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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 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1월
평점 :

인간의 야심이란 대중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욕망이지만, 행복이란 다른 자들과 똑같이 되고 싶다는 욕구라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라는 작품으로 이름을 많이 들어온 작가지만 그를 읽는 건 처음이다.
이 작가의 글은 내가 한순간 느꼈던 어떤 감정들, 휘발되었지만 남아있는 잔상들을 묘사하는 특출함이 있다.
아주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감정의 묘사는 잘 모르는 감정임에도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크로스워드 퍼즐>의 호텔 보이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것도
<한여름의 죽음>에서 도모코와 마사루의 슬픔에 대항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리큐의 소나무>에서 미요가 한 짓을 머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행복을 좋아하지 않는 인물인 거 같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범상치 않은 선택을 한다.
보통의 사람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일을 카뮈의 이방인처럼 해버린다.

우리는 그런 때, 평소에 멀리해왔던 불행의 앙갚음을 받는 것이다.
<불꽃놀이>에서 그 남자는 운수대신과 무슨 사이였을까?
나의 상상력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다.
아름다움, 죽음, 욕망, 파멸.
이 키워드로 채워진 이야기들 속에서 다른 세상을 본다.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인데 이제는 경험한 거 같은 착각.
그의 묘사는 눈앞에 펼쳐지는 이미지였다...

<우국>은 그의 죽음의 기획서 같다.
아마도 그는 이 이야기를 쓸 때, 어쩌면 쓰고 나서 자신의 죽음을 기획한 게 아닐까?
죽음에 이르는 그 세세한 묘사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토록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할복을 자랑으로 여기며 죽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들여다본 느낌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는 칼을 품고 있다.
마치 할복하듯..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그 죽음을 빨리 앞당기려 노력한 거 같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세상에 흩뿌려진 파국의 냄새를 맡으며 부지런히 죽음 가까이에 옮겨 적었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추구하는 바는 고통을 넘어서는 죽음이었다.
바다에게 아이들을 잃은 엄마는 이제 세상에 나온 지 일 년이 된 아이를 안고 그 바다 앞에 선다.
그 비장한 모습에서 처음엔 그 사고를 똑바로 직시하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처에 절여진 슬픔은 그렇게 희석될 게 아니었다.
그녀의 옆모습에 소름이 돋았던 남편처럼 나도 편하게 생각했던 내 마음을 꾸짖었다.
그 바다는 그녀의 영혼을 데려갔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인생은 새로운 생명을 품었어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글을 20대에 읽었다면 나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두 배의 나이가 들어서 읽고 있자니 오롯이 느껴지는 세상에 대한 슬픔과 허망함과 삶의 고통이 죽음으로 승화되는 걸 보게 된다.
예민함과 명석함만이 슥~ 지나가는 찰나의 감정들을 잡아내어 문장으로 흘렸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이야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