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즈워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0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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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 읽었다면 환장하게 재미있었겠다. 나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는데, 이 작품 이후 루이스는 그저 그런 소설만 쓰다가 후배 미치너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과대 평가되어 있는 작가˝ 네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되는 영광을 누린다. 나머지 세 명이 누군고 하면, 헤밍웨이, 펄 벅, 스타인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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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27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명 중에서는 가장 덜 유명하군요. ㅎㅎ

Falstaff 2022-08-27 21:26   좋아요 3 | URL
네 명의 공통점은, 전부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겁니다.
이이의 작품이 그래도 재미 있더라고요.

반면에 가장 위대한 미국의 소설가 네 명으로 꼽은 사람들은요,
허먼 멜빌, 스티븐 크레인, 이디스 워튼, 윌리엄 포크너인데요, 포크너만 노벨 상을 탔군요. 전 스티븐 크레인이 쓴 책은 한 권도 못 읽어봤습니다. ㅋㅋㅋ

바람돌이 2022-08-27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노벨상 ㅎㅎ 헤밍웨이 펑벅은 다들 워낙 오래 전에 읽은지라 지금 뭐라고 판단을 못하겠네요 ㅎㅎ
스티븐 크레인은 처음 듣습니다. ㅎㅎ

다락방 2022-08-28 0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두었는데 재미있다고 하셔서 너무 안심이 됩니다! ㅎㅎ

Falstaff 2022-08-28 11:18   좋아요 2 | URL
다락방 님 읽으시면 좀 빡치는 부분도 없지는 않을 듯합니다만, 전향적으로 생각하시면 통쾌한 부분도 그만큼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8-28 0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 작품 정도는 좋은 작품을 낸 작가들!
미치너의 평가는 그 작가들이 가진 사유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위에 말씀하신 네명의 위대한작가와 갈리는 지점이 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를 잘 만나는것도 작가의 운이란 생각이 드네요.^^
미치너 역시, 그의 작품 <소설> 오래 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ㅎ
저도 장바구니에

Falstaff 2022-08-28 11:21   좋아요 3 | URL
제가 싱클레어 루이스를 아마 네 권 읽었을 겁니다. 그중 제일 재미난 건 <배빗>이었고, 이 책이 바로 뒤 정도 됩니다.
미치너의 평가니까 절대적 판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의 성향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겠지요.
저는 혹시 제가 ‘미치너‘라고 써서 ‘미친놈‘이란 의미의 미치....너라고 이해하시는 분 계실까봐 조마조마 했다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

coolcat329 2022-08-28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미스터 렌>골드문트님 글 읽고 사뒀는데 재미로는 3등인가요?
미치너의 소설도 골드문트님 글 읽고 사뒀고...정말 저의 독서 멘토세요. 😅

Falstaff 2022-08-28 18:44   좋아요 1 | URL
윽.
넵. 우리나라에 번역한 책 가운데서 3등인데요 여태 나온 책이 네 권이예요. ㅜㅜ
그래도 그게 싱클레어 루이스의 장편 데뷔작이니까 감안해서 보시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이거 참.... 왜 캥기는 마음이 자꾸 드는 거랍니까? 흑흑......
 
불가능 제안들 2
조르주 바타유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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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내 눈과 귀에 조르주 바타유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시인, 소설가, 사회학자, 인류학자, 기타 등등이라는, 거의 모든 지적 전문가의 타이틀을 지닌 이름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한꺼번에, 아니면 그동안에는 내가 관심이 없어 그냥 지나쳐서 몰랐던, 바타유라는 이름이 쏟아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사전 정보 하나도 없이 그냥 바타유라는 이름 하나 보고, 그의 저작 가운데 분량이나 책값으로 보아 별로 부담이 없는 <불가능>을 사서 읽었다.

  생몰연대가 1897~1962인 조르주 바타유는, 오베르 비요에서 전직 세금 징수원인 조세프-아리스트리드 바타이유와 안토니에트-아글레 투르나르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출생 당시에 아버지는 신경매독에 의한 마비증세를 겪고 있는 맹인이었단다. 이런 집의 가정주부가 어째 정상일 수 있을까. 어머니는 또 조울증이 있었다 하니 초장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다고 할 밖에. 어쨌거나 한 살 때 랭스로 이주해 세례를 받고, 학교를 다녔다. 소년 바타유는 1914년 가톨릭으로 개종해 9년 동안 헌신적으로 종교에 몰두, 잠깐 신학교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곧 그만 두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직업을 갖기로 결심, 기독교를 포기한다. 이후 파리 국립 고문서 학교에 입학, 공부 잘 해 졸업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많은 도서관에서 경력을 쌓고, 오를레앙 도서관장으로 일할 당시에, 숟가락 놨다.

  이렇게 소개하면 비록 초년 팔자가 기구했을지언정 똑똑한 머리 하나로 인생 잘 산 지식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게 맞기도 하다. 이 책 <불가능> 딱 한 권을 읽어서 이제 바타유에 관해서 알아가는 단계이지만, 일찍이 “사드 전집”과 <O 이야기>를 번역한 바 있는 역자 성귀수가 딱 한 문장으로 바타유를 정의한 것은 이렇다.


  “사드의 적자라 불러도 좋을 바타유는 매음굴을 전전하며 글을 썼던 에로티슴의 소설가였다.”


