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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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둘을 애써 가를 필요는 없습니다. 둘이 모여 하나를 품고, 품은 하나 속에 둘이 있습니다.

 

 

모처럼 곁에 두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글을 만났다.

고향갑.

처음 읽는 작가님의 글이 참으로 고단하다.

그 고단함이 참으로 좋다...

 

 

4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각 장마다 한 글자의 제목이 달렸다.

한 글자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 너, 우리의 이야기다.

 

가슴이 저리고

가슴이 아리고

마음이 들썩이다가

마음이 녹아든다.

생각이 생각을 더하고

글들이 깊이 있게 각인되어 책장을 넘기기가 조심스럽다.





69편의 글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요해진다.

내가 알지만 모르는 세상이 담겨 있고,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뒷면이 담겨 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글이지만 서슬이 퍼렇다.

 

 

사랑의 온도는 더하거나 뺄 수 없어요. 각기 다른 두 개의 삼십육 점 오 도가 합해져도 여전히 삼십 육 점 오 도니까요. 그런 점에서 사랑의 온도는 체온과 일치해요.

 

 

나는 조잘거렸고, 그는 빈 종이컵에 소주를 채워 내 앞에 내려놓았다.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었다. 측은이 측은을 채우면 다른 측은이 측은을 비웠다.

 

 

문학은 손으로 써내는 가슴 속 언어입니다. 어깨나 이마에 붙이기 위한 계급장이 아닙니다. 문학을 자꾸 크고 거창한 학문으로 격상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학문으로 격상시키는 순간, 문학은 '항문'이 되고 '똥'이 됩니다.

 

 

떨지 마라, 아내야. 당신은 손가락 하나를 잃었지만 세상은 가슴을 잃었다. 사람은 없고 밥그릇만 보이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설움을 앞에 두고도 고개 돌리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숨소리를 따라 들썩이는 허파는 있어도 생명으로 쿵쾅대는 심장은 없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가슴이 차오른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내가 부끄러워진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먹먹해진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가 그만큼 특별해진다.

 

고향갑.

이름에서부터 온갖 그리움들이 담긴다.

이 작가님의 글을 처음 읽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움의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한 글자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결들이 깊이 있어서 좋다.

곁에 두고 자주 읽어서 각인시키고 싶은 문장들이다.

이 책에 코를 박고 힘껏 들이마신다. 글들이 코로 들어와 심장에 박혀 벌컥거리며 혈관을 타고 뇌로 향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왜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너무 안온하게 살았나 보다...

 

제목처럼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에 묻혀서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서 사는 삶은 다채롭지 못하다.

이 글을 읽으며 그동안 다채롭지 못했던 세상을 물들여 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글이 고픈 사람들

깊게 음미하고 싶은 글을 찾는 사람들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한 글자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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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1 전지적 독자 시점 1
싱숑 지음 / 비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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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세계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였다.

 

 

10년간 연재되던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일명 멸살법.

이 이야기의 마지막 독자는 바로 김독자 한 명뿐이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멸살법의 마지막 문장대로라면 살아남을 사람은 오직 김독자 한 사람뿐이다.

그가 이 멸살법의 유일한 독자니까.

 

독자는 작가에서 첨부파일 하나를 받는다.

오후 7시 이후로 유료화가 시작된다는 문자와 함께.

오랜 시간 멸살법을 읽어 준 독자에서 준 작가의 선물이다.

대단찮아 보였던 이 선물의 존재는 이후에 펼쳐질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이 된다.

그동안 독자가 살아왔던 세상은 이제 사라졌다. 새롭게 유료화가 된 멸살법의 세상이 온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으니까.

 

내 삶의 장르가 '리얼리즘'이 아니라 '판타지'였다면, 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한다.

그리고 한 번쯤은 그 게임의 세계가 현실이 되기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전지적 독자 시점은 우리에게 그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세계이다.

