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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서울연극제 희곡집
정의신 외 지음 / 서울연극협회 / 2020년 5월
평점 :
2020년 서울연극제에는 모두 여덟 작품이 공식 선정되었는데 이 가운데 번역극 2편, 창작극 3편을 실어 희곡집을 냈다. 나머지 세 편은 저작권 사정으로 싣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정가가 2만원. 다섯 편의 희곡만 전문가 해설 없이 달랑 수록하고 2만원이면 조금 비싸지 않나 싶다. 공연 다섯 번을 본 것과 다름없는 책의 가격 2만원을 비싸다 한다고 뭐라하지 마시라. 가격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이 우연히 알라딘 헌책방에서 눈에 띄어 재빨리 주웠지 아니면 살 좀 떨릴 뻔했다.
나는 연극 애호가가 아니다. 희곡집을 읽는다고 해서 연극 구경을 자주 다니는 건 아니다. 물론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거의 연극을 공연하지 않고, 공연을 해도 나의 관심과는 관계없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들을 위해서만 무대가 만들어지며, 그렇다고 언제 막차가 끊어질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공연을 보겠다고 먼 길을 갈 수도 없다. 더구나 이젠 내 고향 서울시 성북구 일대로 다시는 귀향할 수도 없다.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라 나는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젊었을 땐 몰랐지, 고향을 뜨는 건 자유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라질. 그 골목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사글세 살아?
아, 이야기가 사천시, 옛 지명으로 해서, 삼천포로 빠졌다. 정신차리자. 아침부터 이게 뭔가.
책의 목차를 소개하자.
1. 넒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정의신 지음
2. 전쟁터의 소풍. 페르난도 아라발 지음
3. 죽음의 집. 윤영선∙윤성호 지음
4. 피스 오브 랜드(Piece of Land). 이영은 지음
5. 혼마라비해(ほんま labi 해)? 공동창작
이 가운데 번역극이 두 편 들어 있다는데, 페르난도 아라발은 내가 대학 다니면서 처음 읽어본 외국의 극작가였으며, <촛불>이란 부조리 단막극이었는데 얼마나 재미있든지 집구석에 틀어박혀 마치 내가 배우나 된 듯이 감정 팍팍 내서 소리내 읽다가 할머니(편히 쉬시기를.. 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니의 이모님)께서 날 보시더니, 요즘 얘가 먹는 게 부실하더니 드디어 환장을 하는구나, 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래 당연히 아라발은 번역극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작품일까? 그것도 알아내지 못했을 만큼 사실을 알고 보면 내가 희곡, 연극에 문외한이다. 번역극 두 편이 실렸다는 것도 독후감을 쓰기 위해 책머리를 읽어 보고서야 알았으니 말이지.
첫번째 작품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가 번역극일 확률이 높다. 이 작품을 열라 읽어봐도 이게 어떻게 번역극인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다 쓰러져가는 옛 극장, 영화를 상영하던 촌 동네 극장이 멀티플렉스에 치어 이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마지막 2~3일을 그리고 있다. 이 속에 남성 동성애, 가정 내 치매 돌봄, 왕따 당하다가 자살한 학생 가족의 죄의식 등을 그리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30대 아들 조원우에게 게이 성향이 있다는 걸 고등학교 시절부터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이날 이때까지 아버지 조한수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 마음 속으로 캥겼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동성애 성향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어쨌거나 구만리 같은 앞날을 성 소수자로 살아야 하는 고등학생 아들이 가엾어서라도 한 마디 하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이게 궁금했지, 우리나라에 비해 사회적으로 일찍 성 소수자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본의 부모라면 혹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극작가 정의신. 이이가 자토이치다. 아버지가 열다섯 살에 일본으로 공부하러 떠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현지에서 일본군에 입대해 악명 높은 일본 헌병으로 복무하다가 정착해버린 재일 조선인 2세다. 아니다. 나는 자세히 모른다. 재일 조선인 2세인지, 재일교포 2세인지. 섣불리 정의신을 자토이치로 여긴 것은 마지막 다섯 번째로 실린 작품 <혼마라비해(ほんま labi 해)?>가 자토이치 문제, 일본에선 조센징이고 한국에선 쪽바리인 사람들, 북조선에서만 동포 대접을 받는, 합방 전 조선 국적자들의 정체성을 그린 작품을 읽은 영향이 크다. “혼마라비해(ほんま labi 해)?”의 혼마(ほんま)는 “진짜”, “labi”는 라트비아 말로 “행복”이라는 뜻으로 이걸 다 합해 “혼마라비해(ほんま labi 해)?”는 일본어, 라트비아어, 우리말을 합쳐서 “진짜 행복해?”의 의미다. 조선 국적의 일본 록 가수 김현규가 인기를 얻어 한 방송국에 출연해, 예정에도 없는 한일전 축구 응원과 독도에 관한 질문을 받아 당황해서 “여러분들과 같은 생각입니다.”라고 답변을 했고, 이에 한국의 네티즌들에 의해 SNS의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깜짝 놀란 김현규는 즉시 사과를 하지만 이제는 또 일본 네티즌에 의해 초토화되어 버린다. 김현규는 이후 일본인으로 귀화하고, 귀화를 하자마자 조선적(朝鮮籍) 이웃 여동생 리지숙과 함께 라트비아의 리가로 이민을 가버린다. 유럽에서 동양인이 제일 드문 곳으로.
