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밍고 섬의 약혼 서문문고 17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음, 박종서 옮김 / 서문당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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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시절을 잘못 만나 하필이면 괴테와 실러의 전성기 때 작품활동을 하는 바람에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거나 공연하지도 못한 불운한 (극)작가 클라이스트. 군인의 아들로 자신도 근위대 연대에 들어갔다가 잠시 제대해 수학과 물리 공부를 했으나 뭔 병이 있었든지 요양을 위하여 산천초목 경계 좋은 뷔르츠부르크에 갔다가 산세 수려함에 반해 오래 억눌렀던 창작의 불꽃을 피운 작가. 그러면 뭐 하나. 아리따운 약혼녀, 장군의 딸인 미네 아가씨한테 파혼도 당하고 나폴레옹은 조국 땅을 초토화시켜, 군인 가계의 형제 가운데 한 명인 클라이스트는 몸과 마음이 번다했던 19세기 초엽. 이때 한 모임에서 재색을 겸비했지만 병이 깊어 늘 우울한 유부녀 헨리에테를 알게 되고 1911년 포츠담에서 헨리에테와 함께 모습을 감춘 클라이스트는 호숫가에서 이미 숨이 넘어간 연인의 시신 옆에서 자신의 관자놀이를 향해 방아쇠를 당김으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니 당년 34세. 그는 몰랐지. 불과 1년만 기다리면 1812년, 프랑스 군은 러시아에서 수십만 명이 굶어 죽고 얼어 죽는 큰 패배를 당해 14년에는 부오나파르테가 엘바 섬으로 유배를 가야 할 예정인 건. 그래도 백년이 더 지나 20세기 최고의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프란츠 카프카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라고 선언해주니 지하에서라도 조금의 기쁨을 누리기를.

  대개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라고 하면 창비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미하엘 콜하스>를 연상할 듯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클라이스트는 극작가로 더 유명한 것 같다. 책방을 뒤져보면 희곡 작품이 소설보다 단연 많다. 하지만 당대의 독일어 권 지역에선 거의 신격화 수준이었던 괴테한테 찌그러져 별로 공연도 해보지 못했다 하니 거 참. <깨진 항아리> 같은 건 꽤 괜찮은 데 말이지. 내가 읽은 클라이스트는 전부 다 유럽, 독일 지역을 무대로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도 이번에 알았지만, “성 도밍고 섬”이 어딘가 하면, 서인도 제도의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는 섬이다. “산토도밍고”는 아시다시피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이다. 그러나 작품의 무대는 도미니카보다 아이티 쪽.


  모두 세 편의 중단편을 실은 작품집이다. 이 중에서 표제작품 <성 도밍고 섬의 약혼>에 대해서.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산토도밍고 섬의 한 시절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섬을 차지한 프랑스의 큰 고민 하나가 점령한 이후에 원주민들을 노예 이하, 짐승 수준의 노동을 강요하고 동시에 픽션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폭력과 학대와 학살을 서슴지 않아, 사실상 아이티 뿐만 아니라 서인도제도의 원주민은 멸종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가동시키려 하는데 농장일을 할 일손이 있어야지. 그리하여 당시 서인도제도를 점령한 영국, 프랑스, 스페인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대규모로 노예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 버릇 개 주지 못한 유럽 백인들은 과거 원주민한테 했던 정도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폭력과 학대와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과 노동, 그리고 성폭력을 저질러 흑인들의 불만이 꼭대기까지 쳐 올라왔다. 고통이 극단까지 치달으면 무는 법이다. 세상의 모든 민란과 마찬가지 경우로 서인도제도의 거의 모든 섬에서도 흑인에 의한 폭동이 자주 발생했다. 이들이 프랑스인, 영국인, 스페인인을 가릴 수 있지 못하여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는 표식인, 흰 피부를 가진 종족이 보이면 가차없이 죽여 없앴다. 마리즈 콩데의 소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를 비롯해 숱한 소설 속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19세기 초, 흑인들이 백인을 학살한 산토도밍고 섬의 프랑스 영토 포르토프랭스의 기욤 폰 비누브 씨 농장. 이곳에 콩고 호앙고라는 이름의 늙은 흑인이 살았는데 아프리카 황금해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 노예선을 타고 왔다. 평소 성격이 착하고 정직한데다가 주인과 함께 쿠바 섬으로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가 불어 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주인 비누브 씨의 목숨을 건져주었다. 이 일에 감격한 주인은 당장 호앙고에게 자유를 부여했으며 집안과 농장 일체의 관리를 맡겼다. 그는 여전히 성실하고 정직해 셈이 흐트러지지 않아 더욱 호의를 품은 주인은 방대한 농토의 총 관리자로 임명하고 전처의 먼 친척뻘인 혼혈녀 바베칸을 아내로 맡게 하였다.

  호앙고가 60세가 되자 적지 않은 퇴직금을 주어 은퇴를 시키고 비누브 씨가 죽은 후에 유산의 일부로 연금도 배당하게 해주었으니 세상에 이런 주종이 없었다. 그러나 황금해변 출신의 강건한 전사의 피는 속일 수 없어서, 식민지 내 프랑스 국민회의의 경솔한 결정에 반대하는 흑인들의 복수가 농장마다 요원의 불길처럼 휘몰아치자 모든 호의와 배려에도 불구하고 비누비는 콩고 호앙고의 총구를 피할 수 없었다. 비누브 씨의 머리통은 호앙고의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이 처음으로 닿은 곳이었다. 비누브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백인들과 피신했는데 호앙고는 기어이 그 농장까지 쫓아가 불을 지르고 건물을 파괴했으며 백인들의 씨를 말려버렸다. 이제는 흑인들이 몇 명씩 단위를 이루어 백인 여행자를 습격하고, 멀리 까지 가서 집 안에 틀어박혀 숨을 죽이고 있는 백인들도 습격해 죽이는 일이 늘 발생했다. 호앙고는 백인 격멸을 위하여 아내를 닮아 피부색이 연한 열다섯 살 먹은 딸 토니까지 이 일에 끌어들였다. 구 비누브 저택이 길가에 있어서 여행하는 백인들을 콩고 호앙고의 무리가 도착할 때까지 안심시키고 방비를 느슨하게 만드는 역할이었다. 이를 위해 친엄마 바베칸은 딸 토니에게, 직접적인 교접을 제외하고 백인이 시도하는 모든 애무를 허용하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1803년 경을 무대로 한 1811년 작품이다. 흑인들에 관한 인종 의식을 지금 수준으로 기대하면 곤란할 듯하다.

