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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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하리뷰

🔖한 권의 책을 따라가며 걷는 공기, 물, 불, 흙 4원소의 세계
🔖우주를 탐험하며 새롭게 발견하는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

📖 #나는그대의책이다
📖 #베르나르베르베르
📖 #열린책들

✒️ 처음 책을 보자마자 소리질렀다. 책이 굉장히 예뻤기 때문이다. 쨍한 파란 하늘과 어울리는 네 가지 색의 조화를 이루는 이 책, 신기하다.

그러나 더 독특한 것은 책 내용이었다. 책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우리의 책의 세계로 데려가 공기의 세계, 흙의 세계, 불의 세계, 물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예전에 베르베르의 책을 읽고서 이 작가 되게 천재같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쓰지 했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가 데려가는 곳이 곧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우주의 탄생에 대해 함께 이야기나눈다. 당장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고? 그럴 필요 없다. 그와 함께, 그의 책 속으로 떠나면 된다. 베르베르 베르나르가 만들어낸 그만의 독특한 상상의 세계로 함께 가보자!

경이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 나를 발견하고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나 자신. 그걸 가능하는 게 바로 책이라고 믿는다.

🔖책 속 한 줄

📖 그대는 나를 읽는 동안, 스스로를 어떤 다른 인물이 아니라 그대 자신으로밖에 여길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그대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그대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한 권의 책인 내가 그대로 하여금
경이로운 일을 하게 됐다고.
그러나 진정 경이로운 것은
그것을 수행한 그대,
오직 그대뿐이다.

안녕.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선물받았습니다.
좋은 책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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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읽고 매일 필사하는 하리의 서재 📚
✒️ 읽고 필사한 후 늦은 리뷰를 써요.
📖 시를 가장 사랑하지만 잘 알지는 못합니다.
📓 책에 밑줄을 긋고 문장을 수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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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고백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기 드 모파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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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하리뷰

★사랑은 이기적이고, 욕망은 솔직하다★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깊은 인간을 보여주는 작가★
★300편 작품 중 ‘사랑에 관한’ 대표 단편선★

#첫눈고백
#기드모파상
#머묾세계문학사랑3부작

모파상을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다. 에밀 졸라가 말했던 것처럼 ‘모파상은 단편소설을 완성한 유일한 작가’라는 말을 이해했다. 네 장이 조금 넘는 아주 짧은 단편부터 50장이 넘는 단편까지 다양한 단편이 실려있었다. 인물의 배경이나 서사를 풀어내기만 해도 금세 몇 장을 쓰고 어떤 사건과 그 결말을 만드는데 몇 백장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짧은 문장으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욕망을 이렇게 잘 드러낼 수 있다니 너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허상과도 같은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로 깊숙이 들어간다. 오롯이 아름답기만 한 사랑이 있을까? 사랑에는 행복과 기쁨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 이면에는 욕망과 이기심, 연민과도 같은 숨기고 싶은 복잡한 마음이 공존한다. 첫사랑의 설렘이나 감정이 시작되는 그 순간의 떨림과 열정,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적인 욕망이나 마음이 변하는 그 작은 틈과 사랑이 사라지고 고독만 남은 마음, 이 모든 걸 보여주는 단편문학의 정숙, 모파상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단편은 목걸이다. 어렸을 때(어린이 아님) 목걸이의 결말이 꽤 강렬했다. 인간의 허영심이란 얼마나 어리석은지, 겉치레만 신경 쓰는 일은 이토록 오래된 인간의 욕망이었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도 목걸이는 참 재미있고 씁쓸한 소설이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10년을 군소리없이 고생한 남편이 보였고 은근히 얄미운 잔느가 보였다. 유시민만큼은 아니어도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고전을 나이가 들어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일이 무척 즐거운 일이라는 걸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표제작인 첫눈과 고백도 꽤 인상깊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첫눈은 내게 아름답고 낭만적이 이미지를 보여주는 단어인데 이 단편을 읽고나니 오들오들 떠는 한 여자의 모습과 난방기는 절대 설치할 수 없다는 망할 놈이 떠올라서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부인 병들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고장을 예찬하는 꼴이라니, 인간은 어쩜 이리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느끼는지

고백은 재미있기도 재미있지만 그당시 남자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어쩌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만 같은 남작부인의 말들이 정말 신기했다. 예나 지금이나 하여튼 남자들이란, 이런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남작부인의 고백은 거의 쇼미더머니에 나간 래퍼마냥 쏟아내는 말들이라 읽는 나까지 숨이 차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등장하니 얼마나 우습겠는가. 배불뚝이에 빨간 코. 나까지 큭큭 웃고 말았다.

