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19금 )

 

1. 혹시 시정마(始情馬)라는 단어를 아시는지 모르겠다. 시작할 시(), 정사할 정(), 말 마() , 말 그대로 정사(情事)를 시작하는 또는 준비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수억 원을 호가하는 몸값 비싼 경주마들 중에서도 최고의 말로 뽑히게 되면 이른바 종마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1년에 수백 마리의 암말과 동침하는 꿈 같은 일(?)만 수행하게 된다.  그런데 발정기의 암말이 그리 온순한 상태가 아니라서 종마의 옥체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들의 꼼수가 발휘된다.


이른바 시정마의 등장이다. 시정마는 쉽게 말하자면 테이블세터의 역할을 하게 된다. 발정난 암말을 좀 더 성적으로 흥분시키고 교미하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것 까지가 시정마의 역할인데 이 전희의 과정에서 암말들에게 무수히 차이면서 심한 경우 다치기도 한단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 암말을 애무하고 흥분시키는 과정에서 자신도 심하게 흥분한다는 것( 왜 안 그렇겠는가? -_- )이다.  하지만 잔인한 인간들은 이 흥분한 시정마가 절대로 마무리(?)를 못하게 한다. 비싼 돈 들여 종마의 씨를 받으러 온 마주들이 이 별 볼 일 없는 시정마의 씨앗으로 자기의 암말이 잉태하는 것을 원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시정마는 안 끌려 나갈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 모습이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다고 한다. 버둥거리며 암말을 향해 소리치는 것은 예사고 눈물까지 흘린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시정마는 끌려 나가고, 무대가 준비된 상태에서 몸 값 비싼 종마가 유유히 등장하여 이미 흥분해 있는 암말에게 홍등을 걸고 승은(?)을 내리게 된다고 한다.


그럼 시정마는?


물론 시정마는 다음날에도 열심히 암말 애무만 담당한다. 바쁜 날에는 하루에 몇 마리도…. 하지만 시정마가 그토록 갈망하는 마무리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가끔 이를 긍휼히 여겨 1년에 한번 정도는 아무 씨를 받아도 상관없는 천한(?) 암말을 데려다 주어 맘껏 욕구를 발산케 해주는 맘씨 좋은 주인님도 있다는데 전체 시정마 중 이런 은혜를 받는 애들은 몇 안 된다고 하니 참으로 불쌍한 인생, 아니 마생(
馬生)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학창시절 나랑 같이 주말만 되면 밤거리를 헤매며 술을 마시러 다니던 녀석 둘이 있었다.

한 놈은( 철수라고 하자) 183에 생긴 게 손지창 느낌이 있어 외모로는 제법 먹어 주던 녀석인데 문제는 말이 어눌하여 겨우겨우 여자를 꼬셔오는데 까지는 잘 성공하는데 늘 그 이후를 감당 못하는 녀석이었다.

또 한 놈은(만수라고 하자) 외모도 그저 그렇고 말재주도 그냥 그런데, 용돈 풍족하고 늦게 귀가해도 집에서 아무런 잔소리 안 듣는 게 장점인 녀석이었다.

그럼 나는?  지금의 나를 보면 전혀 상상이 잘 안 되겠지만 여자 꼬셔오는 재주는 별로 없어도 일단 꼬셔온 여자들 재미있게 해주고 우호적이면서도 끈적한 분위기 조성하는 분위기 메이커로는 발군이었다. 유치한 농담과 각종 심리테스트부터 19금 농담까지 거의 서너 시간 여자애들 재미있게 해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집에 통금시간이 엄격히 정해져 있어 11시면 눈물을 머금고 술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우리 셋은 나름 역할분담이 잘되어 술집이나 거리에서 철수가 언니들 데려오면 내가 재미있게 분위기 이끌고 만수가 뒷마무리하는 조직적인 분업체제를 유지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연말,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 둔 이 맘 때였나 보다.


신촌 길거리에서 제일 눈에 띄는 아가씨들 세 명을 보고 우리가 시키기도 전에 용감한 철수가 고려시대 해동청처럼 날아가서 말을 걸고 아가씨들을 낚아채왔다. 그 중에 한 명, 정말로 예쁜 아가씨가 있었는데 딴 맘이 살짝 생겼던 나는 평소 보다 더 신나게 분위기를 띄웠다.

우리는 취해 가고, 아가씨들은 더 취해가고, 연말에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까지 겹쳐 살짝 갈 데 까지 가보자는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될 무렵, 아….. 야속하게도 시간은 11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모태 범생이었던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이리 같은 녀석들에게 아가씨들을 맡기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며칠 후 들은 얘기는 ….  



천하의 몹쓸 만수놈이 천인공노할 종마 짓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분위기나 띄워주는 시정마였고 … ㅠㅠ


아무튼 그 이후로 나는 분위기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접고 본연의 범생이 모습으로 되돌아 갔다.

요즘도 그 철없던 시절 신촌의 밤거리를 헤매며 하던 뻘짓들이 가끔 생각나는데 몇 일 전 오랜 중국 파견에서 돌아온 철수와 간만에 통화를 했다.


