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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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괄량이 길들이기>, <좋으실 대로>, <십이야>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4대 희극’으로 불린다는데, 왜 여태 나는 셰익스피어한테 ‘4대 희극’이란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을까. 이 목록은 ‘출판사 제공 책 소개’라는 글에서 처음 읽었다. 암만해도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것 같다. 왜냐하면, 흔히들 이야기 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는 대단히 탄탄한 구성과 복잡한 인간 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반면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이번에 읽은 <한여름 밤의 꿈>에 국한해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해보자면, 아직은 걸작을 만들어낼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상태였다, 라고 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예전에 읽고 천하의 셰익스피어도 날 때부터 걸작을 줄줄이 쏟아냈던 건 아니라는 진리를 알게 되어, 초기 작품은 될 수 있으면 읽지 않으려 했었다가, 존 파울즈가 쓴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안에 이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그래,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 한다면 이번에 읽자고 마음을 먹어 구입해서 읽은 거다.
 책을 열면 첫 번째 대사를 하는 인물이 놀랍게도 아테네의 왕자로 일찍이 크레타 섬에 잠입해 미노타우로스를 쳐 죽이고, 괴물의 동복이부 동생 아리아드네를 버린 전적이 있는 테세우스다. 상대역 히폴리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헤라클레스가 쳐 죽인 여인 무사가 아니라 좀 변형된 전설에서 나온 인물로, 한쪽 유방이 없는 여인 전사들인 아마조네스를 이끌고 테세우스와 싸우다 부상을 당해 포로가 된 다음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투스를 낳은 전설 속 인물. 아직 테세우스와 히폴리타가 히폴리투스를 만들기 위해 모종의 작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둘이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부터 당일까지 약 36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또 극에 드라마틱한 전환점을 만드는 역할은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여왕 티타니아, 그리고 그들의 종복인 퍽이 담당한다. 이들은 각기 그리스 로마 전설과 (역자 해설을 보니) <보르도의 휴온>에서 따왔다 하니 작품의 주연으로는 함량 미달.  그때나 지금이나 극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재는 역시 남녀관계다. 그중에서도 한 커플이 순조롭게 연애하고, 조금 갈등하는 척하다가 결혼에 골인 하는 건 16세기나 21세기나 관객들이 똑같이 진부하게 여기기 때문에 좀 복잡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만든 구성이, 드미트리우스는 헬레나와 약속한 사이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허미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허미아의 부친 이지우스의 마음을 확실하게 잡아버렸다. 허미아는 그러나 라이샌더와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 당시 아테네에서는 결혼에 관해서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처녀에게 주어지는 것은 딱 두 개. 하나는 죽음, 또 하나는 평생 수도원에 들어가 영원한 처녀로 사는 일. 당신과 당신 파트너가 허미아와 라이샌더와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할 거 같은가. 그렇다. 이들도 당신 생각과 같은 일을 저질러 버린다. 이름하여, 야반도주.
 여기서 혜성처럼 등장하는 커플이 바로 오베론과 티타니아. 이 요정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베버의 <오베론>에선 여자와 남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진실한 사랑을 하는가 가지고 난리굿을 펴더니, 이 책에선 훔쳐온 미소년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펴다가 오베론이 약효가 평생을 가는 사랑의 묘약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래 종복 퍽을 시켜 티타니아와, 인간들의 원만한 행복을 위해 드미트리우스의 눈에 바르라고 시켰는데, 명령문이 참으로 애매해서 (아테네 복장을 한 잘생긴 젊은 남자 눈꺼풀에다가 발라버려!) 퍽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아테네 남자 라이샌더의 눈꺼풀에다 묘약을 덕지덕지 발라버린다. 그래 티타니아는 나귀로 변신한 ‘바틈Bottom’이란 장사꾼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라이센더는 눈을 뜨자마자 함께 야반도주를 한 허미아가 키가 작다는 걸 이유로 “가 버려, 이 난쟁이야. 성장억제 풀 먹은 초왜소 생명체야. 이 염주 알, 도토리야.”라고 거친 말을 퍼붓고는 곧바로 헬레나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호소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안 알려줌.
 또 재미난 것이 <한여름 밤의 꿈>에서 ‘극중극play-within-a-play’을 연출한다는 것. 극중극 도중 당대의 권력자 테세우스와 히폴리나, 그리고 주인공들이 숱하게 끼어들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역자의 의견으로는 그 극중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씨앗일 수도 있단다. 그러나 너무 기대하지 마시라. 그만큼 재미있지는 않으니.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등을 읽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 독자들은 그냥 기념 삼아 한 번 읽어보실 만하다. 난 이제 정말로 그의 초기작품은 읽지 않겠다. 그것들 말고도 읽을 책은 많고 많거든. 안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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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창비시선 421
임경섭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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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5부로 되어 있는 시집. 목차가 끝나면 나오는 1부의 제목이 “아내는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 나에게 아내는 얘기하고 있었다”. 이거 뭐지? 말장난? 요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도의 속임수 또는 암호를 경험하게 되는 건 아닐까, 조금 불안해하며 첫 번째 시를 읽는다.



