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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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책이라도 손이 선뜻 가지 않는 작품이 있다. 내겐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도 그 속에 든다. 이 책이 <생의 한가운데>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무척 오래 전이었으며,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의 꼭대기에 상당기간 앉아 있던 걸로 기억한다. 이런 경우를 궁합이라고 하면, <삶의 한가운데>와 나는 궁합이 맞지 않았던 거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선택하지 않게 되더란 것. 근데 왜 갑자기 이 책을 골랐느냐 하면, 소설가라고 한 때 칭했던 신영숙이가 자기가 썼다고 주장한 <엄마를 당부해>란 작품 속에서 이 유명한 작품 <삶의 한가운데>의, 다른 부분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첫 문장을 과감하게 조금 바꿔 썼다는 이야기를 들어, 그때부터 호기심이 발동을 했기 때문이다. <삶의 한가운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이 정도면 ‘인상적인 첫 문장’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임팩트가 있다. 적어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문장 자체가 한 문단 속에 다른 문장들과 섞여 있을 만하지 않고, 오직 문단의 가장 앞부분에만 어울린다(고 나는 주장한다). 영숙이는 이 문장을 절대 복사하지 않았다. 걔도 뇌가 있으니까. <엄마를 당부해> 25쪽의 마지막 줄에 있으며 역시 한 문단을 시작하는 문장으로 이렇게 써놓았다.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책을 사서 봤느냐고? 천만의 말씀.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 기능이 이럴 때 좋다. 만일 영숙이가 한 문단을 “긴 터널을 지나니 거긴 눈의 나라였다.”라고 시작했다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을 거다. 누구나 다 어느 소설에서 따 왔는지 아니까. 근데 모녀 관계 어쩌고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나는 영숙이도 이게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오는 문장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영숙이가 습작시대에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밥 먹듯 해온 것이 필사였는데, 필사도 한 두 편이지, 언젠가 부터는 완전필사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좋은 문장이 나오면 아무 생각 없이 공책에 적어놓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이게 사달이 아니었겠나. 공책 한 페이지 넘기면 좋은 문장이 쌔고 쌨는데 그걸 안 써먹어? 한 번 썼는데 아무도 시비하지 않는다. 그럼 두 번 써먹고, 또 시비가 없으면 다음부터는 상습적 도둑질을 하게 되는 거겠지. 그냥 베낀다는 게 아니라, ‘자매’가 ‘모녀’로 바뀐 것처럼 약간씩의 변형을 거쳐서.
 하여간 이런 이유로 <삶의 한가운데>를 읽기 시작했다. 루이제 린저가 1911년생. 책을 발간한 것이 1950년. 린저 본인이 반나치즘 운동으로 1944년에 투옥되어 종전 후 풀려난 전력이 있다. 이런 경험이 소설의 주인공 니나 부슈만에 어느 정도는 그대로 투영된다. 니나 역시 1911년생이며, 1944년부터 종전 때까지 교도소에 수감된 전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가로 설정했다. 성격이 아주 독특한데, 예를 들면 열두 살 위의 언니의 “결혼식 때 부모님이 니나에게 마치 시동처럼 내(니나의 언니이자 화자) 면사포를 들고 가도록 시키자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몹시 화가 난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지고는 나의 면사포에 침을 뱉었다.” (7쪽)
 니나의 이런 독특한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요새 말로 하면 극도의 까칠함이랄까. 누가 자신을 칭찬해주는 것도 싫고, 말 한마디를 해도 좋은 어투는 초장부터 출장 가버리는 성격. 그러나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현실, 즉 현재의 삶에 적극적으로, 온몸으로 부딪혀 상처를 입고, 절망하는 인물이다. 니나의 이런 일련의 행위가 간혹 자신을 위해서, 자주는 타인을 위해서이기는 한데 타인의 눈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게 비치는, 끔찍한 젊음의 고통 속에서 활활 타버리는 여인.
 바뎀바일러에 있는 뢰머바트 호텔의 바에서 니나의 언니인 화자 ‘나’가 실로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 동생 니나를 우연히 발견한다. 위스키를 거푸 마셔대는 야성적인 여성. 결코 예쁘지는 않지만 매력 있는 모습의 니나. 결혼 후 동생에 관해 한 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 완전히 잊고 있던 니나를 마흔아홉 살이 되어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호텔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독한 니나를 우연히 만나고, 몇 주 후 전화가 와서 자신이 있는 뮌헨에 와달라는 전화를 받아 애꿎은 남편이 피곤해 하건 말건 자동차 운전을 시켜 밤새 달려와서 작품의 첫 문장, ‘서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자매들 간의 대화를 시작한다. 니나보다 스무 살이 많은 의사 슈타인 씨가 죽기 전에 니나 앞으로 남겨놓은 일기를 매개로 해서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동생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 이야기.
 그러나 루이제 린저는 니나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래 맞아, 라고 니나가 말했다. 바로 그거야, 이 이야기는 긴장을 시켜. 왜냐고? 전적으로 스토리에 의존해 있기 때문이야. 나는 이것을 참을 수 없어. 모두 이렇게 쓰고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는 내 머리에 한 다스나 들어 있어. 그러나 아무런 가치도 없어. 소재는 중요하지 않아.” (149쪽)
 린저는 스스로의 작품에서 소설엔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럼 뭐가 중헌디? 심리상태다. 불안하고, 좌절하고, 곤경에 처하고, 실패하고, 도와주려다 오히려 면박을 당할 때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을 할까. 슈타인 박사가 묘사하는 니나와, 니나가 설명하는 당시 상황의 차이점. 이런 것들이 린저가 천착했던 진짜 모습은 아니었을까, 린저가 진짜로 쓰고 싶었던 작품은 철저한 심리소설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독일의 47그룹과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루이제 린저는 결국 책의 마지막까지 스토리를 이어나가고, 결론을 맺고, 심지어 에필로그 비슷한 광경을 그려내기까지 한다.
 재미있는 소설책. 등장인물의 대사 부분에 따옴표나 기타 부호들을 붙이지 않아 더 감성에 호소하는 것처럼 읽히는데, 이것도 영숙이 분위기하고 유사....하다. 그러니 세상살이 조심해야 하는 거다. 한 번 수상하게 보니까 이것저것 다 이상한 거 아닌가. 다른 건 몰라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앞으로도 집요하게 글 도둑질에 관해서 물고 늘어질 것이다. 작품의 소비자를 이것보다 더 우롱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의 독후감은 결국 기, 승, 전, 글 도둑질. 이렇게 된 것.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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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4-0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매를 모녀로 바꿔치기한 거 보고 당시에 정말 경악을 했습니다.근데 작가 이름과 책 제목은 일부러 바꿔쓰신거죠?