지금 철수는 모 대기업에 잘 다니고 있고, 만수 역시 모 증권사의 잘 나가는 애널리스트가 되어 있다(신문에도 자주 나온다 ㅎㅎ). 조만간 만나서 술 한잔 하자는 게 통화의 골자였는데….  아마도 술자리의 주된 안주는 여느때 처럼 시정마와 종마 얘기가 될 것 같다. 바쁜 시즌이라 술 마실 시간이 날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새해엔 세상의 모든 시정마들(어디 인간세상엔들 시정마가 없으랴)과 을(
)들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
)질 없는 세상을 기원하며.

 

 

 

 

2. 요즘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들.  이상하게도 항상 일이 바빠지면 책이 더 땡긴다. 

 

 

 

 

 

 

 

 

 

 

 

 

 

 

특히  <진짜 영어 공부>라는 책을 장난 삼아 읽었다가 나도 사전을 전부 외워보겠다는 무모한 욕심에 며칠째 열병처럼 시달리고 있다. 바쁜 사람들이 읽기엔 치명적이고 아주 어마무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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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4-12-23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정마라는 존재가 있군요.
그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주는 이야기네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물들을 저렇게 학대하다니!

연말은 늘 바쁘죠?
일도 많이 몰리고, 약속도 많이 몰리고요.
어서 시간이 지나 좀 한가해졌으면 좋겠네요.

야클 2014-12-23 10:28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잘 지내셨죠? ^^ 연말 송년회는 마무리되어 가나요? ㅎㅎ
사실 우리사는 세상도 궂은 일 하는 사람 따로, 맨 마지막에 숟가락만 얹는 사람 따로인 경우가 참 많죠. 내년엔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텐데요.

마립간 2014-12-23 0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10:25) - 저는 요즘 이 성경 구절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과연 아이에게 뭐라고 조언을 해 줘야 할지.

야클 님, 오랜 만에 인사 댓글 남기고 갑니다.

야클 2014-12-23 10:33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잘 지내시죠? ^^ 가끔씩 마립간님의 `학습 육아일기`는 관심있게, 또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주로 전철에서 읽느라 댓글도 못남겨 드렸네요). 꼼꼼한 밑줄 긋기도요.

바쁜 연말 마무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

무해한모리군 2014-12-23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티비에서 본적 있어요... 정말 너무 불쌍했어요 ㅠ.ㅠ

헌팅 같은거 한번 당해보는게 꿈이 었는데 저희들은 원체 촌스러워서 기회가 없었어요 ㅋㄷㅋㄷㅋㄷ
해보신게 어디예요!

야클 2014-12-23 10:34   좋아요 0 | URL
오잉? 의외군요. 헌팅을 못당해보셨다니요. ㅎㅎ

원인은 촌스러워서라기 보다는 너무 미모가 출중하셔서 남자 헌터들(?)이 아예 미리 포기를 한 경우가 아닐까요? ^^

다락방 2014-12-23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을 읽으니 헌팅 한 번 당해본 적 없는 제 과거가 떠올라 슬퍼지네요. 그런데 휘모리님은 왜 헌팅 안당해봤죠? 초미모인데...

어제 보쓰가 제대로 갑질하는 걸 봐서 오만정이 다 떨어졌어요.
갑질 하는 사람들은 나와서 눈물흘리고 고개 숙여봤자 어차피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 보쓰도 그런 뉴스를 보면서 갑질을 그만두겠죠. 처절하게 을이 되어 때려치지도 못하고 있는 제가 불쌍하지만..

야클님, 우리 잘 지내보도록 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ㅠㅠ

야클 2014-12-23 10:39   좋아요 0 | URL
ㅎㅎ 여전히 그 보쓰는 다락방님께 스트레스를 주고 있나 보군요. 어쩔 수 없는 그쪽 부류 사람들의 특징인가봐요. 항상 장 봐 와서 상 차리는 사람들 따로, 숟가락만 들고 앉아서 음식타박이나 하는 사람 따로... 별로 종마같지도 않은 것들이 종마 행세를 하니 참... -_-;

그나저나 내일이면 무려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ㅎㅎ 즐겁게 보낼 준비 잘하시길!

단발머리 2014-12-23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모태 범생님이 주도하시는 우호적이면서도 끈적한 분위기, 완전 보고싶은데, 이제는... 나이가 안 도와 주네요.
아니예요. 외모가 안 도와 줍니다~

저도 위에 <진짜 영어공부> 눈여겨 보고 있어요. 저자 블로그에도 가보고요. 대략봐서는 귀에 솔깃한데요.
정말 가능할까요? 사전을 통채로 외우는게요. T.T

야클 2014-12-23 10:4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안녕하세요? 여전히 머리는 찰랑찰랑 단발이신가요? ㅎㅎ

저도 대충 훑어본다는게 후딱 다 읽었는데. 요 며칠째 사전만 만지작 거리면서 무모해 보이는 사전암기에 도전해 볼까 고민이에요. ㅎㅎ 저자 이혜영님이 언어의 귀재니까 가능한 학습법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요. 혹시 도전 시작하시면 살짝 알려주세요. ^^

stella.K 2014-12-23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명글이군요!!!
시정마가..............!ㅠㅠ
하여튼 인간 세계나 동물 세계나 좀 씁쓸하네요.

