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돈의 미래 - 세계 3대 투자자 짐 로저스가 말하는 새로운 부의 흐름
짐 로저스 지음, 전경아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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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2019년부터 지난 2008년 일어난 글로벌 금융 위기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 경고해왔다. 그 위기가 지금 시작되려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짐 로저스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자"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가 예견한 위기의 시대에 돈의 미래에 대해 어떤 예견을 내놓았는지 참고로 알아두면 좋을 거 같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 각국이 국경을 봉쇄했고, 인류는 어쩜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불안한 시대에 투자를 한다는 건 엄청난 모험을 감행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도 그것이 기회가 되는 것들이 있고

그 기회를 걸머쥐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자로서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전망하고 어떻게 투자할지에 대한 얘기를 읽는다면

뭔가 다가올 위기의 시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을 거 같다.


과도한 채무를 지고 있는 수많은 기업, 국가, 도시는 이제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 과거에도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어렴풋하게 느끼고는 있었지만 사실 경제나 국제 관계에 그닥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으로서 이런 것들을 예견한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자그마한 가게를 하더라도 경영자로서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짐 로저스의 예견은 상당히 부정적이긴 하다.

코로나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직전인 세계의 경제는 이미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함으로 생기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각국의 경제를 힘들게 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나라와 기업들이 빚을 지고 있고, 그것을 상환해야 하는 상황이 왔음에도 상환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인한 타격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인도의 경기 침체와 넉넉한 자본으로 한때 세계를 구했던 중국도 채무자로 전락했고,

현제 세계 최대 적자 국가는 미국이다.

이런 연결고리들이 어느 순간 툭! 끊어지면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파급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버텨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상식에 대한 의심

사실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은 15년이 지나면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틀에 갇혀 있지 말고 변화를 감지하는 '촉'을 키워야 할 것이다.

변화를 빨리 감지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역발상 마인드

모든 이가 비관적으로 "이제 끝이야"라고 말할 때 투자하면 위기에서 벗어나는 시점에 얻을 수 있는 보상이 크다.

사실 이 이야기는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당장 이익을 보려 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하고, 숫자에 약한 나로서는 뭔가에 투자하고 이익을 본다는 생각은 안 하는 주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세상을 관통하는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관심이 없다 한들 경제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음으로 투자의 귀재가 이야기하는 말들은 넓고 얕게 알아두면 좋은 경제 지식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시기에 적어도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알아두는 건 필요할 거 같다.


투자에 관심이 있거나

앞으로의 경제가 어떤 변화를 가질지 궁금한 사람들이 읽어 보면 좋을 거 같다.


세상의 상식을 의심하라.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진실이 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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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윌 : 도덕형이상학의 기초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2
임마누엘 칸트 지음, 정미현 외 옮김 / 이소노미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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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할 수록 커져만 가는 존경과 경탄으로 내 마음을 새롭게 채워 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요, 내 안의 도덕법률입니다.

임마누엘 칸트의 묘비명에 새겨진 문장이자 <실천이성비판> 맺음말의 첫 구절이다.


이소노미아의 인류천재들의 지혜 시리즈를 사 놓고 읽지 못하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런차에 독서 카페에서 함께 읽기를 시작해서 같이 읽는 중이다.

사실 철학은 어렵기도 하지만 뭔 말인지를 곱씹어 봐야 해서 쉽게 손에 잡기 힘들다.


함께 읽는 책이라 시작했지만 사실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중간중간 올라오는 다른 분들의 리뷰를 눈팅하면서 좀 더 배워보려 노력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이 책 앞 부분에 어떻게 해서라도 조금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편집자의 노력이 엿보였고

이소노미아 책만의 특징인 편집자 뒷담화(?)에서 얻어지는 팁으로 이 책이 조금 다가서기 수월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표지에 찍힌 마크는 사랑의 열매를 본뜬 것이다.

이 책의 판매가 중 5%는 사랑의 열매에 기부된다.