  콩고 호앙고가 약탈, 학살, 강도 업무차 출장을 간 시기의 한밤. 이 집의 현관을 두드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엄마 바베칸이 나가보니 백인 남자다. 백인은 흑인 남자들이 집에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경계를 멈추지 않는다. 바베칸과 토니는 그를 집으로 끌어들여 주민등록 조사를 먼저 한다. 그랬더니 프랑스 군인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스위스인 장교. 구스타프 폰 데어리트. 포르도 항에서 내려 포르토프랭스를 향해 가는 중이란다. 흑인 군대를 거느린 데살린 장군이 포르토프랭스에 도착하기 전에 가야 하는 명령을 받았지만 어느 곳에서 흑인들의 공격을 받을 지 몰라 밤에만 이동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단다. 근데 혼자가 아니다. 점잖은 나이 많은 아저씨와 부인, 그리고 아이들 다섯, 하인 몇 명과 하녀. 다 합해 열 두어 명. 지금 1마일 떨어진 갈매기 늪 근방의 동굴에 숨어 있다고. 이들 모두 몹시 배가 고픈 상태여서 음식물을 급히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고 주문을 한다. 바베칸 노파는 마치 동정심 많은 순박한 시골 농부처럼 위장해서 구스타프를 옛 주인인 비누브 씨의 방에 들여 푹 쉬게 해주고 음식물도 아이에게 들려 갈매기 늪으로 보낸다. 그러면서 시간을 끌 속셈. 늦어도 내일 밤까지는 콩고 호앙고 일당이 도착할 테니까 그때가 되면 일은 끝난다.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구스타프에게 발 씻을 따뜻한 물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 열다섯 살 먹은 딸 토니. 얘가 문제다. 흑인들도 피부색이 진하고 옅은 차이에 따라 우월이 있는 모양이다. 토니 자신이 보기에 자기는 백인의 후예라서 지금 집에 있는 흑인들하고는 당연히 차별을 둘 만큼 다른 신분으로 착각하고 있다. 구스타프가 봐도, 원래 급박한 상황에 처하면, 마치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솔방울을 많이 다는 것처럼, 전혀 희지 않은 피부를 가지고 있는 토니가 뇌쇄적으로 어여뻐 보여 순간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 뿜어져나오기 시작한다. 토니 생각에도 조금 후, 길어도 내일 밤이 되면 또 수 십 명의 피가 튈 터이니 감자기 에스트로젠이 분비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들은, 했다. 하고 나니까, 이게 원래 그런 건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또는 사랑한다고 오해하는 감정이 폭발적으로 넘쳐난다. 가뜩이나 피곤했던 구스타프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지고, 내일 밤이 아니라 오늘 밤에 난데없이 콩고 호앙고가 들이 닥친다. 토니는 깜짝 놀라 구스타프의 방에 가보니까 노끈이 벽에 걸려 있어서 그걸 이용해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 있는 구스타프의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내버려두었으면 싸우려 들고, 그러면 여지없이 죽을 수밖에 없으니.

  이렇게 포로로 잡힌 구스타프. 그러나 늙은 삼촌과 아이들이 도착하는데, 자세하게 보면 “늙은” 삼촌의 아이들이라 해도 스무살에 육박하는 장정들이다. 폰 데어트리 집안이니 귀족 떨거지 자제들이었을 테고, 그러면 총칼 다루는데 아주 익숙할 것.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눈치를 탁 채고 오히려 콩고 호앙고 일당을 제압해버린다. 그리고 토니와 함께 구스타프가 묶여있는 이층 방에 올라가니 눈이 뒤집힌 구스타프는 묶이 손이 풀리자마자 피스톨을 들고 토니의 가슴을 쏴버린다.

  1811년의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그는 영낙없는 낭만주의자였다. 이 시기 소설 속 주인공들은 총을 심장에 맞아도 할 말은 다 하고 죽는다.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안 알려줌.


  이 작품 외에 1807년작 <칠레의 지진>과 1808년 작 <O 후작부인>이 실려 있다. 다 수준 이상의 작품이다. 다만 번역한 박종서 전 고대교수가 우리나라에 독일문학을 번역 소개한 공로가 지대한 양반이긴 하지만 생몰이 1922~1983이다. 그러니 번역하고 적어도 40년 이상이 지났다. 다른 번역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젊은 분의 경우 읽다가 조금씩 어색한 곳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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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3-12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창비세계문학에 클라이스트의 중단편 소설집 <미하엘 콜하스>가 있는데 이 책에 세 작품이 다 있어요. 한 번 찾아보시길요.

<미하엘 콜하스> 볼 때마다 그냥 지나쳤는데 어떤 분위기인데 알겠네요.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3-12 16:39   좋아요 1 | URL
앗 그렇습니까? 저도 창비 <미하엘...> 읽었는데 전혀... ㅋㅋㅋㅋ 오래 전이라서 그랬나요? -_-‘‘

coolcat329 2024-03-12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미하엘 콜하스>를 가지고 있네요! 🤣🤣

잠자냥 2024-03-12 09:28   좋아요 2 | URL
창비 <미하엘 콜하스> 엄청(?) 재미나요. 번역이 뭔가 박력 넘쳐서 전 더 재미나게 읽었는데, 번역 문장 아무튼 아직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ㅎㅎ (진짜 진짜 아니 번역을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신기& 감탄!)

coolcat329 2024-03-12 11:00   좋아요 1 | URL
오! 재미에 번역도 좋다니 사두길 잘했네요. 다음 읽을 책으로 찜!

Falstaff 2024-03-12 16:40   좋아요 0 | URL
음... 한 번 다시 읽어볼까.... 하다가, 안 그럴 거 같네요. 흑흑...

stella.K 2024-03-12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도 번역이지만 서문당 출판사가 아직도 있군요. 역자가 독일어 번역 1세대였을테니 그 공로는 인정할만 하지만 역시 혁신이 필요하긴 하겠네요. 저도 기회되면 창비걸로 읽어보겠슴다.

Falstaff 2024-03-12 16:42   좋아요 1 | URL
옙. 아직 연명은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에휴... 생로병사가 다 그렇지요.

그레이스 2024-03-13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하엘 콜하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까지 생각나는 연쇄반응!

총을 맞고도 할 말 다하고 죽는...낭만주의! 그렇네요!^^

Falstaff 2024-03-13 16:24   좋아요 1 | URL
앗, 애너벨 리까지 연결이 되는군요!
라 트라비아타에선 20분 후에 죽어갈 비올레타가 극강의 고음으로 악을 악을 쓰기도 하는 걸요. ㅋㅋㅋㅋ
 
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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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헌책방에서 사놓고 일 년도 넘어서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싫었던 이유는 도서관에 오스터의 최근 번역서 <4 3 2 1>을 희망도서로 신청할까 말까 고민했던 이유와 같다. <4 3 2 1>은 한 달을 망설였다가 신청하지 않았고, 그래도 미련이 남아 다음 달에 결국 신청을 했다. 2월에 도착할 거 같다(지금은 3월, 다 읽었다). 1,550 페이지에 달하는 <4 3 2 1>을 읽기 전에 워밍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드디어 <브루클린 풍자극>을 읽어 치웠다. 여태 미루었던 건 오스터의 글이 비록 무지하게 재미있을지언정 그가 주장하는 바에 도무지 동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이의 작품으로 <달의 궁전>과 <뉴욕 3부작>을 읽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뉴욕 전문 작가. 그래서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인 “버터 맛”을 오스터만큼 진하게 풍기는 작가도 드물다. B급 헐리웃 영화, 볼 때는 정말 재미나고 흥미진진하지만 늘 비슷한 결말의 해피엔드를 장만해 극장을 나올 때 벌써 거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 그와 같았다고 할까? 하여간 나한테는 그랬다. 그리고 <브루클린 풍자극>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만일 별점을 준다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미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하는 폴 오스터라서 별 넷은 주어야 마땅하다. 뻔한 미국식 스토리지만 오스터가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 역시 천생 이야기꾼이라서 일 것이다.


