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동아리 활동 무렵 ‘시계’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외할머니와 외사촌 동생, 그러니까 지금의 S옹주가 함께 노는 모습을 보면서 쓴 시였다. 일곱 살 꼬마와 칠십대 노인은 종종 사소한 먹을 것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가끔은 S옹주가 더 어른스럽게 할머니에게 사물의 이모저모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물리적인 외양의 차이일 뿐 당시 두 사람의 시계는 같은 시각을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총기가 넘쳤던 할머니도 세월이 흐르니 아이 같아졌고 할머니가 노쇠해지면 노쇠해질수록 S옹주는 총명하게 자라났다. 몇 년 전 외할머니는 돌아가셨고 S옹주는 그새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내 시를 본 선배들은 모티브가 좋다는 평을 하며 그러한 일상 속 관찰이 깊은 통찰로 나아가기를 바랐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갓난아이로 태어나 기억과 오감을 잃은 채 죽어가는 인간의 삶이란 대개 비슷하다. 그렇듯 누구나 젊고 무지한 상태로 생을 출발하여 노쇠하고 반쯤 도통한 상태로 마감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육체 연령과 정신 연령이 반비례하는 이상한 남자의 일대기를 보여준다. 주인공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 분)은 병약한 노인의 육체로 태어나 근처 양로원에 버려진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통보를 듣고 양로원에서는 그저 일상일 뿐인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차례차례 목도한다. 삶을 알기 이전에 죽음부터 보았기 때문일까. 육체와 정신의 불균형에도 벤자민은 별다른 번민 없이 내내 담담하고 침착하다.

  다만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예고 없는 운명과 맞닥뜨렸을 때, 나와 연인의 시계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시간을 붙잡을 수 없는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벤자민에게 대처란 없었다. 그는 데이지(케이트 블랑쉐 분)와의 사랑을 피하지 않는다. 육체와 정신의 갭에도 불구하고 모르면 모르는 만큼, 알면 아는 만큼 본인의 현재 상태에 충실한 채로 그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각자 무르익은 젊음의 정각에 닿아 정점에 이른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벤자민은 데이지와 딸의 안정된 삶을 위해 조용히 떠나는데...

  긴 러닝타임 동안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의 모습에 감탄하고, 몇 차례 허리가 아파 몸을 뒤척거리기도 하고, 케이트 블랑쉐가 브래드 피트보다 얼굴이 큰 것 같다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일곱 번 번개를 맞았다는 할아버지의 넋두리에 쿡쿡대기도 하면서, 이 겁나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생각을 많이 했다. 기대가 컸던 영화인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특별한 교훈은 모르겠고 그저 남들처럼, 세월 따라 늙어가는 것이 최선이구나 싶었더랬다. 나는 전부터 TV프로그램에 연령을 둔갑하여 출연하는 사람들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스무 살이면 스무 살다워야 하고 쉰이면 쉰다운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신은 시드는데 육체만 싱싱하면 무엇하고, 육체는 늙었는데 당최 철을 모르는 경우도 문제 아닌가.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벤자민의 자세도 마음에 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균형한 시간에 울상을 짓지도, 이별의 고통에 몸부림치지도 않는다. 그저 마주하는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담대함이 나지막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한편 영화를 보면서 곁에 앉은 남편이 벤자민 같아 보여 다소 언짢았다. 나는 요새 손가락이 쑤시고 눈가 주름도 걱정되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은데 남편은 점점 반질반질 팽팽해지는 피부에 하는 짓까지 점점 아이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십 년 쯤 지나면 남편은 때깔 좋은 벤자민이 되어 있고 나는 쭈그러진 데이지가 되어서 거꾸로 가는 시계를 원망해야 할 때가 오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 고로, 이 영화를 보는 커플들은 매우 당연한 현실임에도 함께 골골대며 늙어가는 것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 또한 교훈이라면 교훈이려나.-_-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09-02-1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남편과 보면 이런 감상이 되는군요..

깐따삐야 2009-02-16 21:10   좋아요 0 | URL
아하하 그렇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저의 한계입니다.ㅠ

프레이야 2009-02-17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담대한 벤자민,
그의 태도가 저도 맘에 들었어요.^^

깐따삐야 2009-02-19 10:37   좋아요 0 | URL
하도 차분하고 담대해서 세월이 흐를수록 늙어가는 것보다 젊어지는 것이 덜 슬픈 일일까? 생각했는데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존경스런 주인공이에요.
 

  얼마 전에 K가 아기를 낳았다. 일찍 들여다보기도 뭐해 조금 미루다 보니 방학이 다 지나버렸다. 3월이면 더 바빠지기에 다른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 오늘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우리는 근처 물류센터에 들러 기저귀와 아기 옷, 딸기를 샀다. 조카가 있는 S가 꼼꼼히 둘러본 후 황토 기저귀와 내복을 골랐고 뭐가 뭔지 잘 모르는 E와 나는 무조건 오케이. 배가 고픈 E와 나는 딸기가 잘 익었나, 안 익었나만 한 번 더 확인했다.