 크로아티아 비누



 나카타는 목욕을 할 때마다 신혼여행지에서 산 비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의 고향에선 볼 수 없던 대리석 문양의 비누였다


 나카타는 목욕을 할 때마다 신혼여행지에서 산 비누를 바라보며 그곳의 짙푸른 해안선을 한참이고 떠올렸다 그곳은 시간을 두고 촘촘히 흘러내린 비누의 마블링 같은 섬들로 가득했다


 (중략)


 나카타는 목욕을 할 때마다 아내 없이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해 고민하며 욕실 나무 선반 위의 비누를 바라보았다 비누는 몸집이 부쩍 작아져 있었지만 아내는 살아 있는 한 닳지는 않을 거란 생각에 나카타는 안도했다


 그리하여 나카타는 목욕을 할 때마다 닳아 없어지지 않을 아내를 생각하며 아내만큼 소중한 크로아티아 비누를 매만졌다 아낄수록 비누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10~11 쪽)



 흠. 낯설다. 도대체 시인은 무엇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을까. 아니, 노래는 사라져버렸다. 혹시 임경섭은 시를 통해 한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뭐 이국풍경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일단 판정을 보류하고 다음 시를 읽는다. 이 시집 전체를 감상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모멘트가 되는 작품이라 길지만 전문을 인용한다.



 플라스마



 헤르베르트 그라프는 그의 아내에게 오로라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나고 자란 고장에선 오로라를 볼 수 없었다
 같은 고장에서 나고 자란 아내 역시 한번도 보지 못한 그것을 끔찍이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결혼 3주년이 되던 날 근교로 나간 헤르베르트 그라프는 멀찍이 샛노란 해넘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 테라스에 앉아 아내에게 말했다
 죽기 전에 너에게 오로라를 보여주고 싶어
 그러자 아내는 검붉은 가을 수수밭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의 아내 혼자서 오로라가 보이는 곳으로 가도 된다는 말이야?
 아내의 질문에 헤르베르트 그라프는 한쪽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지 나는 분명 아내에게 오로라를 보여주고 싶었지
 그렇지만 일찍이 스스로 오로라를 보고 싶단 마음도 갖고 있었어
 그렇다면 내 말은 내가 오로라를 보기 위한 수단으로 아내를 이용하겠단 뜻일까


 헤르베르트 그라프는 꼬았던 다리를 반대로 다시 꼬는 동안 상체를 아내 쪽으로 은근히 숙이며 말했다
 죽기 전에 너와 오로라를 보러 가고 싶어
 그러자 아내는 푸르르 떨리는 진보랏빛 유성 같은 입술로 물었다
 당신은 오로라가 보고 싶은 거야, 오로라가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은 거야
 아내의 질문에 헤르베르트 그라프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 오로라를 보는 일은 검색으로 가능한 일이지
 그래도 나는 태양의 입자와 지구의 자기장이 부딪는 곳에 서서 그것들의 발광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이었어
 그래서 내 말은 오로라가 보이는 곳으로 가되 거기서 오로라를 보지 못해도 된다는 뜻일까


 헤르베르트 그라프는 의자에서 일어나 아내에게로 돌아가 그녀의 팔걸이에 걸터앉으며 다시 말했다
 죽기 전에 오로라가 보이는 곳으로 가 너와 함께 오로라를 바라보고 싶어
 그러자 아내는 북극점으로부터 불어오는 텅 빈 바람 같은 눈빛으로 물었다
 생애 단 한번 맞이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왜 당신과 함께해야 하지? 지치도록 평생을 함께할 당신과 말야
 아내의 말에 헤르베르트 그라프는 한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며 웃기 시작했다


 다시없을 이 밤 아내와의 귀갓길은 그에게 아프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고 허전하지도 않았고 가득하지도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헤르베르트 그라프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지나가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12~14쪽)



