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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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괄량이 길들이기>, <좋으실 대로>, <십이야>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4대 희극’으로 불린다는데, 왜 여태 나는 셰익스피어한테 ‘4대 희극’이란 것이 있었는지도 몰랐을까. 이 목록은 ‘출판사 제공 책 소개’라는 글에서 처음 읽었다. 암만해도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것 같다. 왜냐하면, 흔히들 이야기 하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는 대단히 탄탄한 구성과 복잡한 인간 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반면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이번에 읽은 <한여름 밤의 꿈>에 국한해 솔직한 감상을 이야기해보자면, 아직은 걸작을 만들어낼 역량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상태였다, 라고 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으로, 예전에 읽고 천하의 셰익스피어도 날 때부터 걸작을 줄줄이 쏟아냈던 건 아니라는 진리를 알게 되어, 초기 작품은 될 수 있으면 읽지 않으려 했었다가, 존 파울즈가 쓴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안에 이 작품 <한여름 밤의 꿈>이 거론되는 것을 보고, 그래,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 한다면 이번에 읽자고 마음을 먹어 구입해서 읽은 거다.
 책을 열면 첫 번째 대사를 하는 인물이 놀랍게도 아테네의 왕자로 일찍이 크레타 섬에 잠입해 미노타우로스를 쳐 죽이고, 괴물의 동복이부 동생 아리아드네를 버린 전적이 있는 테세우스다. 상대역 히폴리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헤라클레스가 쳐 죽인 여인 무사가 아니라 좀 변형된 전설에서 나온 인물로, 한쪽 유방이 없는 여인 전사들인 아마조네스를 이끌고 테세우스와 싸우다 부상을 당해 포로가 된 다음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투스를 낳은 전설 속 인물. 아직 테세우스와 히폴리타가 히폴리투스를 만들기 위해 모종의 작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둘이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부터 당일까지 약 36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또 극에 드라마틱한 전환점을 만드는 역할은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여왕 티타니아, 그리고 그들의 종복인 퍽이 담당한다. 이들은 각기 그리스 로마 전설과 (역자 해설을 보니) <보르도의 휴온>에서 따왔다 하니 작품의 주연으로는 함량 미달.  그때나 지금이나 극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재는 역시 남녀관계다. 그중에서도 한 커플이 순조롭게 연애하고, 조금 갈등하는 척하다가 결혼에 골인 하는 건 16세기나 21세기나 관객들이 똑같이 진부하게 여기기 때문에 좀 복잡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만든 구성이, 드미트리우스는 헬레나와 약속한 사이지만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허미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허미아의 부친 이지우스의 마음을 확실하게 잡아버렸다. 허미아는 그러나 라이샌더와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 당시 아테네에서는 결혼에 관해서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처녀에게 주어지는 것은 딱 두 개. 하나는 죽음, 또 하나는 평생 수도원에 들어가 영원한 처녀로 사는 일. 당신과 당신 파트너가 허미아와 라이샌더와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할 거 같은가. 그렇다. 이들도 당신 생각과 같은 일을 저질러 버린다. 이름하여, 야반도주.
 여기서 혜성처럼 등장하는 커플이 바로 오베론과 티타니아. 이 요정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베버의 <오베론>에선 여자와 남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진실한 사랑을 하는가 가지고 난리굿을 펴더니, 이 책에선 훔쳐온 미소년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신경전을 펴다가 오베론이 약효가 평생을 가는 사랑의 묘약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래 종복 퍽을 시켜 티타니아와, 인간들의 원만한 행복을 위해 드미트리우스의 눈에 바르라고 시켰는데, 명령문이 참으로 애매해서 (아테네 복장을 한 잘생긴 젊은 남자 눈꺼풀에다가 발라버려!) 퍽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아테네 남자 라이샌더의 눈꺼풀에다 묘약을 덕지덕지 발라버린다. 그래 티타니아는 나귀로 변신한 ‘바틈Bottom’이란 장사꾼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라이센더는 눈을 뜨자마자 함께 야반도주를 한 허미아가 키가 작다는 걸 이유로 “가 버려, 이 난쟁이야. 성장억제 풀 먹은 초왜소 생명체야. 이 염주 알, 도토리야.”라고 거친 말을 퍼붓고는 곧바로 헬레나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호소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안 알려줌.
 또 재미난 것이 <한여름 밤의 꿈>에서 ‘극중극play-within-a-play’을 연출한다는 것. 극중극 도중 당대의 권력자 테세우스와 히폴리나, 그리고 주인공들이 숱하게 끼어들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역자의 의견으로는 그 극중극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씨앗일 수도 있단다. 그러나 너무 기대하지 마시라. 그만큼 재미있지는 않으니.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 등을 읽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린 독자들은 그냥 기념 삼아 한 번 읽어보실 만하다. 난 이제 정말로 그의 초기작품은 읽지 않겠다. 그것들 말고도 읽을 책은 많고 많거든. 안 그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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