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 시인선 276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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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은영. 1970년 3월 17일(전날인 16일은 엄마 생일, 전전날은 여동생 생일)에 대전에서 출생한 개띠 시인, 서양철학자,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철학상담 전임교수. 2000년 서른 살 되던 해에 『문학과 사회』를 통해 데뷔해 2009년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2010년에 현대문학상 시부문, 2013년에는 천상병 시문학상과 시부문 대산문학상으로 연타석 홈런을 친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은 이이가 낸 첫번째 시집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 낼 니체를 비롯한 서양철학서, 문학과 철학 상담 관련 도서 등을 통틀어도 첫번째 저작이라는 개인적 기념비가 된다. 2000년이면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아마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이이의 박사 논문 <니체와 차이의 철학>이 통과된 것이 2005년 8월이니까, 박사를 준비하는 도중에 덜컥, 시인으로 데뷔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계간지 2000년 봄호면 1월에 등단, 앞으로 얼마나 더 공부를 해야 박사 학위를 받고, 행운의 별이 얼마나 반짝여야 대학의 전임교수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서른 살 당시엔 모두 까마득했을 터. 공부를 더 할까, 전업 시인이 될까, 잠깐 고민을 했을 수 있겠다. 그리하여 진은영의 서른 살은 이러했다.



  서른 살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전문)



  시를 요약하면, 인생의 반을 살았건만 여기서 정처를 잃었다는 거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벼랑 위의 서른 살. 게다가 이제부터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도 없다는 얘기. 이후 자신이 저지를 악덕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의 어느 블로그를 보니까 최승자가 진은영더러 “드디어 나를 정말로 잇는 시인이 나왔다.”라고 말했다는데,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최승자 역시 <삼십 세>에서 서른 살을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 서른 살은 온다 /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라고 첫 연을 시작한 바 있다. 진은영은 70년생, 최승자는 70학번. 한 세대가 흘렀어도 서른 살은 참 어려운 시절인가보다. 진은영이 최승자의 시를 염두에 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최 시인이 스스로 자신을 잇는다고 했다면 겸손하지 못하고 좀 주제넘은 이야기인 듯하다. 그럼 이런 시는 김수영을 잇는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네.



  카오스

     ― K에게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모래야 먼지야 나는 왜 이리 작으냐구?

  그래, 그것은 너무 가벼운 반성

  나비의 날갯짓으로 되어 있는,

  오래된 집의 거미줄처럼 상투적인.


  노랑나비가 팔랑거렸다

  매일 그런 것처럼,

  아프리카로 달아나던 내 마음에 폭풍이 쳤다  (전문)



  그렇지 않은가? 왜 쪼잔하게 사소한 일에만 화딱지를 부리느냐, 하는 건 김수영의 전매특허다. 노랑나비가 팔랑거려서 내 마음은 아프리카로 달아나는 건 마치 베이징에서 나비 한 마리가 움직여 뉴욕에 폭풍이 치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그래서 쪼잔한 일로 열 받았다는데 그게 뭐 잘못이냐고 혹시 시인은 말하고 있는 건가? 어차피 시를 읽는 일의 80퍼센트는 해몽을 하는 것과 비슷하니까.

  내가 정작 눈에 힘을 주어 읽은 건, 이제 등단을 해서 첫번째 시집을 낸 시인이 “시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걸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거였다. 이 시집에서도 ‘시’ 자체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 몇 있다. 예를 들어보자.



  詩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전에

  흔들거리는 풀잎이야

  너의 부드러운 숨결이 닿기도 전

  터지는 비눗방울

  네 눈빛에 꺼지는 촛불이야

  알 수 없는 깜박거림, 이 오래된 어둠 속에서


  빙산의 가장 깊고 투명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열기

  쩍쩍 갈라지는 얼음이야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와

  심장에 정확히 꽂힌 칼

  콸콸 쏟아지며 거즈를 적시는 피처럼

  사막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이야

  발가벗은 낮의 하얀 유방을 감싸는

  검은 어둠의 실루엣  (후략)



  진은영에게 시라는 건, 비 쏟아지기 전에 흔들리는 풀잎(뭐라?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라고?), 터지는 비눗방울, 오랜 어둠 속에서 꺼지는 촛불, 빙산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 심장에 정확하게 꽂힌 칼, 사막을 물들이는 저녁 노을, 검은 어둠의 실루엣 등이란다. 후략이니까 이후에도 시란 무엇이다, 라고 줄줄이 늘어 놓았다. 흠. 그렇구나. 진은영에게 시라는 건 이런 거구나. 근데 이런 것들이 무엇일까?