 이 시를 읽고 나서야 1부의 제목이 “아내는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 나에게 아내는 얘기하고 있었다”인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첫 번째 시의 주인공 나카타와 두 번째 시의 주인공 헤르베르트 그라프는 모두 시인의 다른 모습일 뿐이란 걸 눈치 챘다. 그런데 ‘나카타’는 일본의 국가대표 축구선수? 헤르베르트란 이름을 쓰는 요즘 독일 사람은 별로 없다. 독일 라이프치히를 장소로 하는 시들이 등장하고 게반트하우스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경섭은 서양 고전음악을 좋아한다고 봐도 무방하니, 혹시 헤르베르트란 이름은 카라얀에서 가져온 건 아닐까. 성姓 ‘그라프’? 저 뒤에 보면 테니스 월드 스타 슈테피 그라프가 등장하니 그녀의 이름에서 슬쩍 따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시인이 스포츠팬인 것이 거의 분명하다. 우리나라 이민 2세로 미국 프로야구 선수로 행크 콩거(별명, 본명 ‘최현’)란 젊은이가 있다. 그를 슬며시 등장시켜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까지의 짧은 시간을 그리는 시가 있고, 슈테피 그라프와 숙적이었던 나브라틸로바까지 등장시킬 정도. 그 외에도 작가, 작품의 등장인물 등도 시 속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니 이런 능청스러움이라니.
 위의 시 <플라스마> 역시 헤르베르트 그라프와 그의 처 사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언어로 하는 의사소통의 불명확성을 이야기하며, 사실 그와 같은 대사는 그라프 부부  자리에 이수일과 심순애, 노미호와 주리혜, 철수와 영희를 가져다 놔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잖은가. 이때쯤, 한국 시에 한 이종 또는 변종이 태어났다고 양 입술을 한 번 찢어 가볍게 웃을 줄 아는 것도 괜찮은 일일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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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대산세계문학총서 149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 지음, 양장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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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작품의 주인공 이반 촌킨에 대하여 간략하나마 소개를 하고 시작해야겠다. 촌킨은 소비에트 연방의 붉은 군대에 소속되어 있는 말년 병장인데, 커다랗고 붉은 귀를 달고 다니는 키 작은 앙가발이. 즉 가뜩이나 작은 키에 팔과 다리마저 짧고 굽어 있었다. 그래 입대한 다음부터 거의 모든 훈련을 면제받는 열외사병으로, 소비에트 연방 군대에서 촌킨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훈련은 정신교육 말고는 없었다. 1941년 5월 말이나 6월 초에 이야기는 시작해, 늘어져봤자 6월 말이나 7월 초에 끝나니까, 시대는 역사상 최고로 절대존엄이었던 스탈린 체제 아래였다. 당시 ‘스탈린’이란 이름이 얼마나 지엄했느냐하면, 하필 스탈린이란 이름을 가진 늙은 갖바치 유대인을 검거한 비밀경찰마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가 절대 유대인이 아님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멀고 먼 친인척 관계라도 있을까봐, 아니면 자기 입으로 감히 ‘스탈린’이란 이름을 부르면서 행여 자그마한 실수라도 할까봐 정중하게 기소를 면제해줄 정도였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말년 병장 촌킨이 하루는 정신교육을 받으러 집합을 하게 됐는데, 촌킨을 볼 때마다 악의적인 골탕을 먹이고는 하던 사무시킨이란 병사가 촌킨의 옆구리를 쿡쿡 질러가며 기어이 촌킨으로 하여금 정신교육 담당 장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저기 스탈린 동지한테, 마누라가 둘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질문을 받은 장교 야르체프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책을 인용하면 이렇다. “야르체프는 마치 몸의 어느 한 곳을 송곳에라도 찔린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그는 분노와 경악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자, 자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런 일에 나를 끌어들일 생각일랑은 하지 말게.’ 그는 이내 자신이 뭔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꼭 다물었다.” (39쪽)
