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라는 영화 외에 몇 편을 더 보았고 권여선의 소설들을 모조리 읽어치웠으나,
담배를 배워보고 싶단 생각, 이렇듯 정공법으로 써나간 소설만 읽어도 될까 싶은 사소한 갈등 뿐.
마음 잡고 리뷰를 쓰진 못하겠다.

요즘의 내 언어들은 여름 날씨와 닮아 있다.
쨍긋하며 해가 반짝 들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굵다란 집중호우와 천둥번개가 사방을 막아서는가 하면,
거실의 불을 켜고 커피를 끓일 때 즈음이면 다시 차오르는 햇살과 엄습해오는 더위에 슬며시 약이 오른다.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도 그랬겠지 싶다.
그럼에도 나는 기어이 마음대로 오락가락 할 수 있는 날씨가 부럽다고 말한다.
아무런 변명도 필요 없이 사람들은 알아서 적응해 주니까.
나는 미안해 하는 대신,
더욱 자유롭게 횡포를 부리지 못해 이젠 날씨마저 우러러 본다.

모두 접었다.
나를 향한 것이든, 내가 향해가던 것이든.
사실 칼자루는 내게 있었다.
그러나 날카로운 칼날의 방향을 내게로 맞췄다.
이젠 마음의 통각마저 무뎌진걸까.
불필요하다, 는 차가운 결론 앞에서 마냥 담담하다.
 
회화 수업 중에 동갑내기 남자와 본의 아니게 격론을 벌였다.
independent mate와 dependent mate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가 가진 이기적인 이중잣대를 반박하기 시작했고 그는 같은 클래스의 다른 남성 멤버들의 도움에 힘입어 공박에 나섰다.
마냥 해사한 미소만 짓고 있던 다른 여성 멤버들과 내 눈길이 마주쳤고, 그들은 공격에 나선 남성들 만큼이나 내게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내가 뭔가 실수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학부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후로 안드레아라는 영국인 강사는 내게 revolution girl이라는, 내 외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리고는 생긴 것만 멀끔할 뿐, 수줍음 많고 소심했던 한 남학우와 나를 엮어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도서관 휴게실에서 내게 안녕~ 하고는 얼굴이 벌개지며 서둘러 사라지던 그를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저 오빠 귀엽다, 고 말하는 앞에서 나는 낮게 뇌까렸다.
남자가 샤프하면서도 적극적인 구석이 있어야지... 저걸 어따 써...

원어민 강사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어서 I'm sorry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그 남자의 독선도 나만큼이나 질겼고,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뇌까렸다. 
지 무덤을 지가 파네... 저걸 어따 써...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하염없이 생글거리면서 넌 어쩜... 이라며 거의 체념하다시피 말하는 그에게,
Don't say something in Korean! 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나란 인간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구나.
내 무덤을 내가 파네... 이걸 어따 써...

극단과 극단만을 오가는 내 마음의 괘종시계.
늘 한가운데에 멈춰있게끔 배터리라도 제거하든가.
결국 칼자루를 손에 쥐고도 마늘 한쪽 잘라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찌르는 것처럼,
판단유보를 감당하지 못하는 성급한 독단은 희화화되기 밖에 더하겠는가.  

오늘 아껴두었던 장미차의 유통기한이 지나버렸다는 걸 발견했다.
선물받은 이 차를 마시려고 포장도 뜯지 않은 찻잔을 꺼내놓기도 했다는 게 웃음만 난다.
타이밍을 잃고 추억으로 화한 기억처럼,
유리병 안의 장미봉오리들, 이젠 그저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은 그냥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하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누군가, 그 사람이 의식하고 있는 상대보다 우위를 점하고픈 의지에서,
교묘한 자기합리화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는 식상한 비유를 굳이 갖다대지 않더라도 알아볼 사람은 다 알아보게 되어있다.
당신의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의도가 무엇인지. 

