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루저의 나라 -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고혜련 지음 / 정은문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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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 우리의 부실한 근대사를 보충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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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루저의 나라 -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고혜련 지음 / 정은문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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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모든 문화 흐름이 조선을 통해 중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왔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보입니다. 현재 조선이 중국, 특히 일본보다 문화 수준이 훨씬 높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독일인 3인방이 쓴 글을 토대로 그 이전과 이후의 문헌들을 살펴서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쓴 <우아한 루저의 나라>를 읽으며 내가 가지고 있었던 대한제국의 이미지를 수정하게 되었다.

독일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의 도움 요청을 거절했다.

그때 독일이 우리 편을 들어서 뭐라도 했다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었을까? 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독일은 다른 식으로 지금 우리에게 그때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크노헨하우어는 조선에서 금광채굴권을 딴 세창양행이 금광을 찾기 위해 본국에 의뢰하여 온 산림청 직원으로

1898년부터 1899년까지 약 1년 반 동안 대한제국에 머물며 광물 지질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수차례 답사하였다.

그는 독일에 돌아와 [Korea]라는 강연을 하였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양면성을 가진 조선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호감을 느낍니다. 모든 예를 갖춘 신중함, 비록 형식적이었으나 사랑스러운 친절함,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법의 경직된 모습에서 빠져나와 환호하는 천진함이었습니다.

 

 

그는 대한제국의 관공서나 궁정에서 지켜야 하는 예의범절과 관리들의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모습들을 잘 캐치했다.

그가 조선에 머문 동안은 한국 호랑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사냥 당한 호랑이 두 마리를 앞에 두고 사진을 찍은 사냥꾼들의 사진과 호랑이 가죽이 깔린 곳에서 찍은 크노헨하우어 부부의 사진이 담겨있다.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은 퀴라소의 단맛을 좋아했고, 베를린 큄멜 곡주인 길카를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알코올이라고 말했다 한다.

조상님들의 술 취향까지 알게 되는 책^^

조선 여인들이 가슴을 노출시켰고 대부분의 기혼여성들이 치마를 더 아래로 내려 입었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기혼 여성들은 치마 허리띠를 약간 아래로 착용하여 상상하는 대로 가슴이 노출됩니다. 목덜미와 목은 가리고 가슴은 노출합니다. 조선의 부인들은 매우 민감한 이런 부분이 노출되는 것에 이미 익숙한 듯합니다.

-

이런 복장의 이유는 조선 여인은 자녀가 4세가 될 때까지 젖을 물리기 때문입니다.

-

그들을 잘 아는 사람들은 조선 여인이 동아시아 3국 중에 가장 아름다운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황제 소유 인쇄소에는 한글 금속활자체가 들어 있는 오래된 식자 상자가 있었다. 금속활자는 이미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1400년경에 사용되고 있었다. 중국인보다 수준이 높았던 조선인들은 25개의 모음과 19개의 자음으로 아름다운 한글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예쎈은 아버지가 수공업자를 위한 직업학교의 교장이었다. 수공업을 중시 여기던 문화에서 자랐던 그가 조선에서 수공업자들이 천민 취급받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한다.

그는 일본이 고대 왕릉을 수탈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그들이 그것을 자랑삼아 얘기하는 것도 기록했다.

하지만 조선에 대한 인식에 잘못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당시 그들이 조선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나 중국을 통한 것이기에 깊숙이 알기 전까지는 조선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예쎈은 조선의 문화가 중국과 일본과 다른 점을 이해하고 조선의 문화가 더 고급스럽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만주의 강도들은 절반 정도 훈련받은 정규 군인과 일반 중국인(조선인도 포함한) 집단이며 일본의 무력 진압에 대항하는 반일본 게릴라 집단이다.

 

 

라우텐자흐의 백두산 여행기에는 일본에 저항하는 게릴라군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을 독립군으로 보고 있다. 그들 중에 홍범도 장군도 있을지 모른다는 예측도 한다.

 

독일 3인방의 각각의 시각에서 본 대한제국과 저자가 여러 문헌들을 자료 삼아 쓴 대한제국을 읽으며 이 불운한 근대사에 대한 역사적 탐구가 참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조선에 머물렀던 이방인들의 시선에서 그 시대 우리 민족의 고단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에 밴 특성들이 보였다.

중국과 일본을 사이에 두고 양국으로부터 시달리고 수탈당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민족.

