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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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둘을 애써 가를 필요는 없습니다. 둘이 모여 하나를 품고, 품은 하나 속에 둘이 있습니다.

 

 

모처럼 곁에 두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글을 만났다.

고향갑.

처음 읽는 작가님의 글이 참으로 고단하다.

그 고단함이 참으로 좋다...

 

 

4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각 장마다 한 글자의 제목이 달렸다.

한 글자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 너, 우리의 이야기다.

 

가슴이 저리고

가슴이 아리고

마음이 들썩이다가

마음이 녹아든다.

생각이 생각을 더하고

글들이 깊이 있게 각인되어 책장을 넘기기가 조심스럽다.





69편의 글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요해진다.

내가 알지만 모르는 세상이 담겨 있고,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뒷면이 담겨 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글이지만 서슬이 퍼렇다.

 

 

사랑의 온도는 더하거나 뺄 수 없어요. 각기 다른 두 개의 삼십육 점 오 도가 합해져도 여전히 삼십 육 점 오 도니까요. 그런 점에서 사랑의 온도는 체온과 일치해요.

 

 

나는 조잘거렸고, 그는 빈 종이컵에 소주를 채워 내 앞에 내려놓았다.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었다. 측은이 측은을 채우면 다른 측은이 측은을 비웠다.

 

 

문학은 손으로 써내는 가슴 속 언어입니다. 어깨나 이마에 붙이기 위한 계급장이 아닙니다. 문학을 자꾸 크고 거창한 학문으로 격상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학문으로 격상시키는 순간, 문학은 '항문'이 되고 '똥'이 됩니다.

 

 

떨지 마라, 아내야. 당신은 손가락 하나를 잃었지만 세상은 가슴을 잃었다. 사람은 없고 밥그릇만 보이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설움을 앞에 두고도 고개 돌리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숨소리를 따라 들썩이는 허파는 있어도 생명으로 쿵쾅대는 심장은 없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가슴이 차오른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내가 부끄러워진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먹먹해진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가 그만큼 특별해진다.

 

고향갑.

이름에서부터 온갖 그리움들이 담긴다.

이 작가님의 글을 처음 읽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움의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한 글자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결들이 깊이 있어서 좋다.

곁에 두고 자주 읽어서 각인시키고 싶은 문장들이다.

이 책에 코를 박고 힘껏 들이마신다. 글들이 코로 들어와 심장에 박혀 벌컥거리며 혈관을 타고 뇌로 향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왜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너무 안온하게 살았나 보다...

 

제목처럼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에 묻혀서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서 사는 삶은 다채롭지 못하다.

이 글을 읽으며 그동안 다채롭지 못했던 세상을 물들여 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글이 고픈 사람들

깊게 음미하고 싶은 글을 찾는 사람들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한 글자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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