  (전략)

  내가 이름을 불러보기 전에

  사라져버린 것들이여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숨어버린 모음들

  손을 담그기 전에 흘러가버린 강물이여


  너를

  만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폭풍 속에서

  나는 그 많은 나뭇잎을 다 떨어뜨렸어 



  라며 끝을 맺는다. 결국 진은영에게 시는 이미 사라진 아름다움. 만나 보기는커녕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한 폭풍 속 떨어진 나뭇잎이다. 물론 엄살의 시적 표현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그러나 (내가) 진은영이 가장 깊게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건 어느 블로거의 표현마따나 최승자도 아니고 김수영은 더 아니고, 니체는 내가 그를 모르니 가려낼 방법이 없고, 딱 한 명 고르자면 카프카다. <카프카의 연인>이라는 시도 있지만 확실하게 프란츠를 상기할 수 있는 시 하나를 고르면,



  벌레가 되었습니다



  내 방이었습니다

  구석에서 벽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천장 끝에서 끝까지

  수십 개의 발로 기었습니다

  다시 벽을 타고 아래로

  바닥을 정신없이 기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다리를 가지고도

  문을 찾을 수 없다니


  밖에선 바퀴벌레의 신음소리

  아버지가 숨겨둔 약을 먹은 것입니다

  어머니 내 책상 위에

  아버지가 피운 모기향을 좀 치우세요

  시집 위에 몸 약한 날벌레들

  다 떨어지잖아요

  동생 문 열고 들어옵니다

  나는 문밖으로

  재빨리 나가려고…


  동생이 소리 질렀습니다

  여기 또 있어  (전문)



  이 정도면 <변신>과 완전 빼박이다. 까다로운 비평가가 있다면 제대로 시비를 걸 수준 아닌가? 카프카처럼 풍뎅이 류의 곤충이 아니라 다족류 벌레로 변신한 시의 주인공은 마치 그레고리 잠자처럼 방 밖으로 탈출을 획책하지만 실패한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죽는 대신, 역시 악역을 맡은 아버지가 뿌린 살충제 때문에 조속한 시간 내에 방을 탈출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래 동생이 방에 들어오는 틈을 타 재빨리 탈출을 감행하려는 순간, 동생은 아버지에게 “여기 또 (한 마리) 있어!”하고, 누나 살해에 공모하게 된다. 다족류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 입장에서 보면 참 비정한 가족, 가정이다. 그러나 앞에서 미리 초를 친 시를 읽었다면 이 정도는 이미 짐작을 했을 것. 이 가족을 보자.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전문)


 

  원래 가족이란 전생의 원수들이 모인 곳이라 하지만 시인에게 가족은 완전히 죽음의 골짜기였나 보다. 자, 이러니 여러분 가족에 시인, 소설가가 한 명도 없는 것을 슬퍼하지 말지어다. 가정에 시인, 소설가가 생기는 순간 당신 가정은 눈 깜작 할 새에 끝장이 날 터이니. 이것을 보라. 다 까발려버리잖은가.

  감상이 길어졌다. 제일 흥미롭게 읽은 시 한 수를 소개하며 독후감을 접는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붙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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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8-23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해요 진은영💙 근데 왜 사랑하는지 시집 넘 오래 전에 읽어서 잘 모르겠네요;; 시집 다시 들춰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2-08-23 11:45   좋아요 0 | URL
옙. 얼른 다시 읽어보셔요. ㅎㅎㅎ 반 나절이면 후딱 다 읽습니다. ^^

바람돌이 2022-08-23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오늘 시 리뷰 너무 좋습니다. 시를 읽기도 힘든데 이런 멋진 리뷰라니... 👍

Falstaff 2022-08-23 11:46   좋아요 2 | URL
앗, 재미나게 읽으셨습니까? 으쓱으쓱.
시집 독후감 쓰기가 젤 어려워서 이런 칭찬 받으면 기분 느므느므 좋아요. ㅋㅋㅋㅋ

Falstaff 2022-08-23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솔직 감상.
선배 시인이 쓴 시를 많이 읽는 것이 좋을까, 아닐까? 진은영의 시 속에 왜 이렇게 자주 김수영의 시어들과 니체, 카프카가 눈에 밟히는지 말이지.
본문에서 인용한 <카오스>에서는 진은영이 따옴표를 사용해서 자신이 김수영의 것을 가져왔다고 고백을 해 그냥 넘어갔다고 치고, <벌레가 되었습니다>는 넘 노골적인 거 아닌가 싶다. 나는 진은영의 다음 시집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진짜 궁금하다. 선배들의 시를 많이 읽는 행위가 시인에게 좋은 일일까, 아닐까?
결론은 당신들이 내시라. 하여튼 난 별로 좋은 일 같지 않다. 시 쓰는 대신 세탁소에서 짜깁기를 하는 직업이면 몰라도 말이지.

coolcat329 2022-08-24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레나오는 시는 정말 <변신>을 압축해 놓은 거 같아요. <가족>이란 시도 그렇고 시인에게 가족은 고통이었나봅니다. 하긴...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ㅎ
가족이란 시가 참 강렬하네요.

Falstaff 2022-08-24 12:28   좋아요 1 | URL
그죠? 벌레 이야기는 꼭 시로 써야 했는지 좀 의아합니다.
<가족>으로 충분한 거 같은데 말입죠 ㅎㅎㅎ

mini74 2022-08-24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정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 참 재미있어요. 우리집에 누군가 나왔다면 아침드라마 다 석권했을 듯 합니다. ㅎㅎ가족이란 짧은 시가 확 와닿네요. 골드문트님 시 이야기 참 좋습니다. !

Falstaff 2022-08-24 16:01   좋아요 1 | URL
아마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미니 님하고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ㅋㅋㅋㅋ
골라서 소개한 시를 잘 읽어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