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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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를 읽지 않아서 이 작가의 스타일을 몰랐다.

정말 세상에 대한 문제 제기를 엄청나게 잘 하는 작가다.



책을 읽고 나서 멍해졌다.

'정신평등주의"로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전제로 사회 구조가 바뀌어 간다.

정말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등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평등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자신들 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역차별 하는 세상은 왜 만들어지는 걸까?


처음엔 신랄하게 조롱하던 피어슨과 에머리.

피어슨은 자신의 집에서만은 현 체제를 불평하고 까발린다.

피어슨은 높은 IQ를 가진 일본 남자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 둘을 낳았다.

다윗과 잔지바는 영재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시대에 그들은 역차별을 받는다.

피어슨은 웨이드와 사이에 딸을 하나 낳았다. 평범한 이름인 루시는 오빠 언니와는 다르게 모든 게 늦다.

어느 날 피어슨은 에머리와 거실에서 대화중에 루시의 지능이 낮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루시가 듣는다.

그리고 피어슨은 루시에 의해 당국에 고발된다.

평등을 위해 하는 단어를 말했다는 이유로...


아주 옛날 자신이 여호와의 증인인 부모에게 했던 짓을 자기 딸에게 받게 되는 이 아이러니라니~



정의로움과 평등을 내세우며 세상은 또 다른 차별을 만들어 낸다.

이젠 아무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다.

내가 내뱉을 말을 머릿속으로 먼저 검열을 해야 한다.


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항상 문제의 불씨를 지니고 있는 피어슨이 불안불안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진정하라고, 세상에 들이대지 말라고 충고하는 에머리에게 동조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진정 선하거나 옳은 사람은 없었다.

에머리는 정치적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빨리 알아채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자신의 친구를 짓밟아도 되는 걸까?


피어슨은 자신의 입이 참지 못하고 뱉어낸 말들로 인해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그녀에게 결정타를 매긴 건 다름 아닌 에머리다.


40년간의 우정이 박살 나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피어슨의 반격은 속 시원했지만 그렇다고 잘했다는 느낌은 없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면 이건 정말 서글픈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마음이 불편하다.

이 이야기의 끝은 다시 뒤바뀐 세상의 불공평함을 얘기하기 때문이다.

작중 피어슨이 쓴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이전 세상으로 돌아오는 문이 된다.

그러나 '정신적 평등'을 몰아낸 그 자리에는 저마다의 IQ를 바코드처럼 몸에 새겨 넣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평균 IQ 이하는 선거권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피어슨은 그 어떤 등장인물들보다도 지능이 낮다.

앞으로 피어슨은 어떻게 될까?


그러거나 말거나 사회적으로 매장 당했던 에머리는 다시 부활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전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자신을 불태운다.

그럴 수 있었던 바는 피어슨이 올린 동영상이 파멸과 구제의 힘이 되었다는 게 웃픈 대목이다.


이 작품은 곳곳에 웃음 지뢰를 숨겨놓고 있다.

모두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전제하에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무시한다.

그것이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피어슨 같은 사람이 있다면 에머리 같은 사람도 있다.

늘 돋보이는 건 에머리 같은 사람이고, 잘나가는 것 역시 에머리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피어슨 같은 사람들이 결국은 세상을 바꿀 힘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조차 에머리 같은 약삭빠른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득세한다.

그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면서도 공평하고, 공평하면서도 불공평하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해가는 사회 구조를 보면서도 나와 상관없다는 방관자 시선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잃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변화의 조짐에 민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 나에게 직접적인 해가 안 된다는 이유로 방관만 하고 있다가는 결국 원하지 않는 세상에 내동댕이쳐지게 될 것이다.


라이오넬 슈라이버.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봐야겠다.


아주 신랄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세상에 던지는 문제들이 정말 날카롭다.

이 살아있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우리는 늘 늦지 않게 방관자의 입장에서 깨어나는 민족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옳지 못한 길을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우리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의 세상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

그것이 새로운 신호탄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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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밤 - 그림과 문장과 삶을 엮은 내 영혼의 미술관
이소영 지음 / 청림Life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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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문장에 푹 파묻혀 함께 놀다 보면, 무용해 보이는 그 시간들이 우리를 사유의 우물에서 헤엄치게 할 것이다.

