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냄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9
김지연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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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냄새, 김지연


어쩔 수 없이 악취가 되어버린,

불가해에 압도당한 인물의 불가해한 삶을 이해하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갑자기 후각을 잃어버린 K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기억의 냄새들이, 일상 속 주변의 모든 것이 악취로 변하는 불가해에 압도당한 인물의 초상을 그린 소설이다


K는 더위도 추위도 잘 타지 않고, 맛에 관대한 편이라 맛없는 음식이 거의 없으며 비염인데다 후각도 예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후에 갑자기 후각을 잃어버렸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맡았던 바다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자 어쩐지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후각이 돌아왔지만 악취가 딸려왔다. 악취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자신의 집에서 가장 많이 맡을 정로도 집조차 악취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향기보다는 냄새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오감중에 시각적인 것이 가장 강하겠지만 난 냄새에 민감하다.(하지만 오감 중에 단 하나 고르라고 하면 시각) 아주 예민해서 어떤 냄새를 못 맡고 구역질을 하거나 그 정도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무래도 채취에 가깝다.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좋은 냄새가 나기도 하고 좋은 냄새가 나서 좋아지기도 한다. '어떤 사람만이 풍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고유한 채취. 얼굴이나 지문, 목소리처럼 어떤 사람만이 풍기는 고유한 냄새.p.105)'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품 안이나 아기냄새, 뽀송뽀송한 빨래냄새, 좋아하는 섬유유연제나 향수 냄새 등등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에는 애정이 묻어 있다.


K의 코로나바이러스 후유증이 무향에서 악취로 변하는 순간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매우 와닿았다. 냄새를 맡지 못할 때는 바다냄새부터 그동안 향으로 마셨다는 걸 깨닫게 된 차, 사랑하는 P의 냄새까지 자신의 좋아했던 것들을 잃어버린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악취를 맡게 된 후로 일상이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시도때도없이 음식을 버리고 악취가 났던 곳에서 있을 수 없다. P는 자신은 맡을 수도 없고 나지도 않는 악취때문에 K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만약 K의 후각이 영영 회복되지 않는다면 어떨까. K는 점점 더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대화주제는 온통 오늘 악취를 맡은 장소와 횟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는 건 일상생활을 완전히 다 장악해버리는 일이었다. p.99'


천희란 소설의 해설에 따르면 <태초의 냄새>는 후각이라는 감각을 경유해 기억과 상실, 계급과 혐오, 이해와 몰이해, 직면과 회의 순간들을 촘촘하게 그려냈다고 한다.

K가 결국 더이상 악취를 맡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왔을까. 잘 모르겠다. 악취는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K가 냄새를 맡고 또 맡으며 악취와 함께 살아간다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삶은 이해하기 애쓰는 거라고.


번외로 P의 질문이 인상깊어서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죽었어. 근데 유품 두 가지 중에 딱 하나만 골라서 가져갈 수 있대. 내 비밀 일기가 든 메모리카드랑 내가 자주 입어서 내 냄새가 밴 셔츠. 넌 뭘 가져갈래?" p.104


나는 셔츠를 선택할 것이다. 냄새는 기억을 불러오는 장치다. 셔츠만 있다면 너를 만날 수 있으니까. K의 상상처럼 일기를 읽고 배신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글은 언제든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언제나 나만의 것이므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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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1-09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사진도 예쁘고, 그리고 필사한 페이지도 참 좋네요.
하리님의 캘리그라피 글씨는 예쁘고 깔끔한 느낌이 들어요.
손글씨 잘 쓰기가 어렵다는 걸 알아서인지,
부러운 마음으로 사진 한번 더 봤습니다.^^
하리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하리 2023-12-08 21:31   좋아요 1 | URL
이제서야 댓글을 달아요. 서니데이님의 한결같이 다정한 댓글, 늘 감사해요!
무척 추웠다가 겨울인가 싶게 또 따뜻해요. 이럴 때 오히려 감기걸리기 쉬운 거 같아요.
감기 조심하시고, 늘 무탈하시길:)
 
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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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달콤한 꿈과 서늘한 현실 사이

서러움과 반짝임을 모두 머금은 아지랑이 같은 빛의 세계


찰나의 순간, 생의 끝에 새겨지는 깊은 사랑의 흔적들>





 


〈오리배〉


 


지영은 엄마와 희재를 만나고나서야 안도한다. 남겨진 자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일어설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마음 편히 떠나게 되는 것이었다. 죽고나면 끝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나니 죽고난 이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남아있는 사람과 놓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나를.


