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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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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단편소설을 제일 잘 쓴다는 작가의 첫번째 장편소설. 이 한 편의 소설로 단번에 2017년 부커상을 거머쥐었다. 단편집 《12월 10일》 한 권 읽었을 뿐이라 손더스가 어떻더라, 감히 소감을 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라고 아는데 미국에서는 상당한 모양이다. ‘현재’ 미국 최고의 단편작가라고 하면 뭐 그런가보다 할 수 있어도 시대를 막론하고 미국 최고의 단편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는 쉽지 않을 듯. 《12월 10일》을 나름대로 인상깊게 읽어 그에 대한 소감을 보태자면, 다분히 엽기 그로테스크적 취향을 숨기지 않잖아?
이 작품도 그렇다. 그로테스크. 제목 속의 ‘바르도’를 읽고 내 머리 속에서는 엉뚱하게도 브리짓이 생각났지 뭐야? 브리짓 바르도. 개 먹는 원조 국가 중국에다 대고는 찍소리 못 하면서 애먼 우리나라 사람들더러 개 먹는 야만스런 한국인이라고 설왕설래했던 여자. 참! 우리나라 20대 대통령 배우자가 강제하다시피 해서 법령이 통과된 진짜 야만스런 개고기 금지법도 저번 탄핵과 더불어 더불어민주당과 1찍들이 이 법 무효화시키는 법안은 내지 않으려나? 아이 씨. 난 개고기 안 먹는다니까. 세상의 많은, 거의 모든 ‘금법禁法’을 싫어하는 인간일 뿐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하여간 이 책의 바르도는 브리짓 바르도가 아니라, 작품 뒤에 달린 “옮긴이의 말”에서 요즘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쁜 역자 정영목이 네 페이지 분량으로 쓴 해설을 인용하면 ”티베트 불교에 나오는 용어를 티베트어에서 음차한 것으로 우리말로는 중유中有 또는 중음中陰이라 하며, 죽고 나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를 가리킨다(기독교 계열에서 말하는 연옥이나 림보와 약간 겹치는 면이 있을 듯하다).”라고 설명해 놓았다.
단테가 만들어 수백년 잘 써먹은 연옥이란 장소는 애초에 성경, 오래된 계약서나 새로 만든 계약서, 즉 구약과 신약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그곳에 떨어진 인간들은 별 잘못 없이 그저 예수를 믿지 않아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를 믿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천국으로 가지 못해, 대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들을 위하여 열라 기도해주면 천국으로 갈 수 있어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만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누워 있든지 앉아 있든지 하여간 빈둥빈둥.
반면에 중음이란 곳은 육신, 이거 한자어로 써야 하는 데, 肉고기 身몸, 고기로 된 몸에서 떠난 정신이, 혹자는 이걸 영혼이라고 부르고 싶겠지만, 어쨌거나 정신, 영혼, 하여튼 아직 무화되지 않은 뇌파가 얼른 염라대왕 전에 출두해 살아생전 잘잘못을 평가받아 천국과 지옥 또는 환생의 사이클을 돌아야 하건만 대두분의 뇌파와 달리 아직 살아생전 맺은 드런 정을 깔끔하게 정리하거나 잊지 못한 것들이 휘휘 날아다니는 공간이고, 이런 뇌파들의 모임을 우리는 간단하게 귀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바르도가 중음. 이 속에 들어간 링컨. 링컨이 우리가 아는 그 링컨, 말단비대증이 있는 에이브러햄 링컨 맞느냐고? 반은 에이브러햄, 나머지 반은 메리 링컨. 즉 둘 사이의 아들 윌리 링컨이다. 아, 링컨의 아들 윌리가 죽어 아직 천국에 들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허공을 배회하고 있구나, 저런. 이런 정도만 이해하고 넘어가자.
중음에 있는 영혼. 그걸 우리는 좋은 말로 중음신, 놀랍게도 여기서 신은 ‘귀신’ 할 때의 신神이 아니라 몸 신身자를 쓰는데, 그럼에도 중음신은 귀신을 일컫는 말이다. 이 속에서 스토리를 만들려면 다른 귀신들도 있어야겠지?
