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불의 딸들
야 지야시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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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진지한 소설이 독자의 관심에서 멀리 있는 거 같아 안타까움. 아프리칸 미국인들의 연대기. 노예 사냥꾼에게 잡혀 미국으로 팔려간 여성의 후예,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백인의 수탈을 견디며 기회의 땅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또 다른 여성의 후예. 이들의 만남까지의 파란만장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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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23 1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강력 추천입니다. 좋은 책인데 생각보다 많이 읽히지 않는듯하네요. 부디 골드문트님의 추천으로 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기원합니다. ^^

Falstaff 2022-03-23 12:49   좋아요 2 | URL
그죠, 그죠! 이 책 정말 재밌어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2022-03-24 19: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멀리는 안 가있어요. 제 눈이 닿는 곳에 있습니다 ㅋㅋ
전에 골드문트님 리뷰 보고 들여 놨으나 꽂아 놓고만 있습니다 ^^

Falstaff 2022-03-25 05:51   좋아요 1 | URL
재미있어요. 얼른 읽으세요! ^^
 
프리즘
이상우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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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우. 1988년 인천에서 아빠는 모르겠고 동네 도서관 사서 일을 하는 엄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하고, 2011년 <중추완월>로 문학동네 신인상 단편소설 당선으로 등단해, 2015년 소설집 《프리즘》을 낸 소설가. 2015년 초에 83년생 정지돈, 85년생 오한기, 85년생 박솔뫼 등의 형, 누나와 함께 소설가 자격으로 소위 후장사실주의 멤버로 활약한다. 이게 인터넷으로 검색해 추리한 이상우다. 현재 사서 읽어볼 수 있는 이상우의 단행본으로는 《프리즘》하고, 단편집으로 워크룸프레스에서 낸 《warp》(2017)과 문학과지성사에서 찍은 《두 사람이 걸어가》(2020), 이렇게 세 권이 있다. 장편소설은 안 쓰냐고? 그렇다. 아직까지 안 썼다. 혹시 모른다. 쓰긴 썼는데 아직 발표하고 싶은 마음을 먹지 못했는지도. 나중에 쓰거나 출간할 수도 있지만 이이의 소설 방식으로 장편을 쓰면, 작가 입장은 모르겠고 《프리즘》을 읽어본 독자 입장에서 말하자면, 과연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아 오해하지 마시라. 이이의 작품을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는 하나도 없다. 나는 《프리즘》을 즐겁게 읽었다. 작품 뒤에 실린 정지돈의 “우리가 미래다”라는 제목의 서평이자 극단의 잘난 척까지 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비밀인데, 귀여웠다.) 정지돈은 자신의 서평을 혼자 책임지기 싫었을 지 모른다. 구태여 알라딘 인문 MD 출신이자 이현우와 더불어 대표적인 서평 전문가로 활약중인 금정연과 함께 이상우에 대해 논의한 것임을 강조했으니. 아하, 지금 다시 검색해보니 21세기 들어 새롭게 생긴 직업인 서평가 금정연도 후장사실주의 멤버다. 그러니 서평의 제목을 “우리가 미래다.”라고 호기롭게 지을 수 있었을 것이다. (몰라서 묻는데, 서평가≠평론가 맞지? 근데 무슨 차이야? 가방끈? 등단 여부, 즉 면허증?)

  그런데 《프리즘》을 읽어보면, 이게 비록 앞에다가 “후장” 즉 항문이라는 뜻의 비속어를 달긴 했지만 당연히 사실주의라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다. 로베르토 알라냐가 쓴 <야만스러운 탐정들>에서 내장사실주의자들이 추구해온 예술행위, 전위와 초현실주의에 딱 들어맞는 작품들이다. 그리하여 소설 속에는, 억지로 얘기하자면 데뷔작인 <중추완월>을 빼고, 모든 작품에 서사는 완전히 증발해버리고 오직 단어의 배열과,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다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읽었는지는 별개로 하고, 나는 이상우, 이 작가에게 크게 흥미를 갖게 됐다.

  정지돈은 서평가 금정연과의 대화에서 앞 부분에 금정연의 말을 빌어 위상수학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표적인 비유클리드 수학의 한 분야로 지금은 모르겠으나 전엔 수학과 학부과정에는 전공 선택으로 한 학기 정도 수강할 수 있고 심화과정은 전부 대학원에 진학해야 본격적 전공을 시작하는 고난도 수학이(었)다. 정지돈과 금정연 두 명 다 국문과 졸업생으로 그들이 참고해 인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작가 이상우와 같이 극히 초보적인 입문서에서 소개한 개념 정도다. 그런데 위상수학이라기보다 ‘위상수학적’ 사고 행위에 국한한다면 정과 금은 놀랄 정도로 적절하게 변용했다. 솔직히 말해 문학이라는 것, 이 가운데서도 특히 전위나 초현실주의 행위는 꿈보다 해몽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거 아닌가.


  이상우가 《프리즘》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했을까? 모르겠다.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거 같다. 그는 하여간 어떤 이야기를 했고, 그건 마치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행위가 같아서 청자가 음표의 해석을 어떻게 듣고 받아들일지 작곡가는 책임이 없는 것처럼 이상우 역시 자신의 작품을 독자들이 어떻게 이해를 하는지 관심을 쏟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음악 이야기가 나와서, 독자가 《프리즘》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음악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어쨌든 음악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프리즘》 후반 두 편 정도와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이란 목표를 (조금은)염두에 두고 쓴 데뷔작 <중추완월>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을 읽을 때, 분명하게 문장 속의 운율韻律을 체감할 수 있다. 이런 음률감 또는 단어들 간의 리듬은 이상우가 던지는 특유의 오리무중 적 서정을 조금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이바지한다. 특별히 인용하기 위해 따온 것이 아니라 독후감을 쓰다가 그냥 아무 페이지나 열고 가져온 부분을 소개해본다.