Falstaff 2019-04-02 22:32   좋아요 0 | URL
작가...라기보다, 한때 작가라고 불렸던 인간의 이름과 책 제목은 ^^;; 조금 바꿨습니다. 아직 표절과비평사에서 공식 논평이 표절이 아니고 문자적 유사성이란 주장을 거두지 않는 관계로 괜히 소송에라도 걸리면 그거 정말 귀찮거든요. 물론 쪽팔려서라도 소송이야 하겠습니까만. ㅡ.ㅡ
 

 

 

 3개월에 한 번 씩 이런 추천 비슷한 글을 올리는데, 올해 첫 3개월은, 허허허, 경사로 좀 바빴습니다. 정초부터 아이 이름 하나를 지어 주었고, 이달 말에는 큰애 잔치를 무사히 치뤘습니다. 그래 이래저래 바쁜 관계로 아무래도 읽은 책이 많지 않습니다. 권 수로 55권, 편 수로 51편을 읽었군요. 이 가운데 서재 친구와 하필이면 제 알라딘 서재에서 걸음을 쉬어가시는 분들께 추천할 만한 책을 골라봤습니다. 순서는 제가 읽은 날짜 순입니다. 조금이나마 읽는 분들의 독서생활에 도움이 되면 보람이겠습니다.



1. 윌리엄 스타이런, <소피의 선택>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여인 소피와 광기어린 천재를 지닌 유대인 남자 네이선. 둘의 광적인 사랑은 깊숙한 비밀을 은폐하는 '필연적 거짓'의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사랑조차 절망. 그만큼 절대적인 사랑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은 우울과 체념과, 이젠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은폐해온 진실을 짊어져야 하는데, 결국 이들 사랑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2. 조르주 페렉,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동네 양아치 형의 외모를 가진 유대인 작가 조르주 페렉이 입심을 다 해서 만든 한 편의 큰 구라. 70명의 부자가 가진 것보다 더 큰 부를 소유한 독일 출신 미국 이민자 헤르만 라프케. 그가 미국의 독일 주간German Week을 위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배경을 빼곡 채운 자신의 콜렉션을 보란 듯이 과시하기에 이른다. 위대한 컬렉션들은 관객들에게 은밀한 합창을 들려주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3. 세르게이 도브라토프, <여행 가방>

 

소비에트에서 쫓기듯 망명길에 오를 당시 세관에서는 세 개의 여행 가방만 허락할 뿐이었음에도, 작가는 겨우 하나의 가방밖엔 챙길 것이 없었다. 하여간 미국에 도착해 어언 20년 가까이 흘러 새로 생긴 말썽쟁이 아들이 벌을 받느라 벽장 속 가방 위에 앉아 있는 바람에, 드디어 처음 열어보게 된 것. 속에는 소련 시절에 애지중지 했던 몇 가지 물건들이 들어 있고 이들마다 독특한 풍자와 허풍과 객기가 반짝거리는데.



4. 치누아 아체베, <사바나의 개미 언덕>

 

영국이 물러가 해방이 됐다고 해도 진정한 피식민은 끝나지 않은 것. 대책없이 주어진 해방을 맞은 아프리카 가상국에서 벌어지는 해방의 후유증과 반half식민의 상징적 체제인 독재 정권의 등장. 지식인들은 독재에 저항하거나 빌붙어야 하고, 인민들은 누백년 이어온 자신들의 정서와 독재 정권의 이해에 따라 갈등을 맞아야 하는데, 이걸 신생국가의 성장통이라고 가비얍게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아체베의 팬이라면 놓치지 않아야 할 책.



5.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이 책이 아동들을 위한 동화라고? 천만의 말씀. 이 여행기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실체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소인국과 대인국, 도덕적인 말horse들의 나라 등 네 번의 행해를 하면서 걸리버는 두 페이지에 한 번씩 영국과 유럽의 문화와 정치체제와 귀족들의 이면을 날카롭게 헤쳐가며 비틀어버린다. 다만 18세기 소설이라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조금 지루할 수도 있을 터.



6. 쥘리앵 그린, <잔해>

 

소심한 인간의 저 깊숙한 형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키가 크고 건장하며 잘생긴 필리프. 결혼 첫날 밤의 침상에서 갑자기 높은 소리로 홍소를 쏟아내더니 딸꾹질을 시작하는 아내. 이후 아들을 낳고 부터는 전혀 한 자리에 든 적이 없는 건조한 부부. 이들 사이에 끼어든 한 명의 여인이 있으니 처형.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부유한 남자의 찌질함도 때론 소설의 매력적인 소재가 되기도 한다.



