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가 반찬 만드시는 것을 곁에서 눈여겨 보고 있다. 날름날름 얻어다 먹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오늘은 갈비찜을 배웠다. 고기를 한번 삶아내서 기름을 떼어내고 간장, 매실즙 등을 넣고 조물조물. 나중에 성질 급한 우리 영달이가 "엄마, 그냥 음식하지 말고 할머니한테 해달라고 하면 안돼?" 이러기 전에 하나씩 배워두어야지. 

  어제는 엄마가 올갱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 푸른 빛을 보자 떠오르는 일화. 

  "엄마, 그 xx가 말야. 어느 날, 올갱이 해장국을 보더니 왜 올갱이가 파랗지? 이러는 거야."  

  "아니 그럼 올갱이가 파랗지." 

  "왜 갈색이 아니고 파랗냐고 그러는 거야. 욱끼지욱끼지?" 

  "껍질이 갈색이지 속까지 갈색이냐. 하여간 모자란..." 

  "그래서 내가 서빙하는 아줌마한테 물어봤잖아. 아줌마, 왜 올갱이가 파래요? 그러니까 아줌마도 엄마처럼 아니 그럼 올갱이가 파랗지, 이러는 거야."

  "하여간 하나가 모자라면 나머지 하나까지 같이 모자라진다니깐. 너 연애한 걸 각본으로 쓰면 칸영화제에 내보내도 될거다." 

  "칸영화제? 하하, 정말정말." 

  영달이가 두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데 엄마와 나는 영달이 아빠가 아닌, 다른 남자 이야기를 했다. 우리 모녀는 이따금 나의 어리석은 연애사를 화제 삼아 나의 자학과 엄마의 구박이 오가는 이상한 SM을 즐긴다.  

  "엄마엄마, 그때 내가 끝까지 정신을 못 차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너랑 나랑 이 세상에 없다."    

  "하긴, 난 버얼써 엄마 손에 죽었겠지!"

  엄마는 참을성 있게, 그야말로 질긴 인내심을 갖고 무지몽매한 나를 지켜보았고, 지켜주었다. 요즘 무럭무럭 커가는 영달이를 보고 있으면 막막해질 때가 있다. 주변의 사례들을 보아하니 자식은 곱게 키워도 문제, 터프하게 막 키워도 문제, 그저 이래저래 속끓이게 되어 있던데 내가 과연 엄마처럼 도를 닦듯 묵묵히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집집마다 어느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대개 자식 교육은 엄마 몫이다. 특히 딸은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란다. 그리고 두 여자는 필연적으로 부딪친다. 세상에 둘도 없는 한편이 되었다가도 어느 때는 서로의 가슴에 대못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 영달이는 제 아빠를 쏙 빼닮았다. 영달이 아빠는 본래 유한 사람이고 나날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나와 충돌하지 않는 법까지 몸소 터득했다. 하지만 영달이는 그저 딸이라는 입장만으로도 나와 부딪칠 것을 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요즘 엄마는 내게 참을성을 강조하신다. 어쩌면 내게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 즉, 구멍이라고도 볼 수 있는 심성 중 하나다.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고 어쩌고 하면서 투덜거리면 심성도 연습하면 되는 거라고, 더구나 자식 일에 있어서는 참을성 제로인 사람도 잘 참게 되어 있다는, 지금으로선 그저 아리송한 이야기를 하신다.  

  지난 학기 클럽활동 부서 중에 심성수련반이 있었다. 학교로 돌아가면 나도 그런 반을 운영해볼까 싶다. 사람들이 막 비웃겠지만 그 또한 참아야 하리. 계획 짜고 지도안 만들고 자료 준비하고 하다보면 참을성을 기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배송조회 클릭이 취미가 되어버린 내게 참을성이라니, 난제이자 화두다.    

                             그러고보니 요즘 영달이한테도 빨리 크라고 성화다.  

                        앞으로는 자장가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로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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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0-06-10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안녕안녕~ *^^*



깐따삐야 2010-06-11 08:14   좋아요 0 | URL
저러다가도 갑자기 으앙~ 합니다.^^

다락방 2010-07-0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똥말똥. 아이가 엄마를 보는걸까요? 사진 찍어주니까?
:)
 

  그러니까, 우리는 올해 영달이라는 딸내미를 얻었고 조만간 이사를 간다. 결혼하고 나서 맞는 큰 변화들이다.    

