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끝까지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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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루이스 세풀베다를 잘못 알고 있었다. 아마존 밀림에서 난폭한 한 재규어를 사냥하는 <연애소설 읽는 노인>만 읽고 왜 이 작품을 쓴 작가를 그렇게 높이 상찬을 하는지 조금 의아해했다. 얼마나 큰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려고 강을 따라 들어온 술 취한 발치사한테 앞니 다섯 대를 뽑아버리는 원주민 청년 이야기도 기억난다. 맞다. 읽고나서 11년이 지났어도, 짧은 소설이었지만 작품 속 자잘한 에피소드를 여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인상깊게 읽지 않았나 싶다. 물론 재규어 사냥이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정체政體를 상징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그렇게 특징적이지 않아서, 이후에도 세풀베다의 이름을 자주, 곳곳에서 들어볼 수 있었으나 크게 관심을 쏟지는 않았다. 괜히 그랬다. 진작에 이이의 작업을 쫓아볼 것을.


  <역사의 끝까지>에서 ‘역사’는 무엇일까? 20세기 역사이다. 러시아의 차르가 처형당하고 들어선 볼셰비키. 이 정권에 대항해 자신들의 독립국, 아니면 적어도 자치령 정도는 확보하고자 하는 카자흐족. 크게 이야기하지 말고 이 마지막 카자흐족의 아트만(책에서는 ‘아타만’) 즉 최고 지도자 미겔 크라스노프의 예만 드는 것이 좋겠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채 2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백군과 카자흐족의 아트만인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크라스노프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었다. 이 두 부대에 강력하게 저항해 끝까지 수도를 지키고 급기야 카자흐의 아트만을 포로로 잡은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우리가 ‘트로츠키’로 알고 있는 지도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승리자의 넓은 아량으로 자신의 한 목숨을 건지려 하는 간곡한 호소를 듣고 있었다. 크라스노프 스스로 예카네리노슬라프에서 50여 명의 노동자들을 한 줄로 목매달아 죽인 적이 있거늘 한 무리의 지도자가 어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할 수 있을까? 그러나 트로츠키는 다시는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그를 풀어주고 혁명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비겁한 아트만 같은 이를 순교자로 만드는 것은 도리어 반혁명 세력을 강화시킬 뿐입니다. 반대로 그들을 약화시키려면 이처럼 치욕적인 패배만큼 좋은 방법도 없지요.”

  이후 크라스노프 가문은 자기에게 협력하면 카자흐 공화국을 세우는 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히틀러의 꼬임에 넘어가 독일군 복장을 입고 2차 세계대전 속으로 자진해 들어갔으며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되어, 연합군, 특히 미군 상륙 이후 북부로 밀리자 그곳에서 히틀러의 약속대로 조그마한 땅덩이를 얻어 잠시 자신들의 나라를 세워 보기도 했다. 히틀러가 패망하자 갈 곳이 없어진 카자흐. 많은 카자흐 사람들은 그래도 고향을 찾아 우크라이나 동쪽 카자흐 지역으로 돌아갔고, 크라스노프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은 고향으로 가봐야 좋은 꼴이 기다리지 않을 것이 확실해 독일인 전범자들과 함께 라틴아메리카로 향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볼셰비키 혁명군에게 저항하고, 나치 파시즘 쪽에 서서 숱한 사람을 학살하고 고문하는 것. 아마도 저 앞의 표트르 크라스노프의 손자 정도 되는 미겔 그라스노프는 칠레에 들어와, 아옌데 정권을 몰락시킨 피노체트 측에 붙어 정치범 고문과 살해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악명을 떨친 비아 그리말디 형무소에서도 가장 악랄한 고문과 강간과 살인을 밥 먹듯 자행했다.

  저자 루이스 세풀베다도 결국 이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조국 칠레를 탈출해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거쳐 파리, 독일, 최종적으로 북부 스페인에 정착해 그곳에서 가족과 한 평생을 살았다.


  작중 주인공이자 화자 ‘나’ 후안 발몬테는 칠레를 탈출해 소비에트 기갑부대 소속 로디온 말리놉스키 군사학교에 들어가 강도 높은 게릴라 훈련을 받았다. 훈련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위 “인간병기”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넘겨 짚으면 된다. 이 가운데 ‘나’는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가장 우수한 재원 가운데 한 명으로 특히 저격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해 스나이퍼로 특별하게 육성하는 과정을 밟았다.

  ‘나’가 이곳에 오기 전에 칠레에서의 사랑. 동지이기도 했던 베로니카. 아옌데 피살 후 쿠데타에 반대하기 위한 작은 내전 또는 저항운동에 참가했다가 공권력에 검거되어 드높은 악명을 즐기는 비아 그리말디에 수감되어 갖은 고문을 당했다. 그래도 끝까지 한 명의 이름도 대지 않아 결국 호흡을 멈춘 베로니카는 옷이 벗겨진 채 다른 시신들과 함께 쓰레기장에 그냥 버려졌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아니타라는 이름의 아주머니가 시신들을 보더니, 베로니카가 아주 약하게 숨을 쉬고 있는 것을 발견해 용감하게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보살펴 주었지만 실어증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후 ‘나’는 파라과이 혁명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게릴라전에 참여해 명성을 쌓은 후 독일 함부르크로 옮겨 활동을 이어갔는데 이유는 오직 하나, 덴마크에 있다는 고문 후유증 전문 치료 병원에서 베로니카를 돌보는 것이었다. 베로니카는 이 병원에서 무려 18년간 치료를 받아,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실어증은 여전했다.

  이후 ‘나’는 베로니카를 퇴원시켜 늙은 부하 페드로 데 발디비아와 함께 파타고니아가 바라보이는 칠레 남단 푸에르토 카르멘에서 평화롭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예순여섯 살까지는.


  1970년대 중반에 악명을 날리던 미겔 크라스토프는 산티아고 코르디예라 교도소에 120년 이상의 형기를 받아 수감되어 있었으며 여전히 여죄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었다. 이때 마치 볼쇼이 발레단의 의상과 비슷한 차림을 한 카자흐 사람들이 대통령 궁에 들어가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73년 피노체트 쿠데타에 반대한 이유로 감옥에 갇혀 살해당한 아르투로 미겔 마르티네스 공군장군의 딸인 바첼레트 대통령은, 마지막 카자흐 아트만인 악당 미겔 크라스토프를 석방하여 카자흐로 보내달라는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것저것 봐주기에는 크라스토프의 죄질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시 모인 어제의 용사들. 누구인지 모르는 한쪽 편 계승자의 제안으로 칠레계 두 러시아인 에스피노사와 살라멘디, 그리고 세 명의 카자흐 병사를 칠레로 잠입시켜 코르디예라 형무소를 폭파해 마지막 아트만이자 카자흐의 영웅이라 알려진 악마 미겔 크라스토프의 탈옥 작전에 돌입했다. 그러자 반대쪽은, 이미 팍 늙어버린 소련의 군사학교 시절 두 명의 교관을 대표로 ‘나’ 후안 벨몬테에게 이 작전 수행자들의 동태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긴다. ‘나’ 후안 벨몬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차마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는 ‘나’는 푸에르토 카르멘을 떠나 무더운 2월의 산티아고에 도착해 불과 며칠만에 이들의 행방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자신이 노출되었음을 알게 된 적들은 그날로 소음기를 단 소총으로 거친 카자흐 병사 셋의 이마에 구멍을 내고 SUV를 몰아 집을 나서다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잠복하고 있던 ‘나’를 만난다. 차의 창문을 내리고 눈이 마주치자 비록 30년만에 만나는 옛 동료였더라도 한눈에 알아본다. 하지만 엄연히 적대적 상대이다.

  살라멘디가 말한다. “실력이 여전하군, 벨몬테. 다시 만나서 반갑네, 동무.”