  이 문장이 책을 열면 목차 바로 다음 페이지 “작가에 대하여”에 실려 있어 독자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음. “사드의 적자”라면 분명 무지막지하게 더러울 터이고 “에로티슴의 소설가”라면 매력적일 것인데, 과연 어느 쪽일까, 궁금하지 않겠는가 말이지.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넘어가자. 내가 읽고 판단한 사드는 성적 환타지와 읽는 행위를 통해 엑스터시를 제공하는 에로티즘의 작가가 절대 아니다. 그의 글은 에로틱하기는커녕 솔직하게 말해, 드러워서 읽어주지 못하겠다. 돈 주고 사드의 책을 사서 읽느니 차라리 인터넷을 뒤져 야설을 몇 편 읽는 것이 낫다. 야한 장면 많이 나오는 소설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니까 알아서들 판단하시라. 아, 미처 기억을 하지 못했다. 성귀수가 또 한 편의 드러운 섹스 소설인 <O 이야기>의 번역자였다는 것을. 사드의 적자, 아니, 사드의 맏딸은 바타유가 아니라 <O 이야기>를 쓴 폴린 레아주다. 스스로 남성의 성 노리개가 되기 위해서 자의에 의해 외음부에 두 개의 큼지막하고 묵직한 자물쇠를 피어싱하는 이야기를 쓴 인류.


  그럼 <불가능>은? 이건 사드나 폴린 레아주 같은 구토유발의 저급한 외설이 아니다. 뭐 조금 그런 장면도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지극히 낮은 수위이며, 대체로 은유적 표현이 섞여 있어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것도 몇 번 되지 않는다. 역자나 편집자는 목차 바로 뒤 페이지에 사드의 적자라는 이야기를 써서 책을 좀 팔아볼까, 했겠지만 이건 에로티슴이라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현타”에 관한 작품이지 싶다. 굳이 은어가 아닌 표준어로 말하면 “허무” 정도? 물론 현타나 허무를 유발하는 매개는 여성이고, 몸의 결합을 포함하는 사랑이고, 질투일 수도 있으며, 죽음도 포함한다.

  주인공 ‘나’는 B라는 애인을 두었고, 당연히 성적 접촉도 했지만, 성castle을 소유하고 있는 B의 키 작은 대머리 아버지한테 집안의 재산을 바라고 접근하는 나쁜 종자라는 이유로 무지하게 두드려 맞은 경험이 있다. 게다가 B는 가톨릭 사제인 A와 성접촉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B가 A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을 봤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겠다. 이게 ‘나’의 판타지인지 정말로 A가 보고 있는 앞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B를 ‘나’가 자극한 적이 있는지.

  하여간 한 겨울, B는 어찌어찌 해서 ‘나’를 떠나 아버지가 사는 V에 있는 성으로 갔다. 아버지는 아직 ‘나’와 헤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 B의 오른손 손가락 하나를 완전히 뒤로 꺾어 부러뜨려버렸다. B가 왼손으로 쓴 편지를 받은 ‘나’는 겁나게 추운 눈 오는 밤에 B가 감금된 성을 향해 가다가 기진해 쓰러져 죽어가는 찰라, A와 함께 집을 나선 B의 눈에 띄어 목숨을 구해, 죽는데도 실패하고 만다.


  뭐 이런 이야기인데, 만일 이게 바타유의 대표작이라면, 글쎄 잘 모르겠다. 혹시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는 전 세계의 몇몇 나라 사람들이 바타유를 마테오, 마르코, 루크, 요한 등 열 몇 남자의 초등학교 동창 정도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문화적 환경과 완전히 다른 문자체계를 가진 우리나라 독자들이 바타유에 열광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뭐 이런 견해가 내가 문학적으로 무식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그렇다는 말이다.

  바타유, 될 수 있으면 우연이라도 앞으로 서로 마주치지 말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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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26 09: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골드문트 님, 바타유의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써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제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그전에 바타유 책을 읽다가 포기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용기가 나질 않더라고요. 제가 읽다 던져버린 책은 <눈 이야기> 였는데, 섹스 중에 오줌 싸는.. 뭐 여튼 너무 참을 수가 없어져서 ㅋㅋㅋㅋ 던져버렸거든요. 그래도 바타유 란 이름 많이 들리니까 한 편쯤 다시 도전해보고 재판단 해야하지 않나...하고 미루던 이즈음, 골드문트 님이 마치 운명처럼! 이렇게 리뷰를 똭! 써주셔서 저는 너무나 감사하고 좋습니다. 게다가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는 리뷰여서 너무 좋네요.

저는 <o의 이야기>를 비디오방에서 영화로 보다가 끝까지 못보고 중간에 나왔습니다.

이만 총총.

Falstaff 2022-08-26 12:37   좋아요 2 | URL
이제야 로그인 합니다. 어제 25도 쐬주 한 병에 발동 걸리는 바람에 와인까지 한 병 반, 꽐라 됐다가 비실비실.... 해장으로 동태탕에 쐬주 한 병 까니까 살 만합니다. ㅎㅎㅎ
윽, 전 이 <불가능> 읽기를 잘한 거 같군요. 섹스 중 오줌 싸는.... 근데 그게 가능한가요? 남자는 거기에 피가 꽉 차 있어서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여자는 모르겠네요... 하여간, 하여튼 이런 재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유명세를 탈 수 있었는지 그것도 미스테리오조합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님께 도움이 되는 독후감이 돼서 진심으로 제가 다 고맙습니다.