그 게임 안에서 주어진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고, 보상을 받고, 아이템을 찾고, 그다음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서 점점 레벨을 높이고, 사람들과 연대해서 팀을 이루고, 서로를 죽이며 미션을 이루어가는 세계.

하지만 그 미션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싱숑이라는 필명을 쓰는 한 사람의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싱과 숑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에는 균형이 담겼다. 한 사람의 독단이 빠진 이야기는 그래서 탄력이 붙는다.

게임을 알면 알아서 더 많은 것이 보이고, 게임을 몰라도 재미를 느끼는 데는 1도 어려울 것이 없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서 현실을 찾게 되는 건 왜일까?

 

독자에겐 독자의 삶이 있는 거니까요.

 

 

책을 읽는 독자에겐 책과는 다른 독자의 삶이 있다.

하지만 전독시의 주인공 김독자에겐 책속의 삶이 주어졌다.

이 이야기의 끝을 아는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

하지만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는 유일한 독자로서 독자는 독자적인 플레이를 한다.

그렇기에 이 세상은 새로운 시나리오가 필요하고, 독자는 자기가 알던 시나리오와 자신으로 인해 새롭게 생기는 시나리오를 잘 접목시켜야 한다.

그것은 독자라는 캐릭터가 성장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이야기의 묘미는 바로 그것에 있다.

멸살법의 세상에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아는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

그리고 멸살법의 주인공이자 몇 번씩 죽음에서 회귀한 유중혁.

유중혁은 시나리오의 끝까지 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회귀하여 자기가 지나온 길을 쉽게 돌파한다.

그리고 그 길은 회귀가 거듭될수록 거칠어지고 무참해지고 무감각해진다.

멸살법의 결말을 알고 있는 김독자 역시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새롭게 추가되는 시나리오를 돌파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가차 없이 나아간다.

현실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도 할 수 있는 것이 독자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싶어 하게 된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판타지 소설임에도 인덱스를 많이 붙여야 했다.

게임 속 세상이 현실과 동떨어질 거라 생각했다면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게임 속 세상은 현실보다 더 빠르고 원초적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세계가 이처럼 확실하게 펼쳐지는 세상은 없다.

그래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살아남기 위해 가차 없이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본성은 본성대로의 길을 가게 마련이다.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절망에 먹혀 날뛰는 인간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진짜 위험한 놈은 타인의 절망을 권력의 비료로 사용하는 놈이다.

 

 

이 세계는 소설 속 인물들만 나오지 않는다.

첫 번째 시나리오가 가혹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멸살법의 세상에서 근본 없는 사람들이다. 데이타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선택과 행동에 의해 이야기들은 자꾸 바뀌어 간다.

그래서 독자가 아는 멸살법의 세계는 점점 변해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인공 유중혁과 김독자는 세기의 대결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누가 주인공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적응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앓는다. 누군가는 광기로, 누군가는 광신으로, 또 누군가는 비합리적인 낙관으로.

 

 

독자가 멸살법의 세계를 앓는 방식은 무엇일까?

초반부 독자는 소설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그러나 자신의 팀을 꾸리고 사람들을 조종하며 나아가는 독자의 모습은 그가 소설대로의 끝을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독자가 가는 길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독자는 독자의 방식으로 싸운다.

나는 이 세계의 누구보다도 이 세계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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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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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난 이 세상에 적이라곤 없어!"

 

 

리넷 리지웨이는 젊고, 아름답고 게다가 굉장한 부를 상속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이 여자는 세상에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 자신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으니까!

 

셸랄을 향하는 카르나크 호엔 신혼여행 중인 도일 부부와 푸아로 탐정이 타고 있었다.

어딜 가나 주목을 받는 도일 부부.

그러나 그들을 부지런히 뒤쫓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리넷 도일의 친구이자 사이먼 도일의 옛 약혼녀 자클린이다.