  ‘나’도 대답한다. “이고르, 자네도 마찬가질세. 이 부근에 잘 아는 클럽이 있는데, 거기서 와인이나 했으면 좋겠군.”

  에스피노사가 소음기를 단 우지 자동소총을 든 채 다시 대답한다. “지금은 급해서 안 되겠어.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나겠지.”


  언젠가 시간이 나겠지? 그렇다. 시간이 난다. 이들은 벌써 체코의 고위 정보기관 소속 정보원을 통해 ‘나’ 후안 벨몬테의 모든 사생활 정보를 입수한 상태였으며, 따라서 다음날 아니타 아주머니 집으로 피신한 베로니카와 페드로를 인질로 잡아 버리는데 성공한다.

  이제 어떻게 될까? 아마도 당신 생각과 완전히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루이스 세풀베다가 이야기하는 “역사의 끝”이 무엇인지는 이 책을 다 읽은 사람만 알게 되도 좋다. 아쉬운 건 벌써 품절도 아니고 절판이라는 거. 어쩔 수 없이 헌책방이나 도서관을 찾아야 세풀베다의 매력적인 마지막 장편소설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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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2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을 진짜 어렵게 읽었었어요. 읽기가 쉽지 않았던....너무 묵직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뭐라도 썼나 살펴봤더니 밑줄긋기만 했네요. 너무 무거워서 어떻게 리뷰를 쓰야 할지 잘 몰랐던거 같은데 덕분에 이 책을 다시 소환해서 보네요.

Falstaff 2025-09-12 15:36   좋아요 1 | URL
묵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난 걸요. 장담하건대 다시 읽으시면 그런 생각 안 드실 겁니다. ^^

yamoo 2025-09-1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ㅎㅎ 별 5개 출현! 그럼에도 세풀베다는 제가 애정하는 작가라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세풀베다 책은 다 모았습니다..ㅎㅎ 23년 이후에 발간된 책은 아직 소장하고 있진 못하지만요..ㅎㅎ 세풀베다 소설작품은 거진 다 읽었는데 열린책들에서 많이 출간해 줘서 열린책들 판본은 다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감상적 킬러의 고백이 가장 재밌었습니다. 블랙 코미디적인 면이 아주 좋았다는..
세풀베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아주 탁월한 작가인듯해요. 헌데 가벼운 듯한 플롯 속에 담긴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세풀베다는 제게 주제의 진정성을 이야기로 쉽게 풀어내는 작가로 각인되어 있어요. 그래서 아주 좋아라 합니다..ㅎㅎ

Falstaff 2025-09-12 15:38   좋아요 0 | URL
제 휴대폰 앱 북적북적에서는 4.5인데요 차마 4별은 넘 아쉽다, ㅋㅋㅋ 이런 수준이었습니다.
야무님 핑계로 세풀베다 집중 탐구 들어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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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읽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작품 <그해 봄의 불확실성>과 마찬가지로 1인칭 화자 ‘나’는 작가 자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결혼하지도 않고 자식도 낳은 적 없이 노년에 접어든 여성 작가. 다분히 여성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나 남녀 대립으로 치닫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기꺼이 인정해 읽기가 많이 부드럽다. 동시에 기후위기에 관한 지구적 의식과 실행을 바라고 있다. 아쉽게도 기후는 이미 원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단계까지 접어들었으나 이에 관해 관심 없는 극우파 권력이 미국과 유럽을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누네즈의 관심은 죽음이다. 죽어도 잘 죽는 것. 소위 ‘웰 다이잉’이라는 것. 그리하여 암에 걸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은 친구를 등장시킨다. 20대 초반에 같은 문학잡지사에 근무하면서 알게 됐고, 이후 각자 글을 써서 ‘나’는 작가이자 학교 교수를 하고 있다. 친구도 거의 비슷한 경로를 걸었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싫어했다. 싫어했다니까 가르쳐 보기는 했다는 뜻이다. 지금 암에 걸려 방사능 치료까지 다 마쳐 극적으로 건조한 피부, 근소실, 탈모 상태로 진행했으나 책에서 처음 ‘나’가 입원한 친구를 만나러 갔을 때는 그나마 치료가 효과를 보여 일단 생존율이 상당한 수준으로 좋아졌을 때였다.

  부르주아라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상당한 수준의 중산층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부족한 것을 모르고 살았다. 매사에 부모의 지원이 있었고, 그렇다고 버릇없는 사춘기를 지내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누구나 다 그러하듯이 부모의 결정이 친구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평범한 같은 반 남학생과 사귀었지만 한 번도 그를 사랑하거나 사랑 비슷한 감정을 느껴보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남들 다 하는 섹스를 기피한 것도 아니다. 졸업할 시기가 와서 이제 잠시동안 섹스를 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소위 이별 섹스를 했는데, 하필이면 마지막 섹스에서 덜커덕 임신해 딸을 낳았다.

  부유한 집에서 외동딸을 낳았으니 외동딸은 당연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고 엄마는 대학 공부를 마쳤다. 육아의 부담이 없었으니 대학원 과정도 마쳤고, 글을 썼고, 천성이 정력적이라 점점 작가와 강연자로 이름을 날렸다. 하다보니 미국의 전국구 작가요 전국구 강연자가 됐다.

  그러나 딸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빗나가 있었다. 딸이 소녀 시절을 지낼 때부터 모녀 사이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딸의 유년시절에 엄마에 관한 기억이 없었으니 애초에 다른 가정과 비슷한 모녀관계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딸이 사춘기를 시작하자 서로가 서로에게 뼈 있는 말 또는 날이 새파랗게 선 말을 무차별 난사하는데 이골이 나버렸다. 당연히 가족 앨범을 들춰봤을 것이고, 딸은 먼 시절 자기의 생물학적 아빠의 사진도 발견했을 터, 아빠의 부재는 사진 속 젊은 모습의 아빠를 실재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 용감한 군인으로 여겼으니, 얼마나 로맨틱한 아빠였느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친구가 만나는 모든 남자에게 딸은 깊고 강한 적개심을 가졌다. 그러지 않은 경우가 딱 한 번 있었다. 이 때는 대신 엄마의 남자, 양아버지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지만, 하여간 엄마의 남자를 유혹해 기어이 엄마로부터 가로채 버렸다. 이제 엄마가 암에 걸려 삶과 죽음이 5대 5의 확률로 떨어지니 모녀간의 긴장도 조금 누그러진 것 같다. 하지만 딸은 엄마의 죽음에 깊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처음 암 진단을 받은 친구는 활달하고 정력적인 성격과 달리 고생스럽게 암을 치료하거나 수술받지 않고 조용히 고통 치료만 받으며 생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아직 그렇게 생을 포기할 정도로 늙지 않았다고 생각한 의료진은 수술과 치료를 권했다. 이때 딸이 엄마를 만나러 병원에 왔다. 딸의 의견은 전적으로 엄마의 뜻, 엄마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 죽거나 말거나. 이런 과정을 거쳐 친구는 1차 암 제거 수술을 받아 어마어마한 병실료를 내면서도 1인용 독실에 입원해 있었고, 그리하여 ‘나’의 첫번째 면회가 이루어진 거였다.


  2017년 9월 셋째 주. ‘나’는 에어비엔비를 통해 숙소를 얻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은퇴도 한 전직 도서관 사서가 호스트인 작은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이다. 친구가 입원한 병원과 3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시간상 친구 병문안 이후이지만 작품 순서로 치면 제일 먼저 ‘나’는 이곳 대학 강의실에서 저녁 시간에 있을 다른 지역 대학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간다. 국제적인 상을 받은 유명 작가이다. 처음부터 말해버리자. 한 시절 ‘나’와 연애도 하고 동거도 하던 남자. 오래 전이라 이젠 헤어질 때 누구나 품게 마련인 조금 또는 일정 분량의 미움과 증오 그리고 혹시 모를 저주는 다 무뎌져 그저 편하게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객석에 옛 여자가 앉아 있는 걸 알면 조금 버벅거릴까봐 뒷줄 구석 자리를 잡았지만, 강사도, 숙소의 호스트도 자기가 강연을 들었다는 걸 다 안다.

