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은 아내 - 미하일 조센코 단편소설집
미하일 조셴코 지음, 예브게니 빠나마료프 옮김 / 써네스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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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 우리나라에서는 동학농민전쟁에 이어 청일전쟁과 갑오경장으로 근대사가 한 번 크게 휘청거린 해에 태어난 미하일 조센코는, 한 마디로 해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작가이다. 날 때는 귀족 자제로 나와 혁명의 와중에도 혁명과 이후 내전을 지지한 풍운아. 소부르주아로 살며 동네 사람이나 대중목욕탕 단골 손님 같은 주변인한테 들은 이야기 중에서 좀 우습기는 한데 뭔가 당시 사회의 걸림돌 같은 걸 발견하면 그걸 아주 짧은 소설로 써서, 혁명 조국이 개선해야 할 점, 현 시대 사람들의 개혁해야 할 의식 같은 걸 많이 썼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주로 1920년대에 앞에서 말한 짧은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풍자와 해학을 조센코가 툭 튀어나와 쓰기 시작한 건 아닐 터이고, 누굴 닮았을까? 조금 고골하고 비슷한 것도 같고, 많이는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쓴 레스코프와 유사하다. 그렇다고 내가 레스코프를 훔쳤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레스코프가 자리를 잡은 러시아식 손바닥 풍자소설 위에서 조센코가 즐겁게 폭스 트롯을 추었다는 것이지.

  조센코의 폭스 트롯을 당시 권력을 확실하게 잡은 스탈린의 문학적 최측근인 고리키가 귀엽게 읽었다. 아, 이건 무지하게 중요한 이야기이다. 1920년대라고 해도 두 걸음만 더 걸으면 30년대.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곧 시작되는 시기. 어쨌거나 조센코는 고리키의 비호 아래 1937~38년의 대숙청 기간에도 무탈하게 작품, 희곡과 큰 산문을 썼으며, 공포의 시대에서도 낙관적인 풍자를 거침없이 시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0년대 중반 이후 말년은 진짜 허기진 삶을 살다가 갔다. 그건 나중 일이니 여기서 언급은 하지 않을 것.


  소설집 《남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은 아내: 이하 “남편의 죽음”》은 본문이 겨우 193쪽에서 끝나고 나머지는 역자 해설 비슷한 “조센코의 문학 세계”와 “1920~40년대 러시아의 모습”이란 제목의 사진 화보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은 큰 활자에 대단히 넓은 자간, 행간, 작품 사이의 공백을 두었으면서도 무려 26 작품을 실었다. 짧아도 너무 짧은 소설들.

  1부는 정말로 조센코가 이웃과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 당시 소비에트 사람들의 생활상과 효율적이지 못한 공무원 편의주의 같은 것의 희극적 풍자로 되어 있고, 2부는 “렐랴와 민카”라를 부제로 아마도 렐랴는 민카, 즉 미하일 조센코의 누나로 보이는데, 이 남매의 어린 시절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소설로 썼다. 적은 분량에 또 이렇게 2부로 나누었으니 책 한 권 읽는데 얼마나 페이지가 활랑활랑 넘어가는지 탁, 아시겠지? 하여간 그렇다.


  소설집 《남편의 죽음》의 제목을 하필이면 왜 이걸로 골랐을까? 무려 열페이지에 달하는 제일 긴 작품이라서였을까? 뭐 그럴지도. 레닌그라드의 페트로그라드 지역에서 사는 이반 이바노비치 부틸킨이라는 남자가 주인공 남편. 러시아에서 가장 평범한 남자의 이름을 아시나? 이반 이바노비치 이반스키. 이 주인공하고 성만 다르니 부틸킨도 그저 주변에 널린 흔한 부부의 흔한 남편으로 여기면 된다. 직업은 그림쟁이. 화가까지는 안 되고 그저 포스터, 광고판, 극장 간판 같은 걸 그리는데, 몸이 좀 부실해서 그렇지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조센코는 초를 친다. 부실한 몸이 요즘들어 더 부실해져 이제 이반 생각에 오늘 아니면 내일은 죽을 거 같다. 하여 아내 마트료나 바셀리브나, 목청만 크고 할 줄 아는 거 하나도 없는 이 왈가닥 마트료나가 서둘러 의사를 불러와 맥을 잡게 하니, 장티푸스 아니면 폐렴이란다.

