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기원 랜덤 시선 23
조연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뒷표지에 시인 강정이 한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시집 전반으로 봤을 땐 아무런 스토리도 없다."

앞뒤 다 자르고 가져오는 건 무리가 있겠으나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렇다.
모래알들이 횡대로 흩뿌려져 있는듯 각 행간들은 제 각각으로 읽힌다.
첫 시집의 시 한편들은 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는듯 했지만 두 번째 시집은
파편화된 문장들의 목적없는 집합 같기만 하다. 물론 시인에겐 결례의 말일 것이다.
읽어내기 쉽지 않은 시들의 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에 이르는 계절 시작시인선 43
조연호 지음 / 천년의시작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시집의 제목은 Mauro Pelosi의 'La Stagione Per Morire'에서 빌려 왔다. 그가 말하길, '소멸에 이르는 계절은 봄이다. 당신은 이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려 왔다'고 했다. -自 序

조연호의 첫 시집을 처음으로 읽었다. 그의 시는 이러저러하다는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집들이 그렇듯이 까만 글자들이 빼곡한 시집 한 페이지들을 넘겨갔지만
각 페이지 글자들이 그려내는 장면들이 또렷하다. 그래서 선명하다. 그래서 어둡거나 채도가
낮은 삽화가 가득한 드로잉북이라고 한다면 시인에게 실례가 되는 것일까.
그런 책의 모든 페이지들을 다 보고 뒷표지를 덮을 때의 느낌이나 생각에 대해선 당신들에게
맡긴다.
좀 더 긴 이야기는 두 번째 시집 『저녁의 기원』을 본 후에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의 노래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재개정판 5쇄 본

절망에 관한 悲歌라고 하겠다. 적의 위치에 따라 자신의 위치도 바꿔야 하는 고독한 장수의
내면일기라고 하겠다. 다만 그 사내가 '우리의 이순신'일 뿐이라 하겠다.

기자로 단련된 김훈의 문장은 짧지만 명확했다. 명확한만큼 경쾌했다. 그럼에도 절망의 무게와
깊이는 있는 그대로 전달됐다.

워낙에 떠들석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로 손이 가지 않던 작품이었다. 명작이나
고전을 잘 보지 않는 건 이런 이유같지 않은 이유다. 여하튼 y군의 강권아닌 강권에 의해 졸지에
읽게 됐다. 결과적으로 y군의 권유는 나쁘지 않았다(차마 좋았다 라고 쓰는게 내키지 않는 게
내 성격이니 어쩌랴).

왜적이라는 외부의 적과 임금을 비롯한 조정이라는 내부의 적을 목전에 둔 당대 이순신의 절망의
완성은 죽음밖에 없었을 것이다. 퇴각을 결정한 왜적을 두고 이순신 앞에 닥친 세상의 부조리와
전란의 공허를 읽으며 영화 밀양이 생각났다. 이미 용서 받았다고하는 범인에 대해 아직 용서하지
못한 이신애(전도연)가 교회에서 감정에 복받쳐 주체하지 못하던 그 장면 말이다. 세상은 언제나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고 무심하다는 것이 진리같다.

노래이긴 하나 그 노래가 무한히 슬프다면 이미 노래가 아닌 슬픔 그 자체다. 칼이 품어야 하는
무한한 슬픔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무참하게 써내려간 작품을 따라 읽어 내려 간 그분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니 이 작품은 그 어떤 위무도 담고 있지 않은 게 아닌가. 슬프면 더 슬픈
노래가 치유의 역할을 한다는 말처럼 그분 역시 무한한 슬픔과 절망을 다독이기 위해 이 작품을
읽은건 아닌가. 어디에서도 대답을 들을 수 없고 답해줄 수 없는 당신이 되신 그분이기에 뭐라 할
말이 없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12-19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놓고 안본 책이라서, 같은 이유로 미루어두는 책인데 R의 권유로 사긴 했지만..님의 평을 읽어보니 말이죠...언젠가 읽어보고 저도 별을 세개쯤 올릴듯.
 
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형철이 펴낸 두 번째 책을 읽었다. 첫 번째 비평서가 나름 성공적이었기에 다음 책을
기대하지 않을수 없었다. 건조하고 딱딱한 비평서가 아닌 아삼아삼한 문장으로 이뤄진
비평서이었기에 한걸음 더 가까이 대중들에게 다가간 비평가가 아니었나 싶다. 이 점 때
문에 어떤이들은 그의 비평서가 너무 물컹하다고 꼬집었다는데 어느 부분 동감한다.
그런 그의 이번 책은 '산문'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그의 비평서와 무엇이 다른가
의아했지만 그런 생각은 책장을 오래 넘기지 않고 해결 됐다.

간단히 말하자면 신형철이 읽고 보고 들은 음악 영화 시 소설에 관한 짧은 글들의 모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의 잣대가 아닌 개인의 '느낌'에 충실하게 적어간 글들이다.
비평가 이명원의 독서후기 같은 글들이 생각난다.

이런 류의 책들을 읽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더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알게 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란 말이다. 결국 몇몇 권의 책들이 벌써 온라인 서점의 보관함에
얌전히 담겨 결재 라는 절차를 학수고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 또 질러야 하는구나 =.=

마음에 닿는 부분을 옮겨보는 것으로 후기를 대신한다.