때때로 스스로와 상대를 속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이라지만 오늘 문득 돌아보고 싶다.
인간의 유치함과 비겁함에 대해.
왜 그것을 위태로운 독선으로 치장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하늘이 또 다시 꺼져간다...
컴퓨터를 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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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0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볼루션 걸이 휘두르는 혁명의 칼날....꽤나 날카롭겠죠? ^^

비로그인 2007-08-0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또래의 심성에 신경이 쓰일 때가 좋은 시절이던데요.
젊다는 것이거든요. 하하
깐따삐야님, 좀더 평안하시기를

sretre7 2007-08-05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간만에 글을 올리셨군요..^^ 더운 여름 잘 보내세용..가을이 멀지 않았습니다

깐따삐야 2007-08-05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렇게 대단치도 않습니다.ㅋㅋ

한사님, 제 나이에 걸맞는 격을 갖추고 싶어요. 고맙습니다.^^

sretre7님, 오랜만이에요. 가을이 머지 않았다는 말이 조금 위안이 됩니다.^^
 

학원을 나서는데 그가 서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 상황 자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비가 마구 쏟아지고 있었고,
빨간 우산을 내미는데 속으로 조금 감동했다.
그는 던킨도너츠에서 산 쵸코렛과 음료수를 주었고,
고마웠지만 바로 쳐다볼 수는 없어 눈을 피했다.

그가 내 마음에 들었다면,
나는 집에 좀더 늦게 오는 대신 어디라도 들어가 그와 이야길 나누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있기 위해서.
하지만 나는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이 우산 집에 가져가면 곤란한데, 라는 서운한 말만 남긴 채.

그는 참 좋은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대신, 너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게 넌 날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네가 좋다고 말한다.
너를 좋아하게 되면서 담배만 늘었어.
그 하소연을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항상 더 많이 사랑해 왔다고 믿었던 나는,
누군가 나를 많이 위해주고 아껴주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마치 천사라도 된냥, 내게 베풀기만 하면서도 내게서 돌려받는 것은 투정과 신경질 뿐인 남자가 등장했고,
그의 출현이 황송하면서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찝찝하고 불편한 건 왜일까.

나는 메리도 아닌데 그는 내겐 특별한 뭔가가 있다고 말했고,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열심히 살아온 것에 비해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해 땡깡만 부려대는 꼬맹이라면서,
왜 그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냐며 오빠처럼 굴었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를 통찰해 준 것이 고마우면서도,
성실한 애정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나는 어째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긴 시간 곁에서 나를 보아온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엄살이 심할 뿐, 이상만 더럽게 높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건네는 모든 것들이
그의 마음 같아서,
받아드는 내 폼이 주춤거리고 어색하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내가 싫고,
그 모습에 서운해 할 그의 눈빛을 피하는 일도 버겁다.
네 마음이니 내 알바 아니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그는 나란 사람이, 마구 내뱉어대는 독설 이면에 한없이 물렁한 내면을 숨긴 갑각류라는 것 마저도 아는 사람이다.
너는 곧 내게서 도망치게 될거야, 내가 얼마나 시커멓고 우울한 사람인지 안다면.
내쳐도 내쳐지지 않으니 알아서 나가 떨어지게 되리라는 주문이었지만,
저런 말에 좌절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탄력을 받아 더욱 최선을 다하는 인간도 있다는 걸,
그가 후자일 확률이 높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너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노력해도 소용 없어.
그 말을 하다가 밀양의 한 장면이 떠올라 속으로 흠칫했다.
하지만 난 전도연이 아니고 그는 송강호도 아니니까.

내가 마음에 둔 남자는,
곧 보러오겠다는 기약 없는 연락 뿐이고
나를 마음에 둔 그 남자는,
허탕을 치더라도 근처에서 서성댄다.
그리고 나는,
늦게 결혼해야 할 것 같다는... 생뚱맞은 결론을 내린다.
수많은 인연을 거치고 또 거친 후에야 '그'를 만날 것 같은 힘겨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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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7-0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가 그가 아님이 애석하고 아쉬울 뿐이군요..^^
나머지는 노코멘트..^^

깐따삐야 2007-07-1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이럴 땐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등의 말이 하나도 재수없게 들리지 않습니다.^^
 

장마철이라더니 오는 둥 마는 둥 내리는 빗속을 걸으며 친구를 만나러 갔다.

