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집 이층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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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사 읽은 최초의 시집. 그건 신경림의 <농무> 1975년 증보판이었다. 우리나라 시인들의 로망인 ‘창비시선’의 1번을 장식한 시집. 당시 사 읽었던 창비 시선집들. <농무>를 시작으로 조태일의 <국토>, 김현승의 <마지막 지상에서> (내 큰 아이에게 이이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 민영의 <용인 지나는 길에>, 이성부의 <백제행>,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등등. 갓 열아홉 살의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세상에 이런 시들이 있었는가, 지난 세월 교과서를 통해 감상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 시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발언을 하는 시, 인간 삶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아도 이렇듯 아름다운 서정시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시각을 얻기에 이르렀다(젊은이들은 믿을 수 있을까? 이 가운데 <농무>, <국토>, <한국의 아이> 등이 금서였다는 걸. 그래도 다 사서 읽는 방법은 있었지만). 그러나 이후 여러 번에 걸친 이사와 군역과 사회생활의 와중에 당시에 사서 읽고 놀라움을 얻었던 시집들은 어느덧 흐지부지 없어져버리고, 이제 내 책꽂이에 꽂힌 <농무>는 한참이 흘러 다시 산 1997년 개정판 9쇄다. 시인 신경림은 우리나라 현대시에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서정시인이다. 강철 총칼의 시대에 쟁기며 보습을 노래했던 시인. 이젠 문단의 진정한 원로로 애정어리지만 올바른 시선으로 한국문학과 작가, 시인들을 바라보는 이. 이이의 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사진관집 이층>의 첫 장을 넘기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농무>, <새재>와의 사이에 벌써 40년 시간의 간극이 있었으니.
 시인은 정릉동 동방주택에서 30년 이상을 살고, 안양시 비산동 489-43에서 노망난 할머니와 노부모를 모시고 살았으며, 40이 조금 넘어 상처한 홀아비로 지낸 듯하다. 어느새 85세의 노인. 그러나 “늙은 지금도 나는 젊은 때나 마찬가지로 많은 꿈을 꾼다.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 때로는 그 꿈이 허황하게도 내 지난날에 대한 재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꿈은 내게 큰 축복이다. / 시도 내게 이와 같은 것일까.”라고 말한다(119쪽 '시인의 말').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어, 거의 모든 시인들의 공통점이었던 가난의 굴레에서는 벗어났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시집 속에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키예프, 캄보디아, 일본, 중동을 방문한 느낌을 적은 시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시인의 말’에서 이이가 이야기한 꿈은 생활의 개선이 아니라 아직도 시를 쓸 수 있는 감수성을 말하는 것 같다. 많은 시인들이 50세를 앞뒤로 해 단 한 순간에 시를 쓸 수 있는 감수성이 확 줄어드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신경림은 여든이 넘은 노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새 시집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년에 이른 시인들의 많은 작품들 속엔, 일면 아쉽기는 하지만, 바람직하기도 하고, 당연하기도 하게 자신의 지난 과거 속의 일, 지금 살아가며 보이는 것들에 대한 ‘담담한 독백’이 들어 있다. 지난 시절에는 쓸 수 없었거나 쓰기 힘들었던 자연스런 삶의 시어로 그린 일상. 혹시 노년에 이르면 이런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닐까.



 별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47쪽. 전문)



 나이 들어 별이 보인다는 건, 젊어서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 이제 어두워져 더 넓어진 눈으로 하늘을 보니 별이 보이고, 지나간 삶,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삶 속에서도 젊어서는 보이지 않았던 편안한 시선이 보이는 현상. 이런 게 정말 일어날까? 아직 이이만큼 살아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다른 노시인들의 시를 봐도 그럴 거 같다.
  세월은 흐르는 것. 삼십대 젊은 시인이 이제 80대가 되고, 1960년대 농촌의 생명력과 삶의 절망과 소외는 도시인의 가난과 생활과 곤고함으로 변했다가, 세상 각처에 있는 건강미와 가난과 질병과 재해에 노래하기도 하고, 우리사회에서 가장 소외당하고 멸시받는 노숙자를 품에 안고 그를 예수라고 부르는 것으로 늙은 시인은 시집을 마감한다.
 시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살아왔던 흔적을 이렇게 노래한다. 이 노래가 신경림인 거 같아 소개하며 미욱한 글을 마친다.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32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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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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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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