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수사학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5
손택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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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손택수를 검색해보고 깜짝 놀랐다. 이이가 1998년, 스물아홉 살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서, 2004년 신동엽문학상, 2005년 애지문학상, 2011년 임화문학상, 2013년 노작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럼 우리나라 시인들이 받을 수 있는 상의 종류가 도대체 몇 개인 걸까? 혹시 출판사마다 하나씩 다 문학상을 주고 있는 거 아냐? 하긴 가난한 시인, 작가들이 문학상에 따라붙는 상금이라도 얼마씩 챙겨가야 그나마 살림에 보탬이 될 듯하긴 하다. 시인, 작가들은 꾸준히 계속 생산이 되는 반면, 원고료는 물가상승률을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니 점점 더 빈곤의 맹추격에서 벗어나기 힘들겠지. 이거 뭐, 중요한 얘기 아니다. 독자로서 오직 시 하나만 읽으면 장땡이지, 시인의 생계까지 걱정해줄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시집을 고르는 방식은, 요새 인터넷 서점에 미리보기 장치가 되어 있는 바, 앞에서 일정 페이지를 먼저 읽어볼 수 있다. 그걸 이용해 몇 편의 시를 감상하고, 괜찮다 싶으면 시집을 사게 된다. 물론 출판사나 시인의 이름, 이웃의 감상 등을 먼저 접하게 되면 더욱 좋고. 이 책 역시 미리보기 기능을 써서 앞쪽에 실린 시 몇 수를 읽어보고 마땅하여 샀다. 두 번째 실린 시를 읽어보자.



 육친



 책장에 침을 묻히는 건 어머니의 오래된 버릇
 막 달인 간장 맛이라도 보듯
 눌러 찍은 손가락을 혀에 갖다 대고
 한참을 머물렀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곤 하지
 세상엔 체액을 활자 위에 묻히지 않곤 넘어갈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혀의 동의 없이는 도무지 읽었다고 할 수 없는 페이지가 있다네
 연필심에 침을 묻혀 글을 쓰던 버릇도 버릇이지만
 책 앞에서 침이 고이는 건
 종이 귀신을 아들로 둔 어머니의 쓸쓸한 버릇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다고
 아내도 읽지 않는 내 시집 귀퉁이에
 어머니의 침이 묻어 있네
 어린 날 오도독오도독 씹은 생선뼈와 함께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던 그 침
 페이지 페이지 얼룩이 되어 있네  (12쪽. 전문)



 음. 내 마누라만 그런 거 아니구나. 만일 내자가 이 서재에 올라왔던 글들을 꼼꼼하게 읽어왔으면, 모르긴 몰라도 나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아내는 내가 쓴 글을 못 읽는다. 겁나게 지겹단다. 장황하고 서두가 너무 길고 어쩌고저쩌고. A4 용지 한 장을 넘어가는 글을, 그것도 남편이란 것이 쓴 건 더욱이나 읽어내지 못하는 덕택에 이렇게 자유롭게 서재에 마누라 흉보면서 글을 쓰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서재 친구 제위시여, 당부하노니 제발 비밀로 해주시라. 그러나 만일 정여사께서 아직 살아계시어 나도 알라딘 서재를 만들었다는 걸 아셨으면 하루에 적어도 스무 번은 들어오셨지 않을까 싶다. 인생이지 뭐. 나는 어머니, 아버지 살아생전 이랬는데 저랬는데 하면서, 하늘같은 사랑 운운하는 걸 무척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이 시가 마음에 든 건 왜 그랬을까? 궁금하시지? 귀엽잖아, 시가. 어머니가. 둘째손가락에 침을 듬뿍 묻혀 자기가 쓴 시집을 넘기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시인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옛 추억”, 딱딱한 생선뼈를 어머니가 오도독오도독 씹어 부드럽게 해 자기 입으로 넘겨주던 일화를 떠올린다. 위 문장에서 ‘기억도 나지 않는 옛 추억’에 따옴표를 쓴 건, 이 장면이 시인으로서의 상상력을 시어로 쓸 권리를 행사했다는 데 만 원 걸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역시 미리보기로 볼 수 있는 다른 시 하나를 보자.