  마트료나는 앓는 남편도 잡도리한다. 무엇이 두려운가 하면, 남편의 죽음? 그의 남성성은 지금도 있으나 마나, 차라리 자신의 남성성이 남편보다 훨씬 우월하니 하나도 아쉬운 거 없고, 오직 하나의 근심이 있을 뿐. 첫째로 혹시라도 남편이 죽거나 남편과 이혼하게 되면 자기 힘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 둘째는 설령 이혼을 해서 다른 놈을 만나더라도 그놈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부려먹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남편은 마트료나한테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 이상이 아니다.

  근데 사실 많은 가정이 그렇지 않아? 늙어가면서 그러면서도 점점 남편 잡도리를 더 심하게 하는 것도? 마트료나 여사는 이의 전범을 이루어 죽어가는 남편을 들들 볶고, 지글지글 조리고, 엎고 뒤집으면서 구워 버린다. 나가서 극장 간판을 그려 돈을 벌어 오든, 죽음의 침상에 자빠져 있는 남편이건 그건 다음 문제. 밤에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를 하고, 낮에는 진이 빠져 다리를 쭉 뻗은 채로 누워 진땀을 흘리며 꿈을 꾸는 남편한테 마트료나는 야물딱지게 바가지를 긁어댄다.

  “어머, 이 사람 좀 봐! 왜 누워 있어? 꾀병 부리는 거 아냐? 일부러 아픈 척하는 거 아니냐고? 일이 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돈 벌 마음이 없어진 거냐고?”

  그저 돈, 돈, 돈, 돈…. 그래 뭐 이제 남편의 사용용도는 돈벌이밖에 없으니까. 그게 남편의 팔잔 걸 뭐.

  “왜, 이제 곧 죽을 거 같냐?”

  남편이 대답한다.

  “미안해, 나 이제 죽어. 더 이상 나를 잡지 마. 난 이제 당신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니까.”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나는 당신 같은 사기꾼을 믿지 않아. 죽을지 안 죽을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내게서 벗어날 생각은 하지도 마!”

  마트료나는 남편이 곱게 죽을 수 있게 해줄 추호의 마음이 없다.

  “당신이 그렇게 부자야?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으냐고? 당신 같은 인간을 죽을 자격도 없어. 시체 씻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고, 시체 넣을 관은 무슨 돈으로 사고, 관을 옮길 때 필요한 마차는 무슨 돈으로 빌려? 그리고 신부한테도 돈을 줘야 하는데 설마 지금 나더러 옷이라도 팔아 돈을 주라는 거야? 싫어. 절대 그렇게 못해. 너도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어. 죽더라도 돈을 벌어놓고 죽어야지!”

  이웃 할머니가 염은 돈 안 받고 해주겠다고 해도 눈알을 부라리며 관과 마차, 신부한테 줄 돈 같은 걸 열거하며 죽어가는 남편한테 드드드드득 바가지를 긁어대고 있는 마트료나. 여기다가 남편 죽은 다음에 새로 결혼하려면 두 달 정도 걸리니 적어도 두 달 먹고 살 수 있는 돈까지 벌어오고 죽으라는 거다. 여지없이 레스코프 작품 속 주인공 여자들하고 비슷하다.

  그래서 남편 이반이 드러워서 죽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돈 벌러 나간다는 이야기.


  이런 것들을 스물여섯 편 실은 책. 읽다가 피식, 웃음도 나고 재미도 나름대로 있고 그렇다. 그렇기는 한데 이미 한참 지난 1920년대 말의 소비에트, 주로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시내에서 생긴 웃긴 촌편들이라서 실감은 별로 나지 않는다. 번역한 이가 예브게니 빠나미료프. 러시아 사람으로 2002년에 한국외대 한국어학 과정을 수료한 후에 우리나라 여성과 결혼해 15년 살았단다.