  아기를 안고 우리를 맞아주는 K는 정말 어른 여자처럼 보였다. 배가 부른 모습도 무척이나 낯설었는데 이제는 저만치 한 걸음 더 낯설어졌다. 임신 중의 붓기가 빠지면서 다소 핼쑥해진 얼굴에 아기를 품에 안고 모유수유를 하는 K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아기는 인상 좋고 성격 좋은 제 아빠를 쏙 빼닮아서 한 번 꽁알대지도 않고 방긋방긋 웃어주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거실 이곳저곳에는 장난감, 가제손수건 등 아기 용품이 가득이었고 K가 드디어 사랑하는 남자를 꼭 닮은 아기를 낳았구나, 진짜 엄마가 되었구나, 싶어 흐뭇하고 대견했다.

  K는 나의 결혼생활을 물어왔고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을 뿐인데 친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결론은 항상 남편은 더할 나위 없이 착한 남자고 나는 남편을 꽉 쥐고 사는 여편네로 귀결된다. 그이의 능글맞은 자상함과 의뭉스런 참을성을 친구들은 제대로 알 리가 없다. 하기는 나도 살아보고 확인한 바이기는 하다. 동행한 E와 S는 둘 다 미혼이다. 그러다보니 너무 많이 알고 한편으로는 너무 많이 모른다.

  S는 순진하고 능력 있고 참 괜찮은 처자이긴 한데 호오의 구분이 좀 뚜렷하다.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가 남자 손등에 난 털을 보고 기겁한다든가, 맞춤법에 부주의한 남자가 두고두고 용서가 안 된다든가, 다른 점들이 마음에 들어도 그 한 가지가 콕, 두드러져 보여서 성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다른 친구 M의 예를 들면서 매사에 그토록 부정적인 남자한테 홀딱 빠져 사는 M이 이해되지 않는단다. 나이 먹다보면 그러저러한 경계가 조금은 두루뭉술해지기 마련인데 우리 가운데 아마도 가장 순진할 처자인 S는 당최 느슨해지지를 않는다. 아직 제짝을 못 만나서이기도 하겠지만 눈을 크고 낮게 뜨면 보이는 것이 많을 텐데 하는 아쉬움. 하지만 언제 결혼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결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그녀의 주장은 맞다. 빠르고 늦고는 대체 누가 정한 것이냐. ‘누구’를 만났을 때가 바로 그 ‘언제’인 것이다.

  한편 E는 만나던 남자와 최근에 헤어졌다. 저번에는 동방신기 때문에 싸우더니 이번에는 학교 일로 심정이 상해 있는데 남자가 눈치 없이 객관적인 조언을 해주는 바람에 영영 틀어지고 말았다. 당시 E에게 필요했던 건 무조건적인 맞장구, 그도 아니면 그냥 가만가만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었는데 이 반듯한 청년은 조목조목 E의 잘못을 짚어주신 모양이다. 결국 스트레스 와빵 받은 E는 저녁 식사 제안을 거절했고 그때서야 갑갑한 청년, 내가 오늘 잘못한 것 같다며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똑똑하고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아깝다. 잘생기기만 하지 똑똑한 건 잠깐 숨기고. E는 잘난 척 하는 남자는 완전 질색을 한다. 잘나긴 잘나되 겸손해야 한다. 그런데 남자들이란 남보다 우월해 보이고 싶어 하는 본능 같은 것이 있다. 그런 고로 K의 지적처럼 남자들 앞에선 알고도 모르는 척, 기억하면서도 까먹은 척 해야 할 때가 있다? 없다?

  결혼 전 K가 지금의 남편, 그녀의 남자친구를 보여주었을 때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K가 훨씬 더 잘나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날부터 꾸준히 그 남자를 지지해줬다. K를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구나, 직감했고 신중한 K가 그를 공개했을 때는 그만한 까닭이 있으려니 했다. 그 결과 K의 남편은 나를 완전 신뢰하게 되었다. 맛난 것을 사주더니 이번에는 손수 찍은 사진을 액자로 제작해 결혼 선물로 주었다. 그런 것 받아먹으려고 응원한 것은 아니지만 둘이 잘 되어서 이렇게 사랑스런 아기도 낳고 열심히 사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K는 접을 건 빨리 접고 노력할 것은 노력하는 참으로 무던한 친구다. 그런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 그 자리에서 최선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

  다들 하나같이 사람만 본다는데, 다른 것 안 보고 사람 자체만 본다는데, 그 ‘사람만 본다’는 기준이 제각각이다. 사람만 보는데 손등에 난 털 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S나 사람만 보는데 동방신기를 놓고 다투는 E를 볼 때, 구체적 실물로 다가오는 사람이란 머릿속 개념으로서의 사람과 갭이 생길 수밖에 없는가 보다. 하지만 그녀들이 Mr. Right를 만나는 순간, 손등의 수북한 털을 쓰다듬고픈 충동과 함께 동방신기 동생들이 인식의 벼랑 끝으로 추락하는 신묘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아는 선생님 한분은 저편에서 걸어오는 남편의 키가 무려 180으로 보였단다. (실제 그 분의 키는 170이 채 안 된다.) 이 정도의 두터운 콩깍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든, 상대든 착각의 늪에 풍덩 빠지는 순간이 온다.