7. 니코스 카잔자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드디어 출간한 그리스어 직역. 세 번째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 주인공 조르바가 60대 노인이어서 그런가, 이 책은 나이가 들어 읽으면 더욱 좋다는 결론. 스스로 조르바의 팬이었던 고 이윤기 선생도 결국 못보고 갔지만 직역한 유재원 번역본이 나왔다는데 만족하리라 믿는다. 여태까지는 읽어보지 못한 프롤로그가 붙어 있는 것도 신기했다. 앞으로 그리스어-불어-영어-한국어 번역의 이윤기 본 <그리스인 조르바>는 잊으시라.



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이 책 역시 조주호에 의한 스페인어 직역이 나왔다. 만연체 문장을 될 수 있는대로 문장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번역한 것이, 나는 진짜 좋던데, 일부 독자들에겐 해독상 어려움을 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나는 이 책으로 <백년의 고독>이 정말로 빼어난 명작이란 확실한 동감을 표할 수 있었다. 마르케스가 만든 필생의 고향 마꼰도에서 벌어지는 부엔디아 일가 이야기, 정말 재미있다.



9. 존 파울즈, <만티사>

 

재미있다가 한 순간의 변주로 철학적 사변으로 넘어가는 소설. 주인공 마일스 씨는 자기가 마일스 그린인지 마일스 데이비스인지도 모를 기억상실증에 빠져 있는 환자. 놀랍게도 기억을 관장하는 뇌기관이 생식을 담당하는 중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구라를 침으로 해서 소설의 전반부는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내놓고 읽기 힘들게 만드는데, 후반으로 가면? 상황 역전. 쉽게 읽히지도 않아 자신의 무지몽매를 한탄할 수도 있으니 주의할 일.



10. V.S 나이폴, <도착의 수수께끼>

나이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 작품. 그저 서인도 제도의 작은 섬 출신으로 별 재미없는 성장소설 쓰다가 운좋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물인줄 알았다가, 화들짝 놀랐다. <미겔 스트리트>를 떠나 이제 코스모폴리탄 영국의 런던에 도착해 학교를 다니고, 글을 쓰고, 필명을 얻어 이제 스톤 헨지가 바라다보이는 시골에 정처를 정할 때까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글쓰기를 시도하는데, 자연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것을 감상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을까.



11. 다니엘 페낙, <산문팔이 소녀>

 

솔직히 다른 작품에 비해 좀 떨어지는 품질이다. 당연 내 생각으로. 하지만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한 건 재미있다는 면. 일찍이 <몸의 일기>를 통해 청소년 시절부터 늙어 명이 다할 때까지 자신의 몸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일기형식으로 쓴 전작을 생각하고 읽었다가 갑자기 프랑스판 누아르 소설을 읽게 되어 당황스러웠는데, 아이고, 당연히 억지와 무리가 뒤따르지만 정말 재미있어 그런 거 다 용서가 되는 거, 이거 이해하시겠지?



12. 호르헤 볼피, <클링조르를 찾아서>

 

가상의 수학자 구스타프 링스를 등장시켜 20세기 중반의 유럽에서 벌어진 과학과 수학의 발전, 물리학자들에 의하여 진행되던 핵폭탄 제조 과정을 둘러싼 미스테리를 설명하게 구성된 첩보 소설. 링스 박사가 나치에 의하여 반역죄를 적용받아 분명히 사형 선고를 받을 찰나, 연합군의 폭격으로 건물 지붕이 무너지며 벽돌이 떨어지면서 판사의 해골을 쪼개는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인물. 이제 원자탄 기술이 소련 연방으로 전해지려는 위험천만의 시절에 진짜 스파이는 누구일까. 궁리하지 마시라. 읽기 전엔 절대 알 수 없을 터이니.



13. 리처드 포드, <독립 기념일>

 

지난 삼 개월 동안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 전처와 전처의 남편이 자기 아이들 둘과 살고, 자신은 일정 기간에 한 번의 만남만 허락되는 이혼남 프랭크 배스컴. 이이가 독립기념일 연휴를 맞아 문제아 맏아들 폴과 함께 농구, 야구 명예의 전당을 찾아 길을 떠나는데, 당연히 우여곡절이 있어 재미있는 장편소설 한 편을 쓸만한 이야기 거리가 생긴다. 아들 폴로 말하자면 부적응증이 심해 매사 삐딱한 전형적 반항기 청소년.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아들의 험난한 연휴 보내기란?



14. 아리엘 도르프만,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친환경 기업정신과 윤리경영을 모토로 한 거대기업의 회장 블레이크 씨. 이이한테 난데없이 닥친 불면증. 이를 다스리기 위해 심리치료를 선택하는데, 있는 게 돈이니, 한 가정에 온갖 소형 CCTV를 설치해 가족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관찰할 수 있는 관음과, 돈을 매개로 해서 해당 가족의 행운과 불행을 조절할 수 있는 가히 신적 인간으로 등극하는 블레이크 씨. 무엇보다 역자 김영미가 번역한 한국어 문장에 대한 기억이 특별했던 책.