 시대가 이랬고, 촌킨이라는 인물의 성격이 이렇다. 이런 촌킨이 1940년대 소비에트 군대에서 담당할 수 있는 보직은 말 돌보는 일. 여기서 말horse이라고 함은 1차 세계대전 당시까지 있었던 경기병, 철기병, 용기병 등에서 활약하는 위풍당당한 말이 아니라 그저 부식이나 의복, 장비 등을 나를 때 수레를 끄는 말을 일컫는 것이니 모든 사람이 촌킨을 좀 무시하고 지나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군역을 치룬 사람이라면 다 아시다시피, 사실 이런 보직이 꿀 보직이라, 부식 운송이면 식당과, 또 군수 요원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어 먹는 것, 입는 것에 관한 한 별 어려움 없이 지겨운 군대 생활을 지워갈 수 있었다. 지가 입대를 했으니 이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지, 그냥 촌구석에 박혀 있었으면, 1940년대 소련에서 하,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어. 그럼 뭐하나. 사람 생긴 꼴이 워낙 못생기고 앙가발이에 지나지 않으니 아무리 잘 먹고, 잘 입어도 영 태가 나지 않은데다가, 군사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해 경례 하나 교본대로 하지 못해 까다로운 상급자 눈에 띄었다 하면 즉각 엎드려뻗쳐, 기상, 엎드려, 기상, 반복,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이런 기합이나 받는 주제인 것을.
 이런 시절인데 우크라이나 동쪽 주변에 있는 것 같은 농촌지역 크라스노예 마을에 1920년대에 맹위를 떨쳤던 날개 네 개짜리 U-2 비행(복엽)기가 이제 수명이 다해 운명을 하느라고 하늘에서 혼자 사는 노처녀 여자 주인공 뉴라(‘안나’의 애칭) 벨라쇼바 네 집 지붕을 스칠 듯 곤두박질쳐 불시착을 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이 비행사가 속해 있던 부대에 촌킨이 복무하고 있었고, 불시착을 보고받은 부대장이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가, 매사에 어디 쓸 데가 없어 보이는 촌킨을 일주일 치 전투식량과 함께 다른 비행기에 태워 뉴라네 집 근처 불시착한 비행기 옆에다 내려주고, 비행기를 지키라고 보초를 세우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붙기 시작한다. 원래부터 시골 출신인 촌킨이 바로 옆 텃밭에서 감자를 심고 있던 스물두 살 노처녀 뉴라에게 접근해 슬슬 밭을 갈아주기 시작한다. 밭일 도와주던 남자라고는 브나로드 비슷하게 잘난 척하려 농촌을 방문했던 도시 출신 청년들만 알고 있던 터라, 자기보다 몇 배는 더 능숙하게 밭을 가는 이반을 보고 뉴라의 마음도 점점 동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소설이잖은가. 그래 사령관의 명령을 받지 못하니까 결혼은 못한 채 그냥 동거 비슷하게 함께 살게 되고, 사령관은 자신이 촌킨을 이미 고철 수준으로밖엔 생각하지 못하는 복엽기를 지키라고 보초로 보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1941년 6월 22일, 히틀러의 명령에 의하여 키예프에 폭탄을 퍼부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여기까지가 1부.
 이 책은 여태껏 내가 떠들었던 내용보다는 스토리를 이어가면서 그 속에 담긴 포복절도할 풍자와 해학을 읽는 것이 진짜다. 작가 보이노비치의 아버지가 세르비아 계인데, 일찍이 반 소비에트 선전선동죄로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 전적이 있고, 유형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독·소 전쟁에 참전한 바 있으나, 굳이 부친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선입견까지는 필요 없을 것. 당시 선전선동죄라면, 위에서 얘기한 일화, 스탈린한테 마누라가 둘 있다면서요, 라는 거 한 마디만 가지고도 충분히 총살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는데 유형이라면 정도가 매우 가볍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보이노비치가 작가로서 평소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반체제 작가로, 정부가 문학계에 저지르는 반문화적 행위에 대해서 빠짐없이 따박따박 반대를 해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소비에트 작가 동맹에서 퇴출당하고, <이반 촌킨>이 서방에서 먼저 출간되자 열 받은 KGB에 의하여 독살 시도까지 했을 만큼 이 책 속에 숱한 독설을 퍼부어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이 생각났다. 둘 다 지독한 코미디 풍자와 독설로 무장했으나 존 케네디 툴은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자살했고, 블라디미르 보이노비치는 서쪽 사람들이 자기 작품에 열광해서 하마터면 골로 갈 뻔하지 않았는가. 툴은 대학원까지 졸업한 서른 살 넘은 룸펜 프롤레타리아 뉴올리언스 뚱보의 고독을, 보이노비치는 글자를 겨우 익힌 (거의)무학의 앙가발이 촌놈이 벌이는 거대한 좌충우돌을 그렸다. 무슨 짓을 하기에 ‘거대한’이라고 하느냐고? 좋다, 마음을 크게 써서 가르쳐드리지. 이반 촌킨. 이 자가 무려 장군이 지휘하는 일개 연대 병력과 한 판 승부를 겨룬다는 것만. 