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자정을 넘기자마자 부르르 진동 소리와 함께 울리던 휴대폰. 예약 문자로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였다. 갑자기 얼굴에 화악 열이 올랐다. 예전에 예약 문자를 보낼 거라는 말을 언뜻 비쳤던 기억이 났다. 다 끝난 마당에, 그것도 생일도 아닌 날 받아야만 하는 축하 메시지라니. 참 생뚱맞고 어이없고 짜증났다. 그리고 왠지 괘씸했다. 지는 낭만이어도 나는 고통인 것을. 나처럼 예약 문자에 대해 관심도 없고 어떻게 보내는 지도 모르는 착한 사람과 사귀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친구가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 그 친구가 영양사로 일하는 학교의 수학선생님인데 한 일 년 지켜보아온 바에 따르면 꽤 괜찮은 사람이라나. 훈남 기근 현상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던 중이라 흔쾌히 소개팅을 수락했다. 수학에 대한 무지몽매함이 긍정적 반응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친구는 주말 즈음으로 날짜를 잡는 게 어떻겠냐고 했고 둘의 만남이 현실화되어 가는 듯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박 뭐시기 선생이 천천히 이메일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면 어떻겠냐고 했단다. 먼저 소개시켜 달라고 할 땐 언제고 이메일은 뭐여... 싶었지만 수학에 젬병인 나는 왠지 그 쪽의 말이 합당하고 신중하게 들렸다.
그런데 줄곧 깜깜무소식이더니 며칠 전 날아온 메일. 사귀던 여자친구와 6개월 전에 헤어졌는데 막상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려 하니 자신이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자신의 아픈 마음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심경을 간곡히 토로하고 있었다. 내가 왜 생전 알지도 못했던 남자의 이런 상투적이고 신파스런 넋두리를 읽어주셔야 하는 건지. 그럼 애초에 소개시켜 달란 말 따위를 하지 말던가. 누가 자기 하나 때문에 목매고 앉아 계신 줄 아나보다. 기분이 팍, 상하면서 또 한 번 얼굴에 화악 열이 올랐다.
예전에 속 없고 맹했던, 지금도 곧잘 속리산 맑은물이란 소리를 듣긴 하지만, 아무튼 옛날의 나였다면 함께 가슴 아파하면서 정말 순수한 사람이구나... 감탄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순수하고 진실하니까 저런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간단하게 거절하면 될 일을 가지고 저런 식의 구구절절함까지 내비칠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다. 기분이 몹시 상해서 친구에게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있었는데 진행 상황이 궁금했는지 말을 걸어온 친구, 이야기를 듣더니 황당해 한다. 그렇게 한참을 같이 황당해 하고 있었는데 문득 친구란 계집애가 하는 말. 근데 너가 좀 지랄맞으니까 남자는 저래도 좋지 않냐? 좋으면 너나 가져.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약하고 여려터진데. 우리가 너무 오래 떨어져 지내다 보니 네가 날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못을 박아준 다음 다시 기분이 상해서 대화를 맺었다.
뷁, 이란 말이 순식간에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