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데나의 세계
뫼비우스 지음, 장한라 옮김 / 교양인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라미드가 노화를 멈추는 광선을 내뿜어요. 저 피라미드는 은하계 안에서 지적 능력이 있는 모든 종을 여기로 데려와서는 영원히 살게 만들고 있어요. 그런데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걸까요?

 

 

아탄과 스텔은 우주 정비공입니다.

그들은 행성들을 오가며 고장난 것을 수리하죠.

그러다 어느 날 그들은 당구공처럼 생긴 행성에 불시착합니다.

그곳은 거대한 피라미드와 은하계의 모든 지적 능력을 가진 종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피라미드 근처에 가지 못했지만 스텔은 피라미드로 향해 다가가고 피라미드와 접속합니다.

피라미드는 스텔과 아탄과 여러 종족들을 전설 속 낙원으로 이동시킵니다.

그 전설 속 낙원은 바로 에데나.

 




에데나에 도착한 아탄과 스텔은 오래전 지구의 모습과 닮은 곳에서 인공적인 것에서 벗어나 생존을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생존을 위한 삶은 그들의 육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들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죠.

아탄은 여성으로 스텔은 남성으로 변한 가운데 스텔은 욕구를 못 이겨 아탄에게 돌진하고 그런 스텔에게 상처 입은 아탄은 스텔이 잠든 사이에 떠나고 맙니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각자의 모험을 하게 됩니다.

에데나에서 그들이 경험하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요?

 

 

 

정교한 그림 속에 숨어있는 독특한 그림들이 상상력을 마구 펼치는 에데나의 세계.

 

<별 위에서>, <에데나의 정원>, <여신>, <스텔>, <스라> 5편의 이야기가 스텔과 아탄의 여행을 이야기합니다.

피라미드는 그들을 왜 에데나로 데려갔을까?

에데나는 어디를 표현한 걸까?

피라미드와 함께 이동했던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서 생존하게 됩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그들은 평화로움을 잠시 누렸을 뿐 결국 한 사람의 독재자가 탄생하고 복제인간들을 만들어내어 그들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통치합니다.

온몸을 가리고 이상한 마스크를 써야 하는 복제인간들.

마스크를 거부한 사람들은 지하에서 '바퀴벌레'라 불리며 살아가죠.

거꾸로인 세상에서 그들의 희망은 자신들을 해방시켜 줄 여신입니다.

 

뫼비우스라는 필명처럼 이 이야기엔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시작은 끝과 맞물려있고, 끝은 시작과 동일하죠.

그래서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상상력을 무한 생성해 내야 합니다.

친절하게도 각 장마다 설명이 있지만 그 설명만으로는 이 이야기를 모두 해석할 수 없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그러기에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나 봅니다.

각자가 자신들의 해석으로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었으니...

 

30여 년 전에 벌써 젠더와 환경문제를 작품에 담아낸 뫼비우스의 혜안에 놀라게 됩니다.

에데나의 세계는 구분이 없으면서도 구분이 있고, 구분이 있으면서도 구분이 없어요.

인공적인 세계에서 자연의 본능대로 살다가 다시 인공의 세계로 넘어가는 일들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됩니다.

어쩜 이것 또한 우주의 법칙일지도 모릅니다.

 

트롤로펜은 문화적 맹목 상태에 갇혀 있고 그 결과 이 에덴동산 같은 세계에 악을 만들어낸다. 트롤로펜은 우리 모두가 좀 더 분별 있고 좀 더 온전한 삶으로 나아갈 때 겪는 어려움을 나타낸다.

 

 

하나의 장을 시작할 때 작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작가의 말은 이 상징적인 이야기에 대한 길잡이가 되어 주니까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하면 안 돼요.

거기에 당신의 상상력을 가미해야 하죠. 그래야만 더 풍부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뫼비우스의 개성을 좀 더 잘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꿈꾸는 것이 두려워질 수도 있죠. 누군가 내 꿈에 침투해서 나를 공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니까.

 

한 번 읽었기에 아슬아슬하게 손에 잡힐 듯 말 듯 합니다.

가끔 펼쳐서 읽어가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번뜩임을 얻을 거 같아요.

한 번 읽은 거 가지고는 이 이야기의 매력을 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책 소개를 할 때 그림체가 별로 나랑 안 맞는 거 같았다고 했는데

읽다 보니 내성이 생겼는지 그림들이 썩 마음에 듭니다.

정교함을 바탕으로 하고 그 안에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을 숨겨 놓았어요.

그 예술적인 상상력을 찾아보는 재미도 함께 하길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오늘의 젊은 문학 4
이경희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일할 시간이었다. 제이는 넥타이를 고쳐 맨 다음 관자놀이 부근의 감정 절제 스위치를 켰다.

