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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왕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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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바티스트 앙드레아의 <그녀를 위하여>를 느므느므 재미있게 읽어서, 그랴, 그러니 공쿠르 상을 탔지, 이이가 쓴 게 또 뭐가 있나 검색해보니 <나의 여왕>이 있었고, 이것도 분명히 (종교적 의미도 포함해)진짜 여왕에 관한 소설일 것이라 넘겨 짚어, 도서관 검색해보니까 우리 동네 말고 다른 곳에 딱 한 권이 있어 상호대차서비스 신청해 받아 읽었다.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하여>에서 예술 작품을 대하는/보는 앙드레아의 빛나는 눈길을 감안하자면. 그런데… 쩝쩝.
“나는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작품의 첫 문장. 이게 무슨 뜻인 줄 알기 위하여 독자는 책을 끝까지 몽땅 읽어야 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알려고 하지 마시라. 시간적 배경은 1965년 여름. 주인공 ‘나’는 이때 열두 살.
프로방스 쪽 아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도로변에 낡고 낡았으며 때가 꼬질꼬질하게 낀 낡은 주유기 두 대를 놓고 영업을 하는 주유소 아들. 위로 누나가 하나 있는데 ‘나’보다 열다섯 살 위. 벌써 결혼해 어딘지 모르는 먼 곳에 살면서 1년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른다. 이때마다 ‘나’를 이런 시골 골짜기에서 기르는 게 마땅하지 않으니 자기가 사는 곳으로 가서 친구도 사귀고 재미있게 놀게 하는 것이 좋다고 바득바득 우기다가, ‘나’를 별로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은 부모가 절대 품에서 떨어뜨릴 수 없다면서 다다다다… 대판 말싸움을 끝으로 눈물바람을 한 채 돌아가는 누나. 얼핏 보면 누나가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가 동생을 아끼는 경우 제법 많지? 이 집도 그런 모양이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염화시중의 미소라고? 웃기네. 살아봐라, 그런 부부도 쌔고 쌨다. 부지런했던 아빠는 주유소 장사도 되지 않고 주유소에 붙어 있는 정비소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해 일신우일신 하루가 새로울 지경으로 게을러져 애초 빛이 번쩍번쩍 했던 주유기가 이젠 때가 더대기가 진 것도 모자라 스치기만 해도 먼지가 정전기를 따라 화다닥 옮겨 붙을 지경이다. 성격도 날이 갈수록 더러워지는 것 같다. 아닐지도 모른다. 어려서 뭔가 잘못했던 적이 있는데 얼마나 오지게 귀싸대기를 얻어터졌는지 어금니가 부러졌을 정도였다. 다행히 그게 젖니라서 망정이지 간니면 어쩔뻔했어? 엄마는 등짝 스매싱 아니면 뭐 그리 심하게 두드려패지는 않지만 앗다, 얼마나 입이 거친지.
‘나’는 뭐하냐고? 집에서 조금씩 일을 돕는다. 열두 살짜리가 학교는 안 간다. 다녔다. 잘 다니지는 못했다. 인근 도시에서 제일이라고 일컫는 의사가 일찍이 ‘나’의 상태를 판정하기를 ‘나’의 머리 성장이 멈춘 상태라고 한다. ‘나’가 생각하기에 참으로 바보 같은 의사다. 내 머리는 점점 커져 어릴 때 쓰던 모자가 들어가지 못하는데 성장이 멈추기는 뭐가 멈춰? ‘나’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과 독자들은 뇌의 발달, 즉 지능이 멈추었다는 것을 단박에 짐작할 것이다. 그러니 ‘나’가 좀 모자란 건 맞는 말이다. 아마도 여덟 살 수준일 듯. 글자를 읽는데 매우 곤란하고, 쓰는 건 퍼진 스파게티처럼 꾸물꾸물 기어갈 정도. 어린 아이들은 야수 상태인 게 보통이다. 그리하여 학교에서 약자의 자리인 건 당연하고, 꼭 한 명 이상 있는 늑대에게 얻어 터지고, 밟히고, 물리고, 욕을 먹는 일이 다반사. 참다 못한 교장선생이 하루는 부모님의 일차 왕림을 부탁하더니, 더 이상의 학교 교육은 ‘나’에게 쓸모가 없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지금, 1965년에는 집에서 ‘먹구대학’에 다니는 중이다.