세상 부러울 거 없었던 리넷 리지웨이는 친구의 약혼자와 결혼했다. 자클린에게 남은 거라고는 약혼자 도일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들이 신혼여행을 떠난 후로 가는 곳마다 자클린과 마주친다. 도일 부부는 자클린과 마주칠 때마다 자신들의 여행 계획을 바꿔 보지만 귀신같이 그들을 찾아내는 자클린은 이제 죄책감을 넘어 분노를 치솟게 한다.

 

이즈음 상류층엔 보석 절도가 유행한다. 위조품과 진품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상류층의 보석을 훔치는 자가 있다.

이번엔 리넷의 진주 목걸이에 눈독을 들인다.

사람들을 선동해서 폭력사태를 유발하고 살인을 저지른 자도 카르나크에 타고 있다.

그리고 이 배엔 도벽이 있는 상류층 부인도 타고 있다.

이 어수선한 조합 가운데 푸아로가 버티고 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뭔가가 벌어질 거 같은 예감을 느끼는 푸아로.

그가 같은 배에 탄 걸 마땅찮게 여기는 자가 있는 반면 그가 곁에 있어서 든든해하는 사람도 있다.

이 복잡한 마음들이 같은 배를 타고 나일 강을 건너고 있다.

과연 이 배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 말은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 말은, 그 숙녀가 부유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무엇도 알고 있지요.

 

 

단 하나를 빼앗긴 자의 증오심.

다 가졌으면서도 단 하나를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은 자의 죄책감.

가진 건 없어도 고급 지게 살고픈 욕망.

지루한 인생에서 재미를 찾고자 보석을 훔치는 자의 스릴.

상류층이라는 허울 아래서 도벽을 일삼는 자의 고고함.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뚝심 있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하나의 작품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물 건너간 알콜중독자.

그 곁에서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힌 우울한 여자.

 

오리엔트 특급에서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함께 배에 갇혔다.

그들 각자의 욕망을 담고 카르나크는 나일 강을 흐른다.

하나의 살인미수는 세 건의 살인을 불러온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게 그런 걸세. 진실, 완전히 드러나 빛나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관련 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있는 거지."

 

 

카르나크 호에 승선한 사람들의 진술을 듣는 푸아로는 자신이 사건 당일 숙면을 취한 것이 안타깝다.

하필 그날 어째서 그는 졸음을 참지 못했을까?

진실을 목격한 사람은 침묵하고 살인은 살인을 불러온다.

 

나일 강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10권 중에 한 권이다.

정식 완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인간에게는 갖지 못한 것을 열망하는 욕망이 있다.

남의 것을 탐하는 걸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열망 말이다. 거기엔 항상 정당한 변명이 마련되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쥐게 된 부와 명예. 이것들이 뭔지도 모르고 지니고 살았던 사람들의 무력감이 호기심과 재미로 무엇을 탐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일강의 죽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만 그 증거가 없다는 걸 말일세. 이 사건은 논리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되는데, 실제로는 너무나도 불만족스럽다네.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살인범의 고백일세."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완전범죄.

푸아로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까?

어리석은 욕망이 자신의 목숨 값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달라질까?

살인사건의 목격자는 그걸로 살인범을 협박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살인범은 또 다른 살인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주체적이다.

그녀들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남자에게 휘둘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잘" 조정한다.

 

고전 추리소설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을 위트에 버무려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기 때문이다.

특별한 장치 없이도, 쓸데없이 잔인하지 않고도 재미지게 사건을 추리해가는 과정이 사람들의 마음속 욕망을 다독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탁월하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지만 완역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돋보였던 나일강의 죽음.

많은 등장인물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와 함께 죗값을 치러야 하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말들이 생각거리를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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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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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했다. 돼지들이 미쳐 날뛰었다. 농부와 친구들도 미쳤다. 이론상으로는 살아남은 돼지와 접촉한 이후였다.

 

 

신천국이라는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퇴출당한 윈터.

언니와 조카를 구하는 걸 목표로 삼은 윈터.

퇴출되어 세상에 던져진 윈터의 눈에 비친 세상은 믿고 싶지 않은 신천국 교주 매그너스의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죽고, 어딘가에선 전쟁이 한창이고, 세상은 미친 자들의 나라처럼 보였다.