볼먼씨는 46세. 그녀는 18세. 볼먼씨는 늘씬하지도 않고, 머리도 약간 벗겨졌고, 한쪽 다리를 절고, 나무 틀니를 하고 있다. 볼먼씨가 하고자 했던 결혼이 아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볼먼씨는 늙고 추하고 지쳤다는 걸 스스로도 잘 이해하고 있다. 이 혼인은 정략에 뿌리를 두었다는 것도.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어머니는 병이 들었다. 볼먼씨의 돈이 필요한 거였겠지. 볼먼씨는 아내를 보면서 아내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결코, 꿈도 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결혼 초야. 아내의 방에 든 볼먼씨는 젊은 아내에게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자고. 겉으로는 모든 면에서 “우리의 결혼이 완성된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부부가 아닌 친구가 되자고.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한다. 볼먼씨는 아내에게 정중했고, 친절했고, 활수하게 베풀어 먹고, 입고, 친정식구 대하는 걸 소홀하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서재의 볼먼씨 책상 위에 아내가 쓴 편지가 놓여 있었다.
“우리가 함께 하는 행복의 영역을 저에겐 아직 낯선 친밀한 방식으로 확장하기 바라요. 여인이 되는 과정을 볼먼 씨를 통해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28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이렇게 비로소 둘의 몸은 합해졌고, 활달한 인쇄업자 볼먼씨는 더욱 활기로워졌으며 아내는 서서히 당당한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입가에 미소가 떨어지지 않는 부부. 그러나 행복은 그리 길지 못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기쁜 마음으로 인쇄소를 향한 볼먼씨. 문제는 인쇄소에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사무실에 앉아 밀린 서류를 정리하던 볼먼씨 위에서 건물의 들보가 떨어져 볼먼씨의 “여기”를 때렸다고 하는데 여기가 어디를 말하는지는 결코 밝히지 않는다. 그리하여 볼면씨는 자기가 귀신이 되었는 지도 모르고 병자-상자sick-box, 쉬운 말로 하자면 관coffin에 담겼다가, 며칠 후엔 병자-달구지, 즉 장의사 수레에 실려 교회를 거쳐 병자-두둑, 묘지에 들어갔다. 그런데 하늘에서 떨어진 들보에 뭔가가 깨져 볼먼씨가 육신에서 나왔고, 한 때는 볼먼씨라고 불렸던 고기 덩어리를 관에 넣어 교회로 끌고 가서 신부 또는 목사가 몇 번 기도를 하더니 다시 끌고 가 파묻었을 뿐, 볼먼씨는 그냥 이렇게 있는 거다. 어디에? 바르도. 중음에. 그리하여 볼먼씨, 시간이 가면서 이 바르도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로저 3세는 부모에게 ‘미안하다’는 요지의 편지를 남기고 도기 대야 위에 손목을 올려놓고 그걸 칼로 아주 모질게 베어 버렸다. 그래도 동맥까지 절단한 거 같지는 않고, 정맥은 확실하게 그은 모양인데, 어떻게 아느냐 하면, 동맥이 잘렸으면 순식간에 과다출혈 및 쇼크로 까무러쳐야 마땅하건만, 로저 3세는 흘러나온 피와 대야의 흰색을 배경으로 갑자기 번지는 충격적인 붉은 피, 이 기막힌 일종의 보색대비 때문에 속이 메스꺼워지더니, 어지럼증을 느껴 바닥에 주저 앉아서 잘 됐다, 이제 죽겠구나, 이런 생각 대신 조금 쪽팔리지만, 어, 이게 아닌데, 살고 싶은 걸, 마음이 바뀌어 버렸다. 그리하여 방을 나와 층계를 향해, 층계에서 아래층으로 엉금엉금 기어 내려갔고, 얼른 하인들 눈에 띄어야 바뀐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거 같아서 거기서도 역시 두 발과 한 손으로 기어 식당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어이 바르도의 두번째 자리에 오를 뿐이었다.