헉, 이거 이런 뜻이 아니었는데...왜 이러죠?
그런데 책 정말 많이 읽으시네요.
특히 저 권력의 법칙이나 기드 모파상의 책은 만만치 않을텐데요.
아무튼 메리 크리스마스구요, 해피 뉴 이어 하시라구요. 3=3=33

야클 2014-12-23 12:32   좋아요 0 | URL
와우~ 오랜만이에요 ㅎㅎ
안그래도 그 두 권은 두툼해서 틈날 때 마다 조금씩 보는 책이에요. 한호흡에 읽다간 좀 지칠 것 같아서요.
스텔라님도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근사한 새해 맞이하세요.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

레와 2014-12-23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 전 설마설마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런 말이 있다는 것 조차 몰랐어요. 네. 제가 모르는게 어디 이 뿐이겠습니꽈. ㅡ.ㅜ


무튼.
야클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요~*
건강 조심하시구요!

야클 2014-12-23 18:13   좋아요 1 | URL
ㅎㅎ 레와님 오랜만 ^^

시정마 너무 불쌍하죠 ㅠㅠ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맛난 음식 눈 앞에서 보여만 주고 먹는 건 늘 엉뚱한 넘들이 먹으면서 약만 올리면 아마 돌아버릴거예요.

하여간 레와님도 크리스마스 즐겁고 `화려하게` 보내세요. ^^

yamoo 2014-12-23 1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시정마가 있다는 걸 야클님으로부터 첨 듣네요...근데, 야클님은 그 시정마 역할을 줄창 했네요..--;;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
친구분들이 다 잘나가는군요. 역시 야클님두 잘 나가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글이네요^^ 학창시절 범생이 나중에 한자리 차지하는 걸 무수히 봐 온지라..^^;;

야클 2014-12-23 23:14   좋아요 0 | URL
yamoo님 안녕하셨어요? ^^ 가끔씩 님서재에 놀러가 밀린 글들(특히 수트에 대한 글! 놀랐어요 ^^) 종종 읽곤 했는데 게을러서 댓글까지는 못남겼네요. 사실 저 별로 잘 못나가구요.... -_- 하지만 미식축구 전진하듯이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고는 있습니다. ㅎㅎ 새해엔 우리 같이 잘 나가봐요~ ^^

무스탕 2014-12-23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시정마는 티비에서나 볼 수 있을줄 알았더니 야클님 글로도 읽다니요.. ㅎㅎㅎ

바쁘신 시기가 돌아 왔다니 건강 잘 챙기시고 연말 따땃~하게 보내세요 ^^

야클 2014-12-23 23:20   좋아요 0 | URL
무스탕님 반가워요 ^^ 제가 요즘 서재활동이 뜸해서 자주 뵙지를 못했네요.
시정마를 TV에서 했나보죠? 전 신문기사에서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무스탕님도 연말 즐겁게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엔 엄청 행복하세요 ^^

transient-guest 2014-12-30 0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문득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요.. 시정마...-_-:
연말 잘 보내시고 희망찬 새해 맞으시길..

야클 2014-12-30 23:21   좋아요 0 | URL
어인 사연이 있으시길래 시정마 생각이... ㅎㅎ
님도 연말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첫날 좋은 꿈 꾸세요 ^^

마태우스 2015-01-13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오랜만. 여전히 이런 아름다운 글을 쓰고 있군. 이 글은 정말 다른 사람들이 배워야 할, 멋진 글일세. 나 역시 시정마 자질이 있는데, 반갑네. 근데 꼭 마무리를 해야 즐거운 건 아니지. 분위기 띄우는 것도 알고보면 큰 재미인데.

야클 2015-01-13 23:56   좋아요 0 | URL
앗! 마교수님 아니신가? ㅎㅎ 어인 일로 이리 누추한 서재를 다.... ^^
우리 모두 한때 종마를 꿈꾸던 시정마로서 (아니 마교수는 시정마의 삶을 궁금해 하던 종마였는지도... -_-) 조만간 밥이나 한잔 합시다. ㅋㅋ

마태우스 2015-01-14 12:55   좋아요 0 | URL
흥, 밥이나 먹자고 해놓고 또 일년 끌려고 그러지?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보다 야선생이 훨씬 더 바빴던 것 같아. 지난 2년은 나도 좀 바빴고....올해는 덜 바쁘려고 하니까, 시간 한번 맞춰보자고!

야클 2015-01-14 14:05   좋아요 0 | URL
ㅎㅎ 나야 땡큐지. 요즘 술은 많이 못할테니 그전처럼 밥으로만 4차까지 달려 보지뭐. ^^

paviana 2015-01-1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밥으로 4차라니...정말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ㅎㅎ

야클 2015-01-15 00:12   좋아요 0 | URL
파비님 오랜만 ㅎㅎ 같이 밥 먹은 지가 언젠지..... 파비님도 같이 4차까지 한번 달려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