- 2022-08-26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느 순간 바타유바타유 하길래, 바타유 무엇? 하던 차에 이렇게 써주시니 궁금하네요 ㅋㅋㅋ edps 좋아하는(?) 사람에게 은유와 현타는 ㅋㅋㅋ 연구해볼만한 무엇인 것!

Falstaff 2022-08-26 12:43   좋아요 2 | URL
아이고, 이건 edps도 별로 나오지 않고 편집도 억지로 페이지 수 늘리려 별 꼼수를 다 부렸는데, 현타는 확실하지만요, 은유는 무슨.. 별 같지도 않은 장치로 메타포라고 주장하는 수준입니다. 연9해보실 필요 없을 거 같은 기분입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8-26 1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타유, 한국에서 특히 과대포장된 인물 같아요. 이른바 지식인들이 남들과 다른 척, 현학적인 척 하고 싶을 때 자주 끌어다 쓰는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로티즘> 하도 이야기하기에 읽어봤는데, 대체 이게 뭐꼬? 하고 현타가 왔었습니다.

그나저나 사드랑, <O 이야기>의 폴린 레아주 드러운 소설이라는 데 동의합니다....ㅋㅋ

Falstaff 2022-08-26 12:42   좋아요 2 | URL
정말 왜 이 사람을 거들먹 거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이게 이번에 책을 읽고 얻은 유일한 성과입니다. 저 역시 소위 ˝지식인˝ 또는 ˝책 좀 읽은 인간˝의 글 속에서 바타유를 자주 발견해, 아직도 바타유 한 권 읽지 않은 자괴감이 들어 선택을 했다가 똥 밟은 심정입니다.

ㅋㅋㅋㅋ 저는 아직도 화딱지가 나는 건, 어째 한 번도 까틀린 M이 얘기하듯 발뒤꿈치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걷어채여본 적이 없느냐 하는 겁지요.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2-08-26 18: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타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말 여기저기 자주 나오더라구요. 근데 골드문트님 글과 댓글들 넘나 재밌습니다. 근데 아버지가 b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다니 사디스트인가요? 내용이 정상이 아니네요.

Falstaff 2022-08-26 21:44   좋아요 1 | URL
19세기 식 완전 가부장적 사이코 귀족 나부랭이 정도입니다. 소설에 자주 나오는 괴물 아버지,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 책에도 무지하게 흔한,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고기 안 먹는다고 딸의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그런 아빠 정도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 시인선 276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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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은영. 1970년 3월 17일(전날인 16일은 엄마 생일, 전전날은 여동생 생일)에 대전에서 출생한 개띠 시인, 서양철학자,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철학상담 전임교수. 2000년 서른 살 되던 해에 『문학과 사회』를 통해 데뷔해 2009년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2010년에 현대문학상 시부문, 2013년에는 천상병 시문학상과 시부문 대산문학상으로 연타석 홈런을 친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은 이이가 낸 첫번째 시집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 낼 니체를 비롯한 서양철학서, 문학과 철학 상담 관련 도서 등을 통틀어도 첫번째 저작이라는 개인적 기념비가 된다. 2000년이면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아마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이이의 박사 논문 <니체와 차이의 철학>이 통과된 것이 2005년 8월이니까, 박사를 준비하는 도중에 덜컥, 시인으로 데뷔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계간지 2000년 봄호면 1월에 등단, 앞으로 얼마나 더 공부를 해야 박사 학위를 받고, 행운의 별이 얼마나 반짝여야 대학의 전임교수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서른 살 당시엔 모두 까마득했을 터. 공부를 더 할까, 전업 시인이 될까, 잠깐 고민을 했을 수 있겠다. 그리하여 진은영의 서른 살은 이러했다.



  서른 살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전문)



  시를 요약하면, 인생의 반을 살았건만 여기서 정처를 잃었다는 거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벼랑 위의 서른 살. 게다가 이제부터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도 없다는 얘기. 이후 자신이 저지를 악덕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의 어느 블로그를 보니까 최승자가 진은영더러 “드디어 나를 정말로 잇는 시인이 나왔다.”라고 말했다는데,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최승자 역시 <삼십 세>에서 서른 살을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 서른 살은 온다 /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라고 첫 연을 시작한 바 있다. 진은영은 70년생, 최승자는 70학번. 한 세대가 흘렀어도 서른 살은 참 어려운 시절인가보다. 진은영이 최승자의 시를 염두에 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최 시인이 스스로 자신을 잇는다고 했다면 겸손하지 못하고 좀 주제넘은 이야기인 듯하다. 그럼 이런 시는 김수영을 잇는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네.



  카오스

     ― K에게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모래야 먼지야 나는 왜 이리 작으냐구?

  그래, 그것은 너무 가벼운 반성

  나비의 날갯짓으로 되어 있는,

  오래된 집의 거미줄처럼 상투적인.