  “나는 홀로 비를 추적했다. 좇으면 좇을수록 무수해지는 무력감의 중독자처럼, 연약한 척 휘날리고 있는 이 심연의 투명한 암살자들만이, 내가 이 세계에서 말을 섞을 수 있는 유일한 동행자인 것마냥. 놀랍게도 짝꿍은 나를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나 몰래 나를 소외시키려 드는 비의 꼬리를 붙잡기 위해 애쓰듯, 짝꿍의 눈길 또한 집요하게 나의 모서리에 닿아지고 있었고, 결국 나의 귀퉁이와 이어져버린 그 길 위로, 낡은 나룻배 한 척이 빗물을 양 갈래로 갈라놓으며 짝꿍을 나의 세계로 마중해오고야 말았는데, 짝꿍은 불타오르지 않는 어선 위에 서서,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조선시대의 가장 위대한 연애문학(이 말을 진짜로 믿을까 걱정입네다만) 정철의 <사미인곡> 같은 가사歌辭처럼 문장을 읽으면 머리 속에서 저절로 비트를 타는 음조를 느낄 수 있지 않나? 뒤의 어떤 작품 속에는 마치 이상의 <오감도>를 읽는 듯한 교차 진술을 무차별로 난사하기도 한다. 스토리? 없다 개가 물어갔다. 완벽하게 배제된 이야기들. 여기서도 당연히 조금은 데뷔 목적으로 썼을 <중추완월>은 제외한다.

  책은 데뷔작부터 시작해 발표 순서로 실렸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2013년엔 한 편도 발표하지 않은 모양이다. 뭐 그럴 수 있지. 그런데, 2014년 『21세기문학』 겨울호에 실린 <벨보이의 햄버거에 손대지 마라>와 『문학과 사회』 2015년 여름호에 실린 표제작 <프리즘>에서는 갑자기 문장의 운율이 사라졌거나, 연달아 비슷한 작품을 읽느라 피곤해진 내가 문장의 운율을 발견하지 못했다. 단편소설을 묶은 단편집이 장편소설보다 유리한 것 가운데 하나는 같은 분량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어서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이상우의 경우에, 자신의 작품세계, 또는 아직까지 ‘작품세계’라고 하기엔 뭐하다면, 하여튼 주요 관심사를 표현하는 양식이 상당히 흡사해(위상학적으로 도형이나 면체와 구체를 해석하는 방법과 유사하게 말이지), 문장의 음률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니까(작품활동이 없었던 2013년에 분명히 뭔가가 있긴 있었던 거야), 작품 자체를 읽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읽기 힘든 방향으로 전환했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이것에 관해서 더는 이야기하지 말자. 어떻게 쓰느냐는 전적으로 작가 마음이다.

  하여간 재미있고, 특히 흥미있게 읽었다. 윤해서의 발칙한 단편집 《코러스 크로노스》 이후 오랜만에 (내용과 관련없이)유쾌한 기분으로 맹랑한 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찬하지 않겠다. 그의 작품집을 한 권 더 읽어본 다음에 이상우의 팬이 됐느니 어쨌느니 해도 늦지는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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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22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읽기 힘들어하는 종류의 소설이군요. 저는 소설보다 골드문트님의 이 글이 더 재밌을 것 같습니다. ^^

Falstaff 2022-03-22 09:39   좋아요 0 | URL
아이고, 이런 말씀을 또.... 고맙습니다.
후장사실주의 종사자들, 종사자? 하여튼 이 사람들의 책은 달랑 두 권째 읽지만 독후감 쓰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저는 이자들의 글을 좀 더 파봐야겠어요. ㅎㅎㅎㅎ

그레이스 2022-03-22 10:20   좋아요 1 | URL
저두요
골드문트님 리뷰가 더 재밌어요^^

Falstaff 2022-03-22 12: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레이스 님, 고맙습니다! 으쓱으쓱!!

blanca 2022-03-22 09: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골드문트님, 드디어 동지를! 저 이 작가 최근 십 년 간 읽은 그 어느 한국 작가의 단편보다 <중추완월> 한 편 읽고 정말 놀라서 드디어 걸출한 소설가가 나왔구나! 하며 다른 단편도 찾아 읽었는데...음...나머지는 골드문트님 말씀처럼 서사가 증발했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개성이 뚜렷한 작가임에 분명해요. 말로 표현하기 정말 너무 힘든데 조금 더 본인이 읽히겠다는 의지를 가진다면 굉장히 잘 쓸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너무 궁금해서 이 작가 검색하고 막 그랬어요. 너무 반갑네요. 다른 작품 읽고 평 기다리겠습니다. 여하튼 <중추완월>은 충격적으로 좋았어요. 저는 이 사람들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기만 해도 재미있을듯...

Falstaff 2022-03-22 09:52   좋아요 3 | URL
저는 흥분을 좀 가라앉히는 중입니다. 윤해서의 <코러스 크로노스>에 확 반했다가 <0인칭의 뭐시기>에 급 실망을 한 적이 있어서요.
<중추완월>은 정말 놀라운 문장으로 쇼킹하게 썼는데, 아이고, 저같이 곱게 늙은 사람한테는 좀 사납더라고요. 지금 생각만 해도 후덜덜.... ㅋㅋㅋ 전 서사가 바싹 말라 비틀어진 중간 작품도 무척 좋았습니다.
이 사람의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은 만나기 쉽지 않을 거 같아서, 더욱 반갑습니다!!!

잠자냥 2022-03-22 1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침 6시에 글 올리신 것 봤습니다. 하지만 차마 그땐 좋아요를 누르지 못하고.... ㅋㅋㅋ 이제야 누릅니다.

저는 저 후장사실주의자들 책 왠지 꺼려져서 안 읽게 되는데, 이이의 작품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특히 블랑카 님도 극찬하신 <중추완월>이요.