게다가 뉴스에서는 연신 치매에 걸린 환자들 얘기가 심심찮게 나도는 세상. 윈터는 자신이 퇴출 당한 게 구원인진 절망인지 알 수 없다.

 

고대 바이러스 + 현대의 인플루엔자 = 치매와 광기

 

한국계 미국인 토스카 리의 소설 라인 비트윈.

이 소설은 2019년 완성되었는데 팬데믹 상황을 예견한 예언서라는 별칭이 붙었다.

고대 씨앗들을 모으는 종교집단 신천국.

치매 현상이 들불처럼 번지는 세상.

그것에 대한 예방은 그저 손을 깨끗하게 씻고 집에 머무는 것뿐이다.

도시는 봉쇄되고, 사람들은 집 밖에 나오는 걸 두려워하는 세상.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뇨. 세상은 이런 식으로 안 끝나요."

 

엄마에 의해서 언니와 함께 신천국에 들어가게 된 윈터.

20대 초반의 나이지만 세상과 격리된 오랜 종교집단의 생활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런 윈터에게 세상을 구할 자격이 주어진다.

작가는 이 여린 듯 강한 심지를 가진 여성을 통해 세상을 구할 서사를 그려낸다.

세상은 언제나 위급 상황에 처할 때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 영웅은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된다.

대단한 학식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이름 모를 사람의 용기와 강인함이 세상을 구하는 구심점이 된다.

 

고대 바이러스 얘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미 사례가 있었고,(그 사례가 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었다.)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인류는 이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실제 눈앞에서 벌어져야 알게 될 사실이다.

그러지 않는 이상은 몇몇의 희생은 눈 가리고 아웅하게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샘플뿐이다. 나도 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안전을 위해 그렇게 애를 써놓고는 세상을 광기로 채울 질병을 조수석에 싣고 달리지 않는가. 디카로 장로가 지금의 나를, 그리고 콘솔함의 샘플들을 보면 뭐라고 할까? 라디오에서 <지옥행 하이웨이Highway to Hell>가 터져 나왔다.

 

 

이 이야기의 두 번째 이야기도 있다.

그 두 번째 이야기에서 나머지 궁금증이 해결될 것이다.

소설은 현실을 따라갈 수 없지만 현실의 미래를 미리 보여줄 수는 있다.

우리 앞에 놓인 무수히 많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계속 변종으로 우릴 괴롭힐 것이고, 인류는 새로운 바이러스와 아직 인사조차도 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가 그저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현실과 너무 근접해 있다.

 

바이러스의 정체를 모르고 노출됐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예방조치란 결국 손을 깨끗하게 씻고 마스크를 쓰는 게 다이다.

이게 현실이라서 미치도록 웃프다...

 

정말 세상이 이런 식으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우리의 현재를 살펴보기 위해 읽어 봐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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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을 위한 시 - BTS 노래산문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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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길이야. 하지만 너만 같이 가준다면 이 길을 성공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부탁한다. 좀 도와다오. 같이 가자. 낯선 길에서 우리 낯설지 않은 구름과 바람으로 만났으면 좋겠구나.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와 어른 세대를 대표하는 시인 나태주 시인의 산문이 만난 책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이 책은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를 읽고 나태주 시인이 그 감상을 적은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방탄의 노래 가사는 시적이면서도 듣는 이들에게 현실과 용기와 희망과 사랑을 전해주는 가사로 유명합니다.

저는 사실 방탄의 노래 가사 때문에 이 책이 탐이 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세대 간의 갈등이 더해지고 있는 요즘 방탄의 노래 가사가 들려주는 젊음의 절규를 기성세대의 부모 세대인 나태주 시인이 얼마만큼 이해하고 받아들일지 저로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출판사도 시인도 요즘 유행하는 방탄에 편승하기가 아닌가 의심도 했고요.