  러시아 사람이라서 조센코의 풍자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더 실감을 해 번역까지 했겠지만, 거꾸로, 그러니까 우리 소설을 러시아로 번역하는 것보다, 러시아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아마도 23배 정도 더 힘드는 거 아닌가 싶다. 빠나미료프가 진심으로 번역을 했음에도 약간 어색한 곳이 있는데, 이럴 경우(모국어→한국어) 출판사 편집부에서 더 공을 들여 교정, 교열에 힘써야 했을 터. 그랬겠지. 그럼에도 간혹 아쉬운 점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뭐 그렇다. 뭐 어쩌겠어. 조센코의 작품을 쉽게 읽지 못하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얼마나 안타까우면 러시아 사람이 직접 번역을 해 소개하겠느냐고. 책이 많이 팔린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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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
염승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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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에 서울에서 나 동국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도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책 속에 네 번째 실린 단편 <진영의 논리>의 주인공 진영이 박사과정을 수료하기만 하고 논문을 제출하지 못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최소임금을 조금 넘는 강사료만 받아 사는 시간 강사인데 잘 살펴보면 진영 속에서 작가 염승숙의 모습 일단을 찾아볼 수도 있겠군. 중학교 교사로 딱 하루 ‘교감’의 직위를 단 채 명예퇴직한 진영의 엄마 이구옥, 애인 ‘전’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 전의 씨톨이 자기 배 속에 착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영의 모습은 백퍼 염승숙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진정으로 아니기를 바란다. 작품들 속의 모든 주연급 등장인물이 염승숙과 비슷하지도 않기를, 완전히 다른 족속이며, 1도 양보 없이 몽땅 작가의 전두엽 속에서 창조한 인물이며 스토리이기를 바란다. 뭐 세상에 이렇게 암울하고, 패배적이고, 모두, 모두 남의 탓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는 거야? 여태 사람들은 어떻게 숨이라도 쉬고 살았을까 싶은 우울의 골짜기를 또다시 구경하게 될지 난 미쳐 몰랐네. 이런 장면들이 싫어서 우리 소설을 좀 멀리 했었건만, 그래서 읽더라도 파르티잔이나 아나키스트들 같이 새로운 문학적 변혁을 꾀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작가들을 골랐었는데, 아이쿠, 언젠가는 한 번 또다시 걸릴 줄 알긴 알았으나, 이렇게까지 읽는 일이 힘들다는 걸 깜박 잊었지 뭐야.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래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책읽기에 집중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날들을 지워가고 있는 중에 이렇게 우울하고, 아픈 이야기를 읽기 싫다. 나는 책만 많이 읽지 문학적 소양이 깊은 사람이 아니다. 염승숙의 문학적 재질이 어떤지 모르겠고, 이이의 작품이 어떤 무게로 진심을 드러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제 염승숙의 작품은 더 찾지 않겠다.

  혹시 울고 싶은 마음 있는 분이라면 이 책 읽고 등장인물들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통곡 한 번 하면 시원하긴 하겠다.

  나는 더 이상 이이의 작품을 읽지 않을지라도, 염선생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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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6-03-11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 조만간 황동규 시인의 <악어를 조심하라고?>가 올라오겠군요. 저번 달에 일러주셨었죠. 한달이 뚝딱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또 어떤 책들이 먼저 독후감으로 모습을 보일지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따라 읽어보고 싶은 책은 많지만, 하드웨어가 부실하여 다 담아내기는 어려울테니 하나둘 차근히 읽어보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26-03-11 07:28   좋아요 1 | URL
아이고, 기억하시는군요! 고맙습니다.
넵. 다음주 화요일입니다. ㅎㅎㅎ 황동규 읽으니까 문제가 있더라고요. 다른 시인들의 시집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도서관 서가에서 뽑아 좀 읽어보다가 다시 꽂아둔 것이 몇 번인지 모르겠습니다. 딱 한 권 더 읽었을 뿐이예요. 이러면 안 되는데 싶지만 뭐 어쩔 수 있습니까. 다시 읽힐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ㅎㅎ

yamoo 2026-03-1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도 뽈님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이렇게 가열차게 문학을 읽고 독후감을 올리는 알라디너는 절대 없다는! 알라딘에서 상줘야한다는..^^

Falstaff 2026-03-11 15:48   좋아요 0 | URL
아이구, 대단은요 뭘. 그저 혼자 노는 취미에 특화된 인간이라서.... ^^;;

hnine 2026-03-1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친숙한 우리 소설가인데 정작 읽지는 않은 작가들 중 한 사람이랍나다.
책 읽을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Falstaff 2026-03-11 15:49   좋아요 0 | URL
몸은 좀 갔고요, 몸이 가니까 마음은 늘 청춘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조금 갔는데, 진짜 가려고 하는 건 시력이더라고요. 그래서.... ㅎㅎㅎ

coolcat329 2026-03-12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님~ 글 읽고 제가 순간 울컥! 했어요.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날이 그리 많이...‘ 이 문장에서요. 아직 한창이신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 눈은 의학의 힘으로 극복하시면 되죵! 폴스타프님 화이팅! 슬프고 우울한 소설은 멀리멀리~~~
 
나의 여왕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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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위하여>를 느므느므 재미있게 읽어서, 그랴, 그러니 공쿠르 상을 탔지, 이이가 쓴 게 또 뭐가 있나 검색해보니 <나의 여왕>이 있었고, 이것도 분명히 (종교적 의미도 포함해)진짜 여왕에 관한 소설일 것이라 넘겨 짚어, 도서관 검색해보니까 우리 동네 말고 다른 곳에 딱 한 권이 있어 상호대차서비스 신청해 받아 읽었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하여>에서 예술 작품을 대하는/보는 앙드레아의 빛나는 눈길을 감안하자면. 그런데… 쩝쩝.


