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저를 책 읽기의 짜릿한 엑스터시로 끌고 갔던 것들만 골랐습니다. 이름하여 Top 10, 그리고 '한 권의 최고'.

 2019년에는 권수로 209권, 편수로 188편을 읽었습니다. 이 가운데서 ‘예전에 읽은 명작 다시읽기’로 선택한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개선문>, 디어도어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은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래 먼저 40편의 작품을 선택하고 이 가운데 열한 편을 다시 추려서 Top 10과 최고의 한 권을 선정했습니다.

  40편의 목록은 글 마지막에 첨부했습니다.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 이 가운데서 또 추리는 일이 참 아쉬웠으니, 대표적인 예가 미셸 오스트의 <밤의 노예>, 베시 헤드의 <권력의 문제>, 엔리케 빌라-마따스의 <바틀비와 바틀비들>, 캐서린 앤 포터스의 단편집 <캐서린 앤 포터스>, 유진 오닐의 <느릅나무 아래 욕망>, 천상병의 <천상병 시선>, 레이날도 아레스의 <현란한 세상>, 루쥔의 <여름의 기억>, 루이스 마르틴 산토스의 <침묵의 시간>, 피에르 르메트르의 <오르부아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이제 소개하겠습니다. 순서는 책 읽은 날짜순입니다.

 

 

 

 

 


1. 치누아 아체베, <사바나의 개미 언덕>

 

 아체베의 아프리카 3부작과 잘 어울리는 그의 마지막 장편소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아체베의 땅 아프리카에 그토록 염원하던 독립이 찾아온다. 그리고 백인들의 편의에 의해 직선으로 그어진 국경선. 오직 정치적 독립일 뿐 검은 대륙은 여전히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쉴 틈 없이 벌어지는 쿠데타와 독재와 내전과 굶주림과 매판자본에 의한 수탈경제 속에서 궁극적으로 아프리카가 나가야 할 화해의 방안을 모색한 역작. 이들과 비슷한 반半식민 시절을 겪은 한국인들에겐 더욱 가깝게 다가올 작품이니 일독을 해보심이 어떨까.

 

 

 


2. V.S. 나이폴, <도착의 수수께끼>

 나이폴을 다시 보게 만든 수작. 인도 이민 출신으로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프랑스의 가난한 동네 미겔 스트리트에서 탈출에 성공해 런던의 얼스코트의 하숙집을 거쳐 옥스퍼드로, 다시 스톤헨지가 멀지 않은 월든 쇼의 장원 한 귀퉁이에 소설가라는 명함을 가지고 정착한 나이폴. 미겔 스트리트에서 뛰놀던 어린 소년이 이제 나이 들어 웨일스의 농촌을 완상하는 시각이 정겹다. 이이는 살던 곳을 떠나 새 장소에 도착할 때마다 해결해야 하는, 아니면 적어도 풀어야 했던 수수께끼가 있었던 모양이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나. 다만 그것이 나중에 추억이란 이름으로 평생 따라다니게 될지 모를 뿐이지.

 

 


3. 리처드 포드, <독립기념일>

 

 40대 이혼남과 가족 이야기. 자잘한 재미에 흠뻑 빠질 미국식 홈드라마. 독립기념일을 맞아 사고를 치고 이제 재판을 앞에 둔 십대 아들과 미국 프로농구 명예의 전당을 둘러볼 계획을 세워, 전처의 현 남편 집에 가서, 전처 앞에서 엄숙하게 무사귀환 할 것임을 맹세하고 아들을 인계받아, 매사에 삐딱한 전형적 중2 아들을 데리고 아무 탈도 없이 장정을 완수해야 한다는 전제 속에 벌써 갖가지 난관이 버티고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생업인 부동산 중개 일 때문에 수시로 아빠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7월의 태양은 사정없이 내리쬐는데 아무리 아빠라도 다 큰 아들놈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걱정 마시라. 내일 세상이 망한다 해도 미국 아빠의 자식 사랑은 언제나 해피 엔드로 장식하니까.

 

 


4.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사랑, 판타지아>

 
 제바르의 경우 두 권을 꼽았는데, 한 권으로 봐주시면 좋겠다. 두 권 모두 올해 최고의 한 권을 놓고 각축을 벌일 수 있는 책이니. 하필이면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의 식민지로 떨어져 큰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숱한 세월을 다시 격렬한 독립전쟁을 벌여야 했던 불행한 나라, 알제리. 이들은 프랑스한테 침략 당했을 때도 여자들까지 손톱으로 파서 꺼낸 적의 심장을 한 손으로 쳐들고, 다른 손으로는 적에게 잡혀 죽느니 자기 손에 죽으라고 자신의 어린 아이의 발을 잡고 머리와 몸통을 담벼락을 향해 휘두른 민족. 그러나 한 때는 적의 문자인 프랑스의 언어로 글을 써야 했던 작가, 그리하여 아카데미프랑세즈의 종신회원으로 임명된 작가에게 프랑스어는 헤라클레스를 찢어 죽인 ‘네소스의 셔츠’로 기능하는데,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자신은 망신창이가 되어 찢어져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벗을 수 없는 천형이라는 뜻이었을까?

 

 


5. 에이브러햄 버기즈, <눈물의 아이들>
 

 우여곡절의 쌍둥이 형제에 관한 이야기. 인도 출신 에티오피아 의사 부부의 양아들로 키워진 이들은 정수리 부근이 탯줄과 비슷한 관으로 연결된 ‘일종의’ 일란성 샴쌍둥이로 애초에 자연분만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그리하여 어느 일란성 쌍둥이보다 더욱 깊은 상호 유대감을 갖게 된다. 양어머니는 남자 아이들에게 최고의 힌두여신인 시바와 역시 최고의 산부인과 여의사였던 메리언이라는 이름을 주었으며 유난히 총명한 형제, 시바는 스스로의 힘으로, 메리언은 뉴욕으로 유학을 가서 나름대로 의학에 관하여 일가를 이루는데, 운명Fate이란 심술궂은 늙은이는 메리언에게 이른 죽음이란 가혹한 형벌을 가하려 준비를 한다. 놀랄만한 입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가의 필력으로 인해 동지 지나고 며칠 되지 않은 긴 밤을 골라 읽기에 맞춤한 책을 만들었으니 독자 제위는 일독을 머뭇거리지 마실 것. 당신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단박에 느낄 수 있을 터이니.