  이 강사, 옛 애인이 강연에서 주장한 것이 기후변화. 기후변화를 막기엔 이미 시기적으로 글렀다는 거다. 이미 다 끝났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우리가 저질러온 참담한 실수를 제 시간에 만회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너무나 파편화되었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지구가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는데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탄소 클럽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탄소배출을 극단적으로 꺼려해 비행기를 타지 않는 툰베리는 아메리카에서 열리는 탄소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스웨덴에서, 오직 자신 한 명의 참가를 목적으로 물론 돛도 달렸겠지만 상당한 만큼은 엔진의 힘으로 항해하는 커다란 요트 한 척을 끌고 온다.

  옛 애인은 강연에서 심지어 더 이상의 출산도 미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어마어마한 고통 말고 별로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찌 아이를 만들 수 있느냐고. 이 주장을 펼칠 때 객석은 잠시 요동치고 부글거린다. 그러나 질의응답조차 받지 않겠다는 강사의 강연이 끝났어도 청중의 태도는 온순하다. 분명히 마땅하지 않은 기색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자신들의 미래는 암울하고, 자식 세대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는데 강연이 마음에 들 턱이 없다. 심지어 강사는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 임신한 여성들이 모두 임신중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략) 아이들이 사는 동안 지구가 전혀 살 수 없는 곳이 되진 않더라도, 황량하고 무시무시한 곳으로 변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그런 세상으로 한 인간을 불러내는 일이 어쩌면 잘못인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나’의 첫번째 병문안은 이렇게 끝난다. 비싼 1인용 병실에 누워 있는 친구의 상태가 “당장은 파티장을 떠나지 않아도 될” 수준인 것을 확인한 후에, 옛 애인의 강연을 듣고 와, 다음날 아침 돌아오는 것으로.


  강연장에서 ‘나’를 알아본 옛 애인은 ‘나’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내 다시 둘 사이에는 건조하지만 세월 덕분에 친밀한 감정이 살아나 계속 전화와 메일, SNS를 통한 연락이 이어진다. 그리고 친구는 갑자기 암이 여기저기로 전이되어 이제 생존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리하여 다시 그 병원으로 친구를 보러 가야 했고, 이번엔 에어비앤비 대신 작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친구는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다. 몸에 꽃혀 있는 무수한 관과 튜브를 다 제거하고 퇴원하려 한다. 이제 차분하게 죽음을 기다리겠다는 심정. 그러나 호스피스 요양원에서 볼품없이 죽어가기 싫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짧고 안락하게 죽는 약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친구는 ‘나’에게 요구한다. 자신과 함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거기가 어디든지 간에, 가서 드디어 때가 됐다고 생각, 결정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지 몸에 약이 들어가 죽어갈 때, 자기 옆에 있어달라고.

  ‘나’는 그렇게 하기로 한다. 이렇게 말기 암환자인 친구와 ‘나’는 죽을 자리를 향해 떠난다.

  펜데믹 시절을 다룬 <그해 봄의 불확실성>보다 재미있게 읽었으나 인상 깊지는 않았다. 나는 긴 병에 학을 뗀 사람이라 잘 죽는 것에 무지하게 관심이 있다. 생각도 많다. 이 책을 읽는 일도 그런 생각 가운데 하나 정도. 그렇지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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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5-09-11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그 날이 오면 잘 죽고 싶은데 상황이 어찌될지.. 어둠의 경로로 어떻게 약을 구하고 싶은 마음 굴뚝이네요-_-;;;

Falstaff 2025-09-12 03:24   좋아요 1 | URL
어둠의 경로를 아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몰라도 일단 구하고 보겠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ㅎㅎ

케이 2025-09-12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죽는 법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냥 하늘에서 점지해주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아요.
돈을 싸들고 가서 해외에서 편안하게 죽는다한들 시신은 누군가가 비행기로 들여와야 하잖아요.
엊그제 장례식장 다녀온 남편에게 말했어요. 나도 78살에 죽고 싶다고. (고인이 78세에 돌아가심)
문득 우리 친아버지, 시부모님이 늙으면 난 어찌되는 건가 생각하면 가슴이 턱 하고 막힙니다.
어떤 여행객이 울릉도 여행가서 택시 탔는데 택시 기사님이 필승 자살법 알려줬다며 동영상 올린 걸 봤는데 그 분 말씀으로는 복어독 먹으면 절대 실패확률 없다네요 ㅋㅋㅋㅋ 심폐소생술이고 뭐고 다 필요없이 바로 죽는다는 ㅋㅋㅋ
근데 복어독을 빼내는 것도 위법이겠죠. 결국 내가 복어를 잡는 방법 밖에는 없어요 ㅋㅋㅋ
와 정말 쉽지 않네요!! 웰다잉이라는 거.
그냥 하늘에 빌어보렵니다. 알맞은 나이에 편히 죽게 해달라고.

Falstaff 2025-09-12 15:33   좋아요 1 | URL
요즘엔 복어 독 먹어도 재수 없으면 살더라고요. TV에서 가끔 보던 현석이라는 연기자도 복어 먹고 저 세상 가까이 갔다가 살았잖아요. 근데 문제는 회복된 후에 빌빌빌빌...
세상에서 제일 맛나는 음식이 복어 내장탕이랍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걍 쓸개만 빼고 아 고향맛이야, 다시다 좀 뿌리고 청양고추 팍팍 넣어 매운탕 끓여 먹으면 장땡인데요.....
이건 제 어머니가 마산 피난 가서 이런 방식으로 손주들 키우는 할매가 손주들과 함께 세상 하직했던 방법이라고 가르쳐주시고 떠났습니다. ㅋㅋㅋㅋ 참 괜찮은 어머니셨어요.
정 죽기가 희망이면 어시장 가서 생물복 사면 됩니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진짜 중요한 건 정말로 그 복어 내장 매운탕을 먹을 수 있느냐, 하는 겁지요.

Falstaff 2025-09-12 15:34   좋아요 1 | URL
아이고 참. 지금 취중 댓글입니다. 세상에나....

케이 2025-09-12 15:46   좋아요 1 | URL
생물 복어도 기능사가 있어야 살 수 있나봐요. 남편이 어디 사연 보니까 복어 독 빼고 팔아야 하는데 독 있는거 팔았다고 수산업자가 신고해서 그 지역 경찰들 다 위치 추적하고 난리 부르스 해서 결국 독있는 복어 사간 사람을 버스에서 찾은 사건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 돌아가실 때 보니 연명치료거부라는 것도 산소호흡기 떼주고 그런 수준의 적극적 안락사 수준은 아니더라고요. 결국 저 지경까지 가야 연명치료거부도 해주는 거구나. 싶어서 좀 무서워졌답니다.
복어 먹고도 살 수 있다니. 거 참. 그렇군요. 필승 자살법 아니네요 그럼 ㅋㅋㅋ
어떤 사람은 살고 싶어도 별 것도 아닌걸로 죽고 또 어떤 사람은 죽어라 죽으려고 해도 살고.
그래도 건강하세요! 낮술은 좀 줄이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방관시대의 사람들 묘보설림 10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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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시대를 맞아 천민자본주의가 극성을 떨치던 중국의 우울한 현대사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잘난 거 없다, 50년대생 중국 소설가들이 쓴 시절의 우울과 부정부패와 거대 사기를 우리 역시 1980년대, 심할 때는 1990년대 초까지 거의 똑같이 경험했다,는 기억 때문에 못내 씁쓸했다. 오만하지 말자. 그저 우리가 조금 더 빨리 시작/발전했고, 딱 그만큼 일찍 깼을 뿐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여기나 거기나 같다는 말이지.