  노랑나비가 팔랑거렸다

  매일 그런 것처럼,

  아프리카로 달아나던 내 마음에 폭풍이 쳤다  (전문)



  그렇지 않은가? 왜 쪼잔하게 사소한 일에만 화딱지를 부리느냐, 하는 건 김수영의 전매특허다. 노랑나비가 팔랑거려서 내 마음은 아프리카로 달아나는 건 마치 베이징에서 나비 한 마리가 움직여 뉴욕에 폭풍이 치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그래서 쪼잔한 일로 열 받았다는데 그게 뭐 잘못이냐고 혹시 시인은 말하고 있는 건가? 어차피 시를 읽는 일의 80퍼센트는 해몽을 하는 것과 비슷하니까.

  내가 정작 눈에 힘을 주어 읽은 건, 이제 등단을 해서 첫번째 시집을 낸 시인이 “시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걸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거였다. 이 시집에서도 ‘시’ 자체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 몇 있다. 예를 들어보자.



  詩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전에

  흔들거리는 풀잎이야

  너의 부드러운 숨결이 닿기도 전

  터지는 비눗방울

  네 눈빛에 꺼지는 촛불이야

  알 수 없는 깜박거림, 이 오래된 어둠 속에서


  빙산의 가장 깊고 투명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열기

  쩍쩍 갈라지는 얼음이야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와

  심장에 정확히 꽂힌 칼

  콸콸 쏟아지며 거즈를 적시는 피처럼

  사막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이야

  발가벗은 낮의 하얀 유방을 감싸는

  검은 어둠의 실루엣  (후략)



  진은영에게 시라는 건, 비 쏟아지기 전에 흔들리는 풀잎(뭐라?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라고?), 터지는 비눗방울, 오랜 어둠 속에서 꺼지는 촛불, 빙산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 심장에 정확하게 꽂힌 칼, 사막을 물들이는 저녁 노을, 검은 어둠의 실루엣 등이란다. 후략이니까 이후에도 시란 무엇이다, 라고 줄줄이 늘어 놓았다. 흠. 그렇구나. 진은영에게 시라는 건 이런 거구나. 근데 이런 것들이 무엇일까?


  (전략)

  내가 이름을 불러보기 전에

  사라져버린 것들이여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숨어버린 모음들

  손을 담그기 전에 흘러가버린 강물이여


  너를

  만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폭풍 속에서

  나는 그 많은 나뭇잎을 다 떨어뜨렸어 



  라며 끝을 맺는다. 결국 진은영에게 시는 이미 사라진 아름다움. 만나 보기는커녕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한 폭풍 속 떨어진 나뭇잎이다. 물론 엄살의 시적 표현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그러나 (내가) 진은영이 가장 깊게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건 어느 블로거의 표현마따나 최승자도 아니고 김수영은 더 아니고, 니체는 내가 그를 모르니 가려낼 방법이 없고, 딱 한 명 고르자면 카프카다. <카프카의 연인>이라는 시도 있지만 확실하게 프란츠를 상기할 수 있는 시 하나를 고르면,



  벌레가 되었습니다



  내 방이었습니다

  구석에서 벽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천장 끝에서 끝까지

  수십 개의 발로 기었습니다

  다시 벽을 타고 아래로

  바닥을 정신없이 기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다리를 가지고도

  문을 찾을 수 없다니


  밖에선 바퀴벌레의 신음소리

  아버지가 숨겨둔 약을 먹은 것입니다

  어머니 내 책상 위에

  아버지가 피운 모기향을 좀 치우세요

  시집 위에 몸 약한 날벌레들

  다 떨어지잖아요

  동생 문 열고 들어옵니다

  나는 문밖으로

  재빨리 나가려고…


  동생이 소리 질렀습니다

  여기 또 있어  (전문)



  이 정도면 <변신>과 완전 빼박이다. 까다로운 비평가가 있다면 제대로 시비를 걸 수준 아닌가? 카프카처럼 풍뎅이 류의 곤충이 아니라 다족류 벌레로 변신한 시의 주인공은 마치 그레고리 잠자처럼 방 밖으로 탈출을 획책하지만 실패한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죽는 대신, 역시 악역을 맡은 아버지가 뿌린 살충제 때문에 조속한 시간 내에 방을 탈출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래 동생이 방에 들어오는 틈을 타 재빨리 탈출을 감행하려는 순간, 동생은 아버지에게 “여기 또 (한 마리) 있어!”하고, 누나 살해에 공모하게 된다. 다족류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 입장에서 보면 참 비정한 가족, 가정이다. 그러나 앞에서 미리 초를 친 시를 읽었다면 이 정도는 이미 짐작을 했을 것. 이 가족을 보자.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전문)


 

  원래 가족이란 전생의 원수들이 모인 곳이라 하지만 시인에게 가족은 완전히 죽음의 골짜기였나 보다. 자, 이러니 여러분 가족에 시인, 소설가가 한 명도 없는 것을 슬퍼하지 말지어다. 가정에 시인, 소설가가 생기는 순간 당신 가정은 눈 깜작 할 새에 끝장이 날 터이니. 이것을 보라. 다 까발려버리잖은가.