그나저나 이거 정말 저도 궁금합니다. ˝서평가≠평론가 맞지? 근데 무슨 차이야? 가방끈? 등단 여부, 즉 면허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3-22 10:39   좋아요 1 | URL
저도 잠자냥 님처럼 어쩐지 꺼려져서 거부하게되는 후장사실주의자들 인데, 블랑카님 댓글 보니 그러면 중추완월 만... 이러면서도 또 선뜻 가게 되지는 않고.. ㅋㅋㅋㅋ

Falstaff 2022-03-22 12:43   좋아요 1 | URL
새털 같이 많은 나날이 있는데, 인연이 있으면 읽고, 아니면 마는 것이지 뭐 그리들 심각하십니까요?

점심때 나가서 돼지 앞다리살 사 와서, 유튜브 레시피대로 고추장 제육볶음 만들어 마누라쟁이한테 상납했습니다. 흐뭇해 하더군요. 핑계김에 저도 25도 진로 두꺼비 한 마리 낮술로 꿀떡 했더니, 아이고, 후장사실주의보다 세상에 쐬주 한 병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근데요, 중추완월이.... 드셉니다, 드세. 전 읽다가 화들짝! 했답니다.

다락방 2022-03-22 12:58   좋아요 1 | URL
낮술 소주라니. ㅋ ㅑ- 인생 근사하게 살고 계십니다, 골드문트 님!!

blanca 2022-03-22 13:1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중추완월>만 읽으세요. 오싹해지실 겁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 어느 소설과도 다르답니다. 한번 읽어볼까? 해서 시작하다 어,어? 하다 끝날 때쯤 작가 검색 들어가게 되는 저력이....그리고 작가 인상이 작품과 너무 달라 또 놀라고...
 
2020 서울연극제 희곡집
정의신 외 지음 / 서울연극협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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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서울연극제에는 모두 여덟 작품이 공식 선정되었는데 이 가운데 번역극 2편, 창작극 3편을 실어 희곡집을 냈다. 나머지 세 편은 저작권 사정으로 싣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정가가 2만원. 다섯 편의 희곡만 전문가 해설 없이 달랑 수록하고 2만원이면 조금 비싸지 않나 싶다. 공연 다섯 번을 본 것과 다름없는 책의 가격 2만원을 비싸다 한다고 뭐라하지 마시라. 가격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이 우연히 알라딘 헌책방에서 눈에 띄어 재빨리 주웠지 아니면 살 좀 떨릴 뻔했다.

  나는 연극 애호가가 아니다. 희곡집을 읽는다고 해서 연극 구경을 자주 다니는 건 아니다. 물론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거의 연극을 공연하지 않고, 공연을 해도 나의 관심과는 관계없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들을 위해서만 무대가 만들어지며, 그렇다고 언제 막차가 끊어질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공연을 보겠다고 먼 길을 갈 수도 없다. 더구나 이젠 내 고향 서울시 성북구 일대로 다시는 귀향할 수도 없다.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 나는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젊었을 땐 몰랐지, 고향을 뜨는 건 자유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라질. 그 골목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사글세 살아?

  아, 이야기가 사천시, 옛 지명으로 해서, 삼천포로 빠졌다. 정신차리자. 아침부터 이게 뭔가.

  책의 목차를 소개하자.


  1. 넒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정의신 지음

  2. 전쟁터의 소풍. 페르난도 아라발 지음

  3. 죽음의 집. 윤영선∙윤성호 지음

  4. 피스 오브 랜드(Piece of Land). 이영은 지음 

  5. 혼마라비해(ほんま labi 해)? 공동창작


  이 가운데 번역극이 두 편 들어 있다는데, 페르난도 아라발은 내가 대학 다니면서 처음 읽어본 외국의 극작가였으며, <촛불>이란 부조리 단막극이었는데 얼마나 재미있든지 집구석에 틀어박혀 마치 내가 배우나 된 듯이 감정 팍팍 내서 소리내 읽다가 할머니(편히 쉬시기를.. 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니의 이모님)께서 날 보시더니, 요즘 얘가 먹는 게 부실하더니 드디어 환장을 하는구나, 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래 당연히 아라발은 번역극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작품일까? 그것도 알아내지 못했을 만큼 사실을 알고 보면 내가 희곡, 연극에 문외한이다. 번역극 두 편이 실렸다는 것도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머리를 읽어 보고서야 알았으니 말이지.

  첫번째 작품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가 번역극일 확률이 높다. 이 작품을 열라 읽어봐도 이게 어떻게 번역극인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다 쓰러져가는 옛 극장, 영화를 상영하던 촌 동네 극장이 멀티플렉스에 치어 이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마지막 2~3일을 그리고 있다. 이 속에 남성 동성애, 가정 내 치매 돌봄, 왕따 당하다가 자살한 학생 가족의 죄의식 등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30대 아들 조원우에게 게이 성향이 있다는 걸 고등학교 시절부터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이날 이때까지 아버지 조한수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 마음 속으로 캥겼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동성애 성향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어쨌거나 구만리 같은 앞날을 성 소수자로 살아야 하는 고등학생 아들이 가엾어서라도 한 마디 하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이게 궁금했지, 우리나라에 비해 사회적으로 일찍 성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본의 부모라면 혹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극작가 정의신. 이이가 자토이치다. 아버지가 열다섯 살에 일본으로 공부하러 떠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현지에서 일본군에 입대해 악명 높은 일본 헌병으로 복무하다가 정착해버린 재일 조선인 2세다. 아니다. 나는 자세히 모른다. 재일 조선인 2세인지, 재일교포 2세인지. 섣불리 정의신을 자토이치로 여긴 것은 마지막 다섯 번째로 실린 작품 <혼마라비해(ほんま labi 해)?>가 자토이치 문제, 일본에선 조센징이고 한국에선 쪽바리인 사람들, 북조선에서만 동포 대접을 받는, 합방 전 조선 국적자들의 정체성을 그린 작품을 읽은 영향이 크다. “혼마라비해(ほんま labi 해)?”의 혼마(ほんま)는 “진짜”, “labi”는 라트비아 말로 “행복”이라는 뜻으로 이걸 다 합해 “혼마라비해(ほんま labi 해)?”는 일본어, 라트비아어, 우리말을 합쳐서 “진짜 행복해?”의 의미다. 조선 국적의 일본 록 가수 김현규가 인기를 얻어 한 방송국에 출연해, 예정에도 없는 한일전 축구 응원과 독도에 관한 질문을 받아 당황해서 “여러분들과 같은 생각입니다.”라고 답변을 했고, 이에 한국의 네티즌들에 의해 SNS의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깜짝 놀란 김현규는 즉시 사과를 하지만 이제는 또 일본 네티즌에 의해 초토화되어 버린다. 김현규는 이후 일본인으로 귀화하고, 귀화를 하자마자 조선적(朝鮮籍) 이웃 여동생 리지숙과 함께 라트비아의 리가로 이민을 가버린다. 유럽에서 동양인이 제일 드문 곳으로.