  <브루클린 풍자극>의 주인공은 ‘네이선 글래스’라는 이름의 화자 ‘나’이다. 네이선, 애칭 ‘냇’이 비록 브루클린 태생이라도 세 살 때 부모 손을 잡고 뉴욕 교외로 나가 살다가 56년이 흘러 이제 쉰아홉이 된 중늙은이다. 몇 년 전에 폐암에 걸려 종양 제거술을 받은 다음 고통스러운 방사선과 화학요법을 거치느라 이런 병증을 겪은 거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기증, 탈모, 의지상실, 실직, 이혼의 과정을 겪고나서 이제 암은 조심스러운 낙관상태에 이르렀다. 31년 동안 미드애틀랜틱 생명보험회사의 맨해튼 사무실에 출근하는 생활도 종지부를 찍었고, 이름마저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전처 이디스와 이혼하면서 브롱크스빌에 있던 집을 판 돈을 각기 절반씩 나누기로 합의해, 은퇴와 이혼에서 비롯했을 것이 분명하게 이제 서글프고도 우스꽝스러운 삶을 조용히 마감할 수 있는 곳으로, 상처입은 개가 그러하듯이 태어난 본거지로 기어들어온 것이었다. 프로스펙트 공원에서 반 블록 거리에 위치한 1번가의 뜰이 딸린 방 두 개짜리 저층 아파트에 세를 들어가보니 은행잔고가 40만 달러 정도. 이 정도면 죽을 때까지 충분히 버티고도 남을 형편이다.

  중요한 전제사항이 바로 이거다. 은행잔고 40만 달러. 시공간이 2000년. 아무런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아침은 그냥 자기 손으로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달걀 프라이에 베이컨과 진한 커피로 때우든지 하고, 점심은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웨이트리스 마리너가 서빙을 하는 식당 코즈믹 다이너에서 해결한다. 저녁도 대충 식당에서 때우더라도, 사랑스럽기는 해도 골수 가톨릭에다가 의처증이 심한 남편을 둔 유부녀라서 전혀 가망이 없는 마리나한테 몇 백 달러짜리 목걸이를 기쁜 마음으로 선물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다는 거다. 이걸 우습게 여기지 마시라. 세상에서 가장 완고하고 보수적인 자본주의 나라 미국에서 남에게 비록 작더라도 선의를 베풀고 남을 돕고 살기 위해서는 Y2K 기준으로 은행잔고가 적어도 40만 달러는 있어야 한다는 거니까 독자여, 기만에 넘어가지 마시라. 근데 하는 거 보면 40만 달러가 아니라 4백만 달러 이상의 잔고가 있는 게 확실한 듯.


  은퇴자 네이선 글래스가 브루클린 1번가에 들어와서 하는 일은? 그는 남은 삶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나름대로 길고도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동안 저질렀던 모든 실수와 잘못과 어줍은 짓과 바보짓을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책>이란 제목으로 종이에 옮기는 일. 이제 남은 냇의 유일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쓰고 있다가 자주 들러 책구경을 하던 헌책방 “브라이트먼의 다락방”에서 누이동생 준의 외아들이자 조카인 톰 우드를 만나면서 한 순간에 책의 주인공은 조카 톰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냇보다 세 살 적은 준은 24세 때 뉴욕타임스 경제담당 기자 크리스토퍼 우드와 결혼해 톰과 오로라를 낳고 15년 후에 이혼한다. 2년 뒤에 두번째 남편 필립 존을 거쳐 성년이 된 딸 파멜라를 둔 주식 중개인과 세번째 결혼하고 마흔아홉 살 때 뜨거웠던 8월 중순의 오후에 정원을 손질하다 뇌출혈을 일으켜 다음날 죽어버린다. 딸 오로라는 엄마의 재혼 이후에 삐딱선을 타기 시작해 벌써 가출해버렸고, 아들 톰은 코넬 대학을 우등 졸업한 후 4년 풀 브라이트로 미시간 대학에서 미국문학 공부를 이어가다 박사 논문에 너무 어려운 과제를 다루는 바람에 학문 자체를 포기, 낙담해 브루클린의 헌책방에서 희귀본과 필사본에 관한 월간 카탈로그 작업을 하고 있던 거였다. 한 시절 똘똘이 스머프였으나 이젠 볼품없이 뚱뚱한 체격에 군턱, 두툼한 손에 총기가 사라진 눈에는 좌절한 기색이 철철 넘쳐 흘렀다. 박사 논문을 포기하고 뉴욕에 와서 꽤 오래,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특별히 혹독한 고행의 한 형태이자 가장 소중하게 품어온 야망의 붕괴를 애도하는 방식으로 택시운전을 하던 톰이 브라이트먼의 다락방에 와서 책구경을 하다 가게 주인 해리 브라이트먼에 의하여 스카우트되었다고.

  동생 오로라는 가출 소녀들의 전형적인 최악의 코스를 따라 포르노 배우까지 하는 막장으로 흘러갔다가 오빠 톰에게 구조되기도 하고, 약쟁이 기타리스트 빌리, 약쟁이 바이올리니스트 그레그와 함께 각지를 떠돌며 음악활동, 즉 길거리공연을 하다 딸 루시를 출산한다. 약물중독에 빠진 오로라는 기적적으로 같은 약쟁이 데이비드의 도움으로 마약을 끊고 그와 결혼하지만, 아뿔싸, 데이비드는 광적인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고 말았다. 궁지에 처한 오로라는 자기 딸 루시 혼자 뉴욕행 버스에 태워 오빠 톰에게 보내고 남편에 의하여 집안에 유폐되어 버린다.