사랑의 다양한 이면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장편소설의 긴 호흡이 힘들다면 단편소설의 즐거움을 보여줄 이 책을 읽어보길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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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장소
나희덕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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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하리의서재 달출판사 서평단에 당첨되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시인이 걸으며 만난 햇빛과 바람, 비와 구름

그 장소들과 순간들이 건네는 온기


#마음의장소

#나희덕

#달


🔖“산책과 여행, 삶을 견디게 하는 두 가지” 


라고 시인이 말했다. 시인이 걸었던 장소들은 영국, 프랑스, 체코 등 해외의 도시들도 있었고 전주한옥마을, 소록도, 순천만과 같이 유명한 장소부터 백운동 별서정원, 회산 백련지, 외나로도 염포해변 등 낯설지만 아름다운 곳들까지 무척 많았다. 시인과 함께 산책하듯 읽었다.


읽는 도중에 이 책이 개정판이라는 것을 알았다. 몇 년전에 출간되었던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라는 여행산문집을 새롭게 손보고 새로운 글까지 더한 개정증보판이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났던 그 때를 떠올려 보았다. 내게 큰 울림이나 기억으로 남아있던가. 아니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책을 찾아보았는데 책을 읽고서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었던 게 기억이 났다. 2017년에 나는 무얼 했었지? 어떻게 살고 있었지? 그때 나는 산책을 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눈을 담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구름이 아니라 구름을 바라볼 시간과 마음이었구나. 41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걷는 시간, 산책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때였다. 그러니 이 책을 다시 읽는 마음이 같을 수가 없지. 같은 풍경을 봐도 그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마음을 도저히 다독일 수 없을 때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마음의 장소로 남는 곳들이 채워나갈 수 있었다.


시인의 산책길을 함께 걷는 동안 마음에 무척 평온해졌다. 시인이 걸었던 그 길을, 다녀온 그 장소를 나도 가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그리운 장소들을 마음으로 다시 걸으며 여전히 길 위에서 서성거리는 저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_ 서문 중에서


그리운 곳에서 시인과 만나 오래도록 함께 차를 마신 기분이다. 걷다보니 마음을 내려놓을 장소를 찾게 되었고 그런 장소를 품에 안고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시인의 문장을 마음속에 새긴다. 


🔖자신의 뒷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타인에게 포착된 시선을 통해서만 자신의 뒷모습을 확인할 뿐이다. 누군가는 내 뒷모습에서 때로는 쓸쓸함을, 때로는 차가움을, 때로는 경쾌함을 읽어냈으리라.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등을 가졌다는 것. 자신이 알지 못하고 어찌할 수도 없는 신체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왠지 두렵고도 안심이 된다. 85


🔖누구는 썩어간다고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시듦의 과정 역시 익어가는 것이라 여기고 싶다. 나무에 매달려서든 땅에 떨어져서든, 누구에게 거두어지든 내던져지든, 한 번 태어나 꽃피운 것들은 제 몫만큼 살다가 간다. 설령 오랫동안 살지 못했어도 기억 속에서 내내 익어가는 것들도 있다. 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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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읽고 매일 필사하는 하리의서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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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한 여자들 -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
이예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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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도서제공

🔖각자의 어둠을 지나 찬란하게 빛나는
여자들의 용기와 믿음에 대해 말하다

#여자가사랑한여자들
#이예지
#이예지인터뷰집
#위즈덤하우스

작가 정서경, 뮤지션 김윤아, 배우 전도연, 배구선수 김연경, 영화감독 이경미, 배우 심은경, 뮤지션 전소연, 작가 김은희, 미술감독 류성희, 소설가 정보라, 댄서 모니카, 뮤지션 씨엘, 아나운서 강지영, 희극인 김민경, 소설가 최은영까지, 15명의 여자들을 만났다.

세상에, 이 라인업이라니 엄청난 여자들이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여자들과 만나 인터뷰한 이예지 에디터는 여성을 위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여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이었다. 그럴수록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부제가 「두려움과 편견을 넘어 나만의 길을 가는 용기에 대하여」다. 그만큼 여성이 가는 길에는 두려움과 편견이 준비되어 있다는 말일테다. 남자작가, 남자감독, 남자프론트맨, 남자희극인, 남자배우라고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류작가, 여감독, 여배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부른다. 은근슬쩍 주류에서 분리시키는 모양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만 그만한 인지도와 자격을 부여받는 느낌이다.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칸 영화제의 전도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김은희, 은퇴할 때까지 세계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김연경, 김연아 등등.

정서경 작가는(특히 문화계) 이게 변화된 세상의 시작이라고, 이런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싫으면 직접 쓰던가! 라고도🤭
(남자작가 찾기 진짜 어려울 지경)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에겐 롤모델, 본보기가 되어줄만한 더 많은 여성들을 원한다. 그래서 한계와 편견을 딛고 나아가는 멋진 여성이 수많은 남성들 사이에 있는 홍일점이 아니라 다수가 되는 미래로 가고 있다고, 그게 그리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용기를 얻고 위로를 받아 씩씩하게 함께 나아갈 수 있으리라.