손재주가 좋아서 중국과 일본 그 어느 것과도 다른 예술품을 만들어낸 민족.

우수한 머리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쇄술을 가지고 자기들만의 글자를 가진 민족.

그러나 변화하는 세상에 대처하지 못해서 이리저리 뜯기고 있는 민족.

 

고종의 헤이그 특사가 실패해서 고종이 하야했다고 배웠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헤이그 특사 3인은 자신들의 임무를 다했고, 차가운 결말 앞에서 안타까워했지만 그들의 그 열정과 우리의 고난을 누군가는 알아봐 주었다는 걸 이 책이 말해준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소식을 들으며 이 헤이그 특사들이 생각났다.

전세계가 지켜보며 한 마디씩은 하고 있지만 특별하게 나서지는 않는 상황.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조선이라는 곳을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없는 나라를 강대국들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이미 겪었다는 것.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름 없고 알려지지 않은 대한제국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을.

 

그 시절에도 백성들은 국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귀중품을 팔고, 머리카락을 팔고, 아이들의 코 묻은 돈까지 기부하였다.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치가 백성을 배신하여도 백성은 언제나 올바른 길을 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저 독일인들의 대한제국 여행기쯤으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었는데

뜻밖에 근대사를 공부하게 됐다.

그들이 본 우아한 루저의 나라는 이제 승자의 나라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지금 이 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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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사피엔스 - 또 하나의 현실, 두 개의 삶, 디지털 대항해시대의 인류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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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대항해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1만 년 전 인류는 수렵인으로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그리고 비로소 정착하면서 문명을 꽃피웠다.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두 번째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 광물 등은 유럽에서 그 가치가 인정되었고, 유럽에 와서야 가치가 통용되었다.

그러나 기존 체제를 벗어나 신대륙으로 향한 사람들로 인해 신대륙의 체제가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인류는 Z세대에 의해 인터넷 가상 현실로 이주 중이다.

대다수가 아직은 잘 모르는 그곳에서 Z세대는 이미 물건을 사고팔고, 현실에서 갖지 못하는 것을 그곳에서 충족한다.

디지털 대항해 시대는 예고 없이 시작되었다.







얇은 책에 담긴 이야기는 새로운 디지털 세계에 대한 기초 설명문 같다.

메타버스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인간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알려준다.

뇌과학자가 말하는 메타버스 사피엔스는 그래서 미래를 위한 필독서 같다.

이미 시작되어 있는 미래에 대한 개념을 잡아주는 참고서처럼.

 

메타버스 안에는 무수한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무언가가 불가능해 보인다면, 이는 단지 상상력의 빈곤에 따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책에서도 언급된 제페토를 나도 경험하고 있다.

현실과 별다르지 않은, 어쩜 현실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성별,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 그곳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런 세상으로 우리가 조금씩 밀려가고 있다.

 

현실은 뇌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지금의 모든 것이 뇌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자체도 뇌를 거쳐 쓸모없는 것들을 삭제한 것들이다.

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뇌가 만들어 낸 세상을 현실이라 믿고 사는 인류 앞에 기계가 만들어 낸 세상이 메타버스의 세상이다. 우리가 가상현실이라고 말하는 그곳에 이미 상륙해 있는 인간들이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한 발씩 담그고 살았던 우리와 다르게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세상에서 살고 있는 Z세대가 바로 그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막연하게 알았던 세계에 대한 개념을 깨우쳤다.

이 책은 메타버스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다.

그 세계에 진입하게 된 사피엔스들에게 그 세계가 어떠한 세계인지를 가장 기초적으로 설명해 주는 책이다.

 

탈세계화와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탈현실화와 기후 위기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급기야 팬데믹 상황에 놓이게 된 인류는 그로 인해 미래를 몇 십 년 앞당겼다.

팬데믹은 우리에게 미래를 가져다주었고, 세상은 급속도로 메타버스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탈현실화를 이루게 해주는 메타버스 안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를 우리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준비도 안됐는데 신호탄이 울려 버렸다.

그래서 별 수없이 결승선까지 뛰어야 한다.

기권을 한다 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운명이다.

그러니 배우고, 알려고 노력하면서 항해를 해야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팬데믹이 끝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면 그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아직은 이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인류가 건재하다.

몇 십 년 후에는 어떨까?

내가 어릴 때 보았던 SF 영화들이 현실에 도래해 있음이다.

