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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1부. 불행해질 권리가 없는 <<멋진 신세계>>
1-1 소설의 배경과 줄거리 요약
1-2 잡썰 - 우리는 과연 이 멋진 신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i) ‘야만인 존’이라는 인물에 관한 것
ii) ‘불행해질 권리’라는 것
2. 번역 비교 및 각 판본의 장단점 소개
2-1 번역 비교
2-2 두 출판사 번역본의 장단점
ps 리뷰를 마치며
1. 잡썰 – 우리는 과연 이 멋진 신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제목 <<멋진 신세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 5막 1장에서 따온 것이다.
제목 그대로 멋진 미래 세계에 대한 소설로 받아들이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반어법적 제목일 거라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1930년대에 쓰여진 소설을 거의 100년에서 10년 빠진 2020년에 읽다보니 어쩔수 없이 좀 심심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당시의 헉슬리가 상상한 미래가 곧 현재일 수도 있다보니 지금 읽다보면 식상함이 없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충분히 얼마든지 오징어를 씹듯 곱씹을만한 작품은 맞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의 100여 년이 지나가는 동안 잊혀졌을 것이다.
여러 장면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뜯어보자면
17장에서 통제관과 야만인 존이 나누는 대화의 마지막 부분이다
(...)
“하지만 난 불편한 편이 더 좋아요.”
“우린 그렇지 않아요.” 통제관이 말했다. “우린 편안하게 일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_362 소담
이 대화 장면에 대해 대략 두 가지 정도를 이야기할 것인데
첫째는 이 야만인 존이라는 인물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야만인이 주장하는 ‘불행해질 권리’에 대해서다
i) 설득력이 떨어지는 야만인 존
1946년 개정판의 머리글에서 헉슬리는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20년 전에 저지른 문학적인 결함들에 집착하는 행위, 처음 작품을 만들 때
이룩하지 못했던 완벽성을 성취하기 위해 좋지 못한 작품을 뒤늦게 보완하려는
시도, 지금과는 크게 달랐던 젊은 시절에 저질러 놓은 예술적인 미숙함을 바
로잡기 위해 헛되이 중년 시절을 낭비하는 짓-이는 모두 분명히 쓸모없고
허황된 행위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새로 내놓는 이 <<멋진 신세계>>는
과거의 작품과 다를 바가 없다.
_009
헉슬리 자신이 인정한 바와 같이 솔직히 <<멋진 신세계>>의 완성도는 좀 떨어진다고 본다. 특히나 야만인 존은 좀 오버스러웠다. 초등학생의 입에서 대학생의 의견이 막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작가가 등장인물과의 거리 두기에 실패한 경우라고 본다. 작가가 인물에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충분히 성장시켜놓지 못한 인물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주입한 느낌이다.
작품의 후반부를 휘젓게 하고 싶었다면 존의 출생과 성장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어야 설득력이 높지 않았을까 했다. 물론 헉슬리가 생각하는 부족한 부분과 독자들이 생각하는 부분이 같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머리글에서 언급한 것 가운데 이것 아니면 저것이어야 했던 존의 선택지를 개정판에서 적당한 타협안을 하나 더 제시한다고 했을 때 과연 이 작품의 의미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어쨌든 헉슬리는 예술가로써 완벽성을 추구하기 위해 작품을 뒤집어엎는 허황된 노력은 하지 않은 듯 싶지만 아주 미미한 부분에서는 개정판을 내며 수정을 가하지 않았나 하는 흔적은 남아 있고 그것에 대해서는 뒤에 나올 번역과 판본 비교에서 살펴보겠다.
다음으로
ii) ‘불행해질 권리’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불행’과 ‘권리’라는 말의 조합부터가 모순적이다.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불행해질 권리’라는 걸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세계국의 모든 인간들은 외견상 불행한 인간은 없다. 조금만 불행의 기운이 들 것 같으면 ‘소마’라고 하는 알약을 삼킴으로써 불행을 떨쳐낼 수가 있다. 마치 우리가 으실으실 감기 기운이 들 때 감기약을 미리 복용하고 한 잠 푹 자고 나면 감기가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을 생각해보면 쉽겠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선과 악을 알고 불행 또한 따라왔으니 선악과 이전의 인간에게 불행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야만인 존이 불행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최초의 인간처럼 신의 에덴동산에서 뛰쳐나오는 것으로 해석하면 과장된 무리수일까.
디스토피아적 미래와 그 앞에선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식상할 수준이긴 하다. 그런 내용의 영화나 소설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그것이 주는 환기효과도 한몫할 것이라 본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등을 비롯 많은 이야기들이 들려주는 인간의 미래처럼 결국 인간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멋진 신세계>>가 발표된 1932년으로부터 2020년 현재까지를 돌아봤을 때 우리 인간의 세계는 유토피아에 한 발 다가섰을까 아니면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졌을까. 당신의 세계는 어디쯤 있나 궁금키도 하지만 당신의 1인용 세계가 어디에 놓여 있든 상관없이 인류의 세계가 시궁창이라면 당신의 세계 역시 그 안에 속할 뿐이니 나의 안온한 세계 같은 건 그저 시궁창 위의 종이배일 뿐이다.
다시, ‘잡썰 – 우리는 과연 이 멋진 신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로 돌아와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헉슬리가 상상한 세계와 유사해져 가고 있는 이 세계에서 과연 깊숙이 담그고 있는 두 발을 빼낼 수 있느냐보다 과연 발을 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있느냐를 먼저 물어봐야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맨얼굴은 쫓겨날까 싶어 울며불며 무릎 꿇던 버나드에 가까울 것 같다.