  “나는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작품의 첫 문장. 이게 무슨 뜻인 줄 알기 위하여 독자는 책을 끝까지 몽땅 읽어야 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알려고 하지 마시라. 시간적 배경은 1965년 여름. 주인공 ‘나’는 이때 열두 살.

  프로방스 쪽 아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도로변에 낡고 낡았으며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낡은 주유기 두 대를 놓고 영업을 하는 주유소 아들. 위로 누나가 하나 있는데 ‘나’보다 열다섯 살 위. 벌써 결혼해 어딘지 모르는 먼 곳에 살면서 1년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른다. 이때마다 ‘나’를 이런 시골 골짜기에서 기르는 게 마땅하지 않으니 자기가 사는 곳으로 가서 친구도 사귀고 재미있게 놀게 하는 것이 좋다고 바득바득 우기다가, ‘나’를 별로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 부모가 절대 품에서 떨어뜨릴 수 없다면서 다다다다… 대판 말싸움을 끝으로 눈물바람을 한 채 돌아가는 누나. 얼핏 보면 누나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가 동생을 아끼는 경우 제법 많지? 이 집도 그런 모양이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염화시중의 미소라고? 웃기네. 살아봐라, 그런 부부도 쌔고 쌨다. 부지런했던 아빠는 주유소 장사도 되지 않고 주유소에 붙어 있는 정비소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해 일신우일신 하루가 새로울 지경으로 게을러져 애초 빛이 번쩍번쩍 했던 주유기가 이젠 때가 더대기가 진 것도 모자라 스치기만 해도 먼지가 정전기를 따라 화다닥 옮겨 붙을 지경이다. 성격도 날이 갈수록 더러워지는 것 같다. 아닐지도 모른다. 어려서 뭔가 잘못했던 적이 있는데 얼마나 오지게 귀싸대기를 얻어터졌는지 어금니가 부러졌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게 젖니라서 망정이지 간니면 어쩔뻔했어? 엄마는 등짝 스매싱 아니면 뭐 그리 심하게 두드려패지는 않지만 앗다, 얼마나 입이 거친지.

  ‘나’는 뭐하냐고? 집에서 조금씩 일을 돕는다. 열두 살짜리가 학교는 안 간다. 다녔다. 잘 다니지는 못했다. 인근 도시에서 제일이라고 일컫는 의사가 일찍이 ‘나’의 상태를 판정하기를 ‘나’의 머리 성장이 멈춘 상태라고 한다. ‘나’가 생각하기에 참으로 바보 같은 의사다. 내 머리는 점점 커져 어릴 때 쓰던 모자가 들어가지 못하는데 성장이 멈추기는 뭐가 멈춰? ‘나’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과 독자들은 뇌의 발달, 즉 지능이 멈추었다는 것을 단박에 짐작할 것이다. 그러니 ‘나’가 좀 모자란 건 맞는 말이다. 아마도 여덟 살 수준일 듯. 글자를 읽는데 매우 곤란하고, 쓰는 건 퍼진 스파게티처럼 꾸물꾸물 기어갈 정도. 어린 아이들은 야수 상태인 게 보통이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약자의 자리인 건 당연하고, 꼭 한 명 이상 있는 늑대에게 얻어 터지고, 밟히고, 물리고, 욕을 먹는 일이 다반사. 참다 못한 교장선생이 하루는 부모님의 일차 왕림을 부탁하더니, 더 이상의 학교 교육은 ‘나’에게 쓸모가 없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지금, 1965년에는 집에서 ‘먹구대학’에 다니는 중이다.


