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김보영 지음 / 디플롯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SF를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내 소설을 썼고 그것이 어쩌다 보니 SF였다.


김보영 작가의 <사바삼사라>를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었는데 그게 후회된다.

작가님 책을 한 권이라도 읽고 이 책을 읽었다면 훨씬 도움이 되었을 텐데..


위 문장의 뜻을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었다.

김보영 작가는 장르보다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장르를 정해놓고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그 흐름을 따라가면 이야기가 자연 장르를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SF 불모지에서 확고함을 마련한 그의 이야기는 SF뿐만 아니라 모든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글이었다.

이분은 쓰기와 가르치기가 모두 다 되는 분 같다.


여러 글쓰기 책들을 읽었지만 이번만큼 머리에 쏙쏙 박히는 건 처음이다.

길지도 않고, 핵심만 쏙쏙, 에세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진득하니 마음에 남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이 나와 다르며,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갖고 다른 체험을 하며 살아온 낯선 타인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소통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음을 믿는 것이다.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의미는 그러하다.

자신이 쓴 글은 잘 쓴 것처럼 보인다.



오래전 내가 쓴 글을 친구에서 보여준 적이 있는데 친구의 피드백이 아주 가차없었다.

"이걸 소설이라고 쓴 거야? 무슨 소설이 대화체로만 이루어져 있니? 시나리오 쓴 거니?"


친구 얘기를 듣고 내 글을 다시 읽으며 뭔가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게 뭔지 지금까지 몰랐다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난 그저 내 기억에서 익숙한 장면들을 가져다 썼다. 그 대화 안에 내 머릿속에만 있는 주인공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겨있었다.

당연히 나는 알지만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가 가진 오류들이 어떤 거였는지를 나는 이제야 설명들을 수 있었다.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디어가 작품이 되는 건 아니다.

작품은 글로 써야 만들어지는 거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어도 그걸 바탕으로 뭔가를 쓰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는 것이라는 작가님 말에 백퍼 공감했다.

내가 쓸 거야라고 생각하며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어디 한둘인가?

아이디어로만 승부가 난다면 난 이미 다작하는 작가였을 것이다.

내 아이디어는 그냥 어딘가에서 내가 좋은 작품을 쓸 거라는 환상으로 내 머릿속 어딘가에 침잠해 있을 뿐이다.




인물이 충분히 살아 있으면 그 인물이 보조 작가처럼 같이 글을 써주고, 협업과도 같은 즐거움을 준다.


인물이 저절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는 말을 작가님들 인터뷰에서 종종 봤는데 김보영 작가님도 같은 말을 하신다.

인물을 색깔별로 구분하는 작가님 방식이 인물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될 거 같다.



이 책은 SF를 쓰고 싶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책이 아니다.

모든 글 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고, 세계관을 만들고, 인물을 표현하며,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와 '글틴'에서 청소년들의 글을 감독해 본 경험담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정곡을 찔러서 스스로를 점검하게 만든다.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아직도 배울 것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될 테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류들도 체크해 볼 수 있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보다 쉽게 쓰기에 돌입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읽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책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시마 유키오 - 우국·한여름의 죽음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4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의 야심이란 대중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욕망이지만, 행복이란 다른 자들과 똑같이 되고 싶다는 욕구라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라는 작품으로 이름을 많이 들어온 작가지만 그를 읽는 건 처음이다.

    이 작가의 글은 내가 한순간 느꼈던 어떤 감정들, 휘발되었지만 남아있는 잔상들을 묘사하는 특출함이 있다.

    아주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감정의 묘사는 잘 모르는 감정임에도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크로스워드 퍼즐>의 호텔 보이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것도

    <한여름의 죽음>에서 도모코와 마사루의 슬픔에 대항하는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리큐의 소나무>에서 미요가 한 짓을 머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가슴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는 행복을 좋아하지 않는 인물인 거 같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범상치 않은 선택을 한다.

    보통의 사람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일을 카뮈의 이방인처럼 해버린다.






    우리는 그런 때, 평소에 멀리해왔던 불행의 앙갚음을 받는 것이다.


    <불꽃놀이>에서 그 남자는 운수대신과 무슨 사이였을까?

    나의 상상력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렵다.


    아름다움, 죽음, 욕망, 파멸.