  그리고 헌책방 주인 해리 브라이트먼. 양성애자에다 천부적인 사기꾼. 원래 이름은 해리 둥켈. 미국 중서부 지역의 기저귀 사업의 왕인 백만장자 칼 돔브로프스키의 못생긴 노처녀 막내딸 베트와 결혼해 아내의 돈으로 19년간 시카고의 화랑 “둥켈 플레르”를 호화롭게 운영하던 남자. 그의 복지와 사치를 보장해주던 천재 화가 알렉 스미스가 멕시코 옥사카에서 마흔 번째 생일날 술에 절어 지붕에서 뛰어내려 삶을 깨끗이 포기하는 바람에 덩달아 망할 처지에 속한 해리는 안 팔리는 추상화가의 제의로 알렉 스미스의 서명을 한 위조 회화를 세계 시장에 팔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꼬리가 잡힌 둥켈 씨는 결국 콩밥을 먹는다. 출소한 이후에도 자기 딸과 여전히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꼴을 보지 못한 장인 돔브로프스키 씨가 뉴욕에 작은 건물 한 채를 사주고 사업할 자금도 대주는 대신 이혼을 요구해 해리는 성을 둥켈에서 브라이트먼으로 바꾼 후 헌책방을 연 거다. 말이 헌책방이지 사실 희귀본과 작가 서명이 든 초간본, 필사본 같은 귀하고 비싼 책이 수입의 9할이 넘는, 우리가 아는 그냥 헌책방하고는 차원이 다른 가게를 열었다.


  이렇게 네이선 글래스를 둘러싼 세 명의 문제적 인간. 외조카 톰과 오로라(종손녀 루시 포함), 그리고 해리 둥켈인지 해리 브라이트먼인지 하는 사기꾼. 이 인간들이 작품을 이끌어가는데 어째 정상적인 인간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독후감 초입에 밝혔듯이 B급 할리우드 영화에서 너무 자주 본 것처럼 모든 것은 흘러가고, 결국 모두 잘 될 터이니. 해리는 지긋지긋한 사기와 양성연애 관계를 청산하고 드디어 즐거움을 찾아 구름 위로 올라가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하나밖에 없는 딸, 그것도 정신분열, 요즘 말로 조현병을 앓고 있는 서른한 살의 플로라한테가 아니라, 브라이트먼의 다락방 종업원이었던 톰 우드와 그곳에서 카운터를 보며 해리 자신과 플라토닉한 사랑만을 나누던 에이즈 환자 루퍼스에게, 재산도 그냥 재산이 아니고 전 재산의 98퍼센트 이상을 몽땅 유증해버린다. 사실 이건 스포일러가 분명하다.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이이의 소설 결말은 그렇게 흘러가니까.

  느닷없지는 않지만 하여튼 해리의 죽음으로 한 순간에 팔자가 바뀐 톰은 당연히 바로 직전에 한 아가씨와 사랑 비슷한 것을 시작했으니 이제 앞날엔 탄탄한 아스팔트 길만 남은 셈이다. 동생 오로라도 마찬가지로 새 삶과 새 사랑이 등장할 것은 뻔하고, 한 때는, 아니, 바로 직전까지, “하느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부르짖었던 화자 ‘나’ 네이선 글래스는 유리glass가 한 방에 깨지듯 다 늙어 새로운 연인이 등장하며 하느님과 화해하면서 미국인 누구나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이 완성된다. 역시 미국, 아니 신자유주의가 팽만한 세계의 모든 곳에서 꿈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매개는, 바로 돈이다.

  어때, 재밌겠지? 이보다 더 읽기 좋은 성인 동화는 아마 보기 힘들 걸? 너무 행복해져서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는 환상이 지랄로 변하는 현상도 겪을 수 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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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4-03-11 0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저 이 책 읽었는데 하나도 기억 나지 않아요ㅋㅋㅋㅋ폴스타프님 리뷰 읽고는 아주 희미하게 떠오를듯말듯 합니다 어쩜 이럴수가 있을까요ㅠㅠ

Falstaff 2024-03-11 07:21   좋아요 3 | URL
ㅎㅎㅎ 그래도 읽으실 때는 재미 있었을 겁니다. 이이의 작품이 대개 그렇더라고요. 저도 <달의 궁전> <뉴욕 3부작>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답니다. ^^

잠자냥 2024-03-11 13:21   좋아요 1 | URL
전 뭘 읽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는데 다들 대단하십니다~!! ㅋ

Falstaff 2024-03-11 22:15   좋아요 0 | URL
잠자 님은 워낙 많이 읽으시니 그럴 수 있습지요. ㅎㅎ

은하수 2024-03-11 0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읽었죠~~^^
근데 읽고나면 어느새 스토리가 마구 섞입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라... 일고 여덟권은 읽은거 같네요. 그래서 어떨땐 스토리가 섞이는데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또 읽게되더라구요~~
첫책이 <뉴욕3부작>인데 대실망..
두번째 <달의 궁전> 읽었을때 충격..넘 재밌어서요. 그래서 지금도 저의 최애는 <달의 궁전>입니다♡♡♡

Falstaff 2024-03-11 22:17   좋아요 0 | URL
저는 3부작하고 궁전 다 어떤 내용인지 까맣게 잊었답니다. -_-;;
그저 ˝우연의 힘˝이 대단하구나, 했던 기억은 나는데 어떤 책을 읽고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아리송... ㅎㅎㅎ
몇 주 후에 천5백 쪽의 장편 <4 3 2 1> 올릴 겁니다. 흥미롭더라고요.

coolcat329 2024-03-11 08: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가지고 있는데 산 지는 십 년도 더 된 거 같아요. 물론 읽지도 않았죠. 😅
저도 위에 은하수님 처럼 <뉴욕3부작>은 대실망이었고 <달의 궁전>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도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주인공이 센트럴 파크 쓰레기통 뒤져가며 노숙한 부분 그 묘사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Falstaff 2024-03-11 22:18   좋아요 0 | URL
가지고 계시면 얼른 읽으셔요. 휙휙 지나갑니다. 재미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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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중국의 근대극에 관한 금기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차오위의 <뇌우雷雨>를 공연한 것이 신호였다고 한다. 1994년엔 한국, 중국, 일본의 연극인들이 뜻을 맞추어 베세토연극제를 창설해 제1회 베세토연극제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이후 삼국이 돌아가며 주최를 해 오늘에 이른다고. 베세토는 베이징Beijing, 서울Seoul, 도쿄Tokyo의 영문표기에서 앞자리 알파벳 두 개를 따와 BeSeTo라고 지었단다. 이후 2018년에 한중연극교류협회가 출범하여 매년 ‘중국희곡 낭독공연’을 올리면서 출판사 연극과인간을 통하여 “중국현대희곡총서”와 “중국전통희곡총서”를 간행하는데, 내 경우엔 중국현대희곡총서를 통해 중국 희곡의 현대성과 발전상을 보고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중국의 현대희곡을 읽으며 든 생각이, 어찌 그동안 우리나라 현대 희곡은 찾아 읽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과 후회와 미안함이었다. 그래 우리나라 현대희곡도 검색해 읽기 시작한 바이며, 이왕 읽기 시작한 희곡이라 영미와 프랑스부터 시작해 독일, 스페인 등의 희곡에도 집중하게 된 내력이다.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공연 즉시 희곡을 출간하려는 노력을 그동안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결과 기껏 찾아 읽어본 희곡집의 수준이, 연극인 및 극작가가 이 잡문을 읽으면 화를 내겠지만, 중국의 현대희곡만 하지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그나마 희곡 작품집도 활발히 나오는 것 같아 (물량의 증가와 비례해) 좋은 작품도 자주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 희곡을 자주 읽은 보람이 있어서 허지핑의 <천하제일루>를 읽어 내려가며 단박에 떠오른 건 중국 근현대문학을 거론할 때 전혀 뒤로 밀리지 않는 라오서의 희곡 <찻집>이었다. <찻집>은 1부가 청나라 말기, 2부는 아직 청이 망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군벌이 민중들을 피폐하게 만들던 시기, 3부는 국민당과 일제의 중일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한 찻집의 쇠락을 그리고 있었다.