  이렇게 재미난 희곡을, 가장 깊이 인상에 남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작품’으로 읽은 후라 당연히 정의신을 자토이치로 여겼을 것이다. 정의신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계인으로 살면서 영화와 연극 모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단다. 특히 일본에서는 중요한 연극, 영화 관련한 상을 휩쓸다시피 한 극작가,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등을 겸한다고.


  페르난도 아라발의 작품 <전쟁터의 소풍>은 당연히 우리나라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과감한 연출을 했겠지만, 여전히 그의 특징인 부조리극의 모습을 했을 터이다. 이 책은 2020년 5월 15일에 초판 발행했고, 2020년 서울연극제는 5월 23일에 시작했다. 그러니 책에 실린 희곡(들)은 연극제에 올린 연극의 대본이 아니고, 대본 전 소위 ‘오리지널’ 희곡이다. 여기에 드라마터지의 해석과 연출의 변형, 배우의 연기가 들어가야 연극이 된다는 것을 독자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부조리극은 연출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의미에서)왜곡이 가능하다. 즉, 희곡을 읽는 독자의 상상 속에서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지면 그것이 정답이라는 뜻.

  아라발은 스페인 사람이다. 필리페 2세 이후에 스페인은 세계 전쟁사에서 주로, 당시엔 미개인이라 일컫던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전쟁에서만 승리했지, 정식으로 원색의 유니폼을 입은 다른 유럽 국가나 겁 없이 미국과 싸웠다 하면 여지없이 쌍코피만 터지고 돌아왔다.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전쟁터도 양쪽 군대가 다 원색의 군복을 입은 채 싸우고 있었으니 틀림없이 또 한 번 스페인 패전의 역사를 쓴 전쟁터 한 구석일 것이다.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출연자 칼은 느긋하게 바위 위에 앉아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고, 주인공 자뽀는 바위 뒤에서 고개를 박고 하늘을 향해 총을 갈기기만 한다. 이 와중에 자뽀의 부모 떼빵 씨와 떼빵 부인이 빵과 포도주가 든 바구니를 들고 소풍을 나온다. 전쟁 구경도 할 겸해서. 떼빵 씨는 왕년의 기마 근위병 출신, 이라고 주장하며 진정한 군인이면 어쩌고저쩌고 참견을 하고, 떼빵 부인 역시 훈수를 두는데, 자뽀처럼 겁쟁이 적군 군인 제뽀가 엉겁결에 포로가 되어, 이들과 함께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 이후는 물론 알려드리지 않는다. 부조리극이니 당연히 조리있게 마감할 것이란 생각은 안 하시겠지?

  윤영선과 윤성호가 쓴 <죽음의 집>은 자신이 현재 죽은 상태라고 주장하는 세 명과 살아 있는 한 명을 등장시켜 소외와 공황, 삶의 의미 같은 걸 그리고 있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운전을 하다보면 아주 가끔 극히 위험한 상황을 간신히 모면하는 일이 있다. 아니면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든지. 이런 일을 겪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돌아와 당시를 상상해보면, 혹시 그때 크게 사고가 나서 나는 이미 죽었는데, 내 의식이 사실과 관계없이 여기까지 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나? 나는 그런 적 있다. 그래서 이 희곡의 주인공인 황상호가 자신이 죽은 상태라고 주장하는 바를 웬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또 모른다. 진짜 유령이 등장하는 희곡인지도.

  이영은이 쓴 <피스 오브 랜드 Piece of Land>는 예상과 달리 Piece였다. Peace인 줄 알았었다. 고향을 떠난 후 다시는 고향에 가서 살지 못할 팔자인 나는 이 희곡에 공감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땅과 아파트 투기를 해서 기득권을 선점한 인간들 이야기다. 부의 유지와 세습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는 천민자본주의의 집권자들. 전에 비슷한 희곡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어떤 것인지 찾아볼 생각은 없다.


  그간 나는 서울연극제 희곡집 보다는 희곡우체통의 작품들이 더 좋다고 해왔다. 이걸 약간 수정해야겠다. 서울연극제 희곡집은 연도에 따라, 희곡과 연극에 그리 조예가 없는 내 의견이니 결코 신뢰하지 말고 들어주시기 바라는 바, “수준의 편차가 크다.” 라고. 2019 희곡집과 비교해 2020 희곡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꽤 좋았다. 머리 속에서 배우들이 마치 자발적으로 연기하는 것 같았을 정도로. 이 정도면 극찬,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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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3-2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정말 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이때
중고샵이 있다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그래도 뭐 우리나라 사람들 희곡은 잘 읽지 않아 느긋하게 장바구니에 담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ㅎㅎ

맞아요. 저희도 이제 좀 이사를 하고 싶어도 서울을 떠날 생각하면
선뜻 용단을 내리질 못하겠더라구요. 집은 한 해 한 해 낡아가고 있는데.
우리가 어느새 이런 세상에 살고 있더라구요.ㅠ

Falstaff 2022-03-21 22:35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유난히 쎈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비싸든지 싸든지 간에 살 놈만 사는 책이란 측면에선 생각을 잘 한 거겠지만 저 같은 백수들은 정말 헌책 아니면 말입죠. ㅠㅠ