15. 미셸 오스트, <밤의 노예>

 

책 읽기를 마칠 때까지 절대 뒷표지에 쓰인 출판사 책소개를 읽지 마시라. 그것만 피해가면 당신은 참 좋은 소설 한 편을 감상할 수 있으리니. 내가 간직했던 우상, 책의 주인공 필립에게는 자신의 아버지인데, 우상이라 함은 그냥 내버려두고 마음 속에서만 자꾸 확장을 하게 해주어야지, 정말로 우상을 찾아 실체를 발견하면 누구든지 일정량의 우러름이 깎일 수밖에 없을 것. 이런 것이 재미있는 일화와 함께 등장해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16.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

 

붉은 군대의 제대 말년, 그러나 지독한 고문관 이반 촌킨. 그가 시골 한 구석에 불시착한 1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고물 복엽 비행기를 지키라는 보초의 명령을 받고 도착한 자리 바로 옆에는 숫처녀 뉴라 벨라쇼바가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으니, 이미 배경부터 교통사고가 예약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붉은 군대와 농민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었는가 하는 촌철살인적 농담과 재담들. 후회하지 않으리.



17. 너대니얼 호손, <일곱 박공의 집>

 

욕심많은 유력가가 원래부터 터를 잡고 살던 목수를 마법사로 몰아 종교재판 끝에 목매달아 죽이고 집터와 샘을 빼앗아 그 자리에 박공이 일곱 개에 달하는 지역의 랜드 마크 저택을 지으니 바로 일곱 박공의 집. 목수는 죽어가며 신은 저자에게 피를 마시게 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고, 유력가는 의자에 앉은 채로 넓은 넥타이에 많을 피를 쏟은 채 죽어 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두 집안에 오랜 세월을 걸쳐 내려온 저주와 복수. 이것은 어떻게 해소가 될지.



18. 허먼 멜빌, <허먼 맬빌 : 선원, 빌리 버드 외 6편>

 

양심적인 단편선. 다른 출판사에서 찍었으면 족히 세 권의 얇은 단행본으로 만들었을 듯. 총 일곱 편의 중단편이 들어 있다. <바틀비>와 <선원, 빌리 버드>를 읽기 위해 샀다가, 그것들은 물론이고 <꼬끼오, 혹은 고귀한 수탉 베네벤티노>도 재미있게 읽었다. 인류 문화유산으로 남을 <모비딕>을 쓴 작가가 중단편에서도 이리 흥미로운 시도를 했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19. 주나 반스, <나이트 우드>

 

여성 퀴어 소설. 아마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한 우물> 이후 8년만에 발간한 두 번째 여성 퀴어일 듯.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간 동성애도 이제 새로운 소재가 되지 못하니 새삼스레 그런 방면에 관심을 둘 필요 없고, 딱 하나, 예스럽고 화려한 문장에 방점을 두어 감상하는 것도 매우 좋은 독서법이 될 것. 독자는 이 작품 역시 젊은 역자 이예원의 노고에 감탄하게 되리라.



20.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개선문>

 

40년이 넘어 재독한 인생책.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1년을 파리를 무대로 독일 출신 의사 라비크와 삼류 여배우 조앙 마두의 사랑과 복수를 그린 작품. 작가 스스로 나치의 등장과 더불어 망명길에 올라야 해서 라비크의 묘사가 더욱 충실해질 수 있었을 터. 역시 반전문학 하면 레마르크. 이제 그의 또다른 망명소설 하나를 보관함에 두고 있으니 늦어도 6월엔 읽을 거 같다. 안개낀 11월의 새벽, 파리 센 강의 우울.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개선문>을 읽을 이유가 되리라.



21. 트루먼 커포티, <풀잎 하프>

 

반나절이면 계산 다 될 짧은 장편. 그럼에도 성장소설이 품고 있는 아스라함을 어찌 이리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어린 나이에 천애 고아가 된 '나'와 두 명의 당숙아주머니들. 이들과 함께 사는 늙은 흑인 하녀 캐스린. 이야기가 확장됨에 따라 등장하는 아들 둘로부터 소외당한 홀아비 옛 지역 판사, 어려서부터 정신 이상인 어머니에게 혹독한 훈육을 받고 자란 젊은 가장. 이들이 서로 연대하여 서로를 위무하고 어려움의 시절을 관통하며 성장하는 광경이 사람의 가슴을 띵,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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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9-04-01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는 상투적은 댓글이지만, 진심이랍니다. ^^

Falstaff 2019-04-01 10:5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좋은 표현을 많은 사람들이 쓰니 ‘상투적‘이 됐겠지요. ^^

싱클레어 2019-05-1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민음사패밀리데이에 가서 담아 올 쇼핑 목록을 적고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레마르크 소설은 저도 정말정말 좋아하는데 <개선문>은 이번에 이벤트로 받았습니다.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도 좋아하는데 <사바나의 개미 언덕>, <소피의 선택>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Falstaff 2019-05-13 09:15   좋아요 0 | URL
책 선택에 도움이 되면 저도 참 즐겁겠습니다. ^^
 