태우러 오겠다는 친구에게 걷는 게 좋다고 말했는데 이런, 중간에 우산이 고장나 버렸다.

하필 그 시점에서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고 순간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올케언니가 쓰라고 선물한 우산인데 무늬며 색깔이 예뻐서 좋아라 했지만 한 일 년이나 썼나.  

인도 한복판에서 우산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눈길을 피해 최대한 얼굴을 가리고 그 동작을 반복했다.

차츰 머리에서 식은땀이 날 무렵, 시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고 내가 건물 정문이 아니라 옆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타고난 길치이며 방향치인 나에겐 너무나도 비일비재한 일이라 서로 대수롭잖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저 쪽에서 친구의 모습이 보였고 고장난 우산을 접어든 나는 쪼루루 친구에게 달려갔다.

보자마자 나보고 얼굴이 반쪽이란다. 공부하기 힘드냐면서.

화사한 원피스와 꽃장식 샌들을 신은 친구에게선 여성미가 물씬 풍겼다.

둔탱이인 나도 필시 뭔 좋은 일이 있는 것이여, 직감했다.

해물탕을 먹고 친구가 사는 아파트로 갔다.

넓은 평수는 아닌데 혼자 살기엔 대궐 같았다.

그녀에게 생긴 좋은 일이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온 집안이 선물의 도가니탕이란 것.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야, 이거 초상화 아냐. 그 분이 직접 그린거야??

아녀, 후배가 내 사진 보고 그린 거라던데.

우아, 좋겠다... 멋지다...

뭘, 나랑 하나도 안 닮았구만.

야, 이건 사진이야, 그림이야? 연필이야, 목탄이야?? 근사하당...

뭘, 사진기가 좋은 게지.

왠 꽃다발이 세 개나 있어? 다 그 분이 준거야? 그럼 꽃병에 꽂아야지.

뭘, 꽃병 같은 게 어딨어. 지가 알아서 마르겄지.

6개월 정도 만났으면 지금이 한참 좋을 때 아냐? 부럽다...

뭘, 삼 년 넘게 만나도 그냥 그런 사람들도 많더만.

대략 위와 같은 패턴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두 사람은 다섯 살이란 터울에도 불구하고 서로 꼬박꼬박 극존칭을 쓰고 있었고, 좁혀지지 않는 거리 때문에 남자 편에서 다소 안달하는 모양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그 분을 아저씨라 부르고 그 분은 그녀를 00씨라고 부른단다.

건전무쌍하다 못해, 근래 들어 보기 드문 참으로 기묘한 커플이었다.

원래 느긋한 친구였다.

뭔가 하나 일이 생기면 그 일이 끝날 때까지 안달복달하고 주변사람까지 달달 볶아대는 나에 비해, 그녀는 뭔가 중대한 일이 발생해도 잠깐 고민하는 듯 싶다가 어느 새 드르렁드르렁 코를 곯아버리는 식이었다.

배포가 크고 듬직한 그녀와 여리고 소심한 나는 그런데로 궁합이 잘 맞았다.

물론 긴 우정을 쌓아오는 동안 갈등이 없지야 않았지만 인연이 되려는 모양인지, 틀어진 다음에도 서로를 놓지 못했다.

늘 콩닥거리는 가슴을 주체 못하는 나야 크고 작은 연애비화들이 많았지만, 왠만한 남자 정도는 같잖게 여기던 그녀에게 남친이 생겼다는 건 뉴스 중의 뉴스였다.

가만 이야길 들어보니 남자 분이 다정다감하고 애교가 많은 타입인 것 같았다.

아저씨를 만나도 설레지도 않고 이런 건 사랑이 아닌 것 같다고, 그만두자는 식으로 말했더니 남자 분이 크게 웃더란다.

사랑이란 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면서 이후에 더 지극정성으로 잘해주더란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아프면 죽 사서 현관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고 오로지 최고급 유기농 과일만을 엄선해서 대령하는.