이 책이 <촌킨>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다 읽고 감상문을 쓰면서, 얼른 두 번째, 세 번째 작품도 번역해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 이건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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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집 이층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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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사 읽은 최초의 시집. 그건 신경림의 <농무> 1975년 증보판이었다. 우리나라 시인들의 로망인 ‘창비시선’의 1번을 장식한 시집. 당시 사 읽었던 창비 시선집들. <농무>를 시작으로 조태일의 <국토>, 김현승의 <마지막 지상에서> (내 큰 아이에게 이이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 민영의 <용인 지나는 길에>, 이성부의 <백제행>,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등등. 갓 열아홉 살의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세상에 이런 시들이 있었는가, 지난 세월 교과서를 통해 감상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시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발언을 하는 시, 인간 삶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아도 이렇듯 아름다운 서정시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시각을 얻기에 이르렀다(젊은이들은 믿을 수 있을까? 이 가운데 <농무>, <국토>, <한국의 아이> 등이 금서였다는 걸. 그래도 다 사서 읽는 방법은 있었지만). 그러나 이후 여러 번에 걸친 이사와 군역과 사회생활의 와중에 당시에 사서 읽고 놀라움을 얻었던 시집들은 어느덧 흐지부지 없어져버리고, 이제 내 책꽂이에 꽂힌 <농무>는 한참이 흘러 다시 산 1997년 개정판 9쇄다. 시인 신경림은 우리나라 현대시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서정시인이다. 강철 총칼의 시대에 쟁기며 보습을 노래했던 시인. 이젠 문단의 진정한 원로로 애정어리지만 올바른 시선으로 한국문학과 작가, 시인들을 바라보는 이. 이이의 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사진관집 이층>의 첫 장을 넘기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농무>, <새재>와의 사이에 벌써 40년 시간의 간극이 있었으니.
 시인은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30년 이상을 살고, 안양시 비산동 489-43에서 노망난 할머니와 노부모를 모시고 살았으며, 40이 조금 넘어 상처한 홀아비로 지낸 듯하다. 어느새 85세의 노인. 그러나 “늙은 지금도 나는 젊은 때나 마찬가지로 많은 꿈을 꾼다.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 때로는 그 꿈이 허황하게도 내 지난날에 대한 재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꿈은 내게 큰 축복이다. / 시도 내게 이와 같은 것일까.”라고 말한다(119쪽 '시인의 말').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거의 모든 시인들의 공통점이었던 가난의 굴레에서는 벗어났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시집 속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키예프, 캄보디아, 일본, 중동을 방문한 느낌을 적은 시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시인의 말’에서 이이가 이야기한 꿈은 생활의 개선이 아니라 아직도 시를 쓸 수 있는 감수성을 말하는 것 같다. 많은 시인들이 50세를 앞뒤로 해 단 한 순간에 시를 쓸 수 있는 감수성이 확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경림은 여든이 넘은 노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새 시집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년에 이른 시인들의 많은 작품들 속엔, 일면 아쉽기는 하지만, 바람직하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하게 자신의 지난 과거 속의 일, 지금 살아가며 보이는 것들에 대한 ‘담담한 독백’이 들어 있다. 지난 시절에는 쓸 수 없었거나 쓰기 힘들었던 자연스런 삶의 시어로 그린 일상. 혹시 노년에 이르면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별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47쪽. 전문)