절대 서울 뜨지 마세요. 뜨면 다신 못 돌아옵니다. 나중에 은퇴하시면 전세 놓고 지방에 가서, 멀리도 말고 약간 아래로 내려가셔서 큰 아파트 하나 사시고, 차 개비하세요. 그래도 돈 남습니다. ㅋㅋㅋㅋ
 
잃어버린 환상 - 개정판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기억 속의 오노레 드 발자크는, 불문과 여학생들이 품에 안고 다니던 <고리오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발자크는 1799년에 태어난 전형적인 19세기 사람으로 청소년 시대에 그의 작품을 즐겁게 읽기는 쉽지 않다. 나도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야 <고리오 영감>을 통해 처음 읽어봤다. 갓 청년기에 접어든 젊은이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중년에 접어들어 다시 읽어보니 세월이 흘러 삶에 녹이 끼어서 그랬겠지만, 고리오 영감의 마음을 실감하게 되면서 발자크가 왜 자신의 작품을 La Comédie humaine, “인간희극” 또는 “인간극”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이제 여덟 번째 발자크로 <잃어버린 환상>을 골라 읽었다. 작가로서는 의례적으로 7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집필했는데, 그의 인간극 시리즈가 무려 백 편이 넘는다고 하니 보통 몇 달 만에 한 편의 작품을 써내는 작가의 입장에선 많은 노력을 기울인 역작이라 하겠다. 그의 인간극은 풍속, 철학, 분석 연구, 이렇게 세 가지로 크게 구분한다고 하는데, <잃어버린 환상>은 아직까지 읽어본 그의 작품 가운데 적어도 풍속 연구에 관해서는 가히 대표적이라 할 만하다.

  풍속 연구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만만하지는 않다. 서울대출판부에서 나오는 책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빽빽한 조판에 본문만 761쪽에 달하는, 발자크 작품으로 드물게 긴 분량이며, 현대 작품에선 거의 시도하지 않는 세밀한 주변환경, 인물의 얼굴과 외모와 복장, 방안의 가구 배치와 모습, 당시 특정 계급이나 직업에서 볼 수 있던 특징 같은 것을 장황할 정도로 묘사하고 있어서 독자를 확 질리게도 만든다. 마음먹고 발자크의 장황한 묘사를 감상할 수만 있으면 이 발자크 표 세밀 묘사의 맛을 음미하고, 음미 수준을 넘어 감탄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한 두 번이어야지 장황 묘사가 무수하게 반복되는 바람에 책을 덮고 동네 한 바퀴 산보를 다녀와야 하는 일도 번번히 생긴다. 나도 본문만 겨우 760쪽 분량을 읽느라고 나흘을 가져다 바쳤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괜찮았다. 발자크의 세밀 묘사는 면역도 되지 않아 전에 읽은 책들의 장황함에 이미 빠져보았음에도, <잃어버린 환상> 역시 읽기 시작한 첫날이 가장 힘들었다. 점점 익숙해져 사흘, 나흘째는 거의 부담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이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거의 최고 수준의 풍자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3부로 구성된 작품의 1부와 3부는 프랑스 샤랑트 주의 주도인 앙굴렘을, 절반 분량의 2부는 파리를 무대로 한다. 주요 등장인물은 거의 다 귀족, 부르주아, 상공인이나 몰락 귀족 출신의 교육 잘 받은 자제 등이다. 1부에서는 시골의 상류계급. 우리말로 하면 향반들의 허위와 속물성이 독자의 실소를 유발하고, 2부는 프랑스의 중앙, 파리 귀족과 부르주아의 의식을 깊게 침윤해버린 자본주의라는 바이러스의 추악한 날것을, 3부에서도 지방까지 파고든 돈의, 돈 만을 위한 계략과 배신 등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이 속에 당연히 연애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진실한 사랑 가운데 장미의 가시처럼 치명적 배신도 MSG처럼 첨가되어 있고, 허영과 몰락과 배금주의적 예술가들 속에서도 진지하게 자유와 예술을 탐구하는 파당도 존재한다. 이 파당 속에는 나중에 한 권의 단행본으로 등장하는 루이 랑베르도 가담한다. 한 작품에 등장했다가 후속작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이 발자크의 “인간극”에서는 흔한 일이기는 하다.


  이야기는 글자를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 앙굴렘의 수습 인쇄공이었던 제롬 니콜라 세샤르 씨로부터 시작한다. 18세기부터 인쇄공으로 일했던 세샤르 씨는 인쇄소 주인 루조 씨가 아이 없이 미망인만 두고 죽는 바람에 사업장을 넘겨받은 세샤르는 직공들에게 엄한 주인으로 변하면서 1793년, 쉰 살에 결혼해 슬하에 아들을 하나 생산한다. 이후 홀아비가 되고, 아들을 앙굴렘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파리에 유학을 보내 고급 인쇄술을 배우게 하지만,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종종 그렇듯이 아들 다비드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조금도 하지 않아서, 다비드는 파리 굴지의 디도 인쇄소에서 일을 하며 학업을 마친다. 이미 나이가 든 세샤르 씨는 다비드가 졸업을 하자마자 앙굴렘으로 불러들여 아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덤터기를 씌우고 자신의 사업체를 인수하게 한다. 자신은 앙굴렘에서 40리 거리에 있는 마을 마르사크의 포도원에 정착해 늘 포도주에 취해 있을 요량이다. 그는 정말로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숨이 넘어갈 때까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 다비드에게 한 푼의 도움도 주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아비도 있다.