  산아제한이 없던 시절의 중국은 거의 모든 부부가 생기는 대로 낳았다. 양카이퉈도 그렇게 세상 구경을 했다. 몇째 아이인 줄 자기도 헛갈릴 정도. 이 아이가 돌이 되자 뇌수막염에 걸렸다. 원래 기어 나올 때부터 병약한 체질을 타고나서 비실비실했는데, 덜컥 뇌수막염 유행을 좇아 그만 열이 펄펄 나고 눈을 뒤집어 까 보아도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것이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매사에 정이 없는 엄마는 많고 많은 아이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다 해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어서 한 살배기 카이퉈를 고이 죽으라고 초막에 던져두었는데, 두 돌이 되지 않은 카이퉈가 그때 얼마나 갈증이 심했던지 어린 것이 갈증의 기억을 잊지 않고 평생을 보내게 된다. 이때 큰 누나만 바가지에 물을 떠 입술을 추겨주고, 마음껏 마시게 해주었는데 이게 큰 은혜였는지 열이 확 내리면서 병이 나았다. 그러니 양카이퉈는 큰누나를 평생 엄마 대신으로 알고 살았다. 누나의 아들이 장가를 든다. 양카이퉈는 현의 도로국 국장이다. 그러니까 작은 현의 도로와 교량 건설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이것도 큰 자리라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청탁질을 해서 양국장은 부정에 관여하지 않기 위하여 모든 친인척과의 교류를 끊고 지냈지만 어찌 엄마 같은 누나한테도 그럴 수가 있으랴. 그리하여 조카, 누나의 아들이 장가드는 날엔 기꺼이 잔칫집에 와서 특히 신부댁과 크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 아니 즐거울소냐.

  주흥이 무르익어갈 무렵 술판 분위기 깬다고 전부 휴대폰을 꺼 놓으라고 했건만, 양국장의 운전기사가 헐레벌떡 자기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오더니 전화를 받으란다. 두보의 먼 후손이자 양카이퉈의 직속상관인 두杜 현장 전화였다. 두현장은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중국사람들 좋아하는 폭죽을 잔뜩 실은 트럭이 양쯔강의 물살 세고 깊은 지류 차이홍하를 건너는 차이홍3교 위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차이홍3교의 한 가운데 상판이 폭삭 내려앉아 스무 명이 넘는 인명사고가 나버린 거였다. 이 마당에 교량 담당 국장이 고위 공무원 수칙을 깨고 휴대폰 전원을 꺼버린 채 대낮부터 술타령을 하고 자빠졌으니 현장 입장에서도 저절로 욕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여지없이 촛불집회에 대통령 탄핵 주장해야 한다고, 누가 야당을 해 처먹든지 건수 잡았다고 난리가 났을 터. 양카이퉈는 전화를 받자마자 귀 앞에서 폭탄이 뻥 터지는 것 같아 만땅 취했던 술이 말끔하게 깨버려, 그 길로 잔치고 뭐고 그냥 차를 타고 차이홍3교로 날아갔다.

  끊어진 교량 밑으로 추락한 승용차, 트럭, 관광버스 등의 잔해가 어지러이 널린 차이홍하의 둔덕엔 벌써 시장이 버티고 서 있었다. 급하게 시장 근처까지 간 양카이퉈 국장. 시장이 현 국장의 얼굴까지 알 도리가 없어, 어이, 담당자가 누구야? 하고 현장에게 물었고, 현장이 쓴 표정을 지은 채 지금 도착했습니다, 하고 양카이퉈를 손짓했는데, 술이 깨긴 깼지만 말끔하게 깨진 않은 양카이퉈는 하도 겸연쩍어 저도 모르게 얼떨떨하게 웃어 보였다. 시장이 돌아간 후 양카이퉈는 급하게 현의 병원으로 가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돌보고, 다시 강가로 돌아와 복구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등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 채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의 전면을 장식한 것은, 붕괴된 차이홍3교가 아니라 무너진 차이홍3교와 강에 떨어진 처참한 차량과 부상당한 사람, 구조활동 중인 군 병력을 배경으로 해맑게 웃음짓고 있는 현의 도로국장 양카이퉈의 사진이었다. 이 기사에 수백만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거의 양카이퉈를 저주하거나, 퇴진 등을 거론하는 거였다. 폭죽을 싣고 가던 트럭이 재수없게 다리 위에서 폭발해 다리가 무너진 것이 어떻게 내 책임이냐, 억울함 때문에 말도 나오지 않는 양카이퉈는, 특급 여성 연예인의 불륜 기사 같은 것이 얼른 떠 주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이 다음에 터진 기사는 당시 양카이퉈의 팔목에 붙어 있던 고급 손목시계였다. 이 시계가 유럽의 어느 회사에서 만든 한정품으로 세계에 몇 개가 깔려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인지, 몇십 만 위안짜리인지, 연예인 누가 차고 다니는 것인지, 자세히도 까발렸다.

  이어서 3탄이 인터넷 포털에 다시 터지는데,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참 극성들이기는 하다. 양카이퉈 국장이 참석한 모든 행사를 싹 다 검색해 양국장이 찬 일곱 종류의 시계를 전부 나열하고, 몇 살짜리 현의 국장이 받는 월급여가 얼마인 것까지 탈탈 털어, 이 일곱 개의 시계를 사려면 양카이퉈가 현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 받는 월급을 받았다고 가정해도 몇 십년, 양카이퉈가 인정머리 없는 엄마 배속에 들어가기 근 20년 전부터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다 모아야 살 수 있다는 것까지 확 까발렸다. 이러니 당국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그리하여 양카이퉈에게 쌍규를 진행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쌍규雙規. 대개 공산당원이 부패 범죄를 저질렀을 때 당 기율위원회에서 피의자를 구금해 조사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미 쌍규로 넘어가면 본인의 최하 징역, (‘드물게’가 아니라)잦게는 사형까지 당할 생각를 해야 하며, 이 인간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들 모두 일신상 막대한 처벌을 각오해야 마땅하다. 주로 당의 고급관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그깟 현의 국장을 대상으로 한다.

  나름대로 양카이퉈는 양심적인 도로 국장이었지만, 뇌물을 찔러주는 업자들이 그냥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상당한 뇌물이나 현금을 먹이려 한다. 그러기만 하면 쓴 돈의 열배 이상을 수입으로 챙길 수 있으니까. 이러고 나서야 실제 공사를 부실이나 부실 바로 전단계로만 진행한다. 나머지 자재는 다 해먹는 거다. 우리나라 공사현장도 비슷했다. 지금은 다르겠지만. 다르다고 믿고 있지만 하여간 21세기 초까지도 그랬다. 양카이퉈를 구금 조사한 쌍규 지휘관은 사근사근 친절한 말씨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아, 신체의 감각으로 느끼는 고통은 주지 않되, 도무지 모든 것일 실토하지 않을 수 없는 치밀한 고문을 가해 모든 행위, 진짜로 1도 숨기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모든 행위를 실토하게 만들었다. 양카이퉈는 그나마 깨끗한 관료였다는 것이 양국장 자신의 생각이고 동시에 작가 류전윈의 생각인 것 같다.