〈심야의 질주〉


 


인간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무너지는 것은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인 것 같다. 부와 인기를 모두 가졌던 배우 강산은 이제 주변에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도, 친구도, 자신에게 열광했던 팬도. 대저택같은 집에 홀로 살아가며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저 시체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해남이 죽고난 후 찾아간 강산은 그 옛날 자신이 부러워하며 동경의 대상이었던 강산이 아니었다. 고작 우울증 때문에 모든 걸 다 놓아버리다니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강산을 지켜보며 깨닫게 된다. '외롭고 괴로운데 어디 말할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거지요.(p.94)' 덩그러니 혼자 남아 외롭고 괴로운 자신의 우상 강산의 마음을.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곁에 없는 경우도 있겠다.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삶을 살아갈 때 결국 필요한 건 사람인 것 같다. 서로를 다독여주고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작은 힘이라도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의 끝〉



혜수와 지우는 <심야의 질주>의 해남이 젊은 시절 사고를 내고 도망쳤던 그 사고의 여자 둘이었다. 연작소설이라 각각의 단편마다 주인공들의 연결고리가 있다. 혜수는 늘 죽고 싶어 했고 지우는 그런 해수를 사랑해서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했다. 



"매일 그런 날들이었다. 모든 것이 좋아질 듯 좋아지지 않았고 다만 혜수가 좋았던 날들.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혜수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혜수가 있어서 조금 덜 외로웠다. 그거면 됐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p.153"



혜수와 지우는 다른 누군가를 찾아가지 않았다. 세상의 끝과도 같은 절벽 앞. 고맙다는 마음. 그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잘 살고 있었지만 이대로 끝나도 좋다는 마음. 그 역시 사랑이라고.


<아홉 번의 생>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다. 혜수와 지우가 돌보던 길고양이. 고양이가 자신과 다른 존재인 선인장을 사랑하게 되면서 몇 번의 생을 거쳐 선장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낯선 존재들이기에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찾기위해 애쓰기도 한다. 사랑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것도 고양이에게서!!

사랑은 상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왜 이런 하잘것없는 사실이 이토록이나 기쁘고(p.173)' '같은 이야기를 수백번 들었지만 매번 새로웠으며(p.176)'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땐 '내가 그 애와 같은 선인장이었다면(p.179)' 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홉번째 생에 이르렀을 때 다시 만나게 된 무늬벤자민나무로 태어난 선인장. 고양이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사랑이란 매일 함께 하고 싶은 것,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 끊임없이 생각나는 것이라고. 물론 어느 부분에선 옳았지만, 그것들은 사랑이라는 거대한 우주의 아주 작은 별 하나에 불과했다. 별 하나가 없다고 해서 우주가 우주가 아닌 것이 되지 않듯이 사랑도 그랬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작아지고 납작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p.205'



이 문단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이라고. 오늘, 이 순간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 그게 전부라고 말이다. 