그녀는 이게 꼬시려는 건지, 진심인지가 헷갈린다고 하는데 엄마한테 평소 들어오던 말을 전했다.

야, 우리 아빠도 처음에 엄마 만날 땐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대. 어차피 결혼해서 세월 지나면 남자는 열이면 열, 다 변한다는데 기왕 변할거면, 처음에라도 잘해주는 남자가 낫지 않을까?

그녀는 조만간 커플 동반으로 우리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 엄마의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싶다고.

특출한 관심법으로 딸내미와 엮이는 남자들을 모조리 재단하고 있는 우리 엄마라면, 보나마나 그녀가 아깝다고 할 것이지만.

팔이 심하게 안으로 굽는 나도 그녀가 더더더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그래도 일생의 첫 연애인데 다정하고 배려심 있는 남자를 만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돌아와서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혼자 객지에 나와 있어서 외로워서 더 흔들릴 수도 있는거다, 결정을 내리기엔 뭔가 아쉬운 게 있으니 마음이 확 동하지 않는 거라면서 역시나... 남자를 보나마나 그녀가 아깝다는 결론을 내리셨다.

바보 소리 듣는 찌질이 같은 연애만 해온 나나 연애경험이 전무후무한 그녀나 우리에게 사랑의 자발성, 연애의 자율성이란 게 과연 있기는 있는 건가 싶다.

우리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둘 다 참 겁이 많은 것 같다.

항상 누군가를 만나면서도 마음 한 귀퉁이를 꼭 붙잡은 채, 전부를 내어준 적이 없는 나나 본인의 마음을 잘 몰라서 참고인들의 의견에 경청하고 있는 그녀나, 우리는 올인다운 올인을 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여차저차 하다가 타이밍 맞춰 나타나는 사람과 맺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녀는 나처럼 파견으로 대학원에 오고싶다고 했고 담임도 안식년이 필요하다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고3 담임을 맡은 그녀는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체력이 바닥날 지경이란다.

교단에선 젊은 게 죄다, 너도 이제 좀 숨돌릴 때 되었어... 남겨두었던 수험자료를 모두 넘겨주기로 했고 도울 게 있으면 돕겠다고 말했다.

나는 연애하는 그녀를 부러워하며, 그녀는 공부하는 나를 부러워하며, 각자의 일상에 최선을 다하기로 부추겨준 다음 헤어졌다.

선머슴처럼 까칠하게 캠퍼스를 누비던 우리는 어느새 서로의 귓볼에서 반짝이는 귀걸이를 흘끔거리는 숙녀(?)가 되었다.

사는 데엔 나름 열심이어도 여전히 남자, 하면 해저2만리요, 연애, 하면 겁나먼왕국인 숙맥들이지만 이 모든 것이 성숙의 한 과정이라면 우리도 언젠가는 사랑과 연애에서도 건강한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도 완벽한 인생, 완전한 성숙이란 없겠지만 어차피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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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25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 지나면 남자는 열이면 열, 다 변한다는데 기왕 변할거면, 처음에라도 잘해주는 남자가 낫지 않을까?"
남자들이 다 그렇지 않답니다. 하하


Mephistopheles 2007-06-2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다정하고 배려심 많은 남자가 상처를 의외로 많이 받는다니까요..
(친구분과의 대화에서..그냥 자켄과 셋쇼마루가 연상되버렸습니다.)

깐따삐야 2007-06-25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왜 제 주변엔 그런 남자들만 있어가지구 못된 편견을 갖게 했을까용...ㅜ.ㅜ

메피스토님, 메피스토님 같은 네추럴 본 마당쇠는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요.
 

뜸하던 사이에 알라딘 서재가 모양새를 바꾸었다.

네이버블로그 같기도 하고 교보북로그 같기도 하다.

왠지 2.0이라고 하니깐 이 곳에 늘어놓는 내 일상마저 2.0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그런데 왜 꼭 바꿨어야만 하는가.

알라딘 어딘가를 찾아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귀찮다.

