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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김용택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첫 발령을 받아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올해 스무 살이 되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이 미니홈피 방명록에 흔적들을 남기고 갔다. 대학에 간 아이도 있고 취직을 한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이름을 기억하냐고 물었고 발령 첫해 만났던 특별한 아이들이라 그런지 얼굴과 이름이 고스란히 매치되어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당시의 나는 노하우는커녕 정열만 넘치는 어리석은 교사였고 아이들은 젊고 어설펐던 내게 매 순간 희비가 엇갈리는 다이나믹한 하루를 선물하곤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와 어지럼증까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그 마음, 그 시간으로 돌이키기 힘든 추억이다.
이 책은 교단을 떠난 김용택 시인이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엮은 에세이집이자 작가 자신의 인생론과 시론을 담은 명상록이기도 하다. 특히 섬진강 아이들과의 추억이 강물처럼 반짝인다. 출산을 이유로 벌써 몇 개월째 교단을 떠나 있지만 나 역시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면 저절로 시선이 가곤 한다. 말쑥한 교복을 입고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이 정신 못 차리는 계절과는 별도로 싱그러운 기분이 들곤 한다. 그들은 때로 온갖 악행과 거짓말로 교사를 절망시키기도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시절을 지나왔고, 굳이 언론에서 콕 짚어주지 않더라도 어른들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그나마 김용택 시인의 아이들은 아름다운 섬진강에서, 소수정예로, 훌륭한 시인 선생님까지 두었으니 축복받은 셈이다. 똑같은 한부모가정, 조손가정이라 하더라도 시골 아이들에 비하여 도시 아이들은 가난과 결핍감을 더 크게,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자연은 공평하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책에는 짤막한 단상부터 날카로운 교육론, 시인으로 살게 된 운명 등 다양한 글이 실려 있는데 함께 실린 삽화 또한 눈길을 끈다. 글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나름의 메시지와 여운을 남기는 좋은 그림들이다. 박수근이나 이철수의 작품처럼 단순하고 친근한 그림들이 호젓하고도 정감 어린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사느라 눈빛에 날이 서고 마음은 퍽퍽해질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글 한 줄 읽고, 그림 한 편 보고 그러면 좋을 것 같다.
꽃 핀 운동장에 햇살이 좋다.
살 내놓은 아이들이 튀는 햇살을 차며 뛰논다. 눈부시다.
아름다우면 배고프다. 피는 꽃 보면 배고프다.
지는 꽃 보면 더 그런다.
내 오래된 허기다.
아이들이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따라다닌다. 가벼이 떠서 나는 나비떼 같다.
저 오래된 인류의 희망, 꽃 이파리들이 하얗게 굴러가는,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 -p.203
머잖아 운동장에 화사한 봄볕이 내리고 나비떼 같은 아이들이 하얀 꽃잎 사이를 날아다니겠다. 험한 일들이 많은 요즘, 시인의 눈빛과 마음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