 

 


6. 톰 울프, <허영의 불꽃>

  
 더 이상의 미국 소설은 없다. 센트럴 파크가 눈 아래 내려다보이는 파크 애비뉴. 채권을 거래하는 중개인, 흰 메르세데스 속의 불륜 남녀, 한 밤의 뉴욕 슬럼가, 흑인 공포증, 선거와 투표권 최우선의 민주주의, 살인, 감방, 몰락. 어떻게 더 미국스러울 수 있을까. 소심하고 겁도 많고 그러나 불륜은 저지르고 싶어 하며 돈도 무척 많이 버는 속물 한 마리가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정황상 이유로, 오직 정황만 가지고 증거도 없이 죄를 뒤집어쓰면서 차츰 몰락해가며 점점 마초로 변신하는 이야기. 이렇게 얘기하면 재미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허영의 불꽃>이야말로 지금 시대 최고의 대중문학이며, 21세기에 들어선 오늘 순문학이 대중문학보다 우위일 이유도 더 이상 없으니, 나는 자신 있게 이 책을 올해의 Top 10으로 선정한다. 작가 톰 울프가 저널리스트 출신이라 신문 사회면 수준을 넘어 심지어 미국식 민주주의가 얼마나 엉터리로 변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뒤통수를 후려치기까지 한다.

 

 


7. 제임스 미치너, <소설>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이렇게 소설의 생산과 소비에 관련한 네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소설의 탄생과 번성에 관해 담론을 펼치는데, 나름대로 스토리가 무척 재미있다. 심지어 진즉에 읽어볼 것을 제목이 너무 직설적이라는 우스운 핑계 때문에 이제야 읽게 된 것을 후회했을 정도. 아마추어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편집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작가. 비평가는 스토리보다 이젠 특별한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선호할 작품들에게 특별한 호감을 표시하고 독자 역시 많은 책을 읽는 과정을 통해 비평가의 주장에 늦게나마 보조를 맞추게 된다는 것이 현대 소설에 대한 미치너의 결론인 거 같다. 즉 소설의 탄생에 편집자가 중요한 영향을 발휘하게 됨에 따라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성보다 많이 팔리는 경제성이 더 우위에 있는 반면, 날로 진화하는 소설 양식과 소비 패턴에도 서로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곡예가 바로 소설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행위다. 각 부분의 아주 재미있는 일화들을 싹 빼고 이야기하면 그렇다는 말씀. 근데 몽땅 들어 낸 그 ‘이야기’들이 당신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을 걸?

 

 


8. 피터 애크로이드, <혹스무어>

 우리나라에서는 읽기 힘든 피어 애크로이드. 그래서 더욱 아쉽다. 색다른 방식으로 글을 쓴 애크로이드. 아마존 독자 평을 보면 완전히 극과 극이다. 극찬이던지 완벽한 악평이던지. 나는 이이의 글 쓰는 방식, 과거에 정말로 있었던 사실을 다시 반복, 결과적으로 왜곡된 형상으로 보여주는 형식이 정말 재미있다. 18세기 초엽, 런던 주변에 일곱 개의 성당을 지으라는 주문을 받은 니콜라스 다이어. 그가 여섯 개의 성당을 지은 건 역사적 사실이지만 애크로이드는 다이어에게 흑마법과 인신공양, 아니면 적어도 이단의 혐의를 뒤집어씌운다. 그리고 약 250년이 지난 런던에서 아주 먼 옛날 인신공양이 일어났던 자리마다 따라다니며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이의 해결을 위해 경찰청에서 파견한 형사의 이름이 혹스무어. 18세기 성당을 지은 다이어 씨의 수석조수 이름 역시 니컬러스 혹스무어. 세상에 역사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애크로이드의 변설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설키는 난장판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 직접 확인하시라.

 

 


9. 르 클레지오, <섬>

 

 원제목은 <검역>. 1891년 자크와 그의 아내 수잔, 동생이자 주인공인 레옹이 인도인들과 배를 타고 모리셔스 섬으로 항해하던 도중 배에서 콜레라와 천연두로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해 탑승 승객 전원을 모리셔스 섬 인근, 그러나 수영은커녕 작은 배로는 도저히 건너지 못할 거리에 있는 외딴 플레이트 섬에 내려다놓고 병이 물러날 때까지 간혹 가다가 부족한 양식만 던져놓고 갈 뿐 돌보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거의 완벽하게 야생의 상태가 되어 새로운 질서가 생기며 양심 또는 교양이라는 명분아래 숨어있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도 10대 후반의 백인 청년은 섬에 죽음을 맞이하러 온 백인 여인의 혼혈 딸과 애틋한 사랑을 시작해 점차 뜨겁게 발전해나가고. 그래, 역시 사랑도 본능이니까. 시간이 흘러 병이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자 모든 사람들은 이 둘의 사랑마저 끝날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을. 르 클레지오가 쓰는 애틋하지만 강렬한 사랑의 이야기. 역시 소설은 연애 소설이 최고다. 아니, 인간사 모든 문제에 사랑이야말로 정답이다.