히포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그중 몸에 검은 담즙이 많은
사람들은 더러 이유 없는 비애에 시달리기도 한다니까. '검은 담즙'을 뜻하는 '멜랑콜리'가
오늘날 우울증의 명칭이 된 것은 그래서다.
토성의 기질을 타고난 사람에게도 멜랑콜리는 평생의 벗이다. 수전 손택에 의하면 비평가
벤야민이 그런 유형이었던 것 같다. 친구 숄렘은 '심오한 슬픔'이 그의 특징이라 했고, 프랑
스인들은 그를 '슬픈 사람'이라고 불렀다니까. 그런 유형은 "느리고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칼을 들고 자신의 길을 내며 가야 한다. 때로는 칼날을 스스로에게 돌려 끝을 내기도
한다."(수전 손택 『우울한 열정』) 그러니 벤야민의 자살은 어쩌면 파시즘과 토성의 합작품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담즙이나 토성 따위와 무관한 사람이라고 그 칼로부터 안전할 수 있겠
는가. 어떤 비애는 칼이 되어 나를 겨눈다. 이 비애를 어찌해야 하나.
-99p

기적이 없는 세계에 신파라도 있어야지. -106p

이와 같이 우린 들었다. 똑똑한 년이 예쁜 년 못 이기고, 예쁜 년이 운 좋은 년 못 당한다. 성실
한 놈이 학벌 좋은 놈 못 이기고, 학벌 좋은 놈이 빽 있는 놈 못 당한다. 이것은 냉소를 가장한
자조이고, 농담을 가장한 진담이다.
-238p

"인물의 낸면을 말로 설명하겠다는 생각을 접어라. 굳이 말해야 한다면, 아름답게 말하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말해라. 아름답게 쓰려는 욕망은 중언부언을 낳는다. 중언부언의 진실은 하나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 장악한 것을 향해 최단거리로 가라. 특히
내면에 대해서라면, 문장을 만들지 말고 상황을 만들어라." 그리고 덧붙인다. "(레이먼드)카버를
읽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 살의 집 - 한 아티스트의 변두리 생활
노석미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변두리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준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변두리란,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이 좀 더 많이 있는 조용하고 한가한 곳, 내가 가진 능력으로
힘에 부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고 판단되는 곳

내가 말하는 변두리라는 말에 어떤 삶에 대한 부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상 -5p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 변두리가 아니다.

잠시였지만 진지하게 생각했던 탈 서울하여 동해쪽 어느 곳에 가서 살면 어떨까
그것이나 변두리 생활이나 별반다르지 않겠지만 앞서 생각해봤던 건 지우고 서울 근처의 어떤
변두리 생활에 대한 생각을 곰곰히 한다.

부글거리는 마음과 속을 삭히며 하루 종일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버는 돈 보다는 못 벌겠지만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나은게 아닌가? 무엇을 하며 생계를 꾸리든 인생의
의미가 뒤바뀌진 않는다. 그 의미를 어디에서 찾으려고 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지만 지금처럼 사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스스로 쓰고 지우고 반복한다.

좌충우돌, 도시 젊은이가 도시를 벗어나 겪는 일상들이 우습기도 하고 안됐기도 하고 당돌하기도 하다.
그 나이였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을까. 땅을 사고 그 위에다 집까지 지었다는 마지막 장은 이건 대반전?

"매순간을 읽고 소유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살고자 한다면 탈 서울은 기본 조건인걸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일거리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마음 성할날이 얼마나 있나 싶다. 자살 일보
직전의 마음을 질질 끌고 돌아오는 하루의 마감 앞에서 무엇을 읽고 무엇을 내것으로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도 배부른 소리! 라 손가락질하면 할 수 없고...

현실이 아무리 초라하고 비루할지라도 스스로의 삶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헛된 인생을 사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140p

바꾸어 말한다면 비루하고 곤궁한 현실이라도 스스로의 삶에 집중한다면 참된 인생을 사는 것인데,
내 삶에 집중한다는 것을 나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고 '참'된 인생이란 건 또 어디까지인가.
지금이 '헛'인생인건 알겠지만 참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을 아직 구비하지 못했다. 이 나이에도 말이지.

출판사에서 내건 카피가 완전 부적절한 건 아니라고 해두자. 그렇다고 딱 그렇다고도 말하긴 어렵다.
뭐가 됐든 당돌한 사람들은 스스로가 지침이 될 뿐이다.

2-30대엔 방을 전전하며 돌아다니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40대엔 방 대신 '집'을 누려야하겠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은 대한민국 특히 서울살이다. 방이든 집이든 기본기만 충실하다면 한 개인이 거주하기엔
따질 필요는 없다.

출판사 블로그에서 미리 보고 어떤 지푸라기 같은 위안이 있을까 설레며 구입하고 읽었다.
위안 보다는 설명을 해줬다랄까, 그렇다. 그게 아니라 설명 받았다. 같은 말이긴 하지만.
그리고 낙서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담배연기처럼 책을 보는 내내 피어올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