  <천하제일루>는 베이징의 유명한 오리전문점 “복취덕”이 어렵게 명맥을 잇다가 총지배인을 새로이 고용해 경영일습을 맡겨 발전을 꾀했으나 창업자의 무능한 아들들에 의하여 다시 큰 곤란에 빠지는 내용이다. 시대는 쑨원의 신해혁명에 의하여 청나라가 문을 닫고, 위안스카이는 이 와중에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다 실패하고 곧 죽어버린 시절. 1910년대 후반이다. 중국은 이제 주인없는 무주공산이 되어 각지에서 군벌이 득세해 위세를 떨치고 있던 때, 장쉰(張勳)이란 작자가 나타나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다시 황위에 올려 놓는다. 청나라가 멸망한 줄 알았던 베이징 시민들은 얼른 시장에 나가 가발을 사 급하게 변발을 해 붙이고 다니고 옛 벼슬아치들이 잠깐 위세를 떨치던 시기가 1막 1장. 1837년에 산동성 사투리를 쓰는 당씨 젊은이가 도로 옆에 돌 두 개에 도마 하나 얹고 생닭과 오리를 파는 노점을 연 것으로 시작해 타고난 성실성과 정직을 바탕으로 장사를 잘 했고, 한푼 두푼 모아 작은 가게를 하나 사서 백년 기업을 마련했다. 세월은 계속 흘러 어느덧 20세기에 접어들었고, 조상들의 성실과 정직을 물려받은 당덕원이 늙도록 가업을 번성시켜왔다.

  당덕원 사장이 똑소리 나게 하지 못한 일이 있으니 바로 자식 농사. 맏아들 당무창은 가업 잇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경극하는 무리를 좇아다니며 가산을 아낌없이 뿌려가면서 자기도 극단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둘째 아들 당무성 역시 오리 식당이 어떻게 꾸려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무림 고수가 되기 위하여 온갖 권법, 술법 단련에만 여념이 없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업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하고, 형/동생이 쓸어가는 돈보다 결코 적지 않게 자신도 낭비하고자 하는 욕심. 어떤 집안인지 딱 감이 잡히시지? 세상이 하 수상한데 아들들은 정신 못 차려 속이 상한 아버지 당덕원 사장은 궁리 끝에 현명해 보이는 옆 가게 점원 출신 노맹실을 스카우트해 지금 개념으로 전문경영인의 자리에 앉히고 가게 경영의 전권을 맡긴다. 그리고 나서 잔뜩 속이 상한 노인은 절명해버리는 1막 1장.

  이런 와중에 장쉰에 의한 복벽 기간이 끝나 잠깐 봄바람이 불었던 청 시대의 옛 고관들은 다시 영락해버린다. 세상은 혼돈 자체이며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던 시절, 전문경영인 노맹실은 금, 은덩이를 자루에 넣어 보관할 정도로 가게를 성장시켰으며, 기세를 등에 업고 여러 금융업자의 돈을 빌어 복취덕을 확장해 크게 키웠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경영인으로 가게의 일 전반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기가 20세기 초반이라 월급쟁이 사장은 월급을 주는 가게의 진짜 주인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여전히 경극단을 쫓아다니는 맏아들은 극단원들을 비롯해 자신과 관계가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오리 요리 한 두 마리 정도 선심을 쓰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노맹실에게 큰 돈을 요구한다. 이걸 알고 있는 둘째 당무성이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얼른 쫓아와 자기도 돈이 필요하니 내놓으라고 하고, 세상이 답답하게 된 노맹실은 돈이 없다 버티는데, 어디서 들었는지 금은 덩어리를 자루에 담아 보관한다는 말을 들어 당장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는 아들들. 끝까지 돈 주기를 거부하자 완력으로 돈자루를 나꿔채지만 자루가 튿어지면서 자루 속에 든 금, 은이 아니라, 그 속에선 황토가 푸르륵 쏟아지고 만다. 노맹실은 이렇게 오리구이 가게 복취덕이 장사가 잘 되는 것을 과시하며 저리로 많은 돈을 빌려 가게를 크게 확장하고, 씀씀이가 큰 고객들도 왕창 확보하여 나날이 크게 발전할 기틀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2막에 들면 복취덕은 확실하게 베이징의 최고 오리 요리점이다. 속칭 베이징덕의 대표 음식점. 이미 둘째 아들 당무성은 다른 도시에 분점을 차리고 영업 중일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당무성은 여전히 가게 경영은 나몰라라 하고 권법에만 관심을 쏟아 장사가 시들해지고 있던 중이다. 당장 베이징으로 달려온 당무성은 형 당무창과 뜻을 함께 해서, 어떻게 일개 고용인인 노맹실이 고향에 큰 땅을 살 수 있었는지, 돈을 무슨 수로 그리 많이 모을 수 있었는지 가자미 눈을 하고 따진다. 벌써 몇 십 년을 총지배인으로 일했으니 그동안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만 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건만 자신들의 생활양식에 의하면 도저히 땅을 사거나 돈을 모을 수 없었을 테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 그러니 이제 사달이 나는 일만 남았다. 당연히 무슨 사달인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극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세상은 다시 변해 이제 베이징엔 중국인 알기를 처마밭 애벌레 쯤으로 아는 백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낮에 중국인의 뺨을 갈길 수 있는 시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파국일 것은 분명한데 어떤 식으로?


  중국인이 읽었더라면 내가 느낀 감상보다 훨씬 좋았을 듯하다. 특히 중국 근현대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청말의 사회적 혼돈과 당시 세태를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 실제로 등장하는 오리구이 가게 복취덕은 실제로 있는 베이징덕 음식점을 모델로 한 것이라 하고, 오리구이를 하는 방식, 베이징의 시설물, 거리, 복장, 인물과 사건 등 읽으면서 쉼 없이 각주를 내려다봐야 했고, 각주의 양도 만만하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흥미로워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라오서의 <찻집>을 워낙 근사하게 읽어, <찻집>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각 장면마다 당씨 형제들과 총지배인의 갈등 대신 사회적 문제를 조금 더 부각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인터넷 책방 교땡문고, 너24에서는 팔지만 내 단골집 얼라땡에는 없다. 왜 없을까?