  E는 올해 대학원에 입학했고 S는 어학 공부를 위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하고픈 일 열심히 하다보면 뜻이 맞는 좋은 동지를 만날 수도 있다. 더욱이 주변의 종용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여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래도 나의 소중한 벗, S와 E는 돌아오는 새봄에는 함께 팔짱 끼고 봄나들이 갈 미스터 라이트를 만났으면 한다. 왜냐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신혼에 깨 볶는 소리로 미화시켜 버리니 너희들도 얼른 연애하고 결혼해서 실태 파악에 임해라 좀!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9-02-14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등에털많고동방신기그닥관심없는남자는여기있어요. 전에 그런 적이 있었어요. 만나던 여친이 회사에서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퇴근 후 만나서 제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죠. 그 친구도 동의, 동감, 맞장구 이런 걸 원했을텐데, 저는 가만 들어보니 걔가 억울한 일만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조목조목까진 아니지만 제 생각을 말해줬다가 -_- 난감해져버린 적이 있어요. 그 때문에 크게 싸우거나 그런건 아닌데... 갑자기 그 때 생각이... 흐음, 일단 달래주고 말하더라도 나중에 했어야하는거였죠.

순오기 2009-02-14 00:4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남자들은 복잡미묘한 여자의 맘을 잘 모르죠. 누구든 마찬가지지만 하소연할때는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는 것, 감정에 동감해주는 게 제일 중요하죠. 그런데 알면서도 잘 안돼요~~ 그때 또박또박 잘못을 지적한다면 정말 영원히 갈라지게 되죠. 일단은 동감해주고 위로해 주는 것~~~ 사실 본인의 잘못은 자신이 제일 잘 알기에 감정이 가라앉으면 바로 반성모드가 되거든요.

깐따삐야 2009-02-14 01:07   좋아요 0 | URL
손등에 털 많고!! 동방신기에 그닥 관심 없으시다니ㅠㅠ 많이 놀랍고 쫌 아쉽네요.
맞아요. 아프님. 앞으로 여자를 사귈 땐 잘생기기만 하시고 똑똑하다는 사실은 잠깐 숨겨두세요. 어차피 똑똑한 건 숨겨도 표나구요. 여자들은 가만히 이야기 들어주면 스스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가 알아서 반성하고 자신의 잘못까지 냉철하게 진단해요. 정 조언을 해주고 싶으시면 당의정을 골고루 발라서 눈치껏.^^

근데 E도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아요. 남자들은 본인을 조금만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면 간도 빼주고 달도 따오는데 말이죠. 서로에게 집중하다보면 뾰족한 수가 생기는데 넘 헐렁하게 만난데다 인연이 아니라서 그렇겠죠. 연애도 성의있게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순오기 2009-02-1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어떤 미스터이든 콩깍지가 씌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기혼자들은 다 알죠.ㅋㅋ
난 우리 남편이 그리 뚱뚱해 보이지 않았다는 웃지 못할 전설이~ 당시 174에 84킬로였던 남자를~~~ 우리 애들, 이 얘기 듣더니 다 쓰러졌어요. 대단한 콩깍지라고!!

깐따삐야 2009-02-14 01:06   좋아요 0 | URL
헉~ 순오기님. 정말 콩깍지의 지존이세요. 근데 엄마가 아빠에게 그만큼 뿅~ 갔다는 것이니 아이들은 행복한 졸도를 했겠네요.^^

순오기 2009-02-15 02:25   좋아요 0 | URL
뿅~~ 간게 아니고 콩깍지라니까욧~ㅎㅎㅎ

깐따삐야 2009-02-15 23:41   좋아요 0 | URL
그 콩깍지는 지금도 건재하신 거죠? 흐흣.^^

2009-02-14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5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9-02-1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남아기를 보고 오셨는데 말입니다..그렇다면 깐따삐야님은?