    이 키워드로 채워진 이야기들 속에서 다른 세상을 본다.

    내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세상인데 이제는 경험한 거 같은 착각.

    그의 묘사는 눈앞에 펼쳐지는 이미지였다...






    <우국>은 그의 죽음의 기획서 같다.

    아마도 그는 이 이야기를 쓸 때, 어쩌면 쓰고 나서 자신의 죽음을 기획한 게 아닐까?

    죽음에 이르는 그 세세한 묘사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그토록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할복을 자랑으로 여기며 죽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들여다본 느낌이다.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는 칼을 품고 있다.

    마치 할복하듯..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그 죽음을 빨리 앞당기려 노력한 거 같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세상에 흩뿌려진 파국의 냄새를 맡으며 부지런히 죽음 가까이에 옮겨 적었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추구하는 바는 고통을 넘어서는 죽음이었다.


    바다에게 아이들을 잃은 엄마는 이제 세상에 나온 지 일 년이 된 아이를 안고 그 바다 앞에 선다.

    그 비장한 모습에서 처음엔 그 사고를 똑바로 직시하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상처에 절여진 슬픔은 그렇게 희석될 게 아니었다.

    그녀의 옆모습에 소름이 돋았던 남편처럼 나도 편하게 생각했던 내 마음을 꾸짖었다.

    그 바다는 그녀의 영혼을 데려갔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인생은 새로운 생명을 품었어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글을 20대에 읽었다면 나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두 배의 나이가 들어서 읽고 있자니 오롯이 느껴지는 세상에 대한 슬픔과 허망함과 삶의 고통이 죽음으로 승화되는 걸 보게 된다.

    예민함과 명석함만이 슥~ 지나가는 찰나의 감정들을 잡아내어 문장으로 흘렸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는 믿었습니다. 평상시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더라도,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읽는 것은 늘 흥미로울 거라고요. 자신이 상속자로 태어났다는 비밀을 알려 주는 책이라면 도서관 서가에 먼지가 쌓여 있어도 반드시 찾아 읽을 거라고 믿었죠.


      <인간명품> 제목에 혹해서 읽게 되었다.

      나는 명품은 좋아하지 않지만 명품 같은 사람은 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인간명품에 대한 어떠한 작은 것이라도 얻고 싶었다.

      게다가 제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다.


      저자 임하연은 출판기획자이자 인문학 작가다. 

      책은 대화체로 이루어져 철학적 메시지를 친근하게 전달한다.

      '상속자 정신'을 주제로 상속자와 제자가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인터뷰집을 읽는 느낌이었다.


      명품이라 하면 각종 브랜드 이름이 담긴 물건을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젊은 청춘들에게 스스로 명품이 되는 길을 말해준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한국적 맥락으로 재해석한 '상속자 정신'

      이 뜻은 문화와 교양을 자기 삶에서 빛나게 하는 힘을 말한다.

       스스로 빛나는 내적 품격을 가진 사람이 바로 인간명품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오로지 타인과 비교할 때만 나타나요. 실제로 잃은 것은 없지만, 더 많이 가진 상대를 보면서 무엇인가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거죠.


      비교와 불안이 일상인 요즘 청춘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외적인 조건이 아닌 내적인 조건이라는 말을 하는 상속자.

      인생의 자율권 승계 즉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내 인생을 다시 쓰는 권한'을 부여받는 것. 갑자기 내 인생을 다시 쓰고 싶어졌다.

      결혼을 하고 새롭게 인생 2 막을 시작했음에도 나는 아직도 온전히 서 있지 못한 기분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게 드리워진 장막 같은 걸 나는 걷어낼 생각을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움츠리며 어떻게든 버텨낼 생각만 했었던 게 아닐까?

      그냥 드리워진 장막을 걷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걸 못해서 여태껏 흙수저라는 타이틀로 나를 감춘 게 아닐까?

      그리고 수많은 청춘들이 나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자조하며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기보다는 그대로 안주해버리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상속자 정신'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아니라 우리가 이어받은 문화와 교양을 내 삶에서 빛나게 하는 힘이다.

      나는 과연 어느 만큼 내 안에 머물고 있는 문화와 교양을 잘 써먹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걸 잘 써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사회적으로 부정적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누군가가 씌워 둔 그 부정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움츠리게 만든 사람들에게 상속자의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

      예전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는 글, 말, 신념, 철학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불안을 극대화하는 글과 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했다.

