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희망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일제 아이힝거 지음, 김충남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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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알게 된 ‘일제Ilse'라는 이름의 여성이다. 첫째가 안탈 도라티 옹의 아내이자 멘델스존 피아노 스페셜리스트 일제 폰 알펜하임, 두 번째가 카를 오토 코흐 치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의 진정한 엽기 마녀 일제 코흐, 그리고 이 책 <더 큰 희망>을 쓴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반half 유대인 작가 일제 아이힝거. 1945년 이후에 독일 땅에서 여자 이름으로 ’일제‘, 남자 이름으로 ’아돌프‘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전에 한 바 있다.
 일제 아이힝거는 모계가 유대인이고 부계는 아리아 사람으로 엄마 직업이 의사, 아빠는 교사. 그러다가 세월이 수상하게 흘러 오스트리아 출신의 키 작고 콧수염 기른 남자가 독일의 총통이 되자, 사랑이고 나발이고 그건 모르겠고 여차하면 자기 목숨까지 위태한 지경에 처한 아빠가 유대인 아내와 유대인의 피가 절반이 섞인 쌍둥이 자매를 팽개치고 이혼을 감행하는 바람에, 일제는 외할머니와 살거나 기숙학교에 머물게 된다. 다행히 불행한 일을 피해간 일제는 일찍이 의과대학에 적을 둔 적이 있었으나 나치 시절에 더러운 유대인이란 딱지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 전쟁이 끝난 다음에야 의과대학에 다시 다닐 수 있었으나,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하고 싶은 본성에 이끌려 5학기를 마치고 <더 큰 희망>을 쓰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다. 책 뒤에 쓰여 있는 작가 소개를 보면 작품을 쓴 다음에 다시 의사 면허를 땄는지, 그냥 창작에만 전념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책에서는 ‘엘렌’이란 이름의 소녀가 주인공인데, 조부모, 외조부모 가운데 두 명이 유대인, 두 명이 아리안 족의 반半유대인으로,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팽개치고 독일군에 입대해버린 상태에서, 엄마마저 자기를 오스트리아 빈에서 외할머니와 같이 살라고 내버려두고 미국으로 탈출을 해버린 처지로 시작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일제 아이힝거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세상의 숱한 작품 속에 작가자신이 들어있지 않은 경우란 별로 없는 거니까. 나는 작가 스스로 자전적 소설이라고 이야기한 작품마저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픽션이라 생각하며 읽는 인종이긴 하다.
 이 책은 서로 강하지 않은 연대를 이루는 열 개의 장章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부제가 붙어 있다. 첫 번째 장의 부제는 “큰 희망.” 처음 나오는 두 음절 역시 ‘희망.’ 첫 단락은 이렇게 시작한다.


 "희망봉 주위의 바다는 어두워졌다. 선박 항로들이 다시 한 번 반짝하고 빛나더니 꺼져 버렸다. 비행기 항로는 거드름을 부리듯 아래로 떨어졌다. 여러 섬이 불안하게 모여들었다. 바다는 모든 경도와 위도 위로 넘쳐흘렀다. 바다는 세상의 지식을 비웃었고, 무거운 비단처럼 밝은 육지 쪽으로 바싹 달라붙었으며 아프리카의 남쪽 끝을 어스름 속에서 단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했다. 바다는 해안선을 휩쓸어 원래의 찢긴 모습을 부드럽게 해 주었다.“  (3쪽)


 첫 문단을 통째로 옮겨놓고 다시 생각해보니,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 자전적 소설이고 반유대인 소녀가 주인공이란 것을 괜히 이야기한 거 같다. 나는 한 번에 수십 권을 사서 순서 초간 발행 순으로 읽는 버릇이 있어서(한 번 이런 나름대로의 룰을 깨고 갑자기 새 책을 사 도중에 읽고 독후감 썼다가 코피난 적 있다. 다시는 그딴 짓 안 할 거다.) 이 책을 살 때는 정보를 알고 있었을지언정, 정작 읽을 때는 사전에 아무 정보도 모른 채 읽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첫 문단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생각해보시라, 정말 자연스럽게 이제 새 희망을 찾아 새로운 대륙, 아프리카가 됐건, 아시아가 됐건, 아메리카가 됐건 간에 첫 출발을 하는 갑판 위 광경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주인공 소녀 엘렌이 밤중에 미국으로 추정되는 타국의 영사관에 몰래 들어와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바닥에 내려놓고 별의 별 상상을 다 하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리는 광경이다. 영사관엔 왜 들어왔을까. 자애로운 영사에게 부탁을 하면 영사가 서명을 하기만 하면 저절로 발부되는 미국행 비자를 얻을 수 있고, 그렇게만 되면 자유의 여신상도 볼 수 있을뿐더러 그리운 엄마와 상봉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사가 아무리 자애로운 천사라고 해도 어찌 아름다운 엘렌 한 명한테만 특혜를 베풀 수 있느냔 말이지. 아무도 신원을 보증해주는 사람이 없는 아이를.
 엘렌은 유대인의 피가 반이 섞였기 때문에 가슴에 유대의 별을 달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리안 족속 아이들이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진 않을 터. 유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강변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연습에 몰두한다. 누가 빠지면 얼른 구조해주고 대신 예전처럼 강가의 벤치에 자유스럽게 앉아 놀 수 있게 해달라고 하기 위해서. 혼자 남은 일제는 유대 아이들과 어울리려 접근을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내용이 두 번째 장 “부두.”
 유대 아이들은 거의 빈 집에 몰려 들어가 생일 파티를 열고, 엘렌도 생일 케이크를 사려 빵집에 들어갔다가 봉변만 당하는 장면, 많은 나날들 속에 외로이 남겨진 아이들이 스스로 연극을 만들어 구원을 흉내 내며 험한 세월을 유희로 보내고자 하는 장면, 연극에 끼어들어 나치가 오기까지 아이들을 잡고 있어야 하는 임무를 띤 낯선 사내가 오히려 아이들을 도망하게 만드는 장면 등등이 각 부에 주요 스토리를 이룬다. 시간이 갈수록 폴란드로 초대를 받아 떠나는(아우슈비츠 수용소 행을 비유) 유대인들이 늘어나고, 독일 경찰에 붙들려 사라지는 아이들도 많아지는 속에서 드디어 외국 군대에 의하여 빈이 해방을 맞이하려는 순간 까지를 그려놓았다.
 며칠 전엔 2차 세계대전 발발 전 1년 동안의 파리를 무대로 한 남성적인 소설 <개선문>을 읽은데 이어 이번엔 전시 하 빈의 유대인 아이들에 관해 여성적인 시각으로 쓴 작품을 연이어 읽었다. 재미있는 비교 감상이다.
 일제 아이힝거는 전후 독일어권 작가들,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잉게보르크 바흐만, 막스 프리쉬 등과 함께 첫 번째로 등장한 세대로 꼽힌다고 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바로 앞 시절까지의 소설문법과 조금 다른 서술양식을 사용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힝거의 작품은 소위 47그룹이라 일컫는 다른 작가들보다 훨씬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하여간 그렇다는 말씀. 그냥 참고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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