이렇게 재미난 희곡을, 가장 깊이 인상에 남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작품’으로 읽은 후라 당연히 정의신을 자토이치로 여겼을 것이다. 정의신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경계인으로 살면서 영화와 연극 모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단다. 특히 일본에서는 중요한 연극, 영화 관련한 상을 휩쓸다시피 한 극작가,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등을 겸한다고.
페르난도 아라발의 작품 <전쟁터의 소풍>은 당연히 우리나라 극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과감한 연출을 했겠지만, 여전히 그의 특징인 부조리극의 모습을 했을 터이다. 이 책은 2020년 5월 15일에 초판 발행했고, 2020년 서울연극제는 5월 23일에 시작했다. 그러니 책에 실린 희곡(들)은 연극제에 올린 연극의 대본이 아니고, 대본 전 소위 ‘오리지널’ 희곡이다. 여기에 드라마터지의 해석과 연출의 변형, 배우의 연기가 들어가야 연극이 된다는 것을 독자는 처음부터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부조리극은 연출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의미에서)왜곡이 가능하다. 즉, 희곡을 읽는 독자의 상상 속에서 새로운 무대가 만들어지면 그것이 정답이라는 뜻.
아라발은 스페인 사람이다. 필리페 2세 이후에 스페인은 세계 전쟁사에서 주로, 당시엔 미개인이라 일컫던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전쟁에서만 승리했지, 정식으로 원색의 유니폼을 입은 다른 유럽 국가나 겁 없이 미국과 싸웠다 하면 여지없이 쌍코피만 터지고 돌아왔다.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전쟁터도 양쪽 군대가 다 원색의 군복을 입은 채 싸우고 있었으니 틀림없이 또 한 번 스페인 패전의 역사를 쓴 전쟁터 한 구석일 것이다.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출연자 칼은 느긋하게 바위 위에 앉아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고, 주인공 자뽀는 바위 뒤에서 고개를 박고 하늘을 향해 총을 갈기기만 한다. 이 와중에 자뽀의 부모 떼빵 씨와 떼빵 부인이 빵과 포도주가 든 바구니를 들고 소풍을 나온다. 전쟁 구경도 할 겸해서. 떼빵 씨는 왕년의 기마 근위병 출신, 이라고 주장하며 진정한 군인이면 어쩌고저쩌고 참견을 하고, 떼빵 부인 역시 훈수를 두는데, 자뽀처럼 겁쟁이 적군 군인 제뽀가 엉겁결에 포로가 되어, 이들과 함께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 이후는 물론 알려드리지 않는다. 부조리극이니 당연히 조리있게 마감할 것이란 생각은 안 하시겠지?
윤영선과 윤성호가 쓴 <죽음의 집>은 자신이 현재 죽은 상태라고 주장하는 세 명과 살아 있는 한 명을 등장시켜 소외와 공황, 삶의 의미 같은 걸 그리고 있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운전을 하다보면 아주 가끔 극히 위험한 상황을 간신히 모면하는 일이 있다. 아니면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든지. 이런 일을 겪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돌아와 당시를 상상해보면, 혹시 그때 크게 사고가 나서 나는 이미 죽었는데, 내 의식이 사실과 관계없이 여기까지 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나? 나는 그런 적 있다. 그래서 이 희곡의 주인공인 황상호가 자신이 죽은 상태라고 주장하는 바를 웬만큼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또 모른다. 진짜 유령이 등장하는 희곡인지도.
이영은이 쓴 <피스 오브 랜드 Piece of Land>는 예상과 달리 Piece였다. Peace인 줄 알았었다. 고향을 떠난 후 다시는 고향에 가서 살지 못할 팔자인 나는 이 희곡에 공감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땅과 아파트 투기를 해서 기득권을 선점한 인간들 이야기다. 부의 유지와 세습에 관해서만 관심이 있는 천민자본주의의 집권자들. 전에 비슷한 희곡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어떤 것인지 찾아볼 생각은 없다.
그간 나는 서울연극제 희곡집 보다는 희곡우체통의 작품들이 더 좋다고 해왔다. 이걸 약간 수정해야겠다. 서울연극제 희곡집은 연도에 따라, 희곡과 연극에 그리 조예가 없는 내 의견이니 결코 신뢰하지 말고 들어주시기 바라는 바, “수준의 편차가 크다.” 라고. 2019 희곡집과 비교해 2020 희곡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꽤 좋았다. 머리 속에서 배우들이 마치 자발적으로 연기하는 것 같았을 정도로. 이 정도면 극찬,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