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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관시대의 사람들 ㅣ 묘보설림 10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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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시대를 맞아 천민자본주의가 극성을 떨치던 중국의 우울한 현대사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잘난 거 없다, 50년대생 중국 소설가들이 쓴 시절의 우울과 부정부패와 거대 사기를 우리 역시 1980년대, 심할 때는 1990년대 초까지 거의 똑같이 경험했다,는 기억 때문에 못내 씁쓸했다. 오만하지 말자. 그저 우리가 조금 더 빨리 시작/발전했고, 딱 그만큼 일찍 깼을 뿐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여기나 거기나 같다는 말이지.
  산아제한이 없던 시절의 중국은 거의 모든 부부가 생기는 대로 낳았다. 양카이퉈도 그렇게 세상 구경을 했다. 몇째 아이인 줄 자기도 헛갈릴 정도. 이 아이가 돌이 되자 뇌수막염에 걸렸다. 원래 기어 나올 때부터 병약한 체질을 타고나서 비실비실했는데, 덜컥 뇌수막염 유행을 좇아 그만 열이 펄펄 나고 눈을 뒤집어 까 보아도 아직 걸음도 떼지 못한 것이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매사에 정이 없는 엄마는 많고 많은 아이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다 해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어서 한 살배기 카이퉈를 고이 죽으라고 초막에 던져두었는데, 두 돌이 되지 않은 카이퉈가 그때 얼마나 갈증이 심했던지 어린 것이 갈증의 기억을 잊지 않고 평생을 보내게 된다. 이때 큰 누나만 바가지에 물을 떠 입술을 추겨주고, 마음껏 마시게 해주었는데 이게 큰 은혜였는지 열이 확 내리면서 병이 나았다. 그러니 양카이퉈는 큰누나를 평생 엄마 대신으로 알고 살았다. 누나의 아들이 장가를 든다. 양카이퉈는 현의 도로국 국장이다. 그러니까 작은 현의 도로와 교량 건설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이것도 큰 자리라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청탁질을 해서 양국장은 부정에 관여하지 않기 위하여 모든 친인척과의 교류를 끊고 지냈지만 어찌 엄마 같은 누나한테도 그럴 수가 있으랴. 그리하여 조카, 누나의 아들이 장가드는 날엔 기꺼이 잔칫집에 와서 특히 신부댁과 크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이 아니 즐거울소냐.
  주흥이 무르익어갈 무렵 술판 분위기 깬다고 전부 휴대폰을 꺼 놓으라고 했건만, 양국장의 운전기사가 헐레벌떡 자기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오더니 전화를 받으란다. 두보의 먼 후손이자 양카이퉈의 직속상관인 두杜 현장 전화였다. 두현장은 전화를 받기가 무섭게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중국사람들 좋아하는 폭죽을 잔뜩 실은 트럭이 양쯔강의 물살 세고 깊은 지류 차이홍하를 건너는 차이홍3교 위에서 폭발하는 바람에 차이홍3교의 한 가운데 상판이 폭삭 내려앉아 스무 명이 넘는 인명사고가 나버린 거였다. 이 마당에 교량 담당 국장이 고위 공무원 수칙을 깨고 휴대폰 전원을 꺼버린 채 대낮부터 술타령을 하고 자빠졌으니 현장 입장에서도 저절로 욕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여지없이 촛불집회에 대통령 탄핵 주장해야 한다고, 누가 야당을 해 처먹든지 건수 잡았다고 난리가 났을 터. 양카이퉈는 전화를 받자마자 귀 앞에서 폭탄이 뻥 터지는 것 같아 만땅 취했던 술이 말끔하게 깨버려, 그 길로 잔치고 뭐고 그냥 차를 타고 차이홍3교로 날아갔다.