깐따삐야 2009-02-15 23:51   좋아요 0 | URL
아기는 참 예쁘더라구요.
BUT! 저는 저와 제 남편만 감당하기에도 힘에 부칩니다.ㅠ

Mephistopheles 2009-02-16 12:02   좋아요 0 | URL
흠흠..남편분 생각이 갑작스럽게 궁금해지기 시작....
(페이퍼의 내용을 보면 오히려 남편분이 깐따님을 감당하는 듯한 느낌이..=3=3=3)

깐따삐야 2009-02-16 21:10   좋아요 0 | URL
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쫌 문제죠.( '')

무해한모리군 2009-02-1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전 어느 유형인지 돌아보고 있습니다 --;;
이 포스트를 보니 반성이 되는군요..

깐따삐야 2009-02-15 23:55   좋아요 0 | URL
근데요, 휘모리님. 반성 안 하셔도 때가 되면 다 제짝을 만나는 것 같아요. 저도 결혼 전에 E나 S와 별반 다르지 않았답니다. 미스터 라이트씨를 만나면 저절로...^^

무해한모리군 2009-02-16 00:20   좋아요 0 | URL
하하 깐따삐야님 최근에 들은 말중 가장 위안이 됩니다.

깐따삐야 2009-02-16 21:11   좋아요 0 | URL
정말이에요.^^

웽스북스 2009-02-1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춤법에 부주의한 남자가 두고두고 용서가 안 된다든가
저는 여기에 초초초초초공감이요. ㅋㅋㅋㅋㅋㅋ 부주의를 넘어 알고보니 무지였다? 라면 아. 기절.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용서가 안된다기보단, 정말, 홀라당! 깬달까요 -_- ㅋㅋ

그러니 저도 미스터라이트를.. 으흑..으흑..

깐따삐야 2009-02-15 23:59   좋아요 0 | URL
흐흐. S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 웬디양님.^^ 근데 맞춤법 서투르면 진짜 사람이 많이 없어보이긴 해요. S 말로는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데다 틀린 걸 지적해줬다고 남자가 깐죽거리기라도 하면 아주 꼴도 보기 싫다고.ㅋㅋㅋㅋ

곧 만날 거여요. 그리고 웬디양님은 미스터 라이트를 만나는 순간 진짜 근사한 연애를 할 것 같아요. 장담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2-16 00:19   좋아요 0 | URL
전 다르다 틀리다, 이 이빨 이런거 구분 못하는 사람을 보면 꾸짖어 주고 싶어요 --;;

다락방 2009-02-16 13:34   좋아요 0 | URL
맞춤법에 부주의한 남자가 두고두고 용서가 안 된다든가
저는 여기에 초초초초초공감이요 2

저도 웬디양님 말씀에 공감 ㅎㅎ



아, 지금은 결혼한 제 여동생은 예전에 남친을 사귈때 paradox의 뜻을 모른다고 차버린적이 있었죠. 갑자기 오만정이 다 떨어져버렸었대요 ㅎㅎㅎㅎ

깐따삐야 2009-02-16 21:15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이, 이빨 ㅋㅋㅋㅋ 저부터 꾸짖어 주심이.ㅠ

다락방님- 맞춤법에 민감한 것이 알라딘녀에 한정된 건 설마하니 아니겠지요? 음음.
저도 찔려가지고는 잠시 생각해 봤어요. 역설? 모순? 머지? 막 이럼서. ㅋㅋ 차였던 그분은 파라솔만 봐도 기겁하지 않을까 싶어요. 쯧쯧.
 




  외출하려고 나서는 길. 이따금 꽃다발을 든 아이들이 눈에 띈다. 졸업시즌인 것이다. 교복 입은 아이들도 있지만 정장을 차려 입은 남자 아이도 보이고 짧은 치마에 레깅스를 신은 여자 아이들도 보인다. 어른처럼 입을 만큼 몸은 다 자랐는데 십대는 어떻게든 티가 난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으련만 꾹꾹 참고, 혹은 참다못해 폭발해서 주위를 놀라게 했을지언정, 무사히 인생의 한 마디를 맺은 그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추억은 방울방울>, <귀를 기울이면>, <바다가 들린다>와 같은 서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개봉되거나 국내에 소개될 때 그 즉시 찾아볼 정도로 열정적인 편은 못 되고 입소문을 듣고 찾아보거나, 영화정보를 훑어 본 후 괜찮겠다 싶으면 구해서 보곤 한다. 그러한 명작 애니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내 서랍 속의 바다가 노래를 하고, 그 노래를 타고 지나간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심신이 정화되는 듯 수채화 같은 화면들에 반하는 한편, 일본 애니란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자극과 엽기, 그 대척점에 그처럼 오롯한 순진성과, 근사한 성찰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그러한 명작 애니 중의 한편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 소녀 마코토의 성장기. 한 번쯤 해봤음직한 상상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 그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철판구이가 먹고 싶어 며칠 전 저녁식사 시간으로 되돌아간다든가, 노래방에서 노래를 실컷 부르려고 처음 그 타이밍으로 구르고 또 구르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공감백배라서 나두나두!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뿐인가. 새롭게 생긴 능력 덕분에 막막했던 쪽지시험은 가뿐히 백점을 기록하고 가사실습 시간에 불을 냈던 실수도 만회한다.