  ‘나’도 누나를 따라 다른 곳으로 가기 싫다. 얼마나 좋아. 손님도 거의 없는 주유소에 하는 일이라고는 더러운 C, 원래는 W.C였는데 W자가 떨어져 누군가의 집에서 냄비 받침으로 쓰이고 있어서 C가 된 화장실에 화장지로 아빠가 본 신문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져다 놓는 일, 아주 가끔 주유기로 한 세기만에 찾아온 손님 차에 휘발유 넣어주기 정도의 편한 생활이 좋다. ‘나’는 새로운 것, 변하는 것이 싫다. 그대로인 것이 좋다. 주유소와 언덕, 주유소에 벽돌로 이어 지은 우리집. 언덕 위의 덤불숲. 숲 속에서 보이는, 그러나 진짜로 C속 앉아 자기 몸을 만지던 부인과 마주친 눈길. 그리고 덤불 안 땅 속에 묻은 찢긴 야한 잡지 속 벌거벗은 여자들 사진. 그래서 ‘나’도 누나를 따라 도시로 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열두 살 먹은 지적 장애 그리고 공황장애까지 있는 ‘나’가 집을 떠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도 냄새나는 C에 가위로 오린 신문지를 가져다 놓았다. 다른 날과 달랐던 건 화장실 바닥에 담뱃갑이 하나 떨어져 있었고, 담뱃갑 속에 담배 두 개비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걸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뭐 언제나처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언덕에 올라 덤불 속에 들어가 늘 가지고 다니던 성냥을 켜 불을 붙였다. 열두 살 꼬마가 성냥을 가지고 다닌다고? 그렇다. 취미생활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게 습관이 됐다. 벌레를 보면 성냥불을 붙여 태워 죽이는 게 즐거웠달까, 하여간 개운해서. 하여간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숙하게 주욱 빨았고, 담배연기가 빠르게 왕창 폐속으로 진입하면서, 기침도 기침이지만 머리가 어질어질,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돌아버려, 얼른 담배를 던져버렸더니 그게 하필이면 최고의 인화물질인 소나무 낙엽에 떨어져 화라락, 불이 지펴져 버린 거였다. ‘나’는 기겁을 해서 발로 밟아 끄려고 했지만 그게 쉽나. 이때 주유소 마당에서 불 나는 꼴을 목격한 엄마가 비명을 질렀고, 아빠가 소화기를 들고 나와, 정상 상태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도로 뛰러 언덕에 올라오더니 맹렬하게 소화기를 휘둘렀고, 마침 지나가던 남자 어른 몇이 합세해 불을 끄기는 했다.

  다행이라고? 그거 이상이지. 장소가 ‘주유소 인근’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나’가 오늘은 이걸로 끝나지만 점점 대가리가 커지면 나중에 어떤 일을 벌일지 누가 알아? 그리하여 엄마와 아빠가 깊고 깊은 토의를 거쳐 엄지손가락에 인주 듬뿍 묻혀 합의서를 작성했으니, ‘나’를 누나한테 보내자는 것.

  나는 그날로 짐을 쌌다. 짐이라야 뭐 단출하다. 배낭에 ‘나’의 잡동사니들과 옷가지를 몇 넣고, 잠을 안 자고 기다렸다. 드디어 밤이 깊어지고 조금 있으면 새벽이 다가올 시간,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거실로 가서 아빠가 자는 소파를 지나 토끼 사냥용 22구경 엽총과 총알 몇 알을 챙기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창문을 넘어 주유소 생활의 마침표를 찍어 버렸다.

  깜짝 놀랐지? 겨우 열두 살짜리 소년이 22구경 소총과 총탄을 들고 길에 나서면 언젠가는 그걸 쏠 거 아니냐고. 이건 소설작법 1장 9절에 나오는 거니까. 그럼 누가 죽을까? 아이고, 걱정 마시라. 작품의 주인공 ‘나’는 정신지체에다가 공황장애. 하필이면 가출의 경로를 집 앞에 도로를 따라 프로방스 쪽이 아니라 집 저편에 있는 산을 넘어간다. 거의 암벽 수준의 능선을 넘다가 언제 어디서 그랬는 줄도 모르고 기껏 챙겨온 배낭, 그리고 22구경 소총과 탄알을 그냥 홀랑 잃어버린다니까 글쎄. 이런 참.


  깎아지르는 능선을 넘으면 소설이니까 가능한 초목지대가 펼쳐진다. ‘나’는 이곳에서도 피곤한 몸을 뉠 곳이 없어 바위 틈바구니에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잤을까 구별이 가지 않더라도 눈을 떴고, 해가 벌써 중천에 올랐는데, ‘나’를 내려다보는 도전적이고 매서운 눈을 한 ‘나’ 또래의 작은 여자 아이.

  이 아이 이름이 비비안이고, 언필칭 나의 여왕님이다. 비비안 역시 이를 흡족하게 여기고 계속 ‘나’가 비비안을 여왕으로 알고 추앙하기 위하여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니:

  첫째가, 내 몸을 만지지 말 것이로다.

  둘째가, 내가 어디 사는지 궁금해하지 말지어다.

