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 제안들 2
조르주 바타유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언제부터인가 내 눈과 귀에 조르주 바타유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시인, 소설가, 사회학자, 인류학자, 기타 등등이라는, 거의 모든 지적 전문가의 타이틀을 지닌 이름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한꺼번에, 아니면 그동안에는 내가 관심이 없어 그냥 지나쳐서 몰랐던, 바타유라는 이름이 쏟아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사전 정보 하나도 없이 그냥 바타유라는 이름 하나 보고, 그의 저작 가운데 분량이나 책값으로 보아 별로 부담이 없는 <불가능>을 사서 읽었다.

  생몰연대가 1897~1962인 조르주 바타유는, 오베르 비요에서 전직 세금 징수원인 조세프-아리스트리드 바타이유와 안토니에트-아글레 투르나르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출생 당시에 아버지는 신경매독에 의한 마비증세를 겪고 있는 맹인이었단다. 이런 집의 가정주부가 어째 정상일 수 있을까. 어머니는 또 조울증이 있었다 하니 초장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다고 할 밖에. 어쨌거나 한 살 때 랭스로 이주해 세례를 받고, 학교를 다녔다. 소년 바타유는 1914년 가톨릭으로 개종해 9년 동안 헌신적으로 종교에 몰두, 잠깐 신학교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곧 그만 두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직업을 갖기로 결심, 기독교를 포기한다. 이후 파리 국립 고문서 학교에 입학, 공부 잘 해 졸업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많은 도서관에서 경력을 쌓고, 오를레앙 도서관장으로 일할 당시에, 숟가락 놨다.

  이렇게 소개하면 비록 초년 팔자가 기구했을지언정 똑똑한 머리 하나로 인생 잘 산 지식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게 맞기도 하다. 이 책 <불가능> 딱 한 권을 읽어서 이제 바타유에 관해서 알아가는 단계이지만, 일찍이 “사드 전집”과 <O 이야기>를 번역한 바 있는 역자 성귀수가 딱 한 문장으로 바타유를 정의한 것은 이렇다.


  “사드의 적자라 불러도 좋을 바타유는 매음굴을 전전하며 글을 썼던 에로티슴의 소설가였다.”


  이 문장이 책을 열면 목차 바로 다음 페이지 “작가에 대하여”에 실려 있어 독자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음. “사드의 적자”라면 분명 무지막지하게 더러울 터이고 “에로티슴의 소설가”라면 매력적일 것인데, 과연 어느 쪽일까, 궁금하지 않겠는가 말이지.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넘어가자. 내가 읽고 판단한 사드는 성적 환타지와 읽는 행위를 통해 엑스터시를 제공하는 에로티즘의 작가가 절대 아니다. 그의 글은 에로틱하기는커녕 솔직하게 말해, 드러워서 읽어주지 못하겠다. 돈 주고 사드의 책을 사서 읽느니 차라리 인터넷을 뒤져 야설을 몇 편 읽는 것이 낫다. 야한 장면 많이 나오는 소설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니까 알아서들 판단하시라. 아, 미처 기억을 하지 못했다. 성귀수가 또 한 편의 드러운 섹스 소설인 <O 이야기>의 번역자였다는 것을. 사드의 적자, 아니, 사드의 맏딸은 바타유가 아니라 <O 이야기>를 쓴 폴린 레아주다. 스스로 남성의 성 노리개가 되기 위해서 자의에 의해 외음부에 두 개의 큼지막하고 묵직한 자물쇠를 피어싱하는 이야기를 쓴 인류.


  그럼 <불가능>은? 이건 사드나 폴린 레아주 같은 구토유발의 저급한 외설이 아니다. 뭐 조금 그런 장면도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지극히 낮은 수위이며, 대체로 은유적 표현이 섞여 있어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것도 몇 번 되지 않는다. 역자나 편집자는 목차 바로 뒤 페이지에 사드의 적자라는 이야기를 써서 책을 좀 팔아볼까, 했겠지만 이건 에로티슴이라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현타”에 관한 작품이지 싶다. 굳이 은어가 아닌 표준어로 말하면 “허무” 정도? 물론 현타나 허무를 유발하는 매개는 여성이고, 몸의 결합을 포함하는 사랑이고, 질투일 수도 있으며, 죽음도 포함한다.

  주인공 ‘나’는 B라는 애인을 두었고, 당연히 성적 접촉도 했지만, 성castle을 소유하고 있는 B의 키 작은 대머리 아버지한테 집안의 재산을 바라고 접근하는 나쁜 종자라는 이유로 무지하게 두드려 맞은 경험이 있다. 게다가 B는 가톨릭 사제인 A와 성접촉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B가 A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을 봤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겠다. 이게 ‘나’의 판타지인지 정말로 A가 보고 있는 앞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B를 ‘나’가 자극한 적이 있는지.