더 큰 희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일제 아이힝거 지음, 김충남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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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알게 된 ‘일제Ilse'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첫째가 안탈 도라티 옹의 아내이자 멘델스존 피아노 스페셜리스트 일제 폰 알펜하임, 두 번째가 카를 오토 코흐 치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의 진정한 엽기 마녀 일제 코흐, 그리고 이 책 <더 큰 희망>을 쓴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반half 유대인 작가 일제 아이힝거. 1945년 이후에 독일 땅에서 여자 이름으로 ’일제‘, 남자 이름으로 ’아돌프‘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전에 한 바 있다.
 일제 아이힝거는 모계가 유대인이고 부계는 아리아 사람으로 엄마 직업이 의사, 아빠는 교사. 그러다가 세월이 수상하게 흘러 오스트리아 출신의 키 작고 콧수염 기른 남자가 독일의 총통이 되자,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건 모르겠고 여차하면 자기 목숨까지 위태한 지경에 처한 아빠가 유대인 아내와 유대인의 피가 절반이 섞인 쌍둥이 자매를 팽개치고 이혼을 감행하는 바람에, 일제는 외할머니와 살거나 기숙학교에 머물게 된다. 다행히 불행한 일을 피해간 일제는 일찍이 의과대학에 적을 둔 적이 있었으나 나치 시절에 더러운 유대인이란 딱지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 전쟁이 끝난 다음에야 의과대학에 다시 다닐 수 있었으나,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하고 싶은 본성에 이끌려 5학기를 마치고 <더 큰 희망>을 쓰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다. 책 뒤에 쓰여 있는 작가 소개를 보면 작품을 쓴 다음에 다시 의사 면허를 땄는지, 그냥 창작에만 전념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책에서는 ‘엘렌’이란 이름의 소녀가 주인공인데, 조부모, 외조부모 가운데 두 명이 유대인, 두 명이 아리안 족의 반半유대인으로,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팽개치고 독일군에 입대해버린 상태에서, 엄마마저 자기를 오스트리아 빈에서 외할머니와 같이 살라고 내버려두고 미국으로 탈출을 해버린 처지로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일제 아이힝거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세상의 숱한 작품 속에 작가자신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란 별로 없는 거니까. 나는 작가 스스로 자전적 소설이라고 이야기한 작품마저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픽션이라 생각하며 읽는 인종이긴 하다.
 이 책은 서로 강하지 않은 연대를 이루는 열 개의 장章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부제가 붙어 있다. 첫 번째 장의 부제는 “큰 희망.” 처음 나오는 두 음절 역시 ‘희망.’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희망봉 주위의 바다는 어두워졌다. 선박 항로들이 다시 한 번 반짝하고 빛나더니 꺼져 버렸다. 비행기 항로는 거드름을 부리듯 아래로 떨어졌다. 여러 섬이 불안하게 모여들었다. 바다는 모든 경도와 위도 위로 넘쳐흘렀다. 바다는 세상의 지식을 비웃었고, 무거운 비단처럼 밝은 육지 쪽으로 바싹 달라붙었으며 아프리카의 남쪽 끝을 어스름 속에서 단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했다. 바다는 해안선을 휩쓸어 원래의 찢긴 모습을 부드럽게 해 주었다.“  (3쪽)


 첫 문단을 통째로 옮겨놓고 다시 생각해보니,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 자전적 소설이고 반유대인 소녀가 주인공이란 것을 괜히 이야기한 거 같다. 나는 한 번에 수십 권을 사서 순서 초간 발행 순으로 읽는 버릇이 있어서(한 번 이런 나름대로의 룰을 깨고 갑자기 새 책을 사 도중에 읽고 독후감 썼다가 코피난 적 있다. 다시는 그딴 짓 안 할 거다.) 이 책을 살 때는 정보를 알고 있었을지언정, 정작 읽을 때는 사전에 아무 정보도 모른 채 읽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첫 문단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생각해보시라, 정말 자연스럽게 이제 새 희망을 찾아 새로운 대륙, 아프리카가 됐건, 아시아가 됐건, 아메리카가 됐건 간에 첫 출발을 하는 갑판 위 광경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주인공 소녀 엘렌이 밤중에 미국으로 추정되는 타국의 영사관에 몰래 들어와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바닥에 내려놓고 별의 별 상상을 다 하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리는 광경이다. 영사관엔 왜 들어왔을까. 자애로운 영사에게 부탁을 하면 영사가 서명을 하기만 하면 저절로 발부되는 미국행 비자를 얻을 수 있고, 그렇게만 되면 자유의 여신상도 볼 수 있을뿐더러 그리운 엄마와 상봉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사가 아무리 자애로운 천사라고 해도 어찌 아름다운 엘렌 한 명한테만 특혜를 베풀 수 있느냔 말이지. 아무도 신원을 보증해주는 사람이 없는 아이를.
 엘렌은 유대인의 피가 반이 섞였기 때문에 가슴에 유대의 별을 달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리안 족속 아이들이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진 않을 터. 유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강변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연습에 몰두한다. 누가 빠지면 얼른 구조해주고 대신 예전처럼 강가의 벤치에 자유스럽게 앉아 놀 수 있게 해달라고 하기 위해서. 혼자 남은 일제는 유대 아이들과 어울리려 접근을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내용이 두 번째 장 “부두.”
 유대 아이들은 거의 빈 집에 몰려 들어가 생일 파티를 열고, 엘렌도 생일 케이크를 사려 빵집에 들어갔다가 봉변만 당하는 장면, 많은 나날들 속에 외로이 남겨진 아이들이 스스로 연극을 만들어 구원을 흉내 내며 험한 세월을 유희로 보내고자 하는 장면, 연극에 끼어들어 나치가 오기까지 아이들을 잡고 있어야 하는 임무를 띤 낯선 사내가 오히려 아이들을 도망하게 만드는 장면 등등이 각 부에 주요 스토리를 이룬다. 시간이 갈수록 폴란드로 초대를 받아 떠나는(아우슈비츠 수용소 행을 비유) 유대인들이 늘어나고, 독일 경찰에 붙들려 사라지는 아이들도 많아지는 속에서 드디어 외국 군대에 의하여 빈이 해방을 맞이하려는 순간 까지를 그려놓았다.
 며칠 전엔 2차 세계대전 발발 전 1년 동안의 파리를 무대로 한 남성적인 소설 <개선문>을 읽은데 이어 이번엔 전시 하 빈의 유대인 아이들에 관해 여성적인 시각으로 쓴 작품을 연이어 읽었다. 재미있는 비교 감상이다.
 일제 아이힝거는 전후 독일어권 작가들,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잉게보르크 바흐만, 막스 프리쉬 등과 함께 첫 번째로 등장한 세대로 꼽힌다고 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바로 앞 시절까지의 소설문법과 조금 다른 서술양식을 사용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힝거의 작품은 소위 47그룹이라 일컫는 다른 작가들보다 훨씬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말씀. 그냥 참고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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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수사학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5
손택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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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손택수를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다. 이이가 1998년, 스물아홉 살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서, 2004년 신동엽문학상, 2005년 애지문학상, 2011년 임화문학상, 2013년 노작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럼 우리나라 시인들이 받을 수 있는 상의 종류가 도대체 몇 개인 걸까? 혹시 출판사마다 하나씩 다 문학상을 주고 있는 거 아냐? 하긴 가난한 시인, 작가들이 문학상에 따라붙는 상금이라도 얼마씩 챙겨가야 그나마 살림에 보탬이 될 듯하긴 하다. 시인, 작가들은 꾸준히 계속 생산이 되는 반면, 원고료는 물가상승률을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니 점점 더 빈곤의 맹추격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 이거 뭐, 중요한 얘기 아니다. 독자로서 오직 시 하나만 읽으면 장땡이지, 시인의 생계까지 걱정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시집을 고르는 방식은, 요새 인터넷 서점에 미리보기 장치가 되어 있는 바, 앞에서 일정 페이지를 먼저 읽어볼 수 있다. 그걸 이용해 몇 편의 시를 감상하고, 괜찮다 싶으면 시집을 사게 된다. 물론 출판사나 시인의 이름, 이웃의 감상 등을 먼저 접하게 되면 더욱 좋고. 이 책 역시 미리보기 기능을 써서 앞쪽에 실린 시 몇 수를 읽어보고 마땅하여 샀다. 두 번째 실린 시를 읽어보자.