1862년 초. 미국의 대통령은 매년 겨울 정기적으로 공식 만찬을 여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1862년은 미국에서 내전이 일어나 한 전투에서 3천명이 전사한 불운한 시기라, 과연 백악관 만찬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관가와 정가에서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를 깊이 숙고한 메리와 에이브러햄 링컨은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3회에 걸친 만찬을 예정대로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링컨 가의 두 아들 테드와 윌리는 시즌을 맞아 많은 선물을 받았다. 작은 조랑말을 선물받은 윌리는 너무 기뻐서 그렇게 추운 겨울날 두터운 외투도 입지 않고 날마다, 하루도 빼지 않고 하루 종일 말에 올라 달리고 또 달렸다. 미국 동부의 겨울엔 비가 많이 오는 거 아시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윌리는 말에 기어 올라갔는데, 대통령 링컨은 자기가 워낙 건강 체질이고 살면서 의사 만난 적도 없거나 거의 없기도 하고, 원래 아이들 양육 방식도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하는 걸 싫어해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그건 메리 여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지?
그랬더니 윌리는 단박에 감기에 걸렸고, 감긴줄 알았는데 이게 독감으로 넘어갔고, 독감이 조금 지난 후엔 의학에 조예가 없는 엄마 메리 링컨 여사가 보기에도 허파에 울혈이 생긴 거 같았다. 이미 메리 여사는 만찬용 드레스와 수많은 보석 치장물을 달고 있었다. 그리하여 유럽 왕국의 왕자, 귀족, 대사를 망라하고, 전쟁 중 잠시 휴가를 낸 장군들까지 모두 모인 정기 만찬이 성공리에 치뤄지고 있음에도 대통령 링컨 부부는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 진짜 웃을 수는 없던 거였다. 윌리가 좀 낫나? 싶어서. 하긴 의사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곧 나을 것이라고 확답을 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없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후 윌리는 점점 쇠약해지더니 드디어 링컨의 비서 윌리엄 스터도드가 공식적으로, 가망이 전혀 없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는데, 오후 다섯 시, 링컨은 말했다. 내 아이가 갔네… 정말로 가버렸네!
사람을 끄는 인간성에서나 재주와 취향에 있어서나 아버지를 빼다 박은 아이 윌리. 열 살? 열한 살?
윌리는 몸에서 나와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병자-형체를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를. 가만히 아버지에게 몸을 기대 서있다는 것도 아버지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좌절감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윌리는 급기야 다시 자신에게 들어가본다. 그랬더니 링컨은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의 상태가 바뀐 것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로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윌리는 그 안에 계속 있을 수 없어 다시 기어 나왔다.
1862년 2월 25일 새벽 한 시.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아들의 묘당을 찾아온다. 묘당을 지키는 묘지기는 해가 진 다음엔 누구도 묘지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상대가 대통령임에야 금지할 수 없었다. 아들 윌리의 몸을 담은 묘당에 들어간 키 큰 링컨은 윌리의 관을 열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언제나 자기가 윌리를 보살피겠다고 약속한다. 아니, 이걸 듣는 윌리는 아버지가 그렇게 약속한 것으로 믿는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처럼 천국이나 연옥에 일찍 가기는 다 튼 것이지. 아버지가 지켜주기로 했는데 거긴 뭐하러 가느냐고.
우리말로 아무리 잘 번역했다 쳐도 원어 속의 디테일한 글의 기교를 제대로 전달하기 어려웠을 거 같다. 알기 쉽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귀신들 모여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귀신도 귀신 나름이지 때는 미국 내전으로 당장 한 전투에서 죽은 귀신만 3천 마리, 노예 상태에서 몰살당한 아프리칸 미국인들의 한 맺힌 귀신이 또 수천 수만 마리 있을 터. 이런 정서를 다 체감하고, 단어 하나 하나의 맛을 제대로 알려면 이 작품을 원서가 아니라 번역으로 읽는 일은 쉽지 않겠다. 더구나 어떻게 2017년에 부커상을 받았는지, 이 작품이 어떤 면에서 부커상을 받을 만한 지 납득하기도 쉽지 않다. 하긴 어제 읽은 스위프트의 <마지막 주문>도 윌리엄 포크너의 플롯을 그래도 채용했음에도 부커상을 받기는 했지만. 부커상도 가끔은 아무나 막 주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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