 

 


10. 살만 루슈디, <광대 살리마르>

 이런 광대한 무대가 있을까. 알자스 지방의 부르주아 출판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대전 시절엔 레지스탕스로 활약하고, 드골하고는 궁합이 맞지 않아 이별을 고하고 미국으로 이민 가서 인도 대사, 스파이, 대 테러리즘 대책위원회 의장, 경제학자, 영화 제작자를 두루 걸친 부호 막시밀리안 오퓔스 씨가 글쎄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딸의 집 바로 앞에서 건장하고 늙은 유색인 자가용 운전수가 식칼로 목을 그어버려 거의 잘라진 목이 가죽과 힘줄 몇 점에 의해 대롱대롱 매달린 채, 거의 참수를 당하는 쇼킹한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머지않아 밝혀지겠지만 운전수가 바로 살리마르라는 이름으로 저 히말라야의 땅 카슈미르에서 예술인 가족의 일원으로 줄타기 솜씨를 뽐냈던 광대. 모욕을 당하면 죽음으로 이를 갚아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최대의 치욕으로 받아들이는 종족과 현대 유럽인의 법의식이 맞부딪혀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오퓔스 선생의 죽음 하나로 끝나면 말도 안 한다. 여기에 영원히 화해 불가능한 문화적 충돌은 계속되리라는 불행한 예언을 작가 루슈디는 거침없이 선언해버리니 이름하여 <광대 살리마르>라.

 

 

 


2019년 최고의 한 권.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저항의 멜랑콜리>

 정말 이 책을 읽으실 분은 일단 엉덩이가 질겨야 한다. 한 번 책상 앞에 앉으면 몇 시간 자리를 뜨지 않고 책을 꼬나볼 수 있는 독자라면 도전해봄직하다. 한 문장이 근 한 페이지에 이르러 문장 중간에 이르면 주어가 뭔지 벌써 헷갈릴 경우 기꺼이 문장의 처음으로 되돌아와 기껏 읽은 글을 다시 읽을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으면 더욱 좋다.
 살면서 되도 않는 책을 내고, 책 뒷면에 “카프카의 재림”이란 허풍을 떠는 걸 숱하게 보아왔으나, 이 책 <저항의 멜랑콜리>는 여태 허황된 광고라고 여겼던 수사 “카프카의 재림”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 카프카는 특정한 한 사람, 예를 들면 측량 기사나 K, 딱 한 명만 골라 후벼 파는 반면 라슬로는 이 책에서 시골에 있는 수상한 소도시의 그나마 다양한 사람을(어쩌면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만 다를 뿐. 어느 날, 마치 트로이 성문을 열고 들어온 목마처럼 서커스단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보여주겠다고, 하필이면 그 해들어 가장 추운 날을 골라 시내로 들어오면서 거대한 은유의 세계가 펼쳐진다. 라슬로의 은유가 무엇일까. 이걸 이해하기 위해 작품을 발표한 1989년에 대한 세계사적 의미를 찾아볼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 모두 감상자의 몫이다. 2019년 내가 읽은 최고의 한 권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책. 읽어보실 분의 건투를 빈다.

 

 

 

 

2019년 인상깊게 읽은 책 목록

 

도서명출판사/제작사저 자,  번 역 자
소피의 선택민음사윌리엄 스타이런, 한정아
사바나의 개미 언덕민음사치누아 아체베, 이소영
만티사존 파울즈, 김석희
도착의 수수께끼문학과지성사V. S. 나이폴, 최인자
독립기념일문학동네리처드 포드, 박영원
밤의 노예문예출판사미셸 오스트, 이재형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문학과지성사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보이노비치, 양장선
일곱 박공의 집민음사너대니얼 호손, 정소영
권력의 문제창비베시 헤드, 정소영
현기증.감정들문학동네W. G. 제발트, 배수아
바틀비와 바틀비들소담출판사엔리께 빌라―마따스, 조구호
프랑스어의 실종을유문화사아시아 제바르, 장진영
눈물의 아이들문학동네에이브러햄 버기즈, 윤정숙
저항의 멜랑콜리알마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구소영
캐서린 앤 포터현대문학캐서린 앤 포터, 김지현
느릅나무 아래 욕망열린책들유진 오닐, 손동호
퍼레이즈 엔드한국문화사포드 매독스 포드, 김일영
천사, 바빌론에 오다책세상프리드리히 뒤렌마트, 황혜인
분례기창비방영웅 지음
천상병 시선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천상병 지음, 박승희 엮음
허영의 불꽃민음사톰 울프, 이은정
심플 스토리민음사잉고 슐체, 노선정
캐스터브리지의 시장문학과지성사토머스 하디, 이윤재 
천사는 침묵했다창비하인리히 뵐, 임홍배
현란한 세상을유문화사레이날도 아레나스, 변선희
사랑, 판타지아책세상아시아 제바르, 김지현
소설열린책들제임스 미치너,윤희기
세피아빛 초상민음사이사벨 아옌데, 조영실
오에 겐자부로현대문학오에 겐자부로, 박승애
여름의 기억연극과인간루쥔, 오수경
멋진 신세계 / 연애대위법동서문화동판올더스 헉슬리, 이경직
침묵의 시간책세상루이스 마르틴 산토스, 박채연
에프민음사다니엘 켈만, 임정희
오르부아르열린책들피에르 르메트르, 임호경
시집보내다문학수첩오탁번
혹스무어솔출판사피터 애크로이드, 홍덕선
책세상르 클레지오, 홍상희
광대 샬리마르문학동네살만 루슈디, 송은주
우아한 연인현대문학에이모 토울스, 김승욱
2666열린책들로베르토 볼라뇨, 송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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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2-31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께 올해도 진짜 많이 배웠습니다. 폴스타프님 아니었으면 존재조차 모르고 스쳐갔을 좋은 책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그저 든든할 뿐입니다.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소서.....

Falstaff 2019-12-31 09:29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제가 syo 님의 재기발랄한 글을 통해 얼마나 많이 배우는데요.
그저 좀 무뚝뚝해서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

slobe00 2019-12-3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다렸습니다~ 폴스태프님의 추천 목록 조로록 적어두니 2020년도 든든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Falstaff 2019-12-31 10: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slobe님도 언제나 건강하세요!

브롬덴 2019-12-3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19-12-31 10:35   좋아요 0 | URL
아마추어의 감상을 늘 좋게 읽어주셔서 제가 더 고맙지요.
복 많이 받으세요!