〈영원의 소녀〉



수정은 <아홉번째 생>의 고양이가 세번째 삶을 살았을 때 함께했던 주인이었다. 수정은 죽고난 후 옛 연인 정민을 찾아간다. 자신을 두고 떠난 정민이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적당히 힘들기를 바라기는 했다. 그 바람은 적당히였는데 정민은 아이를 사고로 잃고 그 진상규명을 위해 매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의 자살시도를 목격하고 들리지도 않을 말들을 중얼거리며 막아서려 한다. '야, 이러지 마. 이런다고 뭐가 되냐. 산 사람은 살아야지. 두고 봐라, 나아질 거야. 영원히 괴롭진 않아. 뭐든지, 즐거운도 괴로움도 영원하진 않아. 그러니까 얼마나 다행이냐.p.253' 이미 죽어서 귀신이 된 수정이 하는 말이라 웃기면서도 씁쓸했다. 어쩌면 수정 자신에게 했어야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이 세계의 개발자〉



<영원의 소녀> 수정의 애인 예진은 게임 개발자로 갑작스레 과로사한다. 죽었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보고 싶은 사람도, 원하는 소원도 없는 사람. 그런데 예진은 귀신이 되었다? 예진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하기에 누군가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신이 게임 속에 숨겨둔 토끼를 만나면서 이 세계의 개발자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된다.

주인공들 모두 삶에 크게 미련이 없었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 사람들. 그런데 죽음 이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시간과 몸이 존재했을 때는 몰랐던 것을. 그리고 그것을 해냈을 때에게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삶은 항상 비슷하게 흐르고 일상을 지루하며 특별한 이벤트없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보통의 평범한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삶 속에서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기쁨과 행복, 슬픔과 고통이라는 다양한 감정을 나누며 끈질기게 사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든 삶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더라도.

신이 세상을 참 아름답게도 만들었나보다. '어쩜 그렇게들 끈질기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지.p.289'



그래요. 끈질기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서 살다가, 좋은 곳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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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은희경 지음 / 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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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 못버린 물건들, 은희경


"이런 순정을 잊기는 어려운 일이다"

효율과는 상관없는,

오래된 물건이 건네는 조금은 소심한 위로!

12년 만에 선보이는 은희경의 신작 산문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에겐 또 못 버린 물건들이란 제목부터 이건 사야해!를 외치게 했다. 게다가 은희경 작가의 산문이라니 안 살 수가 없었다.

오래된 물건들 앞에서 생각한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서 내가 되었구나. 누구나 매일 그럴 것이다. 물건들의 시간과 함께하며. p.11

오래된 물건들을 보면 물건 그 자체이기보다 그 물건이 내게 온 경로와 그 순간들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물건이 물건이 아니라 나에게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은희경 작가의 물건들을 술잔부터 구둣주걱, 인형, 목걸이, 달력 등 꽤 다양한 물건들이 등장한다. 직접 산 것도 있고 선물받은 것도 있다. 작가님이 등단한지 꽤 되었으니 많은 시간과 경험이 있을테지만 정말 다양하고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몽블랑 형광펜 잊지못해...)

나는 한때 비가 오는 날마다 한 사람을 생각했다. 바로 내가 우산을 선물했던 사람. 오늘 그 우산을 쓰고 나갔을까. 마음에 들었을까. 그런 날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또 생각했다. 지금 그 사람도 내가 선물한 우산 아래에서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짐작은 우산이 비 오는 날에만 사용되는 물건이기에 가능하다. 비 오는 날에는 내 우산을 보게 마련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우산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p.40

어떤 선물은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선물을 많이 주고받았을 때 더 기억이 선명해지는 것 같다. 내 우산 잘 있으려나.

선물이란 인사를 건네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물건에 만족하고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면 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그러니까 그냥 좋아하는 마음인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정확하게 생각하려고 애쓰는 조금 전 내 소설 주인공의 말을 다시 인용해보자면 나는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p.54

(생각해보니 선물 많지않지만) 모든 선물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선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엽서와 편지이다. 특히, 해외에서 날아온 편지 너무 소중해. (언니 보고 있나요?) 지난 날의 쓸모없는 편지도 있을 수 있겠으나 지나간 인연이든 지금도 소중한 인연이든 편지 속에 담긴 마음을 버리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시절 의미없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갖고 있다. 그 친구들는 알까. 내가 너희의 카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버릴 날이 오겠지만 다시 꺼내보고 이불킥을 날리는 편지나 울고싶어지는 편지도 지금은 그저 소중한 것들이다. 이미 끊어진 인연이라 할지라도.