 육친



 책장에 침을 묻히는 건 어머니의 오래된 버릇
 막 달인 간장 맛이라도 보듯
 눌러 찍은 손가락을 혀에 갖다 대고
 한참을 머물렀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곤 하지
 세상엔 체액을 활자 위에 묻히지 않곤 넘어갈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혀의 동의 없이는 도무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연필심에 침을 묻혀 글을 쓰던 버릇도 버릇이지만
 책 앞에서 침이 고이는 건
 종이 귀신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쓸쓸한 버릇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다고
 아내도 읽지 않는 내 시집 귀퉁이에
 어머니의 침이 묻어 있네
 어린 날 오도독오도독 씹은 생선뼈와 함께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던 그 침
 페이지 페이지 얼룩이 되어 있네  (12쪽. 전문)



 음. 내 마누라만 그런 거 아니구나. 만일 내자가 이 서재에 올라왔던 글들을 꼼꼼하게 읽어왔으면, 모르긴 몰라도 나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아내는 내가 쓴 글을 못 읽는다. 겁나게 지겹단다. 장황하고 서두가 너무 길고 어쩌고저쩌고. A4 용지 한 장을 넘어가는 글을, 그것도 남편이란 것이 쓴 건 더욱이나 읽어내지 못하는 덕택에 이렇게 자유롭게 서재에 마누라 흉보면서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서재 친구 제위시여, 당부하노니 제발 비밀로 해주시라. 그러나 만일 정여사께서 아직 살아계시어 나도 알라딘 서재를 만들었다는 걸 아셨으면 하루에 적어도 스무 번은 들어오셨지 않을까 싶다. 인생이지 뭐. 나는 어머니, 아버지 살아생전 이랬는데 저랬는데 하면서, 하늘같은 사랑 운운하는 걸 무척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이 시가 마음에 든 건 왜 그랬을까? 궁금하시지? 귀엽잖아, 시가. 어머니가. 둘째손가락에 침을 듬뿍 묻혀 자기가 쓴 시집을 넘기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시인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옛 추억”, 딱딱한 생선뼈를 어머니가 오도독오도독 씹어 부드럽게 해 자기 입으로 넘겨주던 일화를 떠올린다. 위 문장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 옛 추억’에 따옴표를 쓴 건, 이 장면이 시인으로서의 상상력을 시어로 쓸 권리를 행사했다는 데 만 원 걸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역시 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다른 시 하나를 보자.



 모과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던 모과를 주워왔다
 올겨울엔 모과차를 마시리라,
 잡화꿀에 절여 쿨룩이는 겨울을 다스려보리라
 도마에 올려놓고 쩍 모과를 쪼개는데
 잘 익은 속살 속에서
 애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나온다
 모과 속살처럼 노래진 애벌레가
 단잠을 깨고 우는 아이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애벌레에게 모과는 인큐베이터 같은 것
 (중략)
 아직도 책장 어딘가에 심장이 멎은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놓쳐버린 아기의 태기를 놓지 못하고 있는 모과
 속을 드러낸 거죽에 검은 주근깨가 숭숭하다
 (후략)   (부분, 14~15쪽)