적응력이 부실한 나는 주춤거리고 흘깃대며 새로운 스킨을 깔고 츠지 히토나리의 글도 찾아서 걸어봤지만, 역시나 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마냥 무난한 변화.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비좁고... 갑갑하고... 낯설기 짝이 없는 느낌은 뭐지.

어쨌든 이제부턴 이 방에서 놀라고 하니 그러는 수 밖에. 

이제 수요일에 프리젠테이션 하나를 마치면 드디어 종강이다.

고작 9학점 들었고 과제물도 많은 것은 아니었으나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랴, 새로운 얼굴들과 마주하랴, 연구하랴(?)... 나름 긴장된 한 학기를 보냈다.

물론 학교 나가는 이틀 긴장하고, 나머지는 식빵에 잼 발라먹으며 공상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우리의 네추럴 본 신비주의, 미모의 지도교수님께도 방학 잘 보내시라고 인사도 다녀왔고 발표만 하나 마치면 정말 한 학기 끝!

발제문은 시간 관계 상 간단하게 요약해서 정리했다.

사실은 준비할 시간도, 발표할 시간도 넉넉한데 길게 쓸 여력이 안 됐다.

올 여름은 열심히 공부하며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물론 마음만 먹었다. 일단.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기 전에 준비할 게 많다. 

쓰기 전에 무지하게 읽어야 하고, 읽기 전에는 그 읽을거리들을 엄선해야 한다.

학교에 있을 땐 원어민 교사가 있어서 자연 회화 연습이 되었는데 대학원에 온 뒤로는 여의치 않아서 학원에 다닐까도 생각 중이다.

날이 너무 덥지 않니... 엄살을 부리다가 겨울엔 날이 너무 춥지 않니... 라고 할 생각에 날씨가 무슨 상관이니... 로 마음을 오지게 바꿔먹었다.

땡볕 아래서 토론할 것도 아니고 요즘 어학원 시설이 얼마나 럭셔리한데. 암~

H는 교수님 따라서 학회에 참가하느라 동남아에도 다녀왔는데, 어찌나 잘먹었던지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나 늘었다는데, 우리 미모의 교수님은 우리 데리고 학회 안 가시나.  

우루과이나 카자흐스탄, 뭐 그런 데도 좋은데.

염불보단 잿밥에 관심이 많으니 도통 자세가 틀려먹었다!

공부하자... 성실하게.

2.0으로 업그레이드 된 일상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겠다.

공부해서 남 주는 직업이니, 더욱 더 열심히!

집에 손님이 오면 평소에 먹던 것보다 더 좋은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가.  

엄마 곁에서 더 크고 좋은 건, 나 달라고 땡깡 부리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오른다.

넌 이제 어른이야. 잘하라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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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7-06-1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깐따비야님..^^*


Mephistopheles 2007-06-1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업그래이드 되는 삶을 유지시길 기원해 드릴께요..^^

비로그인 2007-06-19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낯설어요. 적응하려면 적어도 천 일은 있어야 해요.

깐따삐야 2007-06-1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와님, 잘 지내시죠? ^^

메피스토펠레스님, 제가 아는 메피스토님 맞나요? ㅋㅋ

Jude님, 에구... Jude님도 그러셨구나. 적응 좀 될만하면 또 3.0이 나오는 건 아닌지;;

Mephistopheles 2007-06-19 18:46   좋아요 0 | URL
예 그놈이 그놈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되 리뷰를 쓰긴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운 것은 내가 아니라 전도연인데 한참을 울고 난 것처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고 가슴이 먹먹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밀양 또한 널널한 마음으로 편한히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익살맞고 넉살좋은 송강호를 보면서 쿡쿡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이제 그런 케릭터들에게조차 어째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남편의 외도와 죽음, 유괴 당한 아이의 죽음... 신애(전도연 분)의 불운은 계속된다. 특별히 살아오면서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괴상망측한 성품을 가진 것도 아닌데 남들에게는 한 두 번 일어날까 말까한 불행들이 그녀에겐 연달아 들이닥친다.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라는 질문을 떨칠 수가 없었고 그녀가 어떤 면에서 성격비극에 나오는 주인공 같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에 대한 꿈을 포기한 채 남자를 믿고 일찍 결혼한 실수, 은밀하게 숨어있으리라는 희망을 믿고 생면부지의 사람들만 모여있는 밀양으로 옮겨온 실수, 만만히 보이지 않기 위해 없는 돈을 있는 척한 실수, 얼른 들어오라는 아들의 전화를 대수롭잖게 여기고 늦게 들어온 실수, 용서와 구원에 대해 너무 쉽고도 빠르게 스스로의 능력을 믿어버린 실수... 어찌 보면 그녀는 실수투성이 여자였다. 그녀에게 부족한 건 솔직함, 그녀에게 필요한 건 기다림, 이란 생각이 들었다. 