 

 

협상을 할 때는 관자놀이 부근의 감정 절제 스위치를 켜는 변호사 제이.

미래의 인간에게는 감정을 조절하는 스위치가 허락되나 보다.

편리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협상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은 좋지만 좋은 협상은 바로 그 감정에서 나오는 것인데...

우주의 노사분규는 어떻게 처리가 될까?

 

갑자기 조상님들이 살아 돌아온다면?

제사를 안 지낸다고, 제사를 잘 못 지낸다고 분기탱천한 조상님들이 살아 돌아와 호통을 친다.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 지끈거리는 이야기.

이 조상님들 어떻게 물리치나요?

 

내 모습은 내가 욕망하는 대로 변하고, 세계는 내가 말하는 대로 바뀐다!

 

 

인간의 욕망이란 한계가 있는 것일까?

욕망을 충족하면 만족할 거 같지만 충족과 동시에 더 강렬한 욕망을 찾게 되는 것이 인간 본성일까?

내 욕망을 채우고 나면 남의 욕망까지도 넘보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것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욕망이 들끓는 지구의 운명은?

 

모두가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 아니, 지금을.

 

 

정원과 하나는 어린 은하를 데리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살인자의 손에 은하가 죽자 현실을 견디지 못한 하나는 미래로 떠나버린다.

정원에게 따라오지 말라는 쪽지를 남기고.

그것은 진정 따라오지 말라는 것일까, 따라오라는 것일까?

정원은 하나를 쫓아 미래로 떠난다.

몇 백년, 몇 천년, 몇 억년을 쫓아도 하나를 붙잡을 수 없다.

인간의 몸에서 점점 인공지능의 신체로 바꾸고 뇌까지 바꾸었지만 '사랑'에 대한 감정인지 집착인지 모를 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영구히 기억될 뿐.

 

정원이 미래로 점프할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지구의 모습이 섬뜩하다.

이 작가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배경만 우주일 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현실의 문제들이다.

그래서 미래인지 현재인지 잠시 의심해 본다.

미래에서도 인간은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욕망을 불태우며, 착취를 일삼고, 상위 0.01%들이 세상을 독점하는 거 같다.

자원은 고갈되고, 인간 대신 기계들이 싸우고, 인간이 하나도 남지 않는 지구에서조차 기계들은 멈추지 않고 전쟁을 벌인다.

'멈춰'라는 명령을 내릴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서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싸우는 기계들.

 

억만 년의 시간을 넘어 만난 정원과 하나.

그들이 하나 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우주.

진정 사랑만이 세상의 빛이 되는 걸까?

 

다정한 우주라더니 다정하지 않네. 라고 생각하다가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의 마지막에서 희망이 보인다.

우리의 유크로니아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라는 빤한 결론을 이토록 시간을 들여(억만 년의 미래를 점프하는 정성을 들여) 이야기한 이유는 바로 그 시간에 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정화될 수 있는 현재의 죗값들.

 

너의 다정한 우주로부터 내게로 전해지는 온기는

세상을 온전하게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너의 온기는 곧 나의 온기다.

너에게 받은 다정함을 나 역시 또 다른 너에게 전달해야 하니까.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보낸 시간이 신선하기도 하고, 적절하기도 했다.

한국형 SF는 건조하지 않아서 좋다.

삭막함에도 온기를 남기는 이야기들이 있어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꼬치의 기쁨
남유하 저자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유하 작가의 10편의 단편이 담긴 양꼬치의 기쁨.

적은 분량이지만 한꺼번에 읽기에는 과부하가 걸리는 글이다.

남유하라는 작가를 모르고, 그의 글을 처음 읽는 나는 첫 이야기 <닫혀 있는 방>을 준비 없이 읽었다가 뇌가 찌르르했다.

 

뒤이어 이어지는 글을 연달아 읽다가 중단했다.

이거 계속 읽다간... 내가 내명에 못 살지도 몰라...

양꼬치의 기쁨이 더 이상 양 꼬치집에 못 가게 만들었고

닫혀 있는 방이 없게 온 집안의 문을 다 열어 놓고 사는 내 자신에 안심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게 몹시 두렵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상상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는 게 두려운 이야기는 또 처음이다.

정말 모든 걸 생략한 채로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이들의 공격에 멘탈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처럼 그는 평범하다는 범주 안에 무리 없이 속했지만, 머릿속을 뜯어보면 유별난 면이 적지 않았다. 그런 점이 그를 더욱 평범하게 했다.

 

 

악몽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죽음의 판타지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유별난 이야기들.