반신반의하는 감정으로 책을 읽어갔습니다.

 

 

나는 마음이 어둡고 우울할수록 더욱 밝고 환한 세상을 꿈꾸며 살아야 한다고 말해. 그것이 우리가 끝내 살아남는 길이야.

 

 

나태주 시인은 '예원' 이라는 이에게 방탄의 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청합니다.

이분이 손녀인지 아는 지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탄의 가사에 영어가 많으니 도와달라고 청하는 말을 읽는 순간 나태주 시인의 마음가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무조건 읽고 비판하거나 무조건 칭찬만 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독자들에게 온전히 닿는 부분입니다.

 

 

 

현명할 필요가 있어. 마음의 눈을 뜰 필요가 있어. 현명이란 지혜와 통하는 것. 지혜는 지식과는 무늬가 달라. 지식은 그냥 무엇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하지만 지혜는 아직 오지 않은 일들을 헤아려 아는 것을 말하지. 미래의 일, 마음의 일, 미해결의 일을 아는 힘을 말하지.

 

 




방탄의 노래 가사마다 시인의 감상이 따릅니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분이라 그런지 눈높이를 맞추어 전해지는 감정들이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방탄의 현실에 노년의 지혜가 덧붙여진 글은 읽은 이들에게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듭니다.

 

 

 

BTS, 그들의 노래는 한마디로 말해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이라 할 수 있어.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각이 기상천외해. 매우 새롭다는 얘기지. 하지만 내용만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개인적이어서 친근함을 느끼게 해.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이게 또 그들이 부루는 노래의 특징이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매력이라고 생각해.

 

 

방탄의 노래는 오래된 술을 새 부대에 담은 느낌이다.

 

방탄의 모든 노래는 팬들에게 보내는 팬레터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팬이자 서로의 아이돌입니다.

 

 

시인은 방탄과 아미들이 끊임없이 주고받는 선순환이 방탄의 존재감과 인기를 더욱 끌어올린다고 생각하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태도라고 말합니다.

 

 

가끔은 난해한 가사를 해석한 방식이나 내가 느낀 감정과 다른 느낌을 마주할 때가 있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또 좋았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감상은 그 자체가 열린 마음이라서 제가 더 닫힌 느낌을 받았네요.

시인의 감성을 평생 동안 벼리신 분이라 그런지 더 해맑고, 더 순수하게 감상하시는 걸 보니 의심했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게다가 연륜이 전해주는 지혜로운 말들은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감정들까지도 전해줍니다.

 

 

 

"너무 빠른 건 조금 위험해/ 너무 느린 건 조금 지루해/ 너무 빠르지도 않게/ 또는 느리지도 않게/ 우리의 속도에 맞춰 가보자고/ 이건 꽤나 긴 즐거운 롤러코스터." 이 소년은 매우 지혜로워.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 인생을 즐길 줄 알아. 인생을 '즐거운 롤러코스터'로 보았네. 올라갔다가 내려오고 또 그러기를 반복하는 게임으로 말야. 그래,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보지 않기. 이것도 하나의 삶의 방법이고 지혜 그것인지 몰라.

 

 

제가 좋아하는 노래 <<잠시>>에 대한 저의 느낌은 사랑의 방식이었습니다.

시인의 감성은 그것을 인생으로 확대했네요.

그리 확대해 보니 노래가 더 새롭게 들립니다.

 

 

노래도 매번 듣는 노래만 듣는다면 새로운 노래를 들을 기회가 없습니다.

그건 새로운 노래에 담긴 새로운 메시지를 듣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산다는 건 공존의 이유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BTS를 통해 나태주 시인을 통해 분열되어 있는 모든 세대가 한데 어우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소통의 가교로 방탄의 노래가 널리 울려 퍼지길 바랍니다.



그들은 이제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좋을거야.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유명한 사람들이 되어서가 아니랴.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이지. 그것을 나는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정말로의 행복이라고 믿어.



 

*출판사 지원도서이나 온전히 내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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