 나이 들어 별이 보인다는 건, 젊어서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 이제 어두워져 더 넓어진 눈으로 하늘을 보니 별이 보이고, 지나간 삶,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삶 속에서도 젊어서는 보이지 않았던 편안한 시선이 보이는 현상. 이런 게 정말 일어날까? 아직 이이만큼 살아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다른 노시인들의 시를 봐도 그럴 거 같다.
  세월은 흐르는 것. 삼십대 젊은 시인이 이제 80대가 되고, 1960년대 농촌의 생명력과 삶의 절망과 소외는 도시인의 가난과 생활과 곤고함으로 변했다가, 세상 각처에 있는 건강미와 가난과 질병과 재해에 노래하기도 하고, 우리사회에서 가장 소외당하고 멸시받는 노숙자를 품에 안고 그를 예수라고 부르는 것으로 늙은 시인은 시집을 마감한다.
 시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살아왔던 흔적을 이렇게 노래한다. 이 노래가 신경림인 거 같아 소개하며 미욱한 글을 마친다.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32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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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6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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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맨스티
최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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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오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보면 책꽂이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대표작 <부영사副領事>가 보인다. 지금도 계속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민음사 이데아 총서 시리즈 열일곱 번째 책으로 1984년 초판본이다. 당연히 금속활자로 찍었으며 모든 페이지의 변두리 부분 종이 색이 갈색으로 변해있다. 이 책의 역자가 최현무崔賢茂. 필명이 최윤. 이이는 서강대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고 엑상프로방스(여기 동문이 아마 김화영, 김치수 등일 걸?)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구로 박사 취득, 귀국 후 우리나라에 뒤라스를 본격 소개한 1세대 비슷한 인물이다. <부영사>가 나오고 2년 후, 현 이대 명예교수 김인환이 문학사상사에서 단편집 『복도에 앉은 남자』를 번역해 출간했는데, 책 속에 <애인>이란 좀 긴 단편이 들어 있다. 이 <애인>은 1992년, 제인 마치와 양가휘 주연의 영화가 <연인>이란 제목으로 히트를 치자 이후 제목을 <연인>이라 바꾸어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된다. 말이 길어졌다. 최윤이 마르그리트 뒤라스를 전공한 작가이고 그래서 이 책 <오릭맨스티>를 읽어보면 뒤라스도 속해 ‘있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 누보로망 계열의 문법, 문장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윤의 책은 나도 사실 이번이 네 번째 읽은 것에 불과하며, 최근에 읽은 <겨울 아틀란티스>도 벌써 20년 전 이야기라, 이이의 작풍作風이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또한 그걸 확인하기 위해 지금 새삼스레 다시 읽어볼 생각도 없고. 하여간 내가 평소에 최윤을 상당히 높게 평가해왔던 것에 비하면 의외로 적은 작품만 읽은 건 사실이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그동안 먹고 사느라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를 대야할 것 같다. 빵은 언제나 예술보다 앞서니까.
 <오릭맨스티>는 짧은 장편이다. 누보로망 비슷한 작품을 만일 500쪽을 넘게 장편으로 만든다면 그걸 쉽게 읽어낼 독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짧고 건조한 문장. 대화의 부재. 서걱대는 남자와 여자가 별 의미 없이 연이 맺어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그래도 긴 시간을 묘사한다. 이름도 주어지지 않은 그냥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애틋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어영부영 결혼에 이르게 되는 많은 커플의 한 정형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 말 시점. 그냥 소개로 만나 별 의미 없는 미지근한 데이트를 하다, 결혼이나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났다는 공통점 하나 가지고 덜컥 맺어진 이들. 작가는 처음에 그냥 ‘남자’와 ‘여자’ 이렇게 소개팅을 한 커플을 만들어놓고, 이들의 연애 비슷한 걸 무작정 따라가면서 관찰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반 지하 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남자는 회삿돈을 야금야금 삥땅하기 시작하고, 여자는 한 번의 임신중절을 하고, 투 잡(two job)을 하며 돈 모으는 재미에 각종 금융권에 관심을 두고, 남자는 출장길을 이용해 일 년에 서너 번 여자를 사고, 여자는 주식 투자 중에 전직 은행원이었다는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며 가용자산 총액의 절반을 사기당하고, 삼대독자 아들을 낳았는데 이게 남편의 아이인지 전직 은행원이었다는 사기꾼의 아이인지 도대체 구분을 못한 채, 지방 소도시에서 살던 시어머니를 불러 아이 양육을 부탁하다가, 기어이 작은 아파트 하나를 사 이사를 가고, 생애 첫 번째의 거창한 부부동반 휴가 도중에 사고를 당한다.
 물론 이것이 내용의 전부는 아니다. 다만 더 이상의 스토리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뜻일 뿐.
 전적으로 아마추어인 내 생각으로 말하자면, 남자와 여자, 두 주인공에게 특별한 사건, 휴가 중 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스토리를 만들고, 그것을 엮어나가는 일은 전적으로 작가의 권리다. 그걸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그냥 별 의미 없이 사는 한 부부의, ‘의미 없는 삶을 산다는 의미’에 대하여만 건조하게 조망해보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일 뿐.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앞부분에서는 모래알 같은 문장들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위나 의도를 짚어내는 것에 관심이 갔으나, 휴가 중 사고부터는 어째 좀 무리하게 스토리를 이어나가지 않나 싶은 것이, 앞에서 공들여 만들어나갔던 특유의 분위기가 망가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는 말을 이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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