  셋째가, 내가 어디 사는지 찾지 말지어다.

  속세에 까질 만큼 까진 우리 독자들은 한 눈에 알 수 있겠지? 이건 동화 같은 여왕의 이야기이고 비비안 역시 중간 계급 정도 한 평범한 가정의 딸이라는 것을. 그러나 정신지체이자 공황장애의 ‘나’의 입장에서는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실현 가능한 동화이자 환상 속의 여왕님이 비비안인 것을.

  그래서 어땠느냐고? 이미 알 거 다 아는 21세기의 독자 입장에서는 그냥. 뭐 딱 부러지게 한 말씀 덧붙일 필요 없겠지? 그렇지? 그지? 맞아, 오늘이 대표적, 기념할 만한 음주 독후감이었어. 미안해. 어제 독후감은 홍어 먹기 전이고, 지금은 홍어애탕 먹고 난 다음이야.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만날 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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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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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중. 글씨 색이 흐리다. 백내장 기운이 좀 있는 나는 눈알 아파서 읽기 힘든다. 기분 팍! 상했다. 설마 잉크 값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닐 터. 멋 부리느라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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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3-09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이 책 저는 관심가서 보고싶은 책인데 책 외형 말고 내용도 별 3개일까요? ^^ 앗 다시 보니 읽는 중이네요. ㅎㅎ 리뷰를 기다리겠습니다.

Falstaff 2026-03-09 08:58   좋아요 2 | URL
내용은... 아직까지는 셋도 많습니다만. ㅋㅋ

유부만두 2026-03-0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도 흐린 잉크색에 힘들어 진도가 안나가는 중이에요.

Falstaff 2026-03-09 09:49   좋아요 0 | URL
그죠? 이거 안 좋아요.
 
인형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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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듀 모리에, 하면 뭐니뭐니 해도 첫째가 <레베카>, 둘째가 <나의 사촌 레이첼>. 맞지? 그리고 현대문학에서 나온 세계문학단편선 시리즈 10번. 이 책 《인형》도 현대문학에서 찍었다. 그러면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이거 혹시 단편선 시리즈하고 겹치는 거 아녀? 하는 의심. 하, 참.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쓸데없이 믿지 못하는 시절을 살게 된 거야? 걱정하지 마시라. 겹치는 작품 1도 없다. 명색이 현대문학인데, 아마 지금까지 생존하는 우리나라 문학잡지 가운데 제일 오래 됐을 걸? 그걸 만드는 회사가 양심불량… 그런 일도 있기는 있겠지만 대놓고 양심불량한 짓은 하지 않을 터. 걱정하지 마시고 사 읽으시라. 사 읽으라고? 아니 뭐, 책장 좁아 터질 지경이면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고. 하여간 좋으실 대로 하시라. 20세기 최고는 아닐지라도 두번째 자리를 줘도 아쉬워할 듀 모리에의 엽기발랄 작품들을 오랜만에 읽으실 수 있을 터이니.

  아, 그리고 독후감 마치면서 쓸려고 했는데 혹시 깜박 잊을까봐 미리 이 자리에서 말해야겠다. 《인형》도 뭐 그렇고, 현대문학단편선 시리즈 10번 《대프니 듀 모리에 – 지금 쳐다보지 마 외 8편》도 그렇다 하더라도 이이의 두 장편 <레베카>와 <나의 사촌 레이첼>은 웬만하면 놓치지 마시라. 최고의 대중소설 두 편이다. 물론 내 기호에 그렇다는 거니까 당신이 사 읽은 다음에 책값 물어내라 하실 생각은 접으시고. 나는 누가 나 한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거 열 권을 가져다줘도 책장 속에 박힌 이 두 권하고는 절대 바꾸지 않는다.

  아, 자꾸 말이 옆으로 샌다. 지금 마음이 조금 급하다. 조금 있다가 5시, 우리는 주로 “오시”라고 하는데, 다섯시까지 미락횟집에 가야 한다. 삭힌 거 말고 연평도 앞에서 잡은 제철 생 홍어에 쐬주 여러 잔 하러. 아마 이 포스트가 3월 9일, 꽃피는 봄까지는 아니고, 매화가 질랑말랑 할 초봄에 올라갈 거 같은데, 오늘은 아침 최저 온도가 영하 11도를 찍은 한 겨울이다. 홍어가 제철인 거 맞다.

  각설.