  결혼한 지 채 2년이 안 된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살았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남편은 엊그제 저녁, 해물탕의 해물을 건져먹으며 내게 휴대폰을 건넸다. 당신이 이런 문자를 보냈었다, 고. 막 연애를 시작할 즈음 주고받은 메시지였다. 한 건을 읽고 나서 민망한 듯 손을 내두르자 또 다른 한 건을 보여준다. 얼굴이 훅훅 달아올랐다. 아니 왜 이런 걸 여태 보관하고 있어요? 내가 의아한 듯 불만스런 목소리로 묻자 그가 말했다. 가끔 꺼내보면 힘이 나니까. 요즘 나는 안 그래도 눈물이 많아졌다. 순간 눈물이 핑그르르 고였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해물탕에 더 바짝 다가앉아서 내 얼굴을 감췄다.  

  나는 매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서도 세상은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을 읽다가 저 문장이 턱, 마음에 걸렸다. 나 역시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은 나를 제외시키고도 그 자체로 완벽해 보였고 그 안의 나는 고독하고 무력한 정물 같았다. 그렇듯 어리석고 외로웠던 시절, 남편과 나는 같은 건물에서 공부를 했고 그가 자취를 했던 동네에 내가 자취를 하러 들어왔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한창 나이 먹어 연애하는 중에 알았다. 한번쯤 마주치지 않았을까. 어쩌면 여러 번 마주쳤을 테지만 그때는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그 시절, 많은 술을 마셨다 했고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했었고 나도 한 일년쯤 방황했다. 그는 우리 학번은 마냥 애기로 여겨졌다 했고 나는 당신 학번은 느끼한 아저씨 부대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는 독서클럽 회장을 역임했다고 하여 내게 큰 웃음을 주었고 내가 동아리 선배를 뻥, 찼다고 하자 그가 코웃음을 쳤다.  

  그 세계를 지나와 두 사람이 드디어 서로를 알아보았을 때, 우리는 각자의 어리숙함 때문에 사랑에 빠졌다. 그와 나,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현명했다면 우리는 아마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이후, 온 우주를 채우고도 남을 듯 했던 내 감정샘은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다. 대화는 용건 중심, 일상은 계획 중심, 요즘은 영달이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감기에 걸린 그가 코를 훌쩍이며 케케묵은 영구메시지를 찾아보고 있을 때 나는 육아대백과를 찾아 읽거나 기저귀 쇼핑몰을 기웃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 풍경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대학 초년생 시절, 친구 E와 나란히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아기를 업고 시장가방을 든 채 길을 건너는, 지금 우리 또래의 여인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저렇게 될까봐 겁나. E는 아무 스스럼 없이 그렇게 말했다. 조금 실망했지만 솔직한 반응이기도 했다. 갓 스무살이었으니 말이다. 

  그처럼 고개 빳빳이 세우며 도도하게 뇌까리던 시절은 멀찌감치 흘러가 버리고 더 이상 삼인칭관찰자 시점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매일매일의 일상을 탈없이 꾸려가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좀더 어린 날의 나는 컨디션에 따라 주어진 하루를 그냥 방치한 적도 많았다. 후회도, 피해도, 내 몫이었고 그것은 차라리 향락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내 삶은 가만히 있지 않을 용기를 필요로 한다. 하루하루가 날마다 똑같이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듯 똑고르게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것들과 싸워야 한다. 얽혀 있는 일, 사람 관계에서 오는 피로와 불쾌를 견뎌야 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우울도 극복해야 한다. 그 와중에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한 대비도 해야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사람을 구하려고 바다에 뛰어드는 것 뿐만 아니라 그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남편에게는 아쉽거나 갸우뚱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항상 결혼 전의 그 마인드라면, 아마 살기 힘든 건 남편 쪽일 것이다. 나도 손가락이나 놀려가며 문자나 예쁘게 보내면 되는 시절이 가끔 그립다.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면 속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런 행운은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일텐데 우리가 그처럼 복받을만한 일을 한적이 있는가.  