  올해 중국 희곡 낭독 공연은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국립극단 명동 예술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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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3-08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엇, 얼라땡에선 팔지 않는다니요. 으흠~ 찻집이 그렇게 좋군요. 저도 언젠가 읽어보겠습니다. 낭독공연 본적이 없는데 궁금하긴 하네요.
베세토가 그런 뜻이었군요. 글치않아도 궁금했는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03-08 16:12   좋아요 2 | URL
예. 이 책 좋습니다. 라오서의 <찻집>은 동아시아의 ˝희곡˝ 고전이 아닐까... 싶네요.

얄라알라 2024-03-10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Falstaff님 이 글은 대학교 문학 강의의 구어 버전 같아요^^

한국에서 중국 문학에 대해 보수적이었다는 데도 놀랐고, 그게 그리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었음은 더욱 놀라워요. 그나저나 ˝ BeSeTo˝ 이름 지으신 공무원(???)은 보너스 받으셨으려나요. 이름이 한 번 들으면 쏘옥 들어오게 좋네요.

일본의 백년가게들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자식에게 물려주기 여의치 않으면 ‘노맹실‘을 불러오듯 외부인사(?)를 집안으로 들여 가업을 잇는 전통 가졌나보네요. 이래저래 배워가는 게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falstaff님

Falstaff 2024-03-10 17:08   좋아요 1 | URL
그냥 잡문인 걸 이리 친절하게 읽어주시니 고맙고 즐겁기 짝이 없네요. ㅋㅋㅋㅋ
편한 주말 맞으셨기 바랍니다. 저도 여유있게 휴일을 즐기고 있습니다. ^^
 
비 오는 길 - 최명익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5
최명익 지음, 신형기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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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에 평안남도에서 출생한 작가. 평양 보통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921년에 도쿄로 유학해 23년에 돌아왔다. 이 시기에 귀국한 도쿄 유학생들은 관동대지진에 이은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해 돌아온 인물이 대부분이다. 하여간 최명익은 이후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1928년부터 유방(柳坊)이란 필명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몇 개의 동인지를 발간한다. 이후 1936년에 잡지 『조광朝光』에 <비 오는 길>을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작품을 읽어보면 당시로서는 눈에 띄는 모더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읽으면 낡은 설정이 눈에 확 나타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인 문학작품에서 식민지의 우울한 작가 입장에서 주인공 주변에 등장하는 무기력감과 우울증, 과도한 자의식 같은 것이 표출되었다고 주장한다면 독자는 할 말이 없다. 모두 여덟 개의 중단편을 실었다. 이 가운데 하얼빈을 무대로 과거에 혁명가였던 지식인 청년과 화류계 여성의 아편중독을 그린 <심문>과 고향에 어린 시절 결혼한 처가 있는 지식인 청년 이야기 <무성격자>, 공장 직공이 직장에서 집에 오는 길에 있는 사진관의 사진사와 친하게 지내다가 관계가 끊어지는 <비 오는 길>, 아니, 아니, 제일 마지막에 수록한 <맥령麥嶺> 빼고 일곱 작품이 다 좋았다.

  그런데도 이이의 이름이 낯선 건, 웬수 같은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충돌 때문이었다. 도무지 좌익이나 공산주의하고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최명익은 1945년 해방이 되자, 고향 부근 평양에 머무르면서 평양예술문화협회의 회장을 지낸다. 나는 이게 작가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의하여 결정했다기 보다, 그저 자리가 있고, 하라고 하고, 만약 하지 않으면 신상에 좋을 일은 하나도 없어 보이니 맡지 않을 수 없어서 덜컥 받은 자리라고 생각한다. 이이 같은 모더니스트가 공산주의자라니, 말도 안 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이이를 설명하기를, “1946년 김일성이 북한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면서부터 점차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저 관운이 좋아 시키는 대로 넙죽넙죽 받은 거라고 본다. 안 하면 죽을 것도 같기도 했을 거고.

  이런 사람한테 공산주의라니. 우리가 알고 있는 ‘진짜’ 교과서의 공산주의면 혹시, 만의 하나 또 모르겠지만,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닌 스탈린 식 독재에 복무하기 위한 문학은 이미 문학이 아니다. 이 책에 증거가 있다. 1947년에 북한의 출판사 문화전선사에서 발표한 중단편집 《맥령》의 타이틀 작품 <맥령>. 일곱 작품을 흥미진진하게 읽다가, 아니 이런 작가도 있었어? 역시 우리나라는 단편소설의 나라가 맞아, 갑자기 등장하는 <맥령>이라니. 한 순간에 맥이 영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맥령. 한자어로 麥嶺, 보리 맥에 고개 령. 합하면 보릿고개. 때는 1945년 봄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를 맞아 패전이 거의 확실시 되는 일본은 마지막 발악을 하느라고 조선에서 말 그대로 발작적 공출과 젊은 남성에 대한 징병과 징용을 집행했다. 식민지 지역에서 언제나 제일 악독하게 피식민지 백성을 쥐어 짜는 것은 식민 모국에서 온 통치자가 아니라 현지 고용인이었다. 그리하여 작품의 무대인 면 지역에서도 면장이 면민들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고 있는 인간 착즙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 이상진이라고 쓰고 최명익이라고 읽는 소설가가 소개, 혹시라도 평양에 공습이 있을까 싶어 시골로 하방해 있으라는 소개명령을 좇기 위해 낙향해 있었다. 당연히 이상진은 면에 거의 유일한 인텔리겐치아이며 아래 위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명사. 다만 면장과 기타 군역 일을 하는 공무원들의 눈에는 참으로 아니꼽게 보이는 것이 몸에 무슨 드러나지 않는 질병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진료증인가 뭔가를 제출해 병역을 연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상진도 1945년 봄에 처음 이곳으로 소개해 내려왔고, 오자마자 동네의 건실한 젊은이들하고 배포가 맞아 친하게 지내게 됐다. 공산주의 아래에서 생산된 작품이 거의 다 그렇듯이 젊은이들은 도무지 악할 줄 몰라서 이상진의 말을 예수님의 초등학교 동창생이 하는 말인 것처럼 따른다. 그러면서도 자기들 나름대로 굳은 신념 역시 만땅.

  석주, 인갑이, 동석이 들이 병역 신체검사에 갑종을 받아 이제 남의 전쟁터에 징병 나갈 일만 남았다. 근데 인갑이가 상진에게 엉뚱한 걸 물어본다.

  “선산님. ‘나는 왜놈이 아니구 조선사람이외다.’를 영어로 어떻게 합니까?”

  왜 그런 것을 묻느냐고 다시 물어보지 않고도 인갑이의 질문이 어떤 의미인 줄 알아챈 상진. 인갑이는 이미 중국어로는 어떻게 말하는지 배워 놓았다고 한다. 만일 중국 전선으로 끌려가 중국 군인을 만나게 되면 써먹을 용처다. 같은 목적으로 또 태평양 전선으로 가게 되어 귀축이라고 하는 영국이나 미국 군인을 만나게 되면 써먹어야 하니까 영어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

  작품이 한참 진행하여 드디어 얼마 있지 않아 인갑이네가 징병갈 때가 다가오자 이번에도 인갑이, 상진에게 묻는다.