  감상이 길어졌다. 제일 흥미롭게 읽은 시 한 수를 소개하며 독후감을 접는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붙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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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8-23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해요 진은영💙 근데 왜 사랑하는지 시집 넘 오래 전에 읽어서 잘 모르겠네요;; 시집 다시 들춰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2-08-23 11:45   좋아요 0 | URL
옙. 얼른 다시 읽어보셔요. ㅎㅎㅎ 반 나절이면 후딱 다 읽습니다. ^^

바람돌이 2022-08-23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오늘 시 리뷰 너무 좋습니다. 시를 읽기도 힘든데 이런 멋진 리뷰라니... 👍

Falstaff 2022-08-23 11:46   좋아요 2 | URL
앗, 재미나게 읽으셨습니까? 으쓱으쓱.
시집 독후감 쓰기가 젤 어려워서 이런 칭찬 받으면 기분 느므느므 좋아요. ㅋㅋㅋㅋ

Falstaff 2022-08-23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솔직 감상.
선배 시인이 쓴 시를 많이 읽는 것이 좋을까, 아닐까? 진은영의 시 속에 왜 이렇게 자주 김수영의 시어들과 니체, 카프카가 눈에 밟히는지 말이지.
본문에서 인용한 <카오스>에서는 진은영이 따옴표를 사용해서 자신이 김수영의 것을 가져왔다고 고백을 해 그냥 넘어갔다고 치고, <벌레가 되었습니다>는 넘 노골적인 거 아닌가 싶다. 나는 진은영의 다음 시집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진짜 궁금하다. 선배들의 시를 많이 읽는 행위가 시인에게 좋은 일일까, 아닐까?
결론은 당신들이 내시라. 하여튼 난 별로 좋은 일 같지 않다. 시 쓰는 대신 세탁소에서 짜깁기를 하는 직업이면 몰라도 말이지.

coolcat329 2022-08-24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레나오는 시는 정말 <변신>을 압축해 놓은 거 같아요. <가족>이란 시도 그렇고 시인에게 가족은 고통이었나봅니다. 하긴...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ㅎ
가족이란 시가 참 강렬하네요.

Falstaff 2022-08-24 12:28   좋아요 1 | URL
그죠? 벌레 이야기는 꼭 시로 써야 했는지 좀 의아합니다.
<가족>으로 충분한 거 같은데 말입죠 ㅎㅎㅎ

mini74 2022-08-24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정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 참 재미있어요. 우리집에 누군가 나왔다면 아침드라마 다 석권했을 듯 합니다. ㅎㅎ가족이란 짧은 시가 확 와닿네요. 골드문트님 시 이야기 참 좋습니다. !

Falstaff 2022-08-24 16:01   좋아요 1 | URL
아마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미니 님하고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ㅋㅋㅋㅋ
골라서 소개한 시를 잘 읽어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
 
헤밍웨이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3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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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열다섯 편을 실은 작품집.

  헤밍웨이, 라고 하면 하드보일드 문체, 잃어버린 세대, 마초 적 작가, 우울증 등을 이야기한다. 타당한 일이다. 민음사에서 두번째로 찍은 헤밍웨이의 단편집을 보면 이것 외에도 주목할 것이 있다. 열다섯 편의 단편에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특히 주인공들은 결코 한 장소에 정착하지 못한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의 전장 속 참호에 있든지(<이제 내 몸을 누이며>),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오지만 큰 불이 나서 고향마을은 벌써 사라져버렸든지(<심장이 두 개인 큰 강 1부, 2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전전하는 미국인 기수騎手든지(<나의 아버지>), 전쟁 중 동맹국이었던 터키의 스미르나 부두에 도착한 해군이든지(<스미르나 부두에서>) 등등, 결코 안식처와 주거지로의 집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장편소설도 다 그랬다. 첫번째 장편소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부터 시작해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이어지는 3대 헤밍웨이 작품 모두 유럽의 전장이나 대도시의 호텔 바, 레스토랑에서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들이 겪는 이야기들이다.

  집 떠나면? 맞다. 개고생. 헤밍웨이의 마초적이고 약간은 폭력적이며, 힘을 과시하기 위한 살육 성향은 주인공들을 집구석에 편히 내버려두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길을 나서게 되고, 길을 나섰으니 당연히 개고생을 하는데, 그게 흥미롭다는 말이지. 이 책에서는 특히 사자와 아프리카 물소를 사냥하는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와 늙은 투우사의 마지막 황소 살육을 다룬 <패배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살육의 냉혹한 장면을 헤밍웨이 특유의 하드보일드 한 문체로 마치 사진을 찍듯 그려낸 것이 백미였다.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으면서 흔히들 오해하는 것은, 이이의 작품은 완전히 스토리가 중심이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천만의 말씀. 비록 나하고 궁합이 맞지 않아 읽고 나서도 독후감을 쓰지 않은 몇 안 되는 작품의 생산자이기는 하지만, 극도로 건조한 문장 속에서 드라이한 짧은 컷 묘사 안에 해당 광경을 마주하는 인물의 심리가 절묘하게 드러나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그런 솜씨를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게 아닌 것도 안다. 나는 이런 이유로 그가 싫은 게 아니라, 겁나게 잰 체하는, 헤밍웨이 특유의 어깨에 힘주는 모양이 싫은 거다.

  이이는 천부적인 글솜씨를 타고 났다. 오래 기자 생활을 하는 중에 저절로 습득이 된 간략한 문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기자 생활을 백 년 해봐라. 이이만큼 짧은 문장 안에 자신의 속마음을 “노골적이지 않게” 흘려 넣을 수 있는지. 솔직히 이야기하자. 문장 하나만 가지고 말하자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천재다.