 모과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던 모과를 주워왔다
 올겨울엔 모과차를 마시리라,
 잡화꿀에 절여 쿨룩이는 겨울을 다스려보리라
 도마에 올려놓고 쩍 모과를 쪼개는데
 잘 익은 속살 속에서
 애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나온다
 모과 속살처럼 노래진 애벌레가
 단잠을 깨고 우는 아이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애벌레에게 모과는 인큐베이터 같은 것
 (중략)
 아직도 책장 어딘가에 심장이 멎은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놓쳐버린 아기의 태기를 놓지 못하고 있는 모과
 속을 드러낸 거죽에 검은 주근깨가 숭숭하다
 (후략)   (부분, 14~15쪽)



 열매 속에 애벌레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복숭아, 밤에서 많이 봤다. 그래 전에 과일 속에 벌레가 몇 마리 있을 때 가장 기분이 안 좋은가를 궁리해봤었다. 몇 마리? 백 마리? 천만의 말씀. 과일 하나에 절대 애벌레 백 마리가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 몇 마리? 정답은 “반 마리.” 시인이 아파트 화단에서 모과를 주웠단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모과나무가 있고 가을마다 잔뜩 열린다. 그거 따 가는 사람들만 따 간다. 나머지는? 모과가 달린 모습을 바라보며 좋아한다. 나도 마찬가지고. 주워가는 사람들은 좀 덜한데, 가지에 달린 모과 따는 인종들은 참 밉다. 하여간 시인이 모과를 몇 개 주워 식칼로 쩍 쪼갰는데 거기서 통통한 애벌레가 한 마리 나왔나보다. 애벌레 입장에선 모과 속이 어머니 뱃속 또는 인큐베이터. 어쨌거나. 근데 시인 부부에겐 아픈 과거가 하나 있었다. 배 속에서 생명을 거둔 아이. 그것이 있었다는 증거로 초음파 사진을 아직 책장에 놓아두고 있다는 것이 조금 엽기지만, 모성은, 속을 드러낸 거죽엔 검은 주근깨가 숭숭하건만 아직도 집을 잃은 태아를 놓치지 않고 있다. 모과를 갈라보니 나타난 애벌레 한 마리. 이걸 보며 아무나 태내에서 숨을 거둔 아이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끔 그런 상상력을 발산하는 능력이 있는 인간을 우리는 그저 쉽게 시인이라고 할 뿐이지.
 나는 이 시집을 이렇게 읽었다. 그러나 평론가 박수연은 책 뒤편의 ‘해설’에서 “치욕을 견디는, 관계의 꿈”이란 거창한 제목으로 갖은 방법으로 시들을 찢어 해부하고, 조립하고 서로 연관성을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게 그 사람 직업이니까 뭐. 같은 시, 같은 시집을 읽어도, 나는 나의 시를 읽고, 당신은 당신의 시를 읽고, 평론가는 평론가의 시를 읽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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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9-03-28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아내분께서 가끔씩 서재에 들러 글을 읽고 계실지도 몰라요.
단지 내색을 안하시고 데스노트에 차곡차곡 적어놓고 계실지도.....ㅋㅋㅋ

그래서 저는 소설은 몰라도 시집의 해설 부분은 잘 안봅니다. 나와는 너무 다르게?! 꼼꼼하게 해부하고 해석해놓은 글을 읽다보면 시집을 다시는 더 펼치기 싫어질까봐서요. ^^;;

Falstaff 2019-03-28 17:08   좋아요 1 | URL
윽, 가장 겁내고 있는 말씀을 딱 꼬집어 얘기하셨습니다. ㅋㅋㅋ 근데 알아도 분명 안 읽을 거예요.
맞습니다. 시집 뒤에 달려 있는 해설 보면 아이고, 내가 시를 헛 읽었구나, 이런 마음도 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