  그런데 다비드가 인쇄소를 잘 운영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상술에 밝으면 애초에 소설이 되지도 않았겠지. 이때 나타나는 앙굴렘 고등학교 1년 후배가 있으니 앙굴렘에서 약국을 경영하다가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거덜난 집안의 외아들, 놀라운 미모의 청년 뤼시앙 샤르동. 고등학교 다니던 시기에는 다비드가 1년 전에 그랬듯이 아무도 도전하지 못하는 월등한 전교 1등의 왕좌를 즐겼지만 이젠 몰락한 귀족 출신의 어머니는 신분을 숨긴 채 주로 부잣집 신부들을 위한 산파를 하고, 어여쁜 여동생 에브는 고급의류 세탁소 감독으로 일하는 집의 유일한 실업자다. 여기서 독자가 잘 파악을 했으면 좋겠다. 다비드는 뤼시앙을 보자마자 필요도 없는 월 40 프랑의 인쇄감독으로 그를 채용해 극단의 절망에서 구해주는데, 단지 고등학교 1년 후배를 위한 측은지심에 그랬을까, 아니면 나중에 자신의 아내가 되는 에브에게 마음이 있어 그랬을까? 발자크는 다비드의 품성을 매우 선하게 그리고 있어 그의 의도는 측은지심의 발로였겠지만, 그렇게 보려고 하면 다비드의 헌신이 너무 과하다.

  하여간 일을 하다가 하루는 앙굴렘 귀족 사교계에서 가장 큰 별의 위치에 있는 여주인공 바르즈통 부인이 집사를 보내 사교계 회원의 잠업에 관한 논문을 인쇄해오라고 주문하는 바람에 앙굴렘에서 거의 최고 수준으로 머리 좋고, 확실하게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는 뤼시앙이 바르즈통 부인을 만나는 영광을 맞는다. 이때 뤼시앙이 21세, 예술과 문학을 사랑하는 바르즈통 부인은 36세. 남편 바르즈통 씨는 연수입 2만 리브르 미만이지만 구도시 6대 부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58세의 늙은이로 1부에서는 젊은 30대와 결투에서 승리하고 3부에 들어가면 자연사한다. 왜 바르즈통 씨가 30대의 스타니슬라스 씨와 결투를 하게 되느냐 하면, 1부의 뒷부분에 가서 부인을 향한 사랑에 불타오르던 뤼시앙이 바르즈통 부인의 발 아래 꿇어앉아 부인의 무릎을 부여잡은 채 사랑한다고, 당신 없으면 이 목숨은 한 시라도 숨쉴 이유가 없으니 함께 도망하자고 눈물로 호소하는 장면을, 천하의 협잡꾼 식스트 뒤 샤틀레가 바람을 넣어준 수다쟁이 스타니슬라스 씨가 딱 목격을 해, 단 하루만에 바르즈통 부인과 뤼시앙이 뜨거운 사이라고 앙굴렘 사교계 뿐만 아니라 시민 전체가 다 오해하게 소문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연인은 유부녀와 숫총각 사이로 입술 한 번 마주친 적이 없으나, 일단 이렇게 소문이 난다. 이를 수습하기 위하여 나이든 남편으로 하여금 명예를 위하여 결투를 하게 만들어, 총알이 스타니슬라스의 목을 관통하는 바람에 그는 평생 고개를 45도 정도 비틀고 사는 신세가 된다. 추문에 이은 결투 스캔들로 그 고장에서 살 수 없게 된 바르즈통 부인은 남편을 백작인 친정아버지에게 보내기로 하고 홀로 파리로 향한다. 바로 이 날, 뤼시앙은 부인이 보낸 쪽지를 받는다. 자정에 먼저 조금 떨어진 역점에 가서 자신을 기다려 함께 파리로 가자는 제의. 원래 그런 거다. 딱히 생각은 없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한 번 발생하면 갑자기 파박, 불꽃이 튀는 것. 그게 사랑이다. 그래 뤼시앙은 이미 결혼 날짜를 잡은 다비드와 에브,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수중에 있는 모든 돈과 다비드가 발행한 2천프랑짜리 약속어음을 받아 파리로 향한다. 이 2천프랑 때문에 동생 부부는 시작부터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게 되는 것 따위는 애초 팔자가 일해서 벌어먹거나 손에 굳은 살 박힐 짓은 하지 않기로 운명지어진 뤼시앙에게는 촌각의 걱정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야밤에 사랑 하나만 싣고 파리로 향하는 낡은 마차의 뒤를 부인의 아름다움에 눈이 먼 식스트 뒤 샤틀레가 쫓으며 1부는 막을 내린다.


  여기까지가 1부 ”두 시인”이다. 2부는 “파리에 온 지방 위인”인데 여기서 말한 위인은 뤼시앙 샤르동을 말한다. 생각을 해보시라. 천생 귀족으로 태어나 평민은 사람 같이 여기지도 않고 살아온 부인께서 산파 일을 하는 엄마를 둔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쳐도, 정식 애인 또는 남편으로 둘 수 있는지. 시골인 앙굴렘에서는 혹시 모르지만 프랑스 말고 세계의 수도인 파리에서 자신마저 촌 귀족 티가 날 정도로 최고 정상의 대 귀족들이 넘쳐나는데 한낱 약제사와 산파의 아들 뤼시앙을 자유롭게 소개나마 할 수 있는지를. 이 사나운 정글의 도시 파리에 자신이 쓴 소설 <샤를 9세의 궁수>와 시집 <데이지 꽃>을 들고 도착해 온갖 영광과 혼돈과 사랑과 파멸을 경험하는 철없는 젊은이 뤼시앙을 보면서, 독자는 쉼없이 한숨을 쉬고 안타까워하고, 옆에 있으면 한 번 귀퉁백이를 쥐어박고 싶게 되리라

  정말 재미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발자크 표 상세 묘사가 장황하고 잦아서 그렇지 그것만 통과할 수 있으면 19세기 프랑스 소설의 진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히 디킨스를 능가하는 최고의 풍자 소설이다. 확실히 19세기는 프랑스 소설의 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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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3-18 05: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워 보이는 작품이군요. 찜해듭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일찍 일어나세요? 역시 늙으면 잠이 앖더던데 :p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3-18 06:0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 이젠 시간에 관계없이 졸리면 자고, 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coolcat329 2022-03-18 0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저 이 책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발자크 팬들이 이 책 가장 좋아하더라구요.
근데 책이 좀 안 예쁘고 오래되서 어디선가 좀 근사하게 나오면 꼭 사야지했는데 역시 골드문트님도 강추군요. 맞아요. 19세기는 프랑스 소설의 시대입니다~♡

Falstaff 2022-03-18 08:46   좋아요 2 | URL
아, 발자크 팬들이 좋아하는 책이군요!
전 <환멸>을 기대하고 있는데 느므느므 비싸서 말입죠. 민희식 선생 번역이라 좋을 거 같습니다만 열 권짜리에 무려 27만원. 으으으.....