  안경을 끼고 나긋나긋한 쌍규 지휘관도 양카이퉈를 조사하면서 뭐 이 정도 돈과 뇌물이야 워낙 흔한 거라서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근데 지휘관이 도무지 참아주지 못하는 악행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성접대를 받은 것. 성접대도 그냥 성접대, 흔히 하듯이 고급이거나 하급이거나 매춘부 하나 불러 방에 부르는 수준이 아니라 한 부동산업자한테 산골에서 갓 올라온 숫처녀를 진상받았다는 거였다. 양카이퉈가 어릴 때부터 양기 부실해서 요즘엔 거의 발기부전 상태인 것을 안 업자가, 도도하게 내려오는 중국 도교의 힘을 빌어 숫처녀를 하나 “깨면” 효과가 있을 거라 했고, 정말로 처녀를 하나 “깨니까” 효과가 대여섯 달은 가더라고. 중국에서도 문제는 처녀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 도무지 처녀를 구할 수 없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만들지 못하는 게 있기나 한가? 그리하여 처녀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싱싱한 드렁허리의 피를 스펀지에 묻혀 관계 전에 질 깊숙이 집어넣고, 주로 고급관리인 고객의 침대에 올라 일을 시작하면, 리듬에 맞춰 아파요, 아파요를 연발하고, 힘을 다해 옥죄라는 거다. 그렇게만 하면 백이면 백 다 껌벅 넘어간다나? 이때 조심할 것은 간혹 남자가 전력을 다해 애무를 할 경우, 엑스터시에 이른 모습을 절대 보이지 말 것. 쉽지? 드렁허리를 구하는 게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애초에 문제가 이렇게 생긴다는 뜻이다. 양카이퉈가 쌍규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사고 현장에서 웃지만 않았어도, 조카 결혼식이라 누나 얼굴 좀 띄워주려고 평소엔 차지도 않았던 고급 팔목시계를 차지만 않았다면, 이 <방관시대의 사람들>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양카이퉈가 그냥 뇌물만 조금 먹었어도 마찬가지. 하필이면 딸만 하나 있는 쌍규 지휘자 앞에서 숫처녀를 성접대 받은 것이 걸린 것이 결정적 포인트였고, 또 숱한 성접대 가운데 하필이면 산골처녀로 알려졌지만 알고 보면 4천km 떨어진 평야지대에서 사기꾼을 쫓아 산골 도시로 오게 된 22세의 뉴샤오리의 성접대만 비디오 촬영을 해서, 온갖 계급의 온갖 고관들이 말 그대로, 1970년대 유행했던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져 감옥으로 들어가고, 남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지능적으로 뇌물, 현금, 향응 받기를 즐겨온 여사님들 역시 모든 재산, 자산을 잃고 옥에 간 아들과 남편 바라지를 하기 위하여, 이미 늙은 몸을 사기꾼들과 결탁해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렇게 쓰니까 양카이퉈가 꼭 주인공 같지? 천만의 말씀. 양카이퉈는 무지하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모멘트가 되는 인간에 불과하다.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그저 조연 1 정도일 뿐. 주인공은 위에 잠깐 소개한 아가씨 뉴샤오리. 몸 안에 드렁허리 피를 묻힌 스펀지를 넣고 한 번에 만 위안씩 열두 번, 합해서 12만 위안을 벌어 금세 고향으로 돌아와 애인과 결혼해 음식점 내고 잘 살아가다 한 방에 훅 가는 여성. 그렇다니까. 주인공 뉴샤오리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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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0 0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만으로도 딱 중국 소설스러운 느낌입니다. ㅎㅎ

Falstaff 2025-09-10 15:3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우리도 예전에는 비슷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확실합니다. ㅋㅋㅋ

꼬마요정 2025-09-10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바람돌이 님 의견에 한 표!!!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ㅋㅋㅋㅋ
말도 안 되는 저 이상한 도교적 방식으로 몸이 건강해졌다고 생각한 사람들 다 바보입니다요!!

Falstaff 2025-09-10 15:41   좋아요 2 | URL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 있었습니다. 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인가에 나오는가 아닌가 아리삼삼합니다만, 하여간 어떤 소설에서 나옵니다. 부잣집 늙은이가 발기부전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기가 꺾였을 즈음 돈을 주고 어린 여자 아이, 말 그대로 아이를 사서 동침시킵니다.
당연히 본 마나님하고 합의를 한 상태였습지요. 그런데 본마나님이 정말로 그 아이하고 자기 영감이 할까봐, 질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어린 애, 기껏해여 열두어 살 됐을까 말까한 아이의 앞니를, 튼튼한 생니를 몽땅 빼버리는 장면이 나온답니다.
어린 아이와 동침을 시키는 마나님은 정력 보전이 아니라 양기 충전이란 의미였습니다만 겁나 웃기는 주술적 행위, 즉 야만이었습지요.
19XX년의 중국은 참 늦됐습니다. ㅎㅎㅎ

케이 2025-09-11 11:21   좋아요 1 | URL
아니 왜 죄없고 불쌍한 아이의 생니를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와 정말 옛날 소설은 지금으로선 말도 안되는 일들이 나와서 읽기 겁날 때가 많습니다.

Falstaff 2025-09-11 12:10   좋아요 2 | URL
여자 아이와 한 이불을 덥고 자는 건 동침이 목적이 아니고, 어린 아이의 기운을 가져와 늙은 몸을 보양한다, 뭐 이런 식입니다. 당연히 아내가 적극 개입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늙긴 했지만 아내도 여자거든요. 어려도 아이가 여자인 것처럼. 그래 혹시라도 영감탱이가 아이를 보고 음심이 동하지 말라고, 흉측하게 생기게 만들려고 이를 뽑아 버리는 것이지요. 아예 마음을 먹지 못하게. 시앗 질투 하는 건 부처도 뒤로 돌아 앉는다고 그러더군요. 근데 살면서 보니까 남자 질투가 오히려 더 심한 거 같더라고요. 살벌하기까지 하고요. ㅋㅋㅋ

페넬로페 2025-09-10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14억명이고 땅도 넓으니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날 듯 합니다. 그만큼 소설적 요소도 많을텐데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어요.

Falstaff 2025-09-10 15:56   좋아요 1 | URL
넵. 소설적 자양분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야 마땅할 거 같습니다.

카스피 2025-09-1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감히 한국인들은 상상도 하지못할 일들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책의 소재는 무궁무진하지만 당국의 검열로 못쓸소재가 태반일 겁니다.

Falstaff 2025-09-11 04:55   좋아요 0 | URL
사람이 하도 많으니 정말 별별 인간이 다 있을 터이니까요.
 
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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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단편소설을 제일 잘 쓴다는 작가의 첫번째 장편소설. 이 한 편의 소설로 단번에 2017년 부커상을 거머쥐었다. 단편집 《12월 10일》 한 권 읽었을 뿐이라 손더스가 어떻더라, 감히 소감을 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라고 아는데 미국에서는 상당한 모양이다. ‘현재’ 미국 최고의 단편작가라고 하면 뭐 그런가보다 할 수 있어도 시대를 막론하고 미국 최고의 단편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는 쉽지 않을 듯. 《12월 10일》을 나름대로 인상깊게 읽어 그에 대한 소감을 보태자면, 다분히 엽기 그로테스크적 취향을 숨기지 않잖아?


  이 작품도 그렇다. 그로테스크. 제목 속의 ‘바르도’를 읽고 내 머리 속에서는 엉뚱하게도 브리짓이 생각났지 뭐야? 브리짓 바르도. 개 먹는 원조 국가 중국에다 대고는 찍소리 못 하면서 애먼 우리나라 사람들더러 개 먹는 야만스런 한국인이라고 설왕설래했던 여자. 참! 우리나라 20대 대통령 배우자가 강제하다시피 해서 법령이 통과된 진짜 야만스런 개고기 금지법도 저번 탄핵과 더불어 더불어민주당과 1찍들이 이 법 무효화시키는 법안은 내지 않으려나? 아이 씨. 난 개고기 안 먹는다니까. 세상의 많은, 거의 모든 ‘금법禁法’을 싫어하는 인간일 뿐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하여간 이 책의 바르도는 브리짓 바르도가 아니라, 작품 뒤에 달린 “옮긴이의 말”에서 요즘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쁜 역자 정영목이 네 페이지 분량으로 쓴 해설을 인용하면 ”티베트 불교에 나오는 용어를 티베트어에서 음차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이라 하며, 죽고 나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를 가리킨다(기독교 계열에서 말하는 연옥이나 림보와 약간 겹치는 면이 있을 듯하다).”라고 설명해 놓았다.