인터뷰 내내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당당히 나아가는 멋진 여자들을 보며 뭉클하면서 벅차오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마지막이 최은영이여서 더욱 좋았다. (밑줄이 많아서 필사를 다 하지 못했다)

멋있으면 다 언니라고 누가 그랬던가.
언니들 사랑해요❣️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해내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이 책을 적극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나면 당신도 사랑에 빠질 거라고 장담한다.
(일단 제얘기입니다😍)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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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지음 / 마음산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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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책 #하리뷰 #시인의산문집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영혼의 반짝임을 발견하는 시인,

진은영의 신작 산문집


#나는세계와맞지않지만

#진은영

#마음산책


“위대한 책들의 타격 아래서 우리는 번번이 죽고

또 번번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


다 기억할 순 없지만 죽고 싶었던 숱한 순간에 시인을 살린 문장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고통의 순간도 회복의 과정도 전부 잊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여기 살아 있다고 말한다.


내가 특히 어려워하는 책이 고전인데 알고본 이 책, 진은영 시인을 살린 책들에 대한 책이었다. 시인이 사랑했던, 시인의 숱한 밤을 함께했던, 죽고 싶었던 순간을 살려냈던 작가들. 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알베르 카뮈, 실비아 플라스, 한나 아렌트…… 그들의 이름은 너무도 유명하기 때문에 나같은 고전바보에게도 친숙한 이름들이다. 


그러나 어쩜 이래? 시인의 말한 작품들 중에 읽은 작품 하나도 없다! 앞으로도 읽을 수 있는 작품일지 단언할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얼마 전에 읽었던 청춘의 독서가 생각하네...?)


사는 동안 삶이 행복이라 생각하며 살지 못했다. 그래서 시인이 들려주는 첫 번째 글, 서문에서부터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말았다. 물론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예상한 결말이었다. 삶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아무리 애써도 이 절망과 고통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들을 만나며, 그들의 문장을 읽고 살피며,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닐지. 


전에 만났던 백은선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무해한 시가 아니라 행복만으로 추구하는 글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건져올리듯이. 친절하게 다정하게 괜찮다, 행복해질 것이라고 아첨하지 않고 너에게 고통이 올지라도, 그 고통을 다 겪더라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둔다. 쉽게 위로하지 않지만 우리는 결국 위로받고 만다.


좋은 작가는 아첨하지 않는다. 오랜 친구처럼 우리에게 진실의 차가운 냉기를 깊이 들이마시라고 무심한 얼굴로 짧게 말한다. 카프카, 울프, 카뮈, 베유, 톨스토이, 플라스, 니체, 아렌트…… (…) 이들은, 내 책을 읽는다면 넌 아침에 슬펐어도 저녁 무렵엔 꼭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_ 책머리에


위대한 책을 읽는다고 혁명을 일으키거나 인류를 구원하지는 못했지만, 다만 살아갈 수 있었다는 진은영 시인. 그리하여 기어코 살아가게 하는 문장을 만날 것이다. 인류는 구원하지 못해도 나 자신은 구원할 수 있으므로.





P. 22 사실 삶은 기나긴 소송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성별, 인종, 계급 등의 사회문화적 규정들 속에 던져진다. 사회는 그 규정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며 늘 우리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려고 대기 중이다. 규정 하나를 잘 지켜도 다른 규정들로 인한 소송들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누구나 사는 동안 사회적 ‘정상상태’에 있을 것을 명하는 법 앞에서 계속 무죄를 입증하거나 유죄를 인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완전한 무죄방면은 불가능하다.


P. 34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은 소중하지만 자신이 짜 넣을 인생의 무늬들이 모두 관계로만 환원된다고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올랜도는 고독을 사랑하는 실존주의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P. 67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은 한없이 어둡다. 그런 세상에서 사랑은 벼락처럼 아주 잠시 동안 번쩍이며 어둠을 밝힌다. 장미꽃처럼 붉고 짧은 빛 속에서 바흐만은 꽃들을 몽환적으로만 그려내지 않는다. 피어난 꽃들 아래 환하게 불 밝혀진 역사의 과오라는 가시들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P. 117 어떤 시인들은 시 속에 죽어가는 이의 가쁜 숨소리를 담아낸다. 읽은 이의 가슴을 찢는, 고귀한 시들이다. 그러나 백석의 시에선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큰 비명이나 고통스러운 신음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그는 죽어가는 사람, 피로와 고통과 절망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사람 곁에서 속삭이며 중얼거리듯 쓴다. 그 중얼거림에 삶의 깊은 성찰이나 낙원의 약속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P. 156 슬픔에 빠진 아이는 늘 구석에 가서 웅크린다. 겁에 질린 동물들이 찾는 곳도 구석이다. 세상에서 버려진 기분이 들 때 우리는 구석으로 숨는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구석이야말로 안전에 대한 몽상을 충족시켜주는 진정한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편안하게 거주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상처받는 순간에 숨을 수 있고 비밀의 은신처가 될 수 있어야 하니까. 어쩌면 집은 “세계 안의 우리들의 구석”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P. 175~176 사랑은 늘 이런 식이다. 시대의 어둠, 운명적 불운, 제삼자의 모략, 서로에 대한 의심, 착각과 실수 등 배송 과정에 끼어든 각종 장애로 내가 보낸 사랑의 정량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당신의 연인이 홀로 어떤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는지 살피라는 듯 소설은 거듭되는 배송 사고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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