  요즘 나는 영달이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기쁘다. 당연한 세계에 길들어가는 일이 처음으로 싫지 않다. 아직 완전히는 아니지만 늘상 나를 괴롭혀대던 원인불명의 노이로제에서도 점점 해방되는 것 같다. 무능한 엄마에게 용기를 주는 아이, 아빠를 닮아 아빠를 잊지 않게 해주는 아이, 우리는 너에게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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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는.나.는.오.죽.하.겠.수.^^

깐따삐야 2010-06-07 23:10   좋아요 0 | URL
이제는 모든 관심을 월드컵으로! ㅋㅋ

레와 2010-06-0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깐따삐야 2010-06-07 23:10   좋아요 0 | URL
^^;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 사는 모양새는 얼추 비슷비슷한데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태도가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대개는 사람 나름, 그 사람 성격 나름이다.  

  삼칠일이 지났다고 친구들이 아기를 보러 왔었다. 친정에 와 있다고 했더니 다들 엄마 힘드시게 왜 거기 있느냐고 타박을 주었다. 내 심신이 고달파서 그냥 안면몰수한 채 뭉개고 있다고 했더니 얼른 너네 집으로 가란다. 그리고는 나랑은 별로 얘기도 안하고 엄마랑 실컷 수다를 떨다 갔다.     

  K는 원래 학교 다닐 때부터 언니 같기는 했지만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서는 그런 느낌이 더해졌다. 우리 영달이는 K의 품에 폭신 안겨서는 입을 쫑긋거리며 좋아라 했다. 세살 된 아들이 있는 K는 영달이의 이모저모를 이뻐라 하며 기필코 딸을 낳아야겠다며 둘째 계획을 밝혔다. 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르자 본인이 형제 많은 집에서 자란데다 남편이 딸을 원하고, 또 첫째가 나중에 외로울 것을 생각해서 더 낳기로 했단다.  

  내가 몰랐으면 모르지만 K는 출산 후에 후유증으로 고생도 했었고 지금도 완전히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더욱이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아이를 돌봐줄 여력이 안되어서 휴직기간 내내 혼자 육아를 감당한데다 요즘도 다른 사람 손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중이다. 남편은 다정한 분이기는 한데 워낙 바깥으로 공사다망하신 탓에 육아에 적극적인 편은 못된다. 시댁에 돈이 많아서 그런지 너는 아무 걱정 말고 셋만 낳으라고 하셨다는데 나라면 신경질이 확 올라왔을 대목에서도 K는 허허실실이다.      

  K는 담대하고 어른스러우면서도 또 그만큼 좋고 싫고가 분명한 칼 같은 면도 있었다. 그런데 결혼한 후에는 그런 모서리를 찾아볼 수 없이 더 둥글둥글해진 것 같았다. 자꾸 좋은 면을 보려고 해야 한다, 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찡했다. 의젓한 그녀가 존경스러워서. 그리고 내가 그러지 못해서. 

  쇠꼬챙이처럼 일일이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은 친정엄마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인데 나와 엄마의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짚은 다음 해결까지 본다는 것이고, 나는 짚긴 짚되 해결할 능력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모들은 나만 보면 우리 아무개는 너무 순수해서 탈이라며 잔뜩 오해들을 하고 계시는데 나는 그저 머리가 합리적으로 회전하지 않을 뿐이다. 문제에 맞닥뜨리면 엄마처럼 단박에 전후좌우 체계가 서는 것이 아니라 따지듯 떼만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질만 버리며 헛수고 할 때가 많고 그 과도한 삽질 덕에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 피곤하게 만들기 일쑤다.