  단테가 만들어 수백년 잘 써먹은 연옥이란 장소는 애초에 성경, 오래된 계약서나 새로 만든 계약서, 즉 구약과 신약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그곳에 떨어진 인간들은 별 잘못 없이 그저 예수를 믿지 않아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를 믿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천국으로 가지 못해, 대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들을 위하여 열라 기도해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어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만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누워 있든지 앉아 있든지 하여간 빈둥빈둥.

  반면에 중음이란 곳은 육신, 이거 한자어로 써야 하는 데, 肉고기 身몸, 고기로 된 몸에서 떠난 정신이, 혹자는 이걸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어쨌거나 정신, 영혼, 하여튼 아직 무화되지 않은 뇌파가 얼른 염라대왕 전에 출두해 살아생전 잘잘못을 평가받아 천국과 지옥 또는 환생의 사이클을 돌아야 하건만 대두분의 뇌파와 달리 아직 살아생전 맺은 드런 정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잊지 못한 것들이 휘휘 날아다니는 공간이고, 이런 뇌파들의 모임을 우리는 간단하게 귀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바르도가 중음. 이 속에 들어간 링컨. 링컨이 우리가 아는 그 링컨, 말단비대증이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맞느냐고? 반은 에이브러햄, 나머지 반은 메리 링컨. 즉 둘 사이의 아들 윌리 링컨이다. 아, 링컨의 아들 윌리가 죽어 아직 천국에 들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허공을 배회하고 있구나, 저런. 이런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중음에 있는 영혼. 그걸 우리는 좋은 말로 중음신, 놀랍게도 여기서 신은 ‘귀신’ 할 때의 신神이 아니라 몸 신身자를 쓰는데, 그럼에도 중음신은 귀신을 일컫는 말이다. 이 속에서 스토리를 만들려면 다른 귀신들도 있어야겠지?

  볼먼씨는 46세. 그녀는 18세. 볼먼씨는 늘씬하지도 않고, 머리도 약간 벗겨졌고, 한쪽 다리를 절고, 나무 틀니를 하고 있다. 볼먼씨가 하고자 했던 결혼이 아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볼먼씨는 늙고 추하고 지쳤다는 걸 스스로도 잘 이해하고 있다. 이 혼인은 정략에 뿌리를 두었다는 것도.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어머니는 병이 들었다. 볼먼씨의 돈이 필요한 거였겠지. 볼먼씨는 아내를 보면서 아내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결코, 꿈도 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결혼 초야. 아내의 방에 든 볼먼씨는 젊은 아내에게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자고. 겉으로는 모든 면에서 “우리의 결혼이 완성된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부부가 아닌 친구가 되자고.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한다. 볼먼씨는 아내에게 정중했고, 친절했고, 활수하게 베풀어 먹고, 입고, 친정식구 대하는 걸 소홀하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서재의 볼먼씨 책상 위에 아내가 쓴 편지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하는 행복의 영역을 저에겐 아직 낯선 친밀한 방식으로 확장하기 바라요. 여인이 되는 과정을 볼먼 씨를 통해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28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이렇게 비로소 둘의 몸은 합해졌고, 활달한 인쇄업자 볼먼씨는 더욱 활기로워졌으며 아내는 서서히 당당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입가에 미소가 떨어지지 않는 부부. 그러나 행복은 그리 길지 못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기쁜 마음으로 인쇄소를 향한 볼먼씨. 문제는 인쇄소에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사무실에 앉아 밀린 서류를 정리하던 볼먼씨 위에서 건물의 들보가 떨어져 볼먼씨의 “여기”를 때렸다고 하는데 여기가 어디를 말하는지는 결코 밝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볼면씨는 자기가 귀신이 되었는 지도 모르고 병자-상자sick-box, 쉬운 말로 하자면 관coffin에 담겼다가, 며칠 후엔 병자-달구지, 즉 장의사 수레에 실려 교회를 거쳐 병자-두둑, 묘지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늘에서 떨어진 들보에 뭔가가 깨져 볼먼씨가 육신에서 나왔고, 한 때는 볼먼씨라고 불렸던 고기 덩어리를 관에 넣어 교회로 끌고 가서 신부 또는 목사가 몇 번 기도를 하더니 다시 끌고 가 파묻었을 뿐, 볼먼씨는 그냥 이렇게 있는 거다. 어디에? 바르도. 중음에. 그리하여 볼먼씨, 시간이 가면서 이 바르도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로저 3세는 부모에게 ‘미안하다’는 요지의 편지를 남기고 도기 대야 위에 손목을 올려놓고 그걸 칼로 아주 모질게 베어 버렸다. 그래도 동맥까지 절단한 거 같지는 않고, 정맥은 확실하게 그은 모양인데, 어떻게 아느냐 하면, 동맥이 잘렸으면 순식간에 과다출혈 및 쇼크로 까무러쳐야 마땅하건만, 로저 3세는 흘러나온 피와 대야의 흰색을 배경으로 갑자기 번지는 충격적인 붉은 피, 이 기막힌 일종의 보색대비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지더니, 어지럼증을 느껴 바닥에 주저 앉아서 잘 됐다, 이제 죽겠구나, 이런 생각 대신 조금 쪽팔리지만, 어, 이게 아닌데, 살고 싶은 걸, 마음이 바뀌어 버렸다. 그리하여 방을 나와 층계를 향해, 층계에서 아래층으로 엉금엉금 기어 내려갔고, 얼른 하인들 눈에 띄어야 바뀐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거기서도 역시 두 발과 한 손으로 기어 식당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어이 바르도의 두번째 자리에 오를 뿐이었다.


  1862년 초. 미국의 대통령은 매년 겨울 정기적으로 공식 만찬을 여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1862년은 미국에서 내전이 일어나 한 전투에서 3천명이 전사한 불운한 시기라, 과연 백악관 만찬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관가와 정가에서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를 깊이 숙고한 메리와 에이브러햄 링컨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3회에 걸친 만찬을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링컨 가의 두 아들 테드와 윌리는 시즌을 맞아 많은 선물을 받았다. 작은 조랑말을 선물받은 윌리는 너무 기뻐서 그렇게 추운 겨울날 두터운 외투도 입지 않고 날마다, 하루도 빼지 않고 하루 종일 말에 올라 달리고 또 달렸다. 미국 동부의 겨울엔 비가 많이 오는 거 아시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윌리는 말에 기어 올라갔는데, 대통령 링컨은 자기가 워낙 건강 체질이고 살면서 의사 만난 적도 없거나 거의 없기도 하고, 원래 아이들 양육 방식도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하는 걸 싫어해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그건 메리 여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지?

  그랬더니 윌리는 단박에 감기에 걸렸고, 감긴줄 알았는데 이게 독감으로 넘어갔고, 독감이 조금 지난 후엔 의학에 조예가 없는 엄마 메리 링컨 여사가 보기에도 허파에 울혈이 생긴 거 같았다. 이미 메리 여사는 만찬용 드레스와 수많은 보석 치장물을 달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럽 왕국의 왕자, 귀족, 대사를 망라하고, 전쟁 중 잠시 휴가를 낸 장군들까지 모두 모인 정기 만찬이 성공리에 치뤄지고 있음에도 대통령 링컨 부부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 진짜 웃을 수는 없던 거였다. 윌리가 좀 낫나? 싶어서. 하긴 의사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곧 나을 것이라고 확답을 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없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후 윌리는 점점 쇠약해지더니 드디어 링컨의 비서 윌리엄 스터도드가 공식적으로, 가망이 전혀 없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는데, 오후 다섯 시, 링컨은 말했다. 내 아이가 갔네… 정말로 가버렸네!

  사람을 끄는 인간성에서나 재주와 취향에 있어서나 아버지를 빼다 박은 아이 윌리. 열 살? 열한 살?