 열매 속에 애벌레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복숭아, 밤에서 많이 봤다. 그래 전에 과일 속에 벌레가 몇 마리 있을 때 가장 기분이 안 좋은가를 궁리해봤었다. 몇 마리? 백 마리? 천만의 말씀. 과일 하나에 절대 애벌레 백 마리가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 몇 마리? 정답은 “반 마리.” 시인이 아파트 화단에서 모과를 주웠단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모과나무가 있고 가을마다 잔뜩 열린다. 그거 따 가는 사람들만 따 간다. 나머지는? 모과가 달린 모습을 바라보며 좋아한다. 나도 마찬가지고. 주워가는 사람들은 좀 덜한데, 가지에 달린 모과 따는 인종들은 참 밉다. 하여간 시인이 모과를 몇 개 주워 식칼로 쩍 쪼갰는데 거기서 통통한 애벌레가 한 마리 나왔나보다. 애벌레 입장에선 모과 속이 어머니 뱃속 또는 인큐베이터. 어쨌거나. 근데 시인 부부에겐 아픈 과거가 하나 있었다. 배 속에서 생명을 거둔 아이. 그것이 있었다는 증거로 초음파 사진을 아직 책장에 놓아두고 있다는 것이 조금 엽기지만, 모성은, 속을 드러낸 거죽엔 검은 주근깨가 숭숭하건만 아직도 집을 잃은 태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모과를 갈라보니 나타난 애벌레 한 마리. 이걸 보며 아무나 태내에서 숨을 거둔 아이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 그런 상상력을 발산하는 능력이 있는 인간을 우리는 그저 쉽게 시인이라고 할 뿐이지.
 나는 이 시집을 이렇게 읽었다. 그러나 평론가 박수연은 책 뒤편의 ‘해설’에서 “치욕을 견디는, 관계의 꿈”이란 거창한 제목으로 갖은 방법으로 시들을 찢어 해부하고, 조립하고 서로 연관성을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게 그 사람 직업이니까 뭐. 같은 시, 같은 시집을 읽어도, 나는 나의 시를 읽고, 당신은 당신의 시를 읽고, 평론가는 평론가의 시를 읽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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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3-28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아내분께서 가끔씩 서재에 들러 글을 읽고 계실지도 몰라요.
단지 내색을 안하시고 데스노트에 차곡차곡 적어놓고 계실지도.....ㅋㅋㅋ

그래서 저는 소설은 몰라도 시집의 해설 부분은 잘 안봅니다. 나와는 너무 다르게?! 꼼꼼하게 해부하고 해석해놓은 글을 읽다보면 시집을 다시는 더 펼치기 싫어질까봐서요. ^^;;

Falstaff 2019-03-28 17:08   좋아요 1 | URL
윽, 가장 겁내고 있는 말씀을 딱 꼬집어 얘기하셨습니다. ㅋㅋㅋ 근데 알아도 분명 안 읽을 거예요.
맞습니다. 시집 뒤에 달려 있는 해설 보면 아이고, 내가 시를 헛 읽었구나, 이런 마음도 들어요. ^^
 