  참 보면 볼수록, 살면 살수록 나는 외모부터 시작해서 기질까지 아빠를 빼닮았다. 그런데 타고난 것과는 별도로 딸이라서 그런지 엄마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불과 얼음이 하나의 심신에 공존하는 것처럼 어딘가 부조화스럽고 언발란스한 상태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아빠는 매사 머리 굴리는 것을 극도로 귀찮아하는 단순한 분이고 가만 보면 내 본성 역시 그렇다. 그런데 엄마가 사는 모습을 학습해왔기 때문에 그냥 좋게좋게 넘어가는 일이 없는 것이다. 내면의 갈등은 항상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K는 서슴없이 내게, 너는 딱 산후우울증 걸리기 쉬운 성격이야, 라고 말했다. 나도 엉, 맞아, 라고 인정했다. 학교 다니면서 공부만 할 때는 몰랐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상상 그 이상의 겁나먼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늘 '갈등' 중이었다. K는 어느 날 기숙사 내방에 놀러와 이런 말을 했다. 야, 너는 책은 뭐하러 읽니. 나는 그러게나 말이야, 라며 고개를 떨궜다. 시덥잖은 고민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등하던 무렵이었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다양한 입장이란 것이 생긴다. 한마디로 사는 게 피곤해진다. 그리고 사람마다 그 피곤함을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풀어낸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웃기는 사람이 있다. 짜증스런 상황도 그 사람 눈을 통하면 알콩달콩 시트콤으로 변한다. K는 조리원에 매일매일 출근도장을 찍던 시어머니와, 그런 엄마가 올케한테 흠 잡힐까봐 감시하는 시누이의 통화 내용을 배꼽 빠지게 재현해냈다. 몇년이 지난 지금도 시누이는 어머니가 가만히 집에 계신 줄로 안다고. 나라면 어땠을까. K처럼 싫은 내색 없이 시어머니 말상대 해드리며 남편을 들볶지도 않고 시누이한테는 비밀엄수하면서 둥글둥글 넘어갔을까. 오, 상상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겠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K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녀의 노고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고 해서, 겉으로 활짝 웃고 있다고 해서, 그냥 그런가보다 할만큼 먼 사이도 아니다. 그런데도 어떤 입장에 놓이건 간에 긍정할 수 있는 여유와 아량이 참 부럽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데 있어 얼마나 주체적이고, 또 구체적인가. 그에 비해 소음만 무성하고 뒷수습은 안 되는 나의 이 민폐스러운 성격이란!  

  아마도 무릎에 있는 성장판이 닫힘과 동시에 내 정신적 성장판도 닫혀버린 걸까. 나는 엄마까지 되었는데도 아직 어른이 아니다. 아기는 원래 우는거야, 라고 담담히 말하는 K와는 달리 나는 여전히 영달이가 울면 명치 끝이 메스꺼워지면서 안절부절 쩔쩔 매기 일쑤다. 안아달라고 보채는 영달이를 세워놓고 네가 자꾸 그러면 되겠냐며 따박따박 훈계도 늘어놓는다. 그러면 영달이는 자장가인줄 아는지, 들으나마나한 소리라서 무시하는 건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졸고 있다.   

  이렇듯 부실한 나를 향해 지적질을 해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부모님부터 시작해서 남편, 친구들까지 다들 나를 향해 어찌나 객관적인지 시정해야 할 점을 한눈에 콕콕 찝어낸다. 종종 듣기 싫은 것도 사실이지만 멍때리고 있는 내 코를 베어가지 않고 뒤통수를 후려치니 당시에 찔끔, 눈물만 좀 참으면 마치 개안을 하듯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이 나를 향한 따끔한 지적질을 앞으로도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으니 네가 알아서 하려니 하는 사람들만 많아질 뿐, 수고스럽게 잔소리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아쉽던 참이었다. 단, 컨디션이 안좋은날은 좀 자제해주었으면.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반항심 생기려고 한다. 

  공부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도, 어쩌면 더 큰 변화를 겪는다해도 사람은 타고난 성격대로 살아가게 되어있다. 아마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용을 써봐도 K의 시트콤 같은 일상이 나의 일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운명을 살든 귀는 열어두어야 한다. 돌아보건데, 내가 지금 이 성격에 주변 사람 말이라도 안 들었으면 말도 안되게 후진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나간 기억 중에 후지고 너절한 것들은 대개 주변 사람 말 안 듣고 나 혼자 저지른 것들이다. 팔랑귀가 되는 것만 조심한다면 귀를 기울이는 자, 복이 있으라. 그나저나 나의 이런 태도는 사는 데 자신 없는 얼치기의 변명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는 데 자신 없는 것도 사실이고 내가 얼치기인 것도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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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5-21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달이 세워놓고 니가 그러면 되겠니, 라니. 깐따삐야님, 진짜 왜이렇게 귀여운 거에요. 아. 어쩐지 나도 그럴 것 같아요. 알고보면 남일이 아니야 이거. 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영달이는 다 알아듣고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외면하는 거지.