  그러나 마코토의 타임 립은 이렇듯 귀여운 변칙에서 그치지를 않는다. 어색해질까 두려워 절친이었던 치아키의 고백을 세 번씩이나 무마하고, 또 다른 절친인 고스케와 후배를 엮어주려다가 기차 사고의 위기를 맞는다. 이후에 밝혀지는 치아키의 비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마코토는 스스로의 마음에 눈을 뜬다. 갑작스럽게 치아키를 잃어야만 하는 마코토는 목놓아 엉엉 울고 치아키는 다가와 말한다. “미래에서 기다릴게.” 사랑스런 마코토. “응! 금방 갈게. 뛰어 갈게.” 이 순간 눈물은 그렁그렁. 마음은 울렁울렁. 이제 치아키는 마코토에게 설레는 미래이자, 보고 싶은 희망이 된 셈이다.

  타임 립을 즐거워하는 마코토에게 어느 날 이모가 말한다. 네가 시간을 되돌리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겠냐고. 예전에 그런 콩트를 본 적이 있다. 돈이 없어지지 않는 지갑을 줍게 된 사람이 있었다. 한동안 돈을 펑펑 쓰며 행복에 겨워했는데 어느 날 잘 관찰해보니 자신의 지갑에서 만원이 나오는 순간 다른 사람 지갑 속 만원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중에 그 사람은 지갑을 어떻게 했을까. 안타깝게도 기억이 안 난다.) 마코토 역시 그렇다. 자기 편의대로 타임 립을 사용하다 보니 의외의 피해자가 생기기도 하고, 이 순간을 막으려고 돌아가면 또 다른 돌발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타이밍을 조작한다고 해서 본래 품고 있던 마음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닐뿐더러, 생각 없이 기회를 몽땅 써버린 탓에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리고는 신중하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하고 통곡하는 것이다. 엉엉.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신기해하는 타임머신 류의 이야기가 아닌, 착하고 사랑스러운 성장영화였다. 언젠가는 선머슴 같은 마코토도 이모처럼 신중하고 차분한 숙녀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때로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진실이다. 사람이 우아하면 우아할수록 우악스런 과거를 보냈을 수도 있다. 스스로를 책망하고 아파하면서 즈믄밤을 보내 본 사람만이 마코토의 이모처럼 내용도, 타이밍도 모두 근사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건 아닐까.  

  잊을 수 없는 장면. 노을 지는 강가. 자전거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치아키의 프로포즈는 완전 귀엽다. 나랑 사귈래? 나 그렇게 못생기지는 않았잖아. 마코토는 이 고마운 고백을 마다하느라 그토록 정신없이 헤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럴 땐 놀라지 말고 사겨야 한다는 게 이 영화의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이려나. 영화 중간중간 푯말처럼 지나가는 말, Time waits for no one이므로? 하지만 그것을 안다고 해도 지나봐야만 보이는 진심이 있고 놓쳐봐야만 깨닫는 진가도 있다. 꼭 한발 늦게 찾아오는 진실이라니. 차~암 쉽졀하지 않다. 타임 립이 안 되는 우리는 그저 주어진 시간 꼬박꼬박 살아내고 무엇이 최선일까,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들여다 볼 수밖에. 혹시나... 치아키라는 꽃미래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9-02-12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들도 챙겨보시도록 하세요.
자세한 건 제 리뷰를 뒤져보면 대부분 나올 껍니다.^^

깐따삐야 2009-02-14 00:39   좋아요 0 | URL
옹? 애니의 지존인 메피님이 권해주시니 꼭 찾아보겠습니다!

2009-02-13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4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09-02-1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보고 싶게 만드는 깐따님표 리뷰~*


깐따삐야 2009-02-14 00:45   좋아요 0 | URL
이런 애니들은 레와님의 사진 같아요.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고! ^^

2009-02-13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4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9-02-13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산 CGV에서 이거 볼 때, 극장 안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듬뿍 가지고 보러온 듯한 관객들로 가득해서요.