  책의 제일 앞에 실린 작품이 <동풍>. 끝장난다. 읽어가면서 저절로 듀 모리에, 날 배반하지 않는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영국 서남쪽 끝자락인 실리 제도에서 서쪽으로 160킬로미터쯤 더 벗어났고, 선박들의 주요 뱃길하고도 동떨어진 작은 작고 험준한 섬. 이름이 세인트힐다섬. 섬의 규모가 겨우 5~6제곱킬로미터. 즉 섬이 정사각형으로 생겼다 치면 가로 세로 각 2.4킬로미터. 동그랗게 생겼으면 한쪽 끝에서 제일 먼쪽까지 2.7킬로미터. 근데 숲도 별로 없어 사시사철 소금바람에 몰아치는 북풍한설로 땅은 황폐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고, 포도라고 키울 수 있으면 이런 땅에서 나는 포도주가 대낀이긴 하겠건만 그럴 일도 없어, 기껏 농사 짓는다는 것이 감자와 귀리, 그리고 난바다도 아니고 연안바다에서 생선 몇 마리 잡아먹는 것이 일상인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땅이다.

  그러니 주민들은 점점 야생화되어 거칠기 이를 데 없어서, 듀 모리에의 특기인 엽기 잔혹한 일이 벌어질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게다가 제일 인구가 많았던 시절이라봤자 일흔 명에 불과한 적은 수의 주민들이 육지와 교통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꽤 오랜 동안 근친혼의 결과 의욕도 없고, 말도 없고 뭐 그런 처지였다. 소돔에는 그나마 술과 고기라도 넘쳐 흘렀지.

  가끔가다가 더 이상 섬살이에 지친 사람들은 조각배를 타고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공장노동자를 하러 아일랜드나 웨일스에 가 도시빈민계급을 형성했지만 단 한 명도 다시 돌아오지도 않았고, 편지 한 장도 없었다. 편지를 쓰려고 해도 글자 읽는 법을 배운 적이 있어야지. 그래도 그들이 이루지 못하면 2대, 3대… n대 중에 언제 한 번은 함포고복 하며 “내 배 부르고 등 따시면 그게 제일이지 세상에 잉글랜드 수상이 누구인지 내가 알 바 뭐 있겠소!” 할 날도 있었겠지 뭐. 그게 인생이니.

  듀 모리에는 <동풍>을 1926년에 처음 스케치했고, 작품 속에 이게 60년 전 일이라고 주장하니까 무대가 1860년대 중반의 외지고, 외지며 외딴 섬으로 보면 좋겠다. 무역선의 동력도 아직 석탄 엔진이 완비되지 않아, 뭐 부sub동력 정도로는 사용했겠지만, 주동력은 여전히 풍력을 사용했다고 믿자. 그래야 속이 편하다. 작품의 주인공 거스리가 언덕 위의 자기 집에서 하늘을 보니 동풍이 몰려오는 거다. 아무나 언덕 위의 오두막에 사는 게 아니다. 섬의 지도자 겸 어부들의 우두머리니까 거기 사는 거다. 동풍이 불 조짐이 보이니 그는 서둘러 언덕 아래로 내려가 주민들한테 폭풍우가 불 터이니 배들을 안전한 장소에 대고 배끼리 단단하게 묶어두라고 지시한다. 똑소리나는 지시와 충실한 이행 덕에 섬의 배들은 아무 험한 일도 당하지 않고 새벽을 맞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큰 범선이 섬의 부두로 밀고 들어와 턱, 접안을 하고 있는 거다. 과감히 말하자면 섬의 주민 가운데 아무도 이렇게 큰 범선을 본 적도 없고, 범선을 타고 온 선원만큼 많은 육지 사람들을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갈수록 태산인 건, 이들 무리, 섬의 주민하고 선원들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 하도 오래 격리해 살아와 이젠 극악의 사투리로 변해 의사소통은커녕 하고 있는 말의 대강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디 랭귀지. 생긴 것만 비슷하게 생기고, 특별히 살 껍데기 색깔이 거의 같으니 서로 죽고 죽이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둘 다 영국 그 동네 인간들이잖아, 야만인들.

  아이고, 독후감이 너무 길어진다. 그것도 18쪽짜리 단편소설이. 그리하여 뚝 잘라버리면.

  선원들은 주민하고 잘 어울려 이들에게 브랜디를 마시게 하고, 밴드도 불러 노래와 춤을 즐기기도 한다. 당연히 바람과 비가 멈출 때까지는 섬에서 나갈 수 없으니 그나마 물과 여자들이 있는 이곳에서 한 사나흘 실컷 즐기다 가자는 셈이겠지. 섬사람 특히 남자들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브랜디라는 술을 마셔보는 거다. 근데 그게 정말 맛나거든. 독하기도 하고. 독해서 쓰러지면, 거기가 천국 아냐? 쓰고 텁텁하고 약하기만 한 감자술만 찔끔거리다가 독약 같은 브랜디를 마시니 기분이 어떻겠어? 선원이 아니라 전부 천사들처럼 보였겠지.