  “데 김일성 부대는 상게두 백두산에서 왜놈하구 싸우갔디요?”

  이 다음부터 조금만 그대로 인용해보자.


  이런 인갑이의 말에 상진이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김일성 부대!”

  인갑이의 말을 받아 외는 상진은 서슴없이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 이 젊은이는 날개가 있구나!’ 속으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막힌 진공관 속에서 김일성의 존재를 생각해내는 것만도 얼마나 씩씩한 비약이요, 찬란한 낭만일까.

  “물론 싸울 거요. 지금이야말로 그분이 더욱 힘 있게 싸울 때니까!”

  청구(靑丘) 조선의 산머리 우러러 선조의 웅대한 가지가지의 전설을 지니고 있는 백두산에서 동포의 의사를 대표하여 조국 해방의 봉화를 높이 들고 싸우는 한 영웅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며 상진은 대답하였다.


  1947년 작품이다. 미주엔 1941년에 발표했다고 쓰여 있지만 오식이다. 1941년의 평양에 청년 김일성의 이름이 그리 날리지 못했을 때라서 이런 표현은 쓰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1941년이면 최명익은 모더니즘의 최고 시절을 향유했을 텐데 뭐가 아쉬워 이런 글 같지도 않은 작품을 끼적이고 있었겠는가.

  아쉽다. 이 양반이야말로 남쪽에서 살았어야 했는데. 전쟁 후에도 남쪽에 남아 자신의 문학적 끼를 유감없이 휘날리고 그 다음에야 눈을 감아도 감았어야지, 세상에 <맥령>같은 작품이나 쓰면서, 나중엔 대하소설이라는 <사명대사>나 <이조망국사>같은 역사물이나 쓰다가 숙청당했으니 죽어서나마 눈이나 감았겠느냐고.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1972년에 숙청을 당했다가 1984년에 (사후)복권했다고 한다. 70년대 초반까지 살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단어에다가 한 가지 허들이 더 있다. 평안도 사투리. 구개음화가 생기지 않는 이북말 특유의 발음을 그대로 쓴 경우가 많아 고어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독자들은 작품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읽기에 곤란을 겪을 수 있겠다. 난 재미있게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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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3-07 0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제대로 쓴 구어체는 읽을 때 진짜 좋더라구요 ㅋㅋ근데 북쪽말은 잘 모르겠고…이번에 수능특강 문학 훑어보다 마지막에 이문구 장평리 찔레나무 실린 거 보고 삘 꽂혀서 막 따옴표 안 충청도 말 다 소리내서 읽고 앉았다니까요 ㅋㅋㅋ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사투리는 좋아하는 게 확실… 수능에 이문구 나오면 좋겠다…최명익 소설도 문학 빈출이라 샛길로 샜네요 ㅋㅋㅋ 월북 작가 작품도 열심히 출제되는 세상… 그런데 짜투리만 봐도 이 작가는 크게 재미는 없었어요… ㅋㅋㅋㅋ

Falstaff 2024-03-07 16:01   좋아요 1 | URL
윽. 빈출.... 빈번하게 출제한다, 라는 뜻인지, 貧出 아주 드물게 나온다는 뜻인지 막 헛갈렸다는 거 아닙니까. 자주 나온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ㅎㅎㅎ 저는 정말로 오늘 날까지 이이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야만의 세월을 산 거 맞습니다.
근데 <맥동> 빼고는 괜찮은 걸로.....

잠자냥 2024-03-07 17:44   좋아요 1 | URL
헐 폴스타프 님이 최명익 모르셨다는 게 오늘 가장 충격입니다~!

Falstaff 2024-03-07 19:2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때는 지구가 편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월북 작가들은 아예 거론되지도 않았고, 소위 서울의 봄이 온 후에도 대단한 성가가 있는 극소수의 작가들만 알 수 있었답니다. 그들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더 시간이 필요했고요. 지구가 둥글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4-03-10 12:07   좋아요 2 | URL
ㅎㅎ 열반인님^^ 수능특강 문학을 공부하셨어요^^ ˝빈출˝ ˝최빈도˝ 이런 단어랑 멀어진지 오십년되었는데, 열반인님 덕분에 다시 환기 당했어요

놀러갈게요~~ 열반인님 서재

반유행열반인 2024-03-10 18:42   좋아요 2 | URL
얄라알라님 아직 공부는 안 하고 목차만 주루룩 봤어요 ㅋㅋㅋ드물게 빈출 아니고 이 작가 수능특강 모의고사 등등 제법 몇 번이에요. 나오는 작가만 계속 나와서 지루하기도 하고 이새끼들 출제범위 너무 일천하다 싶고 박상륭 나와라!!! 혼자 그러고 그런데 아마 안 나올 거 같고 ㅋㅋ 최근에 기형도 시인 시 출제되는 거 보고 으떤 강사는 이제 이상 시 나와도 놀랍지 않다 이러더라고요 ㅋㅋ
 
곰곰 랜덤 시선 9
안현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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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태백생. 시집을 읽어보면 태백에서 낳고, 강원도 어디쯤에서 조금 살다가 서울로 와서 여상을 다닌 후 기업의 사무 보조원으로 들어가 가난하게 살면서 시를 썼다. 이이의 내력을 조금 들여다보면 여섯 살 정도 되어 아버지가 안현미를 새엄마한테 보내 함께 산 듯하다. 집이 여유롭지 않아 서울여상을 나와 기업에 다니다가 20대 후반에 서울산업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시인이 됐다. 김경주, 김민정과 함께 “불편” 동인이란다. 《이별의 재구성》으로 2010년에 신동엽창작상을 받았다. 이크, 이 대목에서 깜짝. “이별의 재구성”이냐 “이 별의 재구성”이냐, 이런 말장난 잘 했던 시인이로구나. 읽어본 적 있다. 2017년 4월에. 《이별의 재구성》에 <post-아현동>이란 시가 있어 안현미는 이렇게 노래했다.


  오늘은 아현동 산동네에 갔다 // 오래전 월세 들어 살던 방,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하던 방, 연탄불을 넣던 방, 이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울먹이던 방, 외롭던 방, 고맙던 방, 아주아주 춥던 방, (하략)


  161번 시내버스 타고 굴레방다리에서 내리면 북아현동. 길 건너 당시에 무슨 공업전문대학 있었는데 그쪽이 아현동. 거기서부터 저 대현동까지 좀 춥고 배고픈 사람들 많이 살던 동네다. 안현미가 졸업했다는 서울여상은 1972년생은 모르겠지만 “라떼는” 집 가난하고 머리 좋은 여자애들만 갈 수 있는 우수한 학교였다. 중학교 담임이 학부모 불러서 웬만하면 인문계 고등학교 보내 좋은 대학 가라고 설득하다가, 돈이 없어서 가오도 없는 학부모의 완곡한 하소연에 어쩔 수 없이 원서 써주던 곳이 서울여상이었다. 거기서 주산, 부기 잘 하면 한국은행 무조건 들어갔다. 물론 옛날 이야기다. 안현미 시절에는 그렇지는 않고 대기업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면서 20대 후반에야 대학에 진학했단다. 그러니 갓 스무 살 시절, 꿈 많고, 정 많고 사랑도 많던 시절에 아현동 언덕배기 사글세방에 혼자 산 것 같으니 얼마나 고생을 했을꼬. 짠하다. 그리하여 그때 쓴 시들이 많은 모양이다. 이 책 《곰곰》에서도 두 번째 실린 시가 아현동 시절이다. 읽어보자.