깐따삐야 2009-02-14 00:49   좋아요 0 | URL
음~ 그랬군요.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친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언급하기조차 꺼려지는 강호순 이름 석자가 인터넷이고 공중파고 도배를 할 즈음 엄마와 대화. 엄마, 어떻게 저 사람은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이고도 죄책감은커녕 반성의 기색조차 없을까? 처음에는 그랬겠지. 맨 처음 살인을 저질렀을 때는 자기도 괴롭고 죄책감도 느끼고 했겠지. 그런데 지금 와서 강호순한테 반성이니 죄책감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 그래서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거고 중요한 거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려운 거고, 그래서 중요한 거다. 몇 년 전 초임 발령을 받았을 때 아이들한테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도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맞으면서 자랐고 시의적절한 체벌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시의적절함에 대해 판단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리벙벙 초임 교사일수록 어찌나 권위적인지!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일 뿐인데 당시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나는 불가피한 도전쯤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결국 매를 들게 되었고 처음에는 체벌을 하면서도 이 방법은 아닌데 싶어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어느새 아이들이 반항만 할라치면 체벌로 위협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아프게 맞는 것 보다는 조용히 하는 편이 낫겠지? 매번 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 같은 교사, 다시 말해 교육경력도 길지 않은데다 일상생활에서나 학교현장에서나 감정 조절이 미숙한 교사가 체벌을 하면 맞는 아이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때리는 스스로도 마음만 불편하고 교육적인 효과는 더더군다나 없다. 그래서 조만간 학교로 복귀하면 아예 매를 들지 않을 생각이다. 더욱이 매는 처음 들기가 어렵지 한번 들기 시작하면 강도가 점점 세어지는 특성이 있지 않던가. 우리 엄마도 처음에는 자로 때리다가 그 다음 번에 또 다시 반항했을 때는 빗자루를 들고 쫓아오셨다. 한 대 맞던 것을 두 대 맞는다고 갑자기 착한 어린이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점점 맷집만 좋아질 수도 있다.

  학교 후배 중에 J라는 후배가 있다. 언젠가부터 징글징글해져서 연락을 끊고 지낸다. 그 애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한 번 가까워지면 그저 보는 사람마다 자기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만날 때마다 먹구름을 몰고 오는 사람을 반기는 이는 별로 없다. 처음에 그 애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 나는 앞으로 이 딱한 아이를 잘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J의 푸념은 습관적이었다. 처음에 다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였을 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내성이 쌓여서 조금만 친분이 쌓이면 드러내놓고 눈물을 훔쳐대게 된 것이다. 그 아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깔때기 안의 거름종이가 된 기분이었다. 다 쏟아낸 J는 후련해졌는지 모르지만 매번 그 푸념을 걸러줘야 하는 나는 뭔가.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해 입바른 말을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상황 탓만 하지 말고 네 생각을 변화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식의 말을 돌리고, 또 돌려서 해주었는데 돌아오는 말은 예상 밖이었다. 갑자기 발끈하더니만 자기를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가, 이런 식의 만남이라면 계속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언제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했었는지를 갸웃갸웃. 지금의 나라면 조금 달랐겠지만 조용히 돌아와서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그 충격적인 만남에서 돌아오던 길, 절에서 나왔다는 두 여인이 내 얼굴의 수심을 알아보았는지 굿을 해야겠다고 말을 걸어왔다. 정말 푸닥거리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의 손바닥을 찰싹찰싹 때릴 적엔 그 소리에 맞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오히려 아이들의 표정은 덤덤한데 내 표정만 들쭉날쭉했다. 카리스마라고는 쥐뿔도 없었고 그 순간 아이가 정말로 미워 보이는 찌질한 경험을 하면서 아, 나는 매를 들면 안 되는 교사 중의 하나로구나 싶었다. 별다른 실효도 거두지 못한 채 아이들 앞에서 더 찌질해지기 전에 서로에게 아픈 짓이라도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나도 한 고집 하다 보니 숱하게 맞으며 자랐고 매우 따끔하게 맞고 잘못을 비는 일이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불가피하단 생각도 한다. 목이 쉬어라 호소를 해도 자꾸 엇나갈 때는 체벌에 대한 유혹도 없지 않다. 하지만 감정 덩어리인 내가 첫 발을 떼고 보니 자칫 습관이 되면 당위성을 잃고 패악질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항상 평상심과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는 인간인지라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었다.

  J 같은 경우는 아무리 본인의 삶을 정당화하며 눈물로 호소를 해도 사람 자체가 참 없어 보였다. J가 부끄러워하던 J의 배경은 부끄러워할 게 없었다. 선택해서 타고 나는 것도 아닌데 부정하고 부끄러워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말이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은연중에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신, 그리고 습관적인 자기변명이었다. J는 얘기 중에 괴로움의 원인을 자신의 순수함 때문이라고 뜬금없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순수하다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 사람은 아예 힘들지도 않다. 욕심이 없는데 뭐가 힘들고 못된 생각 자체를 안 하는데 괴로울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정말 힘들다면 덜 순수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러한 자기모순을 지적하면 변명 아니면 발끈이니 누가 과연 옳은 말을 해주겠는가. 변명도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된다. 더욱이 아무리 도도한 자세를 취해도 사람이 아주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말들을 종종 듣는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도 없고 울림도 없는 문장인지 잘 안다. 언젠가 길을 가다 무심코 사탕껍데기를 버린 적이 있다. 길옆에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그거 누구보고 치우라고 거기다 버리는 거예요? 물으며 빤히 쳐다보셨다. 두고두고 곱씹을 만큼 창피한 경험이다. (참고로, 평소에 그러지 않던 사람은 길가에 쓰레기 쉽게 못 버린다.) 차창 밖으로 훅~ 쓰레기를 던졌다가 기어가 나가서 창문이 안 닫히는 바람에 찬바람 쏠쏠 맞아가며 집에 온 적도 있다. 그때 그 아저씨가 보셨으면 고것 참 쌤통이라고 하셨을 게다. 처음에 망설이면서 몇 번 버렸을 때 주위에 뭐라는 사람도 없고 창문도 멀쩡했으니 어느덧 습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주변에 쓰레기통만 안 보이면 지금도 손이 움찔거려 에비에비! 하고 앉았으니 습관이란 건 참 무섭다.