어디에서 공격이 올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하게 읽어가게 되는 이야기들.

 

 

앞으로 그는 백색 소음 없는 고요한 세상에서 오직 그를 괴롭히는 기억의 소리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우리의 무의식이 저런 상태가 아닐까?

누명이었는지 진실이었는지 모른 채 아내를 살해했다는 죄로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는 상실형을 선고받은 남자.

기억도 지워지고, 귀도 잘려서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손가락의 한 마디가 잘려서 온전치 못한 이 사람은 불현듯 기억의 잔상들이 돌아오면서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억을 삭제당한 남자의 말을 누가 믿어줄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한 가해는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남유하 작가가 독자들에게 행한 가해도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포, 기이한 이야기, 악몽 같은 속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환호할 만한 이야기.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인간 본성의 선한 면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칠 이야기.

그러나 기발한 사건 전개는 오싹하면서도 익숙하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미운 사람이 있을 때 읽으면 좋을 거 같다.

이 이야기들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해보면 알 것이다.

그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결국 그러는 나도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

 

이 책에서 좀비 이야기가 가장 서정적이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지구 멸망이 2시간 후로 다가온다면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시겠어요?

 

꾸고 싶지 않은 꿈속에서 헤매다 나온 기분이다.

그나저나

이제 양꼬치는 다 먹었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피 한잔 - 문학×커피 더 깊고 진한 일상의 맛
권영민 지음 / &(앤드)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피의 효능이 알려지고 커피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즐길 수 있게 되자, 커피는 이슬람의 강력한 종교적 보호를 받았다. 아라비아 지역에만 한정해서 커피가 재배되고, 다른 지역으로 커피의 종자가 나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관리되었다.

 

 

커피의 원산지 에디오피아 케파.

이곳 염소지기는 염소들이 키 작은 상록수에 열려 있는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하는 걸 보고 직접 따 먹어 본다.

이 열매를 먹자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걸 느낀 염소지기는 이슬람 사원의 수도승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커피는 수도생활에 도움을 주는 신비한 열매로 알려지며 수도원을 중심으로 퍼져나간다.

유럽에 커피가 처음 알려진 건 십자군 전쟁 때다.

그 이후로 유럽으로 커피는 퍼져 나갔고 아라비아 상인들은 모카 지역을 커피 수출항으로 한정하고 커피의 반출을 엄격히 규제했다.

그러나 규제한다고 규제가 되는 것이 어디 있던가!

 

그럼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커피를 알게 됐을까?

저자가 찾아 본 기록에는 1895년 간행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있다.

거기에 처음으로 '가비'라는 말로 소개만 되고 맛, 향에 대한 내용은 없고 서양음식편에 우리나라의 숭늉과 냉수처럼 마신다는 뜻으로 써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알려진 커피 마니아는 바로 고종황제다.

사약 같은 비주얼의 커피에 살짝 뭘 넣어도 모르겠기에 독살 당할 뻔한 일화는 매번 들어도 끔찍하다.

 

커피 한잔이라는 펄 시스터즈의 노래로 커피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 하는 권영민 작가는 <커피 칸타타>를 조수미 버전으로 듣기로 권한다.

커피는 맛도 맛이지만 그 분위기와 결합되었을 때 얻는 시너지를 무시할 수 없다.

장소와 음악과 마주 앉은 사람이 주는 느낌이 오롯이 커피 한잔에 담긴다.






우리의 현대문학 속에 담긴 커피와 커피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밤 풍경이 매혹적인 버클리대학의 카페 스트라다에서 밤 커피를 마셔보고 싶다.

저자는 대학로의 <학림 다방>을 언급하셨지만 대학로에서 쭉~ 자라난 나는 <상파울로>라는 카페가 기억에 남는다.

90년대 그곳은 그 당시에도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의 카페였다.

갖가지 종류의 커피가 메뉴판을 가득 채웠고, 친구들과 나는 갈 때마다 다른 커피 맛을 보는 재미를 누렸다.

지금도 그곳의 분위기가 그립다. 가끔 그곳에 들어서면 그윽하게 나를 홀리던 커피향과 함께 자욱한 담배연기의 맛이 어우러지던 그 향이 코끝에 맴돌 때가 있다. 넓은 평수의 카페여서 수많은 사람들로 웅성웅성거리며 찻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잔상으로 남아있다.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것이든 다 좋다.

이 커피 한잔에 담긴 이야기들이 더 좋은 이유를 찾자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들에 대한 얘기라서 더 좋다.

30~40년대의 커피 문화는 문학 속에서 70년대의 커피 문화는 본인의 경험에서 엿들을 수 있다.