  배신한 남편은 미워해야 마땅하고 그의 고향까지 증오하는 게 당연하다. 밀양은 종찬(송강호 분)의 말맞다나 그저 다른 데와 똑같은 사람 사는 곳이지 숨어 있는 빛, 따위는 없는 곳이다. 남편을 사고로 잃은 미망인이 낯선 땅에 들어와 돈 자랑을 하는 허영은 날 잡아잡수,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신애는 아들 준 앞에서 아빠의 배신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더 나았다.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이 그녀 곁을 지나칠 때 얼른 고개를 떨구며 외면해 버리는 신애의 모습은 고통을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못하는 나약함을 드러낸다. 처음 만나는 옷가게 주인에게 인테리어를 바꾸면 장사가 더 잘될 거라고 충고하는 그녀는, 뭇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역시 서울 여자고 피아노 치는 여자라 고상해, 가 아니라 생긴 건 멀쩡한데 어딘가 좀 이상해, 정도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신애는 의미를 찾아 불행을 합리화하며 고상을 떨지만 그 고상함 덕분에 스스로는 고생에 빠지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손목을 긋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신애, 미장원에서 유괴범의 딸과 맞닥뜨리자 신경질을 부려대며 미장원을 뛰쳐나온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종찬에게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냐며 버럭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한 쪽만 껑충 올라간 머리결을 바람에 날리며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활보하며 집에 오자 스스로 썩둑썩둑 가위질을 한다. 영화는 끝나가고 그 즈음에야 신애의 하늘색 원피스와 풀어헤친 머리칼처럼 그녀가 드디어 자유를 얻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너나 나나 그다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세상은 가도가도 별 수 없고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냐는 것. 감독은 결국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쉽게 용서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위선, 하느님에게 나 좀 봐라 하는 식으로 도둑질을 하고 유부남을 유혹하는 위악, 어쩌면 남들보다 순수하고 예민한 탓에 극단에 극단을 내달리지만 신애는 내 모습이기도 했고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기도 했다.   

  마치 언저리 뉴스마냥 심심하게 신애 곁을 맴맴 도는 종찬은 이웃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평범한 케릭터이다. 아니, 오히려 평범하기에 요즘은 더 찾기 힘들어진 그런 인물. 전도연이 연기를 잘하는 것이야 설탕이 달거나 소금이 짠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것이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송강호에게 따로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물 같은 배우란 느낌. 대단히 머리 좋고 성실한. 어깨에 힘주는 장동건, 눈동자에 힘들어가는 설경구, 목소리에 힘 싣는 최민수들에게 이렇게 힘 하나 안 들이고도 강력한 포스를 발휘하는, 그야말로 secret sunshine 같은 송강호의 반짝이는 가치를 배우라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언뜻 무애무덕한 평범한 케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종찬은 송강호의 연기를 통해 빛을 발했다. 매사를 웃어넘길 줄 아는,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웃어넘길 줄 아는 배포 있는 농담, 차가움 이면에 가려진 따듯한 빛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곤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진득하니 노력할 줄 아는 성실성, 묵은 머리카락, 오래된 과거를 잘라내는 여자를 위해 선뜻 거울을 비춰줄 수 있는 배려, 그러한 소박한 미덕들을 갖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종찬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인간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반쯤 미쳐가는 신애 곁에서 그녀를 변함없이 아껴주었다. 그와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기에 종찬의 노력은 실수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되든 아마 그는 다시 웃을 것이다.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웃어넘기면서. 희망을 품고 밀양을 찾는 이들에게 사람 사는 데야 다 똑같죠 뭐, 라고 이야기 하면서. 신애는 운명에 끌려다녔고 종찬은 신애에게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신애는 종찬이 들어주는 거울 앞에 앉았다.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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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6-0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도연의 수상소감이 생각나네요..
강호오빠가 받쳐줬기에 지금의 이 자리에 있다는 내용이요..^^
송강호씨의 연기는 초록물고기보다 넘버3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어요..
어찌보면 그의 히트작이였죠..그런데 몇편의 영화를 더보니 양파같은 기질이
다분한 배우같더라구요...껍데기를 벗겨도 계속해서 다른 껍데기가 나오는...^^

