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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예술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7월
평점 :
인도 설화를 바탕으로 한 <눈먼 일곱 마리 생쥐>라는 책이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눈먼 생쥐들이 연못가에서 발견한 코끼리를 두고 무엇인지 몰라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드디어 전체를 꼼꼼히 관찰한 한 마리 생쥐가 무엇인지를 알아맞힌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부분만 알고서도 아는 척할 수 있지만 참된 지혜는 전체를 보는 데서
나온다'라는 진리를 말하고 있다.
문득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것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다.
정답이 없어서 백만 스물두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데도 언젠가부터 이마저도 뭔가 정답을
향해 가는 듯한 분위기로 특정 전시에 대한 열기가 가끔은 불편해지기도 한다.
저자의 첫 번째 책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에서는 예술가들과의 인터뷰들을 통해 공적 접근
시선을 접했다면 이 책은 좀 더 저자의 사적인 시선이 더 많이 담긴 예술 에세이다.
어떤 예술가와 작품들을 다뤘을지 기대감으로 휘리릭 넘겨 확인해 보니 근간에 봤던 전시와
낯익은 작품들이 많이 보여서 또 반갑다. 같은 전시를 보고 나누는 소통의 맛을 아니까
요즘 내가 해설하는 작품도, 관람자로 감상했던 작품도 타인의 시선으로 다시 감상해 볼
기대감으로 이미 즐겁다.
같은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혼자 느끼는 감상과는 별개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내 시선에 타인의 시선을 더하고 이야기를 더해가는 과정에서 작품을 보는 관점이 확장된다.
뭔가 새로운 발견을 하며 그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해지기도 한다.
미술관에서 해설 작품을 공부할 때도 작가의 이력부터, 작업의 탄생 배경, 작가 작업의 여러
특징들과 배경지식들을 더해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우주처럼 부풀어가다 다양한 현실들과
얽히고설킨다.
그런 과정이 즐거워 매번 괴롭고도 즐거운 그 일을 이어가는 이유다.
미술관에서 마침 해설 중이었던 <안리 살라_ 붉은색 없는 1395일, 2011>
보스니아 내전 중 사라예보 포위전을 배경으로 담고 이는 이 작품은 사회주의 체제의
알바니아에서 나고 자란 안리 살라 작가의 시선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대사도 서사도 없이
오직 영상과 사운드 만으로 보는 사람의 신체감각을 자극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의
능력은 구구절절한 언어보다 더 강력한 전달력과 몰입감을 높인다.
어딘지 낯익은 여성의 정체가 영화 <판의 미로, 2006>에 출연했던 스페인 배우
마리벨 베르두 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극중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리허설에 참여하기 위해
악착같이 뛰고 걸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기도 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시작해 배경음악인 차이콥스키의 비창에 관한 이야기까지 그 많은
서사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인생, 예술>에 담고 있는 작가의 감상은 나를 포함한 이 작품을 봤던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과도 교감을 이어갈 것이다.
다양한 예술작품과 예술가들을 모티프로 <인생, 예술>에서 작가는 삶의 많은 궤적을 넘나
든다, 작품에 담긴 의미에서 확장해 우리가 매 순간 마주하는 삶의 소소한 지점들을 소환해
공감을 느낀 부분들이 많았고, 작품과 예술을 마주하는 시선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던 부분도
좋았다. 예술이 대중적으로 가까워진 요즘, 편안하게 감상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담은 책.
좀 긴듯했던 서문에서부터 저자의 진솔했던 고민이 느껴져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도 어딘지
친근했고, 저자의 전작을 읽고 후속편을 기다렸던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은 기대보다 훨씬
마음에 와닿았고, 수록된 예술가와 작품들이 근간에 국내에서 볼 수 있었던 전시들을 위주로
접할 수 있어서 전시를 함께 보고 마주한 듯 두 배로 재미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전시를 보고 다시 그 파트를 읽는 재미가 참 좋았었다.
간혹 전시를 보기 전에 미리 읽어보기도 했고, 책 순서와 상관없이 찾아읽는 재미가 특히
좋았던 책이다.
오늘 리뷰를 정리하며 다시 한번 휘리릭 넘겨보다 와닿았던 한 작품.
<바이런 킴_ 선데이 페인팅, 2008> 지난 며칠 하늘이 구멍 날 듯 퍼부었던 비에 여기저기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는 데 오늘 간만의 화창함에 기분 좋았던 하루였기에 다른 날과는
또 다르게 와닿았던 것 같다. 예술이란 바로 이런 것.
책의 가장 마지막에 올해 국내에서 마지막 생전 회고전을 마친 볼탕스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서 전시를 보지 못했던 아쉬움과 더불어 한편으로는 또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또 이 책이 나에게 특별했고, 인생의 삶과 죽음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다. 손때 묻도록 종종 꺼내어 보게 될 인생과 예술 이야기.
따뜻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