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은희경 지음 / 난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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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 못버린 물건들, 은희경


"이런 순정을 잊기는 어려운 일이다"

효율과는 상관없는,

오래된 물건이 건네는 조금은 소심한 위로!

12년 만에 선보이는 은희경의 신작 산문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에겐 또 못 버린 물건들이란 제목부터 이건 사야해!를 외치게 했다. 게다가 은희경 작가의 산문이라니 안 살 수가 없었다.

오래된 물건들 앞에서 생각한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해서 내가 되었구나. 누구나 매일 그럴 것이다. 물건들의 시간과 함께하며. p.11

오래된 물건들을 보면 물건 그 자체이기보다 그 물건이 내게 온 경로와 그 순간들을 함께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물건이 물건이 아니라 나에게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은희경 작가의 물건들을 술잔부터 구둣주걱, 인형, 목걸이, 달력 등 꽤 다양한 물건들이 등장한다. 직접 산 것도 있고 선물받은 것도 있다. 작가님이 등단한지 꽤 되었으니 많은 시간과 경험이 있을테지만 정말 다양하고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몽블랑 형광펜 잊지못해...)

나는 한때 비가 오는 날마다 한 사람을 생각했다. 바로 내가 우산을 선물했던 사람. 오늘 그 우산을 쓰고 나갔을까. 마음에 들었을까. 그런 날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또 생각했다. 지금 그 사람도 내가 선물한 우산 아래에서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짐작은 우산이 비 오는 날에만 사용되는 물건이기에 가능하다. 비 오는 날에는 내 우산을 보게 마련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우산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p.40

어떤 선물은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선물을 많이 주고받았을 때 더 기억이 선명해지는 것 같다. 내 우산 잘 있으려나.

선물이란 인사를 건네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물건에 만족하고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면 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그러니까 그냥 좋아하는 마음인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정확하게 생각하려고 애쓰는 조금 전 내 소설 주인공의 말을 다시 인용해보자면 나는 ˝가볍게 살고 싶다. 아무렇게라는 건 아니다˝. p.54

(생각해보니 선물 많지않지만) 모든 선물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선물로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엽서와 편지이다. 특히, 해외에서 날아온 편지 너무 소중해. (언니 보고 있나요?) 지난 날의 쓸모없는 편지도 있을 수 있겠으나 지나간 인연이든 지금도 소중한 인연이든 편지 속에 담긴 마음을 버리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시절 의미없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갖고 있다. 그 친구들는 알까. 내가 너희의 카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버릴 날이 오겠지만 다시 꺼내보고 이불킥을 날리는 편지나 울고싶어지는 편지도 지금은 그저 소중한 것들이다. 이미 끊어진 인연이라 할지라도.

물건들을 버릴 수 없게 만드는 데에는 거기 깃든 나의 시간도 한몫을 차지한다. 물건에는 그것을 살 때의 나, 그것을 쓸 때의 나, 그리고 그때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기억이 담겨 있으며 나는 그 시간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다. p.153

선물 외에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 중에 오래된 물건은 뭐가 있을까 찾아보았다. 산 건 아니지만 고등학교 명찰도 갖고 있고 오래된 편지들, 이십대 초반에 썼던 노트, 각종 기념품들, 수많은 사진들, 망가진 카메라, DVD나 CD, 너덜너덜한 만화책, 인형, 손수건, 좋아하는 책들까지. 잡다한 것들이 집안 곳곳에 쌓여있다. 정리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리를 하려고 하면 이건 이랬지, 저건 저랬지 하며 다 넣어두고 버리지 못하다가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많이도 버리고 버렸다고 생각했던 여전히 낡은 물건들이 많다. 누군가에게 쓰레기일 수 있는 물건들이 나에게 그 시간과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 방식이다. 소설 <이끼숲>에서 소마가 친구들이 자기를 잊으면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하다가 내가 기억하면 되지라고 말하던 장면을 생각한다. 내 기억에 담아두고 있으니 그 시간은 아직 내게 살아있다.


여전히 쓸모없어보이는 것들을 많이 산다. 작고 귀여운 것을 좋아하고 여전히 문구와 책들이 좋다. 그게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하고는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든 물건이든 필요한지 아닌지로 나누기 십상인데, 그 윗단계에는 '그냥'이라는 경지가 있다, 고 주장해본다. p.221


작가님의 그 경지, 아주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냥 좋은 게 있는거다.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그냥 좋은 사람, 그냥 좋은 물건이 좋다.


읽다보면 작가님이 자신의 작품 속 문장을 인용하여 이야기하거나 작품 속 관련된 물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출저를 정확히 써놓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책을 꺼내놓았다. 조만간 그 책의 필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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