  내가 비록 이 책을, 알라딘이 준 쿠폰을 사용하느라 헌책이나 커피 필터 또는 굿즈를 사야하는 옵션 때문에 구입하기는 했지만, 진즉에 이이의 단편을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그의 대표 장편소설 세 편보다 <노인과 바다>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왕 내친 김에, 아니, 기회가 되면 단편집 1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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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9 09: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짧고 쉬운 문장 안에 의도를 담는 천재!
원서보고 놀랐어요.
간결하고 쉬워서, 그런데 그 한 줄 한 줄이 예사롭지 않아서,,,,
공기까지 담겨 있다는 생각!

Falstaff 2022-08-19 13:42   좋아요 3 | URL
윽, 공기까지요? ^^
근데 문장 하나는 정말 좋죠? 에휴....

coolcat329 2022-08-19 15: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단편이 참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궁색한 변명이지만 작가에게 정이 안가서 안 읽게되네요.😆
근데 황소 살육은 읽고 싶지 않네요. 사진처럼 그려냈다니 ㅠㅠ

Falstaff 2022-08-19 19:25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울 나라에 유독 헤밍웨이하고 연분이 안 되는 분이 많은 거 같더군요. 물론 저도 포함되는데요, 톡! 까놓고 얘기해보면.... 아니, 그러면 안 되겠네요. 아직 제가 그럴 짬밥이 아니라서... ㅋㅋㅋ 하여튼 저도 헤밍웨이를 그리 곱게 볼 수 없는 쪽입니다만,
밉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문장 아닐까 생각합니다.
^^;;;
 
마의 산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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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의 산>을 만 16세 5개월에서 6개월 사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었다. 지금은 서경대학이 들어선 정릉의 언덕 위 하얀 집, 방학 중 보충수업이 끝나고 오직 열람실만 있던 아르센 루팡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선풍기 한 대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1970년대의 학교는 전기요금 아낀다고 형광등도 켜주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밤이 내려 배가 고파질 때까지 책을 읽던 시절. 숱한 헤르만 헤세와 <개선문>과 <마의 산>과 <인간조건>과 전혜린과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빛나는 보석더미들, 삼중당 문고본. 세월이 흐르고 흘러 당시에 읽은 책들은 어느새 다시 읽어야할 만큼 기억의 채도가 흐려져 거의 다 새로 읽었지만, 작품의 무게와 분량의 압박 때문에 은퇴 이후 시간이 넘쳐 흐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 <마의 산>이었다. 정년을 앞두고 제일 먼저 주문했던 책. 토마스 만의 대표작.

  16세 5개월에서 6개월 사이의 나. 육십대 중늙은이인 나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떻게 이걸 읽었을까, 기어이 읽어냈을까 싶어서.


  작품에 대하여 너무 오래된 기억은 이미지로만 남는다. <마의 산>에 관한 기억은 자잘한 봄꽃이 핀 들판을 청년(들)이 걷고 배경에는 마치 성처럼 선 요양원이 보인다. 문장은 딱 하나. 주인공을 일컬어 토마스 만은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라고 칭했던 것. 이미지는 혹시 마르세 파뇰의 작품 <마농의 샘> 표지 또는 삽화, 며칠 전 세상을 뜬 장 자끄 상페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이미지 기억’이란 언제든 왜곡되기 마련이니.

  이번에 책을 읽으며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언제 나올까 내내 궁금했다. 작가가 직접 나서서 주인공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는 호칭을 나는 그때 처음 읽었고, 2014년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이후 “우리의 주인공 누구”라고 자주 이를 흉내 냈기 때문에.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는 거의 에필로그 가까이에 딱 한 번 나온다. 소년 골드문트는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이 맞다.

  긴 세월이 지나고 다시 책읽기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다시 읽을 작품으로 저 삼중당 시절들을 꼽았다. 헤세의 여러 작품과 <개선문>, <인간조건>, <그리스인 조르바> 등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그냥 놀란 것이 아니라 정말 깜짝 놀랐던 일은, 책의 내용이 거의 완전하게 낯설다는 것이었다. 새 책을 읽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느낌.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기억과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토마스 만은 미완성 유작이자 유일한 희극인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포함하더라도 딱딱하고 불친절한 독일인 그 자체다. 어머니가 비록 낭만적인 브라질 계였더라도 토마스는 아버지 쪽을 닮아 평생 내성적이고 엄격한 성격을 버리지 못했고, 이런 경향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재미없는 독일인의 전범. 반면에 친형 하인리히는 라틴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를 닮아 사고와 행동이 물론 상대적이겠지만 자유분방, 유쾌하고 활발해 토마스의 자식들마저 아버지보다 백부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시 소설가였던 형 하인리히의 대표작은 프랑스를 무대로 하는, 저 분방했던 왕비 마고와 카틀린, 메디치 가문의 후예들이 만든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의 학살부터 부르봉 왕가의 설립까지 그린 <앙리 4세>를 꼽는다(우리나라 번역본은 절판).