 

내가 사는 이 현실이 누군가의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플레이어이고 싶지 NPC가 되고 싶지 않다.

이 책에서 언급한 보르헤스의 책들을 읽어 봐야겠다.

보르헤스야말로 메타버스 세계에서 과거로 온 시간여행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류의 대항해는 이미 시작되었다.

발 빠른 사람만이 신대륙을 차지할 수 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이 유연해져야 한다.

이 책이 내가 무엇인지를, 앞으로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준비 없이 뛰고 있지만 결승선까지 도달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야겠다.

넋 놓고 있다가는 내 현실마저 블랙홀이 될지 모르겠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개념을 알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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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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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하얀 빛처럼 여겨지는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7월 어느 날.

능소화가 피어 있는 마당에서 나오코의 시체가 발견된다.

네 살 아이 나오코는 왜 이모네 집 마당에서 죽음으로 발견됐을까?

 

 

이 집은 배신과 보복의 전쟁터였다.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채 영원한 싸움을 반복하는 전쟁터...

 

 

한 아이의 죽음 앞에서 치매 노인과 그 아이의 이모, 이모부, 사촌 언니, 아이의 부모와 엄마의 불륜남이 차례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다.

반전은 반전을 몰고 오고, 각자의 인물들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본능은 그렇게 이타적이지 않다.

 

 

한 아이의 죽음 앞에서 삐져 나오는 비밀과 은밀한 살의들은 한 집안의 대를 이은 불륜의 씨앗으로부터 파생되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느 하나 냉정맞지 않은 이가 없다.

아이들 마저도 냉정하다. 감정적인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자짓 건조하게 보이지만 그만큼 서늘하다.

게다가 렌조 미키히코의 문장들은 왜이리도 생각을 후벼파는지 모르겠다.

자기 죄를 고백하는 이들에게 모두 동조하고 싶게 만드는 타당한 문장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우리 가족과 그 집안을 직접 이어주는 끈은 사토코 씨와 유키코가 자매간이라는 것뿐이었지만, 나는 우리 집이 그 집안에서 파생된 새끼 가족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우리 결혼 생활의 불행의 이유가 원래 그 집안에 있었던 세균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모두 입다물고 살고 있었지만 모두 힘들게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모두 행복한 듯 무탈하게 살고 있었지만 모두가 불행속에 빠져 있었다.

각자가 비밀을 간직한채로 서로와 마주치며 비극을 키워갔다.

서로의 것을 빼앗으면서도 서로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었다.

 

 

때론 잔혹하고

때론 교활하고

때론 무심하고

때론 헛갈리게 하는 이야기는 모노 드라마를 지켜 보는 거 같다.

혼자서 독백을 하면서 자신의 죄와 타인의 죄를 말하는 배우들처럼 모두가 카메라 앞에서 자기들이 외워 온 대본을 말하는 거 같다.

마치 독자들을 앞에서 오디션을 보는 것 처럼.

 

 

 

실제로 내 몸은 모피가 타는 듯한 냄새를 풍겨서 나는 죄라는 건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이구나, 하고 나 스스로도 그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던 것이 기억납니다.

 

 

치매에 걸린 노인은 며느리와 며느리의 동생을 헛갈려 하고

나오코와 전쟁통에 섬에서 자신이 죽인 소녀를 구분하지 못한다.

엄마 유키코에게 나오코는 자신의 삶에 방해꾼일 뿐이었다.

아빠 다케히코는 나오코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모 사토코는 자신의 딸 가요보다 나오코가 사람들에게 이쁨 받는 것이 보기 싫었다.

이모부 류스케는 무시할 수 없는 자신의 죄를 떠올리게 하는 나오코가 부담스러웠다.

가요는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 하는 나오코가 미웠다.

그랬다. 다들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다였을까?

 

 

그건 질투였습니다.

 

 

인간이 살의를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질투에 있지 않을까?

이 모든일은 어른들의 질투심 때문에 벌어졌지만 그 죄를 감당해야 했던 건 네 살 짜리 나오코였다.

이 묘한 심리극을 보고 있자면 다 범인 같고, 또 아무도 범인이 아닌 거 같다.

 

 

 

"괜찮아, 그렇게 해도. 잘했어..."

 

 

치매 노인의 기억속에서 되풀이 되는 이 말은 인물들이 독자들에게 하는 말 같다.

이 이야기를 어떤식으로 해석해도 괜찮다고. 당신이 어떤 마음이 들던 그렇게 해도 된다고.