물건들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데에는 거기 깃든 나의 시간도 한몫을 차지한다. 물건에는 그것을 살 때의 나, 그것을 쓸 때의 나, 그리고 그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담겨 있으며 나는 그 시간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다. p.153

선물 외에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 중에 오래된 물건은 뭐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산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명찰도 갖고 있고 오래된 편지들, 이십대 초반에 썼던 노트, 각종 기념품들, 수많은 사진들, 망가진 카메라, DVD나 CD, 너덜너덜한 만화책, 인형, 손수건, 좋아하는 책들까지. 잡다한 것들이 집안 곳곳에 쌓여있다. 정리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리를 하려고 하면 이건 이랬지, 저건 저랬지 하며 다 넣어두고 버리지 못하다가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많이도 버리고 버렸다고 생각했던 여전히 낡은 물건들이 많다. 누군가에게 쓰레기일 수 있는 물건들이 나에게 그 시간과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방식이다. 소설 <이끼숲>에서 소마가 친구들이 자기를 잊으면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하다가 내가 기억하면 되지라고 말하던 장면을 생각한다. 내 기억에 담아두고 있으니 그 시간은 아직 내게 살아있다.


여전히 쓸모없어보이는 것들을 많이 산다.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여전히 문구와 책들이 좋다. 그게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하고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든 물건이든 필요한지 아닌지로 나누기 십상인데, 그 윗단계에는 '그냥'이라는 경지가 있다, 고 주장해본다. p.221


작가님의 그 경지, 아주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냥 좋은 게 있는거다.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그냥 좋은 사람, 그냥 좋은 물건이 좋다.


읽다보면 작가님이 자신의 작품 속 문장을 인용하여 이야기하거나 작품 속 관련된 물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출저를 정확히 써놓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책을 꺼내놓았다. 조만간 그 책의 필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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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
유병록 지음 / 미디어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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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 유병록

_ 슬픔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소중한 것을 다시 잃지 않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

갑작스레 아이를 잃게 된 시인의 슬픔을 토해내는 글이 참 아프고 아팠다. 자식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자신이 치욕스러웠다던 시인의 마음이 절절해서 마음이 저렸다. 그러나 치욕스럽다는 이유로 소중한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슬픔과 고통을 딛고 나아가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다.

인간이 견디는 고통과 슬픔은 누구나 그 크기가 크겠지만 자식을 잃을 때의 고통이 가장 크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가정이 깨지거나 무겁고 가라앉는 기운을 떨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다시 행복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불행에 잠식되기 쉬울 것이다. 시인 역시 불행이 전염될까 두려워하고 주변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하며 불행 속으로 스스로 더 빠져들었다. 그러나 곧 깨닫게 된다 위로라는 것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슬픔과 고통을 알아주고 일으켜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찾아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위로가 필요하다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으러 가야 한다. 위로는 어딘선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위로는 주변 사람들 마음 속에 있을수도 있고, 새로 만나게 될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 마주칠 수도 있고, 영화관이나 산책로에서 만날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위로를 찾아서 한 발을 내딛는다. p.43

아들의 죽음 이후 아내와의 절망적인 시간에 대해서도 풀어놓는다. 아내 앞에서만 울다가 울지 않고 강건하게 살자고 얘기하는 아내에게 서운했으나 서로의 힘든 마음을 이해하고 울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울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커다란 고통과 슬픔 앞에서 참고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눈물을 참지 않고 울음을 토해내고 마음껏 울고 슬퍼했을 때 슬픔을 딛고 일어서게 되는 것 같다. 애써 슬픔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슬픔의 공간에서 슬퍼하면서 슬픔을 천천히 보내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들을 잃었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제 행복한 날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행복 대신 보람이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약속했다.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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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노래
이석원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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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노래, 이석원


자유롭기 위해,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석원 작가가 이야기하는 ‘관계’와 ‘선택’, ‘창작’에 관하여