  거짓말을 제조하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쥐오줌 번진 책장을 더듬고 있다 불 꺼진 방 전기 장판은 얼음장 위에 신문지 같다 그녀의 더듬이는 의수(義手)를 닮았다 우우, 우, 우 비키니 옷장 속에는 아귀 같은 짐승이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잠을 아귀처럼 먹어치우고 있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의수 같은 그녀의 더듬이를 부빈다 쥐오줌 번진 책장 속에선 벌레가 된 사내가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있다 그녀의 의수 같은 더듬이가 제조하는 현은 세상의 슬픔 따위에는 울지 않는다 우우, 우, 우 산동네의 겨울은 길다 차라리 신(神)은 봄 같은 건 제조하지 말았어야 한다! 고 그녀의 더듬이는 쓴다 우우, 우, 우 그녀의 더듬이가 운다 네 울음은 불온하다, 고 누군가 그녀의 불면 속으로 걸어 들어와 딸깍, 그녀의 더듬이를 자른다 우우, 우, 우 봄을 제조한 신(神)은 위대하다, 위대하다! 불 꺼진 방에서 벌레처럼 납작 엎드린 그녀가 거짓말을 제조하기 시작한다 더듬더듬, 시 같은 거짓말을!  (전문)



  가난한 하숙집에 빠질 수 없는 품목이 두 가지. 하나는 전기 장판이고 다른 하나는 비키니 옷장이다. 다 그렇게 살았는데 시인이라서 감수성이 예민해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정도의 극심한 가난은 시간이 지나도 트라우마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이제 안현미가 쉰 둘? 그렇게 세월이 지났음에도 당시의 고통스러운 환경, 천장에선 밤이면 밤마다 쥐들이 트랙 경기를 하고, 쥐오줌이 짙게 밴 천장은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고, 전등불을 켜면 갑자기 화르륵 달아나는 바퀴벌레, 바퀴벌레들의 길고 긴 더듬이들, 촉수 낮은 전등 아래 비키니 옷장을 열면 무엇인가 흉측한 것이 안에서 확, 튀어 나오거나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우풍, 외풍, 웃풍, 황소바람.

  그런데 비슷한 시가 또 있다. 기세도 좋게 바로 다음 시로 같은 아현동의 자취방과 더듬이가 긴 곤충이란 동거생물들, 그리고 영탄이 출몰하는. 워낙 인상 깊었던 삶의 시절이었던 것은 이해가 가지만 같은 주제로 몇 다발의 시를 쓰는 건 어쨌거나 내 생각으로는 거슬린다. 처음 인용한 <post-아현동>처럼 다음 시집 《이별의 재구성》에서도 또 나오면 말이다. 어떻게 비슷한지 한 번 볼까?



  거짓말을 타전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지 않았다 가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을 만나면 말을 더듬었지만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던 날들은 이미 과거였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비키니 옷장 속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출몰할 때도 말을 더듬었다 우우, 우, 우 일요일엔 산 아래 아현동 시장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었다 순대국밥 아주머니는 왜 혼자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 억울하진 않았다 불 꺼진 방에서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나 대신 잘 살고 있었다 빛을 싫어하는 것 빼곤 더듬이가 긴 곤충들은 나와 비슷했다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불 꺼진 방 번개탄을 피울 때마다 눈이 시렸다 가끔 70년대처럼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고 싶었지만 더듬더듬 더듬이가 긴 곤충들이 내 이마를 더듬었다 우우, 우, 우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 같았다 꽃다운 청춘이었지만 벌레 같았다 벌레가 된 사내를 아현동 헌책방에서 만난 건 생의 꼭 한 번은 있다는 행운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진짜 가족이 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바쳐 벌레가 되었다 불 꺼진 방에서 우우, 우, 우 거짓말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거짓말 같은 시를!  (전문)



  그러니까 이이가 말하는 “거짓말”은 창작으로의 “시”를 쓰는 행위이다. 먼저 거짓말을 제조하더니 이제는 거짓말을 타전한다. 한 단계 도약해서 제조한 것을 세상에다 대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우우, 우, 우 너무 비슷한 거 아닌가? 물론 그만큼 시인한테는 절망이었고, 좌절이었으며 전혀 좋아질 것 같지 않은 우울의 산꼭대기였겠지. 더듬이가 긴 곤충인 바퀴벌레만 자신과 동거하고 있는 것 같은 고독과 단절. 목을 매거나 다리에서 뛰어내릴 자신은 없으니까 그저 연탄가스에라도 중독되어 죽고 싶었던 삶의 끝장까지 갔었고, 거기서 거짓말 같은 시를 쓰기 시작한 전경이 잘 보인다.

  근데 좀 장황하다. 당연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지. 그러나 읽는 독자도 좀 생각해주셔야지. 시인은 이래서 이렇게 시를 썼고, 그건 좋은데 반면에 시의 성취와 관계없이 시를 읽는 독자는 이래서 이렇게는 시를 읽기가 질려버리면 그거 되겠냐는 말이다. 아현동, 산동네, 사글세 방, 쥐오줌, 더듬이가 긴 곤충, 새파랗게 추운 밤. 비애와 비통과 고통이, 좋아, 좋아. 이제는 시인도 극복했겠지. 그랬겠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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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3-05 0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지 알것 같네요.
저도 그만 읽고 싶은 내용들이예요.
오히려 그 안에서 아주 잠시라도 행복했던 것들을 헤아리면, 슬픔이 오히려 잘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젠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우는 사람의 등을 두드려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슬픔과 상처의 깊이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겠죠? ㅠ
이 분이 작가이기에....독자로서 폴스타프님 생각에 공감합니다.;;

Falstaff 2024-03-05 16:35   좋아요 1 | URL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특히 우울도 과하면 보기 좋지 않더라고요. 세상 모든 고통을 혼자 당하는 듯한, 물론 자신한테는 가장 심각하겠지만, 그런 건 딱 몇 번 하고 말아야 궁상의 골짜기에 빠지지 않는 거 같습니다.
소설가 한창훈이 시인 지망생한테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제발 피 좀 토하지 말아라. 술병은 우산꽂이에 넣어두고 시를 써라. 그만 울고 화장실 가서 콧물 좀 닦아라. 피 토하면 시인 면허증 준다는 거 다 사기고 구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