  끊어진 교량 밑으로 추락한 승용차, 트럭, 관광버스 등의 잔해가 어지러이 널린 차이홍하의 둔덕엔 벌써 시장이 버티고 서 있었다. 급하게 시장 근처까지 간 양카이퉈 국장. 시장이 현 국장의 얼굴까지 알 도리가 없어, 어이, 담당자가 누구야? 하고 현장에게 물었고, 현장이 쓴 표정을 지은 채 지금 도착했습니다, 하고 양카이퉈를 손짓했는데, 술이 깨긴 깼지만 말끔하게 깨진 않은 양카이퉈는 하도 겸연쩍어 저도 모르게 얼떨떨하게 웃어 보였다. 시장이 돌아간 후 양카이퉈는 급하게 현의 병원으로 가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돌보고, 다시 강가로 돌아와 복구작업을 진두지휘하는 등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 채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의 전면을 장식한 것은, 붕괴된 차이홍3교가 아니라 무너진 차이홍3교와 강에 떨어진 처참한 차량과 부상당한 사람, 구조활동 중인 군 병력을 배경으로 해맑게 웃음짓고 있는 현의 도로국장 양카이퉈의 사진이었다. 이 기사에 수백만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거의 양카이퉈를 저주하거나, 퇴진 등을 거론하는 거였다. 폭죽을 싣고 가던 트럭이 재수없게 다리 위에서 폭발해 다리가 무너진 것이 어떻게 내 책임이냐, 억울함 때문에 말도 나오지 않는 양카이퉈는, 특급 여성 연예인의 불륜 기사 같은 것이 얼른 떠 주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이 다음에 터진 기사는 당시 양카이퉈의 팔목에 붙어 있던 고급 손목시계였다. 이 시계가 유럽의 어느 회사에서 만든 한정품으로 세계에 몇 개가 깔려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인지, 몇십 만 위안짜리인지, 연예인 누가 차고 다니는 것인지, 자세히도 까발렸다.
  이어서 3탄이 인터넷 포털에 다시 터지는데,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참 극성들이기는 하다. 양카이퉈 국장이 참석한 모든 행사를 싹 다 검색해 양국장이 찬 일곱 종류의 시계를 전부 나열하고, 몇 살짜리 현의 국장이 받는 월급여가 얼마인 것까지 탈탈 털어, 이 일곱 개의 시계를 사려면 양카이퉈가 현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 받는 월급을 받았다고 가정해도 몇 십년, 양카이퉈가 인정머리 없는 엄마 배속에 들어가기 근 20년 전부터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꼬박 다 모아야 살 수 있다는 것까지 확 까발렸다. 이러니 당국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그리하여 양카이퉈에게 쌍규를 진행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쌍규雙規. 대개 공산당원이 부패 범죄를 저질렀을 때 당 기율위원회에서 피의자를 구금해 조사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미 쌍규로 넘어가면 본인의 최하 징역, (‘드물게’가 아니라)잦게는 사형까지 당할 생각를 해야 하며, 이 인간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사람들 모두 일신상 막대한 처벌을 각오해야 마땅하다. 주로 당의 고급관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그깟 현의 국장을 대상으로 한다.
  나름대로 양카이퉈는 양심적인 도로 국장이었지만, 뇌물을 찔러주는 업자들이 그냥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상당한 뇌물이나 현금을 먹이려 한다. 그러기만 하면 쓴 돈의 열배 이상을 수입으로 챙길 수 있으니까. 이러고 나서야 실제 공사를 부실이나 부실 바로 전단계로만 진행한다. 나머지 자재는 다 해먹는 거다. 우리나라 공사현장도 비슷했다. 지금은 다르겠지만. 다르다고 믿고 있지만 하여간 21세기 초까지도 그랬다. 양카이퉈를 구금 조사한 쌍규 지휘관은 사근사근 친절한 말씨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아, 신체의 감각으로 느끼는 고통은 주지 않되, 도무지 모든 것일 실토하지 않을 수 없는 치밀한 고문을 가해 모든 행위, 진짜로 1도 숨기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모든 행위를 실토하게 만들었다. 양카이퉈는 그나마 깨끗한 관료였다는 것이 양국장 자신의 생각이고 동시에 작가 류전윈의 생각인 것 같다.