깐따삐야 2010-05-28 15:26   좋아요 0 | URL
들은 척도 안하는데 저 혼자 그러고 있어요. 지금은 그렇다쳐도 나중에 말귀 알아듣는 나이가 되서도 그럴까봐 걱정이에요. 육아는 산넘어 산이에요.ㅠ

레와 2010-05-24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분 K님을 닮고 싶어요. ^^;

깐따삐야 2010-05-28 15:27   좋아요 0 | URL
저런 천성은 노력해서도 아니고 정말 신의 은총인 것 같죠? ^^
 

  다음 학기에 바로 복직을 할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냥 올해 말까지 쉬기로 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우리 영달이랑 함께 있고 싶었다. 아마 평생 우리가 이렇게 살을 맞대고 24시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뿐인지도 모른다. 요즘 학창시절에 외웠던 모든 노래들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클레멘타인, 아빠의 얼굴, 등대지기 등등. 살면서 그 노래들을 이렇게 하루에도 수십번씩 다시 부르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영달이는 손을 심하게 타서 안고, 흔들고, 노래 부르지 않으면 두눈을 말똥말똥, 온몸을 바둥바둥거리곤 한다. 1단계-안는다, 2단계-일어선다, 3단계-흥얼거리며 흔들어준다. 3단계까지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마치 말소리를 울음으로 대신하듯 억지 울음을 울곤 한다. 진짜 화가 나서 우는 것이 아니라 날 좀 봐주세요, 하는 호소의 울음. 그 모든 것을 받아주는 일이 내 자식이기에 가능한가 보다. 

  그런데 한창 정신없을 땐 모르다가도 영달이가 친정엄마 품에 가 있거나 조금 여유가 생기면 '나'에 관한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명치 끝이 메스꺼우면서 머리가 띵해지고 우울해지는 이상한 기분이 반복된다. 집에 와서는 잠도 잘 자고 약도 지어먹고 있는데 마음도, 몸도 아직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산후우울증을 검색해보곤 덜컥 염려가 되어서 나름 기분전환을 하려고 수다도 떨고, 시장도 보고, 책도 읽고, 영어공부도 하고... 노력은 하는데 뭐든 백일이 지나야 하는 건가. 짬만 나면 기분이 다운되어서 좀 헤매는 중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나는 아침에 보는 엄마 얼굴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엄마 얼굴이 환하게 피어 있으면 하루 종일 공부도 잘되고 기분도 좋고 엄마 얼굴이 어둡게 굳어 있으면 온종일 내 기분도 활짝 펴지지 않았다. 물론 엄마는 의식적으로라도 씩씩해 보이려고 노력하셨고, 그 또한 알고 있었지만 숨길 수 없는, 오히려 아이라서 빨리 알아채는 감정이란 것도 있다. 그 또래 아이들은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공부도 하고 상장도 타오는데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임신 기간 동안 내가 지닌 우울질의 성정이 아이한테 고스란히 전달될까봐 조금 걱정했는데 앞으로야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영달이는 백호랑이띠 아이답게 매사 화끈하고 분명하다. 이건 제 아빠도 아니고 나도 아닌데 누굴 닮은 걸까.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예민하고 우울한 엄마로부터 알게 모르게 받을 영향에 관해서이다. 나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감추거나 위장할만큼 사려깊고 의연한 사람이 못된다. 그렇게 해보려다가도 얼마 못 가거나 우스워진 적이 더 많았지 아마.  

  혼자 잠시잠깐 멍때리고 있다보면 아득하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럴수록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영달이를 찾는다. 이 작고 고운 아이는 나를 우울함으로부터 건져올리는 동시에, 그 천진함 때문에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아이가 아무런 선택의 기회 없이 나에게 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미안하다. 어쩌면 닮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그럴텐데, 좋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선택의 기회조차 없이 나와 남편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말이다. 내가 과연 영달이에게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는 밖에서는 작가로, 선생으로, 공산당원으로 치열하게 일하면서도 집에 돌아오는 순간 아이들에게 몸과 마음을 완전히 오픈한 따듯한 엄마였다. 내가 좀더 어렸던 시절에는 굳은 의지라든가, 재능, 모험심 등 니나의 다른 면들에 이끌렸지만 지금은 엄마로서의 니나, 아이들이 먼곳에서 니나에게 보냈던 편지글이 생각나곤 한다. 물론 니나는 소설 속 히로인으로 다분히 이상화된 감이 없지 않지만 나 또한 언젠가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 엄마로서 그녀가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던 일관된 애정에 감탄하게 된다. 그간의 내 행실로 볼 때 밖에서 온갖 피로와 스트레스를 주섬주섬 묻히고 돌아와 아이 앞에서 축 늘어진 어깨나 드러내지는 않을지, 그런 못난 엄마로 살지나 않을지, 걱정이 많다.    