  토마스 만을 읽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번역해 나온 토마스 만의 모든 장편소설을 읽었는데, 이 가운데 <마의 산>이 가장 높은 벽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그렇다고 세계문학을 읽는 사람이 굳이 이 작품을 피할 수, 아니다, 피할 이유는 없다. 먼저 읽어보고, 읽기 쉽지 않다거나, 독자의 취향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일단 책을 덮자.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면 어떻겠는가.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또 덮은 채 한 번 더 시간을 보내다가 또다시 읽는다면.

  이 책이 나오고 벌써 백 년이 흘렀다. 마법의 산에서 성직자 레오 나프타와 이탈리아인 인문주의자 로도비코 세템브리니가 토론하는 형이상학적 논제나, 조선 공학을 전공한 한스 카스토르프의 과학적 지식은 벌써 까맣게 구닥다리가 됐다. 우주 탄생의 비밀은 이미 벗겨졌고, 생명체의 탄생기원도 밝혀졌으며, 유전자의 발견은 생명의 연속성에 환한 조명을 비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저 은밀한 지하 특정장소에서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복면을 쓴 단원들이 모이는 지는 몰라도, 내 주위에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를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세상은 급하게 변했지만 텍스트는 변하지 않는다. 작가는 오직 한 시절, 자신이 경험하고 그걸 문자로 만드는 시기를 대변한다. 그리하여 <마의 산>은 당대 최고의 문제작이었겠지만 이젠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독자에게는 더 넘기 힘든 벽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라. 길고 긴 분량을 더 길게 느끼게 만드는 “독일적 담론”을 담고 있을지언정 단언하노니, 세계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구약성서만큼 읽기 어렵지는 않으니까.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다섯 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가 동생의 출산을 앞두고 급성 혈관 폐색증을 일으켜 일순간에 심정지가 발생해 세상을 떠났다. 물려받은 사업을 번창시켰던 아버지 한스 헤르만 카스토르프는 아내가 죽고 심하게 낙심해 급격하게 쇠약해지면서 사업에도 영향을 끼치더니 다음해 봄에 폐렴으로 아내의 뒤를 따랐다. 한스는 어쩔 수 없이 시의원이던 할아버지 한스 로렌츠 카스토르프 씨와 함께 살게 됐는데, 할아버지마저 일년 반이 지나 치열한 투병과 이에 따른 고통을 겪고는 대략 40만 마르크의 유산을 남긴 채 폐렴으로 천국의 안녕을 찾아 떠났다. 이후 한스는 작고한 어머니의 외삼촌인 티나펠 영사를 후견인으로 해, 안전한 채권에서 나오는 이자로 영사의 집에서 생활했으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빈혈과 부계에서 내려온 약한 폐 때문에 활동적이지 못한 소년기를 지내게 된다. 

  토마스 만은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를 다보스 플라츠 근방에 위치한 국제요양원 ‘베르크호프’에 부모, 형제, 친척의 별다른 간섭 없이 긴 세월을 보낸 수 있도록 이렇게 초반에 그를 완전한 외톨이로 만들어 놓았다. 단치히 공과대학,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과 카를스루에 공과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활발하지 못한 사교생활과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성적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않은 한스 카스토르프는 비록 툰더 빌름스 사의 견습 엔지니어로 입사했으나 어려서부터 조혈작용에 문제가 있어 조선소에 입사하기 전 몇 주 정도 고산지대에서 요양을 하고 오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리하여 작고한 어머니의 이복언니가 낳은 아들 요하임 침센이 머물고 있는 국제요양원 베르크호프에 3주를 예정으로 머물기로 하고, 그곳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1장을 시작한다.

  베르크호프 요양원의 제너럴 매니저이자 수술의 대가이며 스스로도 완치 결핵환자인 베렌스 박사는 냉소적인 사람의 표본으로 한스 카스토르프의 빈혈을 한 눈에 알아보고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결국 한스는 조혈작용 증진을 위한 3주라는 짧은 시간 대신 결핵 진단을 받고 오랜 시간을 베르크호프에서 머물게 된다. 사촌 요하힘 침센은 군문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다가 난데없이 결핵 진단을 받아 함부르크에서 멀리 떨어진 스위스의 다보스까지 와 기약 없는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에 조금씩 절망하는 반면, 한스 카스토르프는 산 위의 요양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정서에 매혹된 것일까, 독자에 따라서 기묘 하달 수 있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 한스가 느끼는 감각의 변화는 시간에 대한 것. 저지 독일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고원에서의 시간. 토마스 만은 요양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과 마치는 시점에 이 “시간”의 정의에 관해 많은 공을 들인다. 시간이란 것이 원래 상대적이지 않은가. 똑 같은 두 시간 40분이지만, 드라마 작가 김수현은 <아바타>를 보면서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지, 지루해 죽을 뻔했다가 결국 졸고 만 반면, 많은 감상자들은 순식간에 후딱 시간이 가더란 소감을 냈던 것을 기억하는지.

