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대산세계문학총서 149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 지음, 양장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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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작품의 주인공 이반 촌킨에 대하여 간략하나마 소개를 하고 시작해야겠다. 촌킨은 소비에트 연방의 붉은 군대에 소속되어 있는 말년 병장인데, 커다랗고 붉은 귀를 달고 다니는 키 작은 앙가발이. 즉 가뜩이나 작은 키에 팔과 다리마저 짧고 굽어 있었다. 그래 입대한 다음부터 거의 모든 훈련을 면제받는 열외사병으로, 소비에트 연방 군대에서 촌킨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훈련은 정신교육 말고는 없었다. 1941년 5월 말이나 6월 초에 이야기는 시작해, 늘어져봤자 6월 말이나 7월 초에 끝나니까, 시대는 역사상 최고로 절대존엄이었던 스탈린 체제 아래였다. 당시 ‘스탈린’이란 이름이 얼마나 지엄했느냐하면, 하필 스탈린이란 이름을 가진 늙은 갖바치 유대인을 검거한 비밀경찰마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가 절대 유대인이 아님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멀고 먼 친인척 관계라도 있을까봐, 아니면 자기 입으로 감히 ‘스탈린’이란 이름을 부르면서 행여 자그마한 실수라도 할까봐 정중하게 기소를 면제해줄 정도였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말년 병장 촌킨이 하루는 정신교육을 받으러 집합을 하게 됐는데, 촌킨을 볼 때마다 악의적인 골탕을 먹이고는 하던 사무시킨이란 병사가 촌킨의 옆구리를 쿡쿡 질러가며 기어이 촌킨으로 하여금 정신교육 담당 장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저기 스탈린 동지한테, 마누라가 둘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질문을 받은 장교 야르체프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책을 인용하면 이렇다. “야르체프는 마치 몸의 어느 한 곳을 송곳에라도 찔린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그는 분노와 경악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자, 자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그런 일에 나를 끌어들일 생각일랑은 하지 말게.’ 그는 이내 자신이 뭔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을 꼭 다물었다.” (39쪽)
 시대가 이랬고, 촌킨이라는 인물의 성격이 이렇다. 이런 촌킨이 1940년대 소비에트 군대에서 담당할 수 있는 보직은 말 돌보는 일. 여기서 말horse이라고 함은 1차 세계대전 당시까지 있었던 경기병, 철기병, 용기병 등에서 활약하는 위풍당당한 말이 아니라 그저 부식이나 의복, 장비 등을 나를 때 수레를 끄는 말을 일컫는 것이니 모든 사람이 촌킨을 좀 무시하고 지나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군역을 치룬 사람이라면 다 아시다시피, 사실 이런 보직이 꿀 보직이라, 부식 운송이면 식당과, 또 군수 요원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어 먹는 것, 입는 것에 관한 한 별 어려움 없이 지겨운 군대 생활을 지워갈 수 있었다. 지가 입대를 했으니 이리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지, 그냥 촌구석에 박혀 있었으면, 1940년대 소련에서 하,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어. 그럼 뭐하나. 사람 생긴 꼴이 워낙 못생기고 앙가발이에 지나지 않으니 아무리 잘 먹고, 잘 입어도 영 태가 나지 않은데다가, 군사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해 경례 하나 교본대로 하지 못해 까다로운 상급자 눈에 띄었다 하면 즉각 엎드려뻗쳐, 기상, 엎드려, 기상, 반복,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이런 기합이나 받는 주제인 것을.
 이런 시절인데 우크라이나 동쪽 주변에 있는 것 같은 농촌지역 크라스노예 마을에 1920년대에 맹위를 떨쳤던 날개 네 개짜리 U-2 비행(복엽)기가 이제 수명이 다해 운명을 하느라고 하늘에서 혼자 사는 노처녀 여자 주인공 뉴라(‘안나’의 애칭) 벨라쇼바 네 집 지붕을 스칠 듯 곤두박질쳐 불시착을 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이 비행사가 속해 있던 부대에 촌킨이 복무하고 있었고, 불시착을 보고받은 부대장이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가, 매사에 어디 쓸 데가 없어 보이는 촌킨을 일주일 치 전투식량과 함께 다른 비행기에 태워 뉴라네 집 근처 불시착한 비행기 옆에다 내려주고, 비행기를 지키라고 보초를 세우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붙기 시작한다. 원래부터 시골 출신인 촌킨이 바로 옆 텃밭에서 감자를 심고 있던 스물두 살 노처녀 뉴라에게 접근해 슬슬 밭을 갈아주기 시작한다. 밭일 도와주던 남자라고는 브나로드 비슷하게 잘난 척하려 농촌을 방문했던 도시 출신 청년들만 알고 있던 터라, 자기보다 몇 배는 더 능숙하게 밭을 가는 이반을 보고 뉴라의 마음도 점점 동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그래야지, 소설이잖은가. 그래 사령관의 명령을 받지 못하니까 결혼은 못한 채 그냥 동거 비슷하게 함께 살게 되고, 사령관은 자신이 촌킨을 이미 고철 수준으로밖엔 생각하지 못하는 복엽기를 지키라고 보초로 보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있는 와중에 드디어 1941년 6월 22일, 히틀러의 명령에 의하여 키예프에 폭탄을 퍼부어버리는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여기까지가 1부.
 이 책은 여태껏 내가 떠들었던 내용보다는 스토리를 이어가면서 그 속에 담긴 포복절도할 풍자와 해학을 읽는 것이 진짜다. 작가 보이노비치의 아버지가 세르비아 계인데, 일찍이 반 소비에트 선전선동죄로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 전적이 있고, 유형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독·소 전쟁에 참전한 바 있으나, 굳이 부친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선입견까지는 필요 없을 것. 당시 선전선동죄라면, 위에서 얘기한 일화, 스탈린한테 마누라가 둘 있다면서요, 라는 거 한 마디만 가지고도 충분히 총살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는데 유형이라면 정도가 매우 가볍지 않았을까 싶다. 그냥 보이노비치가 작가로서 평소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정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반체제 작가로, 정부가 문학계에 저지르는 반문화적 행위에 대해서 빠짐없이 따박따박 반대를 해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소비에트 작가 동맹에서 퇴출당하고, <이반 촌킨>이 서방에서 먼저 출간되자 열 받은 KGB에 의하여 독살 시도까지 했을 만큼 이 책 속에 숱한 독설을 퍼부어버렸다.
 책을 읽으면서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결탁>이 생각났다. 둘 다 지독한 코미디 풍자와 독설로 무장했으나 존 케네디 툴은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자살했고, 블라디미르 보이노비치는 서쪽 사람들이 자기 작품에 열광해서 하마터면 골로 갈 뻔하지 않았는가. 툴은 대학원까지 졸업한 서른 살 넘은 룸펜 프롤레타리아 뉴올리언스 뚱보의 고독을, 보이노비치는 글자를 겨우 익힌 (거의)무학의 앙가발이 촌놈이 벌이는 거대한 좌충우돌을 그렸다. 무슨 짓을 하기에 ‘거대한’이라고 하느냐고? 좋다, 마음을 크게 써서 가르쳐드리지. 이반 촌킨. 이 자가 무려 장군이 지휘하는 일개 연대 병력과 한 판 승부를 겨룬다는 것만. 이 책이 <촌킨>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다 읽고 감상문을 쓰면서, 얼른 두 번째, 세 번째 작품도 번역해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 이건 아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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