포스트잇 2019-12-3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독서범주에서 벗어나 있던 책들인데, 덕분에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19-12-31 10: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 리스트에 있는 책 골라 읽으시고, ㅎㅎㅎ 결과는 제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

비연 2019-12-3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2019년에는 권수로 209권, 편수로 188편을 읽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좌절.
책의 면면도 다 훌륭하신. 몇 권 보관함에 숑숑 넣었습니다. 멋지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내년에 알라딘에서 더 자주 뵈어요^^

Falstaff 2019-12-31 11: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서재친구님들 덕분이지요. ^^

잠자냥 2019-12-3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한권의 책이 <저항의 멜랑콜리>이군요! 내년에 꼭 읽어보겠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책 소개 계속 기대할게요. 복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19-12-31 11:09   좋아요 0 | URL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매년 큰 상을 받을 후보로 지목되곤 한다는데, 읽어보니까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잠자냥 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

coolcat329 2020-01-02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님 리뷰 읽고 사둔 책이 몇 권 있습니다. 늘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올해도 잘 읽겠습니다^^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0-01-02 21:26   좋아요 0 | URL
엇..... 무슨 책일까... 궁금하다기 보다, 제가 완전 아마추어, 잘해봤자 딜레탕트 수준이라 겁부터 덜컥 나네요. 재미 없으면 어쩌나 싶어서요. ^^;;
올 한해 쿨켓님과 저한테 좋은 일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0-01-02 2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위에 탑10 중 프랑스어의 실종, 소설이 있구요. 그 외 기억나는 대로 써볼게요.🤭 레마르크 작품,토니 모리슨의 재즈,빌러비드,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키핑, 트레버 여름의 끝 등 입니다! 절대 실망 안 할 작품들이죠?

프레이야 2020-01-03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리 많이 읽으셨네요 폴스타프님 올해에도 즐거운 독서하시고 복도 많이 받으세요 ^^

Falstaff 2020-01-03 20:39   좋아요 0 | URL
하하하....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님도 건강하시고 나중에 말고 올 초에 로또 대박 한 번 나셔서 올해엔 세계일주 한 번 하세요!!!! ^^

프레이야 2020-01-03 20:5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늘 유쾌한 폴스타프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페이퍼 둘러보고 읽고 댓글은 여기에만 대표로 남겼네요. 우리나라 좋은나라 일주도 다 못했는데요 뭘 ㅎㅎ 아무튼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어디로든 튀겠지만요.