  윌리는 몸에서 나와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병자-형체를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를. 가만히 아버지에게 몸을 기대 서있다는 것도 아버지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좌절감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윌리는 급기야 다시 자신에게 들어가본다. 그랬더니 링컨은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의 상태가 바뀐 것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로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윌리는 그 안에 계속 있을 수 없어 다시 기어 나왔다.

  1862년 2월 25일 새벽 한 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아들의 묘당을 찾아온다. 묘당을 지키는 묘지기는 해가 진 다음엔 누구도 묘지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상대가 대통령임에야 금지할 수 없었다. 아들 윌리의 몸을 담은 묘당에 들어간 키 큰 링컨은 윌리의 관을 열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언제나 자기가 윌리를 보살피겠다고 약속한다. 아니, 이걸 듣는 윌리는 아버지가 그렇게 약속한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처럼 천국이나 연옥에 일찍 가기는 다 튼 것이지. 아버지가 지켜주기로 했는데 거긴 뭐하러 가느냐고.


  우리말로 아무리 잘 번역했다 쳐도 원어 속의 디테일한 글의 기교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을 거 같다. 알기 쉽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귀신들 모여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귀신도 귀신 나름이지 때는 미국 내전으로 당장 한 전투에서 죽은 귀신만 3천 마리, 노예 상태에서 몰살당한 아프리칸 미국인들의 한 맺힌 귀신이 또 수천 수만 마리 있을 터. 이런 정서를 다 체감하고, 단어 하나 하나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이 작품을 원서가 아니라 번역으로 읽는 일은 쉽지 않겠다. 더구나 어떻게 2017년에 부커상을 받았는지, 이 작품이 어떤 면에서 부커상을 받을 만한 지 납득하기도 쉽지 않다. 하긴 어제 읽은 스위프트의 <마지막 주문>도 윌리엄 포크너의 플롯을 그래도 채용했음에도 부커상을 받기는 했지만. 부커상도 가끔은 아무나 막 주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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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9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판 귀신 얘기? 아님 식스센스?
마지막 부커상 문장에서 빵 터져서 유쾌한 리뷰 읽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딱히 끌리는 책은 아니군요. ㅎㅎ

Falstaff 2025-09-10 03:34   좋아요 1 | URL
미국판 귀신 커뮤니티랍니다. ㅋㅋㅋㅋ
다음 달에 업로드할 저 노르웨이 피오르 지역의 귀신 커뮤니티 이야기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하고 더 비슷합니다.
귀신 이야기 싫어하는데 요즘 우연히 이런 이야기 연달아 읽어서 막 짜증나요!

유부만두 2025-09-1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힘들게 읽은 기억이 나요. 정신사나운 소설이라고 독후감을 남겨놨네요. ^^
 
마지막 주문 - 1996년 부커상 수상작
그레이엄 스위프트 지음, 손영도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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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엄 스위프트, 1949년 5월생이면 지금 76세. 연식이 꽤 됐는데도 위키피디아에 자기 프라이버시에 관해 별로 밝히지 않았다. 영국 남부 출신이고, 사립 기숙학교인 덜위치 칼리지를 졸업한 걸로 보아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집에서 자란 것 같다. 우리한테도 알려진 소설가 가운데 레이먼드 챈들러와 <영국인 환자>를 쓴 마이클 온타치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책의 앞날개를 인용하면, 케임브리지 퀸스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장학금을 받아 요크대학 영문학과 대학원을 다녔지만 학위를 받지 않은 상태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경비원, 농장 노동까지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는데, 아마도 잠깐 그런 일도 했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교사로 일하며 글을 썼다니까. 1983년에 발표한 <워터랜드>가 영화화되면서부터 돈 걱정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부커상 숏리스트까지 올라갔다가 미역국을 먹었고, 이후 13년이 지난 1996년에 오늘 소개하는 <마지막 주문 Last Orders>로 기어이 부커상을 받았다.

  이 책은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냈다. 대개 대학 출판부에서 낸 작품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재미없다는 거. 고대출판부에서 나온 책 가운데 재미없게 읽은 것이 막스 프리쉬의 <몬타우크>, 페터 바이스가 쓴 <소송, 새로운 소송>, 몰리에르 희곡 <아내들의 학교>, 카베사 데 바카의 <조난 일기> 외 몇 권이 더 있는 거 같은데 하여간 재미있게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혹시 전문 상업 출판사가 재미난 거 다 채 가고 남은 것들만 대학 출판부 손에 떨어지는 거 아냐? 이 대학만 그런 게 아니고 웬만한 대학 출판부에서 낸 책들이 어찌 그리 알뜰하게 재미가 없느냐고.


  런던의 런던탑과 빅벤 맞은편 버먼지 스미스필드는 정육업 때문에 피투성이의 중심으로 이름을 냈다. 삶과 죽음 그 자체라서 이 거리에 세인트바트 병원이 있고 예전엔 정기적으로 참수형과 교수형을 집행하던 뉴게이트 교도소 자리에 중앙형사법원이 들어선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 물론 영국인, 특히 런던 사람이라면 말이지만. 1903년 이 거리에 도즈 선생이 가족 정육점을 열어 옥호를 “도즈 부자의 가족 정육점”이라 했다. 여기서 도즈 부자라고 함은, 돈 많은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아들을 말하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잭 아서 도즈 씨였다. 처음부터 잭이 정육점 주인, 조금 나쁜 말을 쓰면 푸주한이 되고자 한 건 아니었다. 길 건너에 있는 세인트바트 병원에 유난히 예쁜 간호사들이 많은 것을 보고 자란 사춘기 시절 잭은, 의사 한 명이 서너명의 간호사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나도 열쒸미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말 거야, 각오를 다졌건만 당연히 메스 대신 발골도를 쥐게 되었다.

  잭이 정육점 2대 사장이 되기가 얼마나 싫었는지 설명하자면, 젊음이 탱천할 시기에 집에서 토껴 홉 농장에 가서 홉 따는 일까지 했다. 물론 한 해 잠깐. 여기서 잭은 따라는 홉 대신에 아름다운 에이미 아가씨를 만나 보자마자 홀랑 반해 눈이 휘까닥 뒤집힌 김에 결혼을 해버렸다. 그리고 딸을 낳아 아이 이름을 ‘준’이라 했다. 이후 곧 2차세계대전 발발. 잭은 다른 젊은이들보다 한 발 일찍 입대해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향했다. 6개월 후, 어떻게 되느냐고? 죽어? 다쳐서 돌아와? 아니다. 반년 후에 같은 부대에 영국인 시각으로 난쟁이 반바지만 한 조그만 키의 병사가 전입 온다. 그래서 너는 어디서 왔냐? 물어보니까 글쎄 버먼지 스미스필드 출신이라는 거 아냐? ‘도즈 부자의 가족 정육점’에서 한 골목 꺾으면 바로 나오는 고철 수집상집 아들이었던 거다. 그래서 어제 읽은 스타인벡의 <생쥐와 인간>의 주인공 레니와 조지처럼, 소대가 작전을 나가면 무지하게 덩치가 좋은 잭이 난쟁이 반바지 레이의 앞에 서서 수색을 했는데, 만일 잭이 레이를 만나자마자 자랑삼아 지갑 속 아내 에이미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그래서 레이 역시 단박에 에이미한테 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레이가 앞장서서 수색을 했을 거라고 먼 훗날 레이가 추억한다. 잭이 총에 맞아 죽어주면 지갑과 사진을 갖고 버먼지의 정육점에 가서 에이미에게 우짜고저짜고….