  대개의 모든 습관들이 그렇다. 영 아니다 싶은 일도 처음 한 번이 어려울 뿐. 어찌어찌하여 한두 번 그러다보면 주구장창 막장으로 내달리는 건 일도 아니다. 나도 처음 꼬깃꼬깃 호주머니 속 쓰레기를 길가에 털어놓을 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길가에 쓰레기를 가장 많이 버린 교사가 되었다. 참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이건 아니지 싶은 행동들도 점점 익숙해지다 보면 처음의 망설임이나 죄책감은 무딜 때로 무디어져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 버리는 순간이 온다. 눈앞의 욕망, 코앞의 편리 때문에 애초에 찌질한 짓을 시작하지를 말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삶을 향한 내공이지 몹쓸 습관에 대한 내성이 아니다. 막장으로 가는 건 정말 순간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02-12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2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소한의 유머조차 구사할 수 없는 날이 있다. 나와 나 이외의 것들이 유리벽 하나로 분리되어 소통은 고사하고 맥없는 정적만이 흐르는, 그런 날. 수세미로 베란다를 밀어본다. 아직 차지도 않은 쓰레기통을 비운다. 두 번 털어 널던 빨래를 세 번 쯤 털어본다. 걸레를 새 수건처럼 깨끗이 빨아본다. 손을 벨 듯 빳빳하게 깃을 세워 다림질도 해본다. 그렇듯 부지런히 움직이는 와중에도 고민한다. 이 따위 잠시잠깐 도피로서의 노동이 무슨 해결책이 될 수 있으랴. 마음은 뒤숭숭한데 어쩐지 꼼짝할 수조차 없어 뚱뚱하고 기름진 도넛 안에 감금된 듯한 그런 날이 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함으로써 물리적으로는 편해졌는지 모른다. 나는 손발이 부지런한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란 여자는 머리와 마음 또한 참 부지런해서 그를 미궁에 빠뜨리는 일이 잦다. 평소에 그는 나를 무슨 지식IN 언니쯤으로 생각한다. 지금 다른 거 하는 거 안 보이냐고 신경질을 부리면 빙글빙글 웃으며 당신은 모르는 게 없잖아, 라고 말한다. 영화는 좋아하지만 배우 이름은 늘 헛갈리고,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 좀 누가 읽어줬음 좋겠다, 라고 느물거리는 그를 어쩌면 좋을까. 처음에는 참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 앞에서 마구 잘난 체를 해왔다. 그것도 몰라? 저것도 몰라!

  그런데 살다보니 내가 참 어리다는 생각이 든다. 이따금씩 나는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스스로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에게 묻는다. 나 왜 이렇지? 나 왜 이런 것 같아요? 그럼 그는 각설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당신은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래요. 노인네처럼 말한다고 구박을 하면 자기도 나 같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잘 기억도 안 난다고 심상하게 대꾸한다. 그리고는 그 조그만 머릿속에 그 숱한 생각들을 담고 살아가는 게 신기하다며 걱정스러운 듯 바라본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서 내가 아무리 잘난 체를 해봤자 그에게는 그저 다루기 힘든, 걱정스러운 반쪽이구나 싶어진다. 종종 알 수 없는 조울 증세에 시달리고, 머릿속에 잡동사니 사념들을 그득 구겨 넣고는 안 해도 되는 고민들을 하고 사는, 아직 철이 덜 든 마누라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방긋거리며 일상을 잘 꾸려나가다가도 어느 날 문득, 거대 도넛 안에 갇혀버리면 그걸로 끝장이다. 중대사에 있어서는 매우 담대한 반면 아주 사소한 일로 기분이 상해서는 몸져눕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한 공간에서 그 이물스러운 공기를 함께 마셔야 하는 남편으로서는 참 황당하고 갑갑하겠지만 이제는 이골이 났는지, 아니면 그럴수록 자기가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감각 잃은 봉제인형 같은 나를 마냥 기다리고 또 기다려준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에 식당 주인인 사치에가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싫어하지 않는 일을 하는 거예요.” 생끗 웃으며 담담하게 말하는데 그야말로 간지 좔좔 흐르는 대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핀란드 헬싱키든, 베트남의 하노이든, 우리나라의 서울이든, 그 어디서든 자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쉬다가 출근하려니까 싫지? 라고 묻는 내게 남편이 그랬다. 이게 내 일인 걸 싫다고 생각하면 되나. 아무리 책을 많이 보고 배우 이름만 외우고 있으면 뭐하나. 그는 훨씬 고수다. 까불지 말자.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9-02-10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부터 남편이 온갖 잡스러운 걸 물어 볼땐 생긋 웃으면 "검색창에 ooo을 쳐 보아요" 대꾸해버리세요..^^ (좋은 것 가르쳐 준다 칫)