  나 하나 믿고 세상에 나온 아이.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 스스로를 못 믿고 허둥지둥, 염려투성이인 채로 무기력하게 있으면 되겠는가. 그러고보면 과거의 나는 내가 원했던 거의 모든 일에 참 자신있는 사람이었다. 덜컥 엄마가 된, 지금과 비교하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만치 허깨비 같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끝간데없는 우울함의 정체는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함과 동시에 더 이상 오만해질 수도, 방만해질 수도 없는 새로운 역할로 인한 부담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통해서는 나도, 남편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이따금 내게 당신 많이 변했어, 라고 말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저 서로를 인정하거나 체념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고,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아마도 누구 한편이 게으르거나 오만하여 변하지 않는다면 다른 한편이 그 사람 몫까지 해내느라 두배로 힘이 들겠지.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주변의 많은 부부들이 그러한 모양새로 사는 것을 본다.   

  어쩐지 나는 그날, 마취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두번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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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4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로지 OVER THE RAINBOW 하나로 일관 중. 사운드 오브 뮤직의 MY FAVOURITE THINGS도 아주 가끔 불러주긴 합니다.
니나, 좋죠. 하루쯤 살아 본다면 아예 나와 다른 그런 여자로 살아 보고 싶었어요.

깐따삐야 2010-05-14 15:33   좋아요 0 | URL
정말 over the rainbow는 자장가로 딱이네요. 가사를 다 외우지 못하는데 한번 시도해봐야겠어요.
저도요. 극단적으로 말하지만 말고 극단적으로 살아봤음 좋겠습니다. 순간을 영원처럼 치열하게 말이죠.

비로그인 2010-05-14 15:54   좋아요 0 | URL
나 하나 믿고 세상에 나온 아이.

이 대목이 다시 눈에 밟힙니다. 그렇죠, 그렇죠? 모성은 어느 순간 불붙듯 일어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아무도 모르게 자라나는 것 같아요. 영달이는, 분명 이러한 사유를 하는 엄마를 좋아할 겁니다. 전 출산이 세상 최고의 일까지는 아니어도, 한 인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일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좋아 보여요, 깐따삐야 님.

깐따삐야 2010-05-18 11:50   좋아요 0 | URL
조금씩 조금씩 아무도 모르게. 그런가봐요. 먼저 엄마가 되신 Jude님의 댓글이 많은 위안이 됩니다.^^

나중에 영달이가 자기한테 휘둘리는 엄마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휴, 우리 엄마를 어쩌면 좋아." 어쩐지 그런 그림이 그려져요.ㅠ

레와 2010-05-14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다 커서 흥얼거리는 동요는 꼭 가사를 곱씹으며 부르게 되요.
하나같이 노랫말이 어찌나 이쁜지.^^

쏭알쏭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웃는 꽃잎마다 쏭쏭쏭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가신 하나
아기는 살짝 신 벗어 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간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가신하나.

지금도 흥얼흥얼 거리는중..^^





깐따삐야 2010-05-18 12:28   좋아요 0 | URL
옛날 동요들을 다시 불러가며 저도 레와님처럼 생각했어요. 노랫말이 참 예쁘구나. 도무지 알아듣기도 어렵고 공감도 안 가는 요즘 가요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래요.