그 버나드의 마음이 이해 못할 마음도 아니란 생각도 든다. 인간의 신세계는 소설 속 세계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당연히 말할지 모르겠지만 소설 속 세계국의 인간들처럼 살아가면 왜 안되나 그건 진짜로 인간이 가면 안되는 길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야만인 존이 말하는 세계가 너무 순진한 거 아니냐 싶다 그 말이다.
선과 악을 모른 채 결코 불행할 일 없는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게 왜 인간적인 세계가 아닌 건지.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태어나 타인과 비교하는 걸 모른채 살아가는 그런 세계가 왜 타파해야 할 세계인 건지. 평등하다지만 대놓고 자행되는 불평등과 차별 그리고 빈부의 격차가 계층이 아닌 계급이 되었고 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된 이 세계가 소설 속 세계보다는 낫다고 말할 자신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나 금수저를 입에 물고 있는 인간이라면 지금 이 세계가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말하거나 안주하려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헉슬리가 마무리 지어놓은 결말은 단순하고 순진한 것도 같다.
2. 번역 비교 및 두 출판사 번역본의 장단점
비교를 하기 전에 밝혀둘 것은 읽은 것은 소담출판사의 안정효 번역본이고 비교해 본 것은 문예출판사본이란 것이다.
다음은 굳이 다른 한 권을 꺼내보게 한 시발점이 된 문장과 비교 문장이다.
국장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주 천천히 이동하는 피대皮帶 위에서는 받침대에 가득 얹힌 시험관들이 커다란 금속 상자로 들어갔고, 그러면 시험관이 잔뜩 얹힌 또 다른 받침대가 나타났다.
_34 소담
이 문장을 읽고 저 ‘피대’란 게 무엇인지 궁금했고, 일반적으로 저 단어가 많이 쓰이는 단어일까 의아했고, 그래서 다른 책은 어떻게 번역했나 찾아보게 되었다.
소장은 지적했다. 매우 서서히 움직이는 컨베이어 위에 놓인 시험관이 가득한 선반이
큼직한 금속 상자 속으로 들어가고 또 하나의 시험관이 담긴 선반은 거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_11 문예
문예출판사본이 영어 그대로 ‘컨베이어’라고 옮겨놓은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이거 번역 때문에 짜증이 좀 나겠구나.
대부분 이런 직감은 그대로 적중하는 편이다.
한번 이런 식으로 비교를 해보기 시작하니까 뭔가 좀 매끄럽지 못하거나 다른 번역은 어떻게 번역했을까 하는 호기심과 짜증 같은 게 끊이지 않으니까 과속방지턱이 1 미터마다 있는 도로 위를 지나가는 것과 같은 읽기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독특한 개성이란 미덕과 행복에 이바지하지만 보편성이란 지적인 필요악이기 때문이다.
_31 소담
그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전문적 지식은 덕과 행복을 증진시키나 전반적인 이해는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
_8 문예
“가서 죽어버려요!” 격분한 목소리가 안에서 소리쳤다.
_266 소담
“되는 대로 하면 되잖아요.” 방에서 격분한 목소리가 소리쳤다.
_218 문예
‘인간이 만일 행복에 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인생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_272 소담
‘행복에 대한 사색을 허가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_223 문예
하지만 순결은 욕정과 신경 쇠약증을 의미합니다.
_358 소담
순결은 정열을 의미하며 신경쇠약을 의미하는 거야.
_301 문예
배아가 돋아나면 거의 죽음에 이를 상태까지 알코올로 축인다.
_35 소담
발아가 끝나면 사멸할 정도까지 알코올에 담근다.
_11 문예
유리병 담당 계원 다음에는 입병원入甁員들의 차례였다.
_39 소담
그 담당계원들 다음에는 난자삽입 담당이 서 있었다.
_16 문예
상실배桑實胚 _39 : 상실기태아 _16
염분 용액 _39 : 염기성용액 _16
낭창浪瘡 _41 : 결핵성 부스럼 _17
숙사 _62 : 공동 침실 _36
다음의 예로 든 문장들은 교정 과정에서 놓친게 아닐까 싶은 것도 있고
굳이 이런걸 다 지적하는 나처럼 굳이 번역을 이렇게 했나 싶은 것들이다
“색인표가 88제곱미터에 달합니다.”
_40 소담
“팔십팔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색인 카드입니다”
_16 문예
촘촘히 들어선 내쏘고 치기 탑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반짝였다. ‘양치기의 숲Shepherd’s Bush’근처에서는 2,000쌍의 베타 마이너스 혼성 복식조가 정구를 치고 있었다.
_113 소담
원심식 범블-퍼피 경기탑들이 나무 사이에서 빛났다. 셰퍼즈 버시 근처에서는 2천 명의 베타 마이너스 계급이 혼합복식으로 리만 평면식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_79 문예
반공일을 위해서는 2분의 1그램, 주말을 위해서는 1그램, 화려한 동양으로의 여행을 위해서는 2그램
_104 소담
주말에는 반 그램, 휴일에는 일 그램, 호사스런 동방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이 그램
_72 문예
“2,000명의 약학자藥學者들과 생화학자들은 포드 기원 178년에 보조금을 받았어.”
_101 소담
“포드 기원 178년에 와서 이천 명의 약사와 생화학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했던 거야.”
_69 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