 

커피 한잔을 읽으면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내가 모르던 시대의 낭만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시는 나는

이 책에서 다양한 커피향을 맡았다.

진한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마셔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하와이에서 코나 커피의 마지막 단맛을 느껴보고 싶고.

브라질에서 카페지뉴의 진짜 맛을 느껴보고 싶다.

그렇지만 루왁 커피는 사양하겠다!

 

예전엔 커피를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셨고

모카 포트로 뽑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셨고

그러다가 반자동 머신으로 뽑아 마셨고

그러다 캡슐커피를 마시게 됐다.

 

점점 기계화되어 버린 나의 커피.

이번에 바꾼 커피 기계가 수명을 다하게 되면 손수 내리는 커피로 바꿀까 한다.

커피 내리는 과정까지도 즐길 줄 아는 것도 커피에 대한 예의니까.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커피에 대한 추억 여행이었다.

다른 사람의 추억을 빌어다 내 추억을 쌓았다.

알지 못했던 지식과 함께 아련한 향수까지 알뜰하게 챙겼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커피 한 잔과 함께 커피 한잔을 읽어 보는 시간을 누려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아무리 빛나는 옷을 걸쳤어도, 높은 곳에 앉았어도 인간은 혼자만의 밤에는 모두 상처 입은 존재인 것이다.

 

 

미술학도의 꿈을 안고서 사제가 된 사람.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대학에서 그리스도교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 장동훈.

 

미술작품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조금 가볍게 읽었는데

이 책에 담긴 글들은 미술을 평하는 글도 가볍게 읽을 글도 아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글은 더더욱 아니다.

 

그림에 담긴 시대적 역사와 종교적 관점과 함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감상이 함께 공존한다.

많이 봤던 그림도 있고, 생소한 그림들도 있다.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도 반드시 진실과 부합하진 않는다. 현실의 요구에 순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타협할 수 없는 신념, 닿을 수 없는 이상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의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화가다.

프리다에 심취해서 리베라가 어떤 화가였는지 보다는 프리다에게 상처를 준 사람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 디에고 리베라를 다시 들여다본다.

 

현실을 그린 리베라의 그림은 민족 해방을 모토로 삶은 오브레곤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프리다를 떠올렸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게 틀림없다는 느낌이 든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내겐 프리다의 강렬함에 압도되어 디에고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의 그림은 사진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다.

질서정연한 느낌 아래 복잡하고 거칠고 힘겨운 삶들이 담겼다.

언뜻 정돈된 그림인데 그 안에는 온갖 혼잡함이 넘쳐난다.

리베라는 현실을 살짝 넘어선 미래를 그렸다.


 

오윤은 요절했고 민중미술은 '15년'안에 갇혀버렸다. 무릇 미술은 현실의 총체적 반영으로 현실 변혁의 동반자여야 한다는 선언과 함께 시작된 이들의 현실과의 대화는 이렇게 영영 끝나버린 것일까. 그러나 교회가 시작한 세상과의 대화는 애초에 끝마쳐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니던가.

 

 

 

 

 

우리의 미술계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나는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오윤이라는 작가의 작품과 그의 일갈도.

암담한 시대를 표현한 그림들은 그 시대에는 시대를 반영해서 빛을 보지 못했고

이후에는 시대와 맞지 않아서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남의 나라 미술은 무엇이든 가져다 포장과 가꿈을 통해 빛을 내게 만들면서

우리의 미술은 어째서 포장도 가꿈도 하지 못하고 있는지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그분들에게 빛을 비춰주었으면 좋겠다.

 

미술학도를 꿈꾸던 사람의 시선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의 시선으로

종교인의 시선으로

그리고 작가적 시선으로 기존의 미술 관련 에세이들과는 결이 다른 글들을 마주했다.

 

그림은

화가나 그림을 평가하는 사람이나 그 그림에 의미를 부여하는 평론가의 말보다

직접 그림을 마주하고 느끼는 사람의 온전함이 바로 그 그림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그림이라도 어떤 사람이 그 앞에 서서 느끼느냐에 따라 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네 가지 색으로 읽히는 끝낼 수 없는 대화...

정말 제목처럼 이 이야기들은 끝낼 수 없는 대화다...

언제고, 어디서 건 계속 이어지는 그런 이야기가 되어야 하니까.

 

세상도 교회도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 앞에 서 있다.

팬데믹 선언 직후 곳곳에서 피어나던 인문학적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전염병의 '종식'과 '박멸'만이 모든 담론을 집어삼킨 듯하다. '어떻게'라는 방법이 '어떤 세상'이라는 철학을 압도한 모양새다.

 

한 사람의 성찰이 여러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바란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장동훈 작가님의 말들이 점점이 새겨지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