Mephistopheles 2010-05-1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이 이제 엄마가 되셨군요..^^
갈래머리 여고생같은 이미지로 처음 만났던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깐따삐야 2010-05-18 12:31   좋아요 0 | URL
메피님, 오랜만이에요. 엄마가 된지 벌써 50일 가까이 되어간답니다. 저한테 여고생 같은 이미지가 있었나요? 이제는 진짜 아줌마에요.ㅠ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카뮈를 알게 되고 한창 좋아할 무렵, 고려대 학생들을 부러워 한 적이 있다.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수강신청을 해서 김화영 교수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 카뮈 연구를 집대성한 <문학상상력의 연구>는 딱딱한 제목과는 달리 마치 지중해의 과일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책이었다. 저자의 육성으로 책 속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내 심신은 부드러운 스폰지처럼 한 마디, 한 마디,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흡수할 것만 같았다.  

  조선일보에서 장영희 교수님의 칼럼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질투가 일었다. 서강대 영문과 학생들은 섬세하고 인간적인 에세이스트이자, 쾌활하면서도 사려 깊은 스승으로서의 장영희 선생님을 매일 만나겠구나 하고. 목발에 기댄 채 문학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지고 건강해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생님. 그곳의 학생들은 단지 지식뿐만이 아니라 삶에 임하는 자세까지 배우겠구나 싶었다.     

  이번 책은 장영희 교수님 1주기 추모 기념으로 발간된 책이다. 미발표된 수필, 저자가 좋아했던 영시와 번역, 고인을 아꼈던 이들의 추모글 등이 실렸다. 기존에 나와 있는 고인의 책들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렇듯 비슷한 느낌이어서 반갑고 가슴 뭉클해지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장영희 교수님의 아버지인 장왕록 교수님의 번역으로 나온 <달과 6펜스>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읽자마자 무작정 좋아져버린 책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부녀가 함께 찍은 사진이 몇 장 실려 있다. 세 살짜리 딸내미를 안고 다정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 함께 문학의 길을 걷고 나중에 같이 교과서를 만들게 되는 부녀. 내가 엄마가 되어서 그런가. 그 흑백사진 한장이 되게 애틋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지도교수님은 초췌한 낯빛을 감출 수 없음에도 항상 열정적인 어조와 확신에 찬 눈빛으로 문학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시곤 했다. 사석에서 어린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땐 그 어조와 눈빛에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더해져 수줍은 애정을 드러내셨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사람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진솔하고, 인간적이고, 아름답구나. (연락도 하고 찾아가고도 싶은데 아, 내가 좀 많이 변했다. 살도 빼야 하고!)

  언젠가 <위대한 개츠비>의 리뷰를 쓰며 개츠비의 위대함은 시대착오성에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 책에서 개츠비의 위대함을 아주 제대로 알았다. 저자 피츠제럴드가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를 꼭 집어서 말한 적이 있단다. '희망을 가질 줄 아는 비상한 재능, 낭만적 준비성, 그리고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 extraordinary gift for hope, a romantic readiness, capacity for wonder'(p.166) 이라고. 역시 개츠비는 시대착오적이다. 더불어 그는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인 주인공이다. 장영희 교수님의 삶과 글 또한 그러하다.  

  모처럼 이렇듯 진실한 사람, 착한 글을 만나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슬프다.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될까봐서 매번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고 싶은대로 사는 것이 곧 나의 길이 되면 좋으련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마음 지키며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이미 내 서정은 많이 말라버렸다. 언젠가 슬프지도 않게 된다면 그것이 더 불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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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5-1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문학의 숲을 거닐다였나, 내생애 단한번이었나, 를 읽으면서 서강대 영문과 학생들을 정말 부러워했었어요. 게다가 저 아는 분은 실제로 서강대 영문과 출신이어서, 장영희 선생님께 수업을 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저도 좋은 선생님들한테 배웠으면서, 또 이럴 땐 남의 떡이 커보여요.

그래도, 깐따삐야님은 스스로를 잘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인걸요. 이제 영달이가 깐따삐야님께 더 많은 희노애락을 선사해주지 않겠어요? 서정이 말라버리는 일은 없을 거에요. ^-^

깐따삐야 2010-05-14 15:0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 역시 좋은 선생님들한테 배웠으면서 항상 남의 떡이 커보인다죠.

웬디양님, 그나저나 몸은 많이 좋아진 거에요? 그새 봄이 다 가고 여름이 오려나봐요. 우리가 봄에 만나서 그런가. 나는 항상 훤칠하고 싱그런 봄처녀로 웬디양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의 만남도 참 '서정적'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