2020-01-0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8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666 세트 - 전5권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두 다섯 권, 5부, 본문 1,680쪽의 장편소설. 간 질환으로 세상을 뜬 후 볼라뇨의 유작으로 2003년에 발표했고, 2008년 영어 판이 나오자마자 미국, 영국의 권위 있는 거의 모든 매체가 2008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다고 했단다. 작품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의하여 발생하는 대량 살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솔직한 심정은 왜 이 책에 그리 찬란한 평가를 헌정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작품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과 북부 멕시코 국경지역인 산타테레사에서 벌어진 200건의 연쇄 여성 살해사건을 연결시키고 있다. 볼라뇨는 양차 세계대전의 여파를 멕시코의 공업도시이자 불법 월경을 도모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멕시코-미국 국경도시로 끌고 오기 위하여 1차 세계대전에서 다리 하나를 잃은 할아버지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삼촌을 둔 독일계 미국인 클라우스 하스를 등장시킨다.
 1부 <비평가들에 관하여>로 시작하는데 제목대로 네 명의 비평가들, 프랑스인 장클로드 펠티에, 스페인 사람 마누엘 에스피노사, 이탈리아 사람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피에로 모리니, 이렇게 세 명은 남자고, 영국인 리즈 노턴 혼자 여자다. 남자 세 명과 여자 한 명. 이들의 공통점은 독일 작가(로 여겨지지만 과연 실체 인물인지, 살았는지 이미 죽었는지도 판명되지 않은 인물) 베노 폰 아르킴볼디를 높이 평가하여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독일문학 세미나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한다는 것. 말 그대로 1부는 장편소설의 도입부로만 작용한다. 그런데도 세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비행기를 타고 런던과 파리, 마드리드, 간혹 베니스를 넘나들며 적극적인 삼각관계를 만들기도 하고, 아예 프랑스-스페인-영국이 삼국동맹을 맺어 셋이 한 침대에서 화끈한 밤을 보내기도 해서 딱 1부만 읽는다 해도 한 권의 완성된 작품을 읽은 듯하다. 볼라뇨니까. 적어도 상상력 하나는 지구 대표선수라서. 일찍이 볼라뇨의 상상력에 관해서 그의 전작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에서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남북 아메리카 문단에서 친 나치, 적어도 친 파쇼적 문학행위를 한 백과사전적 나열이 전부 볼라뇨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허구라는 걸 알아차린 건 거의 반 분량을 읽은 후였다. 그래 이 책도 1부를 읽어가며, 결국 이 작품은 수수께끼의 인물 베노 폰 아르킴볼디를 찾는 여행이 될 것임을 짐작하면서 무대가 어디까지 펼쳐질까, 그의 태가 묻힌 라틴 아메리카는 적어도 한 번은 나올 것이 분명하지만 벌써 유럽 각지까지 펼쳐놓은 판에 책의 분량을 감안하면 실로 방대하리라, 가늠할 수 있었다.
 베노 폰 아르킴볼디. ‘베노 아르킴볼디’까지 하면 틀림없이 이탈리아 남자다. 근데 난데없이 독일, 프러시아 귀족 가문의 성姓 앞에 붙는 관사 ‘폰’은 또 뭔가. 유럽인은 이 이름을 보면 이탈리아 출신의 16세기 보헤미아 궁정화가였던 실존인물 주제페(또는 요세프, 요세푸스) 아르침볼도(또는 아르침볼디, 아르침볼두스)를 떠올릴 수 있단다.
 아주 오래 전,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아가씨를 사랑하는 프러시아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불운한 시대를 골라 태어나 청년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용감하게 싸웠는지 어땠는지는 잘 몰라도 다리 하나를 잃고 귀향을 했는데, 집에 오자마자 그길로 외눈 아가씨한테 청혼을 해 가정을 이루었으며 1920년에 아들 한스, 1930년에 딸 로테, 우애 깊은 남매를 낳았다. 아들 한스 역시 불운한 1920년 생. 키가 무척 크고 관심사라고는 바다 속 해초뿐인 소년은 일찌감치 학문에 뜻이 없어 열세 살 때 학교를 때려치워버렸다. 열세 살이면 1933년. 우연히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한 해가 된다. 집이 가난해 식구 전부가 근방에 있던 남작 집안의 별장을 관리하는 하인, 하녀 일을 해야 했고, 별장에 자주 머물렀던 남작의 좀도둑 조카 후고 할더와 친분을 쌓게 된다. 후고 할더의 아버지 콘라드 할더는 후고의 외삼촌인 남작으로부터 인연이 끊긴 프랑스 화가로 하필이면 죽은 여자만 그린다고 한다. 독자가 이 대목을 읽을 때는 이미 산타테레사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연쇄살인이 한창 진행 중일 때라 무엇이든지 사건하고 이어 붙일 생각에 골몰해 있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이 화가는 아무 상관없다. 전적으로 볼라뇨의 장난기일 뿐. 책 곳곳에 이렇듯 볼라뇨의 가벼운 트랩이 묻혀 있지만 읽는 사람이 발견할 수도 있고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을 터. 그러거나 말거나 책을 읽는데 아무 문제도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되겠다. 하여간 한스가 점점 키 큰 거인으로 자라 어느 새 열아홉 살이 된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란 거창한 학살극을 시작한다.
 한스는 러시아 전선에 배치되고, 전쟁 중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로 말미암아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스는 언제나 가장 앞에서 돌진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적들도 공포를 느끼는지 결정적인 죽음을 선물하지 못하고 전쟁터라는 환경에선 중상이라 볼 수 없는 총상을 입어 러시아의 한 농가에 방치, 고립된다. 그곳에서 보낸 시절에 교묘하게 장치한 대피소를 발견하고, 대피소 안에서 농가의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1909년 생 보리스 아브라모비치 안스키라는 남자의 노트 몇 권을 주워 그의 일대기에 큰 관심을 쏟는다. 얼마나 큰 관심이냐 하면, 안스키가 쓴(것처럼 보이는) 소설 3부작 <진정한 새벽>, <진정한 황혼>, <황혼의 떨림>을 거의 외울 정도까지. 그러나 키 크고 힘 센 한스가 전쟁을 치루며 직접 죽인 사람은 딱 한 명이다. 그것도 러시아나 폴란드인이 아니라 독일인. 전쟁 막바지에 미군 포로가 된 한스는 수용소에서 유대인 500명 가운데 근 400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한 짐머라는 이름의 관리자를 만나, 유대인 학살에 관한 고백을 듣고는 우악스런 힘으로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만 것.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도망친 한스는 옛 친구라고 생각하는 후고 할더의 아파트를 찾아 갔으나 후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대신 그곳에서 정신과 몸이 건강하지 않은 아가씨 잉게보르크 바우어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소설 <뤼디케>를 완성한 후 ‘베노 폰 아르킴볼디’라는 이름으로 원고를 함부르크의 총명한 유대인 편집인에게 보냄으로써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것.
 그러나 작가가 로베르토 볼라뇨다. 이야기는 내가 여태 쓴 것처럼 직선으로 나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아르킴볼디의 가계를 멕시코의 변방으로까지 끌고 가야 직성이 풀리는 볼라뇨는 문제의 도시 산타테레사 대학의 철학교수 아말피타노 씨를 2부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시인 디에스테가 쓴 기하학 책 <기하학 유언>을 집 뜰 빨랫줄에다 널어놓게 해야 했고, 3부에서 뉴욕의 할렘지역에서 발행하는 작은 잡지사 <검은 새벽>의 문화부 흑인 기자 페이트 씨를 엉뚱하게 산타테레사에서 벌어지는 라이트헤비급 권투시합을 취재해오라고 출장 보내야 했다. 페이트 씨가 잡지사 공금으로 산타테레사에 출장까지 와 원래 목적인 권투시합은 제쳐두고 현지에서 날이면 날마다 몇 년째 벌어지는 여성 연쇄살인에 흥미를 느껴 싱겁게 끝난 권투시합의 기사를 송고하는 대신 연쇄살인의 심층 취재를 요구하면서 드디어 4부 <범죄에 관하여>로 넘어가 1993년 1월에 열세 살 소녀 에스페란사 고메스 살다냐 양의 강간살인을 시작으로 수백 건의 연쇄살인을 무차별적으로 조명한다.
 4부를 읽으면서 독자에 따라 호오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본다. 연쇄살인에 앞서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에서 성당의 성물 훼손 사건이 벌어진다. 남자 괴한이 침입해 처음엔 성당에 대량의 오줌을 누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막고자 하는 사제를 칼로 찌르기도 하고, 급기야 성당 내에서의 살인사건으로 번진다. 이어 조각해 세워놓은 성인과 성물을 파괴해 난장판을 벌이는데, 지역의 정신병원 원장인 엘비라 캄포스 박사는 이를 성물공포증 환자의 소행이라고, 도움을 요청한 형사 후안 데 디오스 마르티네스 씨에게 판정해주고, 자기보다 열일곱 살이 적은 그를 기꺼이 침대 파트너로 선정한다. 독자의 호오가 갈리는 건, 볼라뇨의 서술이 지극히 기사문 같은 형식을 띄지만, 아무리 건조한 서술이라고 해도 백 건이 넘는 훼손된 시체를 감상하면서 기분이 개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열두어 살부터 서른 살이 넘는 젊은 여성의, 다양한 방법과 행위로 강간당한 후에, 주로 목을 졸라 죽이기는 하지만 역시 다양한 방법과 기구를 써서 살해한 시신을, 검시 보고서 수준으로 무자비하게 써대는 작가의 요란한 필력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2666>을 최고의 볼라뇨 소설이라고 한다고 들었는데, ‘유작’이라는 프리미엄 효과도 조금은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위에서 말한 4부의 다양하게 훼손된 시신에 관한 묘사를 좋아하지 않는 부류라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마추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겠지만 <2666>보다는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볼라뇨가 문제적 작가라는 사실. 4부에서 벌어지는 백 건이 넘는 살인사건의 현장을 읽어보시라.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살인 사건의 현장을 나열할 수 있는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앞서 말한 <…… 나치문학>에서 진짜 생존했던 실존인물들인 줄 알았던 착각을 이 책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아, 진짜 경이롭다. 그리고 비위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양차 세계대전과, 독일과 소비에트에 의하여 발생한 유대인 학살, 여기에 멕시코 북부 국경지역 공업지대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을 연계시키기만 했지, 대량 학살이 왜 발생했는지에 관한 원인규명엔 하나도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 책에선 대량 학살이 문제일 텐데, 철학자들은 문제를 “해석”하려만 할 뿐이고 소설가들은 문제들의 연관관계를 “설명”하려 할 뿐이지 결코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왜 같은 문제가 멕시코의 연쇄살인에 이어서 파키스탄과 시리아와 미얀마의 로힝야 족과, 신장 위구르에서 여전히 발생하는지 세상의 모든 철학자들과 정치가, 부르주아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임도 역시 알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천재적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도 이들과 같은 한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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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2-30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 권을 읽고 나서 세 번째 권의 어디
선가 그만 멈춰 서 버렸습니다.