  근데 세상에 어디 좋은 일들만 있나? 이러면 꼭 사달이 나요, 사달이. <동풍>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선원 하나가 하필이면 주인공이자 선원들의 우두머리이자, 섬사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거스리의 아내, 특별히 금슬이 좋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얺은 그냥 그런 보통의 부부사이이긴 하지만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알통을 자랑하는 거스리의 아내를 찍어 안다리후리기에 이은 잡치기로 자빠뜨려버렸다. 듀 모리에가 여기서 끝나면 모리에가 아니라서, 거스리도 이를 알게 되는데, 어떤 결말이 날까?

  배따라기? 아니면 바다를 닮은 사내니까 그저 너그러이 두 연놈들을 용서해줄까? 배따라기와 달리 무역선 선원놈을 찾아가 냅다 머리통을 부숴버린다고? 에이, 못 가르쳐드리지.


  앞에서 말했듯이 <동풍>을 읽는 내내, 대프니 듀 모리에는 날 배반하지 않았어! 감탄하며 읽는데, 문제가 있다. 전부는 아니고 거의 다 흥미진진한 모리에 식 엽기발랄 아니면 삶의 빈틈을 콕콕 찌르는 송곳 같은 작품인 건 확실한데, 이게 연속으로 앉은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어버리니까 나중엔 그게 그거, 다 비슷한 거 같아서, 그것 참. 안타깝게 됐다. 그러니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읽는다면 시간을 여유롭게 두고 하루에 두 편씩, 모두 열세 편이니까 일주일 정도에 걸쳐 읽으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듯하다.

  이제 끝내려 하는데, 잊지 않았다. 이 책은 몰라도 하여튼 <레베카>와 <나의 사촌 레이첼>은 읽어 보시라. 소위 강.추! 도서관 책은 아마 손때가 겁나게 묻어 퉁퉁 불었을 걸?

  난 이제 홍어, 아마 홍어 애탕일 건데 하여간 그거 먹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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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6-03-09 0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삭히지 않은 홍어, 정말 색다르고 맛있더라구요. 함께 먹었던 누군가는 삭히지 않아서 홍어 특유의 맛이 안나 아쉬워했지만 저는 그 독특함이 더 좋았어요. 연평도에서도 홍어가 잡히는군요. 하긴 바다가 이어져있는데, 꼭 흑산도에서만 잡히라는 법은 없죠.

추천하신 책 네 권을 모두 보관함에 담아야겠네요. 꽃샘추위가 제법 매섭네요.

Falstaff 2026-03-09 05:47   좋아요 0 | URL
저는 서울에서 난 경기도 김포 사람이거든요. 어려서부터 생홍어 많이 먹었습니다. 그래서 남도식으로 삭힌 것도 잘 먹지만 생홍어를 더 좋아합니다. 마당 우물가에서 1미터가 넘는 큰 홍어를 손질하다 꼬리 침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시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ㅎㅎㅎ
감은빛 님도 꽃샘추위에 감기 조심하세요!

바람돌이 2026-03-09 0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의 최애 책 중 하나 나의 사촌 레이첼, 물론 레베카도 좋지만 저는 레이첼이 더 좋습니다. 그런데 이 작가 단편도 좋다구요? 기대되네요,.

Falstaff 2026-03-09 16:20   좋아요 1 | URL
아무거나 좋으면 그게 장땡이지요. ㅎㅎㅎ 이 책도 즐기시기 바랍니다. ^^

잠자냥 2026-03-09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폴스타프 님처럼 현대문학 세계문학단편선하고 겹치는 작품 있는지 일일이 찾아봤었다니까요. ㅋㅋㅋㅋ 아무튼 만족스러운 책이었습니다.

Falstaff 2026-03-09 16:37   좋아요 1 | URL
듀 모리에 한테 바라는 기준이 너무 커졌나봅니다. 이왕이면 한 방 더 꽝! 터뜨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죠. ㅎㅎ

다락방 2026-03-09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저도 레베카 좋지만 저에게 1순위는 레이첼 입니다!!

Falstaff 2026-03-09 16:22   좋아요 0 | URL
아휴, 사람마다 다 같으면 사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