무용한 시간들이 우리의 내면을 더 깊고 넓게 만든다.



그림에 관한 책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림 읽는 밤>은  새로운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한 점의 그림, 그 그림에 대한 사색, 작가의 이력, 그리고 그림과 어울리는 문장. 그리고 독자의 감상을 써보는 공간까지.

보고, 읽고, 쓰고를 한 번에 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림 앞에서 본인이 느낀 점을 저자의 사유를 통해 더 확장시키고, 저자가 엄선한 문장들을 읽으며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 한 점 한 점 보고, 읽으며 나만의 이야기를 써 볼 수 있어서 또 다른 글쓰기의 힘을 느끼게 된다.



맘에 드는 그림에서 느낀 나의 감상을 적어본다.






나에겐 한 권의 책이 필요하다.

내가 들고 있는 책은 읽기용이 아닐 수도 있다.

모든 시선을 차단할 수 있는 가림막이 아닐까.

시선으로부터

관심으로부터

간섭으로부터

단호하게 차단하는 서늘한 눈빛.


나만의 길이 있는 사람의 눈빛을 갖고 싶다.




나도 어릴 땐 그림이 취미였다.

그때 내 모습을 떠올리면 창의력보다는 정형화된 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공상을 많이 했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나는 늘 재미없는 그림을 그렸던 거 같다.

사람은 그리지 못했고, 늘 배경만 그렸다.

그것도 산 같고 집 같은 느낌으로.

내게 그림은 그런 것이었나 보다.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





물멍이 불멍보다 좋아지고 있다.

아마도 가까운데 물멍할 장소가 있어서 그런 거 같다.

맑은 물에 비치는 물그림자가 좋아서 사진을 찍지만

렌즈가 눈을 못 따라가서 항상 아쉽다.

빗방울이 떨어지면 그림처럼 평화롭게 파문이 일지 않는다.

어쩜 저 그림의 파문은 내가 미쳐 보지 못한 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엔 버젓이 보고도 못 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싸가지 없게 생겼어."

내가 갈매기를 유심히 본 건 이 말 때문이었다.

그 신선한 충격적인 말에 선입견이 생겨버린 탓에 

갈매기가 정상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싸가지 없어 보였다.

말 한마디는 최초의 사물 인식을 그렇게 평생 각인시킨다.

저 말을 듣기 전까지 나에게 갈매기란 조나단 리빙스턴이었다.

이제는 모든 갈매기가 '싸가지 없다'로 각인됐다.

정말 싸가지 없는 일이다.






그림이라기보다는 사진 같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세상에서

홀로 다른 짓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빛은 같은 빛인데

그 빛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같은 빛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은 제각각으로 산다.

세상의 모든 일은 평등하게 온다.

그것을 견뎌내는냐 그것에 파묻히냐는

각자의 결심이다.

누구 탓이 아니라

내 탓이오.



처음 보는 그림이 많았다.

그림과 함께 뽑은 문장들도 맘에 들었다.

내 맘대로 끄적여 본 감상은 그림과 동떨어지는 거 같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나의 느낌이니 감상은 모두 각자의 몫.

같은 그림을 보고 같은 걸 느끼는 건 가끔은 내 감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직접 내 감상을 써 볼 수 있는 공간이 주어져서 기쁘다.

마치 내가 이 책에 미완성으로 남은 부분을 채움으로써 마침표를 찍은 기분이다.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기획이 참 맘에 든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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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와이프
어설라 패럿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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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남편이 나를 떠났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예전에도 몰랐다. 내 생각엔 남편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당시에는 재앙처럼 보였던 그 일도, 그렇게 된 이유도 똑같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된 요즘은, 남편이 떠날 가능성을 처음 언급했을 때 내가 지나치게 난리를 피웠기 때문에 나를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점점 믿게 된다.


어설라 패럿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새해를 맞이하면서 책복을 받은 느낌이다.

1920년대 미국에서 '전처'로 살아야 하는 주인공 패트리샤의 모습을 통해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간접 체험했다.

전처나 전 여친이다 법적인 급만 다를 뿐 다를 건 없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사랑을 원치 않게 끝내게 된 모든 여자들이 느꼈던 감정의 혼란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이야기다.

