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년에 읽을 책들을 구매해야 하는데 이거 참 곤란한 일을 만났습니다. 반갑지만 즐겁지 않은 책들이 몇 권 있네요. 책을 쓴 작가들의 전작이 쉽지 않아 다시 그들의 책을 읽게 된 찬스는 반가우나 정말로 다시 곤욕을 치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즐겁지 못한, 애증의 작품들입니다.

 

 먼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단편집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전에 이이가 쓴 두 권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으니 <러시아 인형>과 <모렐의 발명>. 카사레스는 일찍이 1930년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어느 카페에서 문제적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나 친구 먹기로 하고 60년간 교류를 했던 라틴 아메리카 고유의 환상문학의 대표선수이긴 한데, 말이 좋아 환상문학이고 환상리얼리즘이지, 제 독서 노트에는 '아몰랑 주의' 소설의 선두주자라고 적혀 있는 골아픈 작가입니다. 그것도 많고 많은 아몰랑 주의 작가들 가운데서도 생과 사, 환상과 실재를 가장 애매하게 넘나드는 작가군의 선두에 서 있는지라 선뜻 읽어볼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안 읽으면 될 것을 왜 엄살이냐 하면, 그렇다고 그냥 패스하고 넘어가기엔 또 과하게 매력적인 작가란 말씀이지요. 근데 이건 적어도 앞으로 반 년 안쪽으로 읽게 될 거 같습니다. 다음 두 권의 책과 비교해서는 그래도 갈등이 덜하기 때문이지요.

 

 

 막스 프리슈, <슈틸러>

 

  막스 프리슈, 혹은 프리쉬의 작품 역시 두 편을 읽어봤습니다. <몬타우크>와 <나를 간텐바인이라고 하자>. 사실 진짜 겁나는 사람은 막스 프리슈라기보다 한시절 그의 애인이었으며 함께 독일의 47그룹 멤버로 눈썹을 휘날리던 잉에보르크 바흐만입니다만 프리쉬도 만만치 않습지요. 물론 누보 로망의 대표선수라고 하는 알랭 로브그리예 만큼은 아니지만 건조한 문장으로 삭막한 인간관계를 그리는 프리슈의, 무엇보다도 두꺼운 책을,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을지, 읽는다고 해도 과연 프리슈가 말하고자 하는 걸 알아들을 수 있을지, <슈틸러>의 책 표지만큼 겁납니다. 잠깐 딴 생각하면 맥을 놓쳐버려 앞쪽으로 몇 페이지나 되돌려야 하는 수고를 또 해야 할까 말까, 꽤나 골치 아픈데, 사실 작가가 자기 이름 하나 가지고 그토록 유혹의 그물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겠습니다. 이 책은 하다못해 독자 서평도 하나 달리지 않아 고민은 더 깊어 갑니다.

 

 

헤르만 브로흐, <현혹>

 

 카사레스와 프리슈는 브로흐에 비하면 이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몸서리치는데, <몽유병자들>을 읽으면서 그 책을 읽기로 하고 손에 든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요. 아무리 읽어도 진도는 나가지 않지, 문단은 끝나지 않지, 브로흐 선생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지도 도통 모르겠지, 읽는 행위 자체가 악몽이었습니다. 그래 <몽유병자들>을 며칠에 걸쳐 다 읽고나서 내가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몽유병자들>을 완독했다, 한 문장도 빼지 않고 다 읽었다는 사실 하나 말고는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책의 내용이 완벽하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읽은 건 <몽유병자들>에 데서 어디 이것도 그런지 딱 한 편의 브로흐만 더 읽어보겠다고 결심을 해서였는데, 그건 또 생각외로 편안하게 읽었으며 어떤 내용인지도 훤합니다. 이 책 <현혹>이 <베르길리우스...> 정도만 된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선뜻 사서 읽겠는데, 이 책도 독자 서평 하나 올라오지 않네요. 알라딘 고수님들의 훈수가 딱 필요한 시기입니다. 아무쪼록 도움의 말씀 한 마디 꽝! 올려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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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엄마 2019-12-31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베르길리우스보다 현혹이 더 잘 읽혔습니다. 물론 장황한 서술이 없지 않지만 훨씬 드라마적 요소가 많아요. ^^

Falstaff 2019-12-31 08: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얼른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답글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mellslikeyou 2020-01-06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슈틸러 생각보단 난해하지 않고 볼 만해요.

Falstaff 2020-01-21 17:54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얼른 사서 읽어야겠네요. ^^ 복 받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