도덕법칙은 모든 종류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실천적인 지식과 본질적으로 다른 원리를 지닙니다. 모든 도덕철학은 철학의 순수한 부분에 전적으로 의존하지요.

도덕철학은 인간 자신의 지식(인간학)으로부터는 어떤 것도 차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반대로 도덕철학은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선천적인 법칙을 제공합니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목적으로 존재한다.

시민이건 통치자 건 의지의 자유가 있다.

자유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증명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칸트는

인간을 믿고 싶었던 철학자였다.


인간의 선한 의지.

인간의 본성.

그 자체를 믿었던 철학자였다.


지금 21세기의 사람들을 본다면 칸트는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대체적으로 인간은 선하다.

자유의지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시야가 좁아진 세대에게 '선하다'라는 의미는 자기 자신 안에만 국한된다.

넓은 의미에서, 세상을 향한 시선으로 바라본 '선하다'라는 의미는 칸트가 바라는 것이다.


신이 있고

철학이 있고

수많은 타당성이 존재한다 해도

단 한 명이 가진 인간의 의지로 그 모든 것들은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선한 의지를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알지만 정말 실천하기 힘들고

알고 있지만 내 발등에 불 떨어지면 어떻게 될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선한 의지'다.


얼마 전 읽은 스완이 떠오른다.

스완에서의 일어난 일들과 그 이후의 삶들을 칸트가 읽는다면 뭐라고 할까?


굿윌은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 봐야겠다.

그때는 또 다르게 읽힐 테니.


칸트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한 번도 안 읽어 본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저처럼 칸트라는 철학자가 있고, 순수 이성 비판,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실천 이성 비판 등을 들어 본 적이 있는 분이지만 전혀 감을 못 잡겠는 분.

칸트에 도전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는 분.

그리고 탐구하고 음미할 시간이 많은 분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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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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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했다. 당연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고요했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사실이다. 그는 나중에서야 그걸 왜 못 알아챘을까 생각했다. 그날 밤 그에게 닥친 수많은 실패 중 하나였다.

미식축구 유망주였던 에이머스 데커는 경기 중 머리로 낙하하는 부상을 입는다.

죽음 직전에서 살아 돌아온 그에겐 없던 능력이 하나 생긴다.

과잉기억 증후군.

한 번 본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게 된 데커.

그 기억력을 얻고 그는 공감능력을 잃어버렸다.


선수의 꿈을 접고 대신 경찰이 된 데커는 물리치료사였던 캐시와 가정을 꾸리고 몰리라는 딸도 얻었다.

그러나 몰리의 생일을 앞두고 데커는 늦은 퇴근 후에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와 딸과 처남이 무참히 살해된 현장과 마주한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사건 현장이자 그의 단란한 집.


사건 이후 경찰을 그만두고 노숙자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 근근이 들어오는 탐정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데커에게 어느 날 사건이 찾아온다.

모교인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은 감쪽같이 사라진다. 데커는 경찰서장의 요청으로 사건에 투입된다.

데커의 가족을 죽인 범인 레오폴드의 자백. 하지만 데커는 그가 범인이 아님을 확신한다. 결코 만난 기억이 없으니.


진실이 늘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니에요. 때론 우리를 가두는 감옥이 될 수도 있죠.

단서를 남기지 않는 사건, 과거와 엉켜있는 사건.

데커를 노리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는 자체가 처음에는 대단한 능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끔찍한 기억마저 모두 기억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능력이 아닌 거 같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까닭은 긴 삶을 행복하게 살기 위함이다.

가족의 살해 장면을 모조리 기억하며 산다면 그건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이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이 편에서 데커는 FBI와 연을 맺는다.

그리고 앞으로 그가 활약할 발판이 만들어졌다.

시리즈의 첫 시작을 알리는 데커의 이야기가 이게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데커를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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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마녀 또는 아그네스
해나 켄트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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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 진술을 뒤틀어서 악의를 덧씌웠다.