그러니 그런 경험이 없다고 말하는 여자라면 힐다처럼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남자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던 패트리샤의 순진한 마음에도 가닿지 않을 것이며,

먼저 전처의 길에 들어서서 온갖 감정의 풍파를 다 겪어내고 스스로 안정된 삶을 택한 루시아의 현명함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방에 의해,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진 사람들은 버림받은 느낌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언제든 돌아올 상대를 기다리며 마음과 몸의 방황을 한다. 마치 풍선인형처럼 흐느적 거리게 된다.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를 곱씹으며, 언제든 그가 돌아올 거라 믿는다.


패트리샤에게 루시아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여자들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지 않는다.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지도 않고, 잘못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서 인상 깊다.







이혼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사건이다.

재즈 시대의 자유와 방탕함 속에서 '전처'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엑스 와이프>

작가의 경험담이 녹아 있어서 그런지 감정들이 아주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루시아가 말하는 전처의 세 가지 부류>


첫 번째 부류는 독신주의와 사업적 성공을 추구해.

두 번째 부류는 '사랑은 끝났고, 남은 건.... 모험을 하며 돌아다니는 거지.'

세 번째 부류는 다시 결혼할 거야.




루시아는 세 번째 부류가 되려 하고, 패트리샤는 두 번째 부류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전처에 대한 예리한 분석력과 패트리샤를 통해 보여주는 감정의 변화들은 가히 수준급이다.

정말 내가 패트리샤가 된 기분이었다.



산부인과 진료실의 분위기와 이혼 법정의 분위기를 오버랩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살면서 뜻하지 않는 곳의 기억들이 중첩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을 포착해낸 작가의 센스가 매력적이다.


패트리샤와 루시아의 대화가 너무 좋았다.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면서도 여전하게 전통적 가치관에 매달리는 인간적 복합성을 보여주는 피터.

그로 인해 감정적 방황을 하는 패트리샤는 루시아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며 한 발 한 발 홀로서기를 한다.


이 이야기는 '전처'라는 이미지를 이혼녀의 틀에 가둬두지 않고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관점을 부여한다.

1920년대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큰 차이가 없을 만큼 세련됐다.

자유와 해방감 속에 드리워진 외로움과 불안이 '전처'라는 단어에 포함되어 있다.





이 이야기 안에서 여성들은 서로 연대한다.

패트리샤는 피터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녀는 더 멋진 여자가 되었다.

베아트리체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패트리샤의 행동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로 확장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을 두고 잠수해 있다가 이 시간대에 새롭게 세상에 나온 거 같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지 세상이 끝난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고통과 아픔을 견뎌야 하는 사람에게 자극을 주며 그걸 이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는 패트리샤와 같은 처지에 있는 그녀들에게 루시아 같은 언니가 되어주어야 한다.

언제 나 자신이 패트리샤가 될지도 모르니까.


온갖 상황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나아가는 패트리샤와 그녀를 지켜보며 손을 내밀어 주고 좋은 충고를 해주는 루시아 같은 여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감정적으로 성숙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소설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아직 성숙하지 못한 감정 한 부분이 부쩍 자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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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김선형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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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은 제인 오스틴이 자기가 생의 굴레에 옴짝달싹 못 하게 갇혀버렸음을 처음 깨달은 해,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임을 불길하게 예감한 해, 참담한 상실을 딛고도 삶은 지속된다는 걸 알아버린 해, 그만 어른이 되어버린 해였습니다.


나는 덕후기질이 없어서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어도 빠져들지 못한다.

<디어 제인 오스틴>을 만나고 진정한 제인 오스틴의 덕후를 만난 거 같아서 신기하다.

얼마나 좋아하면 이렇게 디테일하게 공부하고, 알아가고, 그것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백과사전적 에세이다.

이미 뉴스레터 <제인 오스틴의 편지함>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환호를 받았던 이야기다.

번역가로서 한 작가를 이렇게 깊게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읽으면서도 감탄스럽다.

나는 이런 열정이 없어서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을 오랜 시간 번역하고 연구해온 김선형이 번역가이자 연구자이며 애호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글이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소설가로서의 오스틴의 문학적 성과와 작품을 번역하면서 신경 썼던 부분들을 담아내고 있어서 읽다 보면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내는 재미가 있다.