다락방 2022-03-18 08: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ㅋㅋ

이 리뷰 읽으니까 오래전에 본 드라마 <가십걸> 생각이 나네요. 제가 채널 돌리다 우연히 보게된건데요, 고등학교 여자 선생님이 고등학생 남자 제자와 부적절한 관계라고 소문이 나요. 아시다시피 그런데 교사가 학생하고 부적절한 관계가 되면 안되니까 학교에선 그 선생을 해고하고요. 그런데 그 둘은 전혀 그런 사이가 아니었거든요. 저도 이 드라마를 원래 보던 사람이 아니고 처음부터 본것도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음모나 모략으로 누명을 씌웠던 것 같아요. 여하튼 교사는 너무 억울한겁니다. 자기는 진짜 아닌데 남고생과 부적절한 관계라 소문나 학교를 관두게 되니.
그러자 이 선생님이 학교에서 짐을 싸가지고 학교를 나오고, 그후에는 이 남고생을 찾아가지요. 어차피 부적절한 관계로 소문난거 진짜 부적절해지자고... 그러면서 남고생 집의 문이 닫히는..

제가 그 때 너무 충격을 받아가지고. 이게 뭐여? 했는데, 오늘 골드문트 님의 리뷰를 읽으니 똭 그 드라마의 그 장면이 생각나네요. 크-

Falstaff 2022-03-18 08:56   좋아요 6 | URL
아, 그런 드라마가 다 있군요.
근데 사실 그런 경우 당하면 정말 억울할 거 같아요. 평소 속으로 연모하고 있었다면 오히려 정말로 불이 붙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ㅋㅋㅋ
그래서 발자크, 이 할배가 죽여주는 것입지요. 같은 내용이라도 에밀 졸라가 썼으면 적어도 다섯 명은 칼부림으로 죽어 자빠졌을 소설입니다. 사실 차마 쓸 수 없어 그냥 넘어갔는데, 저는 결말이 좋았습니다. 정말 인간극 자체입니다.

다락방 2022-03-18 0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 32,000 원에 800 페이지네요?!?!

Falstaff 2022-03-18 09:01   좋아요 2 | URL
게다가 할인율 0%. 빽빽한 글자가 맘에 드는 편집입니다. 진도 무척 안 나가지요. ㅋㅋ

저는 지금 발자크의 <환멸>을 주목하고 있습니다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로 작정했습지요.

coolcat329 2022-03-18 12: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환멸 10권 27만원이네요!
와 이 책은 도서관에도 없을거 같아요. 있어도 골드문트님이 처음이자 마지막 독자가 아닐까요?

Falstaff 2022-03-18 15:48   좋아요 1 | URL
ㅎㅎㅎ 먼저 있는지 없는지 알아봐야지요. 책꽂이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있어서 도서관은 여름이나 되어야 갈 거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03-18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발자크 읽을 예정입니다.
빠른 시간 내에...

Falstaff 2022-03-18 15:49   좋아요 2 | URL
재미있는 걸로 고르셔야 할 텐데요. 발자크, 여차하면 골 흔들리는 작품들도 도처에 숨어 있어서요. 그런 거 걸리면 ㅎㅎㅎ 하기는, 인생은 복불복입니다. ^^;;;

수다맨 2022-03-19 1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노레 드 발자크의 작품 중에서 아무래도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고리오 영감˝일 것입니다.
하지만 발자크의 최고작이자, 대가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은 역시나 ˝잃어버린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외로 이 작품을 모르거나, 알아도 언급하지 않는 분들이 상당하던데 이렇게 독후감까지 쓰시면서 상찬하는 분을 만나면 저절로 반가움이 듭니다.

Falstaff 2022-03-19 21:23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을 ˝구경˝하면서 책 값이 비싸구나, 읽기를 계속 미루어왔다가 겨우 읽었습니다. 서울대 출판부의 출간은 고맙지만 독자들의 접근성 측면에선 좀 아쉽습니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책값은 언제나 무지하게 중요하거든요.
그래도 늦게나마 읽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별 거 없는 독후감을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마울 뿐입니다.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알라딘 리커버 한정판)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1986년 경기도 성남생. 서울여대 중문과 졸,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박사 과정 수료. 스물일곱 살 때 창비신인시인상 수상하면서 데뷔. 서른 살이던 2015년에 낸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로 다음 해 신동엽 문학상을 받으면서 서른, 잔치를 시작했다. 슬픔은 혼자 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기쁨 역시 혼자 오지 않는 법이라 지금은 30대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내 극작과의 서사창작 전공과정에서 시를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가끔 이런 대박도 있다.

  이이가 신동엽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지만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 처음 읽는 시집이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라고 하는 백 쪽 내외의 아주 얇은 시집 《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을 포함해 세 권의 시집을 상재했고, 이 시집이 현재까지는 마지막, 세번째 것이다. 요새 시인들의 경향 또는 유행에 맞춰 잘 팔리는 에세이 집을 시집보다 조금 많은 권 수로 시장에 내놓고 있는데, 하여간 나는 시인이 쓴 에세이 집에 취미가 없어서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읽을 일은 없을 거 같다.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 관련 교육기관인 한예종에서 후학에게 시를 가르치는 30대 시인이니, 이이는 다른 시인들만큼, 아니다, 다른 시인들보다 훨씬 더 자주, 그리고 깊게, 과연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서 시인이 탐색하고 있는 몇 가지 주제 가운데 역시 시와 시인의 노래를 사색하는 작품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오늘 독후감은 이 주제에 관해 집중해보려 한다.