Falstaff님의 리뷰를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경자년 프로젝트에 다시 한 번 올려야지 싶
네요.

<야만적인 탐정들>도 세 번째 도전인데 지
난 가을에 시작해서 지지부진하고요.
읽을 책들은 산더미 같고, 시간은 부족하니
참... 그렇네요.

Falstaff 2019-12-30 10: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늘 사는 것이 그렇지요 뭐.
이렇게 긴 작품들은 독한 마음 먹고 시작해야 하잖습니까.

2019-12-30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20-01-08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야만스런 탐정들을 너무 잼있게 읽어서 기대를 크게 하고 현재 1권까지 읽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1권만으로도 중간에 끊겼다는 느낌은 안들어서 중단된 상태에서 좀 더 짧은 칠레의 밤을 읽었는데.. 여전히 야만스런... 이 제일 좋네요

Falstaff 2020-01-08 15:29   좋아요 0 | URL
저도 볼라뇨, 하면 무조건 <야만스런....>입니다. ^^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창비시선 385
문인수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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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생 시인이 2015년에 낸 시집이니 이 한 권으로 칠순잔치 했다 치면 되겠네. 해가 갈수록 나이든 시인들이 좋아진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거염내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으니 우리는 이런 노인들을 일컬어 노추老醜라고 한다. (왜 한글2010에 ‘거염’ 밑에 붉은 줄이 달리지? 부러워서 생기는 시기심이란 뜻의 순 우리말이다. 한글2010이 우리말에 약한 모양이다) 시인들? 그들이라고 다를까. 같은 사람인데. 그렇지만 이들은 평생 우리말을 다듬어 자기 생각을 펼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 말, 특히 그걸 문자로 기록해놓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충분히 알고 있어서 적어도 자신의 ‘시’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면 사물이나 사람, 사건을 바라보는 눈길이 그렇게도 부드러워진다. 작은 일에 고마워하고, 감격하고, 옛일을 회상하고, 그 작은 일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미소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이런 시들은 아무리 읽어도 물리지 않는다. 시집을 냈을 때가 만 70세면 이제 문인수는 노인이다. 노인의 시. 진짜 시인은 스무 살 때까지 끼적인 낙서를 찢어버리고 상아 장사를 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다고? 진짜 시인은 상아 장사와 무기밀매를 하고 또 하고, 하다가 또 하다가 진절머리가 나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 마루 밑 섬돌 아래 핀 잡초를 보고 자붓하게 웃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시집의 표제,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라는 건 무슨 뜻일까. 표제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오늘도 내뺀다.” 시인은 오랫동안 대구의 동부시외버스 정류장 부근에서 살았는데 딱히 갈 곳도 없는 채로 동네에서만 살았던 터라 동네라면 골목골목 모르는 곳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문득 “눈에 집히는 대로 아무 행선지를 골라” 버스에 올라탄다. 왜? 쉽다. “아무 데나 가보려고.” 강릉까지 가려고 강릉 가는 차표를 끊고는 훨씬 못 미쳐 묵호에서 내리기도 하고, 근데 묵호가 어딘 줄 아셔? 요즘엔 동해시에 편입되어 묵호동이란 지명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예전에 ‘묵호’라면 큰 항구였다, 울진 가려다가 변덕이 나서 울산 방어진 가는 버스를 타기도 하고 이리저리 막무가내로 돌아다녔던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집을 다 읽어보면 이이의 발품은 경상도 해변지역은 물론이고 전국각지, 전라남도 해변까지 국토 전반을 망라하는데, 그래서 표제이자 시의 제목인 ‘이곳’은 자신이 터를 잡고 사는 지역쯤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라는 말은 시인이 현재 이동 중, 혹은 다른 곳에 잠깐 발을 멈춘 상태 정도라고 해석이 된다. 그래 집을 나서 먼 타관에 홀로 있으면 나를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낯선 일별, 선의의 일별들도 빽빽한 것이 단박에 눈이 들어오고 그래서, “나랑 무관해서 편하다.”
 얼마나 좋아. 언제부터 시가 고독과 고통과 죽음과 우울의 늪지대에서 허덕였기에 수많은 시인들이 농도 짙은 절망의 방사능을 가뜩이나 우울한 세상에다 방사하고 있었느냔 말이지. 그런 시들을 읽다가 이렇게 문득 길을 나서서 나하고는 관계없는 사람들 덕택에 편하다고 하는 시를 읽으면 괜히 내 마음까지 편해진다. 게다가 문인수의 시에서는 절대 경박하지 않은 웃음 코드까지 곳곳에 섞여 있어서 여차하면 지뢰 밟듯이 펑펑 터질 거 같지? 그 정도는 아니고 시를 읽다가 가볍게 픽, 웃게 만들어준다. 참 좋다. 뭐든지 과하지 않은 자잘한 즐거움을 주는 시. 비록 뇌리에, 아니면 가슴에 비수처럼 팍 꽂히는 시 한 수가 없다 해도 그게 대수인가. 시 말고도 지금 세상엔 팍팍 꽂히는 날카로움이 너무 많아 몸 사리느라 뼈마디가 녹작지근해마지 않는데 말이지. 예를 들어 <뻰찌>라는 시를 보면, 뻰찌라고 함은 시인의 고향친구 여중환 선생을 말하는 바, 일찍이 전기, 전자공을 다 합해 전공電工이라 일컫는데, 인생동안 뻰찌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왼쪽으로 돌리길 수백만 차례라 손아귀 힘이 가히 장사였던 모양이다. 그러다 어느 날 사기꾼한테 뻰찌가 물려버려 탈탈 탈린 빈손이 돼버렸다지? 이 친구가 오래 전 시인의 어머니 혼자 사는 집에 한사코, 한사코, 진짜 한사코 무료로 전기공사를 해주어 시인이 “고맙다고 손을 내밀었을 때, 그가 덥석 마주 잡았을 때, 아팠다. 손가락이 몽땅 분필 동강 나듯 몹시 아팠다. 그것은 내 불효를 잡죈, 악문 것이었을까. 나는 그때 / '아프다! 씨발놈아 ―'" 했던 거 같단다. 그리고 곧바로 뭐라고 노래하느냐 하면, "뻰찌는 요새 뭘 잡아먹나."
 시인의 나이 70에 나온 시집이니, 시는 60대 후반에 썼겠다. 이 가운데 어떤 시가 있느냐 하면, 조묵단 여사가 시인의 어머니 존함인 모양이다.