어릴 때 제인 오스틴은 또래들에 비해 감정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던 거 같다.

부모님의 지지와 형제들의 지지가 그녀가 소설가로 자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결혼 대신 작가를 택한 오스틴의 마음엔 어쩜 결혼에 대한 동경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사람은 누구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 안타까움이 있게 마련이니까.

그녀의 작품에서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자기에게 맞는' 남자를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게 바로 그런 내재된 감정들이 은연중 작품에 투영된 게 아닌가 싶다.




김선형 작가는 제인 오스틴을 고전 소설 작가로 머물게 하지 않고 21세기에도 살아있는 작가로 회생시켜 놓았다.

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Sense and Sensibility의 어감에 대해 일반 독자가 알 리가 없을 테고,

그의 번역이 아니었다면 제인 오스틴만의 <자유간접화법>의 묘미를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그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제인 오스틴에게 '노트북'(?)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한 작가에 대해 이토록 상세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누구에게나 주어질 리 없다.

제인 오스틴이 시대를 떠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더 잘 알게 되었다.


단지 번역만을 위해 이 모든 걸 연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김선형 자체로 제인 오스틴에 푹 빠져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거 같다.


나는 <이성과 감성>을 읽는 틈틈이 이 책을 같이 읽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다른 번역체의 느낌을 덜 생소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성과 감성>을 읽는 내내 '가십 걸'과 '브리저튼'이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 내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

그것이 진정한 제인 오스틴 화법이라는 걸 여태껏 읽었던 책들에서는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의미가 있었다.


200년 전의 작품이 현대에도 통용되는 건 그 안에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회자되고 읽히는 것이다.

거기에 타 언어로 그 작품을 읽어야 하는 독자들에게 친절한 가이드를 해줌으로써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데 공헌한 책이다.

이 책을 안 읽었을 때와 이 책을 읽고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여러 면에서 다를 것이다.



<디어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친절한 가이드북이,

오랜 팬들에게는 새로운 점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는 책이 될 것이다.


제인 오스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분들에겐 필독서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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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첸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최정윤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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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람들을..... 그들이 가진 흔적, 장소, 소리, 냄새, 그들의 땅,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줄 알았다. 사람들에게 이 모든 것이 쓰여 있다. 그는 집중해서 이런 것들을 읽고 분류하고 배열하고 정리했다...


배에서 태어나고, 배에서 자라고, 베에서 생을 마감한 노베첸토.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육지 땅을 밟아 본 적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가 사람들을 통해 읽은 것들로 세상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동안 나는 그의 삶을 그려가 봤다.


모든 세상을 집약해 놓은 배.

그 배를 타고 유럽에서 아메리카를 향해 가는 다양한 사람들.

그 사람들이 품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을 그려갔을 노베첸토.


이 천재의 삶을 누가 이해할까...


배에서 내려서는 세 번째 계단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되돌아 서는 그의 마음을 가늠하지 못하다

그의 말을 들으며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세상엔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자기 자신의 그릇을 모르고 날뛰다 패가망신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노베첸토의 이야기를 들려준들 이해를 할까...








그래서 난 마법을 걸었지.



노베첸토의 마법을 나는 내 인생에 걸 수 있을까?

아니 지금껏 그 마법을 걸면서 살아왔을까?

내가 누릴 수 있는 만큼만 만족하며 사는 삶.

그 이상을 가늠하면서도 마법으로 물릴 칠 수 있는 용기의 삶을 나는 살아가고 있을까?



노베첸토는

이 심란한 세상에 잠시 머물다간 천사였다.

국적도, 이름도, 땅 한 평도 누릴 수 없었지만

버지니아 호만큼의 공간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들에게 형용할 수 없는 음악으로 위로를 전해준 천사...


신의 부탁으로 잠시 현실에 머물렀던 음악의 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노베첸토의 피아노를 들으며 자신을 추슬렀을까...



들리지 않는 선율이 내 마음에 흐른다.

벅차고, 감동적이며, 잔잔한 피아노의 음이 마음에 흘렀다.

듣지 않아도 알 거 같은 그 음악들이 노베첸토와 함께 불균형을 이루며 살아갈 것이다.

그의 오른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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