  시집의 2부, 77쪽에 <시>라는 제목을 단 시가 있다. 이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실은 흰 접시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흰 접시의 테두리만 만지작거린다


  너는 참 하얗구나

  너는 참 둥글구나

  내게 없는 부분만 크게 보면서


  흰 접시 위에 자꾸만 무언가를 올린다

  완두콩의 연두

  딸기의 붉음

  갓 구운 빵의 완벽과 무구를


  그렇게 흰 접시를 잊는다 도망친다 (후략)



  이 시에서 안희연이 말하고 싶었던 건 사실 1연에서 끝났다고 봐도 좋겠다. 흰 접시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테두리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거. 이게 안희연이 생각하는 자신의 시쓰기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있어서 맨 처음으로 고백을 하고 싶지만 고백할 마음을 먹는 데만 하루 이틀 사흘이 가고, 뒤돌아 서서 말을 할지 마주보고 말을 할지 고민하는 데만 또 일주일 이주일이 걸렸다는 송창식의 노래 가사하고 비슷? 아, 그건 아닌 거 같다. 접시에 대해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있으나 그게 뭔지 몰라서 완두, 딸기, 갓 구운 빵을 올려보고 별 짓을 하건만 결국 테두리만 한 번 만져보고 이내 접시를 잊고 후딱 도망쳐버린 흔적, 그게 자기가 쓴 시라는 얘기. 그런데 이런 시도, 아무리 자신이 서른 살에 큰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라고 해도 쓰고 싶으면 아무 때나 후딱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독 시가 쓰고 싶은 날이 있다. 그 날을 <영혼 없이>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딘들

  어디에나

  어디서도


  그런 말들을 조약돌처럼 가지고 노는 하루가 있다


  영혼 없이

  시를 쓰고 싶은 날 (후략)



  뮤즈가 깃들지 않으면 시는 쓸 수 없다고, 저 옛날의 사포 같았으면 그렇게 얘기했겠지만 이제 시인은 땅에 두 발을 딛고 텅 빈 하늘에 대고 자기의 노래를 부른다. 시인의 희망은;



  그가 걸어오네

  양손 가득 풍선을 들고


  “저기 풍선 장수가 나타났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몰려들지만

  그가 풍선을 파는 법은 없네


  “이 황금과 맞바꿉시다”

  “원한다면 내 집이라도 내어드리리다”

  그의 풍선은 너무 아름다워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그는 오직 노래만 한다네

  텅 빈 하늘을 향해


  죽음의 천사여 나는 당신이

  이 땅에서 거두어가지 못한 것을

  쥐고 있다네 (<풍선 장수의 노래> 부분. 후략)



  그런데 이 시보다 더 기능적 의미로 시인에 관한 것이 있으니, 이번에도 장수는 장순데, 생선 장수다. 안희연은 <생선 장수의 노래>에서 시 쓰는 작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손을 거쳐간 펄떡임을 기억합니다

  먼바다의 이야기를 싣고

  뜬눈으로 도착한 손님들

  이제 나는 아무 동요 없이 그들의 목을 내려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발골의 귀재라 부릅니다

  움푹 팬 도마나 휘어진 칼을 자랑처럼 내보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피 묻은 장화를 보려 하는 이는 없어요

  내가 더이상 누구의 눈도 들여다보지 않는 것처럼


  한때는 수천의 심장을 따로 모아 기도를 올린 적도 있지요

  다음 생엔 부디 너 자신으로 태어나지 말아라

  내가 주는 것이 안식이라는 믿음

  시간은 무자비하게 나를 단련시켰고


  어쩌면 자비였을 수도 있겠군요

  적어도 영혼이라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후략)



  내 손을 거쳐간 펄떡임이라고 했으니 생선 장수도 보통 생선 장수가 아니고 펄펄 뛰는 살아있는 것을 그대로 토막내 팔던 노련한 생선 장수다. 지금에 도달하기 위해 서른 댓 살 남짓의 생선장수는 도마가 움푹 파이고 칼이 닳아 휘어질 정도로 난도질을 했다는 은근한 내세움. 그리하여 독자, 즉 생선 사 가는 아저씨, 아줌마들은 자기 칼질이 어떤지만 보지말고 피 묻은 장화도 좀 봐주었으면 하는 희망사항까지 슬쩍 흘려놨다. 자신이 쓰는 시의 대상물을 향해 다음 생엔 자신으로 태어나지 말라고, 즉, 자신을 시화詩化하는 시인을 추호도 원망하지 말라는, 마치 중원의 고수 같이 선언하기도 한다. 자신의 칼질이 어쩌면 자비였을 수도 있으니까. 좋다. 시인이 이만한 기개도 없으면 되겠는가 말이지.

  이것 말고도, “할아버지께서 노래를 찾아오라고 하셨다”로 시작하는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등 여러 편이 있지만 이런 시 한 번 읽어보십사, 하면서 독후감을 마친다.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



  죽은

  밟힌


  눈만 그리면 완성될 그림을

  수천장 가지고 있는 사람


  서랍을 열면 황금빛 새가

  죽은 듯이 잠들어 있고


  모두가 새의 황금빛을 이야기할 때

  죽은 듯이라는 말을 생각하느라 하루를 다 쓰는 사람


  내게는 그런 사람이 많다


  창밖이 너무 환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너머의 너머를 바라보느라 진흙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사람


  씨앗이라고 생각했다면 영원히 캄캄한

  비밀이라고 믿어왔다면 등 뒤에서 나타나 당신을 할퀴는


  소란스러운 기억이 얼굴을 만든다

  파묻힌 발을 쓰다듬으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착을 모르는 시계 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질

  이야기 이야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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