  근데 잭과 에이미가 낳은 딸 준은 안타깝게도 정신지체를 갖고 태어났다. 준이 스물일곱 살이 되도, 쉰 살이 되어도 두 살배기 지능에도 미치지 못하는 운명이다. 전쟁터에 보병부대 소총수로 투입된 병사들의 평균적 위험을 감수한 잭과 레이는 서로 상대가 배려하고 결정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할 정도의 위험을 공유했고, 이건 죽음이 이들을 떼어놓을 때까지 진한 우정을 이어가게 했다. 이때 잭과 레이가 적군에게 당한 폭격보다 훨씬 심한 정도로 독일군 전폭기가 런던의 버먼지를 때렸다. 다행히 잭의 아빠가 운영하는 정육점도, 레이의 아빠가 운영하는 고철수집 가게도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무지하게 많은 건축물이 파괴되었는데, 이때 집 하나가 와장창 무너지면서 젊은 엄마, 아빠가 그 자리에서 죽고, 아들아이만 하나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살아 남았다. 당시 정신지체 딸 준을 요양원으로 보낸 잭 부부는 빈스라는 이름의 고아 소년을 데려와 성姓 도즈를 부여하고 양자로 키웠다. 서양사람들은 입양을 해도 굳이 입양 사실을 비밀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모가 나서서 사실은 네가 입양 어쩌고 저쩌고 할 이유는 없는 법이라서 잭과 에이미도 그렇게 했건만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나? 나중에 알게 됐지만 빈스는 도즈 부부에게 일종의 부채감을 질 수밖에 없었다.

  에이미 가슴에 못이 콱 박힌 거 하나. 뭐겠어, 딸 준 이야기지. 엄마 에이미는 준을 요양원에 보낸 이후에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월요일과 목요일에 면회를 갔다. 단, 40대 시절에 12주 동안 목요일에는 가지 못한 일 빼고. 반면에 잭은 단 한 번도 면회를 가지 않았고, 면회 다녀온 아내에게 준에 대하여 묻지도 않았고, 일상 대화 중에도 준은 한 번도 화제에 올라온 적도 없으며, 심지어 빈말이라도 준을 발음하지도 않았다. 이건 에이미가 잭과 준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갈림길을 만들었고, 그리하여 당연히 준을 선택했으며, 훗날 잭이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았지만 의사가 배를 열자마자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채 즉각 다시 봉합을 하고, 대책 없음을 선언한 며칠 후에 잭이 스틱스 강을 건널 때 준의 50세 생일, 또한 반스의 40세 생일을 맞이할 때까지, 에이미는 한 번도 잭을 선택해본 적이 없었다. 신기하지? 그러고도 어떻게 혼인을 이어간데? 하긴, 잭은 그럼에도 다른 로맨스를 만들지 않았다. 아무리 가벼운 로맨스라도. 에이미는? 안 알려줌. 난쟁이 반바지를 열두어 번 입어보긴 했음.


  여태까지 길게 쓴 것이 뭐? 그렇다. 변죽 울린 거다. 이제부터 진짜다.

  잭한테는 절친 세 명이 있다. 당연히 레이. 그리고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프로권투 미들급 선수권자였던 레니와 대를 이어 한 점포를 운영하는 장의사 빅. 레이는 충분하게 이야기했다.

  레니와 아내 존Joan 사이에 샐리라는 이름의 딸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권투 시합에 나가 준결승에서 장렬한 KO패를 당한 이후 야채장사를 하는 레니는 이 아이를 잭의 양아들 빈스와 엮어주려고 애썼다. 그런데 고기를 사러 벤을 운전해 장거리 출장을 갔던 잭이 블랙번 근처에서 주디라는 이름의 열일곱 살 먹은 가출 아가씨를 집에 데려와 숙식제공에 약간의 임금을 주고 직원으로 채용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건만 이제 자주 얼굴을 맞대야 하는 빈스는 당연히 주디라는 가명을 썼던 아가씨 맨디와 친해지게 됐고, 급기야 반바지 레이 아저씨의 캠핑카를 빌려 거기서 맨디와 했고, 이후 아예 캠핑카에 맨디를 살게 하고 시간 날 때마다 하더니, 맨디가 열여덟 살이 되자마자 결혼해버렸다. 이 사이인지 이후인지 하여간 샐리는 지붕 쳐다보는 강아지 신세가 되어 아무 남자를 만나 사랑해버리고, 결혼해버렸다. 사기꾼에 폭력 전과가 있는 남편과 살다가, 이 왕년의 사기꾼이 단 한 명의 소유자밖에 거치지 않은 거의 신품 BMW를 훔쳐 빈스에게 팔려 했다가, 빈스가 업계의 양심을 지켜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다시 교도소에 가서 나랏밥을 먹게 되어 빈스에게 좋은 감정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안 사겠다면 되지 그렇다고 친구지간에, 왕년의 친구 남편을 경찰에 고발을 한다고? 이런 심정이었지 뭐.

  장의사 빅은 직업에 어울리는 옷과 태도를 평소에도 유감없이 과시하고 사는 왕년의 해군. 친구들은 빅이 자기들보다 오래 살아, 자기들이 죽은 다음에 염도 잘 먹여주고, 장례도 잘 치뤄주기를 바란다. 이걸 빅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른다. 평소 태도가 이러니 세상 사람들하고 유감 생기는 행동과 표현을 해 본 적 없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 그러나 장의사라는 직업이 반은 왕족이요, 반은 문둥이라. 자신한테 쏟아지는 경멸과 경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이 세 친구와 양아들 빈스가, 잭이 죽어 장례를 마치고, 화장을 해서 이제 가로 세로 15cm, 높이 30cm가량의 판지 상자 속 플라스틱 통 안에 든 하얀 골분 상태로 이들의 단골 술집 “마차와 말들” 주점 바 위에 놓여 있다. 이제 세 친구와 입양 아들 빈스가 잭의 유언대로 그의 뼛가루를 뿌리러 가려 한다.

  잭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내 에이미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나 수신인은 에이미가 아니고 “관계자 제위”였다. 어쨌든 말하기를:

  “마게이트 잔교 끝에서 내 유골을 뿌려주기 바랍니다.”

  시절은 만우절 다음날 4월 2일. 목요일. 일찌감치 준과 잭 사이에서 준을 선택한 에이미는, 에이미의 말을 신뢰한다면, 다른 요일이면 몰라도 목요일이니 자신은 잭의 유골을 뿌리러 가지 않고 평소처럼 준을 면회하러 가겠으니, 친구 세분과 빈스가 유언을 따라주던가 말던가.

  평소 “마차와 말들” 주점의 주인 버니와 친했던 잭. 버니는 기꺼이 나머지 친구들에게 술 한 잔을 무료 제공하고 자신도 참여하지 못한 유감을 표현한다. 술 한 잔씩 들이켜니 주점 밖에 차를 댄 중고차 딜러 빈스. 그가 끌고 온 차가 벤츠 S-클래스 380. V8에 6년된 중고지만 시속 2백km까지 전혀 흔들림 없이 주행한다. 이 차를 타고 잭의 유골을 뿌리러 가는 하루를 쓴 작품.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히고 설킨다.

  그러나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 이거, 이 플롯, 어디서 본 거야,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그래 궁리하기 시작. 음. 윌리엄 포크너가 쓴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독후감 쓰려고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니 그레이엄 스위프트가 1996년에 부커상을 탈 때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와 유사한 점을 들어 시비한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도 시비한 사람들 편에 설 수밖에 없다. 이걸 어쩌나,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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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8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도 부커상을 받았단 말인가요? 유사설정이 많음에도 상을 받았다는건 그만크 뛰어났단 얘기일까요?

Falstaff 2025-09-08 17:19   좋아요 1 | URL
그렇다고 봐야지요. 나름대로 괜찮은데요, 플롯은 좀 문제가 된다고 아니 말할 수 없네요. 읽는 사람에 따라서 그냥 스토리 상 유사성이라고 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이런 빌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이면 책이 잘 팔리는 거야 그렇다고 치고, 유명 문학상을 넙죽 안겨주는 건 좀 걸쩔지근 하지 않았나 싶은 겁니다. 상만 받지 않았어도 그리 크게 까탈을 받을 거 같지는 않다는 말씀입지요. ㅎㅎㅎ 사는 일이 다 그렇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