  고지에서의 시간 변화에 관한 사색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때는 바야흐로 1차 세계대전의 검은 구름이 유럽을 덮기 시작한 벨 에포크 시대의 끝 무렵. 토마스 만은 이 시절을 배경으로 깔아 놓고 다양한 논제의 만찬을 차려 독자들 앞에 대령한다. 만찬을 즐기든가, 아니면 허겁지겁 퍼먹다가 체하든가, 애초에 여러가지 메뉴 가운데 먹을 만한 것들만 골라서 접시에 담든가 하는 건 완전히 독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아예 선택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어느덧 여름은 가고 있다. 이제 곧 서늘한 바람이 불면, 당신도 누구에겐 신들의 궁전인 발할이기도 하고, 누구한테는 돼지로 변하고 마는 키르케의 동굴이기도 하며, 또다른 누구에겐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연금술적 모험을 할 수 있는 한 마법의 산으로 떠나보면 어떻겠는가. 산을 오르는 일. 힘들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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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6 09: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좋습니다.
십대때 읽었던 문학들이 낯설게 읽혀지는 것 제게도 경이롭습니다. ‘우리의 주인공‘들 역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던 이미지와는 다르죠^^
<마의 산>을 16세에 읽으셨다니... 도대체 소년 골드문트는 어떤 아이였을까?하고 상상해봅니다.
시간에 대한 감각과, 형이상학적 논제의 만찬 등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네요.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도 생각나구요.^^
제가 읽었던 골드문트님의 리뷰들 다 좋았지만, 차분히 읽어가며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을 많이 마주치는 글이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마의 산을 올려다봅니다.

잠자냥 2022-08-16 09:46   좋아요 2 | URL
소년 골드문트는 애늙은이....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08-16 09:58   좋아요 1 | URL
😅

Falstaff 2022-08-16 10:16   좋아요 4 | URL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제가 다 황감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데..... ^^;;
이 소설은 정말 날 잡아서 마음 먹고 읽기 시작해야지, 다른 책들처럼 쉽게 생각했다가는 다른 건 다 모르겠고, 진도 안 나가서 성질 버리기 쉽겠더라고요.
- 애늙은이 출신 중늙은이 드림. ㅋㅋㅋㅋ

blanca 2022-08-16 09: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이 <마의 산>을 시작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시작한다면 어느 출판사로 할 것인가로 번민하던 중 골드문트님의 글은 흑, 부담스럽지만 해야 하나 싶게 만드네요. 아, 누군가는 재미는 정말 없다고 해서 제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읽은(왜 도무지 기억이), 그 어린 시절 좋아하던 친구 연필 빌려서 그 부스러기 간직한 이야기 정말 너무너무 좋아서 꼭 읽어봐야할 것 같아요. 또 고민입니다.

Falstaff 2022-08-16 10:18   좋아요 4 | URL
만일 읽으신다면 을유로 하셔요.
역자 홍성광이 우리나라 토마스 만 협회 회장을 지냈고, 박사 학위도 <마의 산>으로 딴 인물입니다.
연필을 두 사람한테 빌리는데요, ㅎㅎㅎ 더 이상을 입 꾹! ㅋㅋㅋㅋ

다락방 2022-08-16 09: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봐야지 생각만 오래인데, 한 이십년 후에 읽어야 할까요? ( ˝)

Falstaff 2022-08-16 10:19   좋아요 3 | URL
아뇨, 아뇨.
생각난 김에 얼른 해치우는 것도 좋습니다. 읽다가 아니면 말면 되지요 뭐!

잠자냥 2022-08-16 0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럭, 저도 <마의 산> 을유로 갖고 있는데요, 상 권만 2번 오르고 아직 하 권은 오르지 못한 1인..... 올해 다시 도전하면 또 상권만..... 3번 오르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8-16 10:21   좋아요 3 | URL
하권으로 가면 본격적으로 유대인 출신 예수회 신부와 이탈리아인 인문주의자이자 프리메이슨 단원의 골 뒤집어지는 토론을 시작합니다.
아마..... 산 꼭대기까지 오르느냐, 아니면 중턱 개울가에서 양말 벗고 발 담그고, 라면 끓여먹고 하산하느냐의 갈림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2-08-16 09: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16세에 이 책을 읽으셨다니 대단하세요. 근데 아르센 루팡 도서관은 뭔지요? ㅋ
골드문트님 글을 읽으면 ‘왜 나는 책을 이리도 늦게 읽기 시작했나‘ 참 속상했는데요...

역시나 이 책이 가장 진입 장벽이 높군요. 토마스 만 중단편집 하나 읽어봤지만 이 분은 정말 유머가 없으시더라구요.
다시 읽으시면서 소년 골드문트를 칭찬하셨다는 부분에서 마음이 짠해집니다. 저는 그런 책 한 권도 없어요. ㅠㅜ

Falstaff 2022-08-16 10:28   좋아요 2 | URL
제가 나온 아르센 루팡 고등학교는, 창립자가 1970년대 우리나라 최대의 스탠드 바인 ˝월X컵˝의 사장이(라는 썰이 있)었는데요, 그냥 불량 건축물 하나 인수해서 학교 법인 허가를 받았습니다. 명색이 학교라고 도서관도 반지하에 만들어 놓았는데, 글쎄 책이 한 권도 없었습니다. 그냥 공부하는 열람실만 있었습지요.
그래도 교사들은 실력이 빵빵해 소위 스카이 출신이 득시글거려(교무실 문 열고 돌 던지면 스카이 나온 선생들이 맞았다니까요), 예비고사 수석, 설대 수석, 육사 수석 같은 애들을 무진장 배출했습지요. 현 부산시장, 현 서울시장, 이 인간들과 같은 시절에 같은 건물에서 도시락 까먹었다는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