이석원 작가는 보통의 존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언니네 이발관으로 활동할 때는 잘 알지 못해서 작가 이석원으로 처음 만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보통의 존재가 많은 사랑을 받았을 때 읽고난 이후 제대로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보통의 존재도 매우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 첫 책이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 책은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했던 강연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관계, 선택, 창작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강연한 내용이다보니 영상은 아니지만 강연을 보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문체도 말하는 그대로 쓰여진 것 같아 더 그런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더 성숙해지고 삶에도 관계에도 안정이 올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특히 관계란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 상처와 고민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는 왜 타인과의 관계에서 갈등과 상처를 받는지, 타인의 시선에 얽메이는지 고민하게 되는데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우리가 타인과 갈등을 빚고, 타인때문에 힘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도 견해도 기준도 다 다른 개별적인 존재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서로 엊갈릴 수밖에 없고 그 엇갈림에서 많은 문제들이 생길 수밖엔 없는 거죠. p.18


특히나 위험한 건, 사람이 누굴 안다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타인이 대해서 단정을 짓게 됩니다. p.24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실망시키거나 불편하게 하느니 차라리 괴로워도 자신이 힘들고 마는 게 더 나았다는 작가는 관계에서 거절을 잘 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거절을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절이 어디 쉬운가. 언젠가 인터뷰인가? 윤여정선생님은 싫은 건 좋게 말할 수 없다며, 좋게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화를 내거나 싸우지 않더라도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때가 이는 법이다. 나는 거절을 잘 하는 편인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주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불필요한 경우라면 냉정한 편에 가깝다.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고 싶은데 간혹 무심하고 냉정할 때가 있다. 그래서 관계가 어려운 것 같다. 적당한 온도를 찾기가 어려워서.


일단은 만나서 나 이런 부분들이 힘들고 서운했다, 이게 나만의 오해인 것이냐 묻고 대화를 해야하는데, 어떤 사람에게 그렇게 남한테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죽기보다 어려울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 대화를 하는 순간의 그 불편한 공기를 참느니 차라리 인연을 끊는게 더 낫겠다고 생각을 한다는 거죠. 또 애초에 그런 게 가능했으면 내키지도 않는 일은 거절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있었을 테고요. p.43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해받지 못했을 때 가장 고통과 상처를 받게 된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더 정이 가고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타인은 완벽하게 나와 같은 마음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지와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이해의 기준과 폭은 사람마다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타인도 이해하자. 왜, 그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니까. p.53


관계나 어떤 문제 앞에서 회피하기가 쉬운데 실패의 경험만 반복되다보면 자기탓만 하면서 자책하게 된다고. 작가역시도 글쓰기를 회피하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저도 아직은 세상이 나를 필요로 했으면 좋겠고, 나도 좋아하는 일 한번 하면서 살아보길 바랐지만 그게 잘 안 되니까 아무리 카드를 긁어도 마음 속 허기는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동그라미는 채우는 게 아니라 그저 안고 살면 되는건데. 동그라미는 누구에게나 있는건데. 그땐 그걸 몰랐죠. p.76


인생은 꼭 내가 선택한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삶의 변수로 작용하는 운과 우연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불필요한 자책을 피할 수 있다는 것. 물론 자책과 건강한 자기반성은 분명히 구분되어야겠죠. p.83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인생이 내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속상하고 관계는 애를 쓴다고 노력한만큼 결과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자유러워지고 싶고, 남들의 생각과 시선보다 내 생각고 의지대로 살고 싶어한다. 그렇게 나답게, 자유롭게 살아갈 때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강연을 들었던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강연이 책으로 남게 되어 다행이다. 삶은 정해진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그렇게 살아가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기분이었다. 세상에는 오직 본인만이 답을 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므로.


우리는 평생 세상에 어떤 답이 있어서 그걸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답이 존재하지 않거나 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직면하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는 오직 본인만이 답을 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걸 스스로 정하고 깨우쳐가는 게 어쩌면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긴 기다림 끝에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 하나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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