      도전보다는 포기를 하게 만들고

      새로운 생각보다는 기존의 생각 안에 머물게 만들고

      용기보다는 외면을 택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모두 명품 같은 사람을 반긴다.

      하지만 스스로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왤까?


      인간명품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명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나 나라가 해주지 못한다.

      그저 나 자신이 나를 부지런히 갈고닦으며 벼려야 한다.


      내가 인간명품이 아닌 이유는 누구의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다.


      내 안에 다 있다.

      내가 인간명품이 되는 길이...

      그러니 이제는 서서히 꺼내보자.

      내가 가진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숏폼력 : 숏폼 커머스 시장을 선점하라 - 숏폼 전도사가 알려주는 숏폼 커머스의 비밀
        윤승진 지음 / 이야기나무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 이상 나를 아는 소수의 '팬'이 아닌, 오늘 처음 나를 만나는 수많은 '낯선 대중'을 상대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세 중에 대세 숏폼.

        대세라는데 잘 모르니 공부할밖에~


        단순한 오락을 위한 것만이라면 공부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 숏폼이 비즈니스 판도를 바꾸고 있으니 공부 안 하면 도태되는 게 현실.

        커머스의 핵심 경쟁력이 되어버린 숏폼.

        저자 윤승진은 여행업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숏폼 연구에 몰두 수천 건의 프로젝트를 통해 실무 경험을 쌓으며 잠재적 크리에이터 군단을 통해 시장을 공략하는 신선한 전략을 펼쳤다.

        그의 노하우가 담긴 <숏폼력>을 읽는 동안 이 빠른 세상을 재빠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물건을 사는 법도 파는 법도 나중에는 알 수 없게 될 거 같아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요즘은 숏폼을 보다 보면 바로 구매로 이어지는 링크들을 볼 수 있다.

        더 이상 검색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숏폼을 보다 맘에 드는 것이 나오면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링크가 같이 뜨기 때문에 바로 이동할 수 있다.

        아주아주 간편해진 방법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숏폼.

        숏폼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발견과 구매를 연결하는 커머스 모델이다.


        그러니 물건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이것을 모르고 옛날 방식대로 하고 있다면 정말이지 망하는 지름길로 가는 것이다.

        예전엔 홈페이지와 상세페이지를 잘 꾸미는 디자이너가 필요했다면

        이제는 숏폼을 재치 있게 잘 만드는 숏폼력이 필요한 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경쟁의 본질이 바뀌었습니다. 누가 더 많은 팔로워를 가졌는가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숏폼의 문법을 깊이 이해하고, 알고리즘의 언어를 공부하며, 사용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콘텐츠를 만드는가의 싸움입니다.


        그저 SNS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숏폼을 알아야 하나?라고 생각했던 나.

        저렇게 짧은 영상만 보다 깊이 없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했던 나.

        한없이 보게 되지만 뇌리에 남는 건 없는 영상이라고 생각했던 나.

        이런 나는 그저 심심풀이로 숏폼을 본 나였다.


        하지만 내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무언가를 판매하는 사람이라면 이 숏폼의 물결을 무시할 수 있을까?

        최근 sns 조회 수가 예전 같지 않아 고민했던 분들

        팔로워는 많은데 조회수도 좋아요도 영 별로인 분들

        나보다 팔로워도 적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떡상하는 거 보고 충격받은 분들

        글만 잘 쓰면 되지, 영상이 무슨 소용이야 했던 분들에게 한번 읽어보라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이제까지 알았던 sns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



        평소 내가 잘 안 들여다보던 것도 자꾸 알고리즘으로 내게 닿으면 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알고 싶어지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이든 조직이든 알고리즘을 잘 타야 한다.

        사람들의 유행 방식을 선도하는 것이 바로 알고리즘이기 때문이다.

        이걸 모르고 어떤 시장에든 뛰어든다면 힘만 들지 이루어지는 것이 없을 거 깉다.


        <숏폼력>은 숏폼을 잘 찍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다.

        그것을 잘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콘테츠 기획부터 제작, 플랫폼 전략, 커머스 연결까지의 실무가 담긴 책이다.


