를 불렀지요. 저는 단지, 원하는 사람들에게 행운을 나누어 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행운돼지인 내게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인간들에게 있는 것이다? 세상엔 공짜란 없다는 법, 행운도 그것을 관리 할 줄 아는 사람에게나 행운이지 그것을 관리 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 책을 읽고 내 아이는 소재 면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닮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주제 면에서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