내가 한 말들은 나와 분리된 채 멋대로 가공되어 결국은 나와 무관한 이야기가되었다.

아이슬란드의 마지막 사형수 아그네스 마그누스도티르.

아주 추운 나라라는 것만 알뿐 아이슬란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이름을 읽는 것부터가 힘이 들었다.

낯선 이름들 앞에서 발음이 생소한 지명들 앞에서 과연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페이지를 넘겼지만 곧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나를 언제 죽일까. 그때까지 어디에 둘까. 버터처럼, 훈제 고기처럼 지하 저장소에 둘까. 시체처럼 땅이 녹을 때까지 보관해두었다가 돌멩이처럼 흙 속에 던져버릴까.


두 남자를 살해하고 농장에 불을 지른 죄목으로 사형수가 된 아그네스 마그누스도티르.

사형 날짜가 정해질 때까지 코르든사우 농장에서 지내게 된다.

적대적인 뢰이가와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 스테이나는 코르든사우 농장의 딸들이다.

아그네스의 존재는 농장 사람들과 인근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였다.

자신들과 함께 생활하게 될 살인자를 환영할 곳이 어디에 있을까.


아그네스는 이제 막 목사 자격을 딴 젊은 목사를 지목한다.

토티 목사는 코르든사우 농장으로 가서 아그네스의 이야기를 듣는다.

죄를 참회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엔 아그네스가 너무 똑똑했고, 그녀에게 신앙을 강요한다는 게 부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형을 눈앞에 둔 아그네스에게 도움이 될 것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토티 목사에게 아그네스는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사생아로 태어나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그네스는 어린 나이에 이곳저곳을 떠돌며 하녀로 살았다.

하녀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겠지만 유달리 총명했던 아그네스에겐 안 좋은 소문들이 따라다녔다.

나탄을 따라나섰을 때에도 그랬다.

나탄과 그녀 사이의 일들은 누구라서 다 알까?


그들은 내 방식의 설명을 허락하지 않았고, 내게서 이들뤼가스타디르와 나탄의 기억을 빼내 그것을 음험하게 만들었다.

아그네스와 토티 목사, 코르든사우 농장의 안주인 마르그리에트의 시점으로 번갈아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실제 남아 있는 기록들이 이야기 사이사이에 담겨 있다.

아그네스는 나탄에게 속았다. 나탄과의 미래를 꿈꾸던 그녀는 나탄에게 쫓겨나고 그것에 앙심을 품어 살인을 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해나 켄트의 손에서 되살아난 아그네스의 말은 다르다.

그리고 아그네스와 토티, 그리고 스테이나의 인연은 그들이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사람이 된 이유를 말해준다.

작은 친절이 결국 외로운 길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는 인연이 되었다는 사실을...


낯선 아이슬란드의 생활들과 삶의 방식이 이 책을 더 독특하게 만들고

해나 켄트의 필력이 이야기에 깊이를 더했다.

나는 잠시 아그네스가 되어 그녀의 절망과 슬픔과 아픔을 느껴보았고, 마르그리에트가 되어 완벽하게 차단했던 마음들이 겹겹이 벗겨지는 경험을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낸 작가의 열의가 21세기에 아그네스를 되살려 놓았다.

그녀의 참 모습을 알 수 없겠지만, 아마도 아그네스가 사라진 그 계곡에서 해나 켄트가 받은 영감은 아그네스의 마지막 염원이 아니었을까..

모든 기록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녀를 소재로 쓴 다수의 책들을 참고해서 다시 탄생한 아그네스.


나중에 그는 그날 하루 종일 저를 봤는데 읽히지 않더라고 말했어요. 처음에 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연하죠, 자는 책이 아니라 여자니까요. 하고 대답했죠. 그러자 그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자기는 사람도 책처럼 읽는데 가끔 모르는 언어로 적힌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어요.