‘나’도 누나를 따라 다른 곳으로 가기 싫다. 얼마나 좋아. 손님도 거의 없는 주유소에 하는 일이라고는 더러운 C, 원래는 W.C였는데 W자가 떨어져 누군가의 집에서 냄비 받침으로 쓰이고 있어서 C가 된 화장실에 화장지로 아빠가 본 신문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가져다 놓는 일, 아주 가끔 주유기로 한 세기만에 찾아온 손님 차에 휘발유 넣어주기 정도의 편한 생활이 좋다. ‘나’는 새로운 것, 변하는 것이 싫다. 그대로인 것이 좋다. 주유소와 언덕, 주유소에 벽돌로 이어 지은 우리집. 언덕 위의 덤불숲. 숲 속에서 보이는, 그러나 진짜로 C속 앉아 자기 몸을 만지던 부인과 마주친 눈길. 그리고 덤불 안 땅 속에 묻은 찢긴 야한 잡지 속 벌거벗은 여자들 사진. 그래서 ‘나’도 누나를 따라 도시로 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열두 살 먹은 지적 장애 그리고 공황장애까지 있는 ‘나’가 집을 떠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날도 냄새나는 C에 가위로 오린 신문지를 가져다 놓았다. 다른 날과 달랐던 건 화장실 바닥에 담뱃갑이 하나 떨어져 있었고, 담뱃갑 속에 담배 두 개비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걸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뭐 언제나처럼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언덕에 올라 덤불 속에 들어가 늘 가지고 다니던 성냥을 켜 불을 붙였다. 열두 살 꼬마가 성냥을 가지고 다닌다고? 그렇다. 취미생활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게 습관이 됐다. 벌레를 보면 성냥불을 붙여 태워 죽이는 게 즐거웠달까, 하여간 개운해서. 하여간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숙하게 주욱 빨았고, 담배연기가 빠르게 왕창 폐속으로 진입하면서, 기침도 기침이지만 머리가 어질어질,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돌아버려, 얼른 담배를 던져버렸더니 그게 하필이면 최고의 인화물질인 소나무 낙엽에 떨어져 화라락, 불이 지펴져 버린 거였다. ‘나’는 기겁을 해서 발로 밟아 끄려고 했지만 그게 쉽나. 이때 주유소 마당에서 불 나는 꼴을 목격한 엄마가 비명을 질렀고, 아빠가 소화기를 들고 나와, 정상 상태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도로 뛰러 언덕에 올라오더니 맹렬하게 소화기를 휘둘렀고, 마침 지나가던 남자 어른 몇이 합세해 불을 끄기는 했다.
다행이라고? 그거 이상이지. 장소가 ‘주유소 인근’이라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나’가 오늘은 이걸로 끝나지만 점점 대가리가 커지면 나중에 어떤 일을 벌일지 누가 알아? 그리하여 엄마와 아빠가 깊고 깊은 토의를 거쳐 엄지손가락에 인주 듬뿍 묻혀 합의서를 작성했으니, ‘나’를 누나한테 보내자는 것.
나는 그날로 짐을 쌌다. 짐이라야 뭐 단출하다. 배낭에 ‘나’의 잡동사니들과 옷가지를 몇 넣고, 잠을 안 자고 기다렸다. 드디어 밤이 깊어지고 조금 있으면 새벽이 다가올 시간,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거실로 가서 아빠가 자는 소파를 지나 토끼 사냥용 22구경 엽총과 총알 몇 알을 챙기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창문을 넘어 주유소 생활의 마침표를 찍어 버렸다.
깜짝 놀랐지? 겨우 열두 살짜리 소년이 22구경 소총과 총탄을 들고 길에 나서면 언젠가는 그걸 쏠 거 아니냐고. 이건 소설작법 1장 9절에 나오는 거니까. 그럼 누가 죽을까? 아이고, 걱정 마시라. 작품의 주인공 ‘나’는 정신지체에다가 공황장애. 하필이면 가출의 경로를 집 앞에 도로를 따라 프로방스 쪽이 아니라 집 저편에 있는 산을 넘어간다. 거의 암벽 수준의 능선을 넘다가 언제 어디서 그랬는 줄도 모르고 기껏 챙겨온 배낭, 그리고 22구경 소총과 탄알을 그냥 홀랑 잃어버린다니까 글쎄. 이런 참.
깎아지르는 능선을 넘으면 소설이니까 가능한 초목지대가 펼쳐진다. ‘나’는 이곳에서도 피곤한 몸을 뉠 곳이 없어 바위 틈바구니에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잤을까 구별이 가지 않더라도 눈을 떴고, 해가 벌써 중천에 올랐는데, ‘나’를 내려다보는 도전적이고 매서운 눈을 한 ‘나’ 또래의 작은 여자 아이.
이 아이 이름이 비비안이고, 언필칭 나의 여왕님이다. 비비안 역시 이를 흡족하게 여기고 계속 ‘나’가 비비안을 여왕으로 알고 추앙하기 위하여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니:
첫째가, 내 몸을 만지지 말 것이로다.
둘째가, 내가 어디 사는지 궁금해하지 말지어다.
셋째가, 내가 어디 사는지 찾지 말지어다.
속세에 까질 만큼 까진 우리 독자들은 한 눈에 알 수 있겠지? 이건 동화 같은 여왕의 이야기이고 비비안 역시 중간 계급 정도 한 평범한 가정의 딸이라는 것을. 그러나 정신지체이자 공황장애의 ‘나’의 입장에서는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실현 가능한 동화이자 환상 속의 여왕님이 비비안인 것을.
그래서 어땠느냐고? 이미 알 거 다 아는 21세기의 독자 입장에서는 그냥. 뭐 딱 부러지게 한 말씀 덧붙일 필요 없겠지? 그렇지? 그지? 맞아, 오늘이 대표적, 기념할 만한 음주 독후감이었어. 미안해. 어제 독후감은 홍어 먹기 전이고, 지금은 홍어애탕 먹고 난 다음이야.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만날 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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