        새로운 걸 따라가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걸 나와 상관없다 생각하며 따라가지 않는다면 e-편한세상에서 점점 더 불편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숏폼력>은 숏폼을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이 당연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레나가 가지고 있을지 모를 어떤 확신을 깨고 싶다. 그러나 그녀의 진지한 표정엔 그런 확신의 징표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첫 장편은 어떤 느낌일까?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난해한 글이나 추상적인 언어로 이루어진 건 아니겠지?

        읽어 본 적 없는 시인의 소설 데뷔작 <네가 누구든>은 한적한 교외를 배경으로 스스로를 은둔시킨 미티와 그의 옆집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입주한 레나, 그리고 미티와 동거하는 베델이라는 나이 든 여자 셋이 중심인 이야기다.


        바닷가 마을.

        IT 재벌들의 별장이 속속 들어서는 그곳에 오래된 베델의 집은 새 건물들 틈에서 초라해 보인다.

        마치 그곳에 사는 미티와 베델은 오랜 시간 그 땅의 주인이었음에도 새로운 건물의 주인들로 인해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유리의 성 같은 새집에 이사 온 레나와 서배스천.

        미티는 그들을 훔쳐보며 자신의 삶을 비로소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미티가 그곳에 은거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무엇이 이 젊은 여인을 답답하리만치 그곳에 묶어 두고 있을까?


        새로 지어진 집들에 머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취미가 있는 미티.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품평을 하던 미티에게 레나의 삶이 갑자기 훅 다가온 이유가 뭘까?






        이 이야기의 배경은 바닷가의 한적한 교외 도시다.

        주변은 공유 주택들로 매번 다양한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다.

        미티와 베델만이 그곳의 마지막 남은 거주자들이다.

        이 배경이 뜻하는 바는 아마도 끝없이 바뀌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미티는 그들을 구경하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시선에서 자신을 숨기기 급급하다.

        교류 없이 훔쳐보는 삶을 선택하는 미티의 마음에 레나라는 이웃이 들어온다.

        레나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아마도 미티가 여자를 좋아하는 성향이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일차원적이었다. 

        미티의 레나에 관한 관심은 그녀가 자신과 같은 은둔자의 역을 맡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미티는 스스로를 고립시켰지만 레나는 서배스천에 의해 강제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미티는 레나를 관찰한다.

        레나는 스스럼없이 다가오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베델마저도 레나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한편 걱정을 한다.

        통제광에게 잡혀사는 여자라는 인상을 풍기는 레나.


        그들은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과거를 캐고 레나는 자신의 과거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자기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위험한 생각.

        스스로를 확인하기 위해 자해하는 레나.

        그러면서 미티에게 자신의 틀을 벗어나라고 말하는 레나.

        묵묵히 두 사람을 지켜보며 쓸데없는 참견을 하지 않는 베델.


        은둔자들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서로의 용기가 되는 모습은 뭉클하다.


        IT 기술자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스릴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스릴러의 맛을 첨가했을 뿐 스릴러가 아니었다.

        성장과 연대의 이야기였다.


        미티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던 베델의 과거

        레나에게만 고백한 미티의 과거

        자신의 과거를 확인하러 가는 레나

        끝없이 자신의 삶과 딸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맹렬하게 살아내는 퍼트리샤.


        베델은 그 자체로 과거의 상처로 스스로를 가둔 사람이자 은둔을 택한 미티에게 엄마 대신이자 가족 대신의 보호자 역을 한다.

        미티는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레나에게 의지처가 되고 친구가 되어준다.

        레나는 미티를 은둔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용기를 준다.

        퍼트리샤는 늘 딸이 돌아올 그때를 위해 기다림을 준비해두고 있다.


        남성들과 사회적 시선 속에서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야만 가치를 인정받는 여성.

        베델과 미티는 그런 여성들이 아니다.

        하지만 레나는 완벽하게 여성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리고 그 존재는 미티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델마와 루이스>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는 여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시선을 박차고 함께 달려나간 우정에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소리나 듣고 자랐던 나에게 이런 관계들은 가슴 벅차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질투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다시 새기게 되었다.


        미티가 꿈꾸듯 레나가 자신의 집에서 의심 없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미래에 AI가 좀 더 인간적인 감정을 탑재한다면, 끊임없는 학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간과 비교하며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고통받을 수 있음을 미리 체험한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