깐따삐야 2007-06-02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전도연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임에는 틀림없지만 가끔 감정 배분에 있어서 아주 미세하나마 위태위태한 면이 엿보이는데 아무래도 여자라는 성별 때문이라면 편견일까요. 아무튼 그런 부족한 점은 시야가 넓고 해석력이 좋은 송강호에게 두고두고 배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 송강호. 정말 최고입니다.^^

프레이야 2007-06-0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깐따삐야님, 종찬이 들어주는 거울의 의미, 인상 깊어요.
이 영화 보고 나서 벌레이야기를 읽었어요. 책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어요. 영화에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음이 강조되지만
책에선 사랑하기 위해 살아야함을 강조했어요. 정말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을 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싯구절처럼..

깐따삐야 2007-06-03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그렇죠. 사랑을 받으려고 들면 항상 궁핍감에 시달리고, 사랑을 하려고 들면 한없이 충만해지는 마음. 그렇듯 삶이 종교가 되어야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 걸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봄봄 2007-06-04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포스터 맘에 드네요..글도 좋으네요^^ 전도연의 위태위태는 그녀의 불안한 삶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구도적으로는 영화를 그녀가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구요, 그 전체적인 틀을 송강호가 탄탄하게(그리고 티 안나게^^) 잘 받쳐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들이 각자 다른 곳에 끌려다녔더라고 그녀는 이제 거울을 들고 있는 이 남자 앞에서 조용히 거부하지 않으며 머리를 자릅니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듯..
저는 이 영화가 하나의 텍스트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지 처럼 그냥 특별할 것 없는 것을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별 얘기 없는 것 같은데 다 똑같은 얘기같은데 삶 전체를 아우러버리는, 그래서 결코 단순하지마는 않는, 그래서 머리속이 징징거리는, 너무 많은 해석들이 나올법한 영화였습니다.

깐따삐야 2007-06-0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봄님, 아... 보기 좋게 정리를 해주셨네요. 징징거리는, 참 적확한 표현이에요. 저 포스터를 올리면서 송강호가 빠진 것에 대해서 좀 아쉬웠더랬죠.^^

생각중 2007-06-07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양...

감독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착각이라는 화두를 던진건 아닐까..

용서한 적이 없는데 용서 받았다고 믿는 범인... 화해도 없이 용서하러 가는 피해자...

이런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감독의 높은 경지의 감수성이 그려낸 영화라고 본다.

신앙인에게는... 어쩌면... 평생토록.. 착각의 신앙속에서 죽을때까지 깨닫지 못할 중요한 실수에 대해

던진 메시지이며.. 사회에는...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이기심의 분쟁에 대해 던진 메시지라고 본다.

자극과 반응사이엔 공간이 있듯이 상처와 용서 사이엔 화해가 있어야 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주어진 공간... 신이 인간에게만 내리신 특혜의 시간이다!

참 많은 생각을 남긴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수많은 관계속에서 무슨 착각을 하는지 점검해봐야 겠다.

 

 


깐따삐야 2007-06-15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중님, 자극과 반응 사이에 주어진 공간... 신이 인간에게만 내리신 특혜의 시간이라는 말씀, 흥미롭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영화도 참 드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