  안경을 끼고 나긋나긋한 쌍규 지휘관도 양카이퉈를 조사하면서 뭐 이 정도 돈과 뇌물이야 워낙 흔한 거라서 그냥 지나가려 했다. 근데 지휘관이 도무지 참아주지 못하는 악행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성접대를 받은 것. 성접대도 그냥 성접대, 흔히 하듯이 고급이거나 하급이거나 매춘부 하나 불러 방에 부르는 수준이 아니라 한 부동산업자한테 산골에서 갓 올라온 숫처녀를 진상받았다는 거였다. 양카이퉈가 어릴 때부터 양기 부실해서 요즘엔 거의 발기부전 상태인 것을 안 업자가, 도도하게 내려오는 중국 도교의 힘을 빌어 숫처녀를 하나 “깨면” 효과가 있을 거라 했고, 정말로 처녀를 하나 “깨니까” 효과가 대여섯 달은 가더라고. 중국에서도 문제는 처녀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 도무지 처녀를 구할 수 없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만들지 못하는 게 있기나 한가? 그리하여 처녀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싱싱한 드렁허리의 피를 스펀지에 묻혀 관계 전에 질 깊숙이 집어넣고, 주로 고급관리인 고객의 침대에 올라 일을 시작하면, 리듬에 맞춰 아파요, 아파요를 연발하고, 힘을 다해 옥죄라는 거다. 그렇게만 하면 백이면 백 다 껌벅 넘어간다나? 이때 조심할 것은 간혹 남자가 전력을 다해 애무를 할 경우, 엑스터시에 이른 모습을 절대 보이지 말 것. 쉽지? 드렁허리를 구하는 게 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애초에 문제가 이렇게 생긴다는 뜻이다. 양카이퉈가 쌍규에 걸리지만 않았어도, 사고 현장에서 웃지만 않았어도, 조카 결혼식이라 누나 얼굴 좀 띄워주려고 평소엔 차지도 않았던 고급 팔목시계를 차지만 않았다면, 이 <방관시대의 사람들>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양카이퉈가 그냥 뇌물만 조금 먹었어도 마찬가지. 하필이면 딸만 하나 있는 쌍규 지휘자 앞에서 숫처녀를 성접대 받은 것이 걸린 것이 결정적 포인트였고, 또 숱한 성접대 가운데 하필이면 산골처녀로 알려졌지만 알고 보면 4천km 떨어진 평야지대에서 사기꾼을 쫓아 산골 도시로 오게 된 22세의 뉴샤오리의 성접대만 비디오 촬영을 해서, 온갖 계급의 온갖 고관들이 말 그대로, 1970년대 유행했던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져 감옥으로 들어가고, 남편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지능적으로 뇌물, 현금, 향응 받기를 즐겨온 여사님들 역시 모든 재산, 자산을 잃고 옥에 간 아들과 남편 바라지를 하기 위하여, 이미 늙은 몸을 사기꾼들과 결탁해 팔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렇게 쓰니까 양카이퉈가 꼭 주인공 같지? 천만의 말씀. 양카이퉈는 무지하게 중요하기는 하지만,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모멘트가 되는 인간에 불과하다.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지만 작품 속에서는 그저 조연 1 정도일 뿐. 주인공은 위에 잠깐 소개한 아가씨 뉴샤오리. 몸 안에 드렁허리 피를 묻힌 스펀지를 넣고 한 번에 만 위안씩 열두 번, 합해서 12만 위안을 벌어 금세 고향으로 돌아와 애인과 결혼해 음식점 내고 잘 살아가다 한 방에 훅 가는 여성. 그렇다니까. 주인공 뉴샤오리 얘기는 하나도 안 했다니까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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