그 시대에 아그네스는 모르는 언어로 쓰인 사람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아그네스는 모두가 아는 언어로 자신을 읽어주길 바라는 거 같다.


그녀는 나탄을 사랑했다.

나탄이 죽어 마땅한 개자식이었다고 해도.

아그네스가 나탄을 사랑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그녀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대목이 아닐까.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으나, 온전히 내 맘대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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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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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는 지휘자를 포함해 나머지 모든 오케스트라를 받치는 기본 골격 같은 겁니다. 비유하자면 웅장한 건물을 세우는 토대라고 할 수 있죠. 오케스트라에서 바스를 빼버리면 바빌론의 언어 혼란 같은 대혼란이 생기고, 누구도 왜 음악을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일명 소돔과 같은 곳이 되어 버립니다.

커다란 악기 콘트라베이스, 콘트라바스, 더블베이스.

모두 같은 악기의 이름이다.

콘트라베이스는 우리나라에 번역되었을 때 혼합되어 쓰인 말이고, 더블베이스는 영어권에서 부르는 명칭이고 본래의 이름은 콘트라바스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콘트라베이스로 명칭 되었었는데 이제는 콘트라바스로 원래의 이름을 찾았다.


옛날 좀머 씨 이야기를 필두로 쥐스킨트를 알게 되면서 그의 책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었던 그 시절엔 이 콘트라바스에 대해서 그저 푸념 정도로만 생각했다.

인기 없는 악기를 다루는 인기 없는 남자의 별 볼일 없는 푸념.

나이가 들어 이 책을 재독하면서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쥐스킨트의 이야기를 다시 해석하게 되었다.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그들이 원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는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콘트라바스 연주자였다.

화려한 소프라노를 돋보이게 해주고, 수많은 악기들의 뒤에서 간간이 음을 넣어 그들을 받쳐주는 역할.

항상 필요하진 않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역할.

사회의 중추는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들...


콘트라바스는 태초의 악기입니다. 태초의 소리를 낸다는 말이죠.





방음이 잘 된 공간이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공간이다.

외부와 차단되어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그곳은 바로 콘트라바스를 위한 곳이기도 하다.

악기의 음이 낮고 굵은 콘트라바스는 독주가 불가능한 악기다. 그럼에도 까다로운 악기이기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은둔자 쥐스킨트에게 어울리는 악기이자 공간인 콘트라바스의 무대.


이 작품은 모노드라마로서 연극 무대에 가끔 오른다.

이야기 속의 콘트라바스 연주자는 맥주로 목을 축이며 관객에게 이야기한다.

콘트라바스의 위용에 대해, 그의 쓸모에 대해, 자신의 짝사랑에 대해, 자신의 결심에 대해.

이 모든 이야기엔 세상을 바라보는 쥐스킨트의 신랄함이 담겨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느껴지는 세상의 이치...

이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였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읽혔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 일을 하게 되었고,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굳이 물을 필요는 없겠죠.


각가의 이유로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자리가 있다.

원했던 자리던 원치 않았던 자리던.

각자가 맡아야만 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다.

묵묵히.


쥐스킨트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 사람들도 그 일을 원해서 하는 건 아니라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거라고.

돋보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며, 거추장스럽고, 자리만 차지하는 거 같아도

그들이 없으면 완벽해지지 않는다고.

그러니 당신이 지금 누리는 모든 안락함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수고로움이라고.


조근조근 이야기하다 흥분하고, 사랑에 빠진 연민을 보여주다 갑자기 극적인 결심을 하지만

결국 똑같은 나날을 보내고 같은 일상으로 되돌아올 거 같은 콘트라바스 연주자.

언제나 일탈을 꿈꾸지만 언제나 제자리인 콘트라바스 연주자.

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걸 느끼게 되면 그가 호기롭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해내기를 바라게 된다.

콘트라바스 연주자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항.

그것이 불러올 반향이 어떠할지는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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