 조묵단전(傳)
 나비를 업다



 나 혼자 산소엘 와 넙죽 엎드리는데
 잔디를 짚는 손등에 웬 보랏빛 알락나비 한 마리 날아와 살짝 붙는다. 금세
 날아간다. 어,

 어머니?

 ……

 다만 저 한잎 우화, 저리 사뿐 펴내느라 그렇듯
 한평생 나부대며 고단하게 사셨나.

 절을 다 마치고 한참 동안 앉아 사방 기웃기웃 둘러보는데, 없다. 산을 내려오는데
 참, 너무 가벼워서 무겁다. 등에,
 나비 자국이 싹 트며 아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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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내년에 읽을 책들을 구매해야 하는데 이거 참 곤란한 일을 만났습니다. 반갑지만 즐겁지 않은 책들이 몇 권 있네요. 책을 쓴 작가들의 전작이 쉽지 않아 다시 그들의 책을 읽게 된 찬스는 반가우나 정말로 다시 곤욕을 치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즐겁지 못한, 애증의 작품들입니다.

 

 먼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단편집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전에 이이가 쓴 두 권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으니 <러시아 인형>과 <모렐의 발명>. 카사레스는 일찍이 1930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어느 카페에서 문제적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나 친구 먹기로 하고 60년간 교류를 했던 라틴 아메리카 고유의 환상문학의 대표선수이긴 한데, 말이 좋아 환상문학이고 환상리얼리즘이지, 제 독서 노트에는 '아몰랑 주의' 소설의 선두주자라고 적혀 있는 골아픈 작가입니다. 그것도 많고 많은 아몰랑 주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생과 사, 환상과 실재를 가장 애매하게 넘나드는 작가군의 선두에 서 있는지라 선뜻 읽어볼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안 읽으면 될 것을 왜 엄살이냐 하면, 그렇다고 그냥 패스하고 넘어가기엔 또 과하게 매력적인 작가란 말씀이지요. 근데 이건 적어도 앞으로 반 년 안쪽으로 읽게 될 거 같습니다. 다음 두 권의 책과 비교해서는 그래도 갈등이 덜하기 때문이지요.

 

 

 막스 프리슈, <슈틸러>

 

  막스 프리슈, 혹은 프리쉬의 작품 역시 두 편을 읽어봤습니다. <몬타우크>와 <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사실 진짜 겁나는 사람은 막스 프리슈라기보다 한시절 그의 애인이었으며 함께 독일의 47그룹 멤버로 눈썹을 휘날리던 잉에보르크 바흐만입니다만 프리쉬도 만만치 않습지요. 물론 누보 로망의 대표선수라고 하는 알랭 로브그리예 만큼은 아니지만 건조한 문장으로 삭막한 인간관계를 그리는 프리슈의, 무엇보다도 두꺼운 책을,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을지, 읽는다고 해도 과연 프리슈가 말하고자 하는 걸 알아들을 수 있을지, <슈틸러>의 책 표지만큼 겁납니다. 잠깐 딴 생각하면 맥을 놓쳐버려 앞쪽으로 몇 페이지나 되돌려야 하는 수고를 또 해야 할까 말까, 꽤나 골치 아픈데, 사실 작가가 자기 이름 하나 가지고 그토록 유혹의 그물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겠습니다. 이 책은 하다못해 독자 서평도 하나 달리지 않아 고민은 더 깊어 갑니다.

 

 

헤르만 브로흐, <현혹>

 

 카사레스와 프리슈는 브로흐에 비하면 이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몸서리치는데, <몽유병자들>을 읽으면서 그 책을 읽기로 하고 손에 든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요. 아무리 읽어도 진도는 나가지 않지, 문단은 끝나지 않지, 브로흐 선생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지도 도통 모르겠지, 읽는 행위 자체가 악몽이었습니다. 그래 <몽유병자들>을 며칠에 걸쳐 다 읽고나서 내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몽유병자들>을 완독했다, 한 문장도 빼지 않고 다 읽었다는 사실 하나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책의 내용이 완벽하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읽은 건 <몽유병자들>에 데서 어디 이것도 그런지 딱 한 편의 브로흐만 더 읽어보겠다고 결심을 해서였는데, 그건 또 생각외로 편안하게 읽었으며 어떤 내용인지도 훤합니다. 이 책 <현혹>이 <베르길리우스...> 정도만 된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선뜻 사서 읽겠는데, 이 책도 독자 서평 하나 올라오지 않네요. 알라딘 고수님들의 훈수가 딱 필요한 시기입니다. 아무쪼록 도움의 말씀 한 마디 꽝! 올려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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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엄마 2019-12-31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베르길리우스보다 현혹이 더 잘 읽혔습니다. 물론 장황한 서술이 없지 않지만 훨씬 드라마적 요소가 많아요. ^^

Falstaff 2019-12-31 08: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얼른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답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mellslikeyou 2020-01-06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슈틸러 생각보단 난해하지 않고 볼 만해요.