개선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1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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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가슴에 가장 깊게 각인된 책을 요새는 ‘인생책’이라고 한다. 내게도 있다. 바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개선문>. 1970년대 후반, 하라는 대학 입시 공부는 제쳐두고 밤새는 줄 모르고 있었던 삼중당 문고판 <개선문>. 라비크와 조앙 마두와 칼바도스. 무려 40년 넘는 세월이 흘러 다시 읽었다. 참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리하여 내가 이 책에 관해 가지고 있었던 것,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은, 소설의 이야기도 아니고,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불안한 정세 묘사도 아니었다. 비 내리는 센 강을 가로지르는 어느 다리(‘알마 교’)에서 서로 빗겨 지나가며 우연히 만난 라비크와 조앙 마두. 1938년 11월의 센 강 위에서 곧 쓰러지기라도 할 것 같이 비틀거리는 조앙을 부축하며 ‘저 아래로 가기엔(강물에 몸을 던지기엔) 너무 춥소.’라는 무정하고, 고독하고, 니힐한 대사와 지하 주점에 들어 칼바도스를 주문하는 장면이었다. “술을 주시오. 쓴 술이 아니면 안 되오. 모든 기억을 지울 수 있게 쓴 술을 주시오. 칼바도스로.” 그러나 다시 읽어보니 술을 주문하는 장면은 내 생각과 달리 간결했다. “칼바도스 두 잔.”
 어찌된 것일까. 오랜 세월 동안 시각과 뇌로 기억하는 대신 가슴 박동에 새겨졌던 <개선문>은 박동 수가 늘어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변형되어왔던 거다. 실제로 나는 그동안 여러 포스트와 심지어 사보에 기고한 글 속에서 내가 만들어놓고도 그것이 진짜 작품 속 대사인 것으로 알고 인용해왔다. “술을 주시오. 쓴 술이 아니면 안 되오. 모든 기억을 지울 수 있게 쓴 술을 주시오. 칼바도스로.” 라고. 40년 전의 삼중당 문고판 <개선문>은 몇 십 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새로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만한 다른 번역본도 마땅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 살다 보니까 이런 일도 생긴다. “칼바도스 두 잔.” 여섯 글자가 네 문장으로 자체 확장되는 현상이 다른 사람도 아닌 내게 벌어졌다는 게 놀랍고 쑥스럽기도 하다.
 놀랄 만한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세월의 힘은 너무도 막강하다. 나는 책을 읽으면 스토리나 소설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기억이 날 줄 알았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너무 많은 날들이 흘렀다. <개선문>은, 거의 완벽하게 처음 읽는 책이었다. 주인공과 러시아에서 망명한 훌륭한 조연 모로소프가 등장한다는 것, 라비크의 직업이 의사라는 것만 기억할 수 있었을 뿐이다. 하긴, 오늘 점심 먹으면서 냅킨 넉 장을 뽑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옆 테이블에 앉은 직원에게 냅킨 통 좀 건네 달라고 한 걸로 보아 이제 뇌 활동이 정상은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
 레마르크가 빼어난 반전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출간한 것이 1929년. 3년 후, 독일엔 불행하게도 히틀러를 수반하는 국가사회주의, 즉 나치가 집권해버린다. 나치 치하에서 반전주의자가 살 수는 없는 일. 레마르크는 이후 스위스, 미국을 거쳐 다시 스위스 로카르노의 침상에서 숨을 거둔다. 즉 스스로 망명객의 삶을 살았던 것. 그래 <개선문>에서도 주인공 라비크를 등장시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독일인과 유대인을 며칠간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심지어 애인 시빌도 자신의 눈앞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수용소로 끌려가 사흘 만에 목매달아 자살해버린 다음, 자신도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그곳에서 탈출해 프랑스로 도피한 인물로 설정을 했다. 안나 제거스는 장편소설 <제7의 십자가>에서, 독일 내의 수용소에서 유대인이 아닌 독일인 민주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 수용소를 탈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나게 그린 바 있는데, 라비크는 그런 어려움을 뚫고 파리까지 도착했으니 기본적으로 건강한 체력과 체격, 그리고 완력이 남다른 인물이란 점을 이해하고 읽어야 한다. 밀입국한 독일의 유능한 외과의사로 실력은 있지만 손재주가 특출하지 않아 외과적 수술엔 한계가 있는 불운한 프랑스 의사 두 명에게 임시로 고용되어 수술을 대신해주고 건 당 약간의 보수를 받아 생활하고 있는 상태. 그러나 삼류호텔 앙테르나쇼날에서 살며 좋은 음식을 먹고 날마다 고급술을 거의 무한정으로 마실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은 된다. 그의 우울. 그건 베를린에서 고문을 받아 한쪽 신장이 파열되고, 이마가 찢어지고, 한 쪽 고환이 터져버릴 정도였던 고통의 기억과, 사랑하는 애인 시빌을 자살로까지 몰아간 게슈타포 장교 하케에 대한 공포, 혐오, 복수의 갈망에서 비롯한다.
 삼류 배우 조앙 마두. 동거하던 남자가 숨이 끊어지자 이제 세상에 자기 혼자 말고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걸 이기지 못해 비 내리는 새벽의 센 강변을 홀로 거닐던 여자. 삶의 의욕이 전혀 남지 않은 상태에서 따뜻한 지하 주점에 데리고 가 화주火酒를 사줘 몸을 덥힐 수 있게 해준 라비크와, 동거남이 죽은 바로 그 밤을 보내고 다시 삶을 찾은 여인. 러시아 백군 출신 망명자 모로소프에 의하면 창녀는 아니지만 걸레 수준의 헤픈 이탈리아 여자. 라비크는 이해한다. 그녀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항상 몰두해야 하는 별자리를 타고 났음을.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불행한 과거를 가진 남자와 사랑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여인이 만들어가는 불안의 일 년. 40년 전 한국의 한 고교생은 이 책을 읽으면서 붉게 밝아오는 새벽 놀을 바라보았었다. <개선문>은 여전히 내 인생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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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3-27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80년 초에 읽었으니까 falstaff님보다 조금 늦게 읽긴 했지만 제게도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책이었지요. 저 역시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었어요. 중학교 3학년때이니까 뭐가 뭔지 잘 모를때인데도 이렇게 쓸쓸한 것도 사랑이구나, 하기 전보다 더 허무하고 외로와지는 것도 사랑이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전 감히 인생책이라고 말 못하겠는게 그 이후로 한번도 더 읽어본 적 없거든요. 저도 다시 읽으면 아마 완전 새로운 개선문을 읽게 되겠지요? ^^

Falstaff 2019-03-27 14:41   좋아요 0 | URL
아, 10대 시절에 이 책을 읽으셨다니, 그것도 같은 삼중당 문고판을 읽으셨다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요즘 십대들은 헤세, 지드, 레마르크 등등엔 별로 관심이 없는 거 같아요. 세월이 갈수록 경쟁이 심해져서 그런지 불쌍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hnine님도 언젠가는 재독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

노나 2019-04-19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책이시라니 너무 반가운 마음에..제가 94학번에 고등학교때 읽었으니 대선배님이시네요..저도 줄거리도 무엇도 기억이 나질않고 그때의 라비크의 고독한 분위기만이 뇌리에 남아있어요. 오래전이라 책이 사라져 다시 읽을수 있을까싶어 장바구니에 담아만 두고.. 이젠 집에 한번 데려와야할 것 같아요. 옛추억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Falstaff 2019-04-19 10:39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좋아하신다니 반갑습니다.
다시 읽어보셔요. 세월이 참. 읽는 느낌이 상당히 다를 겁니다.
누추한 감상문을 즐겁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Arch 2020-05-13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이 지루할 때 상각났던 책. 개선문을 집어들었는데 라빅의 우울과 고독이 너무 위악적으로 느껴져요. 새로운 감각을 환기시키길 기대했는데 더없이 불안하고 유치한 느낌. 전엔 조앙과 라빅의 사랑이 정말 애처로웠는데 몇페이지 넘기고선 계속 갈지말지 고민이 되더라구요

Falstaff 2020-05-14 08:59   좋아요 0 | URL
Arch 님 의견이 옳습니다.
평양 감사도 싫으면 안 하는데 많고 많은 책 가운데 굳이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읽으실 필요는 하나도 없습니다!
근데 저처럼 재미나게 읽은 사람도 있다는 거...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요 뭐.

다락방 2023-02-2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우 김헤자가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책에서 언급하길래 읽어보려고 하는데 마침 골드문트 님의 인생책 이라는 이 리뷰가 보이네요. 땡스투 는 골드문트 님께 드립니다. ㅎㅎ

Falstaff 2023-02-20 12:30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ㅎ 고맙습니다.
지금 취중이라... 천국이군요.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