 

 

그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각자의 죄를 덜어내기 위해 하나의 원죄를 만들어냈을 뿐이었다.

 

 

렌조 미키히코를 각인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마치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건조한듯 습한 문장들의 파편이 곳곳에서 촉수를 뻗어내고 있었다.

끈끈한 짓물을 잔뜩 묻힌 그 촉수들이 생각을 휘어잡아서 마비시키는 느낌.

그래서 범인을 앞에 두고도 내 머릿속엔 그저 "괜찮아"라는 망령의 속삭임만이 남는다.

 

 

전혀 괜찮지 않은 이야기를 괜찮게 써버리는 필력에 매료된 이야기.

그 강렬한 흰 빛에 눈이 멀어버리는.

백광은 그런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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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의 세계사 - 왜 우리는 작은 천 조각에 목숨을 바치는가
팀 마샬 지음, 김승욱 옮김 / 푸른숲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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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이라는 단어를 보면 휘날리다, 펄럭이다, 상징하다는 말들이 머릿속에서 자동 생성된다.

그리고 운동회 때 운동장을 장식했던 만국기들이 생각난다.

깃발에는 그리움도 담겨 있다. 누군가를 향해 한없이 휘날리며 굳건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나에게 깃발은 그런 것이었다.

 

팀 마샬은 깃발을 통해 세계사를 짚었다.

 

한 나라의 역사, 지리, 국민, 가치관, 이 모든 것이 그 천조각의 형태와 색깔에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각자 생각하는 의미가 다를지라도, 그 깃발에 의미를 띠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국기는 나라를 상징한다.

그 나라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국기에 담아낸다.

다른 나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국기도 있고, 종교적 의미가 담긴 국기도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국기가 문양도 뜻도 누구나 그리기도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격하지 않고,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이지도 않은 태극기가 전 세계의 어떤 국기 보다 가장 멋진 국기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총 9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통해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제5장 공포의 깃발 편이다.

검은색의 깃발 하면 해적이 떠오른다.

검은색 바탕에 해골 그림이 그려진 깃발은 해적의 전유물로 뇌리에 박혀있다.

이 검은 깃발을 흔드는 집단이 중동에 밀집해있다.

잘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자행하는 일들로 인해 그들에게 공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깃발이 상징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그런 집단이 생겨났는지 그들이 행하는 방법들이 왜 그렇게 잔인한 건지를 이 책을 통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취재하고 방송했던 경력이 있는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의 글에 공포감이 묻어난다.

그들의 깃발에 새겨진 글은 같은 글이다.

같은 이념을 따르지만 그들의 행동방식은 더 잔인하냐와 덜 잔인하냐의 차이뿐이다.

 

깃발을 맨 처음 사용한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중국에서 가장 오래도록 사용한 게 아닌가 한다.

다만 수많은 깃발을 앞세워 전쟁을 치렀던 나라였지만 현대에 들어 국기를 필요로 하지 않은 것도 중국이다.

그래서 그들의 국기는 생각보다 늦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깃발의 모양은 거의 직사각형 모향이지만 네팔의 국기만은 두 개의 삼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팔의 주요 종교인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히말라야산맥을 상징한다.

 

졸리 로저라고 불리는 해적의 깃발은 검을 바탕의 천에 교차시킨 뼈 두 개와 두개골이 그려져 있다. 이 깃발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템플기사단이다.

적십자의 깃발이 최근에 바뀌었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얀 바탕에 적십자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다이아몬드 모양이 그려져 있다.

유럽의 깃발엔 평등, 자유와 같은 색을 넣은 국기가 많고, 중동과 아시아를 거치면서 이슬람의 색이 들어간 국기가 많다.

 

깃발에 담긴 의미들과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공포와 갈등을 조장하는 깃발은 다양하게 만들어내고 자주 사용하는 데 평화를 위한 깃발은 거의 없고, 많이 사용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깃발 아래 모여 사는 것이 인류의 숙명이라면 나는 평화로운 깃발 아래 살고 싶다.

누군가의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위한 깃발 아래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을 통한 세계사에 익숙해져서 그들에 대한 것들은 잘 알지만 그 외의 나머지 대륙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걸 놓치고 사는 거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아시아 대륙의 깃발과 국기와 그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다.

우리에게도 우리 시각으로 보는 세계사와 깃발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깃발 아래 안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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