Falstaff 2020-01-21 17:54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얼른 사서 읽어야겠네요. ^^ 복 받으실 겁니다!!
 
감상 소설
양선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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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개의 단편소설을 실은 단편선. 2014년부터 2017년에 걸쳐 각종 잡지에 실린 작품들을 뽑은 책인데, 작가가 1990년생이니 만 24세부터 27세까지, 가장 혈기왕성하고 의욕적이며 반면에 일생 중 가장 미친 듯하면서도 아직 설익은 상태일 때 썼을 것이다. ‘설익다’는 것은 욕이 아니다. 그만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고, 사실 또 남자들이 철이 늦게 드는 편이니.
 양선형. 이 작가의 이름은 기억해두어야겠다. 왜 젊고 젊은 시절에 이런 소설방식을 택해 글을 쓰게 됐을까. 열 편의 작품이 모두 뇌 안에서의 화학작용에 의존하여 쓴 것처럼 보인다. 그래 하나도 빠짐없이, 작품을 이해하고 말고는 다음으로 하고, 읽어가기가 쉽지 않다. 첫 번째 실린 <해변생활자>는 이이의 데뷔작으로 2014년 『문장웹진』에 실렸다고 한다. 그의 나이 24세 때. 주인공은 해변에서 금속탐지기를 백사장에 꽂아 동전이나 시계, 귀금속 등을 찾아 챙기는 회사의 직원이며, 두 번째 작품 <스나크 사냥>은 ‘시설’의 내부에 살고 있는 날짐승과 길짐승을 총칭해 부르는 ‘스나크’들을 사냥해 와 햄버거 등의 패치로 팔아넘기는 것처럼 보이는 스나크 사냥꾼이다. 그런데 진짜로 읽어보면 이들이 정말 동전을 찾고 있거나 스나크를 사냥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그저 작가의 허황한 상상 속의 일인지 독자의 뇌가 마구 헝클어져버리고 마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이런 낯선 글쓰기를 읽는 행위는 첫 작품에서 경보가 울리고, 두 번째 작품에서는 경종소리가 만발한 가운데, 젊은 작가 특유의 아직 세공되지 않은 거칠고 비위생적인 표현이 적나라해서 더 이상은 읽어주지를 못하겠다 싶은 위기상황을 맞다가, 세 번째 단편 <생활과 L의 유령>에 오면 그런 건 작가의 작품에서만 읽을 수 있는 특징으로 인정하면서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단계로 접어든다.
 다시 고개를 드는 의문. 왜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쓰게 됐을까. 지방 대도시 출신의 1990년생이면, 적어도 열 살부터 이들, 특히 남자 아이들의 삶은 컴퓨터/인터넷 게임이란 큰 틀 안에서 이전 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정형화, 디지털 화한 드라이한 성장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자연보다는 인공, 직접 체험보다는 허구적이고 폭력적인 상상 체험을 경험했으리라. 그리하여 이들에게는 “비밀은 언제나 사실을 압도”하고, “서술敍述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확신이란 늘 현상보다 늦게 찾아오는 법”이 된다. 책 전반에 걸쳐 특히 ‘서술’에 관해 작가의 초점이 맞춰지는 일이 많다. 위에 인용한 “서술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을 읽으며 나는 상당히 정확한 포착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이제까지의 거의 모든 작가가 주장해왔던 것(서술이 자신의 내면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면 서술을 하는 작가의 실력을 의심해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문장일 수도 있으나, 예를 들어 표정이 없는 명함판 사진을 보고 해당인물에 대하여 아무리 현미경적 서술을 시도해봤자 인물이 사진을 찍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기에 나는 양선형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누구나의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이없는 환상이나 허무맹랑한 상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을 작품의 소재로 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직 상상, 공상, 망상 속에서만 잔혹한 방법으로 죽임을 당해 까마귀가 눈알까지 파먹은 다음인데도 다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몸으로 등장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그걸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뭐 물론 당연히 엽기이긴 하다. 게다가 양선형의 작품 몇 개는 묘사가 위생적으로 말해 더럽거나, 잔혹한 화면이 떠올라 팍 책을 덮을 생각까지 하게 만들기까지 하니 엽기는 엽기고,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것처럼 마음 약한 나는 이런 거 싫어해서 읽기가 퍽 곤란했다.
 작품들을 읽어나가면서 조금 걱정이 들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경험은 했으되 그것을 확대 변주하며 오직 뇌 안에서 새로이 담론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도대체 언제까지,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작품 속에 생활이 들어있지 않은 상태로 작가로서의 생명은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까가 그랬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 2017년 작품 둘, <감상 소설>과 <현상 소설>에 접어들면 당연히 정상적 삶을 노래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틀은 상당히 보통의 삶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감상 소설>에서는 보위부에 의하여 B급 내란 음모 혐의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퇴락한 교도소에서 출감한 정치범, <현상 소설>에서는 퇴락한 바닷가 펜션에 놀러와 하룻밤 만족스러운 사랑을 나눈 젊은 여자와 남자. 물론 마지막까지도 양선형은 사람, 등장인물들이 진짜로 행위한 내용이 아니라 등장인물 또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만발하게 피어난 상상/환상/환각 속 행위가 주된 내용이긴 하지만. 이렇게 작가는 조금씩 변해가리라. 그리하여 언젠가는 지금보다 훨씬 세련된 한 장르를 만들어내 이이를 추종하는 한 무리의 후배들이 생겨날지 누가 알리. 언젠가는. 어쩌면.
 작가의 나이 이제 서른. 앞으로 무궁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거 하나로도 정말 질투할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걸 작가 본인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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