카모메 식당에 가면 전 환영받을 꺼에요. 우주과학닌자단갓차만(우리나라명 독수리 오형제) 노래를 다 부를 수 있거든요..다레다 다레다 다레다~~!!

댓글뱀꼬리 : 아주 잠깐 0.01초 페이퍼를 읽기 전 제목만 보고 깐따삐아님과 문근영양을 오버랩 시켜볼 뻔 했다는..=3=3=3=3

깐따삐야 2009-02-10 15:19   좋아요 0 | URL
이혼한 지 한참 된 배우가 나와서 이혼 어쩌구 하면 언제 이혼했냐고 물은 다음, 그 이혼사유를 저한테 묻는다니깐요.ㅠ

다레다 다레다 다레다... 하핫. 생각나요. 저는 거기 가면 따끈한 시나몬롤하고 코피 루왁! 하면 급맛있어지는 커피 한 잔 하고파욥.

근데요, 아사다 마오가 문근영 쫌 닮지 않았어요? 문근영+이미연 짬뽕 같애. 그래도 우리 김연아가 쵝오! 댓글은 방향을 잃고... 흠흠.

웽스북스 2009-02-10 15:23   좋아요 0 | URL
저도저도저도요!

웽스북스 2009-02-1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깐따삐야님. 저 완전 공감이요.
저는 신부는 아니지만, 가끔 저보다 연륜 있으신 분들 앞에서 좀 잘난척 하다 보면 막 자각과 반성의 물결에 마음에서 메아리치곤해요. 흑흑.

그런데 방긋거리며 살림하는 깐따삐야님은 완전 사랑스러움 ^-^
문근영 저리가라! 훠이훠이!

깐따삐야 2009-02-10 15:30   좋아요 0 | URL
그쵸! 자각과 반성의 물결이 쓰나미로 밀려오는 퐝당부끄한 경험. 웬디양님도 그랬군요. 페퍼민트의 이하나처럼 우리가 아직 쫌 어설퍼서 그래요. 그걸 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서로 토닥토닥.^^

방긋거리다가도 곧잘 할매가 뿔났다, 로 변해요. 세상 모든 것들이 둘째 며느리 고것처럼 적대적으로 보인다니깐요. ㅋㅋ

레와 2009-02-10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오니기리!!

저도 '하기싫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그 담백하게 생긴 여배우의 말에 쿵-했어요.


배고파.ㅡ.ㅜ

깐따삐야 2009-02-10 22:48   좋아요 0 | URL
레와님도 보셨군요. 근데요, 그 여배우 은근 자우림의 김윤아 닮지 않았어요? 느낌이 분명 다른데도 계속 오버랩 되는 이유는 뭘까요. 흠.

프레이야 2009-02-10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야님 왜 제 생각이 나며 웃음이 나죠.
충분히 사랑스러운 어린신부에요.^^
님 말이에요.

깐따삐야 2009-02-10 22:49   좋아요 0 | URL
혜경님도? ^^ 너무 사랑스러워서 막 죽이고 싶죠? ㅋㅋ

비로그인 2009-02-10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금만 더 단단해지고, 깐따삐야 님은 조금만 더 느슨해지면 어떨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서로가 서로가 아닌 게 되겠지요.

깐따삐야 2009-02-10 22:54   좋아요 0 | URL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면도 많아요. 우리는.^^ Jude님도 저도 자아가 견고하지만 그만큼 가슴에 사랑도 많은 사람들이라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에요~

마늘빵 2009-02-1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그러니깐 '우리 신혼이에요' 라고 알리는 페이퍼에요. 숨겨도 소용없어, 그런거야, 중얼중얼.

깐따삐야 2009-02-10 22:57   좋아요 0 | URL
낯선 두 남녀가 만나 함께 살다보면 다~ 이런 겁니다. 에헴! ㅋㅋ

2009-02-11 0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1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2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2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2-1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 앞에선 팍 숙이고 살아야죠~~ ㅋㅋㅋ

깐따삐야 2009-02-16 00:06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