  하여간 한 겨울, B는 어찌어찌 해서 ‘나’를 떠나 아버지가 사는 V에 있는 성으로 갔다. 아버지는 아직 ‘나’와 헤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 B의 오른손 손가락 하나를 완전히 뒤로 꺾어 부러뜨려버렸다. B가 왼손으로 쓴 편지를 받은 ‘나’는 겁나게 추운 눈 오는 밤에 B가 감금된 성을 향해 가다가 기진해 쓰러져 죽어가는 찰라, A와 함께 집을 나선 B의 눈에 띄어 목숨을 구해, 죽는데도 실패하고 만다.


  뭐 이런 이야기인데, 만일 이게 바타유의 대표작이라면, 글쎄 잘 모르겠다. 혹시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는 전 세계의 몇몇 나라 사람들이 바타유를 마테오, 마르코, 루크, 요한 등 열 몇 남자의 초등학교 동창 정도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문화적 환경과 완전히 다른 문자체계를 가진 우리나라 독자들이 바타유에 열광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뭐 이런 견해가 내가 문학적으로 무식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그렇다는 말이다.

  바타유, 될 수 있으면 우연이라도 앞으로 서로 마주치지 말고 살자.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2-08-26 09: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골드문트 님, 바타유의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써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제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그전에 바타유 책을 읽다가 포기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용기가 나질 않더라고요. 제가 읽다 던져버린 책은 <눈 이야기> 였는데, 섹스 중에 오줌 싸는.. 뭐 여튼 너무 참을 수가 없어져서 ㅋㅋㅋㅋ 던져버렸거든요. 그래도 바타유 란 이름 많이 들리니까 한 편쯤 다시 도전해보고 재판단 해야하지 않나...하고 미루던 이즈음, 골드문트 님이 마치 운명처럼! 이렇게 리뷰를 똭! 써주셔서 저는 너무나 감사하고 좋습니다. 게다가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는 리뷰여서 너무 좋네요.

저는 <o의 이야기>를 비디오방에서 영화로 보다가 끝까지 못보고 중간에 나왔습니다.

이만 총총.

Falstaff 2022-08-26 12:37   좋아요 2 | URL
이제야 로그인 합니다. 어제 25도 쐬주 한 병에 발동 걸리는 바람에 와인까지 한 병 반, 꽐라 됐다가 비실비실.... 해장으로 동태탕에 쐬주 한 병 까니까 살 만합니다. ㅎㅎㅎ
윽, 전 이 <불가능> 읽기를 잘한 거 같군요. 섹스 중 오줌 싸는.... 근데 그게 가능한가요? 남자는 거기에 피가 꽉 차 있어서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여자는 모르겠네요... 하여간, 하여튼 이런 재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유명세를 탈 수 있었는지 그것도 미스테리오조합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님께 도움이 되는 독후감이 돼서 진심으로 제가 다 고맙습니다.

공쟝쟝 2022-08-26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느 순간 바타유바타유 하길래, 바타유 무엇? 하던 차에 이렇게 써주시니 궁금하네요 ㅋㅋㅋ edps 좋아하는(?) 사람에게 은유와 현타는 ㅋㅋㅋ 연구해볼만한 무엇인 것!

Falstaff 2022-08-26 12:43   좋아요 2 | URL
아이고, 이건 edps도 별로 나오지 않고 편집도 억지로 페이지 수 늘리려 별 꼼수를 다 부렸는데, 현타는 확실하지만요, 은유는 무슨.. 별 같지도 않은 장치로 메타포라고 주장하는 수준입니다. 연9해보실 필요 없을 거 같은 기분입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8-26 1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타유, 한국에서 특히 과대포장된 인물 같아요. 이른바 지식인들이 남들과 다른 척, 현학적인 척 하고 싶을 때 자주 끌어다 쓰는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로티즘> 하도 이야기하기에 읽어봤는데, 대체 이게 뭐꼬? 하고 현타가 왔었습니다.

그나저나 사드랑, <O 이야기>의 폴린 레아주 드러운 소설이라는 데 동의합니다....ㅋㅋ

Falstaff 2022-08-26 12:42   좋아요 2 | URL
정말 왜 이 사람을 거들먹 거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이게 이번에 책을 읽고 얻은 유일한 성과입니다. 저 역시 소위 ˝지식인˝ 또는 ˝책 좀 읽은 인간˝의 글 속에서 바타유를 자주 발견해, 아직도 바타유 한 권 읽지 않은 자괴감이 들어 선택을 했다가 똥 밟은 심정입니다.

ㅋㅋㅋㅋ 저는 아직도 화딱지가 나는 건, 어째 한 번도 까틀린 M이 얘기하듯 발뒤꿈치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걷어채여본 적이 없느냐 하는 겁지요.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2-08-26 18: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타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말 여기저기 자주 나오더라구요. 근데 골드문트님 글과 댓글들 넘나 재밌습니다. 근데 아버지가 b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다니 사디스트인가요? 내용이 정상이 아니네요.

Falstaff 2022-08-26 21:44   좋아요 1 | URL
19세기 식 완전 가부장적 사이코 귀족 나부랭이 정도입니다. 소설에 자주 나오는 괴물 아버지,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 책에도 무지하게 흔한,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고기 안 먹는다고 딸의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그런 아빠 정도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