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DOLL인 이 책에서의 DOLL 은 일종의 로봇이다. 사람 대신에 무엇이든 시키는대로 해주는 안드로이드.. 그들을 인형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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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 의 작가 미츠카즈 미하라의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절판이라 서점에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다. 나 또한 절판무렵에 나오는 덤핑책을 그야말로 우연히 구입했다.
구입당시에도 이 책을 읽고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어쩐 일인지, 이 책만 읽고나면 뭔가 끄적거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처분을 위해 오늘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역시나 이렇게 끄적이게 될 줄 이미 짐작했다..
옴니버스 형식의 만화다. 인형들이 인간에게 보내져서 겪는 이야기들을 단편단편으로 다루고 있다. <해피패밀리>를 봤다면 짐작하겠지만, 이 작가의 그림은 인형이라 불리는 안드로이드에 너무 어울린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는 눈, 표정없는 얼굴.. 인형으로는 딱이다. 배경을 절제한 컷들 또한 인형들의 무감정과 매치된다.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해야하는 인형들은
그 주인이 되는 사람에 따라 때로는 잔혹하게 다루어지고, 때로는 행복하게 지내기도 한다. 어떤식으로 지내든 결국 그들은 추악한 인간 욕망의 배출구일 따름이다.
단막 형식이긴 하지만 큰 줄기는 있다. 인형을 만드는 제조사인 SG와 SG사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의 이야기, 그리고 인형 불법 개조꾼으로 일하는 SG사 사장아들의 이야기.. 모두 다 참으로 서글픈 인생들이다.
LIST 1. a nameless doll
40년간 그녀의 곁에 있던 것은 소녀시절 선물받은 인형이다. 부자이긴 했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절망에 빠져있던 소녀.. 부모는 자신들의 책임을 인형에게 넘겨버린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의 정략결혼, 그리고 그 남자의 외도.. 그녀는 계속 외롭고, 그런 그녀를 돌보는 것은 한결같이 무표정한 인형이다.
아이를 낳지못해 남편 애인의 자식을 후계자로 인정해야 했다. 그 댓가로 얻은 것은 자신의 자유..
"네가 애써 만든 요리를 먹고 전부 토해버렸어."
"네에"
"알고 있었어? 어떻게?"
"저는 늘 당신만을 보고 있었으니까요."
"우습군. 주위의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걸 영혼이 없는 네가 알고 있었다니..."
그녀가 죽었을 때, 인형을 맡기 싫어하던 친족들은 인형을 그녀와 같이 화장시켜 버린다. 모든 재산이 인형에게 돌아가 있음을 알지 못한 채...
LIST 16. fake welfare
사고로 기억을 잃은 남자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사랑스런 아내와 딸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계속한다. 주변사람의 이상한 수근거림, 출근을 말리는 아내, 건강에 좋다며 만들어주는 스프, 그리고.. 통장에서 빠져나간 인형 두개를 살 수 있는 큰 돈..
남자는 자신이 더 이상 캐지 않는 것만이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인형이라 해도..
그러나 딸의 생일에 스프 대신에 먹은 케익은 그 행복을 깨었다. 아내는 울며 외친다.
"당신은 스프가 아니면 안돼요. 액체요리가 아니면...."
그래.. 사고로 죽은건 아내와 딸이 아니라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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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다. 읽고나면 생각할 거리도 많다. 6권으로 너무 길지 않아 가뿐하다. 